서울광장
  • [서울광장] “눈물 젖은 빵은 먹을 수 없다”/이순녀 논설위원

    [서울광장] “눈물 젖은 빵은 먹을 수 없다”/이순녀 논설위원

    스물셋, 푸르디푸른 목숨이 또 스러졌다. 주말 이른 아침에 근무하다 작업장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 엄마와 남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한 청년 가장이었다. 지난 15일 오전 6시 무렵 경기 평택에 있는 SPC 계열사 SPL 제빵공장에서 벌어진 기막힌 일이다. 샌드위치 소스를 섞는 배합기 안으로 몸이 빨려 들어갔는데 안전장치도 없고, 옆에서 구해 줄 동료 직원도 없었다.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김용균, 서울지하철 구의역 김군의 사례와 판박이다. 이런 안타까운 사고를 막고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돼 올 1월부터 시행 중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안전 조치만 제대로 했다면 막을 수 있는 후진적인 인재로 꽃다운 젊은이들을 계속 잃어야 하는가. SPC그룹은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 도너츠 같은 유명 브랜드 수십 개를 거느린 국내 베이커리 업계 1위 회사다. 지난해 매출은 7조원을 넘었다. 하지만 위상과 덩치에 걸맞은 기업 문화, 근무 환경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사고 원인과 사후 수습 과정만 봐도 아연실색할 만한 사안이 한두 개가 아니다. 경찰의 정확한 사고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기본적으로 사업장의 안전 조치가 미비했
  • [서울광장] 대통령 리더십, 경청과 공존을 추구해야/박현갑 논설위원

    [서울광장] 대통령 리더십, 경청과 공존을 추구해야/박현갑 논설위원

    시대마다 국정 철학은 달랐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조국 근대화였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는 새마을운동 노래가 상징하듯 민생고 해결이 과제였다. 이런 기조는 전두환ㆍ노태우 정부에서 산업화로 이어졌다. 김영삼ㆍ김대중 시대는 정치 민주화가 화두였다. 노무현 정권은 균형 발전을, 이명박ㆍ박근혜 때는 각각 선진화와 경제민주화를 추구했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적폐청산을 외쳤다. 사회 변화에 따라 시대정신은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리더십 변화는 부족했다. 전 정부 수사를 둘러싼 정치 보복과 정의 구현이라는 공방만이 정권교체의 결과물로 회자되는 건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공정과 상식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는 어떤가. 그 어느 때보다 리더십 발휘가 필요한 상황이다. 먼저 신자유주의를 대신한 국제사회의 자국 보호주의 기류와 북핵 위기로 상징되는 외교안보 위기 상황이다. 시장경제를 외치던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에서 드러나듯 세계 각국은 다자주의 구현보다는 자국 보호에 혈안이다. 게다가 한반도는 북한의 잇단 도발에다 7차 핵실험 강행 기류로 정전 이후 최고조의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정치권에서 대응 방안을 놓고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자체 핵무장 등
  • [서울광장] 평강공주, 선화공주, 그리고 계산공주/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평강공주, 선화공주, 그리고 계산공주/서동철 논설위원

    알지 못했던 과거의 인물을 새롭게 만나는 것은 즐겁다. 그 인물이 역사적 의미뿐 아니라 인간적 매력까지 담고 있다면 재미는 더욱 커진다. 백제 계산공주(桂山公主)가 꼭 그렇다. 그는 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왕의 딸이다. 무술을 연마해 전쟁에 나선 계산공주는 고대사회 우리 여성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고구려 평강공주, 신라 선화공주의 진취적 기상을 뛰어넘는 계산공주의 존재는 ‘백제 공주’의 빈칸을 채워 넣는 의미도 있다. 백제지역 문화계가 먼저 역사 자원으로 계산공주의 중요성에 눈뜬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지난달 공주에서는 ‘백제 계산공주 콘텐츠 활성화 방안’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계산공주를 백제의 대표 문화콘텐츠로 부각시키고자 하는 실천적 노력도 이어졌다. 지난 월요일 ‘제68회 백제문화제’ 폐막식에서 선보인 ‘계산공주 쇼케이스’ 공연이 그것이다. ‘공주’(公主)가 갖고 있는 정형화된 이미지와 완전히 다른 ‘여전사 계산공주’를 조명했다. ‘삼국유사’에는 이런 스토리가 있다. 나당연합군이 강가에 군대를 주둔시켰는데, 새 한 마리가 당나라 장수 소정방의 머리 위를 날아다녔다. 불길한 점괘에 소정방이 싸움을 그만두려 하자 김유신이 신검(神劍)을 뽑아 겨누었고, 새
  • [서울광장] 국가보안법의 운명, 차분히 지켜보자/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국가보안법의 운명, 차분히 지켜보자/박록삼 논설위원

    그렇지 않은 시절이 별로 없었겠지만 2004년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다이내믹 코리아’였다. 3월 12일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다. 이튿날부터 국회 규탄 집회가 연일 펼쳐졌다. 곧바로 열린 4월 15일 17대 총선에서 탄핵 역풍이 거세게 불며 여당인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대통령 탄핵안은 5월 14일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 정국 주도권을 쥐게 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17대 국회에서 개혁의 고삐를 거세게 틀어쥐었다. 이른바 4대 개혁입법 중 특히 국가보안법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았다. 유엔과 국제앰네스티 등에서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9월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칼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해 12월 절정을 이뤘다. 칼바람 부는 여의도 국회 앞 아스팔트 위에서 1000여명이 천막을 치고 단식 농성을 벌이는 진풍경을 선보였다.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를 위해 청년 활동가 송현석씨가 당시 사상 최장이었던 60일 단식을 진행한 것을 비롯해 집단으로 한 달 가까운 단식 농성을 펼쳤다. 연인원 수천 명의 시민들 또한 여의도공원에 모여 “국가보안법 없는
  • [서울광장] ‘핵균형’ 공론화할 때 됐다/임창용 논설위원

    [서울광장] ‘핵균형’ 공론화할 때 됐다/임창용 논설위원

    북한이 ‘핵 선제타격’을 법제화한 ‘핵무력 정책법’을 발표한 뒤 미사일 도발 수위를 갈수록 높여 가고 있다. 지난 4일 미국 전략자산이 포진한 괌을 사정권에 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일본 상공을 넘어 태평양 한가운데로 쏘아올린 데 이어 6일에는 미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의 동해 회항에 항의해 미사일을 발사했다. 올 들어 22번째 탄도미사일 도발이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대북 유화책으로 일관한 5년간 꾸준히 핵·미사일 전력을 고도화했다. 고도화 로드맵은 조만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7차 핵실험으로 일단락될 가능성이 커졌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최근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북한의 미사일 시험이 단계적인 고도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7차 핵실험을 향해 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오는 16일 중국 공산당대회와 11월 7일 미국 중간선거 사이에 핵실험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7차 핵실험은 핵탄두를 소형화·경량화한 전술핵 실험이 될 가능성이 크다. 파괴력은 전략핵의 수십분의1에 불과하지만 핵 공격 부담이 적어 남한의 핵 위험이 더 커진다는 의미다. 북한이 올 들어 감행한 미
  • [서울광장] 여가부가 지금 해야 할 일/전경하 논설위원

    [서울광장] 여가부가 지금 해야 할 일/전경하 논설위원

    50대 후반의 지인은 동성 후배와 산다. 동성애자는 아니다. 직장에서 만나 우연히 함께 살게 됐는데 둘 다 결혼하지 않으면서 20년 지기가 됐다. 비혼 동거인이다. 한 사람이 해외에서 근무할 때 서로 허전함을 견디지 못해 한국에 있던 동거인이 직장을 그만두고 합류했다. 가족보다 더 끈끈하지만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 기본단위’(건강가정기본법 제3조)라는 법률상 가족은 아니다. 민법(제775조)에는 ‘인척관계는 혼인의 취소 또는 이혼으로 종료한다’고 돼 있다. 배우자의 부모와 형제자매,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가 인척이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사망한 경우는 생존 배우자가 재혼해야 인척관계가 종료된다. 즉 사별 이후 재혼하지 않으면 인척관계는 그대로다. 남편 사망 이후 남편의 형제들이 있는데도 홀시어머니를 10년 이상 모셨던 전직 지방공무원은 종교에 의지해 마음을 다스렸다고 회고했다. 일본 민법(728조)에선 생존 배우자가 인척관계를 종료하겠다는 신고서를 관공서에 내면 인척관계가 끝난다. 이른바 ‘사후이혼’이다. 일본에서는 졸혼에 이어 사후이혼도 꾸준히 늘고 있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의 주인공처럼 제출자는 거의 여성이다. 일본은 결
  • [서울광장] 대통령의 욕설과 사대주의/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대통령의 욕설과 사대주의/박록삼 논설위원

    사고 이후 15시간 만에 나온 대통령실의 해명을 믿는다. 백 번 이상 돌려 봤다.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과 미국 의회를 싸잡아 욕설을 내뱉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그 상황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어깨를 부여잡고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48초 만남’을 가진 직후였다. 최소한의 예의를 가진 이라면 그렇게 표변할 수 없다. 대미 관계에서 윤 대통령은 일관성이 있다. 취임 전부터 딱히 실체조차 불분명한 한미동맹의 위기를 계속 거론하면서 한미동맹 강화 의지를 밝혔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칩4 참여 등 반중국 연대를 꾀하는 미국의 군사안보전략, 경제전략에 보조를 맞췄다. 급기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즈음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공개적으로 ‘탈중국 선언’까지 했다. 잡상인 대하듯 내치는 일본에 ‘저자세 굴욕 외교’라는 말까지 들어 가면서 매달린 것도 미국이 원하는 한미일 삼각동맹을 완성하기 위함이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대중 경제 무역 규모는 우리 경제 전체의 25%에 달한다. 1992년 수교 이후 30년 동안 대중 무역 흑자는 누적 7100억 달러(약 940조원)를 넘어섰다. 톡
  • [서울광장] 바이든과 ‘날리면’ 사이/문소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바이든과 ‘날리면’ 사이/문소영 논설위원

    지난 주말에 ‘듣기평가’ 또는 ‘청력 테스트’에 도전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만난 직후 한 발언을 각기 다른 방송사 버전으로 반복해 들었다. “국회에서 이××들이 승인 안 해 주면 ○○○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지난 22일 이 발언을 가장 먼저 보도한 MBC는 “국회에서 이××들이 승인 안 해 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냐”라고 자막 처리를 했다. 이른바 ‘핫 마이크’(Hot Mic)다. 해외에서 흔한데 대통령이나 정치인 등이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혼잣말 등으로 누군가를 욕하는 등 속마음을 드러내면 그것이 언론에 보도돼 논란이 되곤 한다. 윤 대통령이 그 경우에 노출된 것이다. ○○○은 헷갈리더라도 ‘이××들’과 ‘쪽팔려서’는 언제나 또렷하게 들렸다. 이 발언은 대통령실에서 별다른 대응이 없었기에 더 빠르게 퍼져 나갔다. 한덕수 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바이든 앞에서 한 말은 아니지 않으냐”며 반박했다. 외신도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 의회를 모욕했다’는 헤드라인을 내걸고 보도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공개 해명한 것이 15시간 뒤다. 대응이 늦어도 너무 늦었
  • [서울광장] 3연임 시진핑, 마오쩌둥 시대로 회귀하나/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3연임 시진핑, 마오쩌둥 시대로 회귀하나/오일만 논설위원

    이변은 없어 보인다. 다음달 16일 중국의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확정되는 시진핑(69)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은 이미 4년 전에 종결된 사안이다. 2018년 헌법 개정으로 국가주석 3기 연임(매 임기 5년) 금지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시 주석의 장기집권 길을 열어 놓았다. 국제사회의 시선은 집권 연장이 아니라 20차 당대회 이후 중국의 정치 시스템은 물론 장기적인 전략·전술적 변화 여부에 쏠려 있다. 마오쩌둥은 1인 독재의 길을 닦았고, 덩샤오핑은 이를 막기 위한 집단지도체제 시스템을 고안했다. 시 주석의 집권 연장으로 덩샤오핑 집권 시 작동했던 정치 시스템이 소멸되면서 자연스레 마오쩌둥 시대의 색채를 가미한 새로운 지도체제와 의사결정, 권력 운용 방식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시 주석의 3연임은 중국 정치 권력구도와 운영체제의 일대 전환점이다. 홍콩 언론들은 집단지도체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1인 독주의 ‘집중통일 영도체제’가 공식화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마오쩌둥 시대의 ‘무소불위 1인 통치’에 버금갈 정도로 시 주석의 권력이 강화되는 구도가 예상된다. 권력 내부의 변동도 관전 포인트다.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2인자’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 [서울광장] 일제가 파괴한 비석군 ‘세계유산’ 충분하다/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일제가 파괴한 비석군 ‘세계유산’ 충분하다/서동철 논설위원

    한일 관계가 화제에 오를 때마다 너그러운 소수 의견에 동조하곤 한다. 저들이 우리에게 한 짓은 용서하기 어렵지만 21세기 외교에서 다소의 유연성은 발휘해도 좋지 않겠느냐는 주장에 손을 든다. 문제는 탄압을 넘어 역사 말살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현장을 둘러보면 나같이 생각해서 될 일인가 싶은 반성도 깊어진다는 것이다. 상대가 있는 외교와는 달리 우리 스스로 역사의 진실을 축적하는 작업을 게을리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제강점기 폭파된 전북 남원의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를 찾았을 때가 그랬다. 황산대첩은 훗날 조선을 창건하는 삼도도순찰사 이성계가 고려 우왕 6년(1380) 운봉 황산에서 왜구 대부대를 섬멸한 싸움을 이른다. 일본은 비석을 다이너마이트로 부순 것도 모자라 글자를 일일이 정으로 쪼았다. 어휘각도 훼손했다. 이성계가 함께 싸운 원수와 종사관의 이름을 싸움터 바위에 새겨 놓은 곳이 어휘각이다. 안내문에는 훼손이 1945년 1월 17일 이루어졌다고 적었다. 일제가 비석을 대거 훼손한 것은 조직적이었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1943년 경무국장에게 보낸 ‘유림의 숙정 및 반시국적 고적의 철거에 관한 건’이라는 공문에는 없애버려야 할 문화재가 망라돼 있
  • [서울광장] 병장 월급 200만원 시대, 모병제는 어떤가/임창용 논설위원

    [서울광장] 병장 월급 200만원 시대, 모병제는 어떤가/임창용 논설위원

    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1983년 겨울 군 입대 후 받은 첫 이등병 월급이 3200원이었다. 중대원들은 행정반 앞에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차례대로 월급을 받았다. 서무병이 주판알을 튕기며 계산해 손바닥에 얹어 주던 지폐와 동전의 촉감은 차가웠다. 당시 내무반 최고참인 병장 월급은 45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충격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너무 신기해서였는지 첫 월급 액수와 그때의 풍경이 잊히지 않는다. 첫 월급의 기억을 불러낸 건 지난달 30일 국방부의 내년도 국방예산안 발표 기사였다. 병장 월급이 130만원이란다. 내후년엔 165만원, 2026년엔 205만원으로 오른다고 했다. 병장 월급 기준으로 40년간 500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 화폐 가치가 크게 떨어지긴 했지만 이 정도면 충격받을 만도 했다. 게다가 현재 8~10인실인 병영생활관을 2~4인실로 바꾸는 등 군 생활환경을 크게 개선한다고 한다. 40년 전 기억은 지난해 대선 경선 국면에서 불거졌던 모병제 논란을 소환했다. ‘이 정도 월급과 생활환경을 제공하면서 굳이 징병제를 유지해야 할까?’ 모병제는 지난해뿐만 아니라 역대 대선에서도 이슈가 됐다. 지난해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경선
  • [서울광장] 대결의 정치문화, 승복의 문화로 바꾸자/박현갑 논설위원

    [서울광장] 대결의 정치문화, 승복의 문화로 바꾸자/박현갑 논설위원

    추석 연휴가 시작됐다. 즐거워야 할 때이나 국민은 울상이다. 고물가, 고금리 상황에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물난리까지 덮쳐 심신이 피곤한 상황이다. 거리에는 추석 연휴를 잘 보내시라는 국회의원이 내건 플래카드가 보인다. 지하철 역사에서 추석 인사하는 의원도 있다. 하지만 생업에 내몰린 서민들에게는 분노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정치가 문제다. 윤석열 정부 출범 4개월이 넘었지만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30% 안팎에 머무르며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당권을 놓고 이준석 전 대표와 ‘윤핵관’ 간 이전투구로 국민의힘은 여당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다. 이 전 대표를 둘러싼 성상납 의혹에 대한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당원권을 6개월 정지하고 비상대책위를 출범시키면서 이 전 대표는 법원에 부당성을 주장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당에서는 이런 법원 결정에 이의신청을 한 데 이어 법원이 지적한 당헌ㆍ당규상 미비점을 보완해 새 비대위를 준비 중이나 이 전 대표는 이에 대해서도 가처분 신청을 했다. 당내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생긴 정치의 사법화다. 같은 당 안에서조차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터이니 야당과의 협치나
  • [서울광장] ‘나쁜 대통령’은 그만 보고 싶다/김성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나쁜 대통령’은 그만 보고 싶다/김성수 논설위원

    “참 나쁜 대통령이다. 국민이 불행하다.” 2007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을 하겠다고 하자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박 전 대통령은 대표적 개헌론자였다. 정치적인 노림수는 있었겠지만, 개헌 제안에 이렇게까지 강도 높게 비난을 퍼부은 건 의외라는 말도 나왔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인 2016년 10월 이번엔 박 전 대통령이 임기 내 개헌을 들고나왔다. 최순실(최서원), 정유라 사태로 빚어진 파국을 모면하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였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박 전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공격했다. “참 나쁜 대통령. 국민이 불행하다.” 2022년 9월 난데없이 ‘나쁜 대통령’이 다시 등장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의 입에서다. “윤석열 대통령 참 나쁜 대통령 같다.” 검찰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소환을 통보하자 나온 비난이다. ‘나쁜 대통령’이란 건 정치적 레토릭이다. 어떤 행동을 해야 나쁜 대통령인지 정의할 수 있는 기준은 없다. 오롯이 주관적인 평가일 뿐이다. ‘나쁜 대통령’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윤 대통령이 ‘인기 없는’ 대통령인 건 팩트다. 데이터가 이를 잘 보여 준다.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6주 연속 20%대의
  • [서울광장] ‘실패한’ 97세대, 죽어야 산다/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실패한’ 97세대, 죽어야 산다/박록삼 논설위원

    1970년 신민당 전당대회 대통령 후보 경선은 뜨거웠다.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만 44세의 김영삼 원내총무와 45세 김대중 의원, 48세 이철승 의원의 각축장이었다. 엎치락 뒤치락 정치공학이 뒤섞인 가운데 김대중 의원이 신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김대중 후보는 이듬해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켰지만 관권·금권 선거 속 94만표 차이로 아깝게 패했다. 40대 기수론의 핵심은 새 시대를 향한 젊은 세대의 도전과 기성세대에 대한 투쟁이었다. 5·16 쿠데타로 좌절된 민주주의의 근본적 가치 실현 및 한반도 평화와 통일 등 4·19 혁명이 담은 시대정신에 대한 갈증이었다. 1990년대 들어 청년세대의 도전 역시 웅장했다.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이한열 열사 최루탄 피격 사망 등을 계기로 전두환 정권에 대한 대중적 저항의 봇물이 터졌다. 당시 6월 항쟁의 핵심 주역은 청년들이었다. 전국적 변화의 흐름을 조직했고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갈망을 주도했다. 훗날 ‘386세대’라는 칭호가 부여됐고, 스스로 한국 사회 경영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변화와 혁신의 시대정신의 정수는 오롯이 이들에게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86세대는 이후 제도
  • [서울광장] 다극 질서와 한국인 유전자/임병선 논설위원

    [서울광장] 다극 질서와 한국인 유전자/임병선 논설위원

    “우리의 문화적, 역사적 유전자에 다극 질서에 대응하는 사상적, 심리적 요소가 약하다. 그런 점이 매우 걱정된다.” 서울신문 평화연구소가 지난 23일 개최한 ‘한중 수교 30년, 갈등 극복 해법을 찾아서’ 포럼에 토론자로 나선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의 발언이 귀에 꽂혔다. 세계가 냉전 이후 미국 단극 체제에서 다극 질서로 바뀌고 있다는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의 발제에 대한 언급이었다. 미국 순양함 두 척이 그제 대만해협을 통과했고, 중국 전투기 10대가 상공을 정찰했다. 러시아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東進)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침공, 반년 넘게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음을 과시한 북한은 언제라도 7차 핵실험을 감행, 우리와 일본 등에 전술핵을 쓸 수 있는 준비를 마치려 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일대일 외교에 능했던 우리가 삼각 질서나 다극 질서에는 약한 모습을 보여 왔다고 진단했다. 동아시아에 신흥 세력이 부상해 질서가 바뀔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위기를 자초하거나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의리를 앞세우고 주자학의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민족이라는 것이 이유 중 하나로 지적된다.
  • [서울광장] 공무원 취업제한, 현실에 맞지 않는다/전경하 논설위원

    [서울광장] 공무원 취업제한, 현실에 맞지 않는다/전경하 논설위원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은 서울대에 복귀해 9월부터 강의한다. 교육부 장관으로 35일 근무했지만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복직 신청을 해 국공립대 교수로 돌아간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퇴 재가를 받은 그날 오후 서울대에 복직 신청을 한 것과 같은 절차다. 지난 6월 퇴직한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은 3년 뒤인 2025년 6월 6일까지 업무와 관련이 있는 곳에 취업할 수 없다. 취업하려면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취업 기관이 업무와 관련성이 없다는 점을 인정해 줘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업무 관련성은 퇴직 전 5년간 어디서 일했는지를 따진다. 거의 ‘금융’에서 일했던 정 전 원장은 금융과 밀접한 기업이나 법무법인은 언감생심이다. 그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2017년 7월 그만뒀는데 그때도 같은 제한이 적용됐다. 2주일밖에 근무하지 않은 김기식 전 금감원장도, 30년 이상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최장수(3년 6개월)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퇴직한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도 같다. 교수는 바로 돌아갈 수 있다. 취업제한 3년이 지나 법무법인에서 일하는 한 전직 관료는 “2년 지나면서는 이러다 손가락 빨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회고했다. 경조사비 지출이나
  • [서울광장] 표절,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문소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표절,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문소영 논설위원

    진영논리 탓에 내로남불이 다반사인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여러 판단이 있을 수 있지만, 일관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은 곤란하다. 지난 19일 국민대 교수회가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박사논문 표절 여부를 재검증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국민대 교수회 회원들의 재검증 반대가 61.5%였다. 홍성걸 교수회장은 “국민대의 명예를 존중하고 학문적 양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면서 “집합적 결정을 우리 모두 존중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집단적 사고와 집단지성은 정반대의 의미인데, 홍 교수회장의 발언은 무의식적으로 결과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 아닌가 싶다. 표절 진단 프로그램을 돌리면 40%가 표절로 나온 박사논문이 연구부정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국민대 결정은 수긍하기 어렵다. 앞으로 국민대는 석박사 학위 논문 표절률이 40%가 돼도 논문을 통과시킬 것인가. 이번 결정이 현직 대통령 부인에 대한 특례가 아니라면, 앞으로 석박사 과정을 밟는 이들에게도 동일한 잣대가 적용돼야 마땅하다. 김 여사는 한고비를 넘겼지만, 1999년 숙명여대에서 받은 석사학위 논문 역시 표절 의혹 시비가
  • [서울광장] 신냉전 전환기 속의 한중 관계/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신냉전 전환기 속의 한중 관계/오일만 논설위원

    오는 24일로 한중이 수교 30주년이란 뜻깊은 날을 맞게 되지만 양국 관계는 최악의 관계로 접어들고 있다. 6·25 전쟁이란 상처를 보듬고 40년 만에 수교의 돌파구를 마련한 양국으로선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다. 수교 당시 한국은 장기적 한반도 평화통일 환경 조성이란 ‘북방외교’의 연장선상에서 중국과의 수교를 추진했다. 북한의 유일한 혈맹인 중국과의 수교가 한반도 냉전 해체와 남북 통일의 초석이 될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개혁·개방 정책에 나선 중국 역시 남한과의 수교가 한반도의 안정에 도움이 되고 경제 제일주의 원칙에 부합하기에 손을 맞잡았다. 수교 30년을 맞는 양국 관계는 다층·복합적 함수와 비슷한 측면이 많다. 역사적으로 주도적 지위를 고수하려는 중국의 대국주의가 깔려 있고, 한미 군사동맹과 미중 패권경쟁과 맞물리는 묘한 구조가 형성됐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중, 러일까지 가세해 해법 도출 자체가 어렵다. 과거 마늘파동 등 한중 관계가 휘청일 때마다 등장했던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으로는 풀릴 수 없는 위기다. 더 걱정되는 것은 양국 갈등이 비정치적 분야로 확산되는 현실이다. 올해 처음으로 우리 국민의 대중 부정적 인식이 80%(퓨리서치센터 여론조사
  • [서울광장]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는 또 다른 방법/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는 또 다른 방법/서동철 논설위원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면 말이 많아지곤 한다. 그런데 ‘한산-용의출현’을 보고는 굳이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좋았다. 비평적 시선을 가질 것도 없이 즐기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지금도 TV리모컨을 돌리다 우연히 나오면 끝까지 보게 되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 그런 영화다. ‘한산’이 세계적으로 흥행한다거나 국제영화제에 나가 상을 받는 일은 없겠지만, 우리 영화의 발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산’의 역사적 고증을 문제 삼는 기사도 있었지만, 영화적 상상력의 산물로 무리는 없었다. 오히려 왜군의 서진(西進)을 육지와 바다에서 각각 막아 낸 웅치전투와 한산대첩을 연관시킨 스토리는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공부를 많이 했다는 느낌을 주었다. 진안과 전주를 잇는 웅치에서 벌어진 전투는 7월 7일, 견내량에서 펼쳐진 한산대첩은 7월 8일이다. 물론 견내량과 웅치가 그리 가깝지는 않다. 영화 개봉에 맞춘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 한산도가 있는 경남 통영에서는 ‘제61회 통영한산대첩축제’가 열리고 있다. 지난 주말 막을 열어 오는 14일에는 하이라이트인 한산대첩 재현과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 행렬이 펼쳐질 것이라고 한다. 축제는 불꽃놀이로 시작해 불꽃놀이로 마무리된다
  • [서울광장] 바보야, 문제는 절차적 민주주의야/임창용 논설위원

    [서울광장] 바보야, 문제는 절차적 민주주의야/임창용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걸핏하면 문재인 정권을 탓하거나 비교해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외고 폐지’ 문제에 관한 한 억울할 법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정은 문재인 정부가 했는데 욕은 윤석열 정부가 먹고 있어서다. 그제 사퇴한 박순애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얼마 전 윤 대통령에게 ‘외고를 폐지하거나 일반고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한다’고 보고했다. 사실 이 문제에 작은 관심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뜬금없다’는 생각부터 들었을 것이다. 외고 폐지는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 확정돼 시행만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를 2025년 3월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초등중교육법 시행령·규칙 개정안을 2020년 2월 공포했다. 문 전 대통령이 2019년 9월 대국민 담화에서 “고교 서열화 해소 등 교육 분야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 조치였다. 자사고·외고 폐지는 고교학점제 도입을 통한 일반고 강화와 함께 문재인 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한 고교 서열화 해소 정책의 핵심이었다. 당시 외고 교사와 학부모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헌법소원도 냈다. 35년간 운영돼 온 외고를 법률이 아닌 시행령으로 없애는 것은 ‘교육제도 법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