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 [마감 후] 박병호가 홈런왕이 된 이유/김동현 체육부 차장

    [마감 후] 박병호가 홈런왕이 된 이유/김동현 체육부 차장

    한물간 줄 알았다. 나이는 이미 30대 중반을 넘었고, 한때 50개를 넘기던 홈런도 20개를 겨우 때렸다. ‘에이징 커브’(나이가 들면서 기량이 떨어지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원 소속팀인 키움 히어로즈를 떠나 KT 위즈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지난해 겨울을 나던 ‘국민 거포’ 박병호(36)의 이야기다. 그런데 살아났다. 2020년과 지난해 2할을 가까스로 넘던 타율은 올 시즌 2할6푼대를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다. 홈런은 벌써 27개나 터뜨려 한국야구위원회(KBO) 리그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홈런 2위 LG 트윈스 김현수와의 격차는 지난 13일 기준 무려 9개나 된다. 잇따라 홈런포를 쏴 대면서 KBO 홈런 역사에 이름을 다시 새기고 있다. 박병호는 통산 354개의 홈런을 날렸다. 이는 KBO 리그 사상 네 번째로 많은 숫자다. ‘부활’을 넘어 ‘레전드’라는 단어를 써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그럼 30대 중반의 이 타자는 어떻게 살아났을까. 전문가들은 박병호의 배트 스피드가 떨어지면서 투수들이 던지는 강속구를 따라가지 못한 것을 부진의 요인으로 꼽았다. KBO 대표 홈런 타자도 세월을 거스르지 못한 것이다. 박병호는 냉철하게 자신을 돌아봤다. 분
  • [마감 후] ‘대한민국’이란 풍물판 상쇠 잡은 윤석열/이영준 경제부 기자

    [마감 후] ‘대한민국’이란 풍물판 상쇠 잡은 윤석열/이영준 경제부 기자

    소싯적 풍물놀이에 푹 빠져 꽹과리와 장구를 열심히 쳤다. 판굿 공연이 열리면 상쇠의 동작에 박자를 맞춰 연주했다. 흥이 오를 대로 올랐을 때 상쇠가 꽹과리를 들면 모든 치배는 일사불란하게 가락을 바꿨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쇠와 잦은 의견 충돌이 있었어도 일단 관객이 들어차고 공연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상쇠를 믿고 따랐다. 나만의 연주 방식을 최대한 억제하고 상쇠가 이끄는 대로 움직여야 훌륭한 공연이 완성됐다. 흥에 취했을 때 ‘애드리브’(변주)를 하는 것도 상쇠 눈치를 봤다. 상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연에 아예 끼지 못했다. 악기도 상쇠가 하라는 대로 잡아야 했다. 그만큼 풍물판에서 상쇠의 권한은 막강했다. 상쇠가 풍물 공연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은 대통령이 국정을 펼치는 것과도 매우 닮았다. 상쇠가 판을 어떻게 구성하고 가락을 어떻게 연주할지 고민한다면, 대통령은 소신과 철학에 따라 어떤 정책을 펼칠지 고심한다. 꽹과리·징·장구·북·소고 등 악기별 수치배(리더 연주자)는 국무총리와 장관, 이들을 따르는 치배별 연주자들은 공무원·공공기관장·국책연구기관장 등 공직사회 전반에 해당한다. ‘윤석열 상쇠’는 대한민국이라는 풍물판을 구현할 수치배를
  • [마감 후] 버블 밀크티 천국의 변신/김소라 국제부 기자

    [마감 후] 버블 밀크티 천국의 변신/김소라 국제부 기자

    전주나이차(珍珠奶茶·버블 밀크티)의 고향인 대만은 길거리 음료의 천국이다. 길거리에 즐비한 테이크아웃 음료점에서 주문한 버블 밀크티나 얼음이 가득한 홍차, 녹차 같은 음료를 손에 들고 다니며 마시는 풍경이 흔하다. 이는 필연적으로 플라스틱 컵과 빨대 같은 일회용품의 과소비로 이어진다. 대만 행정원 환경보호서에 따르면 2020년 대만에서 사용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약 40억개에 달한다. 10년 전(15억개)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이달 1일 대만에서는 ‘개인 음료 컵’(自備飮料杯) 사용을 장려하는 제도가 전면 시행됐다. 프랜차이즈 카페와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소비자가 개인 컵으로 음료를 주문하면 최소 5대만달러(약 220원)의 할인 혜택을 주는 제도다. 길거리 테이크아웃 음료점이나 편의점 커피 한 잔 가격의 10%가량을 할인받는 셈이다. 또 내년부터 이들 매장은 소비자들이 에코컵을 대여받고 반납하는 기기를 설치해 운영해야 한다. 관련 보도를 살펴보면 소비자들이 기꺼이 동참할 수 있도록 정부와 관련 업계가 세심하게 준비한 흔적이 역력하다. 대만 당국은 2018년 플라스틱 제품을 2030년까지 퇴출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한 뒤 관련 업계와 머리를 맞대고 지
  • [마감 후] 반쪽짜리 K클래식/하종훈 문화부 기자

    [마감 후] 반쪽짜리 K클래식/하종훈 문화부 기자

    미국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임윤찬(18)으로 클래식 음악계가 떠들썩하다. 결선에서 보여 준 신들린 듯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는 유튜브에서 조회 수 400만회를 넘어섰고, 2020년 녹음한 그의 피아노 음반은 서점가 클래식 음반 판매 1위에 올랐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을 이을 천재 피아니스트의 출현에 흥분한 전국 공연장은 앞다퉈 출연을 요청했다. 임윤찬을 볼 수 있는 하반기 공연들은 이미 매진됐다. 임윤찬뿐 아니라 첼리스트 최하영(24),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7) 등이 해외 유명 콩쿠르를 휩쓸었다. 올해 상반기 한국인 해외 콩쿠르 입상자는 38명에 달해 가히 ‘K클래식 전성시대’란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 같은 콩쿠르에서의 성과가 영속성을 띤 한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1세대 전만 해도 ‘문화의 변방’이었던 대한민국이 콩쿠르 강국이 된 원동력으로는 한국예술종합학교로 대표되는 국가 주도 엘리트 교육, 금호문화재단 등 민간의 영재 발굴 프로젝트, 콩쿠르 1·2위 입상자에게 주어지는 병역 특례 혜택 등이 꼽힌다. 문제는 소수 솔리스트의 성공에 가려져 음악 교육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
  • [마감 후] 올여름에 할 일/장진복 사회2부 기자

    [마감 후] 올여름에 할 일/장진복 사회2부 기자

    2012년 한여름의 쪽방촌에 간 적이 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당의 한 국회의원을 동행 취재하는 일정이었다. 푹푹 찌는 더위를 뚫고 도착한 쪽방촌에는 막상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들 어디 가셨어요?” 텅 비어 있는 쪽방촌에 모두가 당황했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단칸방이 내뿜는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그늘을 찾아 나갔다고 한 주민이 전했다. 지난 29일 다시 쪽방촌을 찾았다. 이번엔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부상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따라갔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돈의동 쪽방촌에는 에어컨 몇 대가 설치됐다. 10년 사이 인공지능(AI)이 사람을 대신하고, 운전자 없는 차가 강남대로를 달리고, 집값은 억 단위로 올랐다. 이렇게 세상이 어마어마하게 변하면서 쪽방촌에도 드디어 시원한 여름이 찾아오는가 싶었다. 에어컨은 집주인이 동의한 가구에 한해서만 들여놨다고 한다. 집주인이 전기요금을 부담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그래서인지 설치율은 33%에 불과했다. 돈의동 쪽방촌은 84개동, 730실이 있는데 설치된 에어컨은 고작 28대가 전부다. 폭우에도 우산을 펴지 못할 정도의 비좁은 골목길, 몸을 웅크려야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
  • [마감 후] 연임과 단임 사이/안석 정치부 기자

    [마감 후] 연임과 단임 사이/안석 정치부 기자

    2020년 2월 취임한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이 첫 3년 임기를 마지막으로 시향을 떠날 것 같다. 지난해 말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 출연한 강규형 서울시향 이사장이 벤스케의 임기가 한 번으로 끝날 것임을 시사한 바 있고, 벤스케도 최근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양측이 이별 수순을 밟는 모습이다. 벤스케가 3년 만에 시향을 떠난다면 다소 뜻밖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다. 후임에 대한 얘기도 없는 상황에서 전례에 비춰 보면 적어도 한 번은 연임하지 않겠냐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벤스케는 ‘정명훈 사태’ 이후 표류하던 서울시향이 고심을 거듭해 찾았던 ‘구원투수’가 아니었나. 유명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자신의 블로그 ‘슬립드 디스크’에 “거기 가지 말라지 않았느냐”는 핀잔으로 시향의 이런 상황을 꼬집는다. 다른 음악감독의 임기가 단임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조직의 장기적인 비전을 위해서일 것이다. 음악감독이 악단과 함께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2~3년 시간으로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벤스케는 라티 심포니에서 20년을,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에서는 19년을 함께해 왔다. 좋은 리
  • [마감 후] 마크롱과 페트로가 알려준 것/백민경 국제부 차장

    [마감 후] 마크롱과 페트로가 알려준 것/백민경 국제부 차장

    지난해 미국 조지아주로 연수를 갔을 때 일이다. 외식 물가가 원체 비싼 데다 팁까지 20%가량 내다 보니 세 식구 밥값이 10만원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 한국 과자가 그리워 집어 들었다가 한 봉지 5000원이라는 가격에 놀라 슬그머니 내려놓은 적도 있다. 비슷한 시기 연수 온 다른 기자들도 식당 밥값이 무서워 한 달 이상 장기 여름휴가를 떠날 때 전기냄비 같은 조리 도구를 들고 다니거나 취사 가능한 숙박업소를 골라 다녔다. 이웃집 유학생은 냉동 볶음밥 등을 쟁여 놓고 채소와 밥을 추가해 1인분을 세 끼로 나눠 먹는다고 했다. 그런 미국의 물가가 올해는 더 살벌해졌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같은 달보다 8.6% 상승해 1981년 이후 4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항공료, 임대료, 자동차, 식품, 연료 등 안 오른 품목이 없다. 분유와 생리대 등을 사러 원정 쇼핑을 가는 이들도 나타났다. 국민들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휘발유 가격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입지마저 위태롭게 하는 원인이 됐고, 가계와 기업을 짓누른 물가는 오는 11월 중간선거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미국에 있는 지인은 물가 얘기를 하다 지난해 여름에 샀던 중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
  • [마감 후] ‘文 정부 뒤집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강병철 사회부 차장

    [마감 후] ‘文 정부 뒤집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강병철 사회부 차장

    고교 시절 모교는 학생들에게 유도를 가르쳤다. 지역에서 이름난 유도·씨름 명문이라 체육 수업 일부를 이로 대체했던 것이었다. 살면서 그때 배운 기술을 쓸 일은 다행히 아직 없었지만 잠깐 맛은 본 덕에 그 쾌감이 어떤지는 대충 안다. 상대를 공중에서 한 바퀴 돌려 바닥에 내다 꽂는 업어치기는 모두에게 통쾌함을 선사한다. 바닥에 내다 꽂힌 상대만 빼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지난 한 달을 이런 통쾌함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취임과 동시에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을 부활시켰고 지도부는 깨끗이 물갈이를 했다. 검사 파견도 풀고 탈(脫)검찰화도 뒤집고 형사부도 직접 수사를 하게 했다. 전 정부 정책이 줄줄이 업어치기 한판에 나가떨어지는 꼴이다. 윤석열 정부 공약 중 추진 속도가 가장 빠른 것이 소위 ‘검찰 정상화’다. 한 장관 팬클럽의 유행어마냥 ‘우리 후니 하고 싶은 대로’ 시원시원하다. 차기 정치지도자 여론조사 3위라는 결과도 괜히 나온 것은 아닌 듯싶다. 지지부진한 점수 내기 싸움보다 ‘한판승의 사나이’를 추앙하는 것이 대중의 심리 아니겠나. 정권을 잡은 쪽은 늘 가시적 변화를 보여 주고 싶어 한다. 그래야 지지층의 정치효능감이 커져 다음에 표를 달라기가
  • [마감 후] 오세훈의 길, 오스만 남작의 길/이두걸 사회2부 차장

    [마감 후] 오세훈의 길, 오스만 남작의 길/이두걸 사회2부 차장

    “범죄와 악취가 그득하고 좁고 구불구불한 거리…곳곳에 물웅덩이가 있는 진흙탕길에는 돌멩이가 널려 있어 발에 차이기 십상이었고, 길 한가운데는 정비가 시급한 도랑이 흘렀다.” 영국의 문호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 5장 ‘술집’ 중 한 대목이다. 해당 문장의 배경은 프랑스 파리다. 19세기 언저리 파리는 전형적인 중세 도시였다. 난개발로 인해 대로는 많지 않았다. 대신 좁고 미로 같은 골목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만들어졌다. 골목 양편으로는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대낮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상하수도가 정비되지 않은 탓에 비라도 내리는 날엔 거리가 생활하수와 오수로 넘쳐나는 ‘거대한 화장실’로 변모했다. 1666년 대화재를 겪은 이후 4차선 도로를 갖춘 근대 도시로 거듭난 런던에 비할 바 아니었다. 파리가 근대 도시로 변모한 것은 1852년 파리 등 센 지역 도지사로 조르주외젠 오스만 남작이 임명된 게 계기가 됐다. 나폴레옹 3세는 런던 망명 시절 파리를 개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황제 자리에 오르자 오스만 남작을 내세워 이를 실행한다. 오스만 남작은 도시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1870년까지 도시 전체를 체계적으로 건설했다. 그는 기차역과
  • [마감 후] 행안장관, 번지수 제대로 짚고 있나/강국진 사회정책부 차장

    [마감 후] 행안장관, 번지수 제대로 짚고 있나/강국진 사회정책부 차장

    청와대를 국방부로 옮기는 건 솔직히 행정안전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애초에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제대로 된 준비나 논의도 없이 발표한 것부터가 느닷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국민들이 ‘천막 용와대’라는 신기한 구경거리를 놓친 건 행안부 직원 수십 명이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공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국방부 근처에서 먹고 자며 고생한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행안부 간부에게 얘기해 줬다. “용와대의 정책 결정을 행안부의 놀라운 집행력으로 만회했다. 그 바람에 뭘 저질러도 다 되는구나 하는 잘못된 학습효과를 만들었다. 행안부가 크게 잘못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딱 행안부답다는 생각을 했다. 기획재정부가 두 손 들어 버린 2020년 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을 깔끔하게 처리했던 것도,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난색을 표하는 생활치료센터 지정부터 운영까지 나서서 했던 것도 행안부였다. 행안부 업무 범위는 지방재정, 재난안전부터 청사관리까지 매우 넓다. 조직 목표를 가장 잘 설명하는 건 ‘국가의 행정사무로서 다른 중앙행정기관의 소관에 속하지 아니하는 사무는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를 처리한다’는 정부조직법 제34조 2항이다. 그런 면에서 가정주부 역할과 비슷한
  • [마감 후] 황금종려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은주 문화부 차장

    [마감 후] 황금종려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은주 문화부 차장

     3년 만에 정상화한 칸영화제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 세계 4000여명의 취재진이 영화제 주 행사장인 팔레드페스티벌을 바쁘게 오갔고, 상영관이나 칸 시내에서 마스크 쓴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프레스 등록 때 나눠 준 영화제 로고가 새겨진 마스크만이 팬데믹의 잔재를 상기시킬 뿐이었다.  하지만 2020년 개최 무산, 2021년 약식 개최를 거친 칸의 변화는 영화제 기간 내내 눈에 띄었다. 거리 곳곳에는 영화제 공식 파트너로 선정된 숏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광고가 나부꼈고, 영화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상영관 앞에서 배지 색깔별로 나눠져 길게 줄을 서던 풍경도 사라졌다. 올해부터 모든 상영작이 온라인 예매로 전면 개편됐기 때문이다.  큰 변화의 중심에는 한국 영화가 있었다. 올해 칸은 ‘오징어 게임‘’의 흥행 주역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의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섹션 상영을 영화제 초반에 배치하고 경쟁 부문 초청작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를 각각 중후반부에 배치하며 사실상 영화제 흥행 카드로 한국 영화를 활용했다. 비평가 주간 폐막작에 선정된 ‘다음 소희’와 단편 경쟁 부문에 진출한 애니메이션 ‘각질’까지 합
  • [마감 후] 창대한 계획보다 진실한 결실이 더 간절하다/정서린 산업부 차장

    [마감 후] 창대한 계획보다 진실한 결실이 더 간절하다/정서린 산업부 차장

    ‘보여주기 식, 갑질, 횡포, 꼰대 문화, 책임전가….’ 최근 대한상공회의소의 ‘신기업가 정신 선포식’에서는 첫머리부터 영상에 이런 키워드가 등장했다. 기업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압축한 것이었다. 반기업 정서 바꾸기는 재계의 오랜 염원이자 숙제다. 그 해법으로 내놓은 게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주도한 ‘신기업가 정신 선언’이다. 기업이 먼저 역할을 새롭게 해야 사람들의 인식도 바뀐다는 믿음에서 뿌리를 낸 것이다. 기업의 기술과 아이디어로 기후변화, 인구절벽 등 사회문제를 풀겠다는 선언 자체도 의미 있지만 더 눈길을 끈 건 ‘액션’과 그 이후의 행보였다. 선언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경제계 전체와 개별 기업별 실천과제를 각각 정해 행동으로 옮긴 뒤 성과를 수치로 측정하고 국민들과 공유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스스로 환골탈태를 증명해 냄으로써 ‘보여주기’란 오해는 걷어 내고, 부족했다면 부족한 대로 자성하겠다는 의지다. 최 회장은 “국민들은 기업들에 ‘변하라’고 하는데, 기업은 ‘라떼’만 계속 얘기하면 꼰대로 낙인찍힌다”며 “액션과 측정, 소통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려야 ‘조용한 암살자’가 ‘따뜻한 동반자’로, ‘종잡을 수 없는 조커’가 ‘합리적
  • [마감 후] 12 vs 5… 0.73에 갇혀 민심 곡해한 민주당의 말로/김승훈 정치부 차장

    [마감 후] 12 vs 5… 0.73에 갇혀 민심 곡해한 민주당의 말로/김승훈 정치부 차장

    더불어민주당이 6·1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광역자치단체 17곳 가운데 텃밭인 호남(전남·전북·광주)에 경기·제주를 더해 5곳만 지켰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제주를 제외하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을 대구·경북 단 두 곳에 묶어 놓으며 14곳을 싹쓸이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중원(충남·충북·대전)과 강원 등 민주당이 장악했던 대부분 지역을 빼앗겼다. 민주당 단체장들이 4년간 다졌던 조직력도 일꾼론도 통하지 않았다. 이번 참패는 예견됐다. 민주당이 지난 대선 득표 차인 ‘0.73% 포인트’에 갇혀 민심을 곡해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에도 승복하지 않았다. 책임론도 성찰도 없었다. 대선 후보는 연고도 없는 지역의 국회의원 후보로 나섰고, 대선 당시 ‘586 용퇴론’을 띄웠던 당 대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167석이라는 거대 숫자에 도취해 오만과 독주로 일관한 건 더 큰 문제였다. 위장 탈당, 국회 본회의 시간 당기기, 국무회의 미루기 등 온갖 꼼수와 편법을 동원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밀어붙였다. 도저히 대선에서 패한 정당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모습뿐이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4
  • [마감 후] 경제는 자네가 대통령? 나는 자네를 뽑은 적 없다/홍희경 경제부 차장

    [마감 후] 경제는 자네가 대통령? 나는 자네를 뽑은 적 없다/홍희경 경제부 차장

    ‘남아일언중천금’이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없었다면 한국 남자들의 삶이 덜 고달팠을까. 과거 실언 한마디를 못 주워 담아 파국의 길로 향하거나 옛 허물 덮겠다고 궤변을 산처럼 쌓아 버리는 고위직을 볼 때마다 생각하던 바다. ‘남녀칠세부동석’보다 나을 바 없는 그저 옛말에 왜 그렇게 강박적으로 매달리는지 모를 일이다. 개인의 삶을 넘어 한국의 권력체제를 지배하는 족쇄 같은 말도 있다. ‘경제는 자네가 대통령’이란 구호는 마치 대통령의 바람직한 권한 위임 모델인 양 회자된다. 끝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어떻게 보면 과거 권위주의 대통령이 경제 실험 책임에서 멀찍이 서려는 수사였을 수 있는데 말이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저렇게 말한다면 절차적 논란에 더해 일종의 책임 회피인지 의구심이 뒤따를 것이다. 만기친람은 물론 문제다. 그럼에도 민주화 이후라면 ‘대통령의 정책’, 백번 양보해서 ‘대통령과 아이들의 정책’이어야 한다. 대통령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아이들만의 정책’은 위험하단 얘긴데, 무슨 얘긴지 더 알기 위해 십수년 전 이명박(MB) 정부를 반면교사 삼을 만하다. 대운하나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이 이를테면 오롯이 ‘대통령 MB의 정책’이었
  • [마감 후] 애덤 스미스와 식량 이기주의/오달란 국제부 기자

    [마감 후] 애덤 스미스와 식량 이기주의/오달란 국제부 기자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이 경제 체계를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개인의 이익 추구가 결과적으로 부자와 가난한 사람, 국가를 모두 잘살게 하는 힘이라고 봤다. 정부가 끼어들면 괜히 시장만 왜곡시킬 뿐이니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는 편이 낫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국가와 정부가 이기적으로 작동하면 어떻게 될까.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밀을 생산하는 인도가 이달 13일 밀 수출 빗장을 걸었다. 봄 폭염으로 밀 예상 수확량이 기대치를 밑돌고 4월 식료품 물가가 8.4% 뛰었다는 게 이유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곡물 대란이 벌어진 상황에서 수출을 막지 않으면 국내 물가가 폭등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세계 팜유 생산량 1위인 인도네시아는 지난달 28일 팜유 수출을 중단했다. 국제 가격이 급등하자 생산업자들이 수출을 늘렸고, 결국 내수 공급이 모자라 국내 식용유값이 50% 가까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치솟은 닭고기 가격을 잡겠다며 새달부터 월 360만 마리의 닭고기 수출을 중단한다. 닭고기 3분의1을 말레이시아산에 의존하는 싱가포르를 비롯해 브루나이, 일본, 홍콩 등의 연쇄 여파가 불가피해졌다. 그뿐 아니다. 브라질에
  • [마감 후] 여성 체육 지도자가 없다/오세진 체육부 기자

    [마감 후] 여성 체육 지도자가 없다/오세진 체육부 기자

    지난달 1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경기. 3회초 더그아웃에 있던 샌프란시스코 1루 코치가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퇴장당했다. 이어진 3회말. 2020년 1월 샌프란시스코 코치로 선임된 얼리사 내킨이 1루 코치 박스에 섰다. 1876년 MLB 출범 후 여성 코치가 그라운드에 선 최초 사례다. 또 뉴욕 양키스 타격 코치 레이철 발코백은 지난 1월 양키스 산하 마이너리그 싱글A팀인 탬파 타폰스 감독으로 선임됐다. 마이너리그 사상 첫 여성 감독이다. 미 남자프로농구(NBA)에서도 2014년 8월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미 여자프로농구(WNBA) 올스타 선수 출신인 베키 해먼을 코치로 선임했다. 1946년 NBA 출범 후 최초의 여성 코치다. 이들의 경력은 강고한 성차별 장벽을 깬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장벽이 완전하게 깨졌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MLB와 NBA에서 첫 여성 코치가 나오기까지 각각 144년, 68년이 걸렸고, 지금도 두 프로스포츠에 여성 지도자(감독·코치)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세한 균열이 생긴 정도다. 그런데 한국 프로야구와 남자프로농구에서는 균열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현재
  • [마감 후] 검수완박 입법이 두려운 진짜 이유/최훈진 탐사기획팀 기자

    [마감 후] 검수완박 입법이 두려운 진짜 이유/최훈진 탐사기획팀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날이던 지난 9일 국무회의를 통해 공포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검수완박 법안)의 입법화 과정을 보며 여러 생각이 스쳤다. 이미 법률이 공포됐기에 법안 내용이 아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 시점이 됐다. 검수완박이 입법으로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국회법 위반 여부에 대한 논란을 지켜봤다. 간략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원래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민형배 의원이 ‘꼼수 탈당’해 무소속 몫으로 안건조정위원회에 들어가 검수완박 찬성 측이 다수를 점하게 됐다. 결국 검수완박 법안은 안건조정위에서 4대2로 통과돼 본회의에 상정, 통과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조만간 대검찰청과 공동으로 검수완박 입법에 대해 권한쟁의심판 청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제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가게 됐다. 같은 사안을 두고 비판과 옹호가 첨예하게 엇갈렸지만 검수완박을 찬성하는 측은 SNS 등에 “절차상 문제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통과됐어야 하는 법”이라거나 “민주주의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등의 논지를 폈다. 이에 대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우리는 다원주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수도권 중에서도 서울, 관료
  • [마감 후] 분노 속에 뒤를 돌아보지 말자/장형우 체육부 기자

    [마감 후] 분노 속에 뒤를 돌아보지 말자/장형우 체육부 기자

    세계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프로 무대인 프리미어리그(EPL)와 출중한 선수들을 보유한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는 이상하게 월드컵에선 1966년 이후 56년째 ‘무관의 강호’ 신세다. 잉글랜드는 가장 최근인 2018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도 우승 후보로 꼽혔다. 잉글랜드는 ‘천적’이었던 스웨덴을 꺾고 4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러시아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만난 준결승 상대 크로아티아에 연장 승부 끝에 아쉽게 1-2로 역전패하면서 우승의 꿈을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당시 러시아 경찰은 루즈니키 스타디움 근방에 우리로 치면 ‘갑호비상령’ 수준의 치안 경계령을 내렸다. 난폭하기로 악명 높은 잉글랜드의 ‘훌리건’ 때문이었다. 게다가 잉글랜드가 크로아티아에 워낙 아깝게 졌기에 당연히 난리가 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연장 혈투가 끝난 뒤 관중이 빠져나가기 시작할 때 패배한 잉글랜드 팬들은 맨체스터 출신의 밴드 오아시스가 1996년 발표한 ‘돈트 룩 백 인 앵거’(Don’t look back in anger)를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크로아티아 팬들도 함께 노래했고, 경기장 주변은 예상과 달리 평화로웠다. ‘지나간 일에 분노하지 말자’는 내용을 담은
  • [마감 후] 젊은이, 늙은이 그리고 모두의 어린이/윤수경 문화부 기자

    [마감 후] 젊은이, 늙은이 그리고 모두의 어린이/윤수경 문화부 기자

    지난 3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아동 비하 표현에 관한 의견표명’ 보도자료를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자료에는 ‘요린이’, ‘주린이’ 등의 표현이 아동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며 공공기관의 공문서, 방송, 인터넷 등에서 이런 표현이 사용되지 않도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에게 의견을 표명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1년여 전인 지난해 4월 ‘어린이라는 새로운 사람’이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이 문제를 지적했던 기자로서는 인권위가 이런 의견 표명을 하게 돼 늦었지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시 칼럼을 통해 기자는 다양한 영역의 초보자에게 ‘~린이’를 붙인 말들이 양산되고 있음에 경각심을 느끼며 이 단어가 어린이에게 무례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어린이가 미숙하고 모자란 존재라는 전제가 깔린 말이기 때문이다. 또 일상에서 가볍게 던지는 비하 발언이 차별을 가볍게 여기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사람들이 편견을 드러내는 행동을 쉽게 하도록 만든다는 우려를 담았다. 인권위 역시 “‘~린이’라는 단어는 아동이 권리의 주체이자 특별한 보호와 존중을 받아야 하는 독립적 인격체가 아니라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에 기반한다”며
  • [마감 후] 한국 과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유용하 사회정책부 차장

    [마감 후] 한국 과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유용하 사회정책부 차장

    일을 막 시작하려고 할 때 옆에서 감 놔라, 배 놔라 잔소리를 늘어놓으면 하고 싶던 일도 내팽개치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발선에 선 사람에게는 마음에 없더라도 격려와 덕담으로 출발을 독려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종국엔 우스꽝스러운 옷매무새로 비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인 것처럼 일에서도 시작이 중요하다. 시작이 잘못되면 한참 지난 뒤 ‘이 산이 아닌가’라며 머리를 쥐어뜯는 상황을 맞게 된다. ‘축적의 시간’이란 화두로 유명한 이정동 서울대 교수가 과학기술의 창조적 혁신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최초의 질문’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잘못된 문제의식은 예상치 못한 파국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차원에서 이제 막 출발한 새 정부 과학기술 정책을 보고 있노라면 방정맞게도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을 참을 수 없다. 새 정부는 대선 기간부터 과학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비판이 꼬리표처럼 붙어다녔다. 얼마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공개한 새 정부 국정 과제에서도 과학기술 분야는 이전 정부들 정책의 문패만 바꿔 단 수준이다.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항공우주청 설립’뿐이지만 이마저도 엄밀히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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