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연임과 단임 사이/안석 정치부 기자

[마감 후] 연임과 단임 사이/안석 정치부 기자

안석 기자
안석 기자
입력 2022-06-27 20:26
수정 2022-06-28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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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석 정치부 차장
안석 정치부 차장
2020년 2월 취임한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이 첫 3년 임기를 마지막으로 시향을 떠날 것 같다. 지난해 말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 출연한 강규형 서울시향 이사장이 벤스케의 임기가 한 번으로 끝날 것임을 시사한 바 있고, 벤스케도 최근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양측이 이별 수순을 밟는 모습이다.

벤스케가 3년 만에 시향을 떠난다면 다소 뜻밖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다. 후임에 대한 얘기도 없는 상황에서 전례에 비춰 보면 적어도 한 번은 연임하지 않겠냐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벤스케는 ‘정명훈 사태’ 이후 표류하던 서울시향이 고심을 거듭해 찾았던 ‘구원투수’가 아니었나. 유명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자신의 블로그 ‘슬립드 디스크’에 “거기 가지 말라지 않았느냐”는 핀잔으로 시향의 이런 상황을 꼬집는다.

다른 음악감독의 임기가 단임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조직의 장기적인 비전을 위해서일 것이다. 음악감독이 악단과 함께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2~3년 시간으로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벤스케는 라티 심포니에서 20년을,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에서는 19년을 함께해 왔다.

좋은 리더를 단임으로 떠나보내지 않는 것은 악단만이 아니다. 스포츠 구단이나 기업도 충분한 실력을 갖춘 감독이나 최고경영자(CEO)가 있다면 몇 배의 보상을 해서라도 계속 ‘묶어 두려’ 한다. 그렇게 리더와 조직은 함께 오랜 시간을 공유하며 성과를 만들어 낸다.

반면 아무리 연임을 하고 싶어도 단임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바로 5년 단임제의 한국 대통령이다. 우리 대통령은 취임 초 잠깐의 허니문 기간이 끝나면 후보나 당선인 시절 무슨 약속을 했는지도 모두 잊어버린 채 금세 임기를 마치곤 한다.

같은 대통령제라도 단임 또는 연임에 따라 행동 양태는 달라진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보건당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사태 중에도 봉쇄령 완화를 밀어붙인 이유는 단 하나였다. 국민이 전염병으로 죽어 나가더라도 셧다운에 따른 경기침체로 연임에 실패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대통령은 경제보다는 방역에 집중했다. 연임·재선의 동기가 없기에 당장 경제지표가 나빠지는 것에 급하게 연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한미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은 단임이냐, 연임이냐 여부가 리더십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극명히 보여 준다.

“제가 대통령을 처음 해 보는 것이기 때문에….” 배우자 활동 논란이 한창이던 이달 중순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 약식 회견에서 한 발언이다. 딱딱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윤 대통령 특유의 농담조 발언으로 본다면 정색하고 비판할 건 아니겠지만, 한국 대통령에게 ‘두 번’의 기회가 없다는 점을 상기하면 그처럼 툭툭 내뱉는 듯한 발언은 다소 아쉽게도 들린다. “내가 대통령을 해 보니”라는 소감이 나올 때쯤에는 이미 레임덕의 터널 앞에 있을지도 모를 만큼 한국 대통령의 임기는 길지 않기 때문이다.

악단이든, 국가든 좋은 리더가 연임하지 못하는 상황은 그가 속한 공동체 전체의 손해다. 윤 대통령의 임기가 모두 끝날 때쯤 한 번 더 기회를 주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의 성과가 있기를 바라 본다.
2022-06-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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