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 [마감 후] 언행일치의 정치/안석 정치부 차장

    [마감 후] 언행일치의 정치/안석 정치부 차장

    말이 먼저인가, 음악이 먼저인가. 시인과 작곡가가 문학과 음악 가운데 무엇이 더 우위에 있는지 논쟁을 벌인다. 이들이 다투는 이유는 바로 아름다운 백작 부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다. 슈트라우스의 마지막 오페라 ‘카프리치오’는 연적 관계인 시인과 작곡가의 다툼을 빌려 음악사의 해묵은 논쟁을 무대 위에 올린다. 말(극)이 먼저인가, 음악이 먼저인가. 이 질문은 오페라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시작됐다. 당대 대중의 기호에 맞춰 화려한 기교를 내세우던 17~18세기 이탈리아 오페라는 너무 외향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이 나왔고, 다른 한편에서 극과 음악을 조화롭게 일치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모차르트가 ‘마술피리’를 썼을 때 작품 속 ‘밤의 여왕’ 아리아가 요즘 시대에 누구나 한 번쯤 흥얼거려 본 적이 있을 만큼 인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밤의 여왕’ 아리아는 사실 화려한 기교에 치중하던 이탈리아 오페라의 당시 인기가 저물고 있음을 풍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곡가들이 음악과 극의 자연스러운 흐름, 나아가 ‘일치’를 고민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대본이 너무 비현실적이고 산만하거나 또는 노래만 너무 화려한 작품은 식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대
  • [마감 후] 정책 속에 숨은 정치… MZ 손에 달린 총선 / 이영준 세종취재본부 차장

    [마감 후] 정책 속에 숨은 정치… MZ 손에 달린 총선 / 이영준 세종취재본부 차장

    주식·채권·펀드 투자로 벌어들인 5000만원 초과 수익에 매기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일이 정부와 여당의 바람대로 올해 1월 1일에서 2년 미뤄졌다. 당정은 ‘금투세 유예’만큼은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벼랑끝 전술로 야당과의 세제개편안 협상에 임했다고 한다. 정부가 금투세 유예를 주장한 표면적인 이유는 “해외 주식으로 투자자 이탈이 가속화해 자본이 유출될 수 있다”였다. 주식시장이 약세장일 땐 과세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 어려우니 시장 상황이 좋아지고 나서 도입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세종 관가에서는 정부가 금투세 유예에 이토록 천착한 배경에 ‘정치’가 숨어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정부가 추산한 과세 대상 투자자 15만명의 표심 얻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선거 때마다 최대 ‘부동층’으로 떠오르는 20~30대 MZ세대 유권자를 여당 지지층으로 흡수하기 위한 ‘보수화 플랜’의 하나로 추진한 세제 혜택이라는 것이다. 이런 속내는 최근 MZ세대가 보수화된 이유를 주식·가상화폐 투자에서 찾는 분석과 일맥상통한다. 투자 수익이 나길 학수고대하는 MZ세대가 기업·재벌의 경영 활동을 우호적으로 바라보면서 규제·세제 완화 정책을 앞세우고 시장주의를 표방하는 보수 정
  • [마감 후] 세법 개정, 방망이도 두드려 보지 못한 국회 기재위/이민영 정치부 기자

    [마감 후] 세법 개정, 방망이도 두드려 보지 못한 국회 기재위/이민영 정치부 기자

    2023년도 예산안과 세법 개정안 등 부수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이틀 후인 지난 26일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 회의가 열렸다. 예산 부수법안의 수정안을 폐기하기 위한 자리였다. 예산 부수법안 19건은 이미 본회의에서 통과됐는데 어떻게 된 상황일까. 법안은 해당 상임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처리되는 것이 순리인데 정반대로 본회의 이후 상임위가 열린 것이다. 사정은 이랬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최장 지각 처리’라는 오명을 쓴 내년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은 또 다른 오점이 있다. 본회의 전 응당 거쳐야 할 기재위와 법사위를 ‘패싱’했다는 점이다. 여야 원내대표 회동으로 밀실에서 세법 개정안을 합의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법정 처리 기한(12월 2일)을 넘기다 보니 자동으로 정부안이 부의됐다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불과 4년 전은 다르다. 2018년 12월 6일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2019년도 예산안을 7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기재위와 법사위는 본회의가 열리기 직전에 각각 소집됐다. 기재위는 자정이 넘어서 전체회의를 열고 축조심사 등을 생략하고 방망이를 두드렸다. 기재위는 8일 오전 1
  • [마감 후] 집이 우리의 삶을 흔들지 않으려면/김소라 경제부 기자

    [마감 후] 집이 우리의 삶을 흔들지 않으려면/김소라 경제부 기자

    아이를 키우면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꽃을 피우다 보면 대화는 자연스레 ‘집’으로 흘러간다. 그중 세 살 된 아들과 신생아를 키우는 한 젊은 엄마의 내 집 마련 이야기는 마음 한켠을 아리게 한다. 서울에서 전세로 살던 부부는 2020년 초반 첫째가 태어나 아내가 일을 쉬고 남편도 코로나19로 회사가 어려워져 수입이 쪼들렸다. 내 집 마련의 꿈은 아내의 복직 이후로 미뤄 둘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초저금리’ 시대가 열리고 부부가 살던 변두리 낡은 아파트 집값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3억원대에 살 수 있었던 20평 집의 실거래가가 “아이 재우고 스마트폰 화면을 켤 때마다” 수천만원씩 올랐다고 했다. 아내가 서둘러 복직하고 남편의 회사 사정이 나아졌지만 호가는 이미 6억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집주인은 아들 부부가 입주한다며 전세 기간이 끝나면 나가 달라고 했다. 전세보증금으로 갈 곳도 없었다. 없는 형편에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을 꿈꿨던 게 잘못이었나 하는 생각에 부부는 밤마다 가슴을 쳤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지난해 청약시장에 뛰어들어 신도시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몇 달 전 태어난 둘째까지 네 식구의 집
  • [마감 후] 새로운 판례를 만든다는 심정으로

    [마감 후] 새로운 판례를 만든다는 심정으로

    2019년 11월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이 꾸려졌다. 수사권을 가진 검찰이 더이상 규명이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수사를 하겠다고 하니 기대가 컸다. 임관혁(현 서울동부지검장) 특수단장은 “이번 수사가 마지막이 될 수 있도록 백서를 쓰는 심정으로 수사하겠다”고 했다. 제기된 모든 의혹을 검토해 매듭을 짓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혔지만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이란 의견도 적지 않았다. ‘백서를 쓰는 심정’이란 대목에서는 걱정 어린 시선도 있었다. 검찰이 수사 보고서를 잘못 쓰면 나중에 책임을 묻기 어렵고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그로부터 1년 2개월 뒤인 지난해 1월 임 단장은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쉽지 않았다”고 했다. 압수수색을 통해 자료를 확보하려고 해도 시간이 흐른 탓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해양경찰 지휘부 사건을 그때(참사 당시) 기소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도 했다. 특수단은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업무를 소홀히 한 혐의를 받는 김석균 전 해경청장 등 해경 지휘부의 1심 선고를 앞두고 있었다. 한 달 뒤 1심은 해경 지휘부의 업무상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수사기관이
  • [마감 후] 재벌집 막내아들은 없다/송수연 경제부 기자

    [마감 후] 재벌집 막내아들은 없다/송수연 경제부 기자

    최근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다. 재벌 총수 일가의 오너 리스크를 관리하던 흙수저 비서가 1987년으로 회귀해 재벌집 막내아들 진도준(송중기)으로 다시 태어났다. 인생역전 판타지에 인생 1회차 기억을 간직한 초능력까지 가졌으니 시청률이 날이 갈수록 빵빵 터진다. 미래를 아는 주인공에게 위기는 오히려 기회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 대비해 전 재산을 달러로 환전하는 등 위기 때마다 반전을 시도한다. 요즘처럼 집값은 추락하고, 주식시장은 요동치는 경제 불안 시기에 누구나 한번쯤 ‘내가 진도준이라면’이라는 짜릿한 상상을 해 본다. 특히 국내외 금융·경제 전문가 상당수가 내년에 국내 금융 시스템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는 등 불안이 커지는 상황이다. 기업과 금융 당국자들의 마음은 더 초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재벌집 막내아들은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거 비슷한 경제 위기를 거울삼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다. 2003년 신용카드 사태와 2011년 저축은행 사태는 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 가운데 카드사와 저축은행이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과당 경쟁을 벌인 결과였다. 2000년대 초반 정부는 소
  • [마감 후] 트루먼과 윤석열/하종훈 정치부 기자

    [마감 후] 트루먼과 윤석열/하종훈 정치부 기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통령이 되려고 열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연히 그들에게 다가온다.”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1884~1972)의 이 같은 말은 부통령 재임 중 전임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로 얼떨결에 대통령이 된 자신의 처지를 반영한다. 판사 출신 상원의원으로 우연히 부통령이 된 트루먼은 평소 루스벨트와 국정을 논하지도 않았고, 대통령직을 계승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당시 2차 세계대전의 격랑 속에서 전임자의 위상이 워낙 확고하다 보니 미국 국민도 입증되지 않은 대통령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트루먼은 근면·정직하고 성실한 태도와 강건한 책임 의식으로 전후 미국을 국제사회의 지도국으로 끌어올려 역대 미국 대통령 평가 순위 10위권 내에 꾸준히 오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검사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도 ‘공정’과 ‘상식’을 바탕으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통해 짧은 정계 입문 기간에도 불구하고 얼떨결에 대통령이 된 사례에 해당한다. 하지만 취임한 지 7개월이 지난 현시점에서 윤 대통령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윤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인 5월 첫째주 직무수행 지지율은 41%, 부정평가는 4
  • [마감 후] 우유발 가격 인상 안 잡히는 이유/강주리 세종취재본부 차장

    [마감 후] 우유발 가격 인상 안 잡히는 이유/강주리 세종취재본부 차장

    “우유 사 먹기가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아이스크림, 유제품,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다 올랐어요.” 어린 두 자녀를 위해 집으로 우유를 배달 주문하는 주부 A씨는 대폭 오른 우유 가격에 한숨을 내쉬었다. 우유값 상승에 유제품 등 관련 식품 가격들이 줄줄이 상승하는 ‘밀크플레이션’이 현실화되면서 식료품 지출 부담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칼슘 등 기능성이 첨가된 ‘키즈용’ 우유 가격은 더욱 올랐다. A씨는 정부에서 가격을 잡아 주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우유값 인상에서 촉발한 식품 가격은 좀체 잡히지 않고 있다. 이유가 뭘까. 가장 아쉬운 건 고물가에 허덕이는 소비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식품업체들의 태도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로 최고치를 찍었던 7월(6.3%)보다 다소 둔화됐지만 가공식품 9.4%, 빵 15.8% 등 식품물가는 여전히 9%대로 높다. 업계는 힘들다고 아우성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코스피에 상장된 식품기업 36개사 중 33개사가 올해 누적 3분기까지 매출이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15.4%, 영업이익은 10.5% 올랐다. 그런데도 원유 가격 인상폭을 훨씬 뛰어넘는 과잉 인상과 고물가에 기댄 편
  • [마감 후] ‘중대재해’ 감축, 좌고우면 말라/박승기 세종취재본부 부장

    [마감 후] ‘중대재해’ 감축, 좌고우면 말라/박승기 세종취재본부 부장

    828명. 지난해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근로자 숫자다. 하루 평균 2.3명이 직장에서 귀한 목숨을 잃었다. 일하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게 하겠다며 올해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중대법)이 시행됐지만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오히려 중대법 시행 후 사업장 사망사고가 공지되면서 매일 부고장을 받다 보니 기분만 착잡할 뿐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3분기 누적 중대재해 사망사고 현황’에 따르면 올해 1∼9월 근로자 510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502명)과 비교해 8명 늘었다. 중대법이 적용되는 5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사망자가 202명 발생해 1년 전보다 무려 24명이나 증가했다. 고용부 간부는 이 대목에서 “부끄럽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중대법에 따라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 중대재해 발생 시 사고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결코 가볍지 않은 처벌이다. 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안 된 시점에서 효과를 논하긴 이르지만 현장에서 법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이다. 정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 [마감 후] K콘텐츠, 잘 만드는 것을 넘어서/김기중 문화체육부 차장

    [마감 후] K콘텐츠, 잘 만드는 것을 넘어서/김기중 문화체육부 차장

    싱가포르가 자랑하는 초대형 식물원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안에 있는 유리 온실 ‘클라우드 포레스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간 다음 둘레의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는 구조다. 동선 곳곳에 이색적인 조형물을 두어 재미를 더한다. 나무를 타고 오르는 파란색 피부의 나비족, 코뿔소를 닮은 해머헤드 등은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를 봤다면 알 만한 캐릭터다. 영화에 등장했던 실물 크기 이크란 로봇은 특히 인기가 많다. 익룡을 닮은 이크란이 위협적으로 날개를 퍼덕이며 소리를 질러 대는데, 움직임에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달 30일 방문했을 때 관람객들은 휴대전화로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가 지난 10월 28일부터 내년 3월까지 운영하는 ‘아바타: 더 익스피리언스’ 기획전은 영화 속 공간을 체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 오는 14일 ‘아바타: 물의 길’ 개봉을 앞두고 월트디즈니와 협업으로 진행하는 행사다. 플라워돔과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입장료가 원래 28싱가포르달러(약 2만 7000원)였는데, 기획전을 하면서 가격을 두 배 가까이 올린 53싱가포르달러로 책정했다. 그런데도 관람객은 더 늘어났다. ‘아바타’라는 콘텐츠가 보여
  • [마감 후] 겨울 앞에서/조희선 전국부 기자

    [마감 후] 겨울 앞에서/조희선 전국부 기자

    시리도록 차가운 계절 앞에서 뜨거웠던 지난해 여름을 떠올린다.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 취약계층 주민을 위해 이동형 냉방기를 지원한 적이 있다. 자신의 집에 직원들이 간이 에어컨을 설치하는 모습을 바라본 여성이 반색했다. 두 아이를 키운다는 그는 “이사 올 때 설치한 중고 에어컨이 고장 나 선풍기 한 대로 버텨 왔다”면서 “더워서 밖에 나가 놀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집 안에서 놀기도 쉽지 않았는데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홀로 사는 한 80대 여성도 이동형 에어컨을 보며 “지방에 있는 자식이 잘 찾아오지도 못하는 데다 에어컨이 비싸 살 엄두가 안 났는데 이렇게 챙겨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여전히 이 장면을 기억하는 건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불편함을 겪는 사람이 우리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게 새삼 뼈아프게 다가와서다. 송파에서, 수원에서 그리고 서대문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생각한다.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려고 고뇌한 이들을 위해 국가와 사회는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 불편과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누군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순간이 돼서는 안 되기에 사회안전망은 탄탄해야 한다. 정부는 매번 그 안전망을 촘촘히 짜
  • [마감 후] 광진 04번 마을버스/장진복 전국부 기자

    [마감 후] 광진 04번 마을버스/장진복 전국부 기자

    ‘광진 04번’은 서울 광진구 중곡아파트에서 출발해 강변역을 돌아 다시 중곡아파트로 향하는 마을버스다. 6개 행정동을 가로지르며 37개 정류장에 서는 등 마을버스치고는 노선이 꽤 길다. 강변역에서 광진 04번을 타면 특수학교가 인근에 있는 다음 정거장에서 발달장애 학생들이 보호자의 손을 꼭 잡고 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광진구청역을 지나 고령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중곡동 입구에 들어서면 노쇠한 어르신들이 힘겹게 버스에 몸을 싣는다. 종종 우리 사회 복지 현실과 정책에 대한 기사를 써 왔지만, 신문기사 몇 줄에 전부 담을 수 없는 복지의 현주소가 이 마을버스에 담겨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을버스는 보통 ‘시민의 발’로 비유된다. 지하철이나 시내버스가 닿지 않는 골목 구석구석을 마을버스가 누비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중교통 체계가 잘 갖춰진 서울이라고 해도 골목길과 비탈길, 오르막길까지 승객을 나를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은 마을버스뿐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마을버스 업계가 극심한 경영난에 허덕여도 대중교통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마을버스는 운행을 멈출 수가 없다. 얼마 전 만난 한 복지담당 공무원은 “저희가 아무리 노력해도 복지 사각지대
  • [마감 후] 복지부동, 가장 효과적인 사보타주/강국진 정치부 차장

    [마감 후] 복지부동, 가장 효과적인 사보타주/강국진 정치부 차장

    신속한 의사결정을 피하고 항상 ‘정식 절차’를 거치도록 한다.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회의를 연다. 회의에선 ‘라떼는 말이야’로 이어지는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상관없는 주제를 끊임없이 꺼낸다. 정확한 단어 선택을 두고 실랑이를 벌인다. 덜 중요한 일을 먼저 처리하게 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 완벽한 일처리를 명령한다. 한 명이 결정해도 되는 일도 여러 사람이 승인을 하도록 한다. 누구나 주변의 이런 사람 하나쯤은 알고 있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이 조직을 이끄는 자리에 있다면 그 조직이 엉망진창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하지만 만약 조직을 망치는 게 그 사람의 목적이라면?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사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전신인 전략사무국(OSS)이 1944년에 펴낸 ‘사보타주(파괴공작) 현장교본’에 등장하는 ‘티 안 나게 적 조직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2022년에 맞게 살짝 각색한 것이다. 미 국토안보부 누리집에서 손쉽게 내려받을 수 있는 이 짤막한 현장교본을 틈날 때마다 들춰 보며 두 가지를 떠올린다. 하나는 분류 범주가 ‘사보타주 예방’으로 돼 있다는 점이다. 적국을 내부에서 무너뜨리는 최종 병기가 “비효율적인 직원에게 상냥하게 대하고 부당하게
  • [마감 후] 인권의 무게/이재연 정치부 차장

    [마감 후] 인권의 무게/이재연 정치부 차장

    지난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렸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연회장에선 짧지만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에게 전날 있었던 양국의 약식회동 내용이 보도된 데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1분 남짓한 대화는 방송 풀(pool)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혔다. 시 주석은 “우리가 나눈 모든 대화가 언론에 유출됐다. 그런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며 “진정성이 있다면 서로 존중하는 자세로 소통해야 한다”고 했다. 트뤼도 총리가 “캐나다는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솔직한 대화를 지지한다”고 말을 이어 가자 시 주석은 두 손을 들어 차단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여건을 만들자”고 한 뒤 자리를 떴다. 이례적으로 상대국 정상을 공개석상에서 질책하는 듯한 태도에 대해 당장 ‘무례하다’는 반응이 나왔고, 캐나다 현지에선 “우리를 소국으로 여겼다”는 항의 여론이 터져 나왔다. 전날 캐나다 정부 측이 언론에 “트뤼도 총리가 중국의 점점 더 공격적인 간섭활동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고 브리핑했는데, 시 주석이 이를 문제삼은 것이다. 캐나다 측이 지목한 ‘간섭활동’이란 중국이 2019년 캐나다 선거에서 친중 후보들에게
  • [마감 후] 백신 딜레마/이현정 세종취재본부 기자

    [마감 후] 백신 딜레마/이현정 세종취재본부 기자

    “동절기 추가접종에 참여한 분들에게는 고궁 및 공원의 무료 입장, 템플스테이 할인 등 문화체험 혜택을 제공하겠습니다.” 7차 재유행이 시작됐는데도 동절기 추가접종률이 거북이걸음을 하자 정부가 ‘당근’을 꺼내 들었다. 당근이라 하기에는 조금 민망한,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작게나마 지원책’이다. 접종률을 끌어올릴 뾰족한 방도가 없는 당국의 궁색한 처지가 엿보인다. 한국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한때 세계 최상위권을 자랑했다. 1차 접종률 87.9%, 2차 접종률 87.1%다. 3차 접종률은 이보다 낮은 65.6%이지만, 60세 이상 고령층 접종률은 90.2%다. 맞을 사람은 다 맞았다는 얘기다. 이랬던 접종률이 4차에 들어선 60세 이상 44.2%(전체 국민 14.8%)로 떨어졌고, 현재 동절기 추가접종률은 대상자 대비 4.6%, 60세 이상 13.8%다. 4차 접종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지난 7월과 동절기 추가접종이 시작된 10월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미크론 이후 코로나19의 치명률 자체는 계절독감과 유사한 수준으로 근접하고 있다.” 지난 7월 15일 브리핑에서 손영래 당시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이렇게 언급했다. 비슷한
  • [마감 후] ‘닮은꼴 참사‘ 끊어 내려면/정서린 산업부 차장

    [마감 후] ‘닮은꼴 참사‘ 끊어 내려면/정서린 산업부 차장

    “아직도 혼자 있는 순간엔 마음이 늘 그날로 가요. 가서 수십 번이고 아이를 구해 오는 상상을 해요.” 이태원 참사 다음날 믿기지 않는 사상자 숫자에 아연했던 순간 수년 전 만난 한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이태원의 비극 앞에서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토로가, 짓무를 대로 짓무른 그의 눈가가 ‘자동반사’처럼 떠오른 것은 사상자 수보다 더 많을 유가족들의 참혹함을 그때 아주 미력하게나마 헤아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3년 뒤 만난 딸 잃은 어머니의 하루하루는 담담한 어조와 달리 죄책감, 고통과 치열하게 드잡이를 하고 있었다. ‘넌 멍에와 굴레를 벗어나면 안 돼./칭칭 동여매어 할퀴고 쑤시고 처박혀야 돼./아픔, 고통, 학대, 그 무엇이든/고스란히 소리 없이 받아야 돼./(중략)//걱정 마./내 새끼 그리워하며 내 몸을 쥐어짜는/나날의 굴레를 풀지는 못하니까./마음에 한 줌씩 덕지덕지 씌워 주렴./그래야 내 몸이/미안하고 죄스러움을 조금은 씻을 것 같으니.’(나에게) 딸을 그리며 쓴 시처럼 그는 매일 딸을 구출해 오는 꿈을 꾸면서 스스로를 죄책감이란 굴레로 친친 감고 있었다. 먹는 것도 죄스러워 아침을 먹지 않은 지 오래라
  • [마감 후] 각자도생 대한민국/이은주 세종취재본부 차장

    [마감 후] 각자도생 대한민국/이은주 세종취재본부 차장

    그날 이태원 거리를 찾은 시민들의 바람은 소박했을 것이다. 모처럼 마스크를 벗고 핼러윈 거리 축제를 즐기며 코로나19로 쌓인 스트레스를 훌훌 날리고 싶었고, 한국 문화를 사랑했던 외국인들은 ‘서울속의 작은 외국’이라고 불리는 이태원에서 국경 없이 하나 되는 추억을 쌓고 싶었을 것이다. 코로나 기간 단절된 사람들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던 우리 주변의 평범한 젊은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설렘과 기대는 한순간에 참혹한 비극으로 바뀌었다. 주말 저녁 서울 한복판에서 156명의 아까운 생명이 희생되는 대참사가 발생했고, 국민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겼다. 이번 참사는 정부의 무대책, 무능력으로 인해 발생했고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충격과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엔데믹과 맞물려 지난여름부터 각종 축제나 페스티벌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핼러윈은 남의 나라 명절이 아니라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이색적인 하루를 보내는 도심 축제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억눌린 젊은이들의 심리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공감했다면 주말 핼러윈 축제에 여느 때보다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어렵지않게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참사
  • [마감 후] 위기의식 없는 리더, 참사는 반복된다/황비웅 정치부 차장

    [마감 후] 위기의식 없는 리더, 참사는 반복된다/황비웅 정치부 차장

    “리더로서 중요한 건 지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함께하는 것이다.” 2001년 미국 9·11테러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초기 대응에 집중하며 현장을 지휘한 조지프 파이퍼 소방관은 1만 5000명의 목숨을 구해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2014년 뉴욕소방청 대테러본부장 신분으로 방한했을 때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리더의 신속한 초기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거듭 강조했다.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리더의 신속한 대응력과 판단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위기 상황에서 리더의 역할에 관해 떠오르는 사례가 하나 더 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한 여객기가 2009년 1월 15일 미국 뉴욕 라과디아공항 이륙 직후 새떼와 충돌했다. 체슬리 설렌버거 기장의 순간적인 기지와 판단력으로 여객기는 인근 허드슨강에 불시착했고, 탑승객 155명 전원이 생존했다. 당시 가까운 공항 착륙을 시도할 수도 있었지만, 실패할 경우 승객들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설렌버거 기장의 직관적인 판단력이 결정적이었다. 더욱 눈길을 끈 것은 바로 책임감이다. 설렌버거 기장은 탑승객 155명이
  • [마감 후] 문제는 시스템이다/유용하 문화체육부 차장

    [마감 후] 문제는 시스템이다/유용하 문화체육부 차장

    대학 졸업 무렵 IMF 직격탄을 맞은 이공계 출신이다 보니 소싯적에 일자리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산업안전기사 시험을 본 적이 있다. 1차 시험과목 중 ‘안전관리론’이라는 것이 있다. 이 과목 단골 출제 문제 중 하나가 ‘하인리히 법칙’이다. 1931년 미국의 한 보험사 손실통제부 간부였던 허버트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7만 5000건을 분석해 ‘산업재해예방: 과학적 접근’이라는 제목의 기념비적인 책을 냈다. 그는 재해분석으로 ‘1대29대300’이라는 흥미로운 법칙을 발견했다. 하나의 큰 재해가 발생하기 전 같은 원인으로 29번의 작은 재해가 이미 발생했고 부상자가 생기지 않은 사소한 사고가 300번 발생했다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재앙은 없다’는 말이다.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 작은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무시하지 말고 곧바로 연쇄반응을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라는 것이 하인리히 법칙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주말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는 핼러윈을 즐기려 모였다가 15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람들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최악의 인재(人災)’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안전관리 측면에서 본다
  • [마감 후] 타인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홍인기 사회부 기자

    [마감 후] 타인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홍인기 사회부 기자

    타인의 죽음은 때로는 전혀 상관없는 이들의 일상을 파고든다. 지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일대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로 154명이 목숨을 잃었다.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10만명의 인파가 몰린 이태원은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참상의 현장이 됐다. 2014년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많은 인명 피해 사고다. 압사 사고로는 역대 최다 피해자를 기록했다. 참사 당시 폭 3.2m, 길이 40m의 좁은 골목에는 쓰러진 사람이 겹겹이 쌓였다. 상황은 긴박했지만 통제 불능 인파에 안일한 시민의식, 미비했던 안전 조치로 피해는 커졌다. 참사 현장 인근에는 누군가 놓고 간 국화꽃이 쌓였고, 온라인에서도 추모와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은 예정됐던 행사, 공연, 축제를 취소하고 안타까운 사고를 함께 슬퍼하고 있다. 참사 직후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도 공지 사항이 올라왔다. “간밤에 뉴스를 보면서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가 있을 텐데, 이런 시점에 핼러윈 행사를 한다는 것은 어른으로서 또 부모로서 올바른 교육이 아닌 것 같습니다. 미리 준비해 주신 부모님께는 죄송하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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