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결혼식 축사

    [길섶에서] 결혼식 축사

    올봄엔 부쩍 지인들의 자녀 결혼식이 늘었다. 참석할 때마다 예식이 예전과 다르게 자유분방해졌음을 느낀다. 그중 하나는 주례사 장면을 보기 어렵게 된 점이다. 요즘 젊은 세대가 형식보다 개성을 중시하다 보니 근엄한 주례사보다는 짧고 재미있는 축사를 선호하기 때문인 듯싶다. 대개 신랑이나 신부의 아버지가 축사를 맡는다. 신부 아버지는 축사를, 신랑 아버지는 성혼선언을 주관하는 경우가 많다. 삼십년 넘게 자식을 키우면서 동고동락한 아버지의 축사이다 보니 예전 주례사보다는 훨씬 더 진정성이 느껴진다. 제3자인 주례와 달리 아이와 인생의 상당 부분을 공유한 아버지로서 축하의 말이나 당부가 진솔하고 절절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선지 신부 아버지가 축사 중에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눈물을 보일 때도 드물지 않다. 엄마가 딸을 시집 보내며 눈시울을 붉힐 때가 많았던 예전 결혼식 모습과 대조적이다. 하긴 애지중지 키운 딸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아빠라고 엄마와 다를까.
  • [길섶에서] 덕수궁 모란

    [길섶에서] 덕수궁 모란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이 들면서 달라지는 것도 꽤 있다. 어릴 땐 입에도 대지 않던 청국장 냄새에 식욕이 돋고, 예전엔 듣기 싫어했던 옛 유행가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 세월에 따른 입맛과 취향의 변화가 낯설면서도 재밌다. 꽃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장미, 프리지어, 수선화처럼 작은 꽃을 선호하는 편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모란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그 자체로 빛나던 청춘을 떠나보낸 중년의 허허로움이 은연중에 크고 화려한 꽃을 좋아하도록 이끈 것일까. 얼마 전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덕수궁으로 산책하러 갔다가 후원에 만개한 모란을 발견하고 홀린 듯 한참을 바라보았다. 고궁 곳곳을 수놓은 산철쭉, 진달래도 화사하게 예뻤지만 내 눈엔 모란의 아름다움이 독보적이었다. 예로부터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으로 사랑받았다. 조선 왕실도 모란 문양을 즐겨 사용했다. 고종의 거처였던 덕수궁에 활짝 핀 모란을 감상할 수 있는 봄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 [길섶에서] 사월의 안부

    [길섶에서] 사월의 안부

    봄을 좋아하는 이유를 백 가지쯤 댈 수 있다. 봄은 저 혼자 오지 않고 잊었던 것들을 지고 이고 온다. 봄달팽이는 언제 길을 나서 우리 집 화단 원추리 밑을 지금 지나는지. 사방천지에 배실배실 웃음이 나는 것들. 볕이 길바닥에 잘박거리면 봄은 좌판 할머니들을 모셔다 놓는다. 아파트 담벼락에, 공원길 들머리에. 어디 있다 왔는지 모를 좌판에서는 어깨 한번 펴 본 적 없는 것들이 어깨를 활짝 편다. 쑥, 냉이, 쪽파, 쪽파를 백 년째 다듬는 것 같은 손. 이런 봄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마당에 나보다 늙은 앵두나무가 있어. 나 혼자 사는 집에 앵두가 익어서 하루 종일 저 혼자 떨어져.” 묻지도 않았는데, 덤으로 들려주던 앵두나무 이야기. 육교 아래 좌판에서 쪽파 봉다리에 묻어오던 앵두 한 줌. 백년의 전설처럼 나를 따라오던 그 마당의 앵두나무. 이 봄에도 그 봄이 올까. 꽃은 그 꽃들이 또 피었는데, 오래된 얼굴도 데려와 줄까. 통성명을 한 적도 없으면서 날마다 안부가 궁금해지는 그때 그 자리. 황수정 수석논설위원
  • [길섶에서] 돌미나리

    [길섶에서] 돌미나리

    봄기운이 완연하다. 언제 봄이 왔는지 모르게 갑자기 여름으로도 둔갑하곤 하는 요즘 날씨다. 서울 한강변을 비롯해 땅이 있는 곳이면 푸릇푸릇 때깔 좋은 풀들로 풍성하다. 토요일 아침 집 주변을 산책하다 보니 일흔은 되어 보이는 여성 두 명이 쭈그리고 앉아 풀을 캐고 있다. 뭘 그리 캐시냐고 물었더니 “돌미나리”라고 한다. 검정 비닐봉투에 담긴 풀을 보여 준다. 도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까막눈인 내게 설명해 주지 않으면 미나리인지 잡풀인지 알 턱이 없다. 어떻게 그리 잘 아시냐고 하니 “전남 함평이 고향”이란다. 어릴 적부터 산과 들, 밭에 나갔다고 한다. 먹는 풀, 못 먹는 풀 가리는 거야 식은 죽 먹기, 지금은 돌미나리와 민달래가 제철이라며 싱긋 웃어 준다. 미나리 캐는 그들은 2인조가 아니었다. 비슷한 또래의 남성이 자전거를 끌며 겸연쩍은 듯 뒤따라온다. 그들의 저녁 식탁에 돌미나리 무침이 가득할 거라 상상하니 부럽기조차 하다.
  • [길섶에서] 욕망의 이름

    [길섶에서] 욕망의 이름

    얼마 전 우편물 수령에 필요한 집주소를 잘못 적은 일이 있다. 래미안목동아델리체를 아델리체목동래미안으로 적었다. 입에 착 붙지 않는 외래어가 두 개나 붙은 주소를 쓸 일이 거의 없다 보니 생긴 일이다. 주소 표기는 물론 방문객에게 주소를 알려줄 때도 불편하다.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 초롱꽃마을 6단지 GTX운정역 금악펜테리움센트럴파크. 무려 25자나 되는 아파트 이름이다. 이렇게 긴 주소를 기억해야 하는 입주민이 아닌 게 다행이다. 대우건설이 지은 서울 동작구 흑석동 재개발 아파트 단지명이 ‘서반포 써밋 더힐’로 정해졌다는 소식에 네티즌들이 갑론을박이다. 반포라는 서초구의 부자 동네 이름을 내건 데에는 집값 상승을 노린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아니면 주민들의 행정구역 개편 욕망을 띄워 보는 걸까. 지리적 위치는 변함이 없는데 이런 작명이 허용된다면 김포는 서서울로, 하남은 동서울로 하자는 주장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 [길섶에서] 해치마당의 버스킹

    [길섶에서] 해치마당의 버스킹

    지난 금요일 저녁 광화문 해치마당. 약속 장소로 걸어가던 중 귀에 익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너의 그 한마디 말도/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아이유와 김창완이 함께 부른 ‘너의 의미’라는 노래였다. 전자피아노를 치며 노래 부르는 사람은 장유경이라는 가수 겸 싱어송라이터였다. 자작곡 ‘등대’라는 곡도 불렀다. ‘햇살이 비칠 땐/그 빛을 느끼지 못했죠/한없이 넓기만 한 그대의 품도’ 주로 큰 집회나 행사 등만 봐왔던 광화문 한켠에서 부드럽고 감미로운 노래를 들으니 가사 하나하나가 귀에 쏙 들어왔다. 서울시가 오는 11월까지 서울 도심 명소 50곳에서 거리공연을 펼치는 ‘구석구석라이브’의 하나였다. 2011년부터 시작됐다는데 이제야 이걸 알게 된 나의 무관심이 멋쩍어졌다. 여러 해 전 뉴욕을 방문했을 때 버스킹에 수백 명의 청중이 몰려 함께 손뼉을 치고 즐기던 모습이 떠올랐다. 서울에서도 시간과 장소만 잘 맞추면 부담 없이 다채로운 거리공연을 즐길 수 있겠다. 박성원 논설위원
  • [길섶에서] 경의선숲길

    [길섶에서] 경의선숲길

    서강대 정문 건너편에 공영주차장이 있었다. 경의선숲길 중간쯤이다. 마포구 시설관리공단이 지난달 말 계약 종료로 해당 부지를 철도공단에 돌려주면서 공영주차장은 폐쇄됐다. 주차면 표시만 남아 있다. 경의선숲길은 철도 지하화의 성공 사례다. 공덕역부터 가좌역까지 길이 6.3㎞ 공원을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동한다. 경의선으로 끊겼던 위아래 마을 이동도 자유로워지면서 소통의 공간이 됐다. 경의선숲길 사용료 납부 여부를 두고 서울시와 철도공단이 소송 중이다. 철도공단이 국유재산 사용료를 부과했고 이에 불복한 서울시가 1심에서 이겼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공영주차장 부지에 무엇이 들어설까. 경의중앙선 서강대역에 가까우니 지하를 깊이 파지는 못할 터. 인근 상가들처럼 저층 건물이 들어설 확률이 높다. 주차료 수입이 사라지니 마포구 시설관리공단으로서는 아쉬울 거다. 누가 운영해 무엇을 짓건 시민들에게 환영받는 시설이 세워졌으면 좋겠다. 전경하 논설위원
  • [길섶에서] 멸치 우정

    [길섶에서] 멸치 우정

    해마다 4월 멸치 철이 되면 학창 시절 친구들과 부산에 간다. 멸치 회며, 구이, 튀김에 매운탕까지 갖가지 음식을 맛보는 재미가 기막히다. 서울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음식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부산 친구와 만나 한 해 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처음엔 멸치축제가 열리는 기장 대변항이 목적지였지만, 이제는 작은 포구를 찾아간다. 지난 주말엔 거가대교를 건너 거제도 외포로 갔다. 갓 잡은 멸치를 즐기는 식당 밖으로 멸치 그물을 터는 어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언덕배기 찻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바다를 보다 부산으로 돌아가 이기대 해안길을 걸으니 입 호강에 정신건강이 더해진다. 모두 부산 친구의 아이디어다. 아침 일찍 서울역에 나가 집에 돌아오니 밤 12시가 넘었다. 1박 2일 일정이라면 훨씬 여유가 있겠지만, 그건 하루 치다꺼리도 힘겨울 부산 친구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동행한 친구들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만큼 우리는 나이를 먹었다.
  • [길섶에서] 멧돼지 습격사건

    [길섶에서] 멧돼지 습격사건

    올해도 어김없이 벚꽃이 일찍 떨어져 아쉬운 계절이 찾아왔다. 매년 이맘때쯤 처가의 가족들은 장인어른 산소에 성묘를 간다. 지난 주말 우리 가족도 어김없이 성묘길에 나섰다. 그런데 와이프가 이번엔 삽질을 해야 하니 편한 복장을 하고 가라고 했다. 멧돼지가 산소를 습격해 봉분이 아주 엉망이 됐단다. 산소에 도착해 보니 예년보다도 훨씬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다. 손위 처남이 손수 구매해 온 잔디를 적당히 삽으로 자른 뒤 봉분에 층을 만들어 심었다. 잔디 위에 흙을 뿌려 삽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열심히 다져 준다. 이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심정이었다. 인터넷을 보니 멧돼지의 산소 또는 농가 습격으로 다들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울타리 치기, 약품 사용하기 등 수많은 멧돼지 퇴치법이 등장했지만 아직은 연구 단계인 듯하다. 멧돼지 습격으로 피해를 보는 농민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완벽한 퇴치법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 [길섶에서] 사라진 뽕나무

    [길섶에서] 사라진 뽕나무

    집 근처 하천 변을 산책하다가 뭔가 허전함이 느껴져 멈춰 섰다. 평소 자주 지나치던 지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법 큰 산뽕나무 한 그루가 사라지고 없다. 십수 년을 무심코 지나다니다가 2년 전 초여름에 처음 발견하고 몹시 반가웠던 나무다. 누군가가 심은 것 같지는 않고 오래전 하천을 정비할 때 어디선가 묻어온 씨앗이 발아해 자란 듯했다. 까맣게 익어 주렁주렁 매달린 오디를 보며 어릴 적 시골에서 자라던 때의 추억에 잠기곤 했다. 그러고 보니 하천 변 여기저기 자라던 버드나무와 찔레덩굴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지난해 늦가을 구청에서 제초 작업을 하면서 모두 베어 버린 듯싶었다. 인위적으로 정돈된 산책로에 제멋대로 자란 나무들이 무질서하게 보였을까. 이 나무들 덕분에 사람 손이 닿지 않은 듯한 오솔길의 정취를 가끔 느꼈던 나로선 아쉬움이 크다. 하긴 겨우내 별 생각 없이 지나다니다가 잎과 꽃이 날 때가 돼서야 사라진 걸 알게 된 나 자신도 야속하긴 마찬가지다.
  • [길섶에서] 승자와 패자

    [길섶에서] 승자와 패자

    경쟁 상대가 있는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과정이 어떠했든 결과는 이긴 자와 진 자를 칼같이 구분한다. 기록을 다투는 스포츠 경기에선 소수점 차이로 승패가 결정되고 선거에선 단 한 표로 당락이 나뉜다. 승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아름다운 패배, 아름다운 패자란 없다. 그러나 인생의 관점에선 다르다. 이기고도 지는 사람, 패하고도 승리하는 사람이 있다. 이를테면 실수했을 때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승자이고, ‘너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말하는 사람은 패자다. 승자는 어린아이에게도 사과하지만 패자는 노인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못한다. 승자는 행동으로 말을 증명하고, 패자는 말로 행동을 변명한다. 유대 경전에 나오는 승자와 패자의 차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여야 간, 후보 간 희비가 갈렸다. 하지만 혐오와 적대로 얼룩진 최악의 선거란 점에서 여야 모두 패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국민을 위한 정책 경쟁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 진정한 승부는 이제부터다.
  • [길섶에서] 가지 않은 길

    [길섶에서] 가지 않은 길

    집 뒤편으로 없던 길이 났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샛길이다. 지난겨울쯤부터였나. 멀쩡한 길을 놔두고 아파트 화단 귀퉁이를 뭉개는 발길들이 보였다. 조금 돌아가면 될 것을 저러나, 마뜩잖았더랬다. 그러기를 몇 달째. 어쭙잖은 발길, 조심스러운 발자국, 시원한 발소리. 내가 모르는 사이 얼마나 많은 발자국이 찍히고 발소리가 쌓였을까. 엉거주춤했던 길이 말쑥한 새 길이 됐다. 짧고 꼬부라졌어도 잘 다져진 흙길 양쪽으로 오종종 봄꽃들이 자리잡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길이었다는 듯, 민들레꽃은 백년째 그 자리에서 또 피었다는 듯이. 나도 그 길을 걷는다. 발아래로 루쉰의 오래된 문장이 구른다. 땅 위에는 본디 길이 없었으며 발길이 쌓여 길이 된다는. 사람이 품는 희망도 땅 위의 길과 같다는. 서툰 발길로 길 없는 길의 모퉁이를 돌다 어느 저녁 문득 이마에 부딪치는 것. 꿈을 꾸는 일은 그런 것인지 모른다. 마음에 샛길 한 줄 내고 날마다 발자국을 모으는 일인지 모른다.
  • [길섶에서] 이빨

    [길섶에서] 이빨

    음식을 씹기 어려울 정도로 어금니가 아파서 치과를 갔더니 치아 안쪽으로 염증이 생긴 것 같다는 판정을 받았다. 원장이 “이대로 통증이 계속되면 신경치료로는 예후가 좋지 않으니 발치가 필요하지만 가급적 치아를 살려 오래 써 보자”고 한다. 두 번에 걸쳐 치석을 제거하고 염증을 살짝 긁어내는 선에서 치료를 했더니 신기하게도 통증이 사라졌다. 또래들은 어떨까. 모임에서 모두에게 ‘치아 상태’를 물어봤다. 참석자 5명 가운데 임플란트를 8개 했다는 이가 2명, 4개 했다는 이가 1명, 신경치료만 1개 했다는 이가 1명이었다. 나는 임플란트 1개에 신경치료 1개이니 비교적 치아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마무리 치료를 받으러 갔더니 3개월 뒤에 만나자면서 어금니 관리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준다. 온라인몰에서 치주염 칫솔, 1회용 치실 등을 샀다. 원장은 “나이에 비해 치아가 건강하니 잘 관리 하시라”며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고 다독여 준다. 위안이 되는 한마디다. 황성기 논설위원
  • [길섶에서] 마음먹기

    [길섶에서] 마음먹기

    감기에 걸렸다. 집에서 반바지에 반팔 차림으로 일한 게 화근이 됐던 것 같다. 잦은 마른기침에 목이 부어올라 약을 먹고 있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웃통을 벗은 채 이른 더위를 식혔다는데 집에서 감기에 걸렸다니 기묘한 세상이다. 한동안 소식이 뜸하던 지인이 카톡으로 감기 조심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내 감기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다. 본인이 걸려 조심하라고 보낸 것이란다. 아내는 20대 청춘도 아닌데 반팔 차림이니 걸린 것이라는 핀잔과 함께 옷부터 갈아입으라고 성화다. 나를 아프게 하는 이 녀석과 빨리 헤어져야겠다. 세상사 마음먹기라고 감기를 통해 인연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가벼운 병이든 중병이든 아픈데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슬픈 일이다.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음식 못지않게 건강한 마음먹기를 다짐해 본다. 잘만 먹으면 일상이 즐거워지니 제대로 먹어 보련다.
  • [길섶에서] 교차로의 라이더

    [길섶에서] 교차로의 라이더

    동네 감자탕집 근처 교차로. 전방 신호등이 빨강에서 녹색으로 바뀌어 차량을 출발시키려는 순간 오른쪽에서 휘윙~ 하고 나타난 오토바이가 앞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흔히 있는 일이어서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역시 천천히 출발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달 라이더가 혹여 다른 차량이나 행인과 부딪치지나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최근 배달업계가 라이더 복지 강화 차원에서 안전물품 지원, 심리상담, 안전교육 서비스 등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실질적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해 배달 플랫폼노조와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소가 배달 라이더 103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응답자의 33.2%가 최근 1년간 오토바이 사고 경험이 있다고 했다. 사고 경험 비율은 배달 경력과도 무관했다. 20~30대보다 50대(55.1%)와 40대(40.2%)의 사고 경험이 두 배에 가까웠다. 집으로 따뜻한 음식을 가져다주는 우리 이웃 라이더분들. 모두 오늘도 안전하고 건강한 하루 되시기를.
  • [길섶에서] 징파도 부처

    [길섶에서] 징파도 부처

    몇 해 전 경기 연천으로 조선 중기 대학자이자 이제는 특유의 전서체 글씨로 더욱 명성을 날리고 있는 미수 허목 선생의 무덤을 찾아나선 길에 우연히 석조불상이 있다는 푯말을 보고 골목으로 접어든 적이 있다. 안내판이 시키는 대로 따라 들어갔더니 과연 조촐한 불상이 나타났다. 연천 북삼리 석조여래입상이라고 했다. 아랫동네에 있었던 불상을 분교 마당으로 옮겨 놓았다는데, 이제는 분교마저 문을 닫은 듯했다. 고려시대 불상이라니 오래되기는 했으되 그 자체로 감동적인 솜씨는 아니어서 잊고 있었다. 최근 임진강의 역사를 다룬 글을 읽다가 고려시대 이후 상류의 중요한 나루였다는 징파도(澄波渡)가 어딘지 궁금해졌다. 징파도를 찾아갔더니 바로 북삼리가 아닌가. 징파리를 포함한 강북 3개 마을이 합쳐지며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사공들은 뱃길의 안전을 여래에게 빌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아마도 징파도 뱃사람을 꼭 닮았을 소박한 모습의 불상이 다시 보였다.
  • [길섶에서] 뉴스 읽기 연습

    [길섶에서] 뉴스 읽기 연습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를 쓴다. 기후동행카드를 과천에서도 쓸 수 있다는 뉴스가 기억나 지난달 선바위역에서 내리면서 기후동행카드를 찍었다. ‘사용할 수 없는 카드’라는 알림에 호출 버튼을 눌러 물으니 역무실로 오란다. 뉴스 나왔는데 왜 안 되느냐는 질문에 역무원은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웃으며 답했다. 언제부터 되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단다. 출발지를 말하고 다른 교통카드로 요금을 냈다. 해당 기사를 다시 읽어 보니 시스템 개발, 이용 방식, 운행 결손금 부담 등에 대한 실무협의를 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협의 시작을 서비스 시작으로 오해했다. 협의가 오래 걸리는지 두 달이 지난 지금도 과천시에 속한 4호선 전철역은 기후동행카드 서비스 지역이 아니다. 사람들이 다시 기사를 읽어 볼까. 기후동행카드 서비스 지역을 검색할까. 어찌 됐건 뉴스를 제대로 못 읽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혼자만 그런 건 아니라지만 그래도 뉴스 제대로 읽기 연습을 해야겠다.
  • [길섶에서] 광장시장 바가지

    [길섶에서] 광장시장 바가지

    외국인 관광객들뿐 아니라 MZ세대에게도 ‘핫플’이라는 종로 광장시장을 엊그제 찾았다. 걷기도 힘든 인파에 둘러싸여 떡볶이, 순대 등 먹거리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겨우겨우 한 포장마차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순대와 떡볶이를 시켰다. 인원이 많아 자리를 넓게 앉다 보니 음식을 나눠야 했다. 순대를 앞접시 두 개에 나눠 달라고 부탁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사람이 많고 복잡해 얼른 계산을 하고 빠져나왔다. 찹쌀꽈배기가 유명하다더니 외국인들 대부분은 찹쌀꽈배기 집에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계산이 맞지 않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알고 보니 순대를 두 접시에 나눠 달라고 한 것에 대해 값을 두 배로 받은 것이었다. 지난해 말 광장시장의 바가지 상술 보도로 전국이 떠들썩했고, 상인회에서 어깨띠를 매고 자정 결의대회까지 열었던 게 생각난다. 그런데 온라인상에서 바가지 논란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었다. 포장마차 주인아주머니는 단순히 계산을 착각한 걸까.
  • [길섶에서] 가지치기

    [길섶에서] 가지치기

    봄꽃이 팝콘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지난주 동네 천변의 홍매화와 산수유가 꽃을 피우더니 이번 주부터는 벚꽃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린다. 팝콘도 이렇게 빨강, 노랑, 하양으로 튀길 수 있다면 색다른 맛이 나지 않을까. 실없는 생각을 하며 산책을 하는데 생뚱맞은 풍경이 들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길가에 식재된 나무들이 팔다리 잘린 부상병마냥 힘없이 늘어서 있던 것. 윗동아리와 큰 가지들까지 사정없이 잘려 나간 모습이 처연하기까지 하다. 나목(裸木)에서 깨어나 잎이 돋아날 이 봄날에 만행이 따로 없다. 가지치기를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 나무들이 제대로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려면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 가늠이 안 된다. 그동안 손댈 일이 없으니 예산은 아낄 수 있겠다. 하지만 꽃과 열매, 한여름에 그늘을 선물하는 무성한 잎은 포기해야 할 판이다. 계절은 바뀌는데 오랫동안 겨울 나목 신세를 면치 못할 나무들. 나무들에 매달린 선거 현수막의 험악한 문구가 삭막함을 더하는 봄날이다.
  • [길섶에서] 옷의 수명

    [길섶에서] 옷의 수명

    봄기운이 완연해지니 TV홈쇼핑 채널마다 화사하고 가벼운 봄옷 판매 방송이 넘친다. 홀린 듯 시청하다가 활용도 좋은 반팔 티셔츠를 충동구매했다. 5종 묶음 가격이 5만원대. 티셔츠 한 장에 1만원꼴이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썩 괜찮은 가성비란 생각에 얼른 주문했다. ‘득템’했다는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색깔만 다를 뿐 모양이 똑같은 티셔츠를 5장이나 배송받고 보니 ‘이걸 언제 다 입나’ 난감했다. 순간적인 욕심에 필요하지도 않은 옷을 잔뜩 산 경솔함에 화도 났다. 얼마 전 방송 뉴스에서 아프리카 해안을 뒤덮은 의류 쓰레기 더미를 봤다. 한국을 포함해 세계 각지에서 버려진 옷들이라고 한다. 산처럼 쌓인 옷가지 중에서 수명이 다해 폐기된 의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상당수는 나처럼 싼 맛에 사서 한 철만 입고 버리는 패스트패션 소비의 희생물이 아닐까. 아파트 단지 수거함에 무심히 던져 넣었던 새 옷 같은 헌 옷들의 예상치 못한 종착지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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