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 [금요칼럼] ‘운칠기삼’과 노블레스 오블리주/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금요칼럼] ‘운칠기삼’과 노블레스 오블리주/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요소로 운이 7할이고 능력이 3할이라는 뜻이다. 전자는 외부환경을 가리키는데, 자신이 스스로 바꿀 수 없거나 자기 노력과는 무관한 요인을 이른다. 그래서 돌고 도는 운수요, 우연적 요인이다. 그런데 그 비중이 무려 70%라는 얘기다. 고대 중국의 설화에 뿌리를 둔 이 관용어는 자기 노력만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세상사의 오묘한 이치를 에둘러 보여 준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자기 능력 바깥에 존재하는 환경과 제대로 만나야 성취가 가능하다는 경험론적 교훈이다. 역사에 등장하는 영웅호걸의 삶이 비극으로 막을 내릴 때, 우리는 흔히 때를 잘못 만났다며 아쉬워한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나 제갈량도 따지고 보면 그 때가 제대로 조응해 주지 않은 사례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조언할 때, 실력을 강조하면서도 말미에는 때를 잘 만나야 한다는 훈수를 둔다. 뒷골목 술집의 장삼이사 대화에서도 때를 안주로 삼는 일이 흔하다. 운이 억세게 좋았다느니 재수가 더럽게 없었다느니 하는 자가진단은 오늘도 곳곳에서 들린다. 무수한 인생 선배들이 실제 삶에서 느낀 자기중심적 경험담인 셈이다. 물론 운과 기
  • [금요칼럼] 허난설헌-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알 수 있을까/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금요칼럼] 허난설헌-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알 수 있을까/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16세기의 여성 문인으로 허난설헌이 유명하다. 그의 오빠 허성과 허봉도 이름난 문인이었고, 그보다 여섯 살이 적은 허균도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선조 23년, 허봉의 친구 서애 류성룡은 ‘난설헌고’(蘭雪軒藁)를 읽고 감탄했다. 류성룡은 난설헌의 몇몇 작품은 중국 고대의 문장가를 능가한다고 호평(‘서애선생 별집’, 제4권)했다. 수년 뒤 명나라 시인 주지번이 사신으로 조선에 왔을 때, 허균은 누이의 원고를 보여 주었다. 그 덕분에 난설헌의 시집은 명나라에서 간행(선조 29년)됐다. 그 명성은 바다 건너 일본에까지 전파돼 거기서도 난설헌의 시집이 나왔다(숙종 8년). 그러나 곧 표절 시비가 거세게 일어났다. 상촌 신흠은 ‘난설헌집’에는 옛 문인의 글이 통째로 들어 있다고 했다(‘상촌집’). 또 김시양은 명나라 시집 ‘명시고취’(明詩鼓吹)에 실린 작품을 표절한 사례를 발견했다(‘부계기문’). 중국에서도 표절을 지적하는 이가 있었으니, 시인 전겸익(錢謙益)의 첩 유여시(柳如是)였다. 그런 소식이 알려지자 조선의 문인들이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실학자 지봉 이수광은 허균의 위작설까지 꺼냈다. 그는 참의 홍경신의 증언을 근거로 세상에 알려진 난설헌의 작품은 허균과 이
  • [금요칼럼] 겨울은 막연한 시절/전민식 작가

    [금요칼럼] 겨울은 막연한 시절/전민식 작가

    나는 대학 시절 내내 이삿짐센터 인부로 일했다. 공부하며 노동할 수 있는 좀 유용한 아르바이트였는데 30년 전의 이사는 용달차 불러서 이사하는 게 전부였다. 고층 아파트는 곤도라 쓰고 저층의 다가구 주택 중 높은 층 이사는 밧줄로 무거운 물건을 내리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용달차 기사와 나 그리고 오랫동안 고시 공부를 했던 한 선배와 함께 일을 나갔다. 몹시 추웠고 함박눈이 내린 뒤라 길도 미끄러웠다. 이런저런 이유로 겨울 이사는 곤혹스러웠다. 그날 우리가 일을 나간 주택가는 좀 참혹했다. 다 쓰러져 가는 비닐하우스촌이었는데 할머니 한 분과 손녀 단둘이 사는 집이었다. 골목이 좁고 구불구불해서 대로변에 용달차를 세워 두고 꽁꽁 언 길을 오가며 짐을 날랐다. 그런 우리들을 보고 할머니와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손녀는 몸 둘 바를 몰라했다. 나는 그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갔다. 나도 잠시 그런 시절을 건너왔기 때문이었다. 짐이 많지 않아 짐을 금방 실을 수 있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비닐하우스촌에서 벗어나 그나마 건물의 반지하 방으로 이사를 한다는 사실이었다. 장갑을 여러 개 끼고도 손이 곱을 정도로 추운 날이었다. 우리는 짐을 모두 싣고 주소를 받아 적
  • [금요칼럼] 어느 백년 된 건물의 생일/황두진 건축가

    [금요칼럼] 어느 백년 된 건물의 생일/황두진 건축가

    서울 경운동에 있는 천도교 중앙대교당이 올해로 건립 100주년을 맞았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그 건물에서 교단 주최의 행사가 열렸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현장에서 모이기가 어렵게 돼 기념 공연의 동영상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코로나로 인해 이 행사의 기록이 천도교단을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공개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세상이 알고 축하해야 할 일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100년이란 사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긴 시간이다. 사람도 100세가 되면 종종 그 사실 자체로 화제가 되지 않는가. 게다가 건물은 한자리에 뿌리박고 있으면서 온갖 천재지변과 전쟁,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보다 더 무서운 사회적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 내야 한다. 특히 변화무쌍한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상기해 보면 이 건물이 온전하게 잘 관리된 상태로, 여전히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100세를 맞이한 것은 매우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건물은 생각보다 별로 없다. 건물의 수명은 의외로 짧으며 특히 변화가 많은 사회일수록 그렇다. 건물의 물리적 수명보다 사회적 수명이 더 줄어들기 때문이다. 효과적으로 관리만
  • [금요칼럼] ‘테러방지법’과 ‘국가사이버안보법’ 사이/김보라미 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

    [금요칼럼] ‘테러방지법’과 ‘국가사이버안보법’ 사이/김보라미 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

    2016년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이루어졌던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9일간 총 38명의 국회의원이 연단에 섰고, 주된 요지 중 하나는 “국가정보원 권한 강화에 반대한다”였다. 물론 국정원과 같은 정보기관이, 대중을 대규모로 감시하는 위협에 대한 우려는 우리나라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에드워드 스노든은 2013년 비밀정보기관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대중감시 시스템을 내부고발했고, 전 세계는 시민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이뤄지는 정보기관들에 의한 대규모 감시에 큰 충격을 받았다.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이 테러 방지 및 국가사이버안보를 앞세워 온라인에서 긴급상황에 준하는 조치들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대중을 감시하는 것은 물론, 통신 메타데이터와 콘텐츠를 차단하거나 암호화된 통신의 해독을 위해 고의적으로 암호를 훼손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것이다. 특히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가진 민간정부조차도 이러한 정보기관들의 전횡을 통제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전 세계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허상을 느끼기도 했다. 스노든의 내부고발 이후 유엔은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디지털 시대의 프라이버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에서는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민간사찰 수준
  • [금요칼럼] 역사적 응징은 계속돼야 한다/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금요칼럼] 역사적 응징은 계속돼야 한다/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전두환씨가 사망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달 간격으로 저세상으로 갔다. 종교에서 말하는 내세가 있다면 그는 지금쯤 격한 고통에 시달리며 단말마의 비명을 지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역사를 애매한 종교에 의탁할 수는 없다. 응징은 멈출 수 없다. 당대인의 상식을 벗어난 폭거는 비록 ‘성공’했을지라도 두고두고 꼬리가 길게 마련이다. 우리 역사에서 보자면 수양대군의 단종(노산군) 폐위가 대표적이다. 숙부가 난을 일으켜 국왕인 조카를 축출하고 끝내 죽여버린 사건이다. 현대인은 이 일을 그저 사극을 통해 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젖을 수 있으나, 당시에는 매우 심각한 사태였다. 국가의 사상적 가치와 제도적 장치가 여물지 않은 단계에서는 후유증이 별로 없거나 약할 수 있다. 하지만 세종 치세를 거치면서 조선왕조의 기틀이 완전히 뿌리를 내릴 즈음에 발생한 이 사건은 이후 200년 이상 조선왕조의 ‘뜨거운 감자’로 남았다. 노산군을 국왕의 신분으로 복권해야 한다는 조야의 여론이 그만큼 오랫동안 비등했기 때문이다. 왕을 축출하려면 명분이 정당해야 한다. 삼척동자도 공감할 정도로 확실한 명분이 필요하다. 그런데 수양대군(세조)이 내세운 명분은 구차스러웠다.
  • [금요칼럼] 괴태곶 봉수대를 시민에게 돌려주오/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금요칼럼] 괴태곶 봉수대를 시민에게 돌려주오/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경기 평택시 포승읍에 괴태곶 봉수대 유적이 남아 있다. 옛날에는 왜적이 남해안과 서해안을 침략하곤 했기 때문에, 날마다 봉화를 올려 변방이 무고한지를 조정에 보고했다. 조선 시대에는 이런 봉수대가 전국에 퍼져 있었으나, 구한말에 이르러 전신이라는 통신기술이 도입되자 봉홧불은 하루아침에 꺼졌다. 돌보는 손길이 사라지자 봉수대는 점차 제 모습을 잃어갔다. 그래도 봉수대가 서 있던 곳은 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를 받기도 한다. 경남도에서는 진주의 광제산 봉수대와 창원의 봉화산 봉수대를 기념물로 지정해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긴다. 평택의 괴태곶 봉수대도 자치단체가 30여년 전에 유형문화재 제1호로 삼았다. 그런데 괴태곶 봉수대는 여느 봉수대와는 다른 곳이다. 이 봉수대는 고려 시대부터 천 년 동안 국가가 경영하는 목장 안에 있었다. 괴태곶 목장 역시 개화의 물결을 타고 사라져 갔으나, 날마다 목장에서 봉수대를 보며 살던 후손들이 아직도 인근 마을에 남아 있다. 그들은 사시사철 괴태곶 봉수대를 돌보던 봉수군의 후예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봉수대가 허물어진 뒤에도 주민들은 봉수대 곁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아이들은 이곳을 놀이터로 삼았고 인근 초중등 학교에서는 봄가을
  • [금요칼럼] 늙은 래퍼/전민식 작가

    [금요칼럼] 늙은 래퍼/전민식 작가

    오디션 프로그램 중에 ‘쇼미더머니’라는 래퍼들의 경연 프로그램이 있는데 올해로 10년째라고 한다. 힙합 장르 중 세부 장르로 구분하는 랩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나도 요즘 어린 아들과 함께 텔레비전 앞에 앉아 랩을 들으며 신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들이 이 프로그램을 5회차부터 보았고 나 역시 아들 덕에 매년 같이 보게 되었다. 마치 기성복 같은 노래들이나 음악만 들어 왔던 내게 랩은 굉장히 신선한 음악이었다. 어린 래퍼가 훈련을 통해 커 나가는 과정을 보는 것도 즐거웠고 이 장르의 음악에는 어떤 원초적인 리듬 같은 게 존재한다는 기분도 들었다. 아마 말을 하듯 노래를 하는 랩의 특성 때문인 듯했다. 그런데 나를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니라 늙은 래퍼들이었다. 이미 음반도 내고 유명해져 광고에도 출연하는 등 자신만의 음악적 영역이 있을 법한 늙은 래퍼들이 출연한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심사위원들로부터 선생님이라 불리는 래퍼도 오디션에 참가했다. 과거에 심사위원이었던 래퍼도 바닥에서부터 경쟁을 통해 올라오는 경우도 보았다. 이미 자신의 영역이 구축된 늙은 래퍼들이 왜? 각자 사정이 있겠지만 그들은 우선 자신만의 음악이 낡지 않았다는 걸 보여 주려 했던 건 아닐
  • [금요칼럼] 건축은 그 자체로 하나의 목적이다/황두진 건축가

    [금요칼럼] 건축은 그 자체로 하나의 목적이다/황두진 건축가

    인간은 필멸의 존재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불멸을 꿈꾼다. 그럴 때 인간은 무엇을 할까. 우선 종교다. 이승의 유한함에 대한 불안은 하늘나라에서의 영생에 대한 기대감으로 위안받는다. 인간이 육신을 갖고 태어나는 한 이 현상은 영원할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예술이 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생전의 부귀영화보다 사후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고난의 길을 간다. 육신은 사라지지만 예술은 남는다. 일종의 문화적, 역사적 영생이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건축이 있다. 이 역시 지난한 길이다. 건축은 종종 엄청난 희생을 요구한다. 개인은 파산하고, 회사는 휘청하며, 심지어 한 나라의 정권이 흔들리기도 한다. 문화재 건축의 후손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우리 조상들이 돈이 넉넉해서 이런 집을 지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러한 투자와 인내심의 대가는 대체 불가의 가치를 갖는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짓는 과정에서 정부가 바뀌는 곤혹을 치렀으나, 오늘날 호주가 갖고 있는 긍정적 국가 이미지의 상당 부분은 이 건물이 만들어 냈다. 인류의 건축사는 헌신적 노력이 만든 불멸의 사례들로 가득하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하면서 본격적으로 세계와 조우하기 시작한 이후, 새로운 문
  • [금요칼럼] 얼굴정보 제공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변명/김보라미 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

    [금요칼럼] 얼굴정보 제공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변명/김보라미 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

    중국 신장지역에서는 100만명의 위구르족이 직업훈련소란 이름의 수용소에 갇혀 중국 정부의 탄압을 받고 있다. 안면인식기술은 직업훈련소 안팎에서 소수민족을 감시·통제하는 방법으로 악용돼 왔다. 안면인식기술은 소수민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범죄 용의자 추적 시스템, 톈왕(하늘의 그물)이라 불리는 프로그램은 사람들의 얼굴을 CCTV와 부착식 카메라로 추적해 왔다. 일반 시민들의 삶에도 깊숙이 개입해 왔다. 여러 경로로 수집한 개인정보, 안면인식시스템을 통한 공중도덕 준수 등을 점수화한 사회적 신용등급에 따라 비행기와 기차를 탈 수 없는 수준의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감시시스템은 프라이버시를 예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침해한다는 것도 문제지만, 시민들이 익숙해져 스스로 감시의 일원이 된다는 게 더 무서운 일이다. 정체불명의 가공할 수준의 공익을 앞세워 감시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는 중국사회의 모습들이 드러날 때마다 “무척 충격적이다”, “중국이니 그럴 줄 알았다”는 뉴스 댓글을 쉽게 접하게 된다. 하지만 과연 중국만의 모습일까. 법무부는 자동출입국 심사시스템을 고도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민간기업에 안면인식이미지를 제공해 논란을 일으킨 바
  • [금요칼럼] 12·12와 5·18만 빼고/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금요칼럼] 12·12와 5·18만 빼고/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또 망언을 했다. 잠시 잠잠한가 싶더니 ‘역시나’였다. 해당 부분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쿠데타와 5·18만 빼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정치는 잘했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말로 피력한 문장이기에 특별한 구두점 없이 그대로 옮겨 적었다. 항간의 얘기를 전하는 방식을 취했지만, 내용을 보면 그것이 곧 자기 생각임을 밝힌 것과 다름없다. 이 한 문장으로도 언어 구사력, 가치관, 역사 인식, 현실 통찰력 등 여러 가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먼저 언어 구사력은 거의 낙제 수준이다. 위 발언에서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은 삭제해야 한다. 사족일 뿐이다. 되레 쿠데타와 5·18을 빼고도 잘못한 게 더 있다는 의미로 들리기 때문이다. 자신이 의도한 것과 상충하는 말을 내뱉은 꼴이다. 혹은 “5·18 외에도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으로 수정하면 그런대로 정치는 그나마 잘했다는 의미가 돼, 자신의 애초 의도에 부합할 것이다. 철저한 증거와 예리한 논변이 생명인 법정에 수없이 들락거렸을 전직 검사의 언어 구사력이 이런 수준이라면 그저 암울할 뿐이다. 가치관도 일반 상식과는 동떨어지고, 아전인수의 달인처럼 보인다. 아
  • [금요칼럼] 진령군을 아십니까/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금요칼럼] 진령군을 아십니까/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근현대사를 잘 아는 분이라면 진령군(眞靈君)이라 불린 무당도 기억할 것이다. 그는 이씨 성을 가진 무녀로, 이야기는 임오군란(고종 19년, 1882)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성황후가 충주로 피신해 불안을 떨치지 못하였는데, 그때 한 무녀가 찾아갔다. 황후는 무녀의 신통력을 확신하고 도성으로 데려왔다. 이후 황후는 몸이 불편할 때마다 이 무녀를 불렀고, 그러면 병세가 사라졌다고 한다(황현, ‘매천야록’, 1권). 고종 20년, 무녀는 자신의 신통한 정체성을 주장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황제를 움직여 조선을 구원한 관우 장군의 딸이라면서, 부디 관우를 섬기게 관왕묘(關王廟)를 지어달라고 했다. 그러자 황후는 북악산 아래 숭동(명륜동1가)에 관왕묘를 새로 짓고 무녀에게 맡겼다. 그때부터 무녀는 진령군으로 불렸다(정교, ‘대한계년사’, 권1). 무녀가 궁중을 마음대로 들락거린 것은 철종 때부터였다. 이를 망국의 조짐으로 보았던 흥선대원군은 집권하기가 무섭게 단호한 조치를 명령하였다. 도성 안의 무녀를 몽땅 쫓아낸 거였다. 그러나 대원군을 몰아낸 명성황후는, 무녀들을 다시 대궐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 바람에 도성 안 어디서나 굿하는 소리가 하루도 그치지 않았다
  • [금요칼럼] 예술원 전상서/전민식 작가

    [금요칼럼] 예술원 전상서/전민식 작가

    가끔 강연을 하다 보면 청중들로부터 ‘글쟁이로 살 만하냐’는 질문을 듣곤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힘듭니다. 왜 그리 사느냐 묻길래 죽는 순간까지 노동할 수 있고 혹시라도 내 생전엔 형편없는 소설이 죽은 뒤 인기를 얻어 베스트셀러가 됐을 경우, 사후 70년 동안은 저작권을 보호해 주니 그게 자식들에게 요긴하게 쓰이지 않겠느냐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당장엔 닥치는 대로 노동을 해서 먹고산다는 말도 덧붙여 드렸죠. 그러던 어느 날 좀 놀라운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술원 회원이 되면 예술가로 살면서 세운 공이 혁혁해 죽는 날까지 연금을 받는 예술가가 된다는 소문이었습니다. 풍문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이더군요. 흥미롭고 희망적인 말입니다. 예술원 회원이 돼서 180만 원이라는 연금을 죽을 때까지 받을 수도 있으며 인맥이 좋다면 1억원의 상금도 받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환상적인 일입니까. 우리나라에도 예술인복지재단이라는 게 생겼습니다. 2년에 한 차례 창작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데 그 돈이 무려 300만원입니다. 그 돈은 많은 예술가의 숨통을 잠깐이나마 틔워 주니 은혜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은혜로운 일을 예술원 회원이 되면 죽을 때까지 매달 경험한다는
  • [금요칼럼] 오래된 건물을 대하는 방법/황두진 건축가

    [금요칼럼] 오래된 건물을 대하는 방법/황두진 건축가

    도시와 건축 분야의 고전 중에 제인 제이컵스의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 있다. 1961년에 출판된 책으로 고전이라 하기에는 연륜이 다소 부족하지만 영향력 측면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인용되는 빈도가 하도 높아서 ‘누구나 이야기하지만 다 읽은 사람은 별로 없는 책’이라는, 고전에 대한 또 다른 희극적 정의가 어울리는 경우가 아닌가라는 의심도 갖게 된다. 번역본의 경우 물경 600페이지에 두께가 43밀리미터에 달해 그야말로 낮은 베개 대용으로 쓸 수 있을 정도니 통독이 결코 쉽지 않다. 최근 도시 연구의 새로운 분야로 떠오른 이른바 ‘도시 물리학’에서도 내용이 새롭게 검증되고 있는 등, 이 책의 생명력은 아직도 꺼질 줄 모른다. 내용 중에 도시 다양성을 위한 조건으로 ‘오래된 건물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저자는 ‘도시에는 반드시 오래된 건물들이 있어야 한다’는 단호한 주장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한다. 흥미롭게도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도시미관적 측면이 아니라 경제적 측면의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오래된 건물은 새 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공급되며 그래서 결과적으로 도시 다양성에 기여한다는 논리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한꺼번에
  • [금요칼럼] 개인의료정보와 금융위/김보라미 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

    [금요칼럼] 개인의료정보와 금융위/김보라미 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

    2020년 1월 9일 ‘데이터 3법’이 통과된 이후 의료데이터의 활용은 중요한 이슈였다. 수익성이 높은 서비스에서 활용되기 쉬운 데이터였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금융위)는 이 과정에서 이미 개인의료정보까지도 개인의 신용을 판단할 때 필요한 정보라며 자신의 ‘신용정보법’의 관할하에서 논의해 왔고, 적극적으로 그 범위를 넓혀 왔다.  금융위는 그간 민간보험사들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보유하고 있는 개인의료정보들을 ‘공공데이터’라는 이름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폭넓게 검토해 왔다. 그러나 일반적인 데이터도 아닌 민감한 개인의료정보를 ‘공공데이터’로 접근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공공데이터법’에서는 “누구든지 공공데이터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이용권의 보편적 확대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하거나 “공공데이터에 관한 국민의 접근과 이용에 있어서 평등의 원칙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그 원칙을 정하고 있다. 공공데이터법의 취지가 누구든지 쉽게 공공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함에 있음을 고려할 때, 개인의 의료정보는 공공데이터법상의 적용 대상으로 해석하기 어렵
  • [금요칼럼] 시스템의 역설/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금요칼럼] 시스템의 역설/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40년 가까이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아무래도 사회를 보는 안목이 조금씩 깊이를 더하는 느낌이다. 한 예로 “시스템(제도, 규정)은 그 시효 순간부터 변질하기 시작한다”라는, 그 나름대로 터득한 통찰을 들 수 있다. 한 국가사회의 속성이나 성격을 파악하는 지름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제도이다. 법률뿐 아니라 관행화한 다양한 제도를 통해 그 사회를 속성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 자체에만 몰두하면 아주 엉뚱한 해석을 도출할 수도 있다. 제도가 비록 한 사회를 파악하기 좋은 프리즘임에는 분명하지만, 정작 제도 그대로 사회가 돌아가는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빨간 신호에서 길을 건너면 무단횡단으로 범칙금을 부과한다는 규정을 보고는, 그래서 빨간불에는 사람들이 길을 건너지 않았다는 해석을 도출하면 엉터리라는 얘기다. 여기에 바로 시스템의 역설이 존재한다. 예전 군사독재 시절에 노동부라는 부처가 있었다. 그런데 노동자의 이해보다는 사용자(재벌)를 위한 부서처럼 처신하기 일쑤였다. 노동부가 되레 노동 환경의 개선을 방해하고 노동자를 억압하곤 했다. 민의를 대변하는 특별 권력 기구로 국회라는 제도를 두어 의원들에게 엄청난 특권을 부여하였는데,
  • [금요칼럼] 유학자 세조를 아시나요/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금요칼럼] 유학자 세조를 아시나요/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세조는 탁월한 유학자였다. “무사들은 훈련이 웬만큼 잘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문신의 강습에도 힘써야겠다.”(실록, 세조 5년 6월 12일) 국방력이 튼튼해지자 세조는 젊고 총명한 문신들을 불러 ‘중용’을 가르쳤다. 세조 5년 7월 12일, 성균관 직강 이영은 등 6명의 전도유망한 문신들이 왕에게서 ‘중용’ 강의를 들었다. 실록에는 세조가 문신의 학습을 지도한 사실이 몇 차례 더 기록돼 있다(세조 5년 7월 22일과 세조 6년 7월 7일 등). 왕이 책략가였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세조는 ‘중용’을 이용해 대신을 숙청하기도 했다. 세조 4년(1458) 2월 13일, 세조는 술자리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서 영의정 정인지에게 ‘중용’에 관한 생각을 기탄 없이 말하라고 부탁했다. 술에 취한 정인지는 불경인 ‘능엄경’을 칭찬하고 ‘중용’을 깎아내렸다. 술자리가 파하자 세조는 정인지의 대답을 크게 문제삼고, 선비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면서 정인지를 궁지로 몰아 벼슬을 빼앗았다. 공신 정인지의 권력이 너무 비대해졌다고 판단해, 왕은 그를 숙청한 거였다. 다시 6년 뒤에는 영의정 정창손이 또 세조의 책략에 걸려들었다(실록, 세조 8년 5월 9일과 5월 10일자). 마
  • [금요칼럼] 이츠 오케이!/전민식 작가

    [금요칼럼] 이츠 오케이!/전민식 작가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시화방조제를 건너야 한다. 10㎞의 긴 방조제인 데다가 구간단속 구간이라 평균 시속 60㎞로 달려야 한다. 신나게 달릴 수 없다 보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측에 화물선 접안 부두가 눈에 들어오고 좌측엔 시화호 위에 떠 있는 철탑과 느리게 날개를 돌리는 풍력발전기도 보인다. 한껏 음악에도 취해 보는데 어느 날 라디오 방송에서 ‘잇 이즈 오케이’(It is okay!)라는 노래를 듣게 됐다. 상대를 안심시킬 때 미안해하거나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의미가 변한 ‘괜찮아’라는 뜻의 노래였다. 그 노래는 내겐 좀 남다른 노래였다. 우리 부부는 아들을 학원에 보낼 여력이 없어 각자 공부해 아들을 가르쳐 왔는데 아내가 맡은 부분 중에(사실 아내가 교육을 거의 도맡아 왔지만) 영어 흘려듣기가 있었다. 재미있는 동영상을 자막 없이 오래 보다 보면 어느새 영어가 귀에 들어온다는 방법인데 나름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우리는 잠이 들 때 세 사람이 한 침대에 같이 누워 아들이 잠들 때까지 흘려듣기를 하며 잠자리 동행을 했다. 그 시절 자주 보던 영어 애니메이션의 배경 음악이 ‘잇 이즈 오케이’였다. 부모의 존재를 모르는 한 소녀와 역시 부모를
  • [금요칼럼] 사물과 맺은 인연을 끝낼 때는/황두진 건축가

    [금요칼럼] 사물과 맺은 인연을 끝낼 때는/황두진 건축가

    지금 이 순간 눈을 들어 사방의 사물을 돌아보자. 그중 적어도 1년에 한 번이라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될까. 읽을 일이 별로 없는 책, 철 지나고 사이즈도 안 맞는 옷, 이런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 속에서 사라진 술잔, 여행지의 감흥을 담아 샀으나 집에만 가져오면 뭔가 어색한 기념품들. 그 리스트는 의외로 길다. 알고 보면 이렇게 대부분의 사물은 자신의 원래 쓸모를 잃고, 언젠가 버려질 순간을 기다리며 잊힌 채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그런 사물들로부터는 원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럴 거면 왜 샀어? 왜 아직도 갖고 있어?’ 일단 의식하고 나면 그 느낌이 참으로 난처하다. 19세기의 문학비평가 존 러스킨이라면 이러한 생각을 감상의 허위(pathetic fallacy)라고 맹렬히 비난했을 것이다. 생명도 영혼도 없는 사물에 감정을 투사하는 것은 일단 과학적 오류가 아닌가. 그러나 문학 논쟁과는 별도로, 사물에 대한 이러한 시선 속에는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가 들어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망가지거나 잊힌 사물에서 외로움과 고통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아마도 다가오는 시대의 새로운 감수성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한갓
  • [금요칼럼] 언론중재법 개정안 유감/김보라미 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

    [금요칼럼] 언론중재법 개정안 유감/김보라미 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

    우리나라에는 다른 민주국가들과 달리 표현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규정들이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모욕, 사자명예훼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겠다 싶어 ‘정보통신망법’에서는 기존의 위 규정들에 처벌을 더 가중해 사실적시 명예훼손,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규정해 놨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싶었는지 ‘정보통신망법’상 ‘사이버모욕죄’ 신설도 논의됐던 적이 있다. 다른 민주국가들에는 없는 규정들에 대해 법원은 자제하지 않는다. 확대해석하기도 한다. 억울하게 입증 책임을 전환해 감옥에 다녀온 정봉주 전 의원의 사례를 보라. 법원은 이후에도 입증책임전환 법리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포죄에서 일관되게 적용했다. “특정되지 아니한 기간과 공간에서의 구체화되지 아니한 사실의 부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사회통념상 불가능하다”라고 전제한 뒤(불가능하면 기소를 안 하면 될 일이다), “의혹을 받을 사실이 존재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자가 그러한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할 부담을 진다”며 기소 당시 입증되지 않은 형사구성요건의 입증을 피고인에게 전가까지 한다. 헌법재판소 역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여러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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