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칼럼
  • [이동구 칼럼] 희망의 사다리가 필요하다/수석논설위원

    [이동구 칼럼] 희망의 사다리가 필요하다/수석논설위원

    기본과 상식. 대선을 7개월 남짓 앞둔 시점에서 각종 여론조사 1~2위를 다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예비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의 핵심 어젠다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국가와 사회, 개인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들과 통념적인 상식이 무너지고 있으니 이를 보완하고 바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치색은 달라도 우리 사회 전반이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진단에는 두 후보가 별반 다를 게 없는 듯하다. 무너지고 있는 기본과 상식 가운데 주택시장 등 부동산 문제는 국민을 가장 화나게 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현 정부의 대표적인 실정으로 부동산 정책이 꼽히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30차례 가까운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울ㆍ수도권의 아파트값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다. 전셋값 폭등 현상에 물건마저 구하기 어려워 아우성이다. 그렇다고 빚을 내서 집을 사기도 어려워졌다. 대출 규제 등 각종 주택 관련 규제로 국민들의 상당수는 우울증, 이른바 ‘부동산 블루’를 호소할 정도에 이르렀다. 부친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의원직 사퇴를 선언한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은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라고 했다. 여
  • [똑똑 우리말] ‘넘어’와 ‘너머’/오명숙 어문부장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100번째 생일날 아침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창문을 넘어 양로원을 탈출한 노인에 관한 이야기다. 한데 이 책을 소개하면서 제목을 ‘창문 너머…’로 쓴 글들이 눈에 띈다. 발음이 같아서인지 ‘넘어’와 ‘너머’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넘어’는 지나가거나 건너는 동작을 뜻하는 동사 ‘넘다’의 활용형이다. “담을 넘어 도둑이 들었다”, “난민들이 국경을 넘어 탈출하고 있다” 등과 같이 사용된다. ‘너머’는 장소나 위치 등을 나타내는 명사로 담, 고개, 무지개같이 높은 것의 저쪽이나 현실 또는 의식 따위의 추상적 영역을 초월한 지경을 이르는 말이다. “드넓은 평원 너머로 큰 저택이 치솟아 있다”, “이상과 꿈은 현실 너머에 존재한다” 등처럼 쓸 수 있다. ‘산 넘어 산’과 ‘산 너머 산’을 비교해서 살펴보자. ‘산 넘어 산’은 산을 넘었는데 또 다른 산이 앞에 놓여 있는 경우로 갈수록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되는 상태를 뜻한다. ‘산 너머 산’은 ‘산 저편에 있는 산’이란 뜻이다. 즉 ‘넘어’는 산을 넘는 행위인 동작을 나타내는 문장에 쓰이고 ‘너머’는 산 저쪽으로 보이는 공간 자체를 뜻하는 문장에 쓰인다.
  • [이보희의 TMI] ‘스페인 여자의 딸’을 떠올리며/온라인뉴스부 기자

    [이보희의 TMI] ‘스페인 여자의 딸’을 떠올리며/온라인뉴스부 기자

    “아가야 잘 살아라.” 아프가니스탄 엄마들은 아기를 철조망 위로 던졌다. 3m가 넘는 철조망에 탈출이 가로막히자 아기만이라도 살려 달라고 외치며 철조망 너머 경비를 서는 외국 군인들에게 자신의 아기를 던졌다. 아기를 받아 가자 안도의 한숨과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철조망을 건너가지 못하고 날카로운 칼날 위에 떨어진 아기도 있었다. 이슬람 무장 단체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후 아프간에서는 필사의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수도 카불 공항은 몰려든 탈출 인파로 인해 아수라장이 됐다. 여객기에 몸을 싣기 위해 탑승 계단에 처절하게 매달려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이륙한 미군 수송기에서 추락하는 아프간인 두 형제의 모습 등이 공개되며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공항에서 2살 여아가 압사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한 미국 회사에서 일했던 여성은 2살인 딸과 남편, 부모 등과 함께 아프간을 탈출하기 위해 카불 공항으로 향했다. 그러나 밀려드는 인파에 온 가족이 땅에 넘어지면서 군중들의 발길에 짓밟혔다. 몇 시간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여성은 딸을 찾았지만 사람들에게 짓밟혀 숨진 뒤였다. 탈레반은 “이전 정부 관료나 병사, 미국의 조력자에게 복수하지 않겠다”며 사면령을 내렸다. 하
  •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예술원과 국가/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예술원과 국가/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현대소설의 대표자인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삶과 문학을 만화로 다룬 책을 읽었다. 알폰소 자피코가 지은 ‘제임스 조이스: 어느 더블린 사람에 대한 연대기’다. 2012년 스페인 국립 문화상 수상작이다. 재미있고 유익하다. 이 책에는 조이스와 아일랜드 시인 W B 예이츠의 관계가 흥미롭게 묘사된다. 예이츠는 거의 일방적으로 조이스를 후원하고 지지했다.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조이스를 여러 번에 걸쳐 도와주고 조이스의 작품을 높이 평가한다. 한 작가가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이 기본이지만 재능을 인정해 주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 조이스는 운이 좋았다. 그런데 조이스는 예이츠에게 같은 마음을 주지 않는다. 아일랜드 문학 아카데미 건립에서 보인 의견 교환이 한 예다. 예이츠와 버나드 쇼가 주도해 설립을 준비하던 아일랜드 문학 아카데미의 창립 회원으로 조이스를 초대한다. 그런데 조이스는 거절의 편지를 보낸다. “무슨 연유로 저 같은 자의 이름이 그런 아카데미와 연관해 거론됐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 회원으로 저 자신을 천거할 자격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이스가 예술원 등 기성의 국가 조직을 대하는 시각을 예리
  • [한 컷 세상] 귀 좀 뚫어 주세요

    [한 컷 세상] 귀 좀 뚫어 주세요

    그야말로 민심을 업고 탄생한 촛불정부였기에 그만큼 기대가 컸을 것이다. 100% 만족스러운 정권은 없다지만 정부와 국회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눈과 귀는 어디에 있는지 의심이 든다. 귀를 뚫어 준다는 피어싱 가게 글귀에서 그들이 떠오른 이유다. 시원하게 귀를 뚫고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만 있다면.
  • [유정훈의 간 맞추기] 법치와 정치/변호사

    [유정훈의 간 맞추기] 법치와 정치/변호사

    몇 해 전 아파트 주차장에 충전소가 설치되며 주차면 몇 개가 전기차 전용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누가 쓰나 싶을 정도였는데,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며 풍경이 금세 바뀌었다. 순수 전기차 소유자가 충전이 완료됐음에도 밤새 차량을 세워 둔 하이브리드 차량 운전자에게 항의한 일도 있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전기차 충전에 관한 규칙이 생기고 대부분 이를 지키면서 입주자들끼리 얼굴을 붉히는 일은 없어진 것 같다. 전기차 주차공간은 충전에 필요한 시간 동안만 이용해야 한다는 규칙을 정하고, 충전이 완료됐는데 차를 세워 두는 사람에게는 연락해 옮기도록 하고, 반복적으로 규칙을 어기면 일정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법치’의 영역이다. 입주자들이 규칙을 정하면 관리사무소에서 집행만 제대로 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아파트 입주자들은 불만 없이 살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날로 늘어나는 전기차를 감당하려면 충전소를 더 설치할지, 필요한 재원은 누가 어떻게 부담할지, 일반 주차면이 줄어들면 영향을 받는 가솔린 차량 소유자들은 어떻게 설득할지, 이런 문제는 정해진 규칙을 집행하는 차원을 뛰어넘는다. 여기서부터는 ‘정치’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선거가 눈앞이다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상처 입은 자연을 위한 비가/미술평론가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상처 입은 자연을 위한 비가/미술평론가

    길게 베어진 상처처럼 입을 벌린 자갈 채굴장 위에 소용돌이치는 하늘이 드리워져 있다. 붉은 흙이 드러난 등성이에 나무 그루터기가 묘비처럼 남아 있다. 왼쪽 원경의 울창한 숲이 이 광경을 음울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 숲도 조만간 같은 운명이 될지 모른다. 이 그림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지만, 사람이 남긴 잔인한 흔적이 역력하다. 에밀리 카는 평생 자연을 그렸다. 캐나다 서부의 빅토리아에서 태어난 카는 1899년 미술 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달라진 환경과 보수적인 교육 제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질환을 얻어 요양원 신세를 졌다. 1904년 집으로 돌아간 화가는 캐나다 서부 해안을 따라 알래스카까지 여행했다. 당시 이 지역은 토착민 마을이 드문드문 있을 뿐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상태였다. 카누를 타거나 걸어서 이동해야 했고 악천후와 벌레, 외로움을 견뎌야 했다. 이 경험은 이후 그녀의 삶과 예술 세계를 결정지었다. 그녀는 울창한 삼림, 토템이 늘어선 토착민 마을의 신비한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유럽 취향에 기울어져 있던 관객과 화단은 그녀의 그림을 무시했다. 그녀는 민박집을 운영하고 양치기 개를 길러 팔면서 토착민들 사이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 [배민아의 일상공감] 예스터데이,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미드웨스트대 교수

    [배민아의 일상공감] 예스터데이,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미드웨스트대 교수

    며칠 전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어느 영화 한 편에 시선이 끌렸다. 비틀스의 음악을 소재로 한 ‘예스터데이’라는 영화였는데, 몇 번의 중간광고를 기다리며 마지막까지 시청하기에는 다소 집중도가 떨어지는 영화였지만 영화의 시놉시스 자체는 꽤 흥미로웠다.영국의 한 마트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는 주인공이 음악으로는 더 성공하지 못할 거 같아 포기하려 한 그날, 갑자기 전 세계가 12초간 정전되며 세상에서 비틀스가 사라졌다. 친구들의 노래 요청에 기타를 치며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를 불렀는데 아무도 그 노래를 모르는 듯 감탄을 한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비틀스를 검색해 보지만 어떠한 정보도 나오지 않자 주인공은 자신이 비틀스의 노래를 하나씩 발표해 무명을 벗고 슈퍼스타가 되려 한다는 내용이다. 영화를 보며 ‘세계인 모두에게 사랑받는 히트송을 나만 알고 있다면’으로 시작해 ‘어려운 국가고시의 정답을 나만 알고 있다면’, ‘상한가를 칠 주식 종목을 나만 알고 있다면’, ‘가격이 폭등할 부동산을 나만 알고 있다면’으로까지 속된 상상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미 검증된 진리나 유명해진 어떤 것을 나만 알고 있는 세상이라면 생각만 해도 신나고 그것을 이용해 성공하기란 식
  • [이은경의 유레카] 디지털 신분증명 시대의 정체성/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이은경의 유레카] 디지털 신분증명 시대의 정체성/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내가 나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이 질문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질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온라인 사이트에서 보안을 위해 본인 인증을 해야 할 때 마주하는 현실의 질문이기도 하다. 백신접종 예약 때문에 평소에 오프라인에서 일처리를 하던 어르신들까지 디지털 신분증명을 경험하게 됐다. 스마트폰 인증, 아이핀, 공인인증서, 카카오나 네이버 인증서 등 디지털 신분증명은 다양하지만 점점 더 많은 선택지가 휴대전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내가 나임을 증명하고 정체성을 인정받는 방법은 사회가 복잡해지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진화했다. 사실 아주 오랫동안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즉각적이고 명백한 방법은 인간 신체 그 자체였다. 키, 골격,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얼굴은 신분증명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정체를 숨기려는 이들은 복면을 썼다. 신체가, 얼굴이 신분증명인 상황에서는 내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사진술이 개발된 뒤로는 내가 거기 없어도 얼굴로 나의 신분증명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서류나 신분증에 붙이는 조그만 사진을 ‘증명사진’이라 부르는 것이다. 관련 과학기술이 본격 등장하기 전에는 신분증명이 사회적 방식으로 이루어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 [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일상 속 단순노동 대체하는 인간형 로봇… ‘노동의 종말’ 부르나/오터레터 발행인

    [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일상 속 단순노동 대체하는 인간형 로봇… ‘노동의 종말’ 부르나/오터레터 발행인

    지난주 전기자동차 제조업체인 미국의 테슬라가 ‘인공지능(AI) 데이’ 행사를 열고 몇 가지 발표를 해서 관심을 끌었다. 그중에는 테슬라 자동차의 완전자율주행을 도와줄 인공지능 알고리듬과 그 알고리듬의 연산을 수행해 줄 슈퍼 컴퓨터 ‘도조’(Dojo)에 관한 내용도 있었지만, 정작 사람들이 집중한 것은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다소 장난스럽게 발표한 휴머노이드(humanoid), 즉 인간형 로봇이었다. 개발 중이기 때문에 아직 실물이 존재하지 않지만 완성형을 보여 주려고 한 머스크는 사람에게 로봇과 비슷한 옷을 입혀 무대에 올라와 춤을 추게 했고 청중은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웃어야 하는지 웃으면 안 되는지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어색한 짧은 쇼가 끝난 후 머스크는 “저건 물론 농담이지만” 테슬라는 정말로 인간형 로봇을 개발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로봇의 이름을 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것 같은 ‘옵티머스’라고 해서 다시 한번 머스크 답게 장난스런 명명법을 보여 줬다.(테슬라 승용차들의 모델명은 붙여 놓으면 SEXY를 연상시키는 S, 3, X, Y이고 트럭의 이름은 ‘사이버트럭’이다.) 하지만 그런 가벼운 분위기와 달리 머스크가 발표 때 이
  • [데스크 시각] 영앤드리치의 시대/주현진 산업부장

    [데스크 시각] 영앤드리치의 시대/주현진 산업부장

    젊은 부자, 영앤드리치(young and rich)란 20~30대의 젊은 나이에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을 말한다. 스타트업을 통해 부자가 된 사업가, 10대 시절부터 기획사 연습생으로 시작해 유명인이 된 연예인, 혹은 거액의 몸값을 자랑하는 스포츠 스타가 대표적이다. 공통적인 건 일반인은 쉽게 만질 수 없는 큰돈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게 아니라 본인의 힘으로 젊은 나이에 거머쥐었다는 사실이다. 요즘에는 국내 샐러리맨들 사이에서도 영앤드리치가 나온다. 당장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 소속사인 하이브의 강효원(예명 피독) 수석프로듀서(비임원)가 38세의 나이로 올 1~6월 400억 770만원의 보수를 받아 상반기 상장사 연봉킹 자리를 차지한 게 대표적이다. 2위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302억 3400만원)보다 100억원이나 많다. 작년 상반기에는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266억원)이, 2019년 같은 기간에는 고 조양호 전 회장(647억 5000만원)이 1위에 오르는 등 사유 막론하고 보통 연봉킹은 재계 오너들의 몫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강 피디가 연봉킹에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능력을 인정받아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 [가꾸고 나누고 다듬는 우리말] 우리말이 더 어울리는 경기 용어/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가꾸고 나누고 다듬는 우리말] 우리말이 더 어울리는 경기 용어/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10>운동경기의 언어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여자배구 동메달 결정전 ㉡도쿄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폐회식 ‘아레나’는 ‘경기장’이다. 고대 로마에서 원형 극장 한가운데 모래를 깔아 놓은 경기장을 가리켰다. 고유명사가 아니다. 이미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지만 낯설다. 잘 전달되길 바랐다면 ㉠의 ‘아리아케 아레나’는 ‘아리아케 경기장’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나았다. ‘스타디움’도 ‘경기장’이다. 한데 규모가 제법 큰 경기장이다. 축구장이나 야구장처럼 관람석 규모가 큰 경기장을 흔히 ‘스타디움’이라고 부른다. 달리 부르는 쉬운 말은 ‘주경기장’ 또는 ‘경기장’이다. 올림픽 개회식과 폐회식도 주로 이곳에서 열린다. ㉡의 ‘스타디움’은 ‘주경기장’이어도 됐다. ‘아레나’나 ‘스타디움’보다는 ‘경기장’이 말하기 쉽고 듣기도 편하다. 스포츠에도 외래어와 외국어가 많다. 더 나은 우리말이 있어도 외국어를 쓰려는 경향이 있다. 인기 종목일수록 더하다. 일상에선 ‘준비운동’이나 ‘준비’라고 하지만, 이곳에선 ‘워밍업’이라고 많이 쓴다. “선수단이 워밍업을 하고 있다”에선 ‘준비운동’, “워밍업을 마친 김광현”에선 ‘준비’라고 하면 된다. ‘워밍업’이
  • [세종로의 아침] 바이든의 선택을 반기는 사람들/김태균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바이든의 선택을 반기는 사람들/김태균 국제부 선임기자

    극단적 공동체 의식이 민족·종교 같은 타협하기 어려운 가치와 결합해 폭력성으로 발전했을 때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목도하고 있다. 무대책·무책임 철군으로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을 방조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미필적 고의’는 본인에게나 초강대국 미국에나 감추고 싶은 역사로 남게 될 것이다. 아프간의 참혹한 현실에 세계인들의 탄식과 분노가 이어지는 한편에서 동맹과 우방들 사이에는 신뢰의 위기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돌아왔다”며 ‘미국 제일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했던 이번 정부도 자국의 이익과 정치 상황 앞에서는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냉엄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한국이나 대만을 거론하며 미국 부재 시 안보 위험을 부각시키는 성급한 전망들이 이어지자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불안감은 위기를 부풀려 목적을 달성하려는 ‘공포 마케팅’에 더할 나위 없는 호재다. 일본의 보수 정치권과 우익 선동가들이 탈레반 점령 후 언론이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앞세워 일본의 군비 확충과 군사영역 확대를 추구해 온 그들에게 ‘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어정칠월 건들팔월/전 국립고궁박물관장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어정칠월 건들팔월/전 국립고궁박물관장

    며칠 전까지도 찜통더위와 열대야로 죽는다고 아우성쳤는데, 어느덧 저녁엔 선선한 바람이 불어 그런대로 지낼 만하다. 새삼 철따라 변하는 계절을 실감한다. 8월은 음력 7월로, 절기로는 입추와 말복, 처서가 있고, 명절 칠석과 백중이 들어 있는 달이기도 하다. 또한 무더운 가운데에서도 가을이 열린다고 해서 개추(開秋)·상추(上秋)라 했고, 참외가 노랗게 익는 때라 과월(瓜月)이라 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해 만염(晩炎), 차가운 이슬이 내리는 달이라 하여 노량(露凉)이라고도 했다. 특히 7월 이슬은 몸에 좋다고 해서 벼와 상추, 콩잎에 매달인 이슬을 새벽에 받아먹었다. 오늘은 여름을 처분해 가을을 맞는다는 처서로,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오며, 극성맞던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고 했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도 누그려져 “풀도 울며 돌아간다”고 해 풀도 더이상 자라지 않아 벌초도 하고, 부녀자들은 그동안 일손이 바빠 가지 못한 친정 나들이를 한다. 선비들은 포쇄라 여름 장마에 젖은 책을 햇볕에 말렸다. 이 무렵 농촌에서는 일 년 농사 가운데 가장 힘든 김매기도 끝난다. 어느 때보다도 한가해 어정거리면서 칠월을 보내고
  • [2030 세대]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박누리 스마트스터디 IR&기업전략 리더

    [2030 세대]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박누리 스마트스터디 IR&기업전략 리더

    주 120시간에 ‘준하게’ 일해 본 적이 있다. 도보 15분 거리의 회사를 시계추처럼 오가며, 월화수목금금금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일했다. 집에 오면 씻고 쓰러져 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살았던 두세 달 동안 책 한 권 읽지 못했고, 집밥 한 번 제대로 차려 먹지 못했다.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파는 카레라이스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고, 세상만사에 아무 흥미가 없어졌다. 내가 마치 일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계 같았다. 무엇보다 몸이 피로에 찌들어 있고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별것 아닌 일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질을 부리거나 공격적인 언행이 튀어나왔다. 그 무렵의 나를 돌이켜 보면 항상 날이 서 있고 무엇인가에, 누군가에게 화가 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일했는데도 실제로 주 120시간을 꽉 채우지는 못했던 것 같다. 사실 주 120시간이란 일부러 채워서 일하려고 해도 채우기 쉽지 않은 숫자다. 인간이라는 생물의 신체적 능력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넘는 순간 집중력과 생산성이 급속하게 떨어진다.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특수한 상황이라면, 몇 주 정도는 주 120시간 일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 [금요칼럼] 언론중재법 개정안 유감/김보라미 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

    [금요칼럼] 언론중재법 개정안 유감/김보라미 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

    우리나라에는 다른 민주국가들과 달리 표현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규정들이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모욕, 사자명예훼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겠다 싶어 ‘정보통신망법’에서는 기존의 위 규정들에 처벌을 더 가중해 사실적시 명예훼손,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규정해 놨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싶었는지 ‘정보통신망법’상 ‘사이버모욕죄’ 신설도 논의됐던 적이 있다. 다른 민주국가들에는 없는 규정들에 대해 법원은 자제하지 않는다. 확대해석하기도 한다. 억울하게 입증 책임을 전환해 감옥에 다녀온 정봉주 전 의원의 사례를 보라. 법원은 이후에도 입증책임전환 법리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포죄에서 일관되게 적용했다. “특정되지 아니한 기간과 공간에서의 구체화되지 아니한 사실의 부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사회통념상 불가능하다”라고 전제한 뒤(불가능하면 기소를 안 하면 될 일이다), “의혹을 받을 사실이 존재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자가 그러한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할 부담을 진다”며 기소 당시 입증되지 않은 형사구성요건의 입증을 피고인에게 전가까지 한다. 헌법재판소 역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여러 차례
  • [한 컷 세상] 깊은 시름 속의 자영업자들

    [한 컷 세상] 깊은 시름 속의 자영업자들

    비가 내린 8월의 어느 날, 서울 종로의 임대 현수막이 붙은 텅 빈 상점 앞에 노숙인이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장기적인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폐업률이 늘어 가고 있는 가운데 폐업의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어느 날/변영로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어느 날/변영로

    어느 날/변영로 어느 찌는 듯 더웁던 날 그대와 나 함께 손목 맞잡고 책이나 한 장 읽을까 수림 속 깊이 들어갔더니 틈 잘 타는 햇발, 나뭇잎을 세이어 앉을 곳을 쪽박벌레 등같이 아룽아룽 흔들리는 무늬 놓아 그대의 마음 내 마음 함께 아룽거려 열없어 보려던 책 보지도 못하고 뱀몸 같은 나무에 기대 있었지 읽는 내내 사랑스런 마음 지울 수 없다. 연인은 손목 잡고 수림 속으로 들어간다. “날이 참 덥구려, 우리 숲속에 들어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읽으며 더위를 피합시다.” 이 시가 쓰여진 1926년 무렵엔 백석도 지용도 동주도 릴케를 좋아했으니 이 유혹은 세련되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좋아하는 남정네가 숲 향기 맡으며 릴케를 읽자는데 “싫소”라고 답하는 조선 처자는 없을 것이다. 숲속에서 꼭 책 읽기만 할 것인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랴? 쪽박벌레 등 같은 햇발이 어룽어룽 ?아다니며 방해를 하네. 둘의 마음도 함께 어룽거려 릴케의 시는 읽히지 않고 뱀몸 같은 나무에 등 기대고 서 있으니, 연인이여 심란해하지 말고 산사나무 꽃 같은 입술 바람인 듯 맞추시게나. 곽재구 시인
  • [데스크 시각] 메달이 부러운 게 아니라/홍지민 체육부 차장

    [데스크 시각] 메달이 부러운 게 아니라/홍지민 체육부 차장

    2020도쿄올림픽에서 일본은 금메달 27개와 은메달 14개, 동메달 17개 등 모두 58개 메달을 따내 종합 3위에 올랐다. 1964년 도쿄,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 거푸 기록했던 역대 최고 성적을 재현한 것이다. 1964년 대회는 전후 일본의 부흥을 세계에 알린 무대였는데 이번엔 당초 계획했던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부터의 부흥까지는 아니었어도 적어도 스포츠에 있어서 부흥은 일군 셈이다. 한국은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로 20개 메달을 수확했다. 종합 16위다. 여느 때보다 아름다웠던 4위가 쏟아져 나와 국민들에게 뿌듯함과 뭉클함을 선물하기에 충분했지만 메달로 따지면 아쉬운 결과다. 일본이야 안방에서 열린 대회라 그 정도 성적은 당연한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한국 또한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개최국 입장을 십분 살려 역대 최고 4위의 성적을 올렸다. 이때를 기점으로 한국은 올림픽 무대에서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이웃’ 일본에 우위를 보이기 시작했다. 2004년 아테네 때 잠시 위를 내줬지만 그 외에는 줄곧 앞섰다. 그러던 것이 5년 전 리우부터 밑돌았다. 흐름을 내준 느낌이 진하다. 단순히 메달 숫자 때문에 그런
  • [황성기 칼럼] 북녘의 내로남불, 멈추면 어떤가/평화연구소장

    [황성기 칼럼] 북녘의 내로남불, 멈추면 어떤가/평화연구소장

    8월 1일 밤 8시쯤 나온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는 시간상으로 볼 때 일요일 아침을 맞는 미국 워싱턴을 겨냥했다. 30%쯤은 남한 들으라 던졌을 것이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미국은 잠잠했고, 남한은 여권을 중심으로 출렁였다. 한미 연합훈련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지만 관종적 담화의 효과와 위력은 한반도 남쪽에서 충분히 입증됐다. 연판장을 돌린 여권이나 “하명받았네” 비아냥거리는 야당이나 700여자에 불과한 김여정 담화에 티격태격한 남한 풍경은 평양에선 폭염을 식히는 청량제였을 것이다. 1일 담화에는 북한의 그 흔한 조건절이 없다. 훈련을 중지하면 대화를 검토하겠다는 언급도 없다. 대신 “북남 관계의 앞길을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 “남조선측이 8월에 적대적인 전쟁 연습을 벌려 놓는가 아니면 큰 용단을 내리겠는가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훈련을 강행하든 연기하든 한미의 자세를 지켜본다는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남측의 자중지란을 즐기고 사전훈련이 시작된 10일 김여정 담화에는 “조선반도에 평화가 깃들자면, 미국이 남조선에 전개한 침략무력과 전쟁 장비들부터 철거해야 한다”는 실현 불가능한 조건절을 슬그머니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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