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 [문화마당]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정재왈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문화마당]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정재왈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한 해의 끝자락에서 영화 ‘히말라야’를 봤다. 영화를 보면서 ‘숟가락’이란 단어를 떠올린 건 순전히 주연 배우 황정민 때문이었다. 황정민과 숟가락, 연유는 이랬다. 10년 전 거의 무명이었던 황정민은 영화 ‘너는 내 운명’으로 그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지순한 사랑에 올인하는 시골 노총각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쳐 호평을 받았다. 일약 출세작이 된 것이다. 연기도 연기였지만 더 큰 감동은 그다음에 있었다. 수상 소감이 일품이었다.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렸습니다.” 황정민은 눈물을 글썽이며 울고 있었다. 이때다 싶어 감사치레로 그간 도움을 준 사람들을 굴비 엮듯 호명하는 의례적인 수상 소감과는 확연히 달랐다. 영광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밥상을 차려 준 ‘숨은 공로자’에 대한 헌사를 통해 자신을 낮추는 겸양의 미덕을 보였다. 지금도 회자되는 수상 소감의 레전드다. 결정적 순간에 터져 나온 가식 없는 언사는 삶 자체가 그러질 않고는 감동이 따르지 않는다. 그 이전 대학로의 힘든 무명 세월을 알기에 나는 황정민답다는 생각을 했다. 날것 속의 진심이란 것을 알았다. 황정민은 1994년 소극장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초기 멤버로 데뷔했다. 서울 지하
  • [문화마당] 서양 속에 존재하지 않는 서양/코디 최 미술가·문화이론가

    [문화마당] 서양 속에 존재하지 않는 서양/코디 최 미술가·문화이론가

    과거 서양의 아시아 식민화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물리적인 공간의 지배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정신적인 폭력에 시달린 아시아의 문화 공간이며, 이 공간은 서양 속에 존재하지 않는 서양의 모습으로 가득하다. 실례로 한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려주는 팝송 중에는 미국에서 거의 들을 수 없는 곡들이 종종 방송되는 것과 미국 거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MTV 가수들의 패션을 홍대 거리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서양에는 없는 얼굴 작은 미인, 키 큰 미남과 같은 서구미의 기준이 우리 사회에 일반화된 것 등을 감안할 때, 우리 속에 있는 서양은 서양 속에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현대사회의 아시아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문화 연구가 필요하다. 첫째, 상대적인 입장과 관점에서 재해석을 시도하고 인정함으로써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찾아야 한다. 둘째, 틀에 박혀 있는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를 개선해야 한다. 셋째, 적개심과 저항을 절충할 수 있는 문화와 언어를 찾아야 한다. 이것은 보편적 실재 또는 보편적 특성의 행동 양식을 이룩하는 것으로 ‘식민주의의 진정한 완성’이며 동시에 ‘탈식민지 사상’이다. 또한 이는 문화적 갈등과 불균형 구조를 초월하고 관점을 바꾸어 새
  • [문화마당] 고독할 수 있는 용기/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화마당] 고독할 수 있는 용기/김재원 KBS 아나운서

    모처럼 휴가를 다녀왔다. 가족과 오키나와에서 나흘, 혼자서 라오스에서 나흘을 더 보냈다. 떠나기 전 계획을 들은 동료들은 어떻게 그런 휴가를 보낼 수 있느냐는 말로 부러움을 덧붙였다. 진정한 휴가는 혼자 보내는 것이라는 뜻이리라. 따뜻한 대자연이 선사하는 여유 속에서 가족과 함께한 오키나와는 낙원이었다. 인천공항에서 가족과 작별하고 환승 게이트에서 라오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에는 골프 여행을 떠나는 중년 남성들로 가득 찼다. 내가 라오스 여행에서 찾고 싶었던 것은 고독감이었다. 요즘 우리는 지나친 소통으로 고독의 자유를 빼앗겼다. 어디서도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는다. 연말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심지어 온라인에서도 사회화라는 명분하에 혼자 있을 자유가 없다. 원하지 않는 단체 방에서 부르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사회화는 타인을 의식하고 남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SNS를 멀리하던 나는 급기야 용기를 내 카카오톡 탈퇴를 단행했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과도한 소통에 지쳐 있던 나는 지금 만족한다. 라오스 방비엥. 배낭 여행자의 천국. 오십여 나라를 여행한 내게도 꿈의 여행지였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코리아타운이었다. 꽃보다 청춘들의 여행
  • [문화마당] 멍게 뒷맛/천운영 소설가

    [문화마당] 멍게 뒷맛/천운영 소설가

    로마대학에서 번역 워크숍을 하기로 했다. 그곳의 한국학과 학생들이 단편소설 한 편을 가지고 한 학기 동안 번역 작업을 하고 나면, 나중에 작가와 함께 시간을 가지고 토론을 해서 결과물을 만든다고 했다. 일반적인 낭독회나 작가와의 만남처럼 일회적인 행사가 아니어서 기대감이 컸다. 그런데 그 작품이 하필이면 ‘멍게 뒷맛’이란다. 멍게 뒷맛이라니. 멍게도 멍게거니와 뒷맛은 또 어떻게 하려나. 우려가 뒤따라왔다. 그들이 멍게 맛을 어찌 알까? 멍게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는 검색으로 어찌 알아낸다 해도 멍게를 다듬는 과정이랄지, 그 과정에서 풍겨 나오는 알싸한 냄새랄지, 그것을 입에 막 넣었을 때와 삼키고 난 후 입안에 감도는 맛의 다름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멍게를 본 적도 맛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나는 또 그 맛을 어떻게 설명해 줄 것인가? 하물며 멍게를 먹으면 살고 싶어진다는 주인공의 삶은 어찌 이해시키겠는가? 그래서 멍게 맛 좀 보여 주자 궁리했다. 멍게를 통째로 냉동을 해서 스티로폼에 싸 간다. 학생들 앞에서 직접 손질해 보여 준다. 신선도를 장담할 순 없지만 냄새 정도는 맡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공항검색대만 통과하면. 거기서 막혔다. 그렇지 않아도
  • [문화마당] 힘내라, 대학로야!/정재왈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문화마당] 힘내라, 대학로야!/정재왈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연극 담당 기자로 대학로를 누비고 다니던 1990년 말 직접 연극에 출연한 적이 있다. 솔직히 어린애 같은 호기심도 없지 않았지만, 연극배우들과 몸으로 부대끼며 그들과 하나가 되고 싶은 충동이 훨씬 앞섰다. 그래야 ‘진짜 연극 기자’가 될 것 같았다. 순정한 마음의 발로였다. 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내 뜻을 기특하게 여긴 연출가 정진수씨가 마땅한 배역이 있다고 했다. 그가 내민 작품은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이상적 남편’이었다. 한국 실정에 맞게 사회 고발극으로 직접 번안했는데, 당초에 없던 ‘기자’라는 역할을 기어이 집어넣어 내게 맡겼다. 오영수, 김성녀, 양금석, 윤여성 등 지금도 쉽게 꾸리기 어려운 초호화 캐스트였다. 퍽이나 영광적인 데뷔였다. 수줍음 많은 내가 학창 시절에도 감행하지 못한 모험의 결과는 엄청난 만족감으로 채워졌다. 특히 배우의 ‘숙명’에 대한 나름의 개념을 터득한 건 놀라움 자체였다. 비록 몇 마디 대사를 치는 ‘지나가는 행인’쯤의 비중이었으나 떨리는 첫 무대를 준비하던 날, 분장실 거울 앞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았던 기억은 지금도 너무나 선명하게 뇌리에 박혀 있다. 배우의 ‘배’(俳) 자를 풀이하면 ‘사람(人)이
  • [문화마당] 랩과 요지경/코디 최 미술가·문화이론가

    [문화마당] 랩과 요지경/코디 최 미술가·문화이론가

    1980년대에 시작된 갱스터 랩은 랩 음악의 본토이다. 초기에는 음악적 표현이라기보다는 흑인 빈민가 골목에서 특정 직업도 없이 배회하던 불량 청소년들이 휴대용 스테레오 테이프 플레이어로 음악을 틀고 그 음악의 리듬에 맞춰 춤추며 흑인 특유의 어법과 억양으로 서로 자기들의 얘기를 늘어놓으며 소일하는 행위로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갱스터 랩은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흑인 계층이 백인 사회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경찰에 대한 공격, 여자에 대한 성폭력, 성도착증, 남성 우월주의, 조직 전쟁, 마약 밀매 등의 극단적인 내용물로 과장하면서 음악으로 표현하였다. 실제로 갱스터 래퍼들은 대부분 다양한 분야의 전과자들이며, 동시에 상당히 폭력적인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가사의 내용을 자신의 삶 속에 반영시켜 실천에 옮겼는데 이 때문에 가수 생활을 하는 중에도 수많은 범죄 행위를 저질러 사회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예컨대 갱스터 랩 음악의 영웅인 투팍 샤쿠르는 조직 범죄자 출신에서 흑인 빈민가의 사회 운동가를 표방하다가 마침내 가수로 성공하였는데 활동하는 중에도 수많은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 성폭행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될 시기에 맞춰 앨범을 발매하
  • [문화마당] 혼자 할까, 같이 할까/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화마당] 혼자 할까, 같이 할까/김재원 KBS 아나운서

    내가 좋아하는 화가는 모지스 할머니다. 미국 버지니아 근교에서 작은 농장을 꾸리며 10남매를 키워 낸 할머니는 76세 때 첫 작품을 그렸다. 동네가게에서 팔다가 우연히 수집가의 눈에 들어 80세가 넘어 뉴욕에서 전시회를 하며 이름을 알렸다. 101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잡았던 할머니는 1500여점을 세상에 남겼단다. 원래 자수를 즐기다가 관절염이 심해지면서 그림을 시작했다는 할머니는 혼자 그리는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할머니의 작품 ‘바느질 모임’은 90세 때 그린 작품으로 생동감과 다정함이 넘친다. 마흔 명 가까운 사람들이 그림 속에서 분주하다. 한쪽에서는 퀼트를 하고 한쪽에서는 대형식탁에 음식을 준비한다. 창밖으로 신록의 정원이 보이는 큰 거실에서 사람들은 즐거워한다. 아마도 모지스 할머니는 바느질을 혼자서만 하지 않고, 가끔 이런 모임에 나가셨던 모양이다. 뉴질랜드 웰링턴의 주말 저녁, 카페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눈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다. 소리 없는 묵독클럽이다. 독후감도, 독서토론도 없다. 사람을 사귀려고도 하지 않는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작은 수첩에 인상적인 문장을 메모한다. 연필과 수첩을 들고 책에 집중하며 뇌 기능을 회복하려
  • [문화마당] 태양을 향해 달리는 시계/천운영 소설가

    [문화마당] 태양을 향해 달리는 시계/천운영 소설가

    내겐 물려받은 벽시계가 하나 있다. 그닥 특별할 것 없는 괘종시계다. 아마도 한 번 태엽을 감으면 한 달 간다는 의미일 듯한 ‘30 days’ 빛바랜 스티커가 유리 문짝에 떡하니 붙어 있다. 얼마나 단단히 붙여 놨는지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당시에는 광고할 만한 어떤 것이었나 보다. 지금은 태엽 한 번에 일주일을 채 못 버티고, 한 시에 종을 열두 번 울리기는 하지만, 나보다 늙은 시계가 작동한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기특하다. 그 시계를 받아 올 때 할머니가 그랬다. 네 할아버지가 그걸 사오느라 남대문시장까지 갔단다. 세이콘가 머시긴가 고걸 사겠다고. 해룡 산골에서 남대문까지. 산길을 걸어 내려가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고 꼬박 하루. 처음 시계를 소유한 순간을 기억한다. 시계를 온전히 내 몸에 소유할 수 있다니. 어쩐지 성인으로 인정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어른까지는 아니어도 어린이에서 벗어난 것만은 확실했다. 그런데 사실 썩 마음에 드는 디자인은 아니었다. 곱상한 바늘시계이길 바랐는데 전자시계였다. 시계를 읽을 줄 모르는 어린애도 아니고, 흔해 빠지고 투박한 전자시계라니. 그래도 내 첫 시계인데 미워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 시계는, 그러니까 내 시계는,
  • [문화마당] ‘국립 한성준 춤 극장’을 꿈꾸며/정재왈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문화마당] ‘국립 한성준 춤 극장’을 꿈꾸며/정재왈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가 하면 사람들은 으레 최승희를 떠올린다. 일제강점기 신(新)무용의 개척자로 불리는 그는 월북 무용가여서 오랜 기간 한국에선 금기 인물이었다. 1990년대 해금된 후 한국에서도 불세출의 무용가로 칭송받고 있다. 조택원은 최승희와 더불어 1930년대 등장한 또 한 명의 무용가다. 남성 무용수인 그가 무용에 사상(思想)을 입히려 했다면, 최승희는 무용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이들이 물꼬를 튼 신무용은 일본을 거쳐 들어온 서양 근대 무용의 ‘한국화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당대 기존의 여러 무용과 다르다는 의미에서 신무용이라 했는데, 이는 1930년대 신식 유행 풍조와 무관치 않다. 이 두 명의 스타에 비해 화려하진 않지만 남긴 업적 면에서 ‘우리 춤의 아버지’로 우뚝 선 인물이 바로 한성준(1874∼1942)이다. 까마득한 선배인 그를 거쳐 최승희와 조택원이 비로소 서양식 무용에서 벗어나 한국 무용의 아이콘이 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들은 한성준에게서 우리 전통 무용의 정신과 가치, 움직임을 배운 뒤 완숙한 경지에 올라섰다. 충남 내포(內浦) 지역 홍성 태생인 한성준은 젊은 시절 명고수로 이름을 날렸다. 판소리에는 ‘1고수 2명창’이란
  • [문화마당] 문화와 문화연구/코디 최 미술가·문화이론가

    [문화마당] 문화와 문화연구/코디 최 미술가·문화이론가

    문화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단어이지만, 누가 그 경계와 개념을 묻는다면 경제나 정치와 같이 명확한 경계와 개념을 떠올리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쉽게는 시, 소설, 발레, 오페라 등의 예술분야를 떠올리지만 곧바로 과학, 사회, 정치 심지어는 연속극이나 만화, 휴양지 등 우리의 일상 속에 녹아있는 모든 것들을 문화로 여기게 되며 혼동하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인류학자들은 문화의 개념을 사회적 행동양식이라고 명명하고 있으며, 또 다른 학자들은 더 나아가 사회적 행동양식을 통한 추상적 의미까지 포함시키기도 한다. 문화에 관한 가장 최초의 개념 정의는 1871년 영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타일러에 의해서 다뤄졌는데, 사회인은 자연 및 원시와 대립하며 인위적인 무엇을 가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결과물들을 문화라고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그 결과물은 인간이 요구하는 지식, 믿음, 예술, 도덕, 법, 관습, 습관 그리고 이에 따르는 모든 가능성에 의해 만들어진 합성물을 의미한다. 따라서 문화란 경험과 연구를 통해 학습되어진 사회 또는 소집단의 결과물을 뜻하게 되며, 결국 사회 구성원들 간의 관계성을 표현하고
  • [문화마당] 똥 묻은 어른, 겨 묻은 아이들/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화마당] 똥 묻은 어른, 겨 묻은 아이들/김재원 KBS 아나운서

    한글날을 맞아 언론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기사들을 쏟아냈다. 우리말, 한글 사랑의 반짝 특수다. 올해는 청소년 언어오염 기사가 유난히 많았다. 청소년들이 어른들은 모르는 말로 대화한다는 것이다. 청소년과 어른의 말이 다른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우리도 어렸을 때는 분명 어른들이 모르는 단어를 쓰려고 애썼다. 오염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더럽게 물듦, 또는 더럽게 물들게 함이라고 정의한다. 청소년 언어가 더럽다는 얘기다. 욕을 달고 살고, 단어를 줄여서 말하며, 생소한 외계어를 쓴다는 것이다. 물론 욕 달고 사는 아이들까지 편들 생각은 없지만 그들의 언어가 오염이라고 할 정도로 정말 더러울까? 대부분 부모는 내 아이는 그런 말을 안 쓰는데 다른 아이들 때문에 물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들 다 쓰는 그런 말을 전혀 안 쓰는 아이에게도 문제는 있다. 어쨌든 잘못의 원인은 찾아봐야 하는 것이 어른의 도리이고 언론의 책임이다. 애들은 왜 그렇게 됐을까? 아이들에게는 분출구가 없다. 대학에 어떻게든 들어가려면 죽은 듯이 공부해야 한다. 집에서는 부모가, 학교에서는 선생이 눈 번득이며 감시하는 터라 친구들과 놀 시간도 없다. 10분 관계, 아이들은 고작 쉬는 시
  • [문화마당] 흥에 겨운 손수건/천운영 소설가

    [문화마당] 흥에 겨운 손수건/천운영 소설가

    겨울옷을 꺼내다가 옷장 정리를 시작했다. 내친김에 서랍장과 신발장에도 손을 댔다. 그러다가 책상 서랍을 홀랑 뒤집었고 문이란 문, 상자란 상자는 전부 다 열고 끄집어냈다. 사람이야 물건이야 뭘 잘 못 버리는 성격인 데다가, 꽤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물러 살다 보니 쌓이는 게 많았다. 그래서 때때로 이런 푸닥거리가 필요했다. 그런 와중에 용케 또 상자 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 물건들도 있다. 이를테면 그동안 사용했던 휴대폰 같은 것. 보관은 하고 있지만 굳이 다시 켜 보지는 않았다. 이참에 다 버려 버리자 했다. 혹시라도 중요한 정보 같은 게 남아 있을지 몰라 마지막으로 전원 버튼을 켰다. 연락처들, 사진들, 통화 목록들. 그리고 녹음 파일들. 내 목소리. 뭐라고 중얼거린다. 아이디어가 생기면 수첩에 적는 대신 녹음을 해 보자 시험한 적이 있었다. 들어 보니 별 것도 아닌데 남세스럽게. 부끄러웠다. 시끌벅적 너나 할 것 없이 떠들어 대는 목소리들도 있었다. 아마도 술집이었을 것이다. 돈 벌어서 삼층 집 지을 테니 다 같이 모여 살자고 외치는 후배 목소리가 들렸다. 자주 하던 그 말을 언제부터 들을 수 없게 되었는지. 그래도 흐뭇했다. 한숨 소리. 얼마간의 침묵
  • [문화마당] 대세가 된 뮤지컬, 그 풍요 속의 빈곤/정재왈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문화마당] 대세가 된 뮤지컬, 그 풍요 속의 빈곤/정재왈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요즘 공연예술 분야의 대세는 뮤지컬이 맞다. 유사품, 좀 과하게 말해 ‘짝퉁’이 많은 것을 봐도 위세가 짐작된다. 내용과 형식은 영 아닌데 마케팅을 미끼로 뮤지컬을 앞세운 것이나, 겉으론 복합 장르처럼 보이나 실상은 뮤지컬 바람에 올라탄 ‘이종(異種) 혼합물’ 같은 공연이 여기에 속한다. 어떤 콘텐츠건 뮤지컬로 화장하고 싶은 건 볼거리 풍성한 이 장르의 매력 때문이리라. 이런 한마음 덕분인지 뮤지컬 성적표는 시장에서 늘 일등을 달린다. 양상은 완벽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정부 통계치를 보면 지난해 뮤지컬 총매출 규모는 3200억원 정도다. 연극·무용·음악·전통예술 등 다 더해 5000억원 규모인데, 그 절반 이상이 뮤지컬 몫이다. 한 해 제작 편수가 500편을 훌쩍 넘는다. 그래 봐야 1000만 관객 영화 두세 편의 매출액 수준이지만, 뮤지컬 전용극장이 여럿 생기는 등 최근 몇 년 새 장족의 발전을 거듭한 결과다. 이는 관객 개발이 쉽지 않은 공연에서 소비자인 관객이 꾸준히 뮤지컬을 봐 주고 있다는 증거다. 공급 과잉이 분명하나, 고위험 부담을 안고도 제작은 꾸준하고 유통 핵심 인프라인 극장 수준도 짱짱해졌다. 한류(韓流) 덕에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동남
  • [문화마당] 문화의 흔적과 문화경제/코디 최 미술가·문화이론가

    [문화마당] 문화의 흔적과 문화경제/코디 최 미술가·문화이론가

    우리나라는 1894년 갑오개혁의 혼란한 근대화를 정리하기도 전 일제 식민지 치하에 놓이게 되어 일본 근대화의 흐름을 표방하며 개화의 바람이 시작되었고, 이 과정은 대한민국 근대문화 역사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해방 후에 정치적 갈등 구조를 해결하지 못한 채 한국사는 전쟁으로 이어졌고, 그 전쟁을 통해 보여진 막강하고 부유한 미국의 모습을 부러움과 경계의 대상으로 여기며, 표면적으로 흉내 내듯 이끌려가며 또 하나의 문화화 과정이 벌어졌다. 즉 전쟁 후 가난 속에서의 탈출이라는 역사적 과제 아래 부와 힘의 상징이었던 미국의 존재는 우리에게 왜곡된 시각을 갖게 했다. 우리에게 서양과 현대사회 그리고 앞서간 문화의 개념은 미국을 통해 이해되면서, 현대화와 서양화와 미국화를 동일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국제관계와 권력구조에서 비롯된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간과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자 우리의 문화화 과정이다. 이는 서구 자본주의의 본질과 역사를 이해하고 우리의 입장에 타당한 토착화를 이루었다기보다는 그들의 자본주의를 흉내 내고 편파적으로 받아들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불황 속에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성
  • [문화마당] 개천에서 용 나던 나라/김재원 KBS아나운서

    [문화마당] 개천에서 용 나던 나라/김재원 KBS아나운서

    학습지 푸는 어른들이 늘어났단다. 학원 다닐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이 학습지를 배달받아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풀며 외국어 공부를 하는 모양이다. 정말 평생 공부하는 나라다. 1970년대 초등학생들은 일일공부, 장학교실 같은 학습지를 풀었다. 매일 배달되는 8절지 양면 학습지는 훌륭한 학습 길라잡이였다. 아빠는 신문을, 아이들은 학습지를 받아보던 시절, 그나마 보편적으로 누리던 사교육이 아니었을까? 올해도 63만여명이 대학을 가려고 한다. 얼마 전 수시 전형에 원서를 냈다. 경쟁률 100대1이 넘는 학과가 꽤 많다는 것은 무언가 기형적인 제도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7만명이 넘는 지원자를 받은 대학들은 도대체 얼마를 버는 걸까? 요즘은 아빠들 술자리에서도 교육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이 좋은 대학을 보낸다는 이야기가 돈지도 꽤 됐다. 부모의 영향력이 대학입시에 그만큼 절대적이라는 얘기다. 아빠의 유형도 천차만별이다. 자기소개서 써 주고 원서접수까지 챙기는 아빠가 있는가 하면 종합이 뭔지, 교과가 뭔지, 수시전형 절차도 모르는 아빠도 있다. 늦은 밤마다 차로 데리러 가는 아빠가 있는가 하면 현실에 쫓겨 학원조
  • [문화마당] 이 여름의 예감/천운영 소설가

    [문화마당] 이 여름의 예감/천운영 소설가

    바람이 불면 아무 생각이 없어져요. 그냥 바람이, 내 몸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좋아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지금 당장은 알 수 없고 다음 세대에나 알 수 있는 일인데. 난 그저 한 줌 씨를 뿌리고 있을 뿐인데. 그냥 좋아요. 그런데 이게 제대로 된 씨앗이기는 한 걸까, 궁금해져요. 그래서 죽기가 싫어요. 싹이 트는 것만이라도 보고 죽으면 좋겠는데. 이 말을 하던 사람의 말투가 얼마나 어눌했는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죽기 싫다고 해 놓고 얼마나 수줍게 웃었는지. 수줍음에 비해 눈동자는 또 얼마나 선명히 반짝였는지.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내 심장박동수를 얼마나 높여 놓았는지. 그때 나는 진심으로 그가 아주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을 지켜 주고 싶은 마음과도 같았다. 바람이 불어왔다. 몸을 뚫고 지나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매운 남극의 바람이었다. 그 바람 속에서 어렴풋한 예감이 들었다. 한동안 이 여름에 붙잡혀 지내겠구나. 예감대로였다. 그곳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한 궁리를 했다. 꼬박 일 년의 시간을 들였다. 꽤 많은 우여곡절과 굳이 말할 필요 없는
  • [문화마당] 문화예술 CEO의 빛과 그림자/정재왈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문화마당] 문화예술 CEO의 빛과 그림자/정재왈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몇 해 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최고경영자(CEO)가 될 뻔한 적이 있다. 마땅한 인물을 찾느라 사장 자리가 반 년 이상 공석이었는데, 어쩌다 나한테도 기회가 왔다. 인사권자인 시장의 뜻이 실려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낙마했다. 나중 그 기관의 예술감독이 나를 꺼려한 탓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내막을 확인할 수도 없고,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예술감독인 그분이 세긴 센가 보다”며 넘겨 버렸다. 사실 서울시향의 조직 구조는 이상할 게 없다. 대표이사(사장) 아래 예술감독(상임지휘자)이 있어 지휘 계통이 분명하다. 굳이 역할과 권한의 차이를 따지자면 인사 등 경영 전반의 최고 책임자는 사장이나, 소속 단원들의 오디션과 레퍼토리 선정 등 예술적 측면의 권한은 예술감독에게 주어진다는 정도다. 아무튼 최고경영자는 사장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밖에 비춰지는 위상은 그렇지 못하다. 대표와 예술감독이 분리된 조직에서는 명망가인 예술감독의 힘에 압도돼 대표의 존재가 미미해 보인다. 최악의 경우 ‘바지사장’을 면치 못한다. 공공기관이라 하더라도 예술의 수월성(秀越性)이 강조되는 기관에서 더욱 그런데, 아시아 최고를 꿈꾸는 서울시향이 적절한 예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가
  • [문화마당] 글로벌화는 서양화가 아니다/코디 최 미술가·문화이론가

    [문화마당] 글로벌화는 서양화가 아니다/코디 최 미술가·문화이론가

    오늘날 미디어의 홍수에 처한 사회를 우리는 멀티미디어 사회라고 부른다. 멀티미디어라는 개념 속에는 메시지 자체의 다양한 종류의 발전은 물론이고 다양한 조직망과 체계, 새로운 이론 그리고 미디어 산업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증폭까지 포함된다. 그러나 지금 선진국의 미디어 산업은 오늘날 세계가 서로 다른 문화권이라는 본질을 고려하지 않은 듯 ‘지구촌’ 혹은 ‘글로벌화’라는 미명 아래 공간과 시간을 압축하며 서구문화권으로 이끌어 가는 듯하다. 21세기에 접어든 우리들의 사회를 흔히 ‘지구촌’이라고 말한다. ‘지구촌’ 혹은 ‘글로벌 빌리지’라는 단어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자주 사용돼 왔지만, 실제로 해를 거듭할수록 국가 간의 거리는 의미적으로 더욱 좁아져 왔고, TV나 영화는 물론 인터넷 같은 새로운 미디어를 중심으로 시간과 공간감이 더욱 좁혀지면서 요즈음 우리는 글로벌 시대라는 말을 더욱 자주 듣게 됐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에서는 그야말로 엄청난 멀티미디어의 교환으로 다른 문화 간에 격심한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므로 서로에 대한 신뢰와 각자의 가치를 지키는 도덕적 태도, 그리고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 필요하다. 이처럼 도덕적인 태도와 책임감 그리고 문
  • [문화마당] 진지함의 역설/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화마당] 진지함의 역설/김재원 KBS 아나운서

    나는 무척 진지한 사람이다. 방송진행자로서 가장 부러운 능력은 남을 웃기는 재주이다. 개그맨들이 얼굴이나 동작 혹은 말 한마디로 사람들을 웃기는 것을 보면 웃음과 동시에 부러움이 스며든다. 내가 ‘개그 콘서트’를 즐겨 보는 이유다. 하지만 요즘 유심히 보게 되는 ‘진지록’은 그 부러움에 혼란을 가져왔다. 왕정 시대, 진지한 나라를 만들고자 웃기는 사람을 처벌하려는 왕 앞에서 안 웃기는 사람을 찾아 칭찬하겠다는 설정이다. 이행시나 노랫말 개사를 통해 안 웃기는 사람을 찾는 그들의 시도 이면에는 재미없는 이행시를 통해 웃기려는 의도가 있다. 그 기묘한 설정에 썰렁한 유머를 비웃었던 사람들마저 묘하게 빠져들게 된다. 진지함의 척도는 참으로 묘해서 어느 수준을 넘기면 객석에서 웃음이 새어 나오기 때문에 수위조절이 쉽지 않다. 이렇게 진지함으로라도 웃기려는 개그맨들의 아이디어는 그들이 그동안 시청자의 높아진 웃음 기준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깨닫게 한다. 동두천에는 ‘숲 속 창의력 학교’가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기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게임 중독이나 따돌림, 인터넷 중독 같은 사회 부작용으로 학교생활에 스며들지
  • [문화마당] 돈키호테의 마지막 식사/천운영 소설가

    [문화마당] 돈키호테의 마지막 식사/천운영 소설가

    돈키호테. 본명은 알론소 키하노. 말년에 키호티스라는 이름의 목동이 될 생각도 잠깐 했다. 키하노였을 때 그는 일반적인 시골 양반의 음식을 먹었다. 기사가 되겠다고 집을 나선 후 처음 먹은 것은 말린 대구. 고기를 먹지 않는 금요일인데다 밤도 늦어, 객줏집에서 내놓을 것이라고는 말린 대구 몇 조각밖에 없었지만, 이제 막 길을 나선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만찬으로 여겨졌을 터. 마른 대구가 아니라 맛있는 송어, 굳은 빵이 아니라 새하얀 고급 빵, 객줏집 주인은 거대한 성의 성주, 백정의 피리 소리는 만찬을 위한 연주였다. 객줏집에서 엉터리 기사서품식을 하고 정식 기사가 된 돈키호테는 이후 기사 음식을 고수한다. 말이 음식이지 산초 말마따나 너무 딱딱해서 거인 대가리라도 부숴버릴 만한 치즈나 도토리 개암 호두 같은 게 전부다. 방랑기사란 자고로 한 달을 먹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아야 하고, 간혹 먹는다 해도 형편없는 시골 음식 같은 것에 만족해야 하니까. 그것이 방랑기사의 예법이니까. 그렇다고 늘 도토리 따위나 먹고 다닌 것은 아니었다. 목동이나 염소치기들과 나눠 먹은 치즈와 고기. 며칠 밤 지속된 공작의 성대한 연회. 그중에서 가장 성대한 것은 부자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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