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 [세종로의 아침] 총재님의 마지막 과제/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총재님의 마지막 과제/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김영기(82) 한국농구연맹(KBL) 총재는 원래 잠 자는 걸 무척 즐긴다. 8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힘들어한다고 기자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아울러 저녁에 영어 원서 읽는 일을 낙(樂)으로 여긴다. 비공식 자리에서 만나면 그 연배답지 않게 개방적이고 품도 넓다. 다른 이의 말에도 곧잘 귀를 기울인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자택에서 인천 신포시장까지 부부가 지하철을 타고 가 민어탕을 들고 오는 일을 소소한 즐거움으로 삼는다. 그런 분이 인터넷 세상에서는 ‘노망난 노인’, 고집과 불통의 대명사가 된다. 최근에는 다음 시즌부터 외국인 선수의 키를 2m로 제한한 것 때문에 뭇매를 맞고 있다. 해외 언론에 ‘키 크다고 쫓겨나는 리그가 있다고?’ 식으로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 23일 KBL 이사회는 이 민감한 이슈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10개 구단 가운데 2m 제한에 찬성 1, 반대 9였다가 나중에 3-7로 됐다가 태스크포스 팀으로 넘겼는데 2-2가 나와 김 총재가 직권으로 다음 시즌부터 도입하기로 했다고 한다. 위계가 강하고 의리를 앞세우는 농구인들이 감히 입을 열지 못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김 총재가 ‘농구에 대해 나만큼 아는 사람
  • [세종로의 아침] 중국의 민주화, 백년을 기다려도/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중국의 민주화, 백년을 기다려도/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차이위안페이(蔡元培·1868~1940)는 중국의 걸출한 사상가이자 교육학자다. 민족해방과 민권투쟁에 온몸을 바치고 근대교육과 과학 발전의 기초를 닦았다. 26살에 과거에 급제한 차이는 청일전쟁의 패배가 선진 인재의 부족이라고 진단하고 인재 육성을 위해 촉망받는 관직을 내던졌다. 낙향한 그는 사오싱(紹興) 등에서 학당을 운영하며 자유·민권사상 전파에 힘썼다. 광복회를 설립하는 등 쑨원(孫文)과 함께 청조 타도에 앞장서다 선진교육을 배우러 독일 유학을 떠나 고학했다. 신해(辛亥)혁명이 성공하면서 교육장관을 맡아 낡은 교육체계를 뜯어고쳤다. 경전 강독만 중시하는 봉건 교육을 배척하고 남녀 교육평등, 근대학제 등을 도입해 중국 교육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위안스카이(袁世凱)의 황제 부활 움직임에 장관직을 사임하고 프랑스에서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근공검학(勤功儉學) 운동’을 이끌었다. 사회주의 중국 개국공신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덩샤오핑(鄧小平), 천이(陳毅), 녜룽진(?榮臻)이 이 운동의 대표적 인물이다. 베이징대 초대 총장으로 취임한 그는 근대학제를 도입하는 혁신을 단행하는 한편 나이·출신, 정치 성향을 따지지 않고 루쉰(魯迅)과 천두슈(陳獨秀), 후스(胡適
  • [세종로의 아침] 널문은 열리는데…/박홍환 정치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널문은 열리는데…/박홍환 정치부 선임기자

    서울 서북쪽 48㎞, 평양 남동쪽 180㎞ 지점의 판문점 일대가 또다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오는 27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와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다. 분단 전 김구 선생이 마지막으로 왕래한 이후 6·25전쟁과 정전을 거쳐 양쪽의 지도자급 인사들에게 철문처럼 닫혀 있던 판문점이 활짝 열리는 것이다. 이런 세계사적인 이벤트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8년 소떼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었던 그때의 감동을 훨씬 뛰어넘는다. 불과 넉 달여 전만 해도 한반도에는 암울한 예언이 난무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대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흥분시켰고, 미국은 ‘코피작전’ 구상을 흘리며 김 위원장을 몰아세웠다. 문 대통령의 ‘운전대’는 작동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최강 추위가 몰아치고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자 온 국민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희망은 너무도 멀리 있었고, 언 땅이 녹아 판문점에서 봄이 만개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동서 800m, 남북 600m 타원 형태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지키는 JSA 경비대대의 모토는 “최전방에서”
  • [세종로의 아침] 벵에돔과 노가리/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벵에돔과 노가리/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제주 해안을 돌다 보면 작은 가게들을 흔히 본다. 소라, 돌문어 등 소소한 해산물을 주로 파는 집들이다. 주민이 직접 잡아 신선한 데다 값도 싸다. 가게 앞 수족관엔 예의 다양한 종류의 해산물이 빼곡하다. 한데 ‘파란 눈의 흑기사’ 벵에돔의 크기가 이상하다. 너무 작다. 겨우 작은 깻잎 크기쯤 되려나. 고만고만한 벵에돔이 떼로 몰려 있다. 듣기로는 잡을 수 있는 물고기의 크기를 제한하는 규정이 있다던데, 혹시 이를 어기고 있는 건 아닐까. 벵에돔은 다른 물고기와 달리 포획에 제한이 없다. 깻잎보다 작은 새끼를 잡아먹어도 법규를 위반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 해도 찜찜한 느낌은 털어낼 수 없다. 회를 떠 봐야 겨우 한 점이나 나올 녀석들을 가둬 두는 게 영 마뜩잖아서다. 최근 낚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벵에돔 역시 낚시의 주 대상어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2016년의 경우 1회 이상 낚시를 즐긴 국민이 760만명에 이른다. 주 5일제 근무가 정착되고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숫자는 더 늘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의 ‘슬기로운’ 여가 생활을 위한 각종 규제 정보를 관계 기관에서 적극 알릴 필요가 있다. 예컨대 물고기 포획 금지 기간과 크기
  • [세종로의 아침] 그들만의 리그, ‘로또 아파트’/류찬희 산업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그들만의 리그, ‘로또 아파트’/류찬희 산업부 선임기자

    주택시장에도 로또 열풍이 불고 있다. 당첨만 되면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로또 아파트’가 그것이다. 그런데 로또 아파트는 로또 복권과 달리 서민들의 작은 꿈과 희망과는 상관없이 오직 투기 상품으로 변질했다. 로또 복권은 누구에게나 기회를 준다. 구입 자격이나 소득을 가리지 않는다. 일정한 자격이 없어도 누구나 살 수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직장 새내기부터 고액 연봉자, 자영업자 등 누구나 부담없이 참여하는 상품이 됐다. 로또 복권 한 장 사는 데는 많은 돈도 들지 않는다. 담뱃값을 아껴서 살 수도 있고, 커피 한 잔만 건너뛰면 살 수 있기 때문에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반은 재미, 반은 기대와 설렘으로 1주일을 보낼 수 있다. 설령 당첨되지 않았다고 해도 정부에 불만을 쏟아내지 않는다. 작은 기대와 희망을 품고 즐겼던 것에 만족한다. 특정 계층에게만 당첨 기회를 준 것이 아니므로 사행성, 도박성 지적에도 복권제도가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다. 로또 아파트는 어떤가. 사실상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자만 청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평하지 않다. 아파트 투기를 막으려고 일정한 청약 자격을 요구하는 것은 불공평이 아니다. 무주
  • [세종로의 아침] 그럼프 할배의 답장/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그럼프 할배의 답장/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이제 세계 정세는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스케치의 선(線)처럼 보인다. 그렇게 끔찍하고 위험한 것만 아니라면 재미있을 것 같다.” 평창동계올림픽 폐막 다음날 저번에 이 난을 통해 소개드렸던 핀란드의 그럼프 할배(사실은 저자 투오마스 퀴뢰)에게 이메일로 질문지를 보냈다. ‘한국에 온 괴짜 노인 그럼프’ 집필을 위해 지난해 8월 서울과 평창 등을 찾았을 때 퀴뢰의 여정을 ‘코디’했던 방송인 페트리 칼리올라가 핀란드어로 옮겨 보냈는데 퀴뢰는 스키 여행을 다녀오느라 늦었다며 지난 2일에야 답장을 보내왔다. 책의 뼈대는 딸의 서울 유학 살이를 살피러 온 할배가 아시아인들이 생소하기 짝이 없는 동계올림픽을 잘 치를지 염려해 평창 경기장 등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북한과 미국이 언제라도 핵무기 버튼을 누를 것 같은 분위기에서 김정은의 신년사로 급반전을 이뤘지만 성공 개최가 여러 모로 의심됐던 평창동계올림픽이 잘 치러진 뒤 한반도에는 해빙의 기운이 도저하다. 책을 쓰던 시점과 확 달라진 정세 때문에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할배가 어질어질한 느낌을 갖지 않았는지부터 물었다. 퀴뢰는 “올림픽에서는 선전 효과가 너무 커 정치와 스포츠가 혼동된다. 이번 대회도 평화를
  • [세종로의 아침] ‘살아 있는’ 권력과 ‘죽어 가는’ 권력/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살아 있는’ 권력과 ‘죽어 가는’ 권력/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해마다 3월에 열리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주인공은 국무원 총리다. 총리는 개막식에서 경제성장률 전망치와 국방예산 등 국내외 주요 관심사를 공개하는 업무보고를 하고, 폐막식에서는 수천 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쏟아내는 질문을 유연하게 받아넘기는 전인대의 처음과 마지막 행사를 모두 주재하다 보니 세계인의 주목과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번 개막식은 여느 해와는 다른 장면이 연출됐다. 그 주인공이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아니라 왕치산(王岐山) 전 당중앙기율위원회 서기로 대체된 듯하다. 전인대 대표(2980명) 중 한 명에 불과한 그가 당중앙 상무위원에 버금가는 주석단에 앉았고, 관영언론 보도에서도 상무위원에 이어 호명됐다. 당·정·군 최고 간부들은 앞다퉈 나서서 그의 눈도장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퇴임하는 류옌둥(劉延東) 부총리는 왕과 먼저 악수하기 위해 마카이(馬凱) 부총리를 추월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부패 조사설이 나도는 판창룽(範長龍)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은 한술 더 떴다. 거수경례를 하고 그와 악수하며 귓속말까지 나눴다. 최고인민법원장을 지낸 왕성쥔(王勝俊) 전인대 부위원장도 한참을 기다려 악수만 하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왕은 장기 집권의 길을 연
  • [세종로의 아침] 리설주와 김옥, 그 심오한 차이/박홍환 정치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리설주와 김옥, 그 심오한 차이/박홍환 정치부 선임기자

    2011년 5월 24일 오전 중국 장쑤성 난징(南京)의 한 대형 전자업체 본관 앞. 메르세데츠벤츠의 최고급 승용차인 마이바흐 리무진이 미끄러지듯 들어와 정차했다. 뒷좌석 왼쪽 문이 열리면서 연두색 재킷과 검은색 치마를 입은 중년 여성 한 명이 내려섰다. 상석인 오른쪽 자리에서 먼저 내린 인물은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이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건물 안으로 이동한 것과는 달리 중년 여성은 차에서 내린 뒤 경호 대열 바깥으로 빠져나가 건물로 들어갔다. 여성의 신원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승용차에서 김 위원장 옆좌석에 앉아 있었던 만큼 누가 봐도 북한의 ‘퍼스트레이디’가 분명했지만 하차 이후 경호에서 방치된 듯한 모습은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여성은 이틀 뒤 다시 나타났다.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후진타오 주석 주최 환영만찬장에서다. 살구색 투피스 차림으로 헤드테이블의 중국 측 고위인사 2명 사이에 앉아 있는 모습이 중국 TV 화면에 잡혔다. 중국 측 인사들과 잔을 부딪쳐 건배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공식 방중단 명단에는 없었지만 국내 정보 파트에서는 여성이 김 위원장의 넷째 부인으로 알려진 김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옥은
  • [세종로의 아침] 모텔 이야기/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모텔 이야기/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당신이 직무와 관련해 지방 출장을 갔다 치자. 숙박 앱으로 예약을 했든 그렇지 않든 하룻밤 묵을 숙소를 잡아야 한다. 모텔 문을 열고 들어가 관리실 창을 두드리면 관리자가 숙소 열쇠를 내줄 것이다. 이때 잠깐 고민을 하게 된다. 가급적 낮은 층에 비상구가 가까운 방이었으면 좋겠다. 화재 사고가 빈발하는 겨울철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당신에게 선택의 기회는 없다. 관리자가 배정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 낮은 층에 대한 기대 역시 거의 예외 없이 깨지기 마련이다. 매우 늦은 시간, 그러니까 대실 손님이 찾아올 가능성이 거의 없는 시간대를 제외하고는 당신이 최저층에 머물 확률은 매우 낮다. 이러구러 여장을 푼 뒤 방 구석구석을 돌아본다. 특히 비상시 탈출해야 하는 창문 쪽을 꼼꼼하게 살핀다. 무엇보다 완강기가 설치됐는지가 관심이다. 한데 아쉽게도 낡은 모텔엔 완강기가 없다. 불안감이 몰려온다. 뭐 별다른 일이야 생길까만, 그래도 찝찝한 느낌에 오늘 밤은 전전반측할 가능성이 높다. ‘최신식’ 모텔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외려 낡은 모텔보다 더할 때가 잦다. 완강기는 말 그대로 로프를 몸에 걸고 천천히 내려가는 피난 도구다. 사용자의 몸무게에 따라 로프가 천천히
  • [세종로의 아침] 일관된 주택정책 원한다/류찬희 산업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일관된 주택정책 원한다/류찬희 산업부 선임기자

    정부가 주택 투기를 막으려고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집값 급등의 진원지로 꼽혔던 재건축 아파트 투기를 막으려고 3중, 4중 빗장을 걸었다. 지난 20일 발표한 재건축 아파트 안전진단 강화 조치도 이 같은 투기 억제 조치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주택 보유세를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정부의 주택 투기 억제 의지는 어느 정권보다 강하다. 서민들의 주거 안정, 주거 복지를 위한 대책이라는 점에서 수긍이 간다. 하지만 예측 가능성이 없는 오락가락 정책을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경제 현안을 풀어 가는 수단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를 수 있다. 특히 단순 경제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까지 비화한 주택 투기 문제를 풀려면 다양한 수단이 동원된다. 그때마다 정책 방향이 틀어질 수도 있다. 정책마다 부작용도 따르기 마련인데도 마치 어려운 경제 상황이 모두 주택 시장에서 기인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게 문제다. 참여정부 시절 주택정책은 충격요법 그 자체였다. 집값 상승이 정권의 부담으로 작용하자 일단 주택 거래부터 막고 보자는 식이었다. 그러나 시장은 거꾸로 흘렀다. 절대적으로 주택 공급량이 부족한 상황인지라 거래 차단 정책은 집값 폭등을 잡는
  • [세종로의 아침] 핀란드의 그럼프 할배께/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핀란드의 그럼프 할배께/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듣던 대로 정말 까칠하시더군요. 올림픽 개막을 몇 시간 앞두고 소설의 첫 줄을 읽자마자 빵 터졌습니다. 새파랗게 젊은 친구가 권력을 잡았다는 소식에 기분이 좋지 않으셨다고요? 핀란드 썰렁 유머의 제왕인 저자 투오마스 퀴뢰(44)가 햇빛이든 파리 소리든 젊은이들의 게으름 때문이든 늘 기분이 좋지 않은 할아버지 친구들을 모델로 창조한 괴짜 노인 캐릭터시니 오죽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이분 묘하게 정이 가고 끌립니다. 지하철에서 매일 마주치는 우리네 할배처럼 말이지요. 그는 화난 뚱보 소년과 대걸레 머리의 양키 대통령이 날 선 핵위협 발언을 쏟아낼 때 손녀의 서울 유학살이도 살필 겸 겨울스포츠 선진국 국민답게 스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시아인들이 동계올림픽을 잘 치를까 싶어 둘러본다는 것이 소설의 기둥입니다. 저자는 2년 전 구상을 끝내고 자료 조사를 마친 뒤 3부작 중 1부 ‘괴짜 노인 그럼프’를 옮겨 펴낸 국내 출판사에 방문 의사를 전달한 뒤 지난해 8월 3박 4일 동안 서울과 평창, 강릉을 돌아보고 두세 달 만에 원고를 보내왔답니다. 열세 살 때 태권도를 배웠고 한국 문화를 체감하고 싶어 2006년 찾았던 내력을 감안하더라도 고작 나흘 돌아보고 이런 책을 쓰
  • [세종로의 아침]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두 얼굴/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두 얼굴/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공자가 ‘춘추’에서 다룬 동주(東周) 전반 294년(기원전 770~476년)과 유향이 ‘전국책’에서 편찬한 동주 후반 232년(기원전 453~221년)의 시기를 합쳐 ‘춘추전국시대’라고 일컫는다. 군웅이 할거하던 이 시대는 10여개 제후국들이 저마다 부국강병을 외치며 국적·신분을 가리지 않고 널리 인재를 등용하면서 배출된 수많은 사상가와 학자들이 갖가지 고견을 쏟아냈다. 백화제방(百花齊放)이다. 이때 등장한 유가와 법가, 도가 등 제자백가(諸子百家)는 이런 고견을 둘러싸고 불꽃 튀는 논쟁을 펼쳤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이다. 중국이 학문과 사상의 찬란한 꽃을 피우며 문화의 최고 황금기를 구가한 까닭이다. ‘백화제방, 백가쟁명’은 2200년을 뛰어넘어 1956년 사회주의 중국에서 ‘쌍백(雙百)방침’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마오쩌둥은 관료주의와 종파주의 등 내부 모순을 해결하고 춘추전국시대처럼 문화 황금기를 재구축하겠다며 이를 강력히 밀어붙였다. 자유로운 토론을 보장한다고 누차 강조했지만 ‘사회주의 실체’를 경험한 지식인들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말하는 자에게 죄를 묻지 않는다’(言者無罪)며 적극 비판해 줄 것을 호소하고 나서자 나이브한 지식인들이 하나 둘
  • [세종로의 아침] 독도함에서의 사흘/박홍환 정치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독도함에서의 사흘/박홍환 정치부 선임기자

    사흘, 정확히 말해 45시간의 특별한 경험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아침 일찍 KTX에 몸을 싣고 경남 진해 해군기지로 향할 때만 해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전날 밤 격전을 치른 탓에 창원중앙역이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사흘간의 독도함 승선 취재는 그렇게 시작은 미미했다. 하지만 시나브로 감동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지난 25일 정오. 승선하자마자 부두에 단단히 묶여 있던 홋줄이 풀려 올라가고, 현문(舷門)이 치워지면서 배수량 1만 4500t의 아시아 최대 상륙함 독도함이 육중한 선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인선에 이끌려 조심스럽게 협수로를 벗어난 독도함은 이내 닻을 던져 내리고 본격 훈련에 돌입했다. 선미의 밸러스트 탱크를 열어 평형수를 채워 넣자 선체 하부 격납고 후미가 서서히 2m쯤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고속상륙정(LCM) 한 척이 미끄러지듯 안으로 들어왔다. 독도함은 고속상륙정 2척, 전차 6대, 상륙돌격장갑차 7대, 155㎜ 야포 3문 등을 하부 격납고에 싣고 상륙작전을 펼칠 수 있다. 잠시 후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이륙한 UH60 헬기 2대가 접근했다. 컨트롤타워인 함교의 항공통제 구역이 분주해지면서 이착륙 훈
  • [세종로의 아침] 영화와 생태관광 이야기/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영화와 생태관광 이야기/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영화 ‘매트릭스’에서 스미스(휴고 위빙) 요원이 한 말이다. “이 행성의 모든 포유류는 주위 환경과 자연적인 균형을 맞춰 지내는데 너희 인간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너희는 어느 곳에 이주하면 번식을 거듭해 마침내 모든 자연 자원을 소진하고 그다음에는 유일한 생존 방법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이다. 이 행성에 그 같은 생존 방식을 따르는 생물이 하나 더 있다. 그게 뭔지 아나? 바이러스. 인간은 이 행성의 암이다.” 비슷한 대사가 ‘지구가 멈추는 날’에도 나온다. 신과 ‘거의 동급’일 정도로 전능한 외계인 클라투(키아누 리브스)가 지구로 날아온다. 푸른 지구를 인간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다. 물론 인류의 씨가 마르기 직전 클라투가 이를 저지하긴 하지만 인간을 바이러스로 보는 관점에서 스미스 요원과 클라투는 이견이 없다.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서도 그랬다. 악당 밸런타인(새뮤얼 잭슨)이 세계 유력 인사들을 포섭하기 위해 나름의 논지를 편다. 이를 요약하면 지구가 열을 내는 건 바이러스와 싸우기 때문인데 그 바이러스가 바로 인간이라는 거다. 영화가 당대의 시각을 반영하는 경향성이 뚜렷한 매체라고 전제한다면 서양 사람들이 생태계에 대해 느끼는 위기감이
  • [세종로의 아침] 조급증이 강남 집값 광풍 키운다/류찬희 산업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조급증이 강남 집값 광풍 키운다/류찬희 산업부 선임기자

    서울 집값이 미쳤다. 자고 나면 하루가 다르게 억(億) 소리가 들린다. 참여정부 시절 주택 광풍을 다시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의 집값 광풍은 참여정부 때와 흡사한 점이 많다.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집값이 급등, 정권에 부담을 주는 게 우선 비슷하다. 통상 정권 출범 초기에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데 경제적 부담까지 안겨 주니 새 정권으로서는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집값 폭등이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계층 간 갈등을 심화시키는 등 사회문제로 번지는 것도 참여정부 때와 같다. 주택 투기 억제 수단으로 무거운 세금 부과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비슷하다. 참여정부 때 제시된 것이 주택 공시지가를 현실화하는 동시에 종합부동산세, 보유세를 강화하는 것 등이다.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집값을 잡으려면 무거운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주장이 들끓고 있다. 다주택자를 바로 보는 시각도 엇비슷하고, 주택 거래 활성화에 대한 시각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집을 여러 채 보유하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고 투기꾼으로 몰아붙이는 경향이 짙은 것도 마찬가지다. 조급증은 한쪽 면만 바라보는 대책으로 흐를 수 있고, 집값 광풍을 잡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 정권의 주택 투기억제
  • [세종로의 아침] ‘로사리오는 죽었다’/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로사리오는 죽었다’/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체육기자가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이 코앞인데 뜬금없이 책 얘기냐고 지청구할지 모른다. 그럴 줄 뻔히 알면서도, 지난 며칠 곰곰이 평창을 주제로 떠올려 보다가 결국 이 책을 화두로 잡은 것은 그만큼 이 책이 던진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대학 후배인 출판사 사장이 조심스럽게 이 책을 건넸다. “필리핀에서 삶의 방향을 고민하던 20년 전 우연히 서점에서 접한 책인데 누군가 옮기겠지 싶어 미뤄 뒀다. 그런데 누구도 한글로 옮기지 않더라. 해서 앞부분을 거칠게 번역해 놓은 원고를 출판사 몇 군데에 보냈는데 아니나 다를까 퇴짜 맞았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내가 옮겼다.” 척박한 출판시장 풍토에도 꿋꿋이 한 길을 걸어온 후배가 손수 번역해 자기 출판사 이름으로 책을 냈다. 다른 출판사들이 간행을 거절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떠봤더니 “다른 이에게 권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서일 겁니다”라고 했다. 보통 신간을 내면 “잘 좀 홍보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게 상례인데 그런 얘기도 없었다. 불편해서다. 정말 이렇듯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 또 있었던가 싶다. 필리핀 수비크만 미군기지 근처 올롱가포 거리에서 살아가던 로사리오 발루요트가 1987년
  • [세종로의 아침] 중국 10년 주기 격변설/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중국 10년 주기 격변설/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2000년대 초반 중국 베이징 외교가에 ‘중국의 10년 주기 격변설’이 회자된 적이 있다. ‘중국 역사는 대략 10년을 전후해 대변화를 겪는다’는 게 ‘설’(說)의 요지다. 1921년 7월 마오쩌둥(毛澤東) 등 지역 대표 12명이 모여 성립된 초미니 공산당이 천신만고 끝에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을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정권을 창출한 것은 1949년이었다. 건국 대업을 이룬 자신감으로 충만한 중국이 15년 내 영국을 따라잡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나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마다 공업생산을 25% 이상 늘리겠다며 대약진운동에 본격 돌입한 것도 1959년의 일이다. 이를 위해 ‘산업의 쌀’인 철강 생산에 올인했다. 녹일 철이 부족하자 냄비와 숟가락, 삽, 곡괭이 등 집기와 농기구를 죄다 쏟아부어 만들어 낸 것은 쓸모없는 무쇠 덩어리뿐이었다. 5억 농민들이 농사일은 내팽개치고 무쇠 덩어리 생산에만 매달리는 바람에 중국 전역에 대기근이 몰아쳐 3000만명 이상이 굶어 죽는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경제파탄을 책임지고 물러난 마오는 권력을 되찾기 위해 세상 물정에 어두운 어린 홍위병을 앞세워 문화혁명을 일으켜 1969년 눈엣가시 같던 정적 류샤오치(劉少奇)를 북망산천으
  • [세종로의 아침] 카이사르 것은 카이사르에게/박홍환 정치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카이사르 것은 카이사르에게/박홍환 정치부 전문기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8개월이 다 돼 간다. 국방과 안보를 책임진 송영무 국방부 장관으로선 취임 후 반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지난 7월14일 송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단순한 국방개혁을 넘어 새로운 국군을 건설하겠다”고 말했다. 제2 창군에 버금가는 강도 높은 국방개혁을 통해 ‘강한 군대’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송 장관은 노무현 정부 당시 합동참모본부 간부와 해군참모총장 등으로 재직하면서 ‘국방개혁 2020’ 등을 입안한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다. 2008년 예편한 뒤에도 국방개혁 전도사를 자처하며 뛰어다녔다. 문재인 정부 국방 화두인 ‘국방개혁 2.0’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기도 하다. 몇 차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는 국방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미완에 그쳤던 국방개혁을 자신의 손으로 기필코 완성하겠다는 의지가 매우 투철해 보였다. 그가 추구하는 국방개혁의 종착점은 강한 군대다. 군인은 반드시 작전과 전투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상머리에 앉아 펜과 머리만 굴리는 군인은 필요없다고도 했다. 미군의 ‘파이트 투나이트’(fight tonight·상시전투태세) 구호와 같은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 [세종로의 아침] 다시 기본으로/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다시 기본으로/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웃픈’ 이야기 한 자락. 지난주 남도로 출장 갔을 때다.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몰아가다 길가에 선 커다란 입간판에 눈길이 쏠렸다. ‘경치 좋은 길’이란 문구가 적혀 있고, 그 아래 화살표도 그려져 있다. 한데 화살표의 방향이 의아했다. 지금 가고 있는 길도 훌륭한데 이보다 더 경치 좋은 길이 도로 오른편에 있다는 거다. 당연히 관심이 쏠릴 수밖에. 한데 화살표를 따라가도 ‘경치 좋은 길’은 없었다. 외려 좁은 농로로 가느라 개고생하는 길만 있었을 뿐이다. 분통과 의문이 동시에 솟구쳤다. 왜 화살표는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입간판은 잘못된 위치에 세워져 있었다. 도로 반대편에 세워져야 옳았다. 한데 그 자리엔 이미 같은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고, 갈 곳 잃은 입간판은 전혀 소용이 없는, 그것도 전봇대 바로 뒤에 옹색하게 세워져야 했던 거다. 하도 익숙해 분노는커녕 쓴웃음만 짓고 말 일을 왜 새삼 끄집어 내는가. 이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는, 그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초는 지난 18일 열린 1차 국가관광전략회의다. 이날 현 정부의 관광 정책에 대한 큰그림이 그려졌다. 정부가 제시한 정책의 핵심은 내국인의
  • [세종로의 아침] ‘캄푸바이아’를 기억하십니까/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캄푸바이아’를 기억하십니까/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2018년 무술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이외에도 제법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가 여럿이다.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같은 해 가을에 시작되는 아시안게임이 있고, 앞서 6월에는 또 하나의 지구촌 축제인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축구대회가 있다. 본선 개막에 6개월가량 앞서 열리는 조 추첨은 카운트다운의 시작이다. 캘린더처럼 이어지는 다음 순서는 역시 베이스캠프를 정하는 일이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통산 네 번째 대회 정상에 오른 독일은 ‘진정한 챔피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대회 최다 우승국인 브라질도 4강전에서 독일에 무려 7골을 내주며 나가떨어졌다. 독일이 들어올린 네 번째 월드컵 트로피에 극찬에 가까운 수식어가 따라붙은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캄푸바이아’, 바로 독일축구협회(DFB)가 브라질 현지에 손수 건립한 베이스캠프 때문이다. 조 추첨 결과 사우바도르와 포르탈레자, 헤시페 등 세 군데 경기장이 확정되자 DFB는 2시간 이내에 각 경기를 치를 수 있을 만큼 이동이 용이한 곳을 물색하다가 리우데자네이루 북쪽 1000㎞ 지점 대서양을 마주 보는 산투안드레라는 한적한 해변 마을을 찾아냈다. 그런데 그곳에 적당한 거처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아예 리조트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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