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 [세종로의 아침] 벌거벗은 임금님/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벌거벗은 임금님/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프랑스 왕정체제를 허문 시민혁명 프랑스대혁명(1789)의 뿌리는 계몽주의 사상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가들과 비평가들은 그 혁명의 직접적인 도화선을 풍자에서 찾는다. 왕실에 만연한 사치와 향락, 특히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방탕과 성적 문란을 향한 대중들의 분노. 거리에 뿌려지는 앙투아네트의 문란상을 담은 포르노그래피며 시·소설, 낙서…. 그 풍자로 분노한 대중은 결국 콩코드광장에서 두 사람을 처형했고 공화정 체제를 이끌어 냈다. 프랑스대혁명에서 그랬던 것처럼 풍자는 ‘비판적 웃음’의 속성을 갖는다. 현실 권력과 권위에 대한 부정과 모순된 현실의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표현을 통한 이상 세상의 구현을 노린다고 할까. 하지만 풍자는 사회통념에 크게 역행하지 않는 시각과 사회 발전을 향한 냉철한 시선을 가질 때 빛을 발한다. 거꾸로 지나친 왜곡과 특정 집단의 이익에 기울 때 사회적 공감은커녕 부메랑의 참극으로 끝나기 일쑤임을 역사는 역력히 보여 준다. 풍자의 역풍은 근래 우리 정치계에서도 또렷하다. 탄핵정국이 한창이던 2017년 초 박근혜 전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 ‘더러운 잠’이 국회의원회관에 걸려 논란을 빚었고, 이에 앞서 현 자유한국당의 전신
  • [세종로의 아침] 하비샴의 왈츠/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하비샴의 왈츠/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황해도 평산군 서봉면 어사천리 511번지. 인터넷에 물었더니 신통하게도 북한 황해도의 행정구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중학교 1학년 때였던가, 아버지와 함께 지금은 서울 구기동으로 옮긴 당시 이북5도청 자료실에 들러 지도를 뒤적거리던 기억이 삼삼하다. 멸악산맥을 머리에 이고 있는 남천읍, 살기 넉넉했을 법한 그 마을을 가로지르는 경의선 평산역 부근에 부모님 집이 있다고 했다. 그곳은 우리 5남매의 ‘원적’(原籍)이기도 하다. 지금은 폐지된 호주제와 호적법에 따라 표시된, 본적을 바꾼 이들의 변경 전 ‘원래 주소’다. 대부분의 실향민, 이북의 고향을 등진 이들이 자식들에게까지 그들의 뿌리를 문서로 표시해 대물림했던 유산 아닌 유산이었다. 아버지는 늘 “네가 크면 틀림없이 평산 땅에 갈 기회가 생길 테니, 그때 이 주소를 찾아가 할아버지와 막내 고모님을 찾아라. 그러려면 주소를 언제든지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지난 15일 평양에서 열린 29년 만의 평양 원정 남북 축구에 “혹시나…” 하고 솔깃해진 건 아버지의 예언을 확인해 보고 싶은 사심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2004년 당시 열풍과도 같았던 ‘금강산 관광 러시’에 휩쓸려 딱 한 차례 여름 봉래산에 올라
  • [세종로의 아침] 베트남만 만나면 작아지는 중국/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베트남만 만나면 작아지는 중국/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응우옌푸쫑 베트남 국가주석은 며칠 전 동해(남중국해) 상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응우옌푸쫑 주석은 당중앙 집행위 연설을 통해 “동해 상황에 관해 과학적 근거를 갖고 분석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예측하라”고 행정부에 지시했다. 그의 엄명은 중국 해양탐사선 하이양디즈((海洋地質) 8호가 7월 이후 베트남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해역에 수시로 침범해 탐사활동을 펴는 등 도발을 일삼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앞서 경비함을 긴급 파견해 대치 상황을 만들고 응우옌쑤언푹 총리와 팜빈민 외교장관이 나서 중국에 강력히 항의했지만 결과는 헛수고였다. 이 와중에 표류 중인 베트남 어선의 구조 요청에도 중국 선박이 ‘돈을 주지 않는다’며 응하지 않고 거절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격앙된 베트남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이에 권력 서열 1위 응우옌푸쫑 주석이 직접 나서자 베트남은 중국에 전방위 공격을 퍼붓고 있다. 베트남 문화부는 지난주 중국이 남중국해의 90%를 자국 영해라며 U자 형태로 그은 해상경계선(구단선)을 표시한 지도가 화면에 나온 애니메이션 상영을 금지했다. 국방부는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에 “미국과 베트남이 항행과 해양
  • [세종로의 아침] 홍콩 시위, 중국 약속 지키면 해결/이기철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홍콩 시위, 중국 약속 지키면 해결/이기철 국제부 선임기자

    홍콩 반정부 시위가 장기화되는 것이 우려스럽다.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로 촉발된 시위가 지난 6월 이후 5개월째 주말마다 반복되고 있다. 3개월간 지속된 2014년 우산혁명보다 더 오래 끌면서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핏빛 걱정도 앞선다. 실제로 시위에 참가한 두 청소년이 지난 1일과 4일 실탄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준군사 조직인 인민무경도 인근 선전시에서 대기 태세에 들어갔다. 중국 병사는 막사 옥상에서 확성기로 시위대를 향해 “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무력 개입 긴장이 높아지면서 ‘톈안먼 트라우마’를 가진 유엔과 유럽연합, 미국, 독일, 일본 등이 우려를 표했다. 미 상하원 외교위원회는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을 통과시키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국제사회의 압력에 중국 외교부는 “내정 간섭 말라”고 맞선다. 그러나 이게 과연 내정 간섭일까. 홍콩이 아시아 금융허브가 된 것은 각국 기업이 진출한 결과다. 이를 뒷받침한 것이 안정된 행정, 예측 가능한 사법시스템 등으로, 이를 무너뜨리고 특히 시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각국이 준엄하게 비판하고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홍콩 정세 불안은 각국에도 영향을 미치기
  • [세종로의 아침] 공공미술의 민주화/손원천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공공미술의 민주화/손원천 문화부 선임기자

    우리나라 공공미술 시행착오의 역사를 말할 때 상징적이라 할 만한 네 개의 사례가 있다. 그중 하나가 1998년 ‘성남시 환경조형물 실태조사’다. 당시 분당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덩달아 수많은 공공조형물이 조성됐다. 한데 그 지역 미술가 두 명이 관내 공공조형물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였더니 한 무명 작가가 수많은 조형물 조성 사업을 독식해 왔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태는 국회까지 번지는 등 뜨거운 이슈가 됐고, 이후 공공미술 진흥제도가 작가를 위한 것만이 아닌 주민의 문화 향유 권리까지 지원하는 제도라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얼마 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내놓은 자료는 우리나라 공공미술 정책이 이전에 견줘 채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권익위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전국의 공공조형물은 모두 6287점이다. 파악조차 못한 3분의1가량의 지방자치단체 현황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13년 말 기준 3534점에 비해 얼추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반면 권익위가 권고한 ‘지자체 공공조형물 건립 및 관리체계 개선 방안’에 따라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심의 기준 등을 마련한 곳은 243
  • [세종로의 아침] 조국, ‘김경수의 길’ 가려나/최광숙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조국, ‘김경수의 길’ 가려나/최광숙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앞으로 청와대나 감사원은 ‘공직 기강’ 말도 꺼내지 말라.”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하자 한 고위 공무원이 한 말이다. 입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 뒤로는 법과 위법 사이를 줄타기하듯 살아온 사람이 엄정한 법 집행자 역할을 해야 하는 법무장관으로 기용됐는데, 누가 누구에게 공직 기강을 운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진흙탕물’ 윗물이 아랫물에게 깨끗하라고 주문할 수는 없는 법이다. 성난 민심은 말할 것도 없이 대통령과 청와대라면 바짝 몸을 낮추는 공무원들도 조국 사태와 관련해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싸늘한 반응이다. “인사청문회에 나온 장관 후보 중 역대 최강의 의혹 덩어리”, “공무원은 음주운전만 해도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데 저런 사람이 어떻게 법무장관이냐”, “이런 인사는 처음 본다”고 혀를 내둘렀다. 공무원들 눈에도 조 장관 일가의 입시비리, 사학비리, 사모펀드 투자 등 갖가지 의혹은 ‘요지경 세계’다. 기업인들에게 뭉칫돈을 받는 등 그동안 접한 공직자 비리는 ‘소박하다’고 해야 할 정도다. 조국 펀드 주변에 등장하는 주가 띄우기, 우회상장 같은 말들은 한탕 작전으로 거액을 챙기려는 전문 투기세력 냄새까지 풍긴다. 사상 초유의 법무
  • [세종로의 아침] 돌림병 삭발/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돌림병 삭발/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등단작으로 유명한 시 ‘승무’(僧舞)에서 초점의 대상은 다름 아닌 파르라니 깎은 머리의 비구니다. 젊은 여승의 절제되고 고결한 모습으로 일제시대 위기에 처한 민족의 정서를 풀어내 요즘 더욱 새삼스럽다. 이 시 때문일까. 불교 합동수계식을 취재할 때마다 머리 깎은 젊은 비구니에게선 왠지 숙연한 느낌을 받곤 한다. 중생구제의 큰 원을 세워 속세와 단절한 출가자들. 부모형제 등 속세의 인연들에게 합장하며 마지막 인사를 올리는 비구니들의 깎은 머리는 유난히 더 파랗게 빛이 난다. 불교에서 삭발은 일반인들의 인식보다 훨씬 더 고차원의 의식이다. 번뇌와 무지인 ‘무명’(無明)의 단초라는 머리카락(무명초)을 잘라 내는 고통의 인내와 철석같은 다짐의 결정인 것이다. 그런데 그 엄숙한 삭발이 세상에선 가끔씩 변질되곤 한다. 지금 50대 후반인 기자의 중고교 시절 삭발에 가깝게 박박 깎고 다녀야만 했던 두발 규정은 정말 따르기 싫은 것이었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조직폭력배들의 민머리 군상도 별로 보고 싶지
  • [세종로의 아침] 테니스, ‘유일무이’가 중요한 이유/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테니스, ‘유일무이’가 중요한 이유/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유일하다’는 원래 ‘유일무이’(唯一無二)에서 나온 말이다.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사자성어 ‘공전절후’(空前絶後)와 맥을 같이한다. 평범하지 않은 뛰어난 경지, 혹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존재를 가리킨다. TV를 비롯한 각종 매체의 광고 문구 가운데 가장 쓰임새가 많은 단어가 ‘국내 유일’이다. 식상한 말이긴 해도 일단 들으면 솔깃해진다. 스포츠마케팅 업체에서는 자신들이 보유한 용품이나 선수, 진기한 기록 등을 ‘유일’이라는 말로 그럴싸하게 포장해 그 가치를 높이는 데 힘을 쏟는다. 스포츠 기사에서도 ‘유일’이라’는 말은 빠지지 않는다. 역사가 오래된 종목일수록 쓰임새는 더 많아진다. 기록을 소중히 여기는 야구와 테니스 같은 종목이 대표적이다. 특히 테니스는 ‘유일한 기록’만으로 기사를 작성해도 지면이 차고 넘친다. 이용자들이 참여해 만든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검색창에 지난 9일 끝난 US오픈 테니스대회 관련 기록을 치면 수없이 많은 기록들이 링크를 타고 핏줄처럼 뻗어 있다. 올해 대회가 139번째였던 메이저대회였던 만큼 최다, 최소, 최장, 최단 등 ‘유일’과 관련된 기록들은 새롭게 옷을 갈아입었다. 라파엘 나달이 로저 페더
  • [세종로의 아침] 중국 국강필패론과 사마소의 심보/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중국 국강필패론과 사마소의 심보/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국강필패’(國强必覇)라는 사자성어를 자주 입에 올린다. 국가가 강해지면 반드시 패권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이 말은 2009년 영국을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케임브리지대에서 한 연설에서 “국강필패, 중국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국강필패론)고 언급하면서 처음 선보였다. 이후 중국 외교 관리들이 이를 간혹 거론했을 뿐 국제사회에서 언급된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 중 2014년 시 주석이 독일에서 열린 공개 강연에서 중국 국방예산 두 자릿수 증가에 대해 “중국같이 큰 대국의 국방 건설에 필요하다”며 “중국은 절대로 국강필패의 길을 걸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답하며 국제 무대에 본격 등장했다. 리커창 총리를 비롯해 왕이 부장 등 외교부 관리들도 가세해 앞다퉈 전파한 덕분에 ‘국가논리’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시 주석은 올 들어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국강필패론을 언급하는 경우가 부쩍 잦아졌다. 그는 지난달 28일 우즈베키스탄 총리를 만나서도 “중국은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가 추구했던 ‘국강필패’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겉으로는 국강필패론을 내세우면서도 남중국해의 90%에 해당하는 지역에 구단선(해상경계선)을 그어
  • [세종로의 아침] 트럼피즘과 핵심이익 사이/이기철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트럼피즘과 핵심이익 사이/이기철 국제부 선임기자

    “일본이 공격받으면 우리(미국)는 제3차 세계대전을 치를 것이다. 미국은 우리의 생명을 걸고 일본을 보호하고 싸울 것이다. … 일본은 미국이 공격받아도 전혀 우리를 도울 필요가 없다. 소니 TV로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6월 26일 폭스 비즈니스네트워크 인터뷰) “우리는 독일을 러시아로부터 보호해 주는데, 러시아는 독일로부터 수십억 달러를 받아 가고 있다. … 현재 독일에 주둔하는 미군 3만 4000명 가운데 1000명을 빼내 폴란드로 보내겠다.”(트럼프 대통령, 6월 12일 백악관 기자회견)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들을 쥐어짜려는 발언들이다. 지난 14일 미 코네티컷주 셸 석유화학단지 근로자들을 향한 연설에선 속내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솔직히 (미국과) 최악의 관계인 나라들은 우리의 동맹국이다. 동맹이 적보다 더 미국을 우려먹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지자들을 향한 정치적 레토릭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나갔다. 이런 어법 속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노선인 ‘트럼피즘’이 있다. 국수적 대외정책과 보호무역주의에 기반을 둔 트럼피즘은 그의 재선 캠페인이 본격화면서 극성을 더하고 있다. 트럼피즘은 그의 임기
  • [세종로의 아침] 청사초롱의 34번째 봄을 기다리며/손원천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청사초롱의 34번째 봄을 기다리며/손원천 문화부 선임기자

    한국관광공사가 월간지 형식으로 발행하던 사보 ‘청사초롱’이 지난 3·4월 합본호를 끝으로 휴간됐다. 1987년 4월 창간호를 낸 이후 꼬박 32년 만이다. 지령으로는 500호, 계절로는 서른세 번째 봄에 걸음을 멈춘 것이다. 청사초롱은 애초 ‘관광공사’라는 이름으로 발행됐다. 당시엔 그야말로 ‘사보’였다. 그러다 2000년 1월호부터 한국 관광산업의 등불이 되겠다는 뜻을 담아 ‘청사초롱’으로 제호를 바꿨다. 내용 역시 ‘사보’를 넘어 한국 전역의 여행지를 취재해 담아냈다. 공기업이 펴낸 ‘사보’였지만 관광 현장에서의 무게감은 가볍지 않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 실무조직에서 펴낸 ‘사보’였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휴간 사유는 구구절절이지만 압축하자면 ‘시대 흐름에 뒤떨어져서’다. 동영상도 아니고, ‘스마트’하지도 못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책에서 정보를 얻는 이도 드물 테니 굳이 돈 들여 만들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청사초롱’이 가진 가치를 지나치게 정보 전달의 측면으로만 좁혀 판단한 결과라는 생각이다. 여행은 누구에게나 로망이다. 다른 산업분야에 견줘 정서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단순 정보 전달이 목적이라면 브로슈어 등 온갖 정보들로
  • [세종로의 아침] ‘천인갱’과 국가의 책무/최광숙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천인갱’과 국가의 책무/최광숙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20대 청춘에 징용에 끌려가 일본 오키나와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 아버지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정부로부터 150여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필리핀으로 끌려가 굶주리면서 중노동에 시달렸다는 지인의 할아버지는 약주만 드시면 우셨다고 했다. 하지만 강제 노역 사실을 증명할 수 없어 한 푼도 보상받지 못했다. 그래도 아버지와 지인의 할아버지처럼 ‘사지’(死地)를 가까스로 벗어나 고국에서 결혼도 하시고 자식 낳고 평범한 삶을 살다가 돌아가신 것은 어찌 보면 천운이다. 두 분처럼 일제강점기 국외 전쟁터와 노역장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125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20만~60만명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머나먼 이역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사망자 숫자가 무려 40만명 차이가 날 정도로 우리 정부는 얼마나 많은 강제 동원자들이 나라 밖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우리가 일본에 요청해 받아낸 관련 자료는 1971년 ‘구일본군 제적 조선출신 사망자 연명부’(2만 2919명 등재)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최근 중국 하이난섬에 있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조선인들의 집단 매장지 ‘천인갱’(千人坑)을 취재하면서 가
  • [세종로의 아침] 명성의 부활/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명성의 부활/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한국 장로교의 양 산맥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과 합동(예장합동)은 원래 한 뿌리 공동체였다. 1912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조선예수교장로회를 모태로 한다. 예배를 함께 드리는 한 가족이었지만, 1959년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과 에큐메니컬 운동 수용 문제로 대립하다가 갈라진 뼈아픈 역사를 갖는다. 이 가운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원인 예장통합은 진보 성향의 교단이다. 개혁교회 전통을 계승하면서 교회 일치와 연합을 추구하는 신학적 노선 때문이다. 최근 목회자 세습으로 관심이 집중된 명성교회는 예장통합의 상징이자 한국 장로교 최대의 교단이다. 등록 교인만 10만명인 그 초대형 교회를 있게 한 주인공은 창립자인 김삼환 목사다. 1980년 서울 강동구 명일동 상가 건물 2층에 십자가를 세워 교인 20명으로 첫 예배를 드린 명성교회. 그 교회는 지금 장로교 단일 교회로는 세계 최대의 교세를 자랑한다. 그 교세 성장의 바탕으로 명성교회는 ‘세상에 속한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참교회를 지향한다’고 늘 강조한다. 실제로 명성교회는 복음의 전파와 나눔의 실천 차원에서 그 어떤 교회보다도 앞장서고 있는 공동체로 인정받는다. 그
  • [세종로의 아침] 축구는 쇼, 호날두는 돈/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축구는 쇼, 호날두는 돈/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축구는 ‘쇼’다. 고대올림픽에서 출발한 모든 종류의 스포츠가 그랬듯 축구도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유희성’이 본래 모습이다. 축구가 기원전 7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에피스키로스라는 간단한 형식을 갖춘 놀이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고, 고대 중국에서는 이보다 먼저 축구와 비슷한 공놀이가 행해졌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서기 40년 무렵 로마가 브리튼섬을 침공하면서 보급시킨, 전투력 향상을 위한 군사경기의 일종인 ‘하르파스툼’이 근대 축구의 기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수십 세기 동안 투박했던 축구를 깎고 다듬어 ‘풋볼’로 발전시킨 영국은 1800년대 중반 협회를 만들고 규칙을 세워 축구의 ‘성문화’에 성공했고, 유럽 각국에 이를 널리 퍼뜨렸다. 1904년 잉글랜드축구협회의 규정을 토대로 생겨난 국제축구연맹(FIFA)은 ‘지상 최대의 쇼’로 불리는 월드컵축구대회의 탄생을 예고했다. 세계 5대 메가스포츠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월드컵은 돈을 빼곤 생각할 수 없다. 지난해 러시아월드컵에 걸린 총상금은 무려 7억 91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8745억원이다. 총상금 1억 달러를 처음으로 넘긴 게 1998년 프랑스월드컵(1억 300만 달러)이었으니, 20년이 흘러 FI
  • [세종로의 아침] 중국과 ‘라이언 건축물’/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중국과 ‘라이언 건축물’/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중국인은 ‘세계 최고’를 유난히 좋아하는 편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港珠澳大橋)와 가장 높은 철로(靑藏鐵路), 가장 큰 댐(三峽大壩), 가장 긴 터널(終南山遂道), 가장 긴 수로(紅旗渠), 가장 긴 고갯길(川藏公路), 가장 높은 다리(北盤江大橋)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건물 역시 초고층일수록 더욱 좋아한다. 상하이와 베이징, 광둥성 선전 등 중국의 대도시가 ‘하늘에 닿는’ 마천루 건설 경쟁에 뛰어드는 까닭이다. 중국의 마천루 건설 경쟁은 개혁·개방 1번지인 선전에서 1985년 궈마오(國貿)빌딩(160m)을 올리며 불을 지폈다. 곧바로 추격에 나선 상하이는 중국 최고층인 상하이센터(632m)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베이징은 중신(中信)빌딩(528m)을 건설했고, 광둥성 광저우는 저우다푸(周大福)금융센터(530m), 랴오닝성 선양은 바오넝환추(寶能環球)금융센터(568m)를 세우며 뒤를 쫓았다. 여기에다 톈진은 가오인(高銀)금융117빌딩(597m)을 짓고, 후베이성의 우한은 뤼디(綠地)센터(636m)를 건설하고 있다(궈마오는 주변에 593m짜리 핑안국제금융센터 등 150m가 넘는 260여 개의 마천루 숲에 가려진 지 이미 오래다). 중국의
  • [세종로의 아침] 판사가 의원과 축구하는 나라/이기철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판사가 의원과 축구하는 나라/이기철 국제부 선임기자

    한일 관계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으로 빠져들고 있다. 기업의 대응이나 ‘의병’, ‘죽창가’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일본에 ‘경제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이런 최악의 관계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며 일본제철이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취지의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이 결정적 불씨가 됐다. 지난해 10월 이런 판결을 내린 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은 최근의 한일 관계를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졌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한 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명수 대법원장, 요즘 한일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할까요?” 물었더니 그는 “글쎄요…”라며 한 장의 사진을 보내 줬다. 그 사진을 받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친선 축구대회였다. 경기 파주 NFC에서 국회 주최로 공을 찼고, 각각 20여명이 파랑·빨강·하양 유니폼을 갖춰 입고 ‘입법·사법·행정 3부 친선 축구대회’라는 현수막을 앞세워 기념 촬영한 사진이었다. 행정부 팀이 우승했고, 사법부 팀이 준우승을 했다고 한다. 수년 만에 열렸다는 이 체육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은 검사가, 최우수공격상은 판사가, 최다득점상은 의원에게
  • [세종로의 아침] ‘쪽잠운전’의 버스 안에서/손원천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쪽잠운전’의 버스 안에서/손원천 문화부 선임기자

    출퇴근 때 주로 광역버스를 이용한다. 흔히 ‘M버스’라고 불리는 차다. 매일같이 이용하다 보니 종종 황당한 경험도 한다. 어제 아침 출근길엔 이런 일도 겪었다. 버스가 제2자유로의 끝, 상습 차량 정체 지역에 들어섰다. 차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있다. 한데 정체 꼬리 부분이 점점 다가오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운전기사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기사의 얼굴을 흘낏 보니 꾸벅대며 조는 것 같지는 않다. 순간적으로 기사가 쪽잠을 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음운전이야 살짝 졸다 눈을 뜬다지만, 수초 동안 꼼짝하지 않는다면 잠을 자는 것이나 진배없다. 사고가 임박해진 순간, 본능적으로 소리를 질러 기사를 깨웠다. 뭐라고 웅얼대며 ‘잠에서 깬’ 기사가 급히 핸들을 꺾었고, 정말 습자지 한 장 차이로 간신히 추돌을 면했다. 버스 앞은 이탈리아 M사의 최고급 승용차였다. 설령 트럼프 미 대통령이 타는 ‘비스트급’의 승용차였다 해도 수백t의 운동에너지를 가진 버스가 뒤에서 두드려 박았다면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말았을 터다. 바로 앞차뿐 아니다. 줄지어 선 승용차의 탑승자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을 것이고, 그 순간 여러 사람의 운명도 뒤바뀌었을 것이다. 앞차 운전자가 백
  • [세종로의 아침] “서울대 경제학과, 반성해!”/최광숙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서울대 경제학과, 반성해!”/최광숙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당신 서울대 경제학과 나왔지? 그럼 반성해!” 한 민간 연구기관 연구원이 몇 달 전 지인에게 들은 얘기라며 전해 준 얘기다. 우리 경제가 처한 엄중함을 초래한 이들이 바로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 인사들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주창자인 홍장표 전 경제수석을 필두로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 유난히 많은 것이 사실이다. 최근 임명된 김상조 정책실장과 이호승 경제수석도 서울대 경제학과 동문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특정 학맥 운운하느냐고 힐난할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냉정하다. 오죽하면 그 주역들의 출신 학교 및 학과까지 들먹이면서 비판하겠는가. 겉으로는 특정 학맥의 약진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이면은 결국 ‘코드 인사’, ‘회전문 인사’다.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 철학을 공유한 이들을 기용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어느 정권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미국 등 선진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아들 부시 대통령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 밑에서 일했던 딕 체니 부통령, 콜린 파월 국방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을 중용하기도 했다. 다른 나라도 그랬으니 문제가 없다는
  • [세종로의 아침] 조계종 패싱/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조계종 패싱/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절집에 가면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문구를 자주 만나게 된다. 절절한 사연이 담긴 고사이지만 대체로 ‘발밑을 잘 살피라’는 경구로 통한다. 법당이나 선방 앞에 널려 있는 신발과 포개지지 않게 내 신발부터 잘 정리하라는 당부 말이다. 출가자들도 속인들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질서와 현실의 직시가 중요함을 보여 주는 경구가 아닐까. 그래서 세상 사람들도 나부터 신중히 처신하자는 마음 다잡이의 경구로 이 말을 자주 쓴다. 한국 불교 맏형 격인 조계종이 정부를 향해 연신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불교문화유산 정책이 잘못됐다며 ‘심하게’ 분통을 터뜨린다. 문화재위원 스님 축소에 볼멘소리를 내더니 며칠 전엔 문화재 관람료 논란을 해결하라는 폭탄선언을 내놓았다. 문화재위원의 경우 분과별로 1명씩 위촉했던 문화재위원 스님 8명을 갑자기 5명으로 줄인 데 대한 불만이다. 조계종 측에서 추천하면 위촉할 준비가 돼 있다는 문화재청의 해명에도 원성이 가라앉지 않는다. 문화재 관람료 사태에 대한 반발은 더 강도가 높다. 국립공원에 편입된 사찰 소유 부지에 대한 보상을 하라는 요구다. 정부가 보상을 거부하면 국립공원 지정 해제를 포함한 헌법소원까지 불사하겠단다. 최근 연발한 조계종의
  • [세종로의 아침] 정정용號, 선장 정정용/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정정용號, 선장 정정용/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배의 선장을 뜻하는 영단어는 캡틴(captain)이다. 머리(head)를 의미하는 ‘cap’에다 유지하다는 뜻을 가진 ‘tain’이 합쳐졌다. 해석하자면 ‘한 무리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사람’이란 뜻인데, 풀고 보니 어쩐지 위압감마저 드는 단어다. 그러나 크든 작든 한 조직의 서열 맨 윗자리에 있는 캡틴은 사실 휘두를 수 있는 권한보다는 훨씬 더 큰 무게의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캡틴이라는 이름이 적용되는 범위는 참으로 넓다. 강과 바다를 떠다니는 크고 작은 배는 물론 수백명을 실어 나르는 비행기의 조종석에도 캡틴(기장)이 있고, 무한대 넓이의 공간를 헤쳐가는 혹은 날아가는 우주선 전체를 통솔하고 책임지는 이도 캡틴이다. 그런 의미에서일까.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최근 특히 축구대표팀의 감독에 ‘캡틴’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언제부턴가 아무개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아무개호’라고 불렸다. 덩달아 축구 외 다른 종목에도 대표팀 감독의 이름 뒤엔 ‘~호’가 접미사처럼 따라붙었다. 축구대표팀 감독은 24명 안팎의 선수를 조련하고, 실전에 나설 11명의 라인업을 정하고, 전후반 90분 동안 자신의 전략과 전술을 선수들을 통해 구체화한다. 감독 고유의 권한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