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대
  • [2030 세대] 악플러도 ‘그들의 정의’에 따라 움직인다/김영준 작가

    [2030 세대] 악플러도 ‘그들의 정의’에 따라 움직인다/김영준 작가

    최근에 고소를 당한 악플러의 항변을 보았다. 그 항변의 내용은 ‘실수였다. 고소를 취하해 달라. 자기 같은 힘없는 서민을 고소하다니 어떻게 연예인이 그럴 수 있느냐’였다. 어이없지만 진짜다. 악플러들이 죄의식을 가지고 악플을 다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무플보단 악플이 나으니 도와주는 거란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 악플 달릴 짓을 했으니까 악플을 단다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논란이 있었던 연예인의 인스타에서 인종차별이나 성적, 모욕적인 댓글들이 달리는 걸 읽어 보면 그런 걸로 보인다. 그러니까 적어도 악플러들의 생각으론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라 그럴 만한 연예인을 응징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정말 놀라운 자기합리화다. 그러나 이게 딱히 악플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행동경제학자인 댄 애리얼리는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이란 책을 통해 모든 사람들, 심지어 선한 사람들마저 부정행위를 저지른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기준은 자기합리화다. 애리얼리에 따르면 사람들은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 여기고 있으며 이 이미지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른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합리화의 수준이 그 사람의 부정행위의 수준을 결
  • [2030 세대] 걸프전쟁은 어떻게 지금의 세계를 만들었나/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생

    [2030 세대] 걸프전쟁은 어떻게 지금의 세계를 만들었나/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생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0년 8월, 사담 후세인이 지휘하는 이라크군이 페르시아만의 소국 쿠웨이트로 쳐들어갔다. 얼마 안 가 쿠웨이트는 이라크에 합병돼 지도에서 사라져버렸다. 이라크의 갑작스런 침공은 국제질서와 석유를 수호해야 하는 미국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고, 곧바로 유엔을 통해 다국적군이 조직돼 인접한 사우디아라비아에 전개됐다. ‘걸프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윽고 해가 바뀌면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측에서 이라크를 향해 대대적 공습을 개시하며 반격에 들어갔다. 전쟁사의 전설로 남은 사막의 폭풍 작전이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은 압도적인 공군력과 막강한 지상군, 효율적인 병참을 결합시켜 이라크군을 순식간에 궤멸시켰고, 2개월도 안 돼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어냈다. 전쟁의 여파는 세계 전역에 오랫동안 울려 퍼졌다. 승자인 미국은 20년 전 베트남전쟁에서 겪었던 굴욕을 완전히 청산하고, 냉전 이후의 세계에서 절대적 초강대국임을 확인받았다. 막강한 경제력과 기술적 우위를 지닌 미국이 하고자 하는 일을 세계의 어느 나라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한편 ‘서방 세계’에 속하지 않은 나라들은 걸프전에서 드러난 거대한 군사적 격차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 [2030 세대] 아주 작은 배려/한승혜 주부

    [2030 세대] 아주 작은 배려/한승혜 주부

    몇 년 전 답답하고 짜증 나는 상황을 두고 ‘암 걸릴 것 같다’는 표현이 유행한 적이 있다. 문자 그대로 스트레스받는 상황을 과장되게 일컫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입버릇처럼 그 말을 사용했고, 나 역시 재미있다고 생각해 자주 쓰곤 했다. 하루는 모임에서 이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너무 화가 났다고, 암 걸릴 것 같았다는 식으로 어김없이 저 말을 했는데, 그 순간 자리에 있던 한 명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기,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 말은 안 쓰면 안 될까? 가족 중 한 명이 진짜로 암에 걸렸거든. 그래서 암 걸릴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좀 그래.” 당혹스러웠다. 그런 지적을 들으니 민망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난 그저 웃자고 한 말일 뿐인데! 남들도 다 쓰는 말인데! 별 뜻 없이 재미있자고 한 건데!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면 안 되나? 저렇게 정색을 할 것은 또 뭐람? 마치 내가 엄청 큰 잘못을 한 것 같잖아! 지금 생각하면 매우 부끄럽지만 당시에는 실제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미안해. 앞으로는 조심할게” 하고 말았는데, 속으로는 그렇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했던 이유는 그 편이 훨씬 더 쉬웠기 때문이다.
  • [2030 세대] 스타트업의 필수 종사자들/박누리 스타트업 IR 리더

    [2030 세대] 스타트업의 필수 종사자들/박누리 스타트업 IR 리더

    한국은 다행히 코로나19로 인한 대규모 록다운(지역봉쇄)을 경험한 적이 없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가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작게는 주 단위, 크게는 전국적으로 록다운을 시행했다. 록다운을 선포하면 모든 시민이 자기 집안에 머물러야 하며 직장으로의 통근도 금지된다. 대개가 재택근무를 하는 중에 전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터로 향하는 이들이 있다. 록다운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의식주의 영위가 가능하도록 해 주는 이들을 필수업종 종사자, 영어로는 에센셜 워커(Essential Workers)라고 부른다.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의사, 간호사, 의료 노동자와 방역 공무원, 경찰관, 환경미화원과 같은 공공 영역도 포함된다. 무엇보다 택배와 같은 물류배송업 종사자, 농촌 노동자와 식가공업체 종사자, 그리고 슈퍼마켓 직원들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시민 대다수가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인터넷 쇼핑 등을 통해 생필품을 구매하고 최소한의 일상을 지킬 수 있었다. 스타트업에서 에센셜 워커는 누구일까. 소위 ‘스태프’라 불리는, 지원부서 직원들이다. 재무, 법무, 인사, 총무 등. 회사가 회사로 유지될 수 있도록 그리하여 다른 직원들
  • [2030 세대]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2030 세대]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휴가차 인적이 드문 어느 고택에 머물렀다. 조선 철종 때 지었다는 이 고택은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었는데, 이 문화재를 지키는 분은 어느 연로한 부부셨다. 교수에서 은퇴한 남편분과 대화를 잠시 나눴는데, 그는 고택에서 태어나 그 오랜 세월 주변이 변하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봤다고 하셨다. 고택에서 멀찍이 보이는 국도는 일제강점기 조성된 신작로였는데, 아스팔트로 포장된 것은 1980년대의 일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1960년대 말 인근에 경부고속도로가 지어질 때 친구들이 공사현장에 가서 많이 일했는데,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나서 친구들이 와서 자동차에 물컵을 올려놓고 가는데 물이 쏟아지지 않는다고, 세상에 이런 신기한 도로가 생겼다고 했다는 것이다. 어르신은 그 이야기를 듣고도 믿지 못했고, 정말 고속도로에 가 보고는 전에 없던 새로운 광경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고 하셨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집에서, 반백년가량 된 과거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아스팔트 도로가 당연하다 느끼는 것도 그리 오랜 역사는 아니다. 삼십년 전만 하더라도 시골 신작로에 차량 한 대만 왔다 가도 온 동네가 흙먼지로 가득했던 것이 우리나라의
  • [2030 세대] 선택적 친화력을 생각하다/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2030 세대] 선택적 친화력을 생각하다/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옥스퍼드 유니언’은 옥스퍼드 대학교 중앙을 세로지르는 콘마켓 거리 옆에 뻗어나간 조용한 골목에 위치해 있다. 정치토론이 열리는 학생 클럽이다. 1823년에 세워졌고, 라파엘 전파 화가들이 그린 고풍스런 벽화가 장식돼 있다. 이 유니언을 다녀가지 않은 유명인사가 없을 정도다. 현재 영국 총리인 보리스 존슨은 물론이고 마거릿 대처를 포함해 영국 총리가 일곱, 미국 대통령도 넷, 테레사 수녀, 심지어 알버트 아인슈타인 등. 미래에 정치인을 꿈꾸는 옥스퍼드대 학생이라면 이 유니언을 빼놓을 수 없다. 유니언 회원들은 멤버들만 드나들 수 있는 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인맥을 넓힌다. 내부에 들어가 보면 런던에 있을 법한 젠틀맨 클럽 분위기 그대로다. 벽은 우든 패널로 둘러져 있고, 의자는 가죽으로 덮여 있다. 토론 회관은 영국의 하원 본회장을 연상시킨다. 이곳에서 달아오른 얼굴로 서서 논쟁을 벌이는 학생들을 보면 이미 하원의원이 된 듯하다. 웰링턴 공작은 워털루전투의 승리는 이튼 학교의 운동장에서 결정됐다고 말한 바 있다. 어쩌다 영국 정치인들을 보면 옥스퍼드 유니언 학생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이유다. 벌써부터 친구들을 유권자 취급한다고 불만스러워하던 학생들도 있었
  • [2030 세대] 마약과의 전쟁과 투기꾼과의 전쟁/김영준 작가

    [2030 세대] 마약과의 전쟁과 투기꾼과의 전쟁/김영준 작가

    1971년, 미국 닉슨 행정부는 갈수록 범람하는 마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마약과의 전쟁은 매우 멋진 목표이자 선언이었다. 하지만 문제해결과는 관계없는 행동으로 이어지기 쉬운 ‘불분명한 목표’였다. 실제로 미 정부가 취한 행동은 마약 근절을 위해 폭력과 관계없는 마약사범까지 모두 체포하고 감옥에 수감시킨 것이다. 그 결과 수감자가 급격히 늘어 예산이 급증했을 뿐만 아니라 어린 마약사범들이 교육에서 배제된 탓에 일자리를 갖지 못해 영구적인 하층 계급으로 전락했으니, 이들이 다시 마약사범이 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또한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마약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했고 이 때문에 미국 내 범죄조직과 중남미에 수많은 마약왕들을 탄생시켰음은 물론이다. 작용은 언제나 반작용을 동반한다.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해선 목표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정의하며 가장 효과적인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행정력과 비용을 낭비하고도 마약 소비를 줄이지 못하고 더 큰 사회적 문제를 남긴 미국처럼 되기 쉽다. 그러한 관점에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생각해 보자. 정부는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해결 방법으로 부동산 투기꾼
  • [2030 세대] ‘라다크의 패싸움’에 주목하는 이유/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생

    [2030 세대] ‘라다크의 패싸움’에 주목하는 이유/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생

    한때 지속 가능한 대안적 삶의 모델, ‘오래된 미래’로 유명했던 라다크에 다시금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라다크를 둘러싼 두 강대국, 중국과 인도가 맞붙으며 더 거센 무력충돌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부탄 인근에서 양국이 대치한 이래로 3년 만의 일인데, 3년 전엔 유혈 사태는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오래된 미래’에 나온 평화롭던 라다크는 어째서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두 대국의 단층선이 됐을까? 사실 양국의 국경분쟁 자체는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1962년 양국이 국경 문제로 국지전까지 치른 이래로 이 황량한 고원지대는 양국의 자존심이자 전략적 요충지로서 지속적인 긴장의 원천이 돼 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최근 몇 년 사이 잦아진 양국 갈등을 설명하기 어렵다. 국경 문제를 덮어 두고 우호적 교류에 집중해 양국 모두 이익을 얻어 온 지난 수십 년의 역사도 있기 때문이다. 상황을 바꾼 것은 21세기 들어 세계적 수준으로 부상한 중국의 국력이었다. 중국은 무역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 각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시진핑 정권 들어서는 ‘도광양회’의 원칙도 접어 둔 채 유라시아 각지의 인프
  • [2030 세대] “재미없습니다”/한승혜 주부

    [2030 세대] “재미없습니다”/한승혜 주부

    나는 한때 참으로 잘 웃는 사람이었다. 회사원 시절 남자 동료들의 수위가 높은 농담에도 거침없이 웃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나를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원래 남자들끼리만 보는 건데 승혜씨는 괜찮을 것 같아요” 하면서 이런저런 메일을 보내 주기도 했다. 거기에는 주로 이런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이를테면 남자의 이상형은 예쁜 여자도, 착한 여자도 아닌 낯선 여자라든지, 여자의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같아서 24세부터 잘 팔리기 시작해 25세에 정점에 이르렀다가 26세부터는 확연히 가치가 떨어진다든지, 나이에 관계 없이 남자들은 모두 20대 여자를 좋아한다든지 하는 내용들. 동료 남성들은 정말 웃기다고, 혹은 맞는 말이라고 맞장구를 치며 그런 내용을 돌려 보곤 했다. 메일을 받아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이런 게 정말 웃긴가 하는 의문에서부터 대체 이런 걸 나에게 보내는 의도는 무엇일까에 이르기까지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럼 25세를 넘긴 나는 저들에게 있어 여성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뜻인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마치 그들에게 여성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가진 것처럼 느껴져 수치스럽기도 했다. 언
  • [2030 세대] 재건축,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하지 않을까/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2030 세대] 재건축,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하지 않을까/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지난해 말 12ㆍ16 부동산대책 이후 안정세가 유지되던 주택시장이 최근 일부 비규제지역을 중심으로 과열 양상이 지속됐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지난주, 다시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정책을 들여다보면 국토부는 시장상황을 거시적, 미시적으로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법인을 활용한 투기수요 근절이나 지방 특정 지역까지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한 것은 시장의 흐름을 꿰뚫고 있다고도 보여진다. 다만 효율적인 국토활용 및 환경과 조화되는 국토관리 측면에서 보자면 정비사업 규제는 고개를 조금 갸우뚱하게 된다. 이번 정책에 반영된 안전진단 강화나 조합원 분양신청 허용 거주요건 제한은 분명 재건축 정비사업의 속도를 더디게 하는 방안들이다. 특별히 안전진단 단계에 있거나 조합설립인가 단계에 있는 단지들의 정비사업 속도 지연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재건축으로 발생하는 시세차익이 전체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 그에 따른 부의 양극화도 사회적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해서 보자면 이런 민간의 정비사업을 통해 국가나 지자체는 저절로 도시환경을 개선하는 효과를 보게 된다. 안전진단을 통과했다는 말은 다른 의미로 표현하자면 건물의 구
  • [2030 세대] 산 자가 있어 소식이 전해졌다/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2030 세대] 산 자가 있어 소식이 전해졌다/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미국 경찰의 무릎 밑에서 흑인 시민이 목이 눌려 죽었다. 소설 같다. 애틀랜타는 미국 동남부 조지아주의 주도인 무더운 도시이다. 브룩스는 애틀랜타의 도심부 남쪽에 있는 햄버거 체인점 밖에서 잠이 들었다. 그의 차가 드라이브스루 레인을 가로막고 있다는 제보를 듣고 경찰이 출동했고, 그날 밤 그는 총알 3발을 맞고 경찰에 피살당했다. 다리앤 헌트는 2014년 유타주의 사라토가 스프링스에서 저격당했다. 9월 어느 맑은 아침, 헌트는 등에 총알 6발을 맞고 쓰러졌다.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분장으로 장난감 칼을 들고 코스프레 컨벤션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이런 기사를 보고 우리는 경악한다. 부당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어이가 없어 경악스러운 거다. 스물두 살 청년이 만화 캐릭터로 분장했다가 총을 맞고 죽음을 당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제 명을 다하고 죽어야 우리는 그 죽음을 자연스럽다 한다. 엘리베이터 오작동으로 추락사한 사람도, 건설현장에서 어이없는 사고로 죽은 사람도, 슬픔 이전에 다만 황당할 따름이다. 부자연스러운 죽음은 의미를 남긴다. 이런 죽음은 쉽게 잊히지 않고,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고발한다. 엘리베이터 사고로 죽은 자의 죽음은 부실공사에 대한 고발이다
  • [2030 세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두자

    [2030 세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두자

    내가 글을 쓰는 이 코너 제목이 2030이다. ‘2030’이란 숫자로 대표되는 젊은층의 목소리를 담기 위함일 텐데 그 취지가 민망스럽게도 내 나이는 30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그리고 숫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나는 이제 새로운 것을 찾기보단 익숙한 것을 주로 찾는다. 어제만 해도 새로운 영화를 감상하는 게 아니라 나온 지 19년은 된 ‘반지의 제왕’을 보며 하루를 마감했고, 음악은 아예 신곡이란 걸 듣지 않은 지도 꽤 오래됐다. 아마 나보다 연배가 더 높은 분들은 이렇게 얘기하며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 “하! 나는 나온 지 150년 이상 된 음악만 듣고 있는데.” 왜 이러는지 잘 알고 있다. 익숙한 것이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해선 그만큼 인지력을 소모해야 하는데 이게 매우 피곤하다. 그렇다 보니 가급적 새로운 것을 기피하고 익숙한 것으로 편안함을 누리려는 것이다. 편안한 것을 추구하는 게 나쁠 것은 없지만 이게 습관이 되면 새로운 것은 일단 거부하거나 배척하고 보게 된다. 새로운 것을 그저 익숙하지 않고 잘 모른다는 이유로 멀리하며 그로 인해 부정적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새로운 현상
  • [2030 세대] 2020년 미국 인종갈등의 기원/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생

    [2030 세대] 2020년 미국 인종갈등의 기원/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생

    위대한 흑인 가수 마이클 잭슨은 1987년에 ‘더 웨이 유 메이크 미 필’(The Way You Make Me Feel)이라는 명곡을 선보였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빌보드차트 1위에 어울리는 흥겨운 노래와 마이클 잭슨의 상징과도 같은 군무에 금세 빠지게 된다. 하지만 뮤직비디오를 여러 번 보다 보면 또 다른 흥미로운 면이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영상의 배경이다. 가로등 빛도 희미한 어두컴컴한 도시의 골목, 건물 벽을 가득 채운 온갖 낙서들, 부서진 채로 방치된 자동차. 그리고 그 속에서 지나가는 여성을 희롱하는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 ‘비트 잇’(Beat It)이나 ‘배드’(Bad) 같은 그의 다른 노래도 비슷한 배경을 그려 내고 있다. 미국인들은 이 같은 공간을 도심 ‘게토’라고 부른다. 게토의 역사는 20세기 미국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20세기 초, 북부 미국이 공업화하면서 남부의 흑인 소작농들이 이주해 최초의 대규모 흑인 노동계급으로 변모했다. 그들은 북부에서도 여전한 차별과 분리에 직면했지만, 산업 노동자로서 힘을 키워 나갔고, 특히 2차 세계대전에 대거 참전하면서 미국 사회에서 갖는 지분을 확대할 수 있었다. 전통적 구심점인 흑인 교회,
  • [2030 세대] ‘야동 볼 권리’ 같은 것은 없다/한승혜 주부

    [2030 세대] ‘야동 볼 권리’ 같은 것은 없다/한승혜 주부

    회사원이던 시절의 일이다. 하루는 선배 한 명의 안색이 좋지 않아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아내가 핸드폰에 남아 있는 대화 기록을 보고 매우 화가 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친구랑 야한 농담 하면서 ‘야동’ 좀 주고받았을 뿐인데 그걸 보고 오해를 했다면서. 예상치 못한 내밀한 이야기에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몹시 억울해하던 그의 태도가 기억에 남는다. 당시 선배는 답답한 표정으로 항변했다. 여자들은 모르겠지만 남자들 사이에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남자라면 야동쯤 볼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되레 당당하게 묻고 있었다. 이후 속칭 야동으로 불리는 포르노산업이 화두가 될 때마다 머릿속에는 비슷한 의문이 떠오르곤 했다. 왜 남자라면 야동 보는 게 당연한 것일까? 왜 성욕을 발산하고 욕망을 향유하는 문화는 남성에게만 이토록 관대한 것일까? 하다못해 얼마 전 한 일간지의 논설위원은 ‘야동 볼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는 칼럼을 내기도 했다. 그는 성욕은 본능이기에 성매매를 규제하면 불법 성매매가 일어나고, 포르노를 합법적으로 허용하지 않으니 ‘n번방’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햇볕을 차단하면 곰팡이가 피기 마련’이라면서 말이다.
  • [2030 세대] 한국의 명암, 코로나19와 물류창고 화재/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2030 세대] 한국의 명암, 코로나19와 물류창고 화재/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지난 3월만 하더라도 한국은 전 세계 코로나 확진환자 수 2위였지만, 정부와 국민의 훌륭한 대처로 현재는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5월 초 연휴에 발생한 확산 기조에 다소 놀라기는 했지만, 우리가 하루 수십 명 확진자에 걱정하는 동안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들은 하루 수천수만 명의 확진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국 외신들은 한국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프랑스를 비롯한 30여 개국 정상들은 우리 대통령에게 성공적인 방역 모델에 대해 문의하고 있다. 이처럼 수많은 국가가 한국에 러브콜을 보내며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는 까닭은 한국의 확진자 감소가 단지 운이 좋아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거치며 음압격리병실을 구축했고, 빠른 진단 키트의 보급을 통해 방대한 검사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었다. 아울러 제조업 기술을 바탕으로 단기간에 대량 마스크 생산 체계를 구축했고, 통신 인프라를 바탕으로 빠른 역학조사 시스템을 마련했으니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방역 인프라는 오랜 기간 준비된 것으로, 다른 나라 정부가 인지해도 단기간에 쉽게 구축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 [2030 세대] 터키시 딜라이트/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2030 세대] 터키시 딜라이트/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나’는 마들렌 과자 부스러기가 떠 있는 차를 마시며 잊었던 어렸을 때 기억을 되찾는다. 프루스트에게 마들렌이 있었다면 내겐 ‘터키시 딜라이트’가 있다. 영국의 초등학교 예배 시간이었다. 목사님이 육각형 종이상자를 들고 왔다. 안에는 부드러운 설탕 가루에 덮인 젤리랄까 사탕이랄까. 터키시 딜라이트가 들어 있었다. 처음 맛본 이 젤리의 향과 맛은 먼 나라에서 겪은 내 첫 외로움의 냄새와 맛으로 아직도 혀끝에 아슴푸레하게 남아 있다. 셰익스피어는 소도구에 집착한다. 햄릿은 해골을 들여다보며 죽음을 얘기하고, 오셀로는 손수건을 움켜쥐고 불신을 키운다. 촛불을 들고 신혼 침대에 다가가기도 한다. 맥베스는 단검을 어루만지며 자신의 운명을 확신한다. 문득 떠오르는 물건, 소리, 맛, 모티브. 사소한 일은 쉽게 묻히니 사소하다고 우리는 오해한다. 가끔 큰 결심 앞에 머리를 짧게 깎는 사람들이 있다. 며칠 묵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시인 김수영이 지적했듯이 ‘진지하라는 말은 가볍게 쓸 수 없는 말’이다. 나는 멋을 부리라고 하고 싶다. 규율을 만드는 것이 야만스럽다. 아는 친구 중 한 명은 15살에 자살을 기도했다. 단식해서 굶어 죽을 작정이
  • [2030 세대] 연공서열이 우리의 앞길을 망치는 게 아닐까/김영준 작가

    [2030 세대] 연공서열이 우리의 앞길을 망치는 게 아닐까/김영준 작가

    한국은 오랫동안 연공서열식 체계를 유지해 왔다. 물론 연봉제 적용과 직무평가 시스템의 발전 덕분에 연공서열 체계가 과거에 비하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우리의 고용 시스템 속에서 연공서열은 여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기업들조차 승진 대상자 중에서 나이와 연차가 많은 직원에게 우선권을 적용하는 게 여전한 현실이니 말이다. 연공서열 체계에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연차가 쌓일수록 증가하는 직원들의 숙련도와 오랜 기간 회사에 헌신한 직원들에 대한 보상으로 그 무엇보다 확실한 안정성을 안겨 준다. 특히 나이가 들어 자녀를 출산하고 키우면서 점점 증가하게 되는 일반적인 가계의 지출구조를 생각하면 나이와 연차에 따른 보상이 커지는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체계는 매우 적합하다. 하지만 이는 고성장 시대에 가장 최적화된 체계일 뿐이다. 저성장 시대에는 성장 자체가 매우 어려운 도전이기에 비용 절감과 효율성 증대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고임금 직원은 비용 절감이 필요한 시기에 줄여야 할 제1순위 목표물이 된다. 물론 임금만큼 직원의 생산성이 뒷받침된다면야 절감의 대상이 되지 않지만 연공서열과 그에 따른 임금체계는 필연적으로 임금과 생산성의 불일
  • [2030 세대] 바이러스 전쟁의 일등공신은 무엇일까/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생

    [2030 세대] 바이러스 전쟁의 일등공신은 무엇일까/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생

    대구에서 본격적인 바이러스 아웃브레이크가 일어난 뒤로 두 달 남짓 지났다. 한창 확진자 그래프가 천장을 뚫을 것 같은 기세로 치솟을 때는 두 달 뒤 한국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러나 두 달 뒤, 상황은 완전히 반전됐다. 그간 선망해 마지않던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봤을 때, 한국이 거둔 성공은 엄청난 것이었다. 자연스레 한국의 성공을 두고 원인을 찾고자 하는 여러 분석이 나왔다. 분석들은 대체로 두 가지로 좁힐 수 있었다. 먼저, 서구의 일부 식자들은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 전반이 방역에 선전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동아시아와 서구의 문화 차이를 원인으로 꼽았다. 요컨대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국민이 더 순응적이고, 국가는 권위적인 조치를 얼마든지 강제할 수 있었기에 동아시아 국가들은 바이러스와 싸워 이길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였기에 효과적인 방역 전쟁을 수행했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정보를 적극적으로 개방했고 시민들의 요구에 빠르게 대응했기에 적극적인 검사에 나섰고, 그 덕분에 방역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었다. 따라서 여타 ‘민주주의 선진국’들은 이제
  • [2030 세대] 그건 사랑이 아니다/한승혜 주부

    [2030 세대] 그건 사랑이 아니다/한승혜 주부

    얼마 전 법무부는 미성년자 의제강간의 기준연령을 현행 13세에서 16세로 높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의제강간이란 미성년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에서 기준연령 미만의 대상과 성관계를 할 경우 미성년자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강간죄로 처벌하는 것을 뜻한다. 전 세계에 의제강간연령이 13세인 곳은 한국을 포함해 7개국밖에 안 되는 현 상황에서 매우 환영할 만한 처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법무부의 발표를 두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는 모양이다. 이들은 해당 법률이 청소년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미성년자와 성인도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개인의 사생활에 국가가 개입할 권리가 없다고 반발한다. 목소리를 내는 이들 중에는 청소년 당사자들도 포함돼 있다. 얼핏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청소년들에게도 욕구와 감정이 있으며 그 대상이 성인인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지점은 청소년은 어떤 권리를 행사하기에 앞서 우선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란 것이다. 술, 담배, 운전 그리고 투표권 등이 청소년에게 허락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청소년의 의사판단이 성인에 비해 미숙할
  • [2030 세대] 코로나 경제 위기에는 진격의 인프라/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2030 세대] 코로나 경제 위기에는 진격의 인프라/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어린 시절인 1990년대만 하더라도 명절에 수도권에서 남쪽 지방으로 귀성길을 떠나는 것은 매우 고된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서울에서 목포까지 20시간은 족히 걸렸는데, 지금같이 휴일도 많지 않던 시대였으니, 명절은 시골에 오고 가는 시간으로 거의 다 소비했을 정도였다. 그런 목포까지 KTX를 타면 이제 단 두 시간여 만에 갈 수 있게 됐고, 차를 타고 가더라도 서해안고속도로를 타면 4시간가량이면 갈 수 있게 됐다. 아무리 명절 기간 차량이 많다 하더라도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열 시간 넘는 귀성길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탑골가요’로 다시금 인기를 끄는 1990년대는 인프라 관점에서도 큰 발자국을 남긴 시기였는데, 1기 신도시는 물론 인천공항, KTX, 서해안고속도로 등 대형 공공사업이 앞다투어 지어졌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설이 없는 우리나라는 상상하기 어렵다. 인천공항은 현재 세계 3위 수준의 화물 물동량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러한 인천공항이 없었다면 항공 운송에 의존해야 하는 반도체, 의약품, 화장품과 같은 국내 주력 산업이 현재와 같이 발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KTX가 없었다면 여전히 국내 출장은 1박2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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