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대
  • [2030 세대] 언어를 머리 빗듯이/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2030 세대] 언어를 머리 빗듯이/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기원전 5세기 역사가이자 작가인 투키디데스는 그리스의 역사와 정치문화를 기록하고 분석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기’ 중 그는 내란에 빠진 도시국가를 묘사한다. 질서는 무너졌다. 누구나 복수하고, 복수는 정의롭다 여겼다. 공공의 이익을 생각해 정치적인 소신을 가지게 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같이 죄를 저질렀으니 죄인도 없었다. 여기서 투키디데스가 지적한 것이 의외로 언어의 변질성이다. 환경이 바뀌면 언어의 지시 대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무모함은 용맹함으로, 신중한 자는 겁쟁이로 여겼다. 음모에 가담하면 강하고, 그렇지 않으면 약하게 보았다. 어느 그리스 사람은 이런 역설을 씁쓸한 마음으로 지켜봤을 것이다. 투키디데스는 나아가 말한다. 혼돈 속에서 다수의 평등한 권리를 약속하는 민주주의도, 귀족층의 지혜를 일컫는 과두정치도 빈 단어들을 사용할 뿐이라고. 이런 현상은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반복되리라고 투키디데스는 예언했다. 등줄기가 차가워진다. 1949년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그의 마지막 작품 ‘1984’를 출간한다. 조지 오웰이 상상하는 전체주의 사회, 여기서 언어는 또다시 폭력의 산파역을 맡는다. ‘전쟁은 평화이고 자유는 예속이고 무지
  • [2030 세대] 희소성과 재개발의 가치/김영준 작가

    [2030 세대] 희소성과 재개발의 가치/김영준 작가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알루미늄 사랑으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식기를 쓰고 알루미늄으로 만든 왕관을 머리에 쓰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겐 금식기나 은식기로 식사를 하게 했다. 알루미늄이 너무 흔해서 쿠킹호일과 음료수 캔으로 낭비 중인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무척이나 검소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딱히 그가 검소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당시까지만 해도 알루미늄을 정련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그만큼 알루미늄 제품이 매우 귀했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금보다 더 귀하고 귀금속 위의 귀금속이란 평가를 받던 알루미늄은 전기분해법의 등장으로 흔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 누구도 귀금속으로 여기지 않는다. 희소성이 사람들의 선호를 뒤바꾼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이건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다. 희소성은 무언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지표이다. 그러나 여기엔 부작용도 있어서 때론 흔한 것을 지나치게 저평가하고 희소한 것을 지나치게 고평가하기도 한다. 이런 희소성에 따른 선호의 변화는 단지 상품에 끝나지 않는다. 낡은 공장지대와 낡은 건물에 대한 선호 또한 희소성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건물과 지역이 만드는 분위기는 불과 2000년대 중반까지
  • [2030 세대] 범람하는 콘텐츠, 파편화되는 소비자/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3학년

    [2030 세대] 범람하는 콘텐츠, 파편화되는 소비자/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3학년

    충북 음성군 시골마을에 살던 어렸을 적 나는 ‘심심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부모님은 모두 일을 나가셨고, 제일 친한 학교 친구들은 모두 산을 한 개쯤 넘어가야 있는 다른 동네에 살았다. 컴퓨터는 형이 독차지했기 때문에 1시간 이상 할 수도 없었다. 들어오는 TV채널은 4개밖에 없었으며 그마저도 내가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틀어주는 시간은 한정적이었다. 즉, 시간은 넘쳐났고 좋아하는 미디어는 희소자원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모두의 손에 스마트폰이라는 조그만 컴퓨터가 들어가고 다양한 플랫폼이 확산되자 이제 콘텐츠가 넘쳐나고 반대로 시간이 모자라졌다. 잠들기 전에 누워 있는 시간과 대중교통을 통해 이동하는 시간까지 긁어 써도 홍수처럼 밀려드는 웹소설, 웹툰, 페이스북 글, 유튜브 동영상을 감당할 수 없다. 취향에 맞는 것들만 엄선해서 보는 데도 그렇다. 희소자원이 미디어에서 시간으로 바뀌면서 미디어 소비라는 활동은 공적인 것에서 사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시간은 많고 즐길 거리는 부족하던 과거를 떠올려보자.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자 여럿이 라디오 하나에 붙어 주파수를 맞췄고, 남편과 아내는 서로 TV채널의 주도권을 놓고 다퉜다
  • [2030 세대] ‘SKY 캐슬’과 불안의 시대/한승혜 주부

    [2030 세대] ‘SKY 캐슬’과 불안의 시대/한승혜 주부

    “우리 애는 뭐 별거 안 해요. 수학이랑 영어, 발레, 피아노, 미술, 수영, 그리고 줄넘기 정도.” 대화 중 사교육이 주제로 등장하자 이웃 엄마가 했던 말이다. 불과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이가 정규교과 외에 사교육을 7과목이나 받는다니. 놀라는 내게 그녀는 덧붙였다. “어우, 이건 많은 것도 아니에요. 완전 기본이지.” 서울 대치동이나 목동의 이야기가 아니다. 매해 바뀌는 입시제도로 탓에 학부모들의 뜨거운 교육열은 지방 신도시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솔직히 얼마 전까지는 우리집과는 백억 광년쯤 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공부는 아무렴 때가 되면 스스로 하는 것이고,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며, 놀 수 있을 때 실컷 놀게 해주자고. 엄마인 나의 중심이 흔들리면 안 된다고. 그랬던 여유와 믿음은 다 어디로 갔는지, 요즘 들어선 주변 아이들이 영어공부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밤마다 만화영화를 보며 깔깔대는 아이의 뒤통수를 볼 때마다, 그만 마음 한구석이 불안해지고 만다. 내년이면 벌써 초등학생인데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요즘 드라마 ‘SKY 캐슬’이 인기다. 자극적인 소재와 빠른 전개, 상류층의 위선, 음모와 배신, 출생의 비밀 등 온갖 흥행 요인
  • [2030 세대] 거가대교 통행료, 요술방망이는 존재하지 않는다/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2030 세대] 거가대교 통행료, 요술방망이는 존재하지 않는다/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예전에 거제도에서 부산을 가려면 통영을 돌아 창원을 통과해 약 140㎞를 갔어야 했다. 2010년 거가대교가 개통되자 이 길이는 약 60㎞로 줄었다. 거제~부산을 오가는 시민의 효용을 증가시켰지만, 높은 통행료라는 숙제를 남기고 있다. 혹자는 길이가 두 배인 인천대교보다 통행료가 더 높은 거가대교가 이해되지 않는다고도 한다. 거가대교는 총길이가 8.2㎞인데 공사비가 많이 드는 사장교와 해저터널 구간이 88%를 차지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선박은 물론 잠수함까지 건조하는 거제의 특수성을 고려해 건설된 것이다. 반면 총연장 21.4㎞인 인천대교는 사장교 구간이 7%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전체 교량 길이는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나지만, 공사비 자체는 약 1조 5000억원 규모로 비슷하다. 여기에 통행량은 인천대교가 두 배가량 많다. 통행료 수입은 통행량과 통행료의 함수이니 손익분기점을 맞추려면 거가대교의 통행료가 인천대교보다 두 배 높을 수밖에 없다. 거가대교를 운영하는 지케이해상도로(주)는 수익 대비 비용이 높아 계속 당기순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그나마 2017년에는 국고보조금 560억원가량을 투입해 손실을 면했다. 하지만 현재 미처리결손금 규모를 감안하면,
  • [2030 세대] 양갱을 들여다보자면/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2030 세대] 양갱을 들여다보자면/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어렸을 땐 뭐든 단정해 버리기 쉽다. ‘나름 다르다’, 이런 말은 밋밋하고 설득력이 없다. 방학 때 집에 돌아오면, 한국과 외국 생활을 비교했다. 한국에선 무엇이든 신속하고 편리하고 정확하다. 길도 시원스럽다. 영국은 오래되고 낡아 불편하지만 아름답다. 풀과 나무는 짙푸르고 화려하다. 반면 한국의 색은 왠지 어둡다. 어린 나에겐 이 점이 특히 거슬렸다. 유럽의 색은 다채롭다. 사람들도, 심지어 하늘도, 잔디도 그렇다. 풀벌레도 자지러지지 않고 점잖게 우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건 서양이다.’ 나는 그렇게 단정했다. 대학에서 들었던 ‘동양의 미와 예술’ 같은 강의도 나의 이런 억지를 막지 못했다. 그럴 즈음 읽었던 책이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다. 나쓰메는 나처럼 영국 유학 경험이 있었다. 정확히 100년 전이다. 나쓰메도 동서양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박쥐처럼 쥐와 새 사이를 오갔다. 일본은 서구화되고 있었고, 나쓰메는 영문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동양의 미에 대한 사유로 가득하다. 양갱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도 한다. ‘서양 과자 중에서 이토록 쾌감을 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 크림의 빛깔은 약간 부드럽기는 해도 다소 답답
  • [2030 세대] 형편없는 게이머의 공정한 경쟁/김영준 작가

    [2030 세대] 형편없는 게이머의 공정한 경쟁/김영준 작가

    나는 최악의 게이머다. ‘스타1’(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이 열풍이었던 시절, 친구들과 게임을 할 때면 늘 시작 5분 만에 나는 애처로운 목소리로 친구들에게 한 번만 봐 달라고 빌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또 너냐?’라는 말과 함께 유닛을 빼서 다른 애들을 털러 이동했다. 물론 그렇게 봐주면서 해도 나중에 본진을 털리긴 마찬가지였다. 내 컨트롤은 너무나 형편없어서 친구들은 언제나 나보다 많은 병력을 끌고 왔고 적절한 운용으로 내 본진을 농락했다. 여러 방식으로 핸디캡을 잡아도 결과는 늘 비슷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형편없는 게이머란 것을 인정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싱글 플레이 게임에만 집중했다. 만약 같은 숫자의 동일 유닛으로 정해진 장소에서 약속한 시간에 맞붙게 한다면 그나마 친구들과 대등한 대결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등한 것이 공정한 것은 아니다. 나의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우월한 손놀림으로 똑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곳을 탐색하고 더 많은 자원을 채집하고 더 많은 유닛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대등한 대결을 위해서는 친구들의 이 우위를 모조리 제거해야 한다. 나에게는 만족스러운 조건일지 모르나 친구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 [2030 세대] 2018년, 우리가 알던 40년의 끝/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3학년

    [2030 세대] 2018년, 우리가 알던 40년의 끝/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3학년

    지금부터 40년 전인 1978년 말, 세계를 뒤흔들 격변이 태평양 양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첫 번째는 앞으로 중국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세계에 문을 열겠다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선언이었다. 두 번째는 1970년대를 거치며 속도를 더하고 있던 정보기술(IT)혁명이었는데, 1978년은 그중에서도 모뎀을 활용한 소비자 지향 온라인 서비스인 ‘더 소스’가 최초로 등장한 해였다.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이를 두고 ‘정보시대가 마침내 개막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던 이 두 흐름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시켜 지난 40년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먼저 중국은 인터넷을 통해 성장했다. 압도적으로 편리해진 정보 교환으로 기업은 국경을 넘어 생산 사슬을 분절적으로 배치했다. 그 결과 수많은 산업의 제조 공정이 중국으로 이전되어 급속히 팽창하는 도시 노동자들을 흡수했다. 아마 인터넷이 없었다면 중국 수준의 규모를 흡수할 산업 이전이 일어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동시에 인터넷은 중국을 딛고 뻗어나갔다. 첨단 기업들은 불필요한 단순 제조를 덜어내고 고부가가치 영역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덕분에 서구 사회의 소비자들은 더 품질 좋은 제품을 더 낮은 가격
  • [2030 세대] ‘살아남은 아이들’은 어디로 갔나

    [2030 세대] ‘살아남은 아이들’은 어디로 갔나

    지난 10월 15개월 된 아이가 위탁모의 학대로 숨졌다. 뒤늦게 위탁모가 우울증을 오래 앓았으며 학대 의심 신고가 5차례나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많은 사람이 대체 경찰은 뭘 했냐고, 어떻게 자격도 없는 사람이 버젓이 위탁모 활동을 할 수 있었냐고 분노했다. 뭘 믿고 애를 맡겼냐며 아이의 부모를 탓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 보자. 왜 부모는 낯선 이에게 선뜻 아이를 맡겼을까. 왜 경찰은 의심스러운 정황 앞에서 그냥 돌아서고 말았을까. 답은 간단하다. 아이들을 돌보거나 맡아 줄 공공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보건 당국이 운영하는 가정위탁지원센터는 부모가 이혼, 수감, 질병 등의 특정한 상황인 경우에 한하여, 혹은 아이가 학대를 당한 전력이 있을 때만 입소할 수 있다. 따라서 생활고나 우울증 등으로 양육능력이 없음에도 자격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찾아낸 사설 위탁모에게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마저도 양육비를 부담할 의지와 여유가 있는 소수의 부모만이 이와 같은 선택을 한다. 그대로 방임하거나 스트레스를 못 이겨 직접 학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대 경험이 있다고 무조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 [2030 세대] 알프스 산맥 환경보전을 위한 스위스 사람들의 선택/양동신 건설인프라엔지니어

    [2030 세대] 알프스 산맥 환경보전을 위한 스위스 사람들의 선택/양동신 건설인프라엔지니어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 터널은 어디일까? 현재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 터널은 스위스의 알프스 산맥을 관통하는 57㎞ 규모의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이다. 알프스로 나뉘어진 유럽의 북부와 남부를 연결해주는 이 터널의 역사는 꽤나 길다. 13세기부터 해발 2000m가 넘는 고트하르트 길은 북유럽과 남유럽을 이어주는 중요한 무역 루트였다. 당시만 해도 이 길을 넘으려면 1박2일 정도의 여행을 감수해야 했는데, 이 무역로에 대한 안전을 위해 해당 지역의 공동체들은 연합하게 되었고, 이것이 구(舊)스위스 연방 설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후 스위스는 19세기 후반부터 여러 개의 철도 터널을 만들었고, 20세기 중반부터는 자동차 도로 및 터널을 건설하며 늘어나는 물동량을 소화해 나갔다. 하지만 이는 자동차 배기가스에 따른 환경문제가 대두되며 이 무역 루트의 개선을 점차 요구받았다. 그렇게 1994년 ‘알프스 산맥 보호법(Alpine Protection Act)’이 제정되며 물동량을 최대한 자동차에서 기차로 옮길 것이 제안되었고, 무려 57㎞의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 프로젝트는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은 환경보호적인 측면에서 필요성이 제기되었
  • [2030 세대] 괴짜의 가치/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2030 세대] 괴짜의 가치/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영국에서 출판되는 백과사전에 보면 괴짜라고 분류되는 인물들이 있다. 영국은 괴짜를 사랑하는 나라다. 펑크의 본거지도 영국 아닌가. ‘영드’의 명탐정 셜록 홈스도 남과 어울리지 못하는, 자기 세계에 갇힌 괴짜다. 영국에서 나도 괴짜 몇 명을 만났다. 우선 초등학교에선 자연과학 말곤 모든 것을 무시하는 한 친구가 있었다. 눈은 조그맣고 입술은 얻어맞은 것처럼 늘 부풀어 있었다. 운동도 못해 누가 봐도 우스꽝스러웠지만, 워낙 특이한 그를 모두 반 선망하는, 반 놀리는 마음에 대표 과학자로 인정했다. 이 녀석은 기네스북에 어떤 새로운 기록이 세워졌다든지, 무슨 딱정벌레가 어디에 사는데 이러이러한 특성이 있다는지 하는 식으로 잡다한 지식이 많았다. 지금은 뭐하고 지낼까? 중학교 땐 어린 나이에 주식투자에만 골몰한 친구도 있었다. 범생이같이 생겼으나 공부를 못하는 비극적인 녀석이었는데 1년 내내 5파운드(당시 한화 만원 정도)만 투자하면 2~3배로 늘려준다고 속삭였던 게 기억난다. 원금은 무조건 돌려준다는 말에 5파운드를 투자(?)했다가 다시는 그 돈을 보지 못했다. 사기꾼은 아닌 것 같았던 그 친구, 결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게 됐다. 영국의 괴짜들은
  • [2030 세대] 젊음의 어드밴티지/김영준 작가

    [2030 세대] 젊음의 어드밴티지/김영준 작가

    “여러분들의 감각과 안목을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실진 모르겠습니다만 냉정하게 봤을 때 시장과 소비자의 평균보다는 아래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감각과 안목을 함부로 믿지는 마세요.” 강연을 나갔을 때 은퇴가 가깝거나 은퇴하신 분들을 마주하게 될 때 종종 하는 얘기다. 소비시장에서 소비자를 설득하여 지갑을 열게 하려면 그만큼 다양한 소비를 해본 경험이 필요하다. 그런데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소비의 경험이 빈곤하기에 소비자의 수준과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엇인지도 모를 가능성이 높다. 자영업 시장이란 곳이 5년 내에 70~80%가 폐업을 하는 곳인 만큼 이런 분들의 폐업 확률을 줄이기 위해선 이런 사실을 분명히 알려드릴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얘기를 하는 나도 속이 편하진 않다. 시장은 냉정하다. 개인의 사정을 고려치 않는다. 나이 드신 사업자들이 자영업 시장에서 평균 이하인 경우가 많은 것은 그 분들이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실 당시엔 소비를 죄악시하던 풍토가 있었고 소비품도 다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젊은 사업자들이 경쟁력에서 우위를 보일 수 있는 이유는 과거보다 소비의 경험을 축적하기 쉬우며 주된 소비자들과 비슷한 시각
  • [2030 세대] 두 왕자 이야기/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3학년

    [2030 세대] 두 왕자 이야기/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3학년

    국가를 막 다스리기 시작한 젊은 지도자가 있다. 국가는 극도로 폐쇄적이고 정권은 억압적이다. 과거의 지도자들은 모두 오늘 내일하는 노인들이었다. 자신이 헤쳐나가야 할 수십년 미래를 생각하는 젊은 지도자는 이 상태로는 국가가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깨닫고 개혁에 착수한다. 선대가 보여주지 못한 파격적인 움직임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럴수록 기존 노인 지도부와의 갈등은 심해지고, 결국 피의 숙청이 이어져 새로운 젊은 엘리트들이 대거 진입하게 된다. 북한의 김정은 이야기다. 공교롭게도 똑같은 사람이 아시아 반대편에 한 명 더 있다.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이다. 그가 다스리는 사우디는 철저한 이슬람 보수주의인 와하비즘으로 국민을 옥죄어온 절대왕정 국가다. 물론 북한과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사우디는 세계 제일의 석유 매장량을 바탕으로 물질적 차원에서 국민의 불만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점에서 중국과의 무역에서 발생하는 부와 뇌물에 기대 유지하는 현시대 북한 엘리트와는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젊은 왕세자 빈살만은 김정은과 비슷한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다. 젊은 세대는 더이상 와하비즘에 무비판적으로 순종하지 않았다. 라이벌 이란은 중동에서
  • [2030 세대]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한승혜 주부

    [2030 세대]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한승혜 주부

    얼마 전 작은 소동이 있었다. 오랜만에 친정을 방문한 김에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늦게까지 놀다가 택시를 타고 돌아오게 됐는데, 내리고 보니 핸드폰이 없는 것이다. 아무래도 음식점에 두고 온 것 같아 다시 택시를 타고 가게로 향했다. 물론 핸드폰은 없었고, 한 시간가량 헤매던 끝에 포기하고 귀가했다. 그런데 돌아와서 현관문을 열다가 정말이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온 집안에 불이 켜져 있고, 잠들어 계실 줄 알았던 부모님은 초조하게 거실을 왕복하고 계셨다. 엄마의 한쪽 손에는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핸드폰이 있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알고 보니 핸드폰은 처음 탔던 택시에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늦게까지 연락이 없자 부모님이 전화를 거셨는데 다행히 기사님이 받아서 가져다주셨다고. 문제는 핸드폰은 돌아왔지만 정작 한 시간도 더 전에 집 앞에 내려줬다는 핸드폰의 주인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기겁한 부모님은 실종신고를 하러 경찰서로 가기 직전이셨다. 이야기를 듣는데 참으로 민망하고 죄송스러운 한편, 어린아이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걱정을 하셨을까 의아함이 들었다. 회사 다니던 때도 회식이다 뭐다 늦게 귀가한 일이 처음도 아니고. 다음
  • [2030 세대] 인프라의 소중함/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2030 세대] 인프라의 소중함/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인류 문명 4대 발상지의 공통점은 강을 중심으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나일강의 이집트 문명, 유프라테스강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리고 인더스 문명과 황하 문명이 그것이다. 강 주변에 거주하다 보니 인류는 고대로부터 수리시설을 만들어 홍수나 가뭄 등의 피해를 막는 일에 힘을 썼다. 중국에서 기원전 2070년경 살았다고 전해지는 하나라 우왕의 헌신적인 치수사업은 현재 샤오싱시의 대우릉(大禹陵)이라는 가묘를 통해 보여 주듯이, 현재까지 존경의 대상으로 추앙받고 있다. 하나라 우왕도 다소 전설적인 인물이라 정확한 정황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지만, 꽤 오랫동안 인류는 강의 범람을 신의 분노 등으로 해석하고 제사를 지내며 대처해 나갔다. 하지만 16~17세기 동안의 과학혁명 이후 인류는 물의 특성을 파악하기 시작했고 다니엘 베르누이나 클라우드루이 나비에, 조지 스토크스경과 같은 과학자들은 물의 움직임을 수식화ㆍ계량화하는 유체역학이란 학문을 정립해 나갔다. 이후 토목공학자들은 유체역학을 바탕으로 수리학(水理學ㆍHydraulics)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공학적 관점에서 강을 인간에 이롭게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한강의 고수(高水)부지는 수위가 높을 때 잠기는 부지라는 뜻이다
  • [2030 세대] 밥 딜런의 꿈/김현집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2030 세대] 밥 딜런의 꿈/김현집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대학에서 강의할 때면 ‘내 꿈이 무엇이었느냐’고 묻는 학생들이 있다. 그러면서 우린 꿈을 놓지 않는 방법을 같이 얘기한다. 학생들은 이제 겨우 18~21세. 배우는 만큼 버려야 할 게 많은 나이이다. 가치, 편견, 줄곧 가꿔왔던 꿈을 버리기도 한다. 밥 딜런은 노벨 문학상 수락 연설문에서 전쟁 속 젊은이들을 그린다. “옛날옛적 넌 순진하고 어렸지. 그리고 피아니스트가 된다고 꿈도 크게 꿨지.(중략) 지금은 총을 쏘아 조각내지.” 어렸을 적 꿈은 과연 실현하기 어려운 것일까? 문제의 핵심은 이렇다. 어느 분야에서 뛰어나려면, 그것에 걸맞은 기술을 익혀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 이를테면 많은 사람이 원하는 창작 관련 분야들은 기술의 시작점이 또렷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고민이 있다. 딛고 올라갈 사다리의 가로장이 필요한데, 눈앞엔 구름 같은 낭만뿐이다. 창작의 과정은 수수께끼 같다. 재주는 갈수록 작아 보이고 결국 포기하기 쉽다. ‘열정을 좇자’ 하는 친구가 있다면 조심스럽게 이렇게 조언해 주고 싶다. 간단한 규칙을 하나 정해서 연습하라고. 어떤 식의 규칙을 정할지는, 예를 들어 시를 쓰겠다고 한다면, 좋은 시인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어려
  • [2030 세대] 인간의 손과 허영심, 그리고 발전/김영준 작가

    [2030 세대] 인간의 손과 허영심, 그리고 발전/김영준 작가

    어느 한 유기농 수제 쿠키 판매점의 실상이 논란으로 떠올랐다. ‘내 아이를 생각해 만든’ 유기농 수제 쿠키가 알고 봤더니 유기농도 아니요 수제도 아닌 공장제 대량생산품이었다는 것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본질이 빠진 껍데기뿐인 타이틀이란 측면에서 볼테르가 껍데기만 남은 신성로마제국에 대해 남긴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니다’란 표현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은 이 쿠키를 구매한 사람들을 비난하기에 바빴다. 맛의 차이도 구분할 줄 모르면서 허영심에 빠져서 껍데기뿐인 문구에 속아 넘어갔다고 말이다. 성급한 비난이다. 왜냐면 이러한 현상은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보편적 현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람의 손은 언제부터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았을까.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들던 수공업의 시대에는 손이 큰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다 대량생산으로 인해 사람의 손이 필요치 않게 되는 시기부터 수제는 가치를 얻기 시작했다. 이러한 수제의 욕망을 정확히 파악한 사람이 19세기 미국의 경제학자였던 소스타인 베블런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한다. 베블런은 대량생산의 시대에 수제의 가
  • [2030 세대] 민족주의를 변호하다/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3학년

    [2030 세대] 민족주의를 변호하다/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3학년

    요즘은 어딜 가나 근대국가의 발명품인 민족주의(nationalism)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2002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라 할 만하다. 민족주의가 다원성을 무시한다는 지식인들의 비판이 먼저였고, 그 후 청년들이 가세했다. 이들은 민족주의의 폭풍과 강요된 애국이 삶의 질과는 별 관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편 역사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한국인들 안에 수많은 이민족이 녹아들었다는 것이 알려졌고, “세계 유일의 단일민족”이라는 것은 그저 신화라는 것도 밝혀졌다. 동시에 대거 유입된 이주민들로 인해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경계도 흐려졌다. 이제 전통적 민족주의는 생각이 굳은 50대 이상에서야 간신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중동, 이슬람을 공부하다 보면 민족주의가 나쁘기만 한가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대체로 이 지역에서 고통을 야기한 것은 민족주의 과잉이 아니라 민족주의 결핍이었기 때문이다. 한 국가 아래에서 영토와 역사를 공유하는 국민이라는 소속감보다는 부족과 종교라는 소속감이 더 지배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구에 의해 강제로 이식된 국가 체제는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중동의 정치인들은 국민을 대표한다지만 그 ‘국민’은 특정 부족이나 종파의
  • [2030 세대] 자연주의라는 환상/한승혜 주부

    [2030 세대] 자연주의라는 환상/한승혜 주부

    한 축구선수가 출산 때 아내에게 무통주사를 맞지 말도록 권유했던 일이 며칠 전 화제가 되었다. 그는 창세기 구절을 들어 “주님께서 주신 고통을 피하지 말자”며 아내를 설득했다고 한다. 종교적 신념에 의거한 그의 주장은 ‘하나님께서 주신’, 즉 자연적인 아픔을 그대로 감내하자는 측면에서 자연주의 출산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자연주의 출산은 의학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출산 방식이다. 촉진제나 무통주사 등 약물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분만과정에서 열상을 방지하려고 통상 병원서 진행하는 회음부 절개도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할머니 세대의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는데,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비용은 일반 분만의 두 배 이상이 든다. 몇 년 전부터 이러한 자연주의 출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임산부 커뮤니티에 가보면 자연주의 출산에 관한 예비 엄마들의 뜨거운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데 개중에는 관심은 있지만, 비용 때문에 고민이 된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겁이 많아 포기했다며 아쉬움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은 의학의 발달로 예전처럼 아이를 낳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현저하게 줄었지만, 출산은 본래 상당한 위험을 동반한다. 그렇기에 이처럼 의료 개
  • [2030 세대] 공학이란 무엇인가/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2030 세대] 공학이란 무엇인가/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간혹 공학에서 원천기술의 중요성을 과도하게 강조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국내 가동되는 가스터빈 중 우리 기술로 만든 제품은 하나도 없다느니, 국내 최장 다리도 외국 기술에 의존했다느니 하는 것이 그러한 주장이다. 그런가하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하이퍼루프라 하는 튜브트레인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는 최고시속 1200㎞에 이르러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 35분 만에 갈 수 있다고 한다. 대단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러할까. 하이퍼루프가 운행되려면 그 튜브트레인이 지나는 터널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이 밀집한 대도시에서는 지하터널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현재 추진 중에 있는 수도권 GTX와 비슷해진다. 이미 언론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GTX A와 B, C 노선 총 140.7㎞ 중 46.2㎞인 A노선만이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었다. 비용 대비 편익의 비율이 1을 넘지 않아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GTX 총사업비는 13조원가량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2018년 현재 국토교통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15.8조원이다. 그래서 민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재 거론되는 A구간 이용요금은 4900원 수준인데,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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