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오피니언
  •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40년 역사 디딤돌 삼아 날아오르길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40년 역사 디딤돌 삼아 날아오르길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부엌 아궁이의 재로 뒤덮여 ‘재’를 뜻하는 이름을 얻게 된 ‘신데렐라’. 새엄마와 이복언니들의 구박에 지쳐 서러움이 북받치자 빗자루를 들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신데렐라를 맡은 문훈숙은 남루한 옷차림에도 춤추는 자태만큼은 여느 공주보다 우아하다. 요정의 도움으로 대변신을 한 신데렐라는 호박마차를 타고 무도회에 가서 왕자를 만나고 함께 사랑의 왈츠를 춘다. 왕자 역의 1m 88㎝의 훤칠한 패트릭 비셀은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수석무용수답게 공중으로 높이 솟구쳐 무대를 장악하고 능숙한 솜씨로 완벽한 연기를 펼친다. 지금 봐도 손색없을 이 작품은 40년 전인 1984년에 유니버설발레단이 올린 창단공연이었다. 서양예술인 발레가 한국에 뿌리내려진 것은 1940년대였다. 이후 1962년에 국립발레단, 1976년에 광주시립발레단이 창단되는 등 공공발레단을 중심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유니버설발레단이 창단과 함께 선보인 무대는 당시 한국발레와 비교했을 때 그야말로 차원이 달랐다.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준 ‘넘사벽’의 무대였다고 기억한다. 유니버설발레단은 한국 발레사에서 어떤 영향력을 끼쳤는가. 발레단의 모체인 선화예술중고등학
  • [열린세상] ‘스캔들 정치’에 대응하는 방식

    [열린세상] ‘스캔들 정치’에 대응하는 방식

    ‘명태균 스캔들’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국회도 스캔들의 늪에 빠졌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국정감사를 지원하기 위해 50여개 국정 현안을 분석한 ‘2024 국정감사 이슈 분석’을 발간했다. 안타깝게도 90명의 전문조사관이 3개월 동안 준비해 만든 10권의 보고서는 ‘오빠 논란’에 묻혀 버렸다. 정치 스캔들은 늘 있었다. 문제는 대응 방식에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조국 사태, 이재명 사법 리스크 등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불신은 점점 더 깊어졌다. 민주주의 또한 조금씩 더 무너지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가치와 규범이 모호하고 흐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 스캔들에 대한 이해와 평가가 정치 성향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양 진영은 여전히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 조국 의원은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지지 세력들에게 그는 검찰 독재의 희생양이다. 이재명 대표 역시 각종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으나 지지자들은 정치적 탄압을 중단하라고 외친다.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켐은 사회 규범이 부재하거나 도덕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를 아노미(anomie)라 했다. 사회가 급속히 변동하는데
  • [길섶에서] 불멍 말고 물멍

    [길섶에서] 불멍 말고 물멍

    출입처가 국회였던 시절, 가장 좋았던 건 한강이 바로 옆에 있다는 점이었다. 정치인이나 보좌관들과 점심 약속이 없는 날엔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여의도 한강 공원 산책에 나섰던 기억이 선명하다. 탁 트인 한강을 옆에 끼고 걷는 데 집중하다 보면 그날그날 벌어지는 사건·사고들로 복잡했던 머릿속도 조금은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걷다가 잠시 쉬어 가기 위해 벤치에 앉아 한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물론 곧바로 현장에 달려가기 직전 짧고 달콤한 휴식이었지만.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물멍’이 유행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타오르는 장작을 바라보며 ‘불멍’을 즐기는 것이 한때 유행이었다면, 요즘은 물멍이 대세라는 것이다. 물을 바라보는 물멍은 장작을 피워야 할 수 있는 불멍과 달리 언제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한다. MZ세대가 일상에서 물멍을 추구할 정도로 휴식이 필요하다는 방증 아닐까. 각박한 현실 속에서 좌절감을 경험한 2030 세대가 물멍을 찾는 현실이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다.
  • [황수정 칼럼] 대통령은 지지율에 일희일비해야 한다

    [황수정 칼럼] 대통령은 지지율에 일희일비해야 한다

    금도를 넘는 일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다. 국정감사에서 야당이 김건희 여사 동행명령장을 들고 대통령 관저까지 찾아갔다. 국감 증인으로 채택한 김 여사가 불출석하자 야당은 동행명령장을 일방적으로 발부했다. 현직 대통령의 부인을 국회에 세우려는 시도는 헌정 사상 처음이다. 어쩌다 이런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 현실이 될 지경에 왔을까. 야당은 대통령 탄핵을 대놓고 거론한다. 급기야 하야를 입에 올린다. 임기 반환점을 채 돌지 않은 현직 대통령에게 이런 무도한 언어는 발설하지 못해야 정상이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아도 국정이 흔들리는 혼돈을 상식 있는 국민이라면 용납하지 않는다. 여론 역풍이 무서워서라도 금기어는 금기어로 남겨 두게 마련이다. 그런데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한 정권에서 한두 번만 일어나도 나라가 술렁거렸을 ‘사건’들이 밥 먹듯 이어지고 있다. 세계 정치학자들이 연구 사례로 주목할 놀라운 헌정 교란 사건들이 자고 나면 하나씩 보태진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음날 곧장 검찰총장을 탄핵하겠다고 한다. 검찰 수사를 받는 일개 정치 브로커가 시한폭탄을 쥔 듯 대통령 부부와 얽혔던 일들을 폭로한다. 대통령을 들었다 놨다
  • [열린세상] 긴축의 관행과 시대의 부조응

    [열린세상] 긴축의 관행과 시대의 부조응

    사회과학자들은 신자유주의가 풍미했던 20세기 말~21세기 초를 긴축의 시대라 말한다. 세금과 정부 규모를 줄이고, 규제를 풀고, 질서를 잡자는 ‘줄푸세’는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선진국 정치인들의 기조였다. 세금을 줄여 기업들이 초과이윤을 획득하면 사회로 그 효과가 확산되는 낙수효과가 기대된다는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뒷받침됐다. 이러한 기조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도전을 받았다. 진보 정치세력뿐만 아니라 트럼프를 위시한 보수 우파 정치인들도 재정을 투하하거나 ‘양적완화’ 등을 통해 시중에 돈이 돌게 하는 조치가 긴축보다 중요할 때가 있음을 받아들였다. 물론 적극적 재정정책, 보편적 복지, 사회적 합의의 방식에서 나라별로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긴축은 신자유주의의 전성기와 상관없이 도전받은 적이 없는 사회의 운영원리였던 게 아닐까 싶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은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고용보험과 같은 사회보험 없이 수십년을 진행해 왔다. 노동 3권도 1987년 이전에는 꿈꾸기 어려웠다. ‘허리띠를 졸라메고’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권을 유예해 온 것이다. 국민의 건강, 노후, 일할 권리, 직장 민주주의는 ‘당연한’ 것이 아닌 ‘과분’하거나 ‘사
  • [천태만컷] 군화 대신 구두를 기대하며

    [천태만컷] 군화 대신 구두를 기대하며

    군인 취업 박람회를 찾은 한 병사가 진로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제대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 병사가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를 신고 첫 출근하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습니다. 멀티미디어부
  • [씨줄날줄] 비상 걸린 병력자원

    [씨줄날줄] 비상 걸린 병력자원

    미국 CNN 방송은 지난해 12월 “앞으로 한국군이 맞이할 가장 큰 적(enemy)은 낮은 출산율”이라고 했다. 출산율 0.78명으로는 50만명에 이르는 기존 병력을 유지하기 어려우며, 저출생 문제로 한국의 국방력 약화가 우려된다는 지적이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따르면 2022년 말 한국군 병력수는 48만여명으로 북한군(128만여명)의 37% 수준이다. 강원도 전방의 한 전투지역전단(FEBA) 부대는 최신예 K-21 장갑차로 무장하고 있지만, 훈련 때 인력이 부족해 옆 중대에서 포수와 조종수를 빌려 오는 ‘훈련 품앗이’를 하고 있다. 요즘 전쟁은 병력수로 이뤄지는 게 아니며 첨단과학기술 기반의 정예화된 군 구조로 전환하면 충분히 대처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막대한 핵무기와 첨단무기들을 갖춘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1만 2000여명의 전투병력을 급파받는 것은 병력자원이 전쟁 승패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임을 방증한다. 최근 여당의 중진의원이 ‘5060 군경계병 법안’을 검토 중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정된 병력자원을 전투병 위주로 운용해 전력을 극대화하자는 고육지책이다. 설상가상으로 전투력 유지에 큰 몫을 담당하는 초급간부들은 줄줄이 군을
  • [사설] 뒷걸음질 잠재성장률, 더 미룰 수 없는 구조개혁

    [사설] 뒷걸음질 잠재성장률, 더 미룰 수 없는 구조개혁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에 역전됐다. 기획재정부가 그제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정한 올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0%다. 2020~2021년 2.4%였던 잠재성장률은 2022년 2.3%로 하락하더니 지난해 2.0%로 뚝 떨어졌다. 반면 미국의 잠재성장률은 2020~2021년 1.9%에서 2022년 2.0%로 상승한 뒤 지난해 2.1%까지 올랐다. 올해도 2.1%로 추정된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가 생산자원을 모두 투입해 물가 급등 등의 부작용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이다. 국가경제의 기초체력으로 간주되며 노동력과 자본, 생산성이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27조 3480억 달러로 우리나라(1조 7128억 달러) GDP의 16배다. 경제 규모가 큰 나라일수록 성장률을 올리기가 어려운데 완숙 단계에 접어든 미국 경제는 되레 체력이 튼튼해지고 있는 셈이다. 인구구조와 혁신의 차이로 경제성장의 희비는 엇갈린다. 우리나라는 저출생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2016년 정점을 찍은 이후 계속 줄고 있다. 미국은 꾸준히 이민자가 유입되고 있다. 여기
  • [사설] 공무직 정년 연장, ‘계속고용’ 본격 논의 계기 삼길

    [사설] 공무직 정년 연장, ‘계속고용’ 본격 논의 계기 삼길

    행정안전부의 공무직 근로자의 정년이 60세에서 65세로 단계적으로 연장됐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65세)과 현재 정년 사이의 소득 공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다. 중앙부처 중 처음으로 정년 연장이 시행된 사례다. 이 조치가 다른 부처나 민간으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이번 정년 연장은 지난 14일 개정된 ‘공무직 운영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르면 올해 정년 예정인 1964년생은 63세, 1965년생부터 1968년생까지는 64세, 1969년생부터는 65세로 정년이 늘어난다. 공무직은 정식 공무원은 아니며 중앙행정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에서 환경미화나 시설관리 업무를 하는 무기계약직이다. 공무원법 대신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으며 임금과 복지는 소속 기관과의 단체협약으로 결정된다. 정년 연장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노동계는 고령 노동자의 소득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도입을 환영한다. 반면 청년 일자리 감소와 기업의 인건비 부담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60세 정년 의무화 이후 청년 고용이 16.6% 줄었다. 하지만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정년 이후 계속고용은 더이상 피할 수 없는
  • [이세라의 브랜드 앤 아트] ‘미술 책’ 출판사의 진화, 마로니에

    [이세라의 브랜드 앤 아트] ‘미술 책’ 출판사의 진화, 마로니에

    “미술로 먹고살기 참 어려운데 그중 동양화는 더한 것 같다.” 최근 한국화가인 지인과 대화 중 나온 얘기다. 이 말을 들으며 문득 다른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책으로 먹고살기 참 어려울 텐데 그중 미술책은 더하지 않을까?’ 쉽지 않아 보이는 이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이 있다. 마로니에북스(이하 ‘마로니에’)의 이상만 대표다. 마로니에는 국내 대표 미술 전문 출판사로 지난 2000년 초 문을 연 뒤 20년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해 왔다. 기초 교양을 쌓는 미술사 서적 시리즈 출판부터 개별 작가나 특정 사조에 대한 연구서까지 마로니에가 출판하는 미술 서적은 대중서와 마니아층을 위한 전문서를 두루 아우른다. 미술은 물론이고 영화, 건축, 클래식, 세계사 등 다양한 장르와 주제를 다루는 ‘죽기 전에 꼭’ 시리즈를 번역 소개한 곳 역시 마로니에다. 이 대표는 1990년 컴퓨터 관련 서적을 출판하는 정보문화사로 출판업을 시작했다. 빠르게 바뀌는 유행 탓에 시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기술 관련 책과 달리 마로니에의 책들은 오래 곁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다시 찾아 읽는 것들이 많다. 5년, 10년 동안 꾸준히 팔릴 책을 만든다고 했을 때 출판사 입장
  • [사설] 尹·韓 만남… 갈 길 멀지만, 당정 신뢰 회복 물꼬 돼야

    [사설] 尹·韓 만남… 갈 길 멀지만, 당정 신뢰 회복 물꼬 돼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어제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 내 ‘파인그라스’에서 81분간 회동했다. 지난달 추석 연휴 직후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독대를 요청한 지 한 달 만이다. 이날 회동은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차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박정하 국민의힘 당대표 비서실장은 회동이 끝난 뒤 국회를 찾아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대통령실 인적쇄신, 김건희 여사 대외활동 중단, 여사 관련 의혹 상황 설명 및 해소, 특별감찰관 설치, 여야의정협의체 조속 출범 필요성’ 등의 내용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실은 “헌정 유린을 막아내고 정부의 성공을 위해 당정이 하나가 되기로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지만 한 대표의 요구안에 대통령실의 구체적 대답은 없어 민심 수습의 필요성만 공유한 셈이다. 모처럼 두 사람이 함께한 자리에서는 한 대표가 주로 얘기하고 대통령은 경청했다고 한다. 이날 회동이 독대가 아닌 면담 형식으로 1시간 20여분에 그쳤다는 점은 아쉬운 측면이 있다. 회동이 있기 전부터 양측의 온도 차는 확연했다. 대통령실은 한 대표의 ‘한남동 라인 경질’ 요구에 대해 “대통령의 인사 권한”이라고 못박
  • [길섶에서] 입학 전 이사 고민

    [길섶에서] 입학 전 이사 고민

    자녀의 초등학교 진학 문제로 이사를 고민하는 맞벌이 부부가 있다. 큰아이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진학해야 하는데 집 부근에 적합한 학교가 없다. 아파트 단지 맞은편에 공립초등학교가 있으나 행정구역이 달라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사립초등학교도 고려했지만, 아이가 아침부터 장시간 통학버스에 시달릴 생각에 포기했다. 하지만 이사를 결정하니 또 다른 고민에 가슴 한쪽이 답답하다. 부모님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수시로 아이를 돌봐 준다. 아이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하는 시간엔 늘 웃음꽃이 피어난다. 이사를 가면 학교 문제는 해결되겠지만 가족 간 정서적 유대감이 약해질까 걱정이다. 저출산 시대에 학생수 부족으로 학교 통폐합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도심에서는 같은 생활권인데도 가까운 학교에 갈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부모가 자녀의 입학 문제로 가족 간의 유대감 약화를 걱정하는 것도 아쉽다. 실질적인 생활권 중심으로 학교 배정이 이뤄져 아이가 가족의 사랑 속에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현갑 논설위원
  • [서울광장] 환상이 사라진 ‘대통령 유적’의 고민

    [서울광장] 환상이 사라진 ‘대통령 유적’의 고민

    지난 주말 ‘대청호 두루봉 물빛축제’가 열린 청주 문의를 찾았다. 무대가 면소재지인 미천리의 문의향교 앞 사거리에 당당하게 마련된 것은 이 작은 마을축제에 거는 주민들의 기대가 반영됐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무대에서 대청호로 이어지는 거리에는 난장이 펼쳐졌으니 잔치 분위기는 제대로 났다. 문의는 조선시대 충주목 문의현이었다. 하지만 향교만 제자리일 뿐 지금 보이는 면소재지는 1980년 대청댐 완공 이후 수몰 주민들이 이주한 이후의 모습이다. 문의는 1983년 조성된 대통령 전용별장 청남대가 있는 고장이다. 2003년 개방된 이후 한동안은 문의를 지나는 모든 도로가 교통체증을 빚을 만큼 많은 관람객이 몰리기도 했다. 대청호 경관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을 테니 찾아오는 손님은 앞으로도 아주 적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개방 20년을 훌쩍 넘기며 대통령이 어떻게 살았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진 이후에도 다시 찾을 이유는 그다지 없는 게 사실이다. 지난해 말까지 청남대를 찾은 이는 1422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놀라운 방문객 숫자를 보면 청남대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은 이미 대부분 다녀간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문의는 산과 강이 어우러진 절경이지만 그
  • [기고] 인공지능과 개인정보 보호

    [기고] 인공지능과 개인정보 보호

    지난 10월 초 올해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을 인공지능(AI) 분야 연구학자들이 수상했다. 인공지능 분야 연구역사가 다른 기초과학에 비해 짧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지만, 그만큼 인공지능 관련 과학기술이 향후 세계 각 국가의 역량과 경제성장에 여러 측면에서 큰 영향을 미칠 중요한 기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정부도 인공지능 분야의 국제적인 주도권 선점을 위해 지난 9월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민관 합동의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본격적인 지원 정책 등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최근 노벨상을 수상한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명예교수는 인공지능 기술발달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사회적 위험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국민의 일상생활과 직결되는 중요한 위험 요소 중 하나가 인공지능 시대의 개인정보 침해 문제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학습시켜야 한다. 나아가 개인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최상의 인공지능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개인정보를 학습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인공지능이 결합한 맞춤형 의료서비스 로봇, 자율주행 차량 등 미래 인공지능 최첨단 기술들은 최종적으로 개개인의 구체적인 정보
  • [공직자의 창] 망설이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

    [공직자의 창] 망설이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7월 출생아 수는 2만 601명으로 1년 전보다 1516명 늘며 12년 만에 가장 많이 증가했다. 혼인도 1만 8811건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658건 늘어 1981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로 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아기 울음소리가 많아진다는 것은 무엇보다 기쁜 소식이다. 긍정적 변화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인식조사에서도 나타났다. 올해 9월 조사에서는 지난 3월보다 결혼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출산 의향이 모두 높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젊은 세대는 결혼과 출산, 양육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일하는 부모들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힘든 현실에 직면한다. 아이가 아파도 퇴근하지 못해 회사에서 발만 구르고 자녀와 함께할 시간이 부족해 결국 직장을 떠나기도 한다. 일과 육아를 힘들어하는 주변 선배 엄마·아빠의 모습은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망설이고 두렵게 느끼는 이유가 된다. 더이상 시간이 없다. 정부가 나서 청년들이 일과 육아라는 두 행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선진국 수준의 일·가정 양립 환경을 조성할 때다. 정부는 지난 6월 ‘일·가정 양립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고, 그 내용이 담긴 ‘육아지원 3법’(남녀고용평등법, 고용보
  • [세종로의 아침] 김보라와 이균이 연결하는 세계

    [세종로의 아침] 김보라와 이균이 연결하는 세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후 한 독자의 댓글이 가슴에 와닿았다. ‘우리도 노벨문학상 작품을 원어로 읽을 수 있게 됐다.’ 노벨문학상 수상의 전제 조건은 외국 독자들도 모국어로 한강의 작품을 읽고 가치를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번역되지 않았다면 노벨문학상도 불가능했다. 영국 런던의 대형서점 워터스톤스 온·오프 매장에서 판매 중인 한강의 소설은 10여권. 하드카피와 오디오북까지 발매된 ‘채식주의자’부터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흰’, 최신작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온라인 서가를 채운 책들을 클릭하면 예외 없이 한 사람 이름이 뜬다. 맨부커상의 공동 수상자인 데버라 스미스. 한국에서는 책 표지에 번역가 이름이 표기되지만, 영미권 출판사들은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번역가가 표기된 건 번역의 예술성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그가 대장장이에서 유래한 스미스를 쇠 금(金)으로 옮기고, 데버라에서 음을 딴 한국 이름이 김보라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스미스는 스물두 살 때 한국어를 독학했다. 그에게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소수 언어 번역 작품에는 냉담한 영국 출판계의 철벽을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문학으로 뚫었기 때문이다. 그가 ‘채식주의자’의 첫
  • 8년 전보다 선거인단 격차 작아… ‘트럼프 2기’ 준비해야 할까[한규섭의 데이터 정치학]

    8년 전보다 선거인단 격차 작아… ‘트럼프 2기’ 준비해야 할까[한규섭의 데이터 정치학]

    여론조사로 선거인단 추정해 보니 해리스, 트럼프에 단 16명 우위 2016년 클린턴 우세의 ‘5분의1’ 트럼프 패배 예상 뒤엎고 ‘완승’ 지금 해리스 우위 거의 무의미 ‘샤이 트럼프’로 2016년 예측 실패 2020년 바이든 당선 예측에도 실제 선거 결과는 초박빙 승리 현 여론조사 격차 없는 경합주 3곳 중 1~2곳 트럼프 승리 예상 美 대선 판세 왜 이렇게 됐을까 민주 中 견제, 트럼프 따라하기 이민자 대응·안보도 아킬레스건 흑인, 해리스에 동질감 못 느껴 트럼프 中정책, 韓에 되레 기회 미국 대선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 지정학적 이유로 국내에서도 미국 대선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조금 앞서 있지만 극미한 ‘샤이 트럼프’ 현상만 있어도 쉽게 뒤집어질 수 있는 살얼음판 우위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에게 전국 일반 득표수에서 뒤졌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앞서 당선됐던 2016년 선거 때보다 일반 투표와 선거인단 모두에서 격차가 훨씬 작은 상황이다. 미국의 대표적 데이터저널리즘 기관인 파이브서티에이트(FTE)에서 조사업체 바이어스 보정 후 추정하는 전국 단위 지지
  • [씨줄날줄] 백지신탁, 공익과 사익 사이

    [씨줄날줄] 백지신탁, 공익과 사익 사이

    “초대 정부 공직자 윤리위원으로 차관들과 싸워 가며 공직자 재산신고 항목에 주식을 포함하는 것을 이뤄 낸 것은 지금도 뿌듯하다. 국무총리직 제안에 국회의원 공천 약속 등을 받았지만 ‘내가 그 자리에 앉으면 나도, 그 자리도 망합니다’ 하고 사양했다. 돈과 권력이 생기는 곳에 서지 않기로 했다.” 재단법인 교육의봄 홈페이지에 연재 중인 손봉호 이사장의 회고록 일부다. 명예와 권력을 사양했다는 그는 이사장과 명예이사장 자리를 연거푸 맡으면서도 수당이나 회의비를 받기는커녕 회비를 내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봉사하는 셈이다. 이런 가치관을 가진 공직자가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근 문헌일 서울 구로구청장이 백지신탁을 거부하며 구청장직을 포기한 사건은 이 같은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그는 170억원대 비상장 회사의 주식을 갖고 있었다. 정부는 직무 관련성이 있다며 백지신탁을 결정했다. 고위 공직자는 직무와 관련된 주식을 3000만원 초과 보유 시 이를 팔거나 금융기관에 백지신탁해야 한다. 이는 공직 수행 중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문 구청장은 직무 관련성이 없다며 행정소송을 냈고 1, 2심에서 패소하자 구청장직을 던졌다. 이에 따라 주
  • [사설] 北 러 파병에 급변한 안보지형… 철저 대응해야

    [사설] 北 러 파병에 급변한 안보지형… 철저 대응해야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될 북한군이 러시아 기지에서 보급품을 지급받는 모습을 담은 영상은 충격적이다. 북한이 4개 여단 1만 2000명 파병을 결정했고 1500명은 이미 러시아로 이동했다는 정부 발표가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확보했다는 러시아군의 보급품 지급용 한글 설문지나 평안도 억양의 음성은 북한군 파병의 증거가 되고도 남는다. 김정은이 1만명이 훨씬 넘는 목숨을 총알받이로 내주는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분명하다.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더욱 극심한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다. 설상가상 지난여름에는 압록강 하류지역에 엄청난 수재가 발생했지만 제대로 복구도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보병부대도 아닌 특수부대의 대규모 파병에 뒤따를 반대급부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어진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의 끊임없는 발사 실험에도 미국을 정밀하게 타격할 능력을 가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지 못했다. 현대전에 필수적인 군사 정찰위성도 발사 실패로 능력 부족만 드러냈을 뿐이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을 공언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기술은 아직 부족하다. 여기에 지난 국군의날 우리가 평양을
  • [데스크 시각] 배민의 거짓말

    [데스크 시각] 배민의 거짓말

    “외식업주님들의 고충을 세심히 배려하지 못하고 새 요금제를 도입하면서 혼란과 부담을 끼쳐 드리고 말았습니다. 상심하고 실망하신 업주님들께 다시 한번 깊은 사과를 드립니다. 앞으로 주요 정책의 변화는 업주님들과 상시로 소통해 결정하겠습니다.” 국내 배달앱 업계 1위인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2020년 4월 기존 정액제(월 8만 8000원) 대신 주문 1건당 수수료 5.8%를 부과하는 정률제로 요금제를 변경하겠다고 발표한 지 열흘 만에 전면 철회를 선언하고 내놨던 사과문이다. 업주들이 “유례없는 수수료 폭등”이라며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배민은 백기를 들었다. 배민은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이 반년 동안 거리에서 모은 5만장의 음식점 메뉴 전단을 기반으로 만든 앱으로 2010년 탄생했다. 식당에서 한 번 홍보 전단을 찍어 뿌리는 데 15만원 정도가 든다는 점에 착안해 업주로부터 그 절반 수준 가격(8만 8000원)을 받아 월정액으로 운용하며 시장점유율을 60%까지 넓혀 왔다. 독과점 사업자로 아성을 공고히 한 뒤부터 정책에 변화가 생겼다. 2021년 배달 1건당 1000원으로 수수료를 올리더니 이듬해인 2022년 1월부터는 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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