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 [열린세상] 아베 정권의 탈선과 우리의 선택/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아베 정권의 탈선과 우리의 선택/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함으로써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야 말았다. 침략의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는 한국과 중국이 가장 싫어하는 역사의 현장인데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과거 침략의 역사를 부인하는 의미가 된다. 이런 일본의 앞날을 예측했던가. 일본을 항복시킨 맥아더 원수는 일본을 점령하자마자 중요한 몇 가지 정책을 펼쳤다. 첫째, 지독하리만큼 독한 일본의 보수세력들의 결합을 끊는 일이었다. 맥아더는 일본이 침략전쟁을 일으킨 원동력을 군벌과 재벌의 결탁이라고 보았다. 군국주의를 내세운 군벌은 결집된 재벌의 자본력을 배경으로 항공모함, 가미카제 전투기 등 수많은 무기로 무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맥아더는 점령정책의 첫째를 군사력 해체, 두 번째를 재벌 해체로 정책목표를 삼았다. 그리고 군국주의에 물든 국민들의 사상을 바꾸기 위해 민주화를 단행시켰다. 그래서 일본은 패전한 지 70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나름대로 민주주의를 경험하면서 미국과의 동맹하에 조용히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일본의 보수세력의 생각은 경제력뿐만 아니라 정치·군사력으로 강대국이 되는 염원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 속마음이 북한
  • [열린세상] 코레일의 진정한 문제/한순구 연세대 경제학 교수

    [열린세상] 코레일의 진정한 문제/한순구 연세대 경제학 교수

    최근 한국 사회는 코레일 노조의 파업으로 연말 같지 않은 연말을 보냈다. 텔레비전 뉴스프로그램이나 신문은 연일 코레일 노조 파업을 둘러싼 여러 문제에 대해 보도하느라 다른 소식들은 별로 다루지도 못했다. 이런 방송이나 신문을 보노라면 우리 한국 사회가 코레일 사태로 큰 혼란과 피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 혼자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보면 놀랍게도 코레일 사태로 내가 입은 피해는 거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실 나는 주로 자동차를 이용하여 출퇴근하며, 지방에 가끔 내려갈 일이 생기면 먼 거리는 대부분 비행기를 타고 가까운 거리는 내 차로 운전한다. 지난 10년간 내가 이용한 코레일이라고는 KTX를 왕복 네 번 정도 이용한 것이 전부이다. 한마디로 개인적으로 코레일은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존재인 것이다. 만일 내일부터 한국의 모든 철도가 정지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남은 인생을 별다른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음이 분명하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이나 국철 및 철도이용자, 화물관계자 등과 달리 아마 나와 같은 경우도 많을 것이다. 오늘 서울~부산 간 KTX요금을 확인해 보니 5만 7300원 정도이고 소요 시간은 2시간 40분이 조금 넘었다.
  • [열린세상] 철도파업 사태, 사회적 합의로 풀어야 한다/정정화 강원대 공공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철도파업 사태, 사회적 합의로 풀어야 한다/정정화 강원대 공공행정학과 교수

    철도파업 사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국회와 종교계의 중재가 무산된 가운데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결의하면서 노사 간의 대립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자회사인 수서발 KTX 법인의 설립 문제였지만, 양측의 뿌리 깊은 불신으로 인해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철도파업은 공기업의 민영화를 둘러싼 이념적 대립으로 비화하면서 우리 사회를 또다시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은 수서발 KTX 법인은 독점으로 인한 방만한 경영에 경쟁체제를 도입하자는 것으로 민영화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하지만, 노조 측은 민영화를 위한 전초 작업이라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 민영화가 아니라고 밝혔는데도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 대운하사업을 4대강 사업으로 이름만 바꿔 강행했던 수순을 답습하고 있다며 맞서고 있다. 노사 양측은 경영악화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서도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부 측에서는 방만한 경영과 부실운영으로 부채가 가중되고 있기 때문에 경쟁체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각에
  • [열린세상] 새해를 기다리는 희망의 숲/윤영균 국립산림과학원장

    [열린세상] 새해를 기다리는 희망의 숲/윤영균 국립산림과학원장

    지난 12월 22일 절기상의 동지(冬至)를 지나자 벌써 아침 해 뜨는 시간이 점차 일러지고 있다. 동지를 지나도 지상은 아직 겨울 극한의 날씨이지만 이미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는 생명의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 주나라에서는 이날 생명력과 광명이 부활한다고 생각하며 동지를 작은 설로 삼았다. 이것은 땅속부터 싹트는 봄기운을 의미하고 있고 겉으로 보기에 모든 수목이 낙엽을 땅에 떨어뜨리고 침묵하고 있지만 뿌리에서는 무한한 에너지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올해를 돌아보면 우리의 숲은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아름다운 경관 그리고 계절마다 산나물, 버섯, 밤, 대추 등 갖가지 먹거리와 목재 그리고 25만 8000개의 일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숲이 주는 경제적, 공익적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경제적 가치가 매년 7조원에 이르고 대기정화, 수원함양, 산사태 방지와 같은 공익기능이 109조원이나 돼 국민 1인당 216만원의 혜택을 준 것이다.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한 그루의 사과나무가 소년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었듯이 숲이 우리에게 치유와 복지, 그리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해 준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병해충과 산불, 산사태 등으
  • [열린세상] ‘금융분쟁조정중재원’의 설립을 제안하며/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금융분쟁조정중재원’의 설립을 제안하며/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금융기관과 금융 소비자 사이에 금융 분쟁 사건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키코’(KIKO) 파생상품 계약에서 손실을 본 중소 수출업체들과 은행들 사이의 분쟁, 펀드 상품에 투자했다가 손실 본 투자자들과 금융기관 사이의 분쟁, 상호저축은행 후순위채권의 불완전 판매에 따른 분쟁 사건, 최근 동양 사태에서 동양 그룹 계열사 발행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의 불완전 판매에 따른 분쟁 등이 대표적이다. 금융 분쟁의 특징은 대부분이 소액 사건이고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금융 소비자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다. 그런데 소송은 비용이 많이 들고, 최종 판결까지 소요되는 기간도 길다. 그래서 소송은 소액 사건이 대부분인 금융 분쟁 사건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 이러한 소송 대신에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이 조정이나 중재 제도다. 조정은 조정인이 분쟁 당사자 사이의 합의를 유도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제도다. 중재는 당사자의 합의로 제삼자인 중재인을 선임하고 중재인이 내리는 판정에 따르기로 하는 분쟁 해결 제도다. 중재 판정은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 조정도 조정기구가 제시한 조정안을 분쟁 당사자
  • [열린세상] 성탄절에 기대 보는 엉뚱한 사랑/김정현 소설가

    [열린세상] 성탄절에 기대 보는 엉뚱한 사랑/김정현 소설가

    장면1. 여행이든 출장이든 다른 나라로 향하는 여정이다 보니 아무래도 짐이 많다. 차에서 내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나면 난감하다. 그 흔한 카트 하나 눈에 띄지 않고 우둘투둘한 돌바닥과 계단만 기다린다. 장면2. 계단을 오른 뒤 다시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 항공사 수속창구로 향하자면 도중에 걸음을 가로막는 이가 나타난다. 먼저 공항으로 향하는 직통열차 승차권을 구매하지 않으면 수속조차 밟을 수 없단다. 법적 근거가 아리송한 협박이다. 장면3. 직통열차 탑승구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사이 맞은편 일반열차는 벌써 두어 대나 출발한다. 운이 좋아 시간이 맞으면 직통열차 시간 단축의 효과를 누릴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뭔가 억울하다. 모두 서울역 도심공항터미널에서의 장면이고 내 기억으로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 창구에서는 수시로 나라 망신이라며 그에 대한 시정요구를 목격할 수 있지만 내내 요지부동이다. 공식적으로는 ‘코레일공항철도주식회사’이지만 지배구조상 ‘공사’와 같은 공공적 성격에서 벗어나지 않은 한계가 아닐까 싶다. 어떤 일에 나서면 모두가 내세우는 명분은 ‘국민’과 ‘고객’이다. 국민이 운영자의 몫이라면 고객은 종사자의 몫이다. 책임으로 치자면 운영
  • [열린세상] 내년 경제 어떨까/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내년 경제 어떨까/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이제 2013 계사년도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연말에 되돌아보면 어느 한 해 어렵지 않았던 해가 없지만 올해도 어려움이 많았다. 성장률이 2%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많은 정책이 쏟아졌지만 크게 효과를 거두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통해 고용률을 높이려는 시도와 지하경제 활성화라는 명목 아래 복지수요를 충당할 세원 발굴에 힘썼지만 효과는 가시적이지 못하다. 반면 계속되는 정쟁으로 경제의 발목을 잡는 행태는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해 갑오년은 어떨 것인가. 정부에 따르면 내년 경제 정책의 키워드는 경기 회복과 일자리 창출, 민생안정, 경제 체질개선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경제부총리는 대내외 리스크에 철저히 대비하고 구조개혁 과제에 선제 대응해 한국경제의 체질 개선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내년 세계경제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는 것 같다. 이에 힘입어 한국경제도 3.7~3.9%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정부와 한국은행 등에서 예측하고 있다. 외국계 금융기관에서는 이보다 낮은 성장률 전망치를 내놓고 있지만 대체로 3.5% 내외가 될 것으로 전망하는 분위기다. 한국 경제가 회복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 [열린세상] 칡과 등나무/최흥집 강원랜드 대표

    [열린세상] 칡과 등나무/최흥집 강원랜드 대표

    연말입니다. 물리적인 시간이야 사람들의 삶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것입니다만, 우리들이 해가 바뀌는 이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이 시점을 맞아 지난 일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위한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1년을 되돌아봅니다. 우리 사회 안팎으로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여당과 야당은 여전히 서로 옳다고 주장하며 첨예한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골목상권을 둘러싼 대기업과 자영업자 간의 대립이 조금 잠잠해지는 듯하더니, 갑을관계에 대한 논쟁과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대치 상황이 다시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올해 우리 사회에 나타난 여러 가지 갈등의 모습들입니다. 갈등(葛藤). 갈(葛)은 칡을 의미하고, 등(藤)은 등나무를 말합니다. 칡과 등나무는 둘 다 줄기가 땅 위를 기면서 자라든지, 아니면 다른 나무나 물체에 의지해 자라는 덩굴식물입니다. 그러나 같은 덩굴식물이라도 칡은 오른쪽으로 덩굴을 감으면서 나무를 타고 오르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나무를 감으며 타고 올라갑니다. 여기서 칡과 등나무가 만나 서로 얽히면 그것을 풀어내기가 매우 힘들다는 의미에서 갈
  • [열린세상] 얼음장 밑에서도 시냇물은 흐른다/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얼음장 밑에서도 시냇물은 흐른다/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얼음장 밑에서도 시냇물은 흐른다. 1940년대 시대가 광풍으로 치달을 때 그는 매일 도서관에서 100년 이상 단위의 역사를 더듬었다. 특정 생필품의 가격 변동을 100년 단위의 그래프로 그려보기도 했다. 지중해 시대가 몰락하고 대서양 시대가 어떻게 열렸는가를 연구하기도 했다. 혁명과 반혁명의 역사가 서로 충돌하면서 모든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광기가 삼켜 버리고 있을 때 그를 버티게 해준 것은 일상생활을 둘러싼 물질문명이 장기지속적인 심층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사건은 그저 포말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인간의 삶에 심층의 장기지속 구조, 그 위에 중기적인 흐름, 맨 위에 표면의 거품과 같은 정치적 사건이 있다고 했다. 근대 사학의 한 지평을 연 아날 학파의 창시자 페르낭 브로델이 바로 그이다. 1990년대 초에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지에 현지 조사를 간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철의 장막 저편의 사회가 궁금했다. 콜호즈라는 이름의 집단 농장 체제였지만 텃밭도 있고, 마을 학교, 마을 단위의 교육, 마을 단위의 품앗이 등이 조직적으로 짜여 있었다. 특히 한인들은 소비에트 사회 속에서도 본관과 성씨를 따져 친·인척의 계보를 정하고 출산
  • [열린세상] 시간제 일자리로 빈부격차가 완화될까/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시간제 일자리로 빈부격차가 완화될까/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정책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기술보다는 한 차원 높은 종합예술이다. 종합예술의 성격을 가진 정책을 기술로 접근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복잡하고 다면적인 정책이 단순한 흑백논리로 재단될 가능성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을 수립할 때에는 예상되는 긍정적 정책효과뿐만 아니라 부정적 정책효과를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하는 종합예술적 접근법이 필수적이다. 최근 정부에서는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목적으로 시간선택제 일자리 방안을 내놓았다. 가사에 얽매여 정규직 근무가 어려운 여성들로부터는 환영받을 수 있는 정책이어서 나름대로 의미는 있다. 그러나 시간선택제로 질 높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자칫 ‘질 낮은 비정규직’을 양산할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빈곤율이 높아지고,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현실에서 필요한 처방은 정규직 일자리인데 고용률을 높이기에만 정신이 팔려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선택되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정책당국은 시간선택제 일자리 방안을 내놓기 전에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자리가 무엇인지 더 고민했어야 했다. 일자리는 생계수단 이상의 의미가 있다. 어려운 삶을 극복하고 자립 기반을 만드
  • [열린세상] 특허심사관은 국가전략자산이다/백만기 한국지식재산서비스협회장

    [열린세상] 특허심사관은 국가전략자산이다/백만기 한국지식재산서비스협회장

    무형자산이 중심이 되는 창조경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자산은 특허와 같은 지식재산이다. 우리나라가 이제 국가 연구개발 투자 규모면에서 세계 6위, GDP 대비 1인당 연구개발투자 비율 측면에서 세계 2위가 됐지만 우리가 자체적으로 시장가치가 높은 고품질의 특허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창조경제는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창의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발명가, 변리사, 그리고 특허심사관의 손을 거쳐 고품질 특허로 만들어진다. 에디슨 같은 발명가는 자율, 창의, 열정을 기반으로 실패가 자산이 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태어난다. 이러한 발명가의 아이디어를 보호 가능한 법률 문서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변리사는 국가시험제도를 통해 매년 200명 정도 공급되고 항상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한다. 하지만, 특허심사관은 정부의 공무원 수급정책에 따라서 제한된 인력 공급만이 가능할 뿐이다. 심사관의 역할은 변리사가 작성한 특허명세서를 예리한 면도칼로 도려내듯 선행기술과 차별화되는 기술에 대해 특허라는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심사관의 자질과 능력이 미흡해서 부실특허가 양산되면 국가적 부담은 엄청나게 커진다. 부실 권리 때문에 특허의 유·무효를 다투는 심판과 소송이
  • [열린세상] 자살을 예방하는 디자인/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열린세상] 자살을 예방하는 디자인/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오늘 일본 고베에서는 ‘자살방지와 공동체 지원’을 주제로 세계보건기구(WHO) 국제포럼이 열린다. 이 자리에 세계적인 사회학, 의학, 심리학자와 행정가들이 모여 국가성장 저해요인인 자살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높은 일본은 지난 15년간 매년 3만명이 넘는 자살자가 발생했고, 국가적 차원의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 처음 3만명 이하로 감소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최고의 자리는 한국이 물려받았다. 우리는 그 불명예를 8년째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2004년 ‘자살예방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후 민·관 합동으로 ‘자살예방종합대책’을 세우는 등 노력을 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여전히 자살 고(高)위험 국가로 남아 있다. 자살 가능성이 높은 정신건강 고위험자도 368만여명에 이른다니 이제는 자살문제 전문가, 디자이너, 자살 경험자, 자살자 유가족이 원탁에 앉아 구체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우선 지자체와 전문가들이 할 일은 다리, 육교, 건물옥상 등 자살 빈발 공간을 찾아 자살예방 설계기법을 적용하는 일이다. 미국 워싱턴DC의 듀크 엘링턴 다리에 철제 벽을 설치하고, 펜스를 다리 안
  • [세종로의 아침] 노들섬에 관한 상념/노주석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노들섬에 관한 상념/노주석 선임기자

    노들섬은 한강대교를 떠받치는 밑받침처럼 생겼다. 한강에는 토사 퇴적을 통해 10여개의 크고 작은 하중도(河中島)가 풍광을 뽐냈지만, 개발 과정에서 물밑으로 사라졌다. 여의도와 잠실, 뚝섬, 난지도는 이름만 섬이다. 저자도, 무동도, 부리도는 다른 섬을 뭍으로 만드는 데 온몸을 바쳤다. 밤섬과 선유도가 겨우 살아 남았다. 노들섬은 족보가 없다. 18세기 정선이 그린 실경산수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100만평이 넘는 한강백사장 중 두툼한 모래 언덕이었을 뿐이다. 한강인도교를 거쳐 제1한강교로 불린 한강대교가 세워지면서 생긴 인공섬이다. 이촌동과 노량진을 잇는 한강대교는 평균 1000m 이상의 드넓은 한강에서 강폭이 가장 좁은 지점이었다. 1960~70년대 강변북로를 깔고 동부 이촌동과 서부 이촌동에 아파트를 짓느라 백사장 모래를 다 퍼내 쓰고 남은 자투리다. 1995년 일제잔재 지명을 청산하면서 중지도(中之島)에서 강 남쪽 노들나루(鷺梁津)의 이름을 따서 노들섬이 됐다. 별 존재감이 없던 노들섬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오페라하우스 건립계획 때문이다. 배턴을 이어받은 오세훈 시장이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나 스페인 빌
  • [열린세상] 정치권력의 사익추구 막아야 한다/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정치권력의 사익추구 막아야 한다/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달 포스코 정준양 회장이 결국 사퇴했다. 기자회견에서 외압이나 외풍이 없었다고 했으나 이 말을 믿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전에는 이석채 전 KT 회장이 역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미스럽게 퇴진했다. 확인할 수는 없으나 두 분 모두 MB 정권의 지원을 배경으로 회장에 취임했다는 것이 후문이고 보면, 그렇게 억울해할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정치권력이 이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국민의 상식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회사법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우리의 수준이 아직도 이 정도라는 것에 자괴감이 든다. 먼저 이러한 영향력 행사는 정당화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포스코와 KT는 완전히 주식이 분산소유된 기업이다. 모두 외국인 주주의 비율이 50% 내외에 이르고, 국내 투자자들도 대부분 기관투자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국민연금이 KT 지분의 6.8% 정도를 보유하면서 최대주주인 정도가 눈에 띄는 사항일 따름이다. 소유구조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정치권력이 회사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연결고리는 전혀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력이 규제 권한이나 세무 조사같이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 [열린세상] ‘색깔있는 마을’과 ‘새마을운동 2.0’/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색깔있는 마을’과 ‘새마을운동 2.0’/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1970년 봄은 가뭄이 심했다. 그해 4월 22일 대통령 박정희는 가뭄대책을 위해 전국 도지사회의를 열고 가뭄 극복과 아울러 주민들의 자조자립 정신에 의한 마을가꾸기 사업을 제안한다. 정부는 이듬해 예산 30억원으로 전국 3만 3267개 행정 이(里)·동(洞)을 대상으로 ‘새마을가꾸기운동’을 편다. 당시 내무부는 시멘트 1170만 부대를 전국 이·동에 335부대씩 균등 지원해 마을가꾸기운동의 불을 지폈다. 이후 성과를 보인 1만 6600개 이·동에 대해서 추가로 시멘트와 철근을 무상지원하여 경쟁심을 유발했다. 이렇게 시멘트와 철근은 농촌개발의 상징이 되면서 수천년 이어온 농촌 모습과 주민 의식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한편 변화는 상실을 동반하는데 우선적으로 전통 풍물(風物)의 훼손이다. 새마을운동 초기에 정부도 이 문제를 알았다. 당시 문공부는 1972년 4월에서 5월까지 각 분야 문화예술인 74명을 10개 반으로 나누어 전국 97개 새마을 현장을 조사하게 하고 의견을 요청했다. 이들은 농촌이 지닌 토속미와 전통가치 상실을 우려하며 한 예로 초가지붕, 돌담, 흙담, 나무울타리 등에 대한 무분별한 철거 자제를 요청했다. 그러나 가난 극복이라는 지상과제 앞에
  • [열린세상] 탈주술에서 재주술로/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열린세상] 탈주술에서 재주술로/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고대 중국의 민간가요 중에 한 젊은이가 하늘을 두고 사랑을 맹세하는 노래가 있다. ‘하늘이시여’(上邪)라는 제목의 노래인데, 그 가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한겨울에 천둥이 치고, 한여름에 눈이 내리고, 하늘과 땅이 맞붙는 날, 우리의 사랑이 다하겠나이다.”(冬雷震震 夏雨雪 天地合 乃敢與君絶) 그런데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절절한 사랑이 아니라 고대에는 한겨울에 천둥이 치는 것을 있어서는 안 될 불길한 현상으로 여겼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 큰 눈이 내렸을 때였다. 사위(四圍)가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번갯불이 번쩍이고 조금 후 “우르릉 꽝” 천둥이 쳤다. 한겨울에 천둥, 번개라니? 그때 문득 들었던 생각은 “무슨 변고가 있으려나?”하는 불안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아침 북한에서 2인자인 장성택을 즉결 처형했다는 뉴스특보가 전해져 혹시 며칠 전의 기상이변이 우리 한반도의 뒤숭숭한 정세를 예고한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 내지 확신으로 이어졌다면, 우리의 심중에는 고대인을 지배했던 이른바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이라는 주술적 사고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고대에는 자연현상과 인간의 행위 또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물질, 물질과 물질
  • [열린세상] 공영방송은 이제 국민의 품에/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열린세상] 공영방송은 이제 국민의 품에/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분리 독립운동이라도 해야 할까. 그놈의 정치권력은 좀처럼 공영방송을 놔줄 줄 모른다. 공공의 것인 공영방송을 자기 정파의 것으로 만들려는 야만의 정치가 되풀이되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여든 야든 공영방송을 정치권력의 볼모로 잡고 흔들어 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그 결과 우리 공영방송은 정치권력에 철저히 예속돼 정치적으로 독립할 줄을 모른다. 정권이 바뀌면 정치적 코드에 맞춰 사장과 임원이 바뀌고 권력기관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물갈이된다. 이런 후진적인 악습이 반복되면서 공영방송 보도의 정권 편향성 시비는 전혀 해결되지 못했다. 이를 빌미로 야권은 공영방송의 수신료 인상 반대라는 또 다른 정치적 압박을 가한다. 한국사회가 민주화를 이룬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공영방송은 정치적으로 독립하지 못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주요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공영방송이 편향된 보도를 하거나 보도를 해야 할 사안을 제대로 전달해 주지 못하다 보니, 종편방송 JTBC의 손석희 뉴스가 오히려 공영방송적인 뉴스를 한다 하여 주목받는 현실이다. 자본이 언론자유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정치권력이 언론 자유와 공영방송의 자율성을
  • [열린세상] 징용 피해자문제에 대한 정치적 준비를/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열린세상] 징용 피해자문제에 대한 정치적 준비를/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경색된 한·일관계를 풀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바이든 미국 부대통령은 한·일관계의 진전을 희망했다. 한국의 여론도 한·일관계를 더는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일본조차 악화된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한국과의 분위기 전환에 내심 기대를 걸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만간 나올 징용피해자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과거사문제에 대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심지어 정부와 전문가 사이에서는 ‘한·일관계가 파탄’할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있다. 2012년 대법원은 일본의 조선총독부하에서 이뤄진 반인도적, 불법적인 행위에 의한 피해는 응당 배상을 받아야 하며 개인의 대일 보상 청구권은 여전히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이어 2013년도에 서울고등법원, 부산고등법원, 광주지방법원에서 잇따라 일본기업에 징용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렸다. 현재 상황은 일본 기업이 불복하여 대법원에 재상고심을 신청한 상태며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나올 대법원의 판결도 2012년 대법원 판결의 기본 취지를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대법원의 판결이 정부의 기존 방침과는 달리 강제징용 피
  • [열린세상] 우리나라의 TPP 참여 불가피성/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열린세상] 우리나라의 TPP 참여 불가피성/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정부가 지난달 29일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것은 미국 주도의 아시아태평양지역 다자간자유무역협정인 TPP의 신규 가입 절차를 밟기 위한 첫 조치를 취한 셈이다. 정부는 앞으로 TPP에 참여 중인 12개국과 개별적인 예비양자협의를 거친 후 국회에 보고한 뒤 TPP 참여선언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이후 기존참여국들과 ‘공식양자협의’를 가진 이후 참여승인을 얻으면 TPP에 참여하게 된다. TPP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4%로 참가국 합산 명목국내총생산(GDP)이 26조 6000억 달러인 세계최대의 자유무역시장이다. 2005년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가 참가한 ‘P4협정’으로 시작된 TPP는 미국, 호주, 페루, 베트남, 말레이시아, 멕시코, 캐나다, 일본 등 12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들 12개국 가운데 미국, 싱가포르, 칠레 등 7개국과는 이미 FTA를 맺은 상태이다. 그리고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3개국과는 최근 FTA협상을 재개하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양자협의 대상은 일본과 멕시코 두 나라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과 일본 간의 FTA는 2004년부터 본협상이 중단된 상태에
  • [열린세상] 진보적 민주주의와 언어희롱의 위험성/김주성 한국교원대 총장

    [열린세상] 진보적 민주주의와 언어희롱의 위험성/김주성 한국교원대 총장

    얼마 전 국회에서 일어난 언어논쟁은 정치적인 문제보다는 문화적인 문제로 더욱 심각하게 느껴진다. 지난달 19일 국회에서 열린 비교섭단체 대표발언에서 통합진보당 원내대표는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썼다고 종북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면 비겁하기 짝이 없는 것이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려 했다면, 통합진보당의 강령으로 선언된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의 의미를 밝혔어야 했다. 용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정의하지 않고 정쟁만 하려 한다면 우리의 현재사회뿐만 아니라 미래사회에도 심각한 언어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언어혼란은 정치혼란보다 더욱 심각하다. 정치혼란의 폐해는 당대에 그칠 수 있지만, 언어혼란의 폐해는 누대에 걸칠 수 있다. 언어혼란은 젊은이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시대정신을 타락시킨다. 언어혼란으로 위대한 정신문화가 끝없이 쇠락했던 대표적인 사례가 고대 아테네이다. 고대 아테네는 위대한 문명을 창조하고 융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정치선동가들의 궤변으로 언어혼란에 빠져버렸다. 오래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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