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창 밖의 나무/박홍환 논설위원

    불현듯 고개 들어 주변 풍광을 살펴보며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곤 한다. 요즘처럼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가 특히 그렇다. 북서풍이 남풍으로 바뀌더니 겨우내 앙상했던 창문 밖 감나무 가지마다 파릇파릇한 이파리가 돋고, 다시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한결 크고 두꺼워진 감잎들은 반짝거리며 생명의 빛을 한껏 뿜어내고 있다. 감잎들을 돋게 하려고 얼마나 많은 존재들이 노심초사했을까. 한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조차도 그 생명 부활의 원천이었음을 생각하면 새삼 자연의 신비한 힘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어느 누가 도와주지도, 자양분이나 생명수를 뿌려 주지도 않았지만 창 밖의 나무는 그렇게 황량한 겨울을 묵묵히 견뎌낸 뒤 신춘(新春)이 그려낸 찬란한 풍경화의 주인공이 됐다. 창 밖의 나무는 얼핏 방치된 듯 보였지만 자연계의 숱한 존재들과 소통하며 새봄을 준비하고, 맞이했던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창 밖의 나무처럼 홀로 방치된 듯한 느낌일 것이다. 하나 지금 이 순간에도 희망을 잃은 사람들, 방치된 사람들의 회복과 회생을 기원하는 수많은 존재들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간난의 시간을 극복하고 찬란한 풍경화의 주인공이 되는 꿈을 꿔 본다.
  • [길섶에서] 제철음식/이종락 논설위원

    코로나19 창궐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행하면서 달라진 생활습관이 꽤 있다. 그중 하나가 장보기인데 그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원래 쇼핑이나 장보기를 싫어해 아내가 대형마트에서 생수를 구매할 때 이따금 ‘짐꾼’으로 따라가곤 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면서 소화도 시킬 겸 장보기에 따라나선다. 요즘은 봄철나물을 주로 산다. 쌉싸래한 맛과 독특한 향을 내 봄나물로 알려진 곰취나물을 비롯해 봄철 약용음식인 미나리, 바닷가에서 겨우내 해풍을 맞고 버텨 온 갯방풍과 영해초, 칼슘과 식이섬유가 풍부한 아욱, 아삭한 식감이 뛰어난 청경채, 살짝 데쳐서 무쳐 먹거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두릅, 줄기 속이 비었지만 볶음요리에 제격인 공심채 등이다. 나물은 부드러운 새순이 나는 시기가 제철인데 지금 같은 봄에는 파릇파릇한 나물을 먹으면 절로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며칠 전부터 여름과일인 수박도 팔기 시작했다. 일부러 따뜻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하우스’에서 농사를 짓거나 성장 촉진제를 쓰며 열매를 맺는 시기를 조절한 과일이 제맛이 날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든다. 제철이 아닌 때에 재배된 농산물은 제철일 때보다 신선도가 떨어지고 맛이 덜할
  • [길섶에서] 신록예찬/오일만 논설위원

    꽃이 진 자리 신록이 움텄다. 불과 며칠 전 현란한 축제를 벌였던 숲속에 푸르름이 짙어온다. 산책 길, 한참이나 눈길을 머물게 했던 색의 향연은 벌써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대신 담백한 연둣빛 세상이 나를 반긴다. ‘짧은 동안의 신록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으로 비할 데가 없다. 초록이 비록 소박하고 겸허한 빛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때의 초록은 그의 아름다움에 있어, 어떤 색채에도 뒤서지 아니할 것이다.’ 수필가 이양하 선생의 ‘신록예찬’의 한 구절이다. 학창 시절 그 깊은 의미도 모르고 그저 머릿속에 집어넣기 급급했지만 이젠 제법 가슴으로 그 뜻을 새겨 본다. 지하철, 버스 안의 사람들의 표정도 신록의 풋풋함을 닮아선지 한결 넉넉해졌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리면서 시작한 사회적 거리두기도 벌써 한 달이 넘어섰다. 어쩔 수 없이 서로 밀어낸 그 간격이 이제 좁혀질 날도 머지않았다. 한적한 북한산 오솔길도 좋고, 동네 야산이면 어떤가.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고 했다. 힘들고 각박한 시기,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며 신록의 힐링 효능을 한번 경험해 봐도 좋을 듯
  • [길섶에서] ‘쿼런틴 비어드’/이지운 논설위원

    반응은 처음부터 별로였다. 물끄러미 보는 것이, 속으론 혀를 끌끌 차고 있는 듯 느껴질 때가 많다. 왜 놓아두고 있느냐는 힐난이 차라리 낫겠다 싶은 적도 있다. ‘괜찮네’라는 반응도 없지는 않았다. 괜히 하는 소리려니 하면서도 계속 길러도 될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말을 만들자니 어딘가 어색하다. ‘격리 수염?’, ‘쿼런틴 비어드’(quarantine beard). 분명히 부러움도 담겼다. ‘간신 수염 콤플렉스’, 분명히 그것이다. 돌아보니, 평생 한 번 길러 보지 못한 이들이 허다하다. 그러니 어떻게 자랄는지 알지 못한다. 황제 수염은 고사하고 모양새나 갖추려나 지레 마음이 위축됐던 것이다. 이런저런 고민, 감상을 세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인터넷을 보니 관련 글도 초기보다 크게 늘었다. 해시태그(#)까지 달렸다. 어떻게 기르고 관리해야 하는지 해외 유명 배우의 동영상도 떴다. 결단의 시기가 도래하니 고민도 늘어 간다. 처음, 그 한 달여 기른 것이 무어라고, 어느새 내 것 같다. 곱게 기른 머리를 잘라 내다 파는 게 이런 기분이려나? 결국 밀었다. 일상으로의 복귀 아닌가. 위안 삼기를, ‘또 기르면 되지 뭐’. 뒤이어 세상의
  • [길섶에서] 친정 나들이/이동구 수석논설위원

    외가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가 않다. 주위 사람들이 외할머니, 외삼촌, 이모 등 외가에 대한 추억들을 이야기할 때면 부러운 듯 듣기만 한다. 너무 늦게 태어난 탓에 그분들의 다정한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기억할 만한 추억거리도 거의 없다. 한 분, 몇 해 만에 찾아봬도 다정히 반겨 주시던 외숙모의 구수한 입담과 손맛 등은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에 남아 있다. 솔가지와 함께 쪄 주시던 송편과 약과. 모깃불을 피운 채 잠들었던 외갓집 평상과 마을 입구의 개울가, 커다란 느티나무가 늘어선 오솔길 등이 기억의 전부다. 외숙모의 다정한 모습도 외가 마을의 정감 어린 옛 모습도 이젠 희미해져 간다. 아내가 친정에 다녀온다며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인다. 화장도 옷매무새도 평소보다 정성스럽다. 말씨와 표정도 봄볕처럼 부드럽고 유쾌하다. 기차 시간에 늦을까 노심초사다. 빈손으로 가지 말라며 슬쩍 관심을 보이니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불현듯 부러운 생각이 든다. 멀리 떨어져 지내도 늘 뵙고 싶은 부모님이 한 분이라도 계시니 언제라도 친정 가는 일이 저렇게 즐겁겠지? 이미 10여년이 훌쩍 넘은 고애자(孤哀子)의 서글픔이 밀려든다. 봄볕이라 그런지 그리움은 더욱더 가슴을 아리
  • [길섶에서] 생활명당/장세훈 논설위원

    출퇴근을 지하철로 한다. 타는 곳이 거의 일정하다. 내릴 때 출구와 가장 가깝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동선을 최소화할 수 있으니 적어도 나만의 생활 속 명당이다. 지하철을 빠르게 내리거나 갈아탈 수 있는 출입문 위치를 안내해 주는 애플리케이션도 유용하게 쓰고 있다. 명당은 이렇듯 생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관을 찾았을 때 2D 한국영화는 정중앙 좌석, 자막이 있는 2D 외국영화는 중앙 사이드 좌석, 시각 효과가 강한 3D 영화는 앞쪽 중앙 좌석, 음향 효과가 중요한 영화는 뒤쪽 중앙 좌석이 각각 명당으로 꼽힌다. 야구장에서 선수들의 생생한 모습을 눈에 담고 싶다면 더그아웃과 가까운 좌석, 여유롭게 경기를 즐기려면 포수 후면 좌석 등이 개인 기호를 반영한 명당이다. 또 독주회나 발레는 앞쪽 좌석, 오케스트라 공연은 뒤쪽 좌석, 뮤지컬은 1층 중간이나 2층 앞쪽 좌석 등이 공연을 효과적으로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자리다. 코로나19 사태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진행돼 미루고 미뤘던 지인들과의 소모임을 최근 재개했다. 아직은 여전히 만남 자체를 조심스러워하지만 만남 자체가 큰 즐거움이 된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고 있다. 좋은 사람 곁, 그곳이
  • [길섶에서] 꽃샘추위/김균미 대기자

    올해도 어김없이 꽃샘추위가 4월에 찾아왔다. 요 며칠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뚝 떨어진 데다 한낮에도 매서운 강풍이 불어댔다. 입하(立夏)가 코앞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제법 쌀쌀하다. 옷깃을 여미는 사람들의 손끝에 힘이 느껴진다. 지난겨울 추위와 코로나19도 잘 버텨 왔는데, 막판에 감기에 걸릴세라 무척 신경이 쓰이는 눈치들이다. 방심한 틈에 감기라도 걸리면 그러지 않아도 코로나19 때문에 기침 한 번, 재채기 한 번 시원하게 못 하는데, 어지간해선 병원에도 못 가는데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쳐가는 게 보이는 것 같다. 환절기에는 으레 감기 환자가 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올해는 예외가 아닌가 싶다. 지난겨울에는 독감 환자도 뚝 떨어졌다고 하지 않나. 코로나19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수시로 ‘30초 손씻기’를 한 덕분에 말이다. 두 달 넘게 이어진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에 지치고. 무기력증에 빠지려는 찰나에 찾아온 꽃샘추위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느슨해졌던 심신의 고삐를 조일 준비를 하라는 신호인 양 들린다. 일상으로의 복귀가 반갑기는 한데, 강풍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행여 다 떨어질까 조바심이 생긴다. 코로나19가 꽃을 대하는 마음마저 바꿔
  • [길섶에서] 보도블록/전경하 논설위원

    집 주변 인도에서 발 하나 정도 크기로 보도블록이 내려앉은 것을 본 지는 제법 됐다. 급히 지나가다 누군가 다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들들에게 주의를 주고는 잊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 동네 병원에서 오후 진료를 기다리는데 진료 시작 무렵 간호사들이 우왕좌왕했다. 점심시간에 약속이 있어 나갔다가 돌아오던 의사가 넘어져서 다쳐 진료를 볼 수 있을지가 불분명했다. 간호사의 부축을 받고 병원에 온 의사는 환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같은 건물 정형외과에 가서 깁스를 하고 왔다. 전에 봤던 보도블록이 내려앉은 그곳에서 다쳤단다. 정형외과 검사 결과 뼈에 금이 가 6주간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화가 난 의사는 보도블록 인근 건물관리소장과 담당구청장에게 항의했고 관리업체와 구청 직원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진료는 볼 수 있는 상황이라 원래 약속보다 2시간도 더 지나 진료를 보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나마 접수 순서가 앞이라 가능했고 대부분의 환자는 돌아갔다. 집으로 가는 길, 그 보도블록은 소방전으로 채워지고 주변이 어설프게 정리돼 있었다. 내 주변의 안전이 내 일상과 연관돼 있다는 걸 코로나19 와중에도 가끔 잊는다. 누군가 다쳐 거세게 항의하기 전에 보도블록을 보수할
  • [길섶에서] 업보(業報)/손성진 논설고문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없지 않아 있는데 그때마다 ‘업보’(業報)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국어사전에는 ‘선악의 행업으로 말미암은 과보(果報)’라고 어렵게 풀이돼 있는데 쉽게 말하면 ‘내 탓’이라는 뜻이다. 나도 잘못한 것이 있었고 그 때문에 화를 불렀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누구나 전생이든 현생이든 지은 죄와 잘못이 없을 수 없다. 당장 지금은 잘못이 없다손 치더라도 눈을 감고 나의 과거 업보라고 생각해 보자. 내게는 한 번의 잘못도 없었다는 옹고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그 때문에 세상살이가 더 힘들어질뿐더러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 한 살씩 더 먹어 가면서 나잇값을 하려면 용서하고 화해하고 인내하고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 나 또한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나이를 헛먹고 헛공부를 한 것이다. 연륜을 쌓을수록 늙어갈수록 선하고 바르게 사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멋대로 살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어지나 보다. 내게도 곧 다가올 미래이지만 젊은이에게 모범을 보이지 못하는 어르신은 추해 보인다. 잔뜩 흐린 아침에 잠시 명상을 하며 푸른 바다의 수평선을 떠올려 본다. sonsj@s
  • [길섶에서] 온라인 등교 연민(憐憫)/박록삼 논설위원

    이마에 여드름이 돋아나기 시작한 아들은 정체성 혼란의 시절을 살았다. 자신이 ‘중1’인지 ‘초7’인지 헷갈렸다. 중학교 입학식도 없이 겨우내 몇 달을 집에서만 지낸 탓이다. 지난주 ‘온라인 등교’를 시작하며 비록 실감은 안 나지만 ‘진짜 중학생’이 됐다. 그런데 요 며칠 아들의 표정이 어둡다. SNS 커뮤니티에 가입해 담임 선생님에게 출석했음을 밝히고, 접속자가 몰려서인지 자꾸 다운되기 일쑤인 사이트에 들어가 과목별 수업을 들어야 하고, 썩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많은 숙제를 제출해야 하니 몹시 힘겨워한다. 초등학교 4학년 딸까지 ‘온라인 등교’를 하니, 덩달아 아이 엄마까지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다. 선생님의 힘겨움도 충분히 짐작된다. 디지털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선생님들로선 감당 불능이다. 여기에 “접속이 잘 안 돼요”, “숙제 자료를 찾을 수가 없어요” 등 각종 질문을 쏟아 내는 학생들, 학부모들에게 일일이 답변하는 것 또한 버겁기 짝이 없을 것이다. 한 후배의 아들은 온라인 등교 날 아침, 새 선생님, 새 친구들 만날 기대에 부풀어 세수하고 양치질한 뒤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그냥 화상수업만 들어서 실망이 컸다고 한다. 적이 안쓰럽다. 분투하는 모든
  • [길섶에서] 긴급재난수당 기부/문소영 논설실장

    이재명 경기지사는 4월 중에 경기도민이라면 ‘누구나’ 긴급재난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영주권자와 결혼이주자들에게도 차별 없이 지급한단다. 지방정부 공무원들과 대화하다 보면 왜인지는 모르지만, 생활보조금 등을 지원하기 위해 차상위계층을 골라내는 데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고 한다. 그러므로 코로나19 같은 미증유의 재난이 찾아왔을 때는 ‘신속하게’ 지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15일부터 ‘자본주의의 최고봉’ 미국에서도 1인당 1200달러가 통장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미국 영주권자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하고 있다. 자본주의자이자 대자산가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조차 이런 재난지원금을 거의 전 국민에게 지급하면서 ‘사회주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선별로 지원하려면 ‘신속하게’는 물 건너간다. ‘꼼꼼하게’와 ‘신속하게’는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경기도에서 긴급재난수당 10만원을 신용카드로 받아 놓았다. 우리 같은 직장인들보다 더 필요한 사람을 찾아 기부하려고 보니 수당은 수당대로 쓰고 기부는 기부대로 따로 해야만 한다. “긴급재난수당을 받자마자 기부로 연결할 방법은 없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공공 배달앱 대신 기부앱 좀 만들어 보면 어떤가.
  • [길섶에서] 진객(珍客)/박홍환 논설위원

    며칠 전 저녁 동네 공원을 산책할 때의 일이다. 언덕길을 오르며 문득 하늘을 쳐다보는데 밝은 별 하나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다른 별은 보이지도 않았다.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아틀라스 혜성일까? 이번에 태양계를 지나가면 6000년 후에나 다시 온다니 이런 진객(珍客) 별은 생전에 또 없을 것이다. 아마추어 천문가들이 앞장서 혜성을 맞이하고 있다. 무거운 망원렌즈를 둘러메고 산에 올라 며칠 만에 아틀라스 혜성의 모습을 담았다는 촬영기가 인터넷에 넘친다. 아틀라스 혜성은 지난해 말 처음 발견됐는데 다음달 23일 지구와 최근접점에 도달하고 같은 달 21일 태양과 가장 가까운 근일점을 지난 뒤 점점 멀어진다고 한다. 지구와 가장 가까워졌을 때의 최대 밝기가 초승달을 능가하고, 혜성 특유의 꼬리를 달고 초록빛을 낸다니 밤하늘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 것 같다. 어릴 때에는 긴 꼬리를 매달고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곤 했다. 은근히 별똥별을 기다리기까지 했다. 아틀라스 혜성이 이미 몇 조각으로 쪼개져 추정 밝기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그러면 어떤가. 6000년을 기다려야 볼 수 있는 진객이 다가오는데. 세월도 어수선하니 두 손 모아 아틀라스
  • [길섶에서] 변해 가는 교사상/이종락 논설위원

    교사의 이미지는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헌신적인 제자 사랑을 보여 주는 ‘사도상’(師道像)은 늘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게 적셔 준다. 반면 아이들을 권위적이고 강압적으로 대하는 모습은 종종 TV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 등장해 교사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킨다. 지난달 초등학교 교사에 임용된 딸은 최근까지 밤늦도록 과제물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내일 초등학교 4~6학년에 이어 오는 20일 1~3학년 온라인 개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온라인 개학이어서 교사들은 원격수업을 지도·관리하는 수준으로만 알았는데 별도로 학생들에게 2주간의 과제물을 만들어 학부모들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한다. 손솜씨가 서투른 딸이 학습자료를 만드느라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예쁜 포장지로 싼 과제물은 생일선물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정성 들여 만든 과제물을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해 학교 주차장에서 한참이나 서 있어야 했다. 학부모가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학부모는 전화로 1시간 30분간 통화하면서 학생지도에 대한 이런저런 요청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다른 선생님의 사정도 초임교사인 딸과 별반 다르지 않다니 너무나 달라진 교육현장
  • [길섶에서] 신혼까치/오일만 논설위원

    아파트 한 모퉁이에서 야산으로 이어지는 언저리,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절묘한 안전지대(?)가 있다. 우거진 숲속에 온갖 종류의 나무와 새들이 어우러져 묘한 생태계를 이루는 곳이다. 아침이면 숲속의 수다쟁이로 불리는 직박구리를 비롯해 까치, 참새 등이 모여들어 소리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인간세상의 시장통에서 느끼는 삶의 활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숲속에서 분주한 변화가 감지된 건 요 며칠 사이였다. 삐쭉 솟아 있는 느티나무 위, 유난히 요란을 떠는 까치 한 쌍이 눈길을 끈다. 겨우내 기척이 없던 빈 둥지를 분주하게 오가는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날렵한 생김새나 정답게 부리를 맞대는 모양새가 영락없이 신접살림을 차리는 까치부부다. 뒤늦게 직박구리 한 마리가 빈 둥지 근처를 얼씬거리다 이들 부부에게 혼쭐이 난다. 미련이 남았는지 옆 가지로 피신한 뒤에도 한참을 승강이를 벌이다 자취를 감췄다. 의기양양한 듯, 입에 문 나뭇가지를 빈 둥지로 옮기며 둥글넓적하게 둥지를 쌓아 간다. 아파트 ‘리모델링’처럼 앙상한 빈 둥지가 제법 튼실한 새집으로 변신했다. 아직 새끼들은 보이지 않는다. 알을 품는 기간이 보름 남짓이라고 하니 이달 말쯤 재잘대는 아기까치를 볼 수
  • [길섶에서] 병아리와 달걀/이지운 논설위원

    이맘때인가, 하굣길에는 병아리 좌판들이 있었다. 삼삼오오 쪼그려 앉은 데 끼어 병아리들을 보노라면 기어이 호주머니를 털게 마련이다. 이제는 값도 잊었지만, 큰 맘 먹으면 한두 마리는 살 수 있었던 가격이었나 보다. 병아리들은 명은 길지 못했다. 모이도 사다 주고, 물도 떠다 주며 정성을 다했건만 십중팔구는 성체(成體) 근처도 가지 못했다. 어른들은 ‘손이 타’ 죽는 거라 했다. 좌판 주인들이 ‘손 탄다’며 만지지 못하게 했던 것이 그런 의미였나 보다 떠올리며 눈물짓곤 했다. 이듬해, 그 이듬해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드물게 제법 크게 기른 친구들 집에 갈 때마다 우리 집에서 죽어간 병아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병아리는 죽음을 떠올릴 때가 많지만, 달걀은 그렇지 않다. 내 손에 시름시름 죽어갔어도, 이 껍질을 깨고 살아나온 것들이었다. 특히 이맘때는 생명으로서의 달걀이다. 어린이들 손에 쥐어진 것이 비록 ‘삶은 것’일지언정, 생명 탄생의 신비까지 삶아진 것은 아니다. 달걀 없는 부활절을 맞았다. 풍요의 시대에 달걀 받으러 교회로 성당으로 가는 발길이 있을까 싶지만, 생명으로서의 달걀을 어린 자녀와 공유하지 못하는 부모들이 더 서운할 수 있겠다.
  • [길섶에서] 신(新)선거풍경/이동구 수석논설위원

    기억 속의 선거철은 언제나 시끄럽고 혼란스러웠다. 골목골목을 누비는 선거운동원이나 귀를 따갑게 하는 확성기 소리, 줄을 잇는 흥청망청 관광 행렬 등등. 그 당시 가장 흔하게 듣던 단어 중 하나가 ‘선거특수’. 선거 관련 각종 모임이 늘어나고 은밀히 전달되는 선물 등으로 소비가 활성화되고 사회 분위기는 한껏 들뜨게 마련이다. 막걸리와 고무신이 부정·혼탁 선거의 대명사로 꼽혔던 기억이 생생하다. 며칠 후면 지역 대표를 뽑는 선거일인데 요즘 거리 분위기는 이상하리만큼 차분하다. 확성기를 통한 출마자의 유세, 선거운동원들의 외침뿐 아니라 선거 관련 홍보물조차 별로 보이지 않는다. 선거특수라는 말은 아예 들리지도 않는다. 잊힌 단어가 됐다.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하지만 여느 선거 때와는 다른 분위기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문화가 정말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일까. 아쉽게도 선거판에 남아 있는 몇 가지 현상들은 그런 기대감을 저버린다. 출마자들의 막말, 상대 후보 비방, 아니면 말고 식의 선심성 공약 등등. 개중에 복지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포퓰리즘은 신종 바이러스처럼 변화된 모습으로 확산 중이다. 막걸리와 고무신이 50만원, 100만원 등으로 변화된 듯하다. y
  • [길섶에서] 기계치/장세훈 논설위원

    손재주가 없다. 평소 단추를 끼우는 게 가장 하기 싫은 일 중 하나로 여길 정도다. 뭉툭한 손끝 탓으로 돌린다. 기계치이기도 하다. 손만 댔다 하면 멀쩡한 기계도 탈이 나는 그런 부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손재주가 없는 기계치들의 특징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매뉴얼을 잘 읽지 않는다. 이리저리 만져 보다 손을 들기 일쑤다. 복잡하고 다양한 기능엔 관심이 없고, 기본적인 기능 한두 가지만 주로 쓴다. 다양한 기능과 뛰어난 성능에 혹해서 기기 구입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과소비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기기는 무리한 힘을 가하면 안 되는데,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싶으면 힘으로 해결하려 든다. 올바른 사용법을 익히는 것을 귀찮아하거나 어렵게 여기다 보니, 남들보다 기기를 오래 사용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물론 기계치로 산다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느끼지는 않는다. 문제는 딸아이 눈에는 “하기 싫어서”, “생각하기 귀찮아서”와 같은 핑계로 보이나 보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딸아이가 손재주를 요구하거나 기기를 다뤄 달라고 할 때가 적지 않다. “친구 아빠들은 다 해준다는데”라면서 고개를 떨구면 없던 손재주도 생긴다. 이런 나
  • [길섶에서] 도둑맞은 봄/김균미 대기자

    곳곳에 봄꽃 천지다. 한강을 따라 개나리와 진달래가, 서울 양재천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집 근처 산책로를 따라 이름도 모르는 들꽃들이 만개한 지 오래다. 건물 사이 그늘진 길을 따라 미색의 목련꽃과 살구꽃도 활짝 피었다. 보도 중간중간에 놓인 화분에는 색색의 팬지가 피어 있다. 화분에 꽃을 옮겨 심던 사람들은 기억나는데,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길에 있던 팬지는 왜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버스 창 너머로 스쳐 가는 꽃들이 왜 이리도 낯설까. TV 뉴스와 신문에 실린 상춘객 사진으로 대신 봄꽃 소식을 접한다. 통행이 허용된 꽃길마다 마스크를 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몰리는 관광객 때문에 정성 들여 가꾼 유채꽃밭을 갈아엎은 강원 삼척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한 곳인 제주 녹산로 유채꽃도 한 달이나 앞서 자취를 감출지 모른단다. 코로나19가 바꾼 봄 풍경이다. 집 밖에는 변함없이 봄기운이 완연한데, 사람들 마음은 아직도 겨울이다. 갑갑해 걸으러 나가도 사람들 피하느라 꽃에 눈길 한번 제대로 못 준다. 꽃시장에서 작은 화분 하나 사다가 봄 기분을 내 보는 데 만족한다. 코로나19에 도둑맞은 봄, 마스크 쓰지 않고 맨얼굴로 맞았던 봄이 그립다.
  • [길섶에서] 코로나 이혼/전경하 논설위원

    코로나19로 가족들이 외부 활동을 자제하면서 주부의 일상이 뒤엉켰다. 그동안 가족이 출근 또는 등교를 하면 집은 오롯이 주부의 공간이었다. 계획을 세워 집안일을 하는 동안 집은 ‘직장’, 일이 끝난 뒤에는 휴식 공간이다. 최소한 평일에는 이런 구분이 보장됐다.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되는 동안 지인은 퇴근한 남편에게서 ‘아직도 집안일이 안 끝났느냐’는 말을 들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무엇을 했냐는 말이다. 주부가 혼자 있던 ‘직장’에 가족이 함께 있으면서 일과 휴식이 뒤엉킨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그 말에 화가 났다. ‘그런 몰지각한 말을 듣고만 있었느냐’고 위로와 야단을 함께 했다. 코로나19로 가족들이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코로나 이혼’(covidivorce)이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가족과 함께 있는 예기치 못했던 긴 시간은 종종 불행으로 치닫는다. 가족이어도 때론 거리두기가 필요한데 거리를 둘 수 없어서 그럴까. 그것보다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노동을 당연시했기 때문이다. 돌봄과 가사노동은 안 하면 표나는 이상한 일이다. 분업이 제대로 이뤄져 있지 않으면 누군가 묵묵히 표 안 나는 일을 하게 된다. 돌봄과 가사노동의 가치 확
  • [길섶에서] 추억의 소환/손성진 논설고문

    추억 또는 기억이라는 것이 머릿속에만 있다면 그저 환상처럼 빙빙 돌 뿐이다. 추억을 떠올려 줄 장소나 물건이 있다면 추억은 꺼냈다가 다시 넣어 둘 유형의 존재처럼 될 수도 있다. 사진이 그런 것이 될 수 있고 움직일 수 없는 집이나 동네도 그렇게 될 수 있다. 기억을 되살려 줄 것들이 오래도록 한자리에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 자고 나면 달라진다고 할 정도로 변화가 많은 세상인 까닭이다. 지금까지 6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 달이라도 살았던 공간을 헤아려 보니 20여곳쯤 된다. 그중에 온전히 남은 것은 근래에 거주한 몇 곳밖에 없다. 간혹 유년기에 살았던 곳을 떠올리며 기억을 머리에서 짜내 보는 적이 있다. 어렸던 10년의 시간 중에 기억할 수 있는 장면을 영상으로 만든다면 1시간짜리도 안 되지 싶다. 추억의 소환을 쉽게 하기 위해 살던 곳을 지도로 탐색해 보지만 골목길이 이어지던 그곳은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돌아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는 것이다. 변화의 바람을 덜 타는 농촌이나 벽촌 출신의 사람들은 오랜 세월을 버틴 고택이 있다면 유년의 추억을 금세 되살려 줄 그곳을 당장 내일이라도 찾을 수 있을 터다. 그래서 부럽기만 하다. sonsj@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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