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증오와 눈물/손성진 논설고문

    증오의 망령이 바이러스처럼 세상을 떠돈다. 무엇이 그토록 그들을 화나게 만들었는지 도로 위에서, 시위 현장에서 분노에 찬 언행을 쏟아놓는다. 세상살이가 뜻대로 되지 않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게다. 인간이라는 것은 이기적 동물, 상호 투쟁의 동물, 욕망과 욕심의 동물이고 그래서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貧者)로 어쩔 수 없이 나뉘게 된다. 살기 힘겨운 약자와 빈자는 견디다 못해 사소한 일에도 크게 화를 내고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욕망의 늪에 빠진 강자와 부자도 그보다 더할 수 있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야멸친 공격심으로 가득 찬 사회가 건강할 수는 없다. 한 발 뒤로 물러서 작은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양보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세상을 바꾸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다른 차가 내 차 앞에 끼어들려 할 때 기꺼이 속도를 줄여 주는 일 같은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것에도 눈물샘이 쉬 자극을 받는다. 눈물이 많아지는 것은 호르몬 탓이기도 하지만 공감력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감은 이해, 용서, 양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비정한 사람에게도 공감의 원천인 눈물이라는 것이 없을 수 없다. 더러는 눈물을 흘려 보면서 타인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노력을
  • [길섶에서] 두 편의점/박홍환 논설위원

    동네 편의점을 자주 들르는 편이다. 이것저것 주전부리를 고르기도 하지만 갈 때마다 특정 물품은 반드시 산다. 두 곳의 편의점이 있는데 발길은 늘 한 곳으로만 향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단골 편의점은 알바생 없이 주인 부부가 365일 24시간 교대로 손님을 맞는다. 70대 중반의 주인장은 산업화 세대로 굴지의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지내다 은퇴한 뒤 편의점을 열었다고 했다. 어느 날 늦은 밤 거나하게 술을 마셔 축 늘어진 몸으로 편의점 문을 열었을 때 그는 마치 큰형이 막내동생을 맞듯이 살갑게 어깨를 부축하며 주문하지도 않은 숙취 해소 음료를 손에 쥐여 줬다. 말하지 않아도 원하는 특정 물품을 콕 찍어 꺼내 든다. 아침이면 하루를 즐겁게 열 수 있도록, 저녁이면 피로한 심신을 달랠 만한 안성맞춤 대화를 건네니 어찌 단골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반면 또 다른 편의점 주인과 알바생은 마스크 안에 표정과 감정을 감춘 채 건조한 결제 요구만 해 댄다. 그것뿐인가. 원하는 특정 물품을 여태껏 기억하지 못해 몇 번이나 되묻곤 한다. 곧 쓰러질 듯 피곤한 기색을 비쳐도 그저 POS 기기만 응시할 뿐이다. 아무리 언택트 시대라고 해도 감정마저 언택트일 수는 없
  • [길섶에서] ‘이태원 클라쓰’와 학벌/문소영 논설실장

    올 1월 ‘본방사수’를 외면했다가 ‘넷플릭스 폐인’답게 지난 주말 16부작 ‘이태원 클라쓰’를 몰아보기 했다. 만화가 원작인 덕분인지, 남자주인공(남주) 박새로이와 여자주인공(여주) 조이서의 헤어스타일이나 개성이 남달랐다. 이 드라마를 다 뗀 뒤 포털에서 찾아보니 ‘불합리한 세상 속, 고집과 객기로 뭉친 청춘들의 ‘힙’한 반란, 세계를 압축한 이태원에서의 창업신화’라고 설명한다. 나는 이 드라마에서 두 주인공이 모두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거나 안 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남주’는 학교폭력의 희생자가 돼 고등학교를 중퇴한 데다 뺑소니로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하다가 전과자까지 됐으니 요즘처럼 스펙만 따지는 한국사회에서 거의 패배자라고 할 만도 했다. ‘여주’는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 고3학생인데, 지원한 대학에 다 붙었는데도 등록을 안 한다. 이 중졸 전과자와 고졸 인플루언서는 고졸이거나 중졸로 보이는 조폭, 또 다른 고졸과 함께 대졸이 바글거리는 대기업과 경쟁하는데, 자본주의 사회답게 학벌의 가치를 통쾌하게 평가절하한 점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한국은 재벌가 자제들에게조차 SKY 학벌을 따지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같은 기업가가 탄생
  • [길섶에서] 미리 성묘/이종락 논설위원

    논어 양화편에서 공자와 제자 재아(宰我)의 대화가 흥미롭다. 재아는 공자에게 “3년상은 너무 길다. 1년이면 그칠 만하다”며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에 공자는 “자식은 태어나서 3년이 지난 후에야 부모의 품에서 벗어난다”며 3년상을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즉 핏덩어리로 태어나 부모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3년이 지나야 비로소 온전한 몸이 되는데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되갚기 위해 3년상을 치른다는 얘기다. 유교국가였던 조선시대에는 부모를 떠나보낸 자식들이 왕이든 양반이든 평민이든 3년상을 해야 했다. 개화 시기를 거치면서 3년상은 유명무실해졌고, 제사 당일에 제를 지내고 설이나 추석 명절에 산소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대체됐다. 최근 대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혼잡한 교통 문제로 명절에 내려가기가 힘들어지자 명절 몇 주 전에 ‘미리 성묘’를 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올해 양평·대전·제주 등 일부 공원묘지는 성묘객에게 사전예약제를 시행하고 산소에 오지 못하는 성묘객들을 위해 사이버 추모관을 운영한다. 인천시는 아예 전국 최초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 성묘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성묘가 유
  • [길섶에서] 원초적 희망/오일만 논설위원

    둘레길 입구, 조그마한 사찰이 눈에 띈다. 입구 정문 게시판에 ‘코로나19로 인해 내방객을 받지 않는다’는 알림 문구가 보였다. ‘이 힘든 시기에 강도 높은 거리두기 여파가 종교계까지 미쳤구나’ 하는 생각을 할 찰나, 그 옆 공간에 다른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불행한 삶을 만났을 때 우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반응할 수 있다. 희망을 잃고 자신을 파괴하는 습관에 빠지거나, 아니면 우리 내면의 힘을 찾기 위해 도전하거나….’ 전대미문의 코로나19를 맞는 우리 속세 인간들의 고통과 번민을 어쩌면 이렇게 잘 표현했나 싶었다. 내친걸음 둘레길을 걷다 도저히 생명을 잉태할 수 없을 것 같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를 보았다. 척박한 환경에서 질긴 생명력을 이어 온, 그 처절함과 의연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떨고 있으면서도 희망의 싹을 찾으며 원초적 생명의 힘으로 버티는 요즘이다.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던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희망이란 감정을 끄집어내 우리 DNA에 촘촘히 아로새겨 놓았다고 한다. 지금처럼 힘든 시기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라고 쓴 푸시킨의 시구가 더욱 가슴에 와닿
  • [길섶에서] 엉뚱한 상상/김상연 논설위원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지구상의 인류가 모두 사라지고 나만 혼자 남는 것이다. 사람만 없을 뿐 생활 시스템은 그대로 누릴 수 있다. 뭐부터 할까. 우선 값비싼 자동차 매장에서 최고급 스포츠카를 몰고 나와 최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산해진미를 맛본다. 백화점 명품 매장에 가서 고가의 멋진 옷들을 입어 본다. 그리고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프리미엄 순면 100수 이불을 덮고 잔다. 이렇게 하면 과연 나는 행복할까. 아닐 것 같다.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앞날이 막막하고 공포감이 엄습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행복이란 다른 인간의 존재에 기반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타인이 있어야 나의 삶이 성립되는 것이다. 심지어 사람이 싫어 세상을 등지고 산에 들어간 ‘자연인’도 저 멀리 속세에 사람이 존재한다는 확신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상상으로 돌아가 보자. 홀로 남겨진 당신이 터벅터벅 대도시 한복판을 걷고 있다. 그때 거짓말처럼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다. 당신 외에 유일하게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이다. 그는 아직 당신을 보지 못했다. 당신은 그를 외면할 수도 있고 달려가 반갑게 악수할 수도
  • [길섶에서] 단체 사진/이동구 수석논설위원

    빛바랜 사진 한 장. 40여년 전 집안의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다. 그때도 명절이나 제사 때가 아니면 집안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이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다들 생업에 바쁜 데다 객지에서 생활하는 형제도 있었던 터라 모두 함께 모여 사진 찍을 기회는 흔하지 않았다. 어느 추석 날 차례와 성묘를 마친 오후 동네 사진관을 찾아 함께 찍은 그 사진은 집안 형제들이 다 같이 찍은 유일한 사진이 됐다. 집에 홀로 있는 동안 우연히 뒤져 본 학창 시절 사진첩에는 대부분이 단체 사진이다. 삼삼오오 모여 다니던 친구들과 같은 반 동기생들의 모습이 몇 안 되는 사진에 담겨 있다.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 친구들도 뒤엉켜 웃고 있고, 초등학교 친구들은 순박한 표정으로 졸업 사진 한 장에 담겨 있다. 사진 한 장이 잊고 있었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제는 사진관을 찾을 일이 거의 없다. 여권이나 구직 서류용 등을 제외하면 사진은 거의 휴대전화로 찍는다. 스마트폰의 화질이 워낙 좋은 데다 편리하고 언제 어디서든 쉽게 찍을 수 있다. 디지털 형태로 보관도 쉽다. 세월이 흘러도 색이 바래거나 없어지지 않는다지만 왠지 허전하다. 인화된 사진처럼 정감이 느껴
  • [길섶에서] 코로나가 바꾼 주인장/임병선 논설위원

    서울 북한산에서 성북동 쪽으로 내려오면 막국수집 들르는 게 즐거움이다. 사실 지난해 망년회 때 좋지 않은 일이 있긴 했다. 산악회 총무가 조그만 실수를 했는데 주인장이 화를 냈다. 너그러이 넘어갈 만한 일이었는데 정도가 심하다 싶었다. 그래도 그 일대에 맛으로 그만한 집이 없어 자연스레 발길이 향하곤 했다. 주말이면 뚝섬 집에서 중랑천과 청계천, 성북천의 물길 거슬러 1시간 40분을 걸어 찾아가기도 했으니 더 말할 나위 있겠는가. 그 정도면 풀방구리 드나들 듯한 셈인데, 주인장의 단골 대하는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손님이 너무 많고 장사가 잘되니 그러나 보다 했다. 그런데 지난 주말 반전을 경험했다. 오리백숙을 정신없이 들고 있는데 웬걸, 메밀부침을 서비스라며 내온다. 그러고 보니 주방에서 주인장이 손님들에게 “어서 오세요”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북적이던 과거에 없던 상냥함 자체다. 한 어르신이 “요즘 많이 힘드시죠”라고 인사치레를 하자 “뭐 저희만 힘든가요? 모두 다 힘든데요. 호호홋” 한다. 코로나19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싶었다. 계산 마치고 나오는데 종업원이 맑은 목소리로 외친다. “다음에 또 오세요!” 이른 여름까지 보지 못했던 일이라 산을
  • [길섶에서] ‘PROK’가 한국?/김균미 대기자

    지난달 25일 코로나19와 ‘백신 국가주의’를 우려하는 기사들을 훑어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주도하는 백신 공유 프로젝트(코백스)에 참여하는 나라가 172개에 이른다는 자료가 링크돼 있어 읽어 봤다. WHO에서 24일(현지시간) 발표한 보도자료였다. 읽어내려가다 잘못 봤나 싶어 멈칫했다. 평가 중인 2차 백신 후보물질 9개 가운데 1개가 한국에서 제출한 것이었는데 국가명이 “People´s Republic of Korea”로 돼 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북한은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로 표기돼 있었다. 대한민국의 영어 표기는 Republic of Korea(ROK)이다. 한국은 WHO에 설립 이듬해인 1949년 가입했다. 지난 5월 22일부터 집행이사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집행이사국은 이번이 일곱 번째란다. 한국의 ‘K방역’과 바이오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고, 한국의 WHO에 대한 기여가 작지 않을 텐데 공식자료에 나라 이름을 틀리게 표기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사흘 뒤인 27일 오후 다시 검색해 보니 다행히 바로잡혀 있었다. 언제 고쳐졌는지 모르나 실무자의 단순 실수로 넘어갈 사안은
  • [길섶에서] 시차 출퇴근/전경하 논설위원

    얼마 전 사장어른의 상가에 다녀왔다. 장례식장이 KTX가 서는 지방 중소도시의 기차역에서 걸어서 5분거리인지라 잠깐이라도 다녀오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가족 논의를 통해 혼자만 가기로 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회사가 장려한 재택근무를 서둘러 끝내고 기차역으로 향한 시간은 퇴근 시간 무렵. 기차시간에 맞춰야 하니 정해진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지하철 차량이 퇴근 인파로 붐비는 것을 보고 덜컥 겁이 났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가급적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많은 인파로 불가능했다. 지하철 안은 조용했고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그 뒤로 붐비는 시간대의 이동을 피한다. 그럴 여유가 있는 사람이 그리하는 것이 배려일 것이다. 시차 출퇴근의 생활화다. 시차 출퇴근, 재택근무 등은 2000년대 들어 정부가 일·가정 양립을 위한 유연근무제의 하나로 적극 장려하던 제도이다. 그 제도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속속 도입돼 정착되고 있다. 인력이 적은 중소기업, 컨베이어벨트가 움직이는 생산현장 등 유연근무제가 언감생심인 곳도 있다. 할 수 있는 기업들은 유연근무제를 적극 도입해 사람들의 움직임을 분산하는 것이 코로나19 이후에도 맞다. lar
  • [길섶에서] 가을/손성진 논설고문

    가을이면 늘 바람이 불고 바람 따라 쓸쓸함이 휘몰아쳤는데 그 쓸쓸함을 좋아했다. 허름한 ‘런던포그’ 바바리도 깃만 세우면 아무렇게나 어울리는 계절. 끈끈하지 않고 까슬까슬한 날씨의 촉감만으로도 가을에는 뭔가 해야 하겠다는 의욕이 불끈 솟는다. 잎사귀들은 실성하듯이 뼛줄기만 남은 몸으로 곤두박질치지만 벌레들은 나비가 돼 높은 하늘을 날고 있다. 뜨거운 성장의 시즌 여름에 모든 것은 먹고 먹히지만, 가을이면 성숙한 완전체로 자라 풍성한 기쁨을 선사한다. 더욱이 성급히 꽃술을 활짝 내민 국화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화려하거나 찬란하지는 않을지라도 가을꽃들은 수수함 하나만으로 봄꽃을 압도한다. 무엇보다 이슬과 서리의 맑은 기운에서 몸을 쭈뼛거리게 하는 절개를 느낄 수 있는 게 가을이다. 그래서 추상(秋霜)이라는 말이 생겨났나 보다. 다만, 문제는 긴장하고 설레는 정신과 달리 따라주지 않는 늘어진 몸뚱어리다. 항상 의욕으로만 그치는 것을 하루하루 노화하는 육체의 한계 탓으로 돌리는 것은 비겁한 자기변명이다. 해야 할 것들을 더는 미루지 말자며 경건하게 가을 아침을 맞는다. 경건하다는 것은 약속을 지키겠다는 자기와의 약속이다.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2020년 추석/문소영 논설실장

    ‘순삭’은 ‘순식간에 삭제됐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 단어를 실감하게 된다. 그제 눈을 떠 보니 9월이다. 나의 날짜 감각으로는 9월이면 정기국회가 시작되고, 10월 국정감사, 12월 다음해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이 며칠 안 남게 된다. 이 감각으로 보니, 올해 3분의2가 ‘순삭’된 느낌이 절실하다. 해외출장 대상이 아닌 뒤로는 가족여행을 핑계 삼아 수년째 저렴하면서 럭셔리한 중화권 여행길에 올랐는데, 올해는 이른바 ‘기내식´ 한 번 입에 대 보지 못한 채 2020년을 망년하게 생겼다. 그렇다고 올해 내국인이라도 많이 만났느냐. 다들 아시다시피 그것도 아니다. 2월 말부터 코로나 1차 유행기를 겪으면서 엄청 겁을 먹고 조심했으니 재택근무로 돌린 탓에 동료 논설위원들조차 제대로 대면하지 못했다. 8월 중순부터 시작된 코로나 2차 유행기로 또다시 동료들은 재택이다. 기자 생활 29년에 낯선 이를 가장 적게 만난 해다. 2.5단계 격상으로 서울 광화문은 다소 한산하다. 식당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안내문이 놓여 있다. “흩어져야 산다”가 실감 난다. 지금의 방역이 9월 중순에 신규 확진자 감소로 나타나길 희망한다. 코로나19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올 추
  • [길섶에서] 기억조절 시대/박홍환 논설위원

    청년기에 막강했던 기억력은 중년기 이후 자각할 만큼 감퇴하기 마련이다. 방금 만난 사람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명함 지갑을 뒤적이는가 하면 스마트폰 일정표에 적어 놓은 점심약속을 깜빡해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좀더 시간이 지나 치매라도 걸리면 아들 손주를 앞에 두고도 “누구냐”고 다그치는 가슴 아픈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기억이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영원히 간직하고픈 기억과 하루빨리 잊고 싶은 기억이다. 사랑, 성공, 영예 등의 기억은 언제 꺼내도 유쾌하겠다. 반면 배신, 실패, 치욕 등은 뇌 안쪽에 깊숙이 처박아 놓고 영원히 잊고 싶은 기억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게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기억을 스스로 지울 수 있는 존재인가. 세계적 혁신기업가 일론 머스크가 “미래에는 컴퓨터에 기억을 저장하고 재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든 기억을 다운로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전 단계로 그는 돼지의 뇌에 마이크로칩을 이식해 ‘돼지 생각읽기’를 시연했다고 한다. 간직하고 싶거나 잊고 싶은 모든 기억이 칩 속에 담겨 언제든 소환당하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다운로드가 가능하면 삭제하는 것도 가능할 테니, 그나마 다행
  • [길섶에서] ‘집콕’과 OTT/이종락 논설위원

    코로나19가 급격히 재확산한 뒤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면서 영화와 TV 시청 문화가 확연히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영화관과 TV 대신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로 영화와 드라마를 즐겨 보게 된다. TV 외에도 스마트폰, 노트북, 태블릿PC 등 다양한 기기를 넘나들며 콘텐츠를 골라서 시청할 수 있기 때문에 가족끼리 리모컨 전쟁을 치를 필요가 없어졌다. 드라마 시리즈도 한 번에 몰아서 시청하는 이른바 ‘몰아보기’ 습성도 생겼다. 아내는 지난 주말에도 새벽 2시 반까지 스마트폰으로 드라마 시리즈를 몰아 보다가 잠이 들어 대신 휴대폰 전원을 껐을 정도다. TV프로를 제시간에 보기 위한 ‘본방 사수’도 옛말이 됐다. 재미없는 부분은 건너뛰고 곱씹고 싶은 장면은 무제한 돌려보며 일시정지, 2배속 감상하기 등 시청자가 콘텐츠를 편집해 보는 시대가 현실화됐다. 하나의 계정을 서너 명이 공유할 수도 있다. 국내 OTT를 즐겨 보다가 최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절대 강자인 넷플릭스에 네 명이 보는 프리미엄 상품에 가입했다. 매달 1인당 이용료가 영화 관람료의 3분의1에도 못 미치는 3625원에 불과하다. 지상파TV와 영화관의 시대가 이미 저물었다는 전망
  • [길섶에서] 운무(雲霧)/오일만 논설위원

    한바탕 비가 내리고 나면 앞산은 운무를 품은 한 폭의 수묵화가 된다.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 분위기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최장의 장맛비가 이어지는 요즘 그나마 비 갠 직후 운무에 휩싸인 산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운무를 제대로 보려면 운도 따라야 한다. 간헐적 폭우가 반복되는 이즈음 비가 그쳤다고 선뜻 산행에 나섰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폭우가 가랑비로 잦아졌다가 이슬비로 변하는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야 하지만 그나마 확률은 반반이다. 며칠 전이 그랬다. 다소 약해진 빗줄기를 뚫고 북한산 향로봉을 향해 가다가 운무의 바다와 조우했다. 산봉우리 사이로 운무가 펼쳐지며 보일 듯 말 듯 환상적인 ‘선경’(仙境)이다. 문득 꽤 오래전 중국에서 봤던 장가계(張家界)의 비경이 떠올랐다. 산봉우리들은 거대한 죽순처럼 푸른 하늘을 찌르고 맑은 계류는 천고만협의 사이를 누비며 흐른다. 때로는 유유하고 장엄한 자태가 볼만했다. ‘인생부도장가계 백세기능칭노옹’(人生不到張家界, 百歲豈能稱老翁), 인생에서 장가계를 가 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돼도 늙었다고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런 비경을 집 근처 북한산에서 체험하다니, 참 운이 좋은 날이다. oilman@seoul.
  • [길섶에서] 병문안/김상연 논설위원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뿐만 아니라 무릎연골이 다 닳도록 고생하신 어머니가 지난주 무릎수술을 받았다. 어머니는 재활기간까지 꼬박 한 달을 입원해 있어야 한다. 자식 입장에선 모처럼 병문안이라는 가시적 효도를 통해 평소의 불효를 만회할 기회가 생긴 셈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병문안이 쉽지 않다. 점심과 저녁 때 2시간씩만 면회가 허용되고 그나마도 동시에 한 명만 병실에 들어갈 수 있다. 병원 후문에서 전화하면 간병인이 나와 교대하는 식이다. 언제 한번은 간병인한테 전화 연결이 안 돼 면회도 못 하고 쓸쓸히 발길을 돌린 적도 있다. 방문 사유서 작성과 발열체크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겨우 어머니를 면회해도 마음 한구석은 불안하다. 혹시 내가 어디선가 바이러스를 묻혀 와서 어머니한테 옮기는 건 아닌지. 이쯤 되면 병문안을 가는 게 효도인지, 안 가는 게 효도인지 고민이다. 환자복에 마스크를 쓴 어머니와 비(非)환자복에 마스크를 쓴 아들의 대화 주제도 ‘바이러스’다. 서로 상대방 얘기는 안 듣고 자기가 준비한 얘기를 하느라 바쁘다. “엄마, 안 씻은 손을 무심코 입에 가져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 “얘야, 마스크 꼭 쓰고 다니고 절대 사람
  • [길섶에서] 노담/이동구 수석논설위원

    건강검진 때마다 흡연 질문지에 기분이 좀 상한다. 끊은 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흡연 당시 하루 몇 갑, 몇 년간 피웠는지 등을 꼬치꼬치 묻는다. 흡연 경험은 담배를 끊어도 오랫동안 후유증이 남는 탓이라고 한다. 여하튼 그럴 때마다 과거에 저지른 실수(?) 그 때문에 평생 멍에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듯한 묘한 불쾌감이 든다. 흡연은 그야말로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친구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고 담배를 나눠 피우곤 했다.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그저 어른의 흉내를 냈던 것 같다. 유난히 담배 피우는 모습이 멋있고 여유롭게 보였던 친구도 있었지만 그야말로 쓰잘데기 없는 잘못된 버릇이 습관이 돼 버린 것이다. 서울 도심을 걷다 보면 흡연 공간에 젊은 직장인들이 빼곡히 들어서 끽연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저마다 이유야 있겠지만 유쾌한 모습은 아니다. 멋과 여유, 휴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최근 공익광고에 중고생 출연자가 일상을 보여 주는 영상의 끝부분은 ‘노담’(NO 담배)이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흡연 연령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 같아 안타깝다. 평생 건강을 위협하고 기분을 상하게 하는 나쁜 습관은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yid
  • [길섶에서] 산 멍때림/임병선 논설위원

    코로나19 봉쇄가 길어져 좋아하는 산을 마음껏 다닐 수가 없으니 갑갑하다. 큰 산을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릴 텐데 국립공원 대피소는 몇 달째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설악산 공룡능선 자락의 봉정암과 오세암은 대피소 대신 산객들의 하룻밤을 책임졌는데 요즈음 같은 시국에 불자가 아닌 이들로선 말을 넣어 볼 염치조차 없어진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동영상 공유 채널 유튜브다. 즐겨 찾는 20대 후반의 미국 젊은이가 있는데 나홀로 트레킹이란 콘셉트로 세계 각국의 유명 산을 돌아보다 최근에는 미국 50개 주의 유명한 산들을 돌고 있다. 길게는 90분 넘게 이어지는데 멍하니 빠져들곤 한다. 네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다녀올 때 하루 10달러씩 주고 짐꾼들에게 져 나르게 했던 짐들과 달리 일인용 텐트에 간편식, 정수 장치만 들어가는 그의 배낭 뒤를 따라 졸졸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의 검색 취향이 완벽하게 분석돼 비슷한 젊은이들이 혼자서나 단둘이 경험한 트레킹 동영상들이 줄줄이 안내되니 손쉽게 안방에서 미국의 산천을 휘젓고 다니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취업이 힘들어진 미국 청년들이 저리도 발버둥치나 싶기도 하다.
  • [길섶에서] 익숙해진다는 것/김균미 대기자

    인간을 적응의 동물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불편해 적응이 될까 싶었던 상황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익숙해진다. 올 초만 해도 누가 ‘마스크의 일상화’를 상상이나 했나. 코로나19 사태가 확산과 진정 국면을 반복하면서 마스크와 손세정제는 필수품이 됐다. ‘집콕’ 생활도 처음처럼 갑갑하지만은 않다. 폭염주의보에도 마스크를 쓴다. 하지만 마스크 아래 입 주변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은 여전히 불편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줄어들기는 했어도 평일 사무실 주위와 주말 집 근처에 확성기를 들고 자신들 주장을 시끄럽게 외치는 이들이 있다. 창문을 닫고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렇게 생활 속 시위에도 조금은 익숙해져 간다. 욕설도, 막말도 그렇다. 처음 입 밖으로 욕을 내뱉는 게 어렵지, 한번 하고 나면 이 또한 익숙해진다. 다른 사람들의 막말에도 무뎌져 간다. 특히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막말이 일상이 돼 가는 걸 볼 때면 깜짝깜짝 놀란다. 운동할 때 익숙해지면 강도를 높이거나 동작을 바꿔 끊임없이 자극을 주라고 한다. 운동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몸만 그런 게 아니라 마음도, 사회도 그렇다. 익숙한 게 능사는 아니다. 경계해야 할 익숙함도 많다. km
  • [길섶에서] 발목을 삐었더니/전경하 논설위원

    또 발목을 삐었다. 꽤 오래전 발목을 삐어 반깁스를 했는데 불편해서 사흘 정도 하다가 풀었다. 나이가 들면 병의 회복이 더디다는 이야기에, 반깁스를 안 하면 되레 심해지는 듯한 통증에 일주일 이상 반깁스를 했다. 발목 염좌는 서서히 나아졌지만 몸은 굼떠졌다. 뒤뚱뒤뚱 느린 걸음에 거리이건 실내이건 뒤에 오는 사람에게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가 뒤에 오던 사람이 반깁스를 한 발을 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사람은 물론 사과했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평소에도 거리두기가 필요하구나. 누군가 내 앞에서 천천히 가면 어떻게 해야 할까. 횡단보도 신호는 길을 다 건너기가 아슬아슬했고, 버스 타기는 두려웠다. 어쩌다 버스를 타면 교통약자석으로 먼저 눈이 갔다. 평소 버스를 탈 때 뒤까지 가기 귀찮다고 무심히 교통약자석에 앉았던 과거의 내가 민망해졌다.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되면 뒷좌석까지 기분 좋게 걸어가서 앉겠다고 다짐했다. 횡단보도에서 신체상의 이유 등으로 늦게 건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옆에서 보조를 맞춰 같이 건너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덜 힘들 것 같으니까. 발목을 삐었더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이렇게 나이를 먹어 간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