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 [오늘의 눈] 검찰 운명 걸린 수사 국민의 ‘칼’이 되어라/김양진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검찰 운명 걸린 수사 국민의 ‘칼’이 되어라/김양진 사회부 기자

    검찰이 달라졌다. 최순실(60) 국정농단 파문과 관련해 지난달 29일 ‘성역’인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특별검사가 아니라 기성 검찰 조직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청와대가 “못 들어온다”고 막자 “수긍할 수 없다”고 치받기까지 했다. 지난 3일엔 “(현직 대통령 수사도) 원칙적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당일엔 보란 듯이 수사팀 검사를 22명에서 32명으로 늘리며 현직 대통령 수사를 공식화했다. 이렇게 빠르고 강한 수사는 본 적이 없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분석이다. 직에서 내려왔다곤 하지만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이 현 정권 최고 실세라는 점엔 변함이 없다. 그런 두 사람을 압박해 체포하고 쇠고랑을 채웠다. 올 9월 29일 고발장 접수 한 달 가까이 본격 수사 착수에 뜸을 들였던 검찰이다. 예우 운운하며 청와대 관계자들을 불구속으로 수사할 수도 있었다. 2014년 정윤회 국정농단 사건 등 각종 권력형 비리에 대해 “수사에는 절차가 있다”, “범죄 단서가 없다”, “검찰은 의혹을 규명하는 기관이 아니다”라는 변명 가까운 논리로 핵심은 제쳐둔 채 변죽만 울렸던 검찰이다. 검사장
  • [오늘의 눈] ‘참 나쁜 사람’ 공무원을 믿어야/윤창수 사회2부 기자

    [오늘의 눈] ‘참 나쁜 사람’ 공무원을 믿어야/윤창수 사회2부 기자

    “얼마 전 국정감사를 준비하느라 부하 직원을 서울에 보냈는데 아, 글쎄, 국회가 어디 있는지를 몰라 헤매더라니까요.” 세종시에서 일하는 한 중앙부처 공무원의 한탄이다. 세종시가 출범한 지 4년차에 세종시로 부임해 세종시에서만 근무한 공무원 숫자가 상당해졌다. 중앙부처 공무원이지만, 서울 여의도 국회나 광화문 정부중앙청사가 어딘지 모르는 ‘시골 샌님’이 됐다는 이야기다. 정부세종청사에서 청와대에 올리는 보고서의 질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도 한참 됐다. 청와대에 올리는 공무원 인사 자료조차 오탈자가 난무한단다. 전화해서 뭐라 하면 ‘죄송하지만, 수정 바랍니다’라고 친절하게 붙임쪽지를 붙여 되돌려 보낸단다. 공문으로 말하고 공문으로 일한다는 공무원들의 보고서에 오탈자가 나오는 것은 ‘빨간펜’을 들고 꼼꼼하게 지도해 줄 과장과 국장들이 국회 출석이나 서울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느라 세종시를 비우는 ‘무두절’(無頭節)이 많기 때문이다. “보고서의 오탈자는 서울 중심 시각으로 일했던 공무원이 전국으로 정책 영역을 확대하는 과정일 뿐”이란 항변도 한다. 하지만 정부세종청사 시대는 중앙 공무원에게 이중고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 [오늘의 눈] 1인자가 책임지는 모습을 원한다/임주형 금융부 기자

    [오늘의 눈] 1인자가 책임지는 모습을 원한다/임주형 금융부 기자

    “브리핑을 보니 장관이 아닌 차관들이 나왔더군요. 이 중요한 문제를 차관들이 발표하는 겁니까? 국정 공백이 오면 장관들의 업무 추진력이 떨어집니다. 1997년에도 정부가 힘을 잃으면서 구조조정과 노동개혁이 지연됐고, 결국 외환위기가 왔습니다. 차관들이 하는 브리핑을 보면서 당시와 비슷한 현상이 재연되는 것 아닌지 우려가 들었습니다.” 지난달 31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6차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 브리핑 직후 구조조정 전문가로 꼽히는 한 대학교수가 한 말이다. 이날 브리핑은 정부가 1년 넘게 끌어온 조선·해운업종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차관들이 브리핑한 것에 대해 많은 말이 나왔다. 기획재정부·행정자치부·산업통산자원부·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국무조정실·금융위원회·중소기업청 등 9개 부처가 합동으로 내놓은 정책임에도 알맹이가 없어 ‘맹탕’ ‘재탕’ 비판이 제기됐고, 장관들이 차관들을 대신 브리핑에 내세운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다. ‘최순실 파문‘으로 가뜩이나 정국이 시끄러운 상황에서 장관들이 차기 정권에 구조조정을 떠넘기고 책임을 회피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 관계자는 “장관들이 오전 10시부터
  • [오늘의 눈] 미국을 얼마나 알고 있나요?/하종훈 국제부 기자

    [오늘의 눈] 미국을 얼마나 알고 있나요?/하종훈 국제부 기자

    “한국은 미국 없으면 제대로 나라를 지킬 수 있었나? 그런데 한국이 미국에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인은 왜 나라를 구해준 미국에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나. 미군 주둔 비용은 한국이 전액 부담해야 하는 것 아니냐.”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한 말이 아니다. 15년 전 어느 날 주한미군들과 함께 군 복무를 했던 기자가 당시 한·미 연합훈련 도중 어느 훈련장에서 미군 장병과 주고받은 대화의 일부다. 15년 전 일이 새삼 떠오르는 것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한 트럼프와 그를 지지한 미국 대중의 동맹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서다. 미국 대선을 일주일여 남긴 시점에서 트럼프의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은 분위기지만,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지난 1년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트럼프 현상’은 미국을 대하는 우리 정부에도 숙제를 안겼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정부는 얼마나 미국과 미국인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평소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주장해온 우리 정부, 특히 군 당국의 안일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태가 많아 우려가 커진다. 국방부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연례안보
  • [오늘의 눈] 정유라와 불공정사회/홍인기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정유라와 불공정사회/홍인기 사회부 기자

    2015학년도 대학 수시모집에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이화여대의 문턱을 넘는 데는 말 한 필이면 충분했다. 정씨의 표현대로 ‘돈도 능력인 사회’에서 정부, 기업, 대학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부모를 만난 덕에 정씨의 입학과 학교 생활은 더 없이 편하기만 했다. 불어오는 바람보다 빨리 누워 버리는 풀처럼 최경희 전 총장을 비롯한 몇몇 교수들은 ‘정윤회-최순실’의 딸을 각별히 배려했다.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받아 뜯어고친 권력 실세 앞에 입학과 학사 관리의 ‘공정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만 131일을 결석한 정씨는 2015학년도 이대 체육과학부에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했다. 이대는 2011학년도부터 체육특기생 제도를 부활시켰지만, 승마가 포함된 것은 정씨가 입학한 2015학년도부터다. 정씨는 2014년 10월 18일 진행된 면접 당시 국가대표팀 단복을 입고 금메달을 지참한 채 등장했다. 정씨 외에도 아시안게임 동메달리스트 2명이 단복을 입고 메달을 걸고 면접에 응시했다. 면접장에 국가대표 단복을 입고 간 것 자체가 면접 복장에 맞지 않는 데다가 평가위원들에게 ‘우수한 인재’라는 선입견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입학처장은 평가위원들에게
  • [오늘의 눈] 지극히 평범한 바람/허백윤 정치부 기자

    [오늘의 눈] 지극히 평범한 바람/허백윤 정치부 기자

    코끝에 닿는 바람이 점점 차가워진다. 정치부에서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향한 시계가 점차 빨라질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다. 2007년과 2012년 대선 국면에서 ‘대세론’을 지닌 뚜렷한 유력 주자가 있었던 것과 달리 이번 대선은 아직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갯속이다. 그러다 보니 ‘잠룡’이라고 불리는 여야의 차세대 리더들이 너도나도 대선을 염두에 둔 장외 경쟁에 돌입했다. 여야 잠룡들은 내년 대선의 화두를 선점하기 위해 강연이나 토론회, SNS 등을 활용한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경쟁이랄 것도 없이 이미 내년 대선의 시대적 과제는 어느 정도 정해진 것 같다. 여야를 막론하고 주자들이 한목소리로 극심한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고 내세웠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단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정한 경제체제와 사회체제”(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 “정의로운 국가, 공화주의”(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 “기득권 혁파를 통한 대한민국 리빌딩”(남경필 경기지사), “공존과 상생”(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따뜻한 국가, 책임 있는 정부, 사람경제”(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민주국가”(안희정 충남지
  • [오늘의 눈] 모바일 시대, 다시 묻는 데이터 권리/김소라 산업부 기자

    [오늘의 눈] 모바일 시대, 다시 묻는 데이터 권리/김소라 산업부 기자

    지난여름 휴가 기간 동안 내 스마트폰에서는 ‘구글 포토’로부터의 알림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렸다.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촬영할 때마다 “새 라이브러리가 생성됐다”는 알림이 떴고, 구글 포토 애플리케이션으로 들어가 보니 내가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날짜별, 장소별로 구분돼 정리돼 있었다. 일일이 태그를 달지 않아도 나와 가족들의 얼굴을 구분해 제각각 앨범을 만들어 놓는 구글의 ‘머신러닝’(기계학습) 알고리즘에 감탄한 것도 잠시였다. 내 스마트폰 갤러리에서 삭제했던 사진이 앱에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앱을 이리저리 뒤져 보며 구글 포토에 ‘백업’이라는 기능이 있다는 걸 알고 기분이 찜찜해졌다. 내 스마트폰 메모리에만 저장되는 줄 알았던 사진과 동영상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구글의 서버에까지 저장된다는 의미여서다. 물론 내 메모리로는 감당할 수 없는 용량의 사진을 클라우드에 저장할 수 있다는 건 장점이다. 앱에서 사진을 삭제하면 클라우드에서도 삭제된다. 하지만 지극히 사적인 기록인 스마트폰 속 사진을 구글의 앱이 관리하며 저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모바일 시대에 스마트폰은 ‘제2의 자아’라 해도
  • [오늘의 눈] 두 농민에게 바치는 ‘묵념’/이현정 정책뉴스부 기자

    [오늘의 눈] 두 농민에게 바치는 ‘묵념’/이현정 정책뉴스부 기자

    10년이 흘렀습니다. 형님이 경찰에게 맞아 서울 여의도 아스팔트 바닥에 피 흘리며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고서 계절이 마흔세 번 속절없이 바뀌었습니다. 세상은 형님을 ‘전용철 농민’으로 불렀고 혹자는 ‘열사’라 칭했지만, 제게 형님은 그저 사람 좋고 술 좋아하고 허허 잘 웃던 큰오빠 같던 아재였습니다. 농활 온 대학생들이 형님 버섯농장 일을 돕겠다며 우르르 몰려가 되레 버섯 갓을 다 분질러도 “괜찮아”를 연발하셨지요. 미안해하는 학생들에게 저녁 반찬 하라며 봉지가 넘치도록 버섯을 담고 막걸리까지 챙겨 주셨어요. 형님을 다시 본 건 2005년 11월 여의도에서 열린 ‘쌀 협상 국회비준 저지 전국농민대회’였습니다. “이게 몇 년 만이냐”며 부둥켜안고 나눈 덕담이 형님과의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형님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누군지 못 알아볼 정도로 퉁퉁 부은 사진 속 형님의 얼굴이 믿기지 않아 이름을 몇 번이고 확인했습니다. 사진 속 그분이 형님이 아니길 빌고 또 빌며. 형님, 또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형님처럼 농민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317일간의 투병 끝에 백남기 농민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부는 사과 한마디 없는데 백 농민의 사망
  • [오늘의 눈] 勞政 대리전 철도파업 ‘승자 없는 치킨게임’/박승기 정책뉴스부 차장

    [오늘의 눈] 勞政 대리전 철도파업 ‘승자 없는 치킨게임’/박승기 정책뉴스부 차장

    “철도가 아직도 파업 중이야? 몰랐네….” 최근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선배와 식사하다가 나온 대화다. 철도노조가 정부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대하며 파업에 돌입한 지 18일째이지만 무궁화호나 새마을호 열차를 이용하는 국민을 제외하면 파업에 따른 불편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2008년 철도가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되면서 파업의 영향력은 크게 약화됐다. 일상생활과 국민경제를 위태롭게 할 수 있고, 대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더라도 평시 대비 60%의 여객열차가 운행을 한다. 여기에 코레일은 국민 불편을 들어 이용객이 많은 수도권 전동열차와 중·장거리, 대규모 수송이 가능한 KTX엔 대체인력을 투입해 정상으로 운행시키고 있다. 이는 파업에 대한 관심을 차단하는 효과와 함께 파업 장기화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번 파업이 2013년 수서발 고속철도 설립에 반대하며 22일에 걸쳐 진행된 12·9파업을 넘어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애초 정부 정책 저지를 겨냥한 파업이라는 점에서 장기화는 예견됐다. 성공할 수 없는, 노사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터라 파국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노동계의 파업 부담을 반영해 정부가 성과연봉제 시행을 유보 또는
  • [오늘의 눈] 데자뷔 ‘미르, K, 그리고 일해’/장형우 경제정책부 기자

    [오늘의 눈] 데자뷔 ‘미르, K, 그리고 일해’/장형우 경제정책부 기자

    “최순달(일해재단 이사장)씨 혼자 앞장서서 일을 했다면 돈(기부금)이 이렇게 많이 걷혔겠습니까?” 1988년 11월 헌정 사상 최초의 청문회인 ‘일해재단의 설립 배경 및 자금조성 관련 비리조사 청문회’에서 초선 의원 노무현(전 대통령)은 증인으로 나온 장세동 전 안전기획부장(모금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장 전 실장은 “최순달씨 단독으로 했다고는 볼 수가 없다”고 답했다. 일해재단은 미얀마 아웅산 테러 사건의 사망자와 부상자, 유가족 지원을 목적으로 1983년 12월 설립됐다. 또 다른 목적은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에 대비한 우수 선수와 체육지도자 육성 지원이었다. 체신부 장관을 지낸 최순달씨가 이사장을 맡았고 당시 정수창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었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구자경 럭키금성그룹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 등 7명이 발기인으로 참가했다. 재단 설립 2주 만에 재벌 모금액 23억 5000만원을 달성해 테러 피해자들에게 위로금 지급을 끝냈다. 일해재단은 이듬해인 1984년부터 본격적으로 기금 조성에 들어갔다. 첫해 185억 5000만
  • [오늘의 눈] 재난과 문화재, 재산권과 시민권/이재연 사회2부 기자

    [오늘의 눈] 재난과 문화재, 재산권과 시민권/이재연 사회2부 기자

    지난해 봄 영국 런던에서 짧게 어학 공부를 했다. 중심지인 러셀스퀘어 바로 길 건너의 5층짜리 학원 건물은 빅토리아 양식으로, ‘200년이 다 돼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라며 학원 자랑이 대단했다. 하지만 역사 따위와 별개로 일상은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내부 인테리어·시설을 거의 원형대로 보존한 탓에 계단은 가파르고 엘리베이터는 겨우 4명이 들어서면 꽉 찼다. 무엇보다 건물 전체에 에어컨이 없었다! 기상이변으로 때 이른 고온현상이 찾아왔지만, 사람 열기로 후끈한 교실에서 할 수 있는 건 고작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켜는 것뿐이었다. 불평할 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다 같이 감수해야지. 그래도 우린 자랑스러워”였다. “런던에는 이런 건물이 많다”는 설명까지 곁들여서. 하루는 수업 중 요란하게 비상벨이 울렸다. 즉시 선생님 인도 아래 학생들이 일어나더니 일사불란하게 비좁은 계단을 타고 대피했다. 우왕좌왕하거나 뭉그적대는 기색도 없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하는 화재대피훈련. 오리엔테이션 때 “놀라지 말고 줄 맞춰서 건물 바깥으로 탈출하기만 하면 된다. 예외는 없으니 반드시, 꼭 나오라”는 신신당부를 들었지만 막상 닥치니 귀찮았다. 구시렁대며 빠져나왔더니 눈앞 풍경
  • [오늘의 눈] ‘8·25 대책’ 바라보는 시장의 오판/이유미 금융부 기자

    [오늘의 눈] ‘8·25 대책’ 바라보는 시장의 오판/이유미 금융부 기자

    서울 시내 59㎡형(25평) 아파트에 5년 넘게 살고 있다. 집 크기를 넓혀 이사 갈 결심을 했다. 집 근처에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아파트 분양권 가격을 올해 초부터 유심히 들여다봤다. 큰 등락 없이 고만고만한 가격에 거래되던 이 아파트 분양권은 최근 3개월 동안 ‘몸값’이 껑충 뛰었다. 실거래 가격은 7000만원, 호가는 1억원이나 올랐다. 불과 ‘석 달’ 만에 말이다. 이는 비단 서울 일부 지역, 일부 단지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부동산 정보 업체인 부동산114가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9월 한 달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은 1.21%나 뛰었다고 한다. 부동산 가격이 ‘꼭지’에 올라섰던 2007년 한 해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1.84%였던 것을 감안하면 상승폭이 가파르다. 특히 9월 마지막주 서울 아파트 가격은 전주 대비 0.35% 오르며 10년 만에 ‘최고 주간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를 두고 금융 시장과 부동산 업계에서는 ‘8·25 대책의 역풍’이라고 평가한다. 정부가 8월 발표한 ‘8·25 대책’은 공공택지 아파트 공급물량 축소와 집단대출(중도금대출) 분양보증비율 축소(100%→90%)를 골자로 한다. 미분양 물량이 쌓여 가는 지역
  • [오늘의 눈] 농업에 뛰어드는 美 엘리트들/류지영 국제부 기자

    [오늘의 눈] 농업에 뛰어드는 美 엘리트들/류지영 국제부 기자

    이준익 감독의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년 개봉)을 보면 임진왜란을 앞두고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싸움만 하는 조정을 갈아 엎겠다며 무사 이몽학이 사병(私兵)을 이끌고 한양으로 진격한다. 그에게 아버지를 잃은 주인공 견자(犬子) 역시 가족의 복수를 위해 뒤쫒는다. 하지만 조선의 혁명을 꿈꾸는 이몽학이나 그를 죽이려고 따라붙는 견자가 한양에서 목격한 건 뜻밖에도 생전 본 적도 없던 왜군의 최신무기 조총이었다. 둘은 인생을 바쳐 연마한 칼솜씨를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한 채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들에게 허무하게 스러진다. 세상의 흐름을 모르고 내부의 이해관계에만 매몰돼 있다 거대한 힘 앞에 순식간에 무너지는 조선의 모습이 너무도 답답했다.  최근 LG가 새만금에 대규모 스마트팜 단지를 세우려다 농업계의 집단 반발로 철회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5년 전에 봤던 이 영화가 머릿 속에서 맴돌았다. 임진왜란 직전의 영화 속 조선과 농업시장 개방을 눈앞에 둔 지금의 대한민국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여서다.  최근 기자는 세계 스마트팜 운영의 현주소를 살피기 위한 ‘ICT, 농부가 되다’ 기획 시리즈(총 10회) 취재를 위해 미국에 다녀왔다. 스마트팜은 공장
  • [오늘의 눈] 대학의 주인은 누구일까/명희진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대학의 주인은 누구일까/명희진 사회부 기자

    재정지원 사업을 통해 대학의 ‘주식회사화’를 꿈꿨던 이화여대는 학생들의 격렬한 저지에 발이 묶였다. 여기에 서울대 학생들도 시흥캠퍼스 건립을 두고 학교와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다. 학생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모두 ‘주인 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주인 의식’이라는 말은 참 멋지다. 하지만 주인이 아닌 사람이 주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우습다. 이 때문에 내가 주인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일련의 사태들은 ‘대학의 주인은 학생일까’라는 오래된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대학의 주인은 누구일까. 국어사전에서는 ‘주인’을 대상이나 물건 따위를 소유한 사람, 집안이나 단체 따위를 책임감을 느끼고 이끌어 가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대의 한 교수는 “4년 있다가 졸업하는 학생이 무슨 대학의 주인이냐”는 발언으로 비난을 샀다. 그런데 그건 교수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학교 재정은 약 60~70%를 학생들이 채운다. 학교를 설립한 재단이 주인이라면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곳이 아니란 얘기다. 대학은 학생, 교수, 재단, 사회가 모두 주인이다. 이번 사태가 학교와 학생 간의 단순한 힘 싸움으로 비치는
  • [오늘의 눈] 정부, 북한의 6차 핵실험 대응책 있나/문경근 정치부 기자

    [오늘의 눈] 정부, 북한의 6차 핵실험 대응책 있나/문경근 정치부 기자

    북한이 지난 9일 5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자체 핵무력 완성의 정점에 다다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올해에만 두 번째다. 지난 1월 4차 핵실험을 했을 당시 정부는 개성공단 중단과 같은 남북 관계 단절을 통해 대북 제재 의지를 드러냈다. 또 북한이 진출한 해외 식당의 방문을 엄격히 금지하면서 중국, 아랍에미리트(UAE) 등지의 식당 20여곳이 영업을 중단하거나 폐업해 북한 통치자금 확보에 타격을 주었다. 최근 정부는 북한 5차 핵실험에 대한 징벌적 제재로 ‘한·미·일 양자제재’를 통한 압박에 유엔 회원국 자격을 문제 삼아 퇴출 논의를 공식 제기하는 등 ‘북한 흔들기’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북한의 행위에 따른 후속 조치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한계점이다. 북한이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를 통해 핵능력 고도화를 실현하고 있는 상황에서 ‘뒷북 대처’란 얘기다. 이런 순서를 좇는 형태라면 북한은 결과적으로 핵무기 완성에 이르게 된다. 북은 핵을 실질 보유함으로써 대한민국보다는 윗자리에 오르고, 중국·러시아·미국 등과 비슷한 지위를 가진다. 이 때문에 우리 내부에서는 북한의 핵 개발에 맞서 전술핵 재배
  • [오늘의 눈] 백화점·쇼핑몰은 지진 안전지대일까/박재홍 산업부 기자

    [오늘의 눈] 백화점·쇼핑몰은 지진 안전지대일까/박재홍 산업부 기자

    지난 19일 밤 또다시 경북 경주에서 규모 4.5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난 12일 5.1~5.8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지 일주일 만에 지진이 또 발생해 지진에 대한 국민들의 두려움은 더 커지고 있다. 일단 한반도에서도 대형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인지한 이상 또다시 지진이 발생할 경우 혼란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그곳이 실내 공간에 최대 수만 명의 인파가 몰리는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 마트 등이라면 혼란은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12일 경주에서 첫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 마트 등을 운영하고 있는 업체 관계자들은 지진에 따른 사고 우려를 묻는 질문에 “이미 매뉴얼이 다 구비돼 있고 각 건물 모두 내진 설계가 돼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안심시켰다. 실제로 롯데백화점의 경우 지진 발생 시 매뉴얼에 예보·발생·조치 등 세 단계로 상황을 나눠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등도 안내방송과 함께 고객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내용의 매뉴얼이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매뉴얼에 대한 교육을 평소에 했는지, 또 근무자들이 매뉴얼을 얼마나 숙지하고 있는지다. 예컨대 이미 두 번
  • [오늘의 눈] 김영란법,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최훈진 정책뉴스부 기자

    [오늘의 눈] 김영란법,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최훈진 정책뉴스부 기자

    “요구한 적도 없는 선물을 반송하느라 맞벌이하는 저희 부부로서는 퇴근 후 황금 같은 저녁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행정자치부의 한 고위 공무원이었다. 추석 직전이라 덕담이 오갈 것으로 예상하고 전화를 받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상기된 목소리였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을 앞두고 들어오는 추석 선물 때문에 뜻하지 않게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털어놨다. 부처 특성상 지방자치단체와의 교류가 잦은 행자부 공무원에게는 지자체로부터 선물이 들어오는 일이 잦은 편이다. 정부서울청사 복도를 오가다 보면 각 부서로 지자체 특산물이 들어오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명절에는 집으로 선물이 몰린다고 한다. 문제는 선물에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은 이상 5만원이 넘는 것인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령에 따르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 없이 사교·의례 목적인 경우 5만원 이하의 선물은 허용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발간한 김영란법 매뉴얼에 따르면 선물의 가격을 모를 땐 시중가를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알아봐야 한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선물을 받고 싶지는 않다고 그는 말했다. 5만원짜
  • [오늘의 눈] 나쁜 장사꾼의 입에 재갈을 물려라/강주리 경제정책부 기자

    [오늘의 눈] 나쁜 장사꾼의 입에 재갈을 물려라/강주리 경제정책부 기자

    “브랜드요? 정말 배신감 느낍니다. 아이들 목숨을 담보로 장사하는 업체들은 제발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어린 두 자녀를 둔 지인은 얼마 전 유해 물질로 뒤범벅된 어린이용품들이 또다시 대량으로 리콜되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새 학기를 앞두고 정부가 실시한 어린이 제품 안전성 조사 결과 유아동복에서는 카드뮴이 기준치의 160배, 책가방에서는 프탈레이트 가소제가 기준치의 144배를 초과해 나왔다. 지난해 4월에는 어린이 머리핀에서 중추신경 장애를 일으키는 납이 최대 503배 검출됐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리콜 조치된 124개 제품 중 67%(83개)가 유아동복, 완구 등 어린이용품이다. 지난 한 해 적발건수(97개 제품)에 버금간다. 해마다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지만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제품들은 꾸준히 시장에 나온다. 면역력이 약하고 한 번 피해를 입으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영유아 및 어린이 제품에 대한 장사꾼의 사기 행위는 죄질이 매우 나쁘다. 유명 브랜드 제품들도 예외가 아니다. ‘알로봇’, ‘블루독’ 등 국내 유아복 1위 기업인 서양네트웍스, 유아복 ‘프렌치캣’, ‘게스키즈’ 등을 유통하는 퍼스트어패럴,
  • [오늘의 눈] 서울형 청년주택, 중단 없이 전진해야/이범수 사회2부 기자

    [오늘의 눈] 서울형 청년주택, 중단 없이 전진해야/이범수 사회2부 기자

    “난 산골짜기에나 들어가 살아야겠다.” 중학교 동창 6명이 모여 있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집 보러 다니는 중’이라는 메시지를 남기자 한숨 섞인 답들이 돌아왔다. 내년이면 서른넷, 적지 않은 나이지만 서울에 집 한 채는커녕 방 한 칸 없는 현실이 답답했을 거다. 다른 친구들도 “나 같은 서민에게 집은 사치다. 지방행 고려 중”, “요즘은 서울 밖으로 안 쫓겨나는 것도 능력이더라” 등의 신세 한탄을 이어 갔다. 툭 하고 던진 말이었지만 친구들의 고민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우리 친구들’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한국감정원의 2015년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전국 주택 평균가격은 2억 6213만원으로 조사됐다. 서울은 5억 1200만원으로 약 2억 5000만원이 비쌌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신기록을 세웠다는 소식도 들린다. 전·월세 상황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30대 집 수요자들의 임금은 형편없다. 지난해 LG경제연구원에서 펴낸 ‘세대별 일자리 관점에서 본 한국 고용의 현주소’ 보고서에 따르면 30대의 월평균 임금은 176만 2000원에 불과했다. 20~30대가 부모나 은행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울시가 지난 1일 발표한 ‘역세권 2030
  • [오늘의 눈] 한진發 물류대란이 예상된 시나리오?/유영규 금융부 기자

    [오늘의 눈] 한진發 물류대란이 예상된 시나리오?/유영규 금융부 기자

    “큰 틀에선 계산된 시나리오대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한진해운발 물류대란 5일째를 맞은 지난 5일 한 정부 관계자의 말이다. 의연함이 되레 안타까웠다. 다른 이의 눈엔 허둥대는 모습이 역력한데 그는 “다 예상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듯했다. 괴리감은 정부 보도자료에서도 드러난다. 모두가 ‘물류대란’이라 말하지만 정부만 ‘물류혼란’이라고 표기한다. 혼란하긴 해도 여파가 크지는 않다고 우기는 듯하다. 물류대란 속 정부가 여전히 희망을 거는 시나리오가 있다. 각국 법원에서 ‘스테이 오더’(Stay Order·압류금지명령)를 일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스테이 오더란 법정관리 등 국내 법원이 결정한 사항을 외국 법원에서도 받아들여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해당 법원이 받아들이면 채권자의 압류나 강제집행으로 배를 억류하는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다. 실제 지난 5일 일본 법원이 스테이 오더를 받아들이면서 한진해운 배는 적어도 일본은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됐다. 미국 법원도 이번 주중 결정을 내린다. 정부는 나머지 40여개 국가에도 조속히 스테이 오더 신청서를 낼 계획이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현지 법원 결정이 떨어지려면 최소 2주에서 한 달 정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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