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칼럼
  • [데스크 시각] 국가비상사태

    [데스크 시각] 국가비상사태

    정부가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용어가 낯설진 않다. 첫 등장은 1963년 12월 17일 발효된 제3공화국 헌법에서였다. 그리고 1971년 12월 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실제로 선포했다. 국가비상사태 선포와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법 통과는 1972년 10월 유신체제 수립의 기반이 됐다. ‘용산’이 이런 함의를 모르지 않을 텐데도 국가비상사태를 소환한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인구 재앙에 대한 경각심을 전달하기에 ‘국.가.비.상.사.태’만큼 들어맞는 용어도 없긴 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출생 문제에 대한 역대 정부의 안이함, 정책과 예산의 비효율적 배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분절적이던 정책을 냉정하게 평가해 대책을 내놓았다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설명해서였다. 부총리급 컨트롤타워의 이름을 인구전략기획부로 정한 것은 지금까지의 출산장려책 수준을 넘어 국가 전략으로 접근하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의료개혁은 상처와 피로감만 남겼고, 연금개혁은 언제 다시 테이블에 올려질지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중세 유럽의 흑사병보다 심각하다는 인구절벽 문제의 돌파구를 찾겠다고 용산이 마음먹었다면 반길 일이었다. 특히 기획재정부 출신 중에서도 추진력과
  • [황수정 칼럼] 대통령에게 디테일이 절실하다

    [황수정 칼럼] 대통령에게 디테일이 절실하다

    왜 대왕고래였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동해 심해가스전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직접 발표했을 때. 대뜸 대왕고래가 궁금했다. 곧바로 인터넷을 뒤졌다. 지구상 가장 거대한 동물. 우리 앞바다에서 발견된 적 없는 신화 같은 존재. ‘고래사냥’ 노랫말도 구구절절 묘하게 오버랩됐다. 지금도 궁금하다. 시추공 하나 뚫는 데 1000억원이 드는 대형 사업. 국민 희망 부풀리기라고 야당이 딴죽을 걸 수 있다고 예상했을 터. 그렇다면 신기루처럼 부풀려진 이름만은 피했어야 하지 않을까. 대왕고래는 야권 유튜브들이 먹잇감으로 물어 온갖 억측을 쏟아 내고 있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쫀쫀하지 않고 즉흥적이라는 느낌. 우툴두툴한 정책에서 엇박자를 느낀다. 사흘 만에 철회한 해외직구 금지 대책도 그렇다. 직구 대책을 접은 이유는 소비자 선택권을 무시한다는 시중 비판 때문이었다. 알려졌듯 윤 대통령은 자유지상주의자인 밀턴 프리드먼 신봉자다. 그의 책 ‘선택할 자유’에 감명받았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후보 시절에는 가난한 사람한테 불량식품을 사 먹을 자유도 줘야 한다는 프리드먼의 논리를 폈다가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대통령의 ‘시그니처’ 국정 철학이 정확히 정반대 방향으로 달렸
  • [마감 후] 인구정책 내비게이션으로 진화한 인구포럼

    [마감 후] 인구정책 내비게이션으로 진화한 인구포럼

    서울신문 인구포럼을 두 해 연속 취재해 기사를 쓰는 행운을 누렸다. 저출산·인구소멸 전문가 제언의 향연 속에서 옥 중 옥을 가려 ‘첫 문장’을 써 내는 것이 핵심 임무였다. 유비무환 차원에서 매번 발표 자료를 미리 읽고 중요한 내용을 찾아봤다. MBTI 성격 유형에서 ‘J’(판단형) 성향을 지닌 탓에 당일 중요한 내용을 즉흥적으로 찾아 순발력 있게 기사를 쓰는 건 자신이 없었다. “헤드라인 뭘로 뽑지”란 고민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기사에 아등바등하는 사이 인구포럼 콘텐츠는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며 진화했다. 지난해 6월 인구포럼 첫날 김영미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발언을 토대로 범부처 ‘인구정책기획단’이 꾸려진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전했다. 정부가 인구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알린 상징적인 뉴스였다. 10월 전남도청에서 열린 인구포럼에 참가하며 지방과 수도권의 인구 고민이 전혀 다른 양상인 걸 알게 됐다. 20~30대 여성이 도심으로 빠져나간 지역에선 저출산보다 인구소멸이 더 심각한 문제였다. ‘자녀를 낳으면 혜택을 주겠다’는 저출산 정책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11월 강원 춘천 강원도청에서 열린 인구포럼에선
  • [마감 후] 다시 쓰는 기록들

    [마감 후] 다시 쓰는 기록들

    133일 전인 지난 2월 14일자 지면에 한중·한러 관계에 대한 기대를 담은 글을 썼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에 무게를 싣느라 거리가 멀어진 중국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경색된 러시아에 대한 변화와 관리를 본격화하려는 조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크게 달라지진 못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한 계기가 있을 것이라는 낙관이 읽혔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 취임 후 27일 만에 성사된 한중 외교장관 통화가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어진 전화통화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싶을 만큼 양국 관계는 녹록지 않아 보였다. 그랬던 한중 관계는 우선 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한 기록들을 잇따라 다시 썼다. 조 장관의 방중으로 6년 6개월 만에 베이징에서 이뤄진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비롯해 4년 5개월 만의 한일중 정상회의와 서울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 중국 총리의 회담, 9년 만의 한중 외교안보대화가 이어졌다. 러시아와의 교류는 지난 2월 초 윤석열 정부 들어 고위급 인사의 첫 방한인 외무부 차관의 움직임 이후 더이상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양국이 서로에 대한 소통과 관리 의지를 거듭 확인하고 있다고 알렸다. 이후 한국인이 간첩죄로
  • [세종로의 아침] 하이브와 배임죄

    [세종로의 아침] 하이브와 배임죄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상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현행 상법 382조 3항의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재계가 반발하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배임죄 폐지론을 꺼내 들었다. 검사 시절 대기업 총수들을 직접 배임죄로 기소했던 그가 ‘배임죄 폐지’를 들고 나온 것은 재계의 숙원을 풀어 주는 대신 밸류업의 핵심 동력인 상법 개정을 얻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배임죄를 없애 버리면 일반 주주 권리 강화라는 상법 개정의 기본 취지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사실 상법 개정과 무관하게 배임죄는 계속 논란의 대상이었다. 배임죄가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배임죄가 법률로 존재하는 나라 가운데 한국이 그 인정범위가 가장 넓고, 처벌 또한 가장 센 편이다. 미국과 영국 등 영미법계에선 배임죄라는 범죄 자체가 없다. 대신 미국, 영국은 배임에 해당하는 사안을 민사상 손해배상이나 사기죄로 처벌하고 있다. 미국은 1982년 루이지애나 대법원 판결 이후 ‘경영 판단의 원칙’을 확립했다. 경영
  • [특파원 칼럼] 제2의 군함도를 만들 것인가

    [특파원 칼럼] 제2의 군함도를 만들 것인가

    지난 11일 일본 도쿄 신주쿠구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를 1년 반 만에 다시 찾았다. 2015년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이 이뤄졌던 군함도(하시마섬)를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하면서 한국 정부에 강제동원 사실을 알리기 위한 시설물을 설치하겠다고 했고, 그 약속의 상징이 2020년 6월에서야 문을 연 산업유산정보센터였다. 하지만 실제 이곳을 찾아가면 일본이 약속을 지킬 의지가 없다는 게 여실히 드러난다. 애초 설립부터 잘못됐다. 군함도의 강제동원 역사를 제대로 알리겠다면 군함도 내부나 군함도가 위치한 나가사키현에 세워야 했지만, 그것도 아니고 도쿄 그것도 주택가에 있는 총무성 별관에 겨우 세웠다. 철저한 예약제인 데다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문을 연다. 평범한 직장인이 이곳을 찾으려면 소중한 연차를 써서 오라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이 찾아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나 다름없다. 내부 촬영은 철저히 금지됐다. 필요한 내용이 있다면 센터에서 나눠 준 메모지에 적도록 했다. 폐쇄적인 센터 운영이 4년째 변함없이 이어지면서 일본이 강제동원을 알리겠다는 약속이 공수표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이처럼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다시 찾은
  • [데스크 시각] 오세훈과 김동연의 시간

    [데스크 시각] 오세훈과 김동연의 시간

    “공백 기간이야말로 다양한 병적 징후들이 출현하는 때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 중 한 대목이다. “낡은 것은 죽어 가는데도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속에 위기가 존재한다”는 널리 알려진 글귀 뒤에 등장한다. 우리 역시 병리적 현상의 증폭을 목도하고 있다. 성장률의 저하와 제조업 등 좋은 일자리의 감소, 소득과 자산 불평등의 심화, 지방소멸, 포퓰리즘의 득세 등 사례는 차고 넘친다. 저출생ㆍ고령화는 병리적 현상의 원인이자 최종적 결과다. 기후위기에 따른 ‘히트 플레이션’은 안정적인 경제성장의 기존 공식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초인’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더 심각한 건 정치 권력들이 정치적 파산에 직면해 있고, 이에 본연의 역할인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는커녕 증폭시키는 주체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주 열린 채 상병 입법 청문회는 왜 민심이 떠나갔는지를 극명히 보여 줬다. 자식들을 군대에 보냈거나 보내야 하는 국민들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부 측 증인들을 지켜보며 어떻게 생각했을 것인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미국 기준금리 동향에만 목매는 경제정책을 생사의 갈림길에 선 서민 자영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 서울 아파트 전세 0.19% 상승…용산구, 전세·매매 모두 최대치

    서울 아파트 전세 0.19% 상승…용산구, 전세·매매 모두 최대치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상승폭을 키우면서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와 매수우위지수 역시 꾸준한 상승 흐름을 타고 있는 가운데, 용산구가 매매·전세에서 모두 가장 높은 가격 상승률을 보였다. 21일 KB부동산이 발표한 주간 KB아파트 시장동향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전세가격은 전주 대비 0.19% 상승했다. 특히 용산구(0.5%), 마포구(0.29%), 성동구(0.29%), 구로구(0.29%), 서초구(0.28%) 등이 높은 수치를 기록하며 전체 상승률을 견인했다. 강동구(-0.01%)는 서울 지역 중 나홀로 하락세를 보였다. 서울 전세가격 오름세는 수도권 전세가 상승도 부추기고 있다. 경기도 아파트 전세가격은 0.06%, 인천은 0.13% 상승했다. 경기권에선 성남시 중원구(0.31%), 수원시 영통구(0.24%), 부천시 원미구(0.21%), 구리시(0.16%), 부천시 소사구(0.14%), 양주시(0.14%), 안산시 상록구(0.13%) 등이 평균 상승률을 상회했고, 과천시(-0.31%), 안성시(-0.16%), 용인시 처인구(-0.11%), 파주시(-0.07%) 등은 하락했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도 전주 대비 0.07% 상승하며 전주(
  • [마감 후] ‘애완견’과 국민 모독

    [마감 후] ‘애완견’과 국민 모독

    최근 한 취재원이 물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언론을 ‘검찰의 애완견’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 “기분이 어떠냐”는 것이다.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불쾌하다”고 했다. 당연한 답변이었다. 근데 사실 또 ‘그렇게까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이 대표의 막말은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기소로 그만큼 초조하다는 얘기다. 궁지에 몰린 사람이 하는 ‘아무 말’이 상대방에게 그렇게 아플 리 없다. 이 대표 같은 정치 고단수가 한 발언으로서 별로 ‘전략적’이지도 못했다. 이 대표가 뒤늦게 ‘일부 언론’을 지칭한 것이라고 유감을 표했지만, 그의 발언은 언론이 전열을 가다듬는 기회가 됐다. 언론은 앞으로 더 꼼꼼히, 그리고 더 집요하게 이 대표가 할 ‘주장’들을 팩트체크할 것이다. 정말 화(火)를 부르는 부분은 따로 있다. 요즘 기자들 사이에선 ‘어디가 여의도인지, 서초동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다. 정치를 해야 할 여의도 국회에서는 ‘수사’를 하려 하고, 수사를 해야 할 서초동 검찰에서는 ‘정치’를 하고 있는 까닭이다. 4·10 총선에서 거대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삼라만상’에 대해 특검을 하겠다는 기세다. 채 상병 사건부터 시작해 김건희 종합 의혹, 대북송금 수사
  • [세종로의 아침] 의협의 횡포, 언제까지 참아야 할까

    [세종로의 아침] 의협의 횡포, 언제까지 참아야 할까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의 ‘무기한 휴진’ 선언에 의료계가 발칵 뒤집혔다. 임 회장은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총궐기 대회에서 의협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으면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역풍이 일었다. 의협 대의원회, 시도의사회 등과 논의하지 않고 임 회장이 독단적으로 결정해 발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내부에선 “회원을 장기판 졸로 취급한다”는 격한 반응까지 나왔다. 황당하기는 국민도 마찬가지다. 휴진 보도만 봐도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인데 ‘의사 대표 단체’라는 의협이 생명과 직결된 휴진 방침을 숙의 없이 내뱉었으니 국민 생명과 안전을 얼마나 가볍게 여겼으면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겠냐는 탄식이 나왔다. 결국 의협은 22일 회의에서 무기한 휴진 여부를 재논의하기로 했다 환자의 생명 보호와 치료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할 의사들의 파업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하기 어렵다. 하물며 임 회장이 주변 몇몇과의 쑥덕거림으로 무기한 휴진을 얼렁뚱땅 선언했다면 그 자체로 반인도적인 일이다. 누군가는 그 결정으로 건강을 잃을 수도 있다.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횡포와 폭주를 일삼는 의협을 이대로 참아 내야
  • [지방시대] 내연차에 놀란 가슴 전기차에 놀란다

    [지방시대] 내연차에 놀란 가슴 전기차에 놀란다

    2018년 5월 GM 군산공장이 문을 닫았다. 지역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쓰러지자 지역이 흔들렸다. 군산 수출의 절반에 달할 정도로 대단했던 업종의 이탈로 지역경제는 곤두박질쳤다. 다행히 가동을 멈춘 공장을 ㈜명신이 사들였다. 지역에선 한숨을 돌렸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도 축하를 보냈다. 상생형 일자리 프로젝트 탄생의 순간이었다. 군산형 일자리는 전국 최초로 양대 노총이 참여한 상생 모델 일자리로 큰 주목을 받았다. 군산형 일자리에는 명신, 대창모터스, 에디슨모터스(현 KGM커머셜), 코스텍을 비롯한 자동차 중견기업 4곳이 참여했다. 대표 기업인 명신은 군산공장에서 친환경 완성차, 즉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내연기관을 벗어나 친환경차시대 개막에 기대가 높았다. 2021년 정부는 군산 전기차산업을 상생형 지역 일자리로 선정하며 힘을 실어 줬다. 그러나 시작부터 불안했다. 참여 업체들의 공장 준공이 지연되는가 하면 에디슨모터스는 주가 조작 사건과 경영난을 겪은 뒤 기업회생 절차를 거쳐 KGM커머셜에 인수됐다. 전북도는 에디슨모터스에 100억원의 무담보 대출 보증을 섰다가 50억원의 손실을 보는 사태가 빚어졌다. 그래도 기다렸다. 딱히 대안도 없었다. 하
  • [서울 on] 세기의 재산분할 싸움을 보면서

    [서울 on] 세기의 재산분할 싸움을 보면서

    최태원(64) SK그룹 회장이 부인 노소영(63)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1조 3808억여원을 지급하라는 이혼 재산분할 항소심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판결 뒤집기에 나섰다. 재벌 2세와 현직 대통령 2세 간 ‘세기의 결혼’만큼이나 ‘세기의 이혼’도 화제가 됐다. 이혼 재판 과정에서 순탄치 못한 가정사를 들추고 재산분할 비율의 많고 적음을 다투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다만 4조원이 넘게 인정된 부부 공동재산과 수년간 이혼 사유로 거론된 혼외자의 존재는 국민적 관심도를 높일 만했다. SK 주식의 실질적인 특유재산 인정 여부와 같은 송사는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에 맡겨 두고 ‘자연인 최태원’을 위한 변명을 해 보고자 한다. 그는 2015년 공개편지를 통해 기업인 최태원이 아니라 자연인 최태원으로서 개인적 부끄러움을 고백했다. 평소 동료에게 강조하던 가치 중 하나인 ‘솔직’을 정작 스스로가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럽다고 했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자연인 최태원의 솔직함은 정당한 대가를 치르기만 한다면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지난 17일 SK서린빌딩 3층 수펙스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장을 찾은 ‘회장 최태원’은 솔직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회
  • [데스크 시각] 헌법 너머를 탐하는 ‘당원 권력’

    [데스크 시각] 헌법 너머를 탐하는 ‘당원 권력’

    역대 민주당 계열 정당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직접민주주의’ 또는 ‘직접행동’은 가슴 뛰는 언어였다. 독재정권과 싸우는 ‘김대중 선생님’을 위해 전답까지 팔아 헌신했던 호남 중심의 전통 민주당 당원들이 1997년 정권교체 이후 당내에서 공고한 기득권을 구축하자 이에 도전하는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들이 나타났다. 지지율 2%에 불과했던 부산 출신 노무현이 전통 당원들의 지지를 받던 이인제와 한화갑을 누르고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깨시민 등 일반 국민에게도 50%의 후보 선출권을 부여한 ‘국민참여경선’ 때문이었다. ‘참여민주주의’의 효능감을 맛본 시민들은 첫 정치 팬덤인 ‘노사모’를 형성했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엔 주류 당원 세력으로 자리잡아 열린우리당 창당의 원천이 됐다. 창당을 반대했던 추미애 의원 등은 소수 호남당으로 전락한 새천년민주당에 남아 한나라당과 손잡고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다. “탄핵 사유는 줄이고 줄여도 책자로 만들 정도”라는 추 의원의 발언은 노사모의 심장에 비수처럼 꽂혔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노사모는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 빈자리를 문재인을 추종하는 ‘문파’가 채웠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 내내 당 안
  • “책방 사라지면 도덕도 윤리도 스러져… 서점 지원법 만들어 달라”[황수정의 인터뷰 진심]

    “책방 사라지면 도덕도 윤리도 스러져… 서점 지원법 만들어 달라”[황수정의 인터뷰 진심]

    책방, 지혜의 사랑방이자 공공재 책 너무 안 읽어서 사회병증 앓아 시인이 장관을 해도 바뀐 게 없어 작은 서점 그물망처럼 퍼져 있어야 서점 살리는 정책 더 미뤄선 안 돼 기금 만들어 대출 이자 낮춰 주고 전기·냉난방 요금 정도라도 지원 동의하지 않는 여야 의원 없을 것 전남 신안에 ‘책이 있는 섬’ 추진 중 서점·박물관·카페·호텔 어우러져 강연하고 글이 숨쉬는 인문의 섬 ‘리딩 앤드 힐링’ 콘셉트 근사하죠? 김언호(79) 한길사 대표 앞에는 어떤 수식어가 붙어야 할까. 책 속에서, 글 속에서 한 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 사흘 밤낮을 고민해도 이 말만이 정답이다. 그를 만나러 가 보면 그것만이 정답인 줄 알게 된다. 파주 출판단지 한길사 꼭대기층 그의 방은 책으로 씨줄날줄이 엮인 책의 요새다. “사장님~” 하고 크게 부르면 “나 여어요” 책에 파묻힌 아득한 소리가 저쪽에서 깨어나듯 들려온다. 켜켜이 쌓인 책 더미 너머 작은 책상이 그가 세상을 투시하는 공간이다. 아니, 여전히 꿈을 꾸며 한 생을 보내고 있는 그의 아지트다. “신안 갔다가 어제 밤늦게 돌아왔어요. 아무래도 시간이 좀더 걸릴 것 같네요.” 전남 신안군과 추진하고 있는 ‘책 섬’ 이야기다.
  • [진경호 칼럼] 이재명은 생각하지 마

    [진경호 칼럼] 이재명은 생각하지 마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한 1987년 6월의 감격을 생각하면 당시 급조된 지금 6공화국 헌법의 부실함이 이해되기는 한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84조의 이 간단하지만 명료하지 않은 ‘대통령 불소추 특권’만 해도 37년 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앞에서 논란이 될 줄 누가 알았겠나. 8차례 대선과 10차례 총선을 2년에 한 번꼴로 치르며 승자독식의 심리적 내전을 이어 간 끝에 민주적 가치는 뭉개지고 여러 범죄 혐의로 기소된 인사도 얼마든 대선 출마와 당선을 꿈꾸는 세상이 될 거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나. 그러니 전직 검사 한동훈과 전직 판사 나경원의 걱정은 언뜻 자연스럽다. 대통령 불소추 특권은 취임 전부터의 재판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유죄 판결과 함께 물러나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에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그런 기대는 허망하다”고 치받았다. 법 왜곡죄 신설에다 판사 선출제까지 도모하며 사법 통제를 강화하려 드는 마당에 순순히 재판이 굴러가게 그가 놔두겠느냐는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정치를 매
  • [마감 후] 재정건전성 vs 세부담 완화 딜레마

    [마감 후] 재정건전성 vs 세부담 완화 딜레마

    지난달 23일 경기도 수원에서 열린 전국지방공공투자관리센터 공동세미나에선 지방재정이 투입되는 500억원 미만 사업에 대해서도 현금 흐름 등 재정 상황을 살피는 타당성조사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행정안전부의 중앙투자심사 사업 승인율(73.8%)과 달리 지방자치단체의 자체 심사 승인율은 2022년 기준 시도 심사 92.7%, 시군구 심사 99.3% 등 하나 마나 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에 따른 세수 감소 등 지방재정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올해 지방정부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7년 만에 최저치(43.3%)를 기록했다. 강원·경북·전남·전북은 20%대에 그쳤고 전남 강진 등 재정자립도가 10% 미만인 곳도 수두룩했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을 높이려면 투자사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게 매우 중요하다. 학계에서 타당성조사 대상을 낮춰 사업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라고 주문하는 이유다. 지자체장의 치적을 위해 ‘짬짜미’ 식으로 통과된 사업은 혈세 낭비로 귀결되기 쉽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행안부는 난색을 보인다. 자칫 규제 강화로 받아들여져 지역경제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이라는 난제에 대응해 적기
  • [마감 후] 악성 댓글을 대하는 마음

    [마감 후] 악성 댓글을 대하는 마음

    최근 한 아파트 단지 난동범에 대한 기사를 썼다. 그는 아파트 복도에서 야구방망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내려칠 듯이 주민들을 위협했다. 심지어 경찰 4명이 탄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을 때도 주저함이나 거리낌이 없었다. 범인의 거침없는 행동에 경찰도 순간 움찔했지만 곧바로 테이저건을 쏴 그를 제압했다. 그런데 기사 송고 후 초반에 달린 댓글에서 생각지 못한 반응이 나왔다. 기사의 첫 댓글은 “저 와중에 뒷줄에 있는 여경 폰 보고 있는 거냐”며 여성 경찰이 범인 제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이 댓글은 십수개의 댓글 중 가장 많은 공감을 받고 있었다. 여경 혼자만 뒷줄에 서 있던 것도 아니었고, 휴대전화로 개인 용무를 봤다는 증거도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예상치 못한 범인의 위협에 여경 혼자만 움찔했던 것도 아니었다. 출동한 모든 경찰이 신속하고 문제없이 임무를 마쳤을 뿐이었다. 기사 댓글이라는 게 심사숙고를 거친 글이라기보다 즉흥적인 감상을 적기 마련이며, 그에 대한 공감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또 수많은 의견 속에서 극단적이고 거친 표현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
  • [세종로의 아침] 제주 고교 운동부에 인권감시관이 파견되는 이유

    [세종로의 아침] 제주 고교 운동부에 인권감시관이 파견되는 이유

    오는 24일부터 제주 지역 65개 고교 운동부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 윤리센터가 10명의 인권감시관을 파견한다. 스포츠 윤리센터가 제주 지역 고교 운동부에 인권감시관을 파견하는 근거는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라 체육계 현장의 인권침해를 조사하고 조치 상황 등을 상시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권감시관은 고교 운동부 소속 선수와 지도자를 상대로 인권침해나 고충 여부 등을 확인한다. 이번 조사는 제주특별자치도 교육청과 연계해서 시행하는 것으로 고교 운동부 선수에 대한 설문조사와 함께 훈련장 실제 상황 모니터링, 시설 방문을 통한 훈련 장소의 공간 배치, 운동부 기숙사 시설 및 공간 확인, 심층 상담을 통한 선수와 지도자에 대한 인권침해나 고충 여부 등을 확인한다. 또 이를 바탕으로 우수학교 선정 및 제주특별자치도 교육청에 보고서를 보낸다. 스포츠 윤리센터가 제주 지역 고교 운동부를 대상으로 인권감시관을 파견하는 것은 이 지역 인권침해 관련 접수 통계가 특이점을 보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윤리센터가 설립된 2020년 8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지역별 학교 운동부와 관련해 접수된 신고 건수를 보면 146개 운동부가 있는 서울은 76건의 사건 접수가 이뤄져 접수율이
  • [데스크 시각] 조강지처 단상

    [데스크 시각] 조강지처 단상

    “간통죄가 없어져 상간 남녀가 판치는 세상에 이 땅의 조강지처들을 지켜 준 사이다 판결이다.” 최태원(64) SK그룹 회장이 부인 노소영(63) 아트센터 나비관장에게 재산의 35%를 떼어 주게 된 판결을 놓고 법리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옹호 여론이 높다. 지난달 30일 서울고법 가사2부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위자료로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 3800억원을 현금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2022년 이뤄진 1심 판결(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금 665억원)처럼 남편 재산의 5% 정도만 나눠 받는 게 일반적인 만큼 항소심 결과는 역대급 반전이 아닐 수 없다. 분할 금액이 1조 3800억원으로 껑충 뛴 것은 최 회장 재산의 대부분인 SK㈜ 주식(17.74%)을 부부 공동재산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에 대한 헌법 가치는 물론 노 관장 아버지인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영향력이 SK 성장에 기여했다는 전제로 이 주식까지 분할 대상으로 봤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는 그룹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30.0%), SK이노베이션(34.5%), SK스퀘어(30.6%·SK하이닉스 모회사)를 지배
  • [마감 후] 자전거 천국이 되려면

    [마감 후] 자전거 천국이 되려면

    ‘따르릉 따르릉.’ 인도를 걷는데 서울시 공유 자전거 ‘따릉이’를 탄 젊은 남성이 길을 비키라며 벨을 울렸다. 자전거의 인도 주행은 불법인데, 불법 주행을 하면서 감히 보행자에게 비키라니.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보도블록이 깔린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보행자에게 시끄럽게 벨을 울리는 ‘무개념 운전’에는 성별과 나이가 따로 없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 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이라는 노래 가사가 우리나라 자전거 이용자들의 무의식에 나쁜 버릇을 심어 버린 걸까. 그런데 가끔 필요해서 따릉이를 빌려 타 보면 그런 사용자들을 욕할 수만은 없게 된다. 자전거전용도로는 조금만 가면 뚝뚝 끊어져 차도나 인도를 선택해야 된다. 의식 있는 사용자인 양 차도에 들어서면 차량들의 위협에 노란 선 밖에서 주행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교차로에선 차마 차량처럼 당당하게 신호를 받고 좌회전할 수 없어 결국 횡단보도나 인도를 침범하게 된다. 서울시와 각 구청은 친환경 건강 이동수단인 자전거 사용을 장려한다. 공유 자전거를 운영하고 자전거 대행진 행사를 연다. 자전거길 코스를 만들고 수리센터도 설치해 준다. 자전거보험도 가입해서 지역 내에서 사고가 나면 보험금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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