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칼럼
  • [황수정 칼럼] ‘강남 우파’만 계속 할 건가

    [황수정 칼럼] ‘강남 우파’만 계속 할 건가

    미국을 보면서 ‘썩어도 준치’라는 생각을 한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가 된 JD 밴스를 보면 그런 생각이 깊어진다. 39세 흙수저. ‘문제적 트럼프’도 다시 보게 된다. 정확히 아들뻘(39살 차이)인 초선 상원의원을 어떻게 부통령 후보로 낙점했을까. 둘의 조합이 내 눈에도 흥미로운데 미국인들은 오죽할까. 트럼프의 정치적 셈법이 무엇이었든 밴스는 개천의 용이다. 해마다 수십 명이 헤로인 중독으로 죽는 쇠락한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아빠는 언제나 집에 없었고 엄마는 약물 중독자였다. 밴스의 자전 에세이 ‘힐빌리의 노래’가 국내 출간된 것이 7년 전. 일자리도 희망도 없는 러스트벨트(몰락한 공업지대) 출신인 무명의 ‘촌놈’이 몇 년 뒤 미국 부통령 후보가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미국의 개천 용이 쏟아내는 말에 유권자도 아닌 나는 지금 귀를 기울인다. “변두리 지역의 모든 이들에게 약속한다.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절대 잊지 않는 부통령이 될 것이다.” 미국이 그려 낸 개천 용의 서사는 부럽다. ‘리틀 트럼프’가 된 밴스가 미국 우선주의 트럼피즘으로 세계 질서를 골치 아프게 흔들 위험성은 물론 있다. 그럼에도 시선이 쏠리는 이유는 분명하
  • [세종로의 아침] 노사 신뢰 없는 최저임금 개선은 ‘공염불’

    [세종로의 아침] 노사 신뢰 없는 최저임금 개선은 ‘공염불’

    ‘전 국민 임금협상’으로 불리는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시끄럽게 지난 12일 마무리됐다. 역대 두 번째로 낮은 1.7%의 인상률을 기록했지만 제도 도입 37년 만에 ‘1만원의 벽’을 깨며 시간당 1만 30원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시급 1만원을 요구했던 노동계뿐 아니라 1만 30원을 제시한 경영계는 불만을 쏟아냈다. 최저임금 결정은 이처럼 책임 공방으로 끝을 맺는다. 인상률에 따라 비난 주체와 대상이 다르지만 갈등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 결정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연례적으로 나오는 통과의례로 감수하기엔 사회적 비용이 커서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는 구성부터 수준 결정까지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차등) 적용 표결에서는 도입에 반대하는 일부 근로자위원의 투표 방해로 경영계가 회의를 거부했다. 끝이 아니다. 최저임금 결정 단위와 구분 적용 처리 지연으로 시간에 쫓기자 수준 결정은 세 차례 회의 끝에 결정됐다. 9일 노동계와 경영계가 최초 요구안으로 각각 1만 2600원, 동결(9860원)을 주장했다. 1차 수정안에 노동계는 1400원을 내린 1만 1200원을, 경영계는 10원 올
  • 공급절벽 우려 올라탄 집값… “서울 역세권 정비부터 속도 내야” [임창용의 부동산 에세이]

    공급절벽 우려 올라탄 집값… “서울 역세권 정비부터 속도 내야” [임창용의 부동산 에세이]

    불붙은 집값 상승세 서울 아파트값 17주 연속 상승 상승폭도 5년 10개월 만에 경신 강남·마용성 넘어 수도권도 ‘들썩’ 상승폭 커지는 이유는 올 1~5월 인허가 물량 24% 줄어 공급 부족 심화가 불안 심리 자극 저금리로 금리 기조 전환도 겹쳐 속도 못 내는 ‘270만호 공급’ 수도권 공급량, 목표의 41% 그쳐 공사비 급등·분담금 갈등 이어져 사업 차질에 사전청약 폐지까지 공급 물량보다 속도가 관건 정부 ‘2029년 주택공급 청사진’ 발표 중장기적 공급 계획에 실효성 의문 “확실한 신호로 불안 심리 잠재워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꿈틀거리자 정부가 지난 18일 부동산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대책을 발표했다. 2029년까지 3기 신도시 등에 23만 가구를 시세보다 싸게 분양, 시장을 교란하는 투기단속 강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등이 주요 내용이다. 서울 아파트값이 지난주까지 17주 연속 오르고 전셋값은 1년 넘게 상승세인 상황에서 대책 발표가 좀 늦은 감이 있다. 게다가 이번 대책이 기존 공급계획 물량을 확인한 데 불과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미 불붙은 집값 상승세를 잡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정부는 다음달 중 추
  • [데스크 시각] 모아타운, 성공한 정책 되려면

    [데스크 시각] 모아타운, 성공한 정책 되려면

    서울시가 만든 주택과 도시 정비 관련 정책 중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단연 2000년대 초반 나온 ‘뉴타운’이다. 잘게 쪼개진 재개발 사업을 하나의 지구로 묶어 서울에 신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을 넘어 도시와 동네를 바꾸는 역할을 해서다. 그 결과 현재 뉴타운 사업이 완료된 공덕·아현 일대와 왕십리 일대는 집이 아니라 동네가 바뀌면서 강북의 대표적인 중산층 거주지가 됐다. 한마디로 뉴타운 사업 자체만 놓고 보자면 ‘좋은 정책’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뉴타운’ 하면 ‘부동산 투기 열풍’이나 ‘실패한 정책’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뉴타운으로 지정됐지만, 현재까지 사업이 진행되지 않은 정비 사업지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이런 부정적인 평가가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정책적으로 ‘훌륭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뉴타운이 왜 이런 불명예를 뒤집어쓰게 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잘못된 운용’ 때문이다. 당시 주택 가격 상승기를 타고 ‘뉴타운 지정’ 현수막만 걸려도 집값이 껑충껑충 뛰자 너도나도 뉴타운 지구 지정을 원했다. 그 결과 서울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는 기간에만 세 차례에 걸쳐 26개 지구, 2
  • [서울on] 막장 드라마는 이제 그만

    [서울on] 막장 드라마는 이제 그만

    철학을 갖고 기업을 이끌던 경영자를 하루아침에 자리에서 끌어내린다는 건 엄청난 리스크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런 일은 실제로 벌어진다. 창업주 일가가 모녀, 형제로 나뉘어 갈등을 빚다 봉합에 나선 ‘한미약품’과 4남매가 7년간 분쟁을 이어 오다 동생에서 언니로 수장이 바뀐 ‘아워홈’ 등이 그렇다. 둘 다 업계에서 존재감이 큰 기업들이다. 한미약품은 적자를 내면서도 연구개발(R&D)에 몰두해 온 ‘개량 신약의 명가’로 거듭났다. 아워홈은 단체급식업계 최초로 R&D와 해외 사업에 나섰다. 후계 구도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 분쟁의 화근이 됐다. 목숨 걸고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할 일을 벌이며 이어 간 분쟁의 여파로 두 기업 모두 불확실한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한미약품의 경우 고 임성기 창업주의 고향 후배인 신동국(74) 한양정밀 회장이 지주사(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매수하기로 하면서 경영권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여전히 경영진 구성은 모호한 상황이다. 창업주의 장남 임종윤(52) 이사가 신 회장과 공동 입장이라며 형제의 경영 참여를 언급했지만 신 회장은 세부적으로 상의한 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아워홈의 경우 지난해 최대 실적을 만든 창업주의
  • [지방시대] 김영환 충북지사가 재선을 꿈꾼다면

    [지방시대] 김영환 충북지사가 재선을 꿈꾼다면

    민선 8기 후반 새로운 2년의 힘찬 출발을 다짐하는 지자체장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김영환 충북지사에게는 따뜻한 말보다 쓴소리를 하고 싶다. 비참한 여론조사 결과 때문이다. 김 지사는 한국갤럽의 상반기 광역단체장 여론조사에서 긍정 평가가 40%대에 머물며 최하위를 기록했다. 부정 평가는 37%로 가장 높았다. 전국 꼴찌였다. 리얼미터 여론조사는 10위까지만 순위를 공개하는데 지난 5, 6월 조사에서 김 지사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중부내륙특별법 제정 등 치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김 지사에게 필요한 것은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다. 김 지사의 말과 생각이 충북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도민들이 김 지사에 대해 실망을 넘어 분노하는 이유는 오송 참사와 친일파 발언 등으로 촉발된 주민소환 위기를 겪고도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지사는 지난해 9월 직원 조회에서 도민을 두려워하며 겸손하게 도정을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서명인 수 부족으로 주민소환이 불발되자 도민들 비판을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며 또 한 번 머리를 숙였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절대 진리는 아니기에 많은 사람이 김 지사가 달라질 줄 알
  • [세종로의 아침] 트럼프 쏜 총알, 미국을 통합시키나

    [세종로의 아침] 트럼프 쏜 총알, 미국을 통합시키나

    역대 가장 비호감 후보의 맞대결이라는 평가를 받던 미국 대선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피격 사건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 논란으로 인기 절정의 드라마를 쓰고 있다. 지난 13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선거 유세 연설을 하던 도중 총에 맞았다. 21세의 암살범 토머스 매슈 크룩스는 약 8발을 쐈고, 이 중 하나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오른쪽 귀를 스쳐 지나갔다. 얼굴에 피를 흘리며 성조기 아래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모습은 21세기 미국 현대사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양극화로 증가하는 정치 폭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극명하게 양분된 상황에서 언제 내전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 없다는 여론 조사 결과도 있었다. 여론조사기관 마리스트 폴의 지난 5월 조사를 보면 미국인의 47%는 1860년대 남북전쟁과 같은 내전이 자신의 생애 중에 일어날 수 있다고 봤다. 공화당원의 내전 가능성에 대한 긍정 응답률은 53%로 민주당원의 40%보다 훨씬 높았다. 세계 총기의 40%가 미국에 있는 물리적 조건도 내전 가능성을 높인다. 미국에는 약 3억
  • “국회가 다 쥐고 있으면 싸움만… 시장·공동체·국가 기능 재분배를”[박성원의 직설대담]

    “국회가 다 쥐고 있으면 싸움만… 시장·공동체·국가 기능 재분배를”[박성원의 직설대담]

    여야가 연일 ‘채상병특검법’과 검사 탄핵안, 윤석열 대통령 탄핵청원 청문회 등을 놓고 극한대결을 벌이고 있다. 국정 운영 자체가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 캠프의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지냈고 학계, 정부, 경제, 정치 현장에서 굵직한 역할을 맡으며 국정의 성공과 실패라는 주제와 평생 씨름해 온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을 만나 본 이유다. 인터뷰는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서울신문 사옥에서 진행됐다. ―국회의 파행과 대결로 경제·민생은 물론 국가 미래와 생존에 필요한 정책·법안들이 모두 고사될 상황이다. “의회제도가 갖는 한계가 있다. 저출생·고령화, 금리, 인적자원 양성, 산업 구조조정 문제 등 국가가 풀어야 할 문제가 빠르게 대량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국회가 전문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다. 특히 중앙집권이 강한 한국에선 정부와 국회가 다 쥐고 있으니 문제 해결이 더 안 된다. 서로 네 탓이라며 상대를 비판하는 것으로만 풀려고 한다. 시장, 공동체, 국가의 기능 재분배가 필요하다.” 김 회장은 여야 갈등을 조선시대 당쟁에 비유했다. 조선 중기 이후 유통업,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이를 감당할 수 없던 농경시대형 왕정에서 서로 네 탓을
  • [데스크 시각] 왜 웃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데스크 시각] 왜 웃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인간에게 기억이라는 메커니즘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엊그제 만난 사람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아주 오래전 일로 무의식 저편에 묻혀 있던 것도 어떤 장면이나 사건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 30년도 훨씬 전 대학 시절 어느 여름날이 느닷없이 기억났다. ‘이오공감’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이 발표한 동명의 앨범에 포함된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라는 곡, 그리고 그것을 처음 들었을 때가 말이다. 노래 가사 중에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라는 구절이 있다. 뻔하디뻔한 사랑 노래 가사가 생생하게 떠오른 계기는 재미있게도 지난달 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에서 결정한 내년도 정부 주요 연구개발(R&D) 예산안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도 R&D 예산을 올해와 비교하면 13% 이상 증가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해 하반기 느닷없이 ‘카르텔’과 ‘나눠 먹기’ 발언이 등장했고, 결과는 올해 정부 R&D 예산 후려치기로 끝났다. 이후 정부가 내년도 예산은 역대 최고폭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 이미 예상됐던 것이다. 정부 주요 R&D 예산은 2023년 24조 7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 [마감 후] 안녕, 스마트폰

    [마감 후] 안녕, 스마트폰

    “‘안녕, 스마트폰’은 너무 명랑하고 밝은 느낌 아닐까요.” 디지털 디톡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 주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까. 압박감은 별의별 제목들을 양산했다. 스마트폰과 이별하는 중, 스마트폰 죽이기, 스마트폰 화면이 6인치라서 붙여진 ‘6인치 세상을 넘어’ 등. 결국 기획 시리즈의 제목은 ‘안녕, 스마트폰’으로 결정됐다. 2007년 1월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고, 이후 수많은 소셜미디어(SNS)와 각종 앱이 등장하면서 스마트폰 중독 문제는 심각해졌다. 가족들끼리 모여도 서로의 얼굴보다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6인치 안 화면에서는 유튜브, 포털사이트, 틱톡, 인스타그램 등 저마다 펼쳐지는 세상도 다르다. 각자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그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진다. 스마트폰 화면에 집중하느라 대화를 나눌 시간도 딱히 없다. 대화 단절이나 확증 편향이 공고해진다는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은 도파민을 분비하고, 전두엽을 자극한다. 오래 사용할수록 더 강하고 새로운 자극이 있어야 만족하게 된다. 중독이 심화하면 도파민을 주는 강한 자극에만 뇌가 반응하는 ‘팝콘브레인’이 될 확률
  • [진경호 칼럼] 누가 괴물인가

    [진경호 칼럼] 누가 괴물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을 다시 봐야 할 시간인 듯하다. 하나의 세상이 각자의 시점에 의해 여러 세상이 되는, 오늘 우리 모두의 이 사회적 착란 속에서 갈피를 잡으려면 다른 방도가 없어 보인다. 싱글맘 사오리 눈에 비친 초등 5년생 아들 미나토의 ‘기괴한’ 행동. 집단 괴롭힘에 시달리는 친구 요리에 대한 미나토의 연민. 성실한 교사이건만 오해와 우연이 겹쳐 폭력 교사의 오명을 쓴 채 학교 밖으로 떠밀리는 교사 호리. 부모자식 간이든, 선생과 학생 사이든 관계는 서로에 대한 스틸사진만 갖고 이뤄진다. 사진 찍기 전 모습을 모르고, 다음 모습도 모른다. 오직 내가 본 것, 내 눈앞의 편린(片鱗)만이 ‘사실’이다. 사리에 밝고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오리지만 느닷없이 차에서 뛰어내리고, 어느 날 갑자기 제 머리를 마구 깎는 미나토를 보면서 실은 이 아이 가슴에 요리라는 친구가 있고,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요리를 안타까워하는 순수한 마음이 돌출행동으로 이어졌다는 것까지 헤아리진 못한다. 담임선생 호리도 마찬가지. 책걸상을 마구 집어던지는 미나토를 보면서 그게 요리를 지키려는 행동이란 건 한참 뒤에야 깨닫는다. 이들이 미나토라는 퍼즐 조각을 하나씩 어
  • [세종로의 아침] 한일월드컵의 유효기간

    [세종로의 아침] 한일월드컵의 유효기간

    지금은 동네북이 됐지만 대한축구협회의 축구 행정이 빛나던 때가 있었다. 22년 전 2002 한일월드컵 당시가 그렇다. 한국은 1998 프랑스월드컵까지 다섯 차례 본선에 올랐으나 단 한 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하고 조별리그 탈락을 반복하던 팀이었다. 사상 처음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그것도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과의 공동 개최를 앞두고 적어도 이웃보다 성적이 나빠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요구가 팽배했다. 이를 위해 세계적인 명장을 영입해야 한다는 열망도 가득했다. 축구협회는 프랑스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지휘하며 한국에 0-5 패배의 좌절을 안겼던 거스 히딩크 감독을 한일월드컵 개막 1년 6개월을 앞두고 선임했고, 결과적으로 4강 신화를 일궜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은 1순위 사령탑 후보가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그리고 이후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프랑스를 자국 월드컵 정상에 올려놓은 에메 자케 감독이 1순위, 프랑스월드컵 4위를 차지한 히딩크 감독이 2순위, 나이지리아에 1996 애틀랜타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조 본프레레 감독이 3순위, 프랑스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의 ‘돌풍’(3위)을 이끈 미로슬라프 블라제비치 감독이 4순위였다. 자케 감독의 완강한 고사에 축구협회는 재
  • [데스크 시각] 당신도 튤립에 물을 주고 계신가요

    [데스크 시각] 당신도 튤립에 물을 주고 계신가요

    3년 전 일이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대기업 임원인 A는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한다는 아들 자랑을 이어 갔다. “요즘 애들은 확실히 달라. 자기 유학 비용은 본인이 벌더라고. 뉴욕에서 공부하는 아들이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코인)에 투자할 거니 돈 좀 부쳐 달라고 하더라고. 첨엔 저게 돈이 될까 했는데 정말 무지했던 거지….” 그는 곧 휴대전화를 꺼내 아들이 투자했다는 NFT 작품들을 보여 주며 각각의 수익률을 이야기했다.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투자 수익금이 최소 수천만원에 달했다. 저런 게 돈이 될까 싶었지만 예의가 아닌 듯해 토를 달진 않았다. 하지만 의심이 부러움으로 바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한 달쯤 지났을까. NFT 관련 뉴스들이 신문과 방송에서 쏟아졌다.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온라인 원숭이 그림(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클럽)을 마돈나, 에미넘 등 미국 연예인들이 수억원을 주고 샀다는 소식도 들렸다. 200년 전통의 세계적인 영어 사전 출판사인 영국 콜린스는 2021년의 단어로 ‘NFT’를 선정했다. 이쯤 되자 서점엔 NFT 투자 지침서가 깔렸고, 국내 기업들은 경쟁하듯 NFT 관련 벤처를 차리고 사업
  • [서울on] 영국 커피하우스와 한국의 직장 문화

    [서울on] 영국 커피하우스와 한국의 직장 문화

    17세기 중반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는 장소 이상이었다. 커피하우스에선 1페니만 내면 커피 한 잔과 함께 낯선 이들과 탁 터놓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계층도 불문했다. 잡담과 신변잡기는 물론 경제, 정치, 시사와 학문까지 다방면의 토론을 토대로 주식거래, 보험산업과 같은 혁신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커피하우스는 이후 영국을 이끈 계몽주의의 산실로 작용했다. ‘상호 존중’의 자세는 커피하우스 혁신의 주춧돌이었다. 손님들의 눈에 잘 띄는 벽에는 큰 글씨로 인쇄된 ‘커피하우스 규칙’이 붙어 있었다. 신사, 상인 등 계층과 지위를 막론하고 무례하게 굴어선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욕설을 내뱉었다간 돈을 추가로 내야 했고, 다툼이 일면 먼저 싸움을 건 사람이 커피를 사야 했다. 큰 소리로 다투는 건 일절 금지됐다. 대화에 끼기 위해선 진지하면서도 냉철한 자세를 기본 소양으로 갖춰야 했다. 높은 지위의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줄 필요도 없었다. 각계각층 사람들이 수많은 갈등과 마찰을 겪으면서도 건설적 대화를 쌓으며 혁신을 일궈 낼 수 있었던 배경이다. 300여년 전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직장 내 괴롭힘’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 [지방시대] 학교법인이 ‘먹튀’를 해도 되겠는가

    [지방시대] 학교법인이 ‘먹튀’를 해도 되겠는가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아서인지 국민 사이에서 부동산은 재산을 모으는 가장 유용한 수단으로 꼽힌다. 투자법도, 성공 스토리도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많은 부러움의 대상은 오래전에 산 땅 주변에 개발 호재가 터져 횡재를 누리는 경우다. 강원 속초 노학동에 있는 옛 동우대학 부지를 소유한 학교법인 경동대가 꼭 그렇다. 동우대학 부지는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에 이어 2027년 동서고속화 철도와 동해북부선 철도까지 개통하는 연이은 개발 호재를 맞으며 막대한 시세 차익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두 개 철도 노선이 지나는 속초역사가 들어설 입지와 동우대학 부지까지 거리는 300~1000m에 불과하다. 11년 전인 2013년 폐교한 뒤 잡초만 무성한 흉물이 속초에서 둘도 없는 ‘더블 초역세권’으로 변모한 것이다. 게다가 2년 전 사립대가 보유한 교육용 토지, 건물 등을 수익용으로 쉽게 바꿀 수 있도록 교육부 지침도 바뀌었다. ‘겹경사’를 맞은 경동대는 올해 5월 초 동우대학 부지와 건물 등 부동산을 매각하는 입찰 공고를 냈다. 부지는 30만 2390㎡, 건물은 14동 4만 8574㎡이고, 예정가는 각각 781억 8351만원, 73억 4307만원으로 모두 855억 2659만원
  • [세종로의 아침] 법사위 유감

    [세종로의 아침] 법사위 유감

    이번 주 국회를 달군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법제사법위원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 청원을 안건으로 올려 오는 19일과 26일 청문회를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9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설전을 벌이며 우리 정치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은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부부장이 ‘윤 대통령 탄핵 소추안 발의를 요구하는 국민 청원자 수가 100만명을 돌파했다’고 말한 것을 인용해 “더불어민주당의 안건 상정에 북한 조선노동당 담화가 참고된 것 아닌가”라며 철 지난 ‘색깔론’을 제기해 야당 의원들의 반발을 샀다.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사위원장에게 “존경하고픈 정청래 위원장님, 식사 잘하셨죠?”라고 비아냥거리는 표현을 사용하자 정 위원장은 즉각 “발언을 중지한다”며 마이크를 끄게 했다. 하지만 정 위원장도 여당 의원들이 의사진행 발언 기회를 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음에도 “토론이 충분히 이뤄져 국회법에 따라 표결로 토론을 종결하고자 한다”며 묵살했다. 결국 여당 의원들이 편파적 회의 진행에 항의하면서 퇴장하고, 야당 의원들이 단독으로 청문회 증인 출석 안건 등을 의결해 여야 간 불신과
  • [데스크 시각] 한동훈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데스크 시각] 한동훈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갈림길에 섰다. 경기(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서 쉽게 이길 것으로 봤는데, 순식간에 ‘9회말 2아웃 2스트라이크’ 위기에 몰렸다. 첫 번째 경기(총선)에서 ‘삼진’으로 물러난 그는 여전히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아도 후회 없이 방망이를 휘두를 수 있을까. ‘김건희 여사 문자 무시’ 논란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한 가지는 7·23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용산’의 지지는 없을 거라는 점이다. 대통령실 측이 “(선거에) 끌어들이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는 해명과 당부에도 문자 노출은 사실상 전당대회 개입 의지로 읽힌다. 한 전 위원장에게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묻는 게 아니다. 여의도와 당원들에게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앞장서서 공격하는 친윤(친윤석열)계와 원희룡 당대표 후보의 행보를 보면 윤심이 어디에 있는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4·10 총선을 지휘할 비대위원장을 뽑을 때만 하더라도 용산이 원 후보의 ‘자기 정치’ 가능성과 이에 대한 우려로 한 전 위원장의 입성을 지지했던 걸 감안하면 180도 달라진 것이다. 역시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용산과 갈라선 한 전 위원장에겐 세 가지
  • “해리스 ‘트럼프에 대항 가능’ 여론조사 땐 바이든 하차할 수도”[황성기의 오쿨루스]

    “해리스 ‘트럼프에 대항 가능’ 여론조사 땐 바이든 하차할 수도”[황성기의 오쿨루스]

    美대선 관전 포인트는 민주당 해리스로 단일화할지 관건 뉴섬 지사 부통령 후보 되면 해볼 만 트럼프 당선 땐 미사일 국한한 협상 대북 제재 일부만 해제할 가능성도 美대선 이후 미중 관계 바이든, 마라톤처럼 충돌 않고 협력 트럼프는 레슬링처럼 경제 옥죌 것 中, 대만 침공 가능성 현재론 낮지만 시진핑 생각 몰라, 억지력 유지해야 美대선 4년 뒤가 더 걱정 미국 내 정치·경제·사회문제 분출로 공화 보수 vs 민주 좌파 후보 가능성 둘 다 국제 문제 개입 않는 고립주의 한국·일본 등 동맹에 미칠 영향 우려 “올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보다 4년 뒤인 2028년 대선이 더 걱정이다.” 미국 정치 전문가인 모리 사토루 일본 게이오대학 법학부 교수는 “4년 뒤 정치·경제·사회 문제로 미 공화당 보수파와 민주당 좌파 진영에서 대선 후보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들 세력 모두 동맹국과 거리를 두는 고립주의 성향이 강하다”면서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과 일본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모리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미사일에 한정해 북한과 협상을 벌여 대북 제재를 부분 해제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첫 TV토론
  • [마감 후] 수화와 버들마편초

    [마감 후] 수화와 버들마편초

    7월 전남 신안의 ‘퍼플섬’(반월·박지도)에는 보랏빛 버들마편초가 한창이다. 버들잎처럼 좁은 잎모양과 긴 꽃대 끝에 꽃이 달린 모습이 마편(말채찍)처럼 생겼다고 해서 버들마편초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꽃은 자생종이 아니다. 남미가 원산지인 이 꽃을 신안군이 퍼플섬 전역의 3만 9000㎡ 부지에 68만 포기를 식재한 것이다. 섬의 원래 자원은 아니지만, 지금은 섬 전체를 덮고 있는 이 꽃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반도 남서쪽 1025개 섬으로 이뤄진 신안은 2014년 ‘지적장애인 염전 강제노역’과 2016년 ‘여교사 성폭행 사건’ 낙인과 여전히 싸우고 있다. 게다가 인구감소지역이라는 위기까지 겹쳤다. 신안군은 그 해답을 예술에서 찾은 듯 보인다. 15개 섬에 미술관 26곳을 건립하는 ‘1섬 1뮤지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영국의 조각가 앤서니 곰리, 미국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 덴마크 출신 건축가 올라푸르 엘리아손, 미국의 그라피티 아티스트 존원 등이 참여한다. 이런 시도는 영국 잉글랜드 북부 게이트헤드와 일본 중남부 나오시마의 성공을 떠올리게 한다. 게이트헤드는 과거 지역경제의 주축이었던 석탄산업이 쇠락하고 인근
  • [최광숙 칼럼] ‘법대로’ 외치며 민주주의 역행하는 민주당

    [최광숙 칼럼] ‘법대로’ 외치며 민주주의 역행하는 민주당

    ‘법대로’가 압도적 의석수로 22대 국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이 입법 폭주와 제멋대로 국회 운영을 하는 ‘도깨비 방망이’로 등장했다. 국회법상 상임위원장은 본회의 투표로 뽑는 만큼 민주당(170석)이 18개 위원장을 다 가져가도 법리상 문제는 없을 수 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국회의장을 맡는 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지 않는 게 암묵적 관행이다. 여야의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였다. 운영위원장을 여당이 맡는 관행 역시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 있는 국회 운영을 하라는 취지에서 그동안 지켜져 왔다. 하지만 민주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장, 법사위원장, 운영위원장을 독식했다. 국민의힘이 항의하자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는 “법대로 상임위 구성을 마쳐야 한다”며 “원 구성 기준은 헌법과 국회법”이라고 받아쳤다. 첫 국회 법사위에서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이 일방적인 회의 진행을 따지자 법사위원장인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법대로 한다”며 묵살하고 “국회법 좀 공부하라”고 했다. 민주당 주장대로 ‘법대로’ 하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인가. 미국 정치학자 야스차 뭉크는 ‘위험한 민주주의’에서 “법치주의가 반드시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법치라는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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