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 [세종로의 아침] 경제 전쟁과 기업가 정신/이기철 산업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경제 전쟁과 기업가 정신/이기철 산업부 선임기자

    한국 경제에 포연이 자욱하다. 머리 위로 총알이 날아다니고 곳곳에서 포탄이 터지는 형국이다. 한창 가열된 글로벌 경제 전쟁의 포성이 요란하다. 물가는 너무 오르고 기업을 경영하기는 갈수록 어렵다는 아우성이 넘쳐 난다. 경제 전쟁의 부상이 속출한다. 이를테면 지난해 10월부터 11개월째 무역적자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엊그제 밝힌 기업경영분석 결과에 따르면 외부감사 대상 기업 2만 2962개사의 올 2분기 평균 매출 증가율은 마이너스 4.3%로, 1분기(0.4%)보다 하락했다. 영업이익률은 3.6%로, 전년 동기(7.1%)와 비교하면 반토막 났다. 외감기업의 성장성은 악화됐고 수익성은 둔화됐다는 얘기다. 올해 세수는 60조원가량 펑크가 예상된다고 한다. 실적 부진으로 기업이 내는 법인세가 예상만큼 걷히지 않는 까닭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7월 경제 전망에 따르면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은 1.4%로 낮아졌다. 세계 경제는 3.0%다. 한국 성장률이 글로벌 성장률에 한참 못 미친다. 장기화된 경제 전쟁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평균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26년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9월 통화정책보고서에 따르
  • [세종로의 아침] 노벨상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유용하 문화체육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노벨상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유용하 문화체육부 차장

    ‘가난한 집 제삿날 돌아오듯’ 올해도 그때가 다가왔다. 과학 기자로만 2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헛된 기대감과 함께 불안함이 공존하는 그날. 바로 10월 초 열리는 노벨과학상 수상자 발표다. 과학 선진국들과 달리 한국에서 노벨과학상 수상자 발표는 월드컵이나 올림픽 경기를 대하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수상자가 나올라치면 나라 잃은 듯한 분위기다. 지난해 한국계 미국 수학자 허준이 교수가 필즈상을 수상했지만 한국인들은 ‘○○계의 노벨상’ 말고 진짜 노벨상을 기다린다. 그래서 2000년대 중반에는 황우석 박사에게 희망을 걸었고, 몇 년 전에는 국내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이 유력하다는 근거 없는 소문에 언론이 앞장서서 희망 회로를 돌리는 촌극을 벌였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남의 집 잔치인 노벨과학상 따위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요즘 한국 과학 기술계를 둘러싼 분위기를 보고도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기대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다. 현재 과학 기술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다. 지난 7월 초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 R&D 예산집행
  • [세종로의 아침] 수도권 위기론과 수도권 기회론/이민영 정치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수도권 위기론과 수도권 기회론/이민영 정치부 차장

    “내일 선거를 치른다면 희망적으로 봐서 100석이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한 라디오에서 ‘내일 선거를 치른다면 몇 석 정도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100석이라고 답했다. 국민의힘이 대패한 것으로 기록된 21대 총선에서 103석을 얻었는데, 그보다 더 적은 수를 꺼내 든 것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100석을 주장하면서 강남 3구를 제외하고는 수도권에서 안심할 수 없는 분위기라는 이유를 댔다. 김 의원의 지역구는 서울 송파갑이다. 보수 정당에 유리하다는 강남 3구마저 심상치 않다는 의미다. 총선을 7개월 앞두고 국민의힘에 ‘수도권 위기론’이 불거졌다. 시작은 당 밖에 있는 신평 변호사의 ‘수도권 전멸설’이었고 안철수, 윤상현 등 수도권 중진 의원들이 불씨를 지폈다. 더불어민주당이라고 ‘수도권 기회론’이 있는 건 아니지만 국민의힘보다는 위기감이 덜해 보인다. 흥미로운 건 여야 지도부 모두 수도권 위기론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연찬회에서 “(수도권 위기론은) 매우 건강한 논쟁”이라고 했지만, 여당 인사 대부분은 사석에서 ‘수도권 위기론은 언론이 만들어 낸 허상’이라고 말한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180석, 국민의힘
  • [세종로의 아침] ‘그들’도 장군에게 빚을 졌다/임일영 정치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그들’도 장군에게 빚을 졌다/임일영 정치부 차장

    “그에 대한 편견과 불공정의 증거가 밝혀졌다. 충성심과 애국심을 확인했으며 스파이 혐의를 철회한다.” 2022년 12월 제니퍼 그랜홈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원자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67)가 세상을 떠난 지 55년 만에 그를 복권시켰다. 매카시즘의 광기에 짓눌렸던 1950년대 초 애국심이 강한 천재 과학자를 ‘빨갱이’로 몰고, 삶을 거세했던 잘못을 뒤늦게 인정한 것이다. 미 외교사의 거인 조지 케넌은 오펜하이머 추도식에서 그에게 외국행을 제안했더니 “제길, 난 이 나라를 사랑한단 말야”(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중)란 답을 들었다고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론물리학의 토대가 단단한 독일보다 1년여 늦게 원자폭탄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음에도 미국이 역전할 수 있었던 데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총괄한 오펜하이머의 공이 컸다. 그의 팀이 만든 원자폭탄은 일본에 떨어졌고 전쟁도 끝이 났다. 그러나 전후 원자력위원회(AEC) 자문회의 의장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과학 영웅도 ‘마녀 사냥’엔 버틸 재간이 없었다. 1930년대 공산주의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가졌고, 아내와 동생 부부, 절친이 공산당원이었으며,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한다는
  • [세종로의 아침] 김만배 해명의 공통점들/백민경 사회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김만배 해명의 공통점들/백민경 사회부 차장

    지난해 11월 24일.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의 핵심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구속 기간 만료로 석방됐다. “소란을 일으켜 송구스럽다”고 했다. 그런데 또 구속됐다가 최근 풀려난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로 세상은 더 소란스럽다. 이번엔 김씨가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과 허위 인터뷰로 대선 개입을 시도했다는 의혹이다. 의혹들을 둘러싼 김씨의 해명에는 공통점들이 있다. 첫 번째는 ‘묘하게 시의적절한 선의’다. 서울신문은 지난 1월 5일 ‘“김만배, 동료 언론인들과 수억 거래”… 돈줄 압박 수위 높이는 檢’이라는 제목으로 단독 기사를 게재했다. 김씨가 잘 아는 기자가 집을 사는데 9억원을 빌려줘야 한다며 대장동 민간 사업자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에게 2019년 4월 3억원씩을 받아 갔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돕고 싶다면서 본인은 내지 않고 이들 돈으로만 6억원을 건넸다. 다른 언론인에게도 1억원 안팎씩을 내줬다. 그때도 그는 주변에 ‘잘 안다, 친하다, 내가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신 전 위원장 때도 사정은 비슷하다. 김씨는 2021년 9월 ‘신 선배를 내가 도와줘야 한다’며 1억 6500만원을 책 세 권 값으로 줬다. 시기도 공교롭
  • [세종로의 아침] 국방부는 일머리가 없는 게 아니다/강국진 정치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국방부는 일머리가 없는 게 아니다/강국진 정치부 차장

    시작은 박정희 정부였다. 1962년 10월 독립운동가 56명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했다. 홍범도 장군도 그중 한 명이었다. 박정희 정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강조했고 홍 장군을 조명했다. 노태우 정부는 냉전 종식이라는 전환기를 맞아 북방정책을 추진했다. 1992년 카자흐스탄과 수교했다. 카자흐스탄에서 1943년 세상을 떠났고 현지 고려인 사회에서 큰 존경을 받던 홍 장군은 한국과 카자흐스탄을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됐다. 김영삼 정부 들어서는 유해 봉환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홍 장군 유해 봉환을 카자흐스탄 정부와 협의했을 정도로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북한이 강하게 반발했다. 남북한 사이에 외교전이 벌어졌다. 그런 속에서도 김영삼 정부는 기념비를 세우고 공원 묘역을 단장하는 등 공을 들였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10월 홍 장군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진수한 1800t급 잠수함을 ‘홍범도함’으로 명명했다. 함명 제정은 매우 까다롭다. 어지간해선 함명 변경을 하지 않으니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함명제정위원회를 구성해 후보를 선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공적심사는 물론 예상
  • [세종로의 아침] ‘팔순의 전성기’, K미술 도약 새 길 되길/정서린 문화체육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팔순의 전성기’, K미술 도약 새 길 되길/정서린 문화체육부 차장

    6일 서울 고덕동에서는 외국인 100명이 모국의 언어로 동시에 신문을 읽는 진귀한 광경이 예고돼 있다. 스페인, 독일, 중국, 러시아, 인도, 미국 등 다국적 시민들이 신문을 읽고, 읽은 부분을 오려 낸 뒤 뼈대만 남은 신문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퍼포먼스는 완성된다. 성능경(79) 작가가 1976년 서울화랑에서 처음 선보인 ‘신문 읽기’를 역대 최대 규모로 펼치는 것이다. 반세기 전 젊은 예술가가 언로까지 틀어막던 유신 체제 권력을 해체하고 무효화하기 위해 벌인 퍼포먼스가 세계 미술계 주요 인사의 발길과 시선이 서울로 집중되는 ‘제2회 프리즈 서울’ 개막일 지구촌 곳곳의 현재를 불러내는 장면으로 연출된다는 점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성 작가도 “처음 매뉴얼을 만들 때 100명도 할 수 있고,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처럼 합창하듯 할 수도 있다고 썼으나 한 번도 실현된 적 없던 것을 이번에 해보는 것”이라며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현대미술의 심장인 미국 뉴욕에서는 구겐하임미술관이 지난 1일부터 ‘1960~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을 주인공으로 초대했다. 구겐하임 측이 6년 전 계획해 국립현대미술관에 협업을 제안한 전시는 내년 2월부터는 로스앤젤레스 해머미술관으로
  • [세종로의 아침] “고진영 고 진영 고 고고 진영 고”/홍지민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고진영 고 진영 고 고고 진영 고”/홍지민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골프는 조용한 스포츠다. 선수들이 플레이할 때 숨을 죽여야 한다. 경기장이 떠나가라 함성을 내지르며 좋아하는 선수나 팀을 응원하고 때로는 상대 팀과 상대 선수들에게 야유를 퍼붓는 야구나 축구의 응원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골프 경기는 감질이 날 게 분명하다. 어떤 때는 너무 고요해 마치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관전(觀戰)이라기보다 관람(觀覽)이다. 그래서 골프 관람객들을 ‘갤러리’(gallery)라 부른다. 골프는 배려의 스포츠다. 270년 넘는 전통이 있는 골프 규칙은 플레이어 행동 기준의 하나로 배려를 제시하고 있다. 배려에는 다른 플레이어의 플레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포함된다. 엊그제 막을 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CPKC 위민스 오픈에서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고진영과 메건 강(미국)의 선두 다툼이 치열하던 4라운드 12번홀(파3)이었다. 162야드의 이 홀에서 고진영은 첫 샷을 핀 2m 남짓 거리에 붙였다. 그러나 퍼트가 살짝 못 미쳐 한 타를 줄일 기회를 놓쳤다. 홀아웃을 위해 고진영이 스트로크를 하려던 순간 “고진영 고 진영 고 고고 진영 고”라는 응원 소리가 그린에 울려 퍼졌다. 고진영
  • [세종로의 아침] 범죄 말고 사람을 보자/이현정 세종취재본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범죄 말고 사람을 보자/이현정 세종취재본부 차장

    “2017년 서울 강서구에 특수학교를 설립하려고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지역민들 앞에 무릎까지 꿇었던 일 기억하세요? 정신장애인들은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대신 무릎 꿇어 줄 가족조차 없는 이들이 태반이에요.” 보건복지부 한 공무원의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수년간 복지 분야 기사를 쓰면서도 가장 취약한 이들이 중증 정신질환자일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의 고용률은 비장애인의 4분의1, 전체 장애인의 절반 수준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 가구 비율이 다른 장애 유형의 3배 이상이고 주거 환경도 열악하다. 게다가 무려 36개 법안이 정신장애인의 면허·자격 취득을 제한해 자립을 어렵게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정신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 적용을 받지 못해 이 법이 보장한 장애인 복지 정책에서도 소외돼 있었다. 치료받지 못한 일부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흉악범죄를 저지를 때마다 선한 정신장애인에게도 사회적 낙인이 찍혔지만 목소리를 낼 힘도, 목소리를 대변해 줄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였다. 장애인 공익광고는 수십 편이지만 정신장애인 공익광고는 본 적이 없다. 정신질환자는 아픈 사람이지 나쁜 이들
  • [세종로의 아침] ‘오펜하이머’와 절멸/임병선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오펜하이머’와 절멸/임병선 국제부 선임기자

    국제부 기자로서 ‘오펜하이머’는 보고 또 봐야 할 영화다. 736쪽의 원작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3시간으로 옮겨 손에 땀을 쥐며 보게 만든 크리스토퍼 놀런의 연출력이 대단했다. 복잡하고 모순적인 줄리어스 오펜하이머의 내면을 그리면서도 당대를 주름잡던 물리학자들, 정치인들, 군인들과의 관계를 촘촘하게 엮었다. 1940~50년대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를 이렇게 손에 잡힐 듯 전해준 영화가 또 있나 싶다. 배경을 정확히 알고 관람했어야 할 대목들이 적지 않았다. 그가 산스크리트어에 능통해 힌두교 경전에 나오는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를 되뇌며 첫 원자폭탄 실험을 산스크리트어 ‘트리니티’라 부른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의 내면을 정확히 읽어내기 힘들었다. 독일 과학자들이 핵분열을 통해 엄청난 에너지가 만들어진다는 원자폭탄의 원리를 파악하고 우라늄 농축 기술을 실험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그는 나치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모든 부담을 떠안는다. 그의 엄청난 추진력과 집중력에 힘입어 미국은 개발에 착수한 지 3년 만에 원자폭탄을 만들고 일본의 두 곳에 떨어뜨려 태평양전쟁을 끝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매진해야 한
  • [세종로의 아침] 유커의 귀환…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손원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유커의 귀환…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손원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중국 정부가 지난 10일 자국민의 한국 단체 관광을 허용했다. 2017년 사드 보복 조치 이후 6년 반 만의 일이다. 해외 출장 중에 이런 소식을 접했다. 동행한 관광업계 종사자 사이에서 중국 관광객(유커)의 유턴 소식은 줄곧 화제가 됐다. 유커의 귀환이 반길 일인 건 맞다. 한데 얼마나 반길 일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온도 차가 있어 보였다. 결론은 대체로 심드렁했다는 거다. ‘그래서 뭐?’ 정도라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이유는 이랬다. 첫째, ‘그들만의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은 면세점 등 유통업계와 화장품업계, 중국 자본의 여행업체 등이다. 관광산업이 거의 절멸 상태였던 코로나 시국에도 사실 이들은 이른바 ‘직구’를 통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었다. 여기에 이른바 ‘객단가’가 높은 단체관광객이 합세하면 수익은 더 늘어날 터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거둔 수익이 사회 곳곳에 골고루 흡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방문위원회가 단적인 예다. 애초 한국방문위가 출범할 때는 민간에서 돈을 대 관광산업을 활성화해 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기업들은 돈에 인색했다. 고린 동전 한 푼 내놓지 않았다. 관광객들에게서 갈고리로 돈을 쓸어 담을
  • [세종로의 아침] 88년 용띠 박인비와 신지애의 19번 홀/최병규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88년 용띠 박인비와 신지애의 19번 홀/최병규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1988년생 용띠 신지애는 올해 35세다. 2013년 2월 호주여자오픈 우승으로 11승을 기록한 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를 떠난 그는 지금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로 옮겨가 11년째 시즌을 보내는 중이다. 전남 함평골프고 때인 2005년을 시작으로 18년 동안 국내외에서 올린 승수는 65승이나 된다. 개척교회 목사의 딸로 태어난 그의 가족사는 그리 순탄치 않다. 어린 시절 이모 생일잔치에 가는 길에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두 동생은 뼈가 으스러지면서 1년을 병상에서 지내야 했다. 아버지 신제섭씨는 보험금을 맏딸의 골프에만 썼다. 신지애 골프의 자양분은 바로 가족의 희생이었다. 30대 중반은 여자 골프 선수로는 할머니 대접을 받는 나이다. 10대 후반 만개했다가 20대 중반에 시드는 반짝스타들이 즐비한 요즘엔 더욱 그렇다. 그런 그가 최근 L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AIG(브리티시) 여자오픈 3위에 올라 건재를 과시했다. 앞서 한 달 전에는 US여자오픈 공동 2위에 올랐다. 줄리 잉스터가 붙여준 ‘초크라인’(목수가 튕기는 먹선)이라는 별명이 살아난 듯 페어웨이 적중률은 85.7%를 찍었다. 4라운드에서만 4타를 줄인 그를 보고 후배
  • [세종로의 아침] 김은경과 달리 답하자면/이경주 정치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김은경과 달리 답하자면/이경주 정치부 차장

    파문이 큰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소위 ‘노인 폄하 발언’을 정리해 보자. 아이가 중학교 때 ‘왜 나이 든 사람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냐’고 물었단다. 또 ‘여명’(인생의 남은 기간)을 따져 비례적으로 투표를 하면 좋겠다고 했단다. 김 위원장은 여명투표제에 대해 민주주의 국가의 ‘1인 1표제’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합리적이지 않냐고 했다. 모자간의 사적인 대화라면 문제없다. 중학생 아이는 거친 역사를 통해 가장 차별 없는 형태의 ‘1인 1표제’가 구축됐음을 잘 모를 수 있다. 엄마는 아이의 어떤 상상력에도 맞장구를 칠 수 있다. 하지만 엄마는 민주당의 혁신안을 이끄는 중책에 있고, 청년 정치행사에서 이 대화를 공개했다. 청년과 노인을 가르는 해당 발언은 휘발성이 상당했다.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은 사과하러 온 김 위원장 앞에서 소위 ‘사진 따귀’를 때렸다. ‘시부모를 18년간 모셨다’는 김 위원장의 해명에 그의 시누이가 “거짓말”이라고 반박하면서 사생활 논란도 불거졌다. 김 위원장이 노인 폄하 발언을 한 그날, 그의 결론은 ‘청년의 목소리가 선거와 정치에 잘 반영돼야 한다’였다. 하지만 세대 간 편 가르기 발언의 후폭풍에 결론은 길을 잃었다. 아이
  • [세종로의 아침] 기술 탈취와 피해자 코스프레/이기철 산업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기술 탈취와 피해자 코스프레/이기철 산업부 선임기자

    첨단 기술로 중무장한 소위 ‘빅테크’의 기술 탐욕은 끝이 없다. 애플이 대표적이다. 2018년 혈액 산소 측정기를 만든 미국 마시모 설립자인 조 키아니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애플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죽음의 입맞춤”이라며 “처음에는 흥분하겠지만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긴다”고 말했다. 애플이 마시모 직원 30여명을 두 배의 급여로 빼갔고, 2020년 애플워치에 혈중 산소 농도를 측정하는 장치를 달아 시중에 내놓았다. 키아니처럼 애플에 당한 발명가 등이 20여명에 이른다. 2012년 이후 미국 특허심판위원회에 제기한 특허 무효 소송은 애플이 가장 많다는 통계도 있다. 대기업의 기술 욕심이 어디 애플뿐이랴. 혁신 기술은 기업의 생명줄이다. 그럴진대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에서 기술을 탈취하는 것은 강도 차원을 넘어 기업의 생명을 빼앗는 일이다. 혁신 기술 보호에 글로벌 대기업뿐 아니라 국가가 총력전을 펴는 연유다. 국내에서의 고질적인 기술 탈취 문제에 대해 정부와 집권당이 최근 당정협의회를 통해 손해배상액의 상한을 5배로 늘리는 방안을 깊이 있게 논의하기로 했다. 야당 의원들도 상한액을 5배 또는 10배로 늘리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거나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기술
  • [세종로의 아침] 사람의 아이들/이두걸 편집국 전국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사람의 아이들/이두걸 편집국 전국부 차장

    여름 하면 떠오르는 곳은 경북 봉화다. 하루 두 대 있는 버스를 놓치면 두 시간가량 산 넘고 물 건너야 읍내로 나갈 수 있던 산골짜기 마을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 종일 밭고랑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저녁 때면 일일 과외선생 노릇에 회의까지 마치고 나면 또다시 자정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 하지만 대학 시절 여름이면 농촌봉사활동으로 그곳을 찾았던 건 산골을 닮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갓 도축한 시뻘건 소고기 덩어리를 건네던 청년회장 형님의 손길이 눈에 밟혀서였으리라. 다만 모기는 추억 속에서 예외에 속한다. 초가집 숙소는 모기가 침입하고 서식하는 데 최적화된 공간이었다. 독한 모기향을 사방에 피워도 아침이면 옷을 입은 부분을 제외하고 온몸이 모기 물린 자국으로 뒤덮였다. 이번 잼버리에서 상경한 세계 각국 청소년들의 사진 중 가장 눈에 띈 건 바로 모기에 잔뜩 물린 종아리의 모습이었다. 찜통더위도 모자라 늪지 같은 야영장에서 밤마다 모기들에게 시달리느라 얼마나 괴로웠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4만여명의 잼버리 대원들이 우여곡절 끝에 새만금 야영장에서 나와 서울과 수도권, 충청 등에서 머물고 있다. 벌써부터 전북도와 잼버리 조직위, 행정안전부, 여성가족부
  • [세종로의 아침] ‘빛나는 굴복’… 거듭 사과한 제국/송한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빛나는 굴복’… 거듭 사과한 제국/송한수 국제부 선임기자

    40년 전 파릇파릇한 우리들의 청년 김두황(1960~1983)은 참으로 희한한 죽음을 맞았다. ‘특수학적변동자’ 신분으로 엮여 뜬금없이 전방 군부대에 입대한 지 석 달 만인 그해 6월, 야간매복 근무 중 머리가 잘린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되고 만다. 이른바 ‘녹화사업’에 불려가던 터다. 그러곤 줄곧 의문사로 남는다. 정부 진상규명은 도통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군 강제징집에서부터 몇몇 기관이 얽혔건만 어디에서도 한마디 사과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과연 “내가 한 일도 아닌데 왜”라는 인식에 묻혔기 때문인가. 요새 대한민국에 ‘사과’(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란 단어가 넘친다. 정치권에선 지겨울 판이다. 시답잖은 사과, 거짓 사과도 못 헤아린다. 최근 제주 4·3을 김일성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한 여당 국회의원 발언에 제주도당이 대신 나섰다. 씁쓸하다. 발언의 당사자를 빼돌리고, 그나마 중앙당을 떠나 사과한다니 그다지 믿을 구석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차라리 ‘세비 한솥밥’ 정계를 먹칠한 일이라 야권에서 사죄의 변을 내놨다면 어떨까. 제주도당을 탓하는 게 아니다. 여론이나 무언가에 밀려 “잘못했으니 다른 얘기나 하자”는 투라면 사안을 깎아내릴 심산
  • [세종로의 아침] 중국과의 교역에서 큰소리치려면/이제훈 산업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중국과의 교역에서 큰소리치려면/이제훈 산업부 전문기자

    한국과 중국이 1992년 수교한 뒤 줄곧 한국은 중간재 등을 수출해 무역흑자를 이뤘다. 2013년 대중국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무려 628억 달러로 ‘재주는 왕서방이 부리고 돈은 한국이 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후 대중국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꾸준히 감소해 2022년 12억 달러로 급감한 뒤 올해는 지난 7월까지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가 144억 달러에 달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대중 무역수지 적자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대중국 수출 부진의 원인을 우리 내부에서 찾았다. 싼 인건비를 따먹는 달콤함에 빠져 스스로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대체로 일본과 서구 선진국이 국민소득 2만 달러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제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일어났는데 우리는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 특수를 누리며 구조조정을 미룬 채 안일함을 보였다는 게 이 총재의 분석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지난달 13일 제주에서 열린 제주포럼에서 “큰 변화 없이 중국을 업어 타고 이익을 얻던 시절이 끝나고 있다”며 “중국이 경쟁자가 돼서 우리가 하던 것을 뺏어 가는 시대
  • [세종로의 아침] OTT 시대의 공영방송/안동환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OTT 시대의 공영방송/안동환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최근 넷플릭스 TV쇼 1위로 흥행했던 ‘피지컬: 100’을 기획 제작한 MBC PD가 방송사를 퇴사해 화제가 됐다. MBC가 제작비 100억원을 댄 넷플릭스에 지식재산권(IP)을 양도하고 챙긴 수익은 12억원 정도다. 드라마 제작비의 3분의1에 불과한 프로그램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한 선택은 IP도, 사람도 잃는 결과가 됐다. 지상파가 생존을 위해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힘을 빌린 사례는 국내 방송이 처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OTT는 현행 방송법상 방송이 아니며 법적 근거도 없다. 영상 유통 플랫폼이지만 시청자들은 방송으로 생각한다. 지난해 조사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 수용자 실태를 보면 연령층이 낮을수록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 OTT 이용률이 높았다. 올해 개국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BBC도 OTT의 공세 앞에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영국 정부가 2027년 이후 연간 159파운드(약 26만원)인 BBC 수신료를 폐지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공영방송 모델이 흔들리고 있다. 방송 소비가 유료 플랫폼 OTT로 재편되면서 BBC 수신료 회피율은 1995년 이후 처음으로 10%를 넘었다. BBC는 지난 3월 연간 회계보고서에서 작년
  • [세종로의 아침] 카르텔이란 무엇인가/유용하 문화체육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카르텔이란 무엇인가/유용하 문화체육부 차장

    올해 들어 ‘카르텔’이라는 단어가 유독 자주 들린다. 카르텔이라는 병균을 박멸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진 최고 존엄이 즐겨 사용하다 보니 관가와 언론계에서 툭하면 소환되는 용어다. 지난 7월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집행에도 ‘카르텔’이 개입돼 있다는 깜짝 발언이 나왔다. 카르텔 산불이 과학기술계까지 번지는 순간이었다. 언급이 나온 직후 과학기술계는 벌집을 쑤셔 놓은 형국이 됐다. 평소 알고 지내던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대학의 연구자들도 “R&D 분야 카르텔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혹시 아느냐”고 연락해 왔다. 말을 꺼낸 사람이 화두만 던졌을 뿐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니 듣는 사람들은 답답하기도 하고 황당할 수밖에 없다. 카르텔이란 무엇인가. 카르텔은 두루마리 문서를 뜻하는 라틴어 ‘카르타’에서 유래했다. 중세 유럽에서 적대국이나 경쟁 세력과 휴전협정을 맺을 때 남긴 문서가 카르타다. 영국 입헌군주제 기틀을 마련한 13세기 왕과 귀족의 협약 ‘마그나 카르타’가 유명하다. 산업화 이후 독일에서 기업 간 과도한 경쟁을 피하고 상호 협력한다는 의미로 카르타를 변형한 ‘카르텔’을 쓰기 시작했다. 공정 경쟁을 해야 할
  • [세종로의 아침] 국회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이민영 정치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국회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이민영 정치부 차장

    재난, 범죄 등 사건·사고가 벌어질 때 정당팀 기자들은 의안정보시스템을 찾는다. 관련 입법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21대 국회가 시작된 후 지난 5월까지 3년간 총 2만 94건의 법안이 발의됐으니 관련 법안이 없을 리 없다. 수해,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사망, 신림동 흉기 난동 등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마다 적어도 10여건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사회안전망에 관한 법안들의 공통점은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는 데 있다. 쟁점이 많은 법안이 여야 합의 없이 통과하는 일은 잦지만, 안전 관련 법안은 사건이 발생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던 하천법 개정안과 도시침수방지법 제정안이 대표적이다. 환노위는 지난 26일 환경법안심사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잇달아 열고 법안을 부랴부랴 통과시켰다. 27일 오전 법제사법위원회를 열고 오후 본회의에 상정하려는 계획이었지만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제정법인 만큼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법사위에는 앞서 환노위를 통과한 수해방지법이 3건 계류돼 있었다. 한국수자원공사법, 수계 물관리 및 주민지원 등에 관한 법(금강·낙동강·영산강 및 섬진강), 하천법 개정안이다. 그런데 26일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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