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고진영 고 진영 고 고고 진영 고”/홍지민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고진영 고 진영 고 고고 진영 고”/홍지민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홍지민 기자
홍지민 기자
입력 2023-09-01 01:36
수정 2023-09-01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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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민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홍지민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골프는 조용한 스포츠다. 선수들이 플레이할 때 숨을 죽여야 한다. 경기장이 떠나가라 함성을 내지르며 좋아하는 선수나 팀을 응원하고 때로는 상대 팀과 상대 선수들에게 야유를 퍼붓는 야구나 축구의 응원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골프 경기는 감질이 날 게 분명하다. 어떤 때는 너무 고요해 마치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관전(觀戰)이라기보다 관람(觀覽)이다. 그래서 골프 관람객들을 ‘갤러리’(gallery)라 부른다.

골프는 배려의 스포츠다. 270년 넘는 전통이 있는 골프 규칙은 플레이어 행동 기준의 하나로 배려를 제시하고 있다. 배려에는 다른 플레이어의 플레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포함된다.

엊그제 막을 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CPKC 위민스 오픈에서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고진영과 메건 강(미국)의 선두 다툼이 치열하던 4라운드 12번홀(파3)이었다. 162야드의 이 홀에서 고진영은 첫 샷을 핀 2m 남짓 거리에 붙였다. 그러나 퍼트가 살짝 못 미쳐 한 타를 줄일 기회를 놓쳤다. 홀아웃을 위해 고진영이 스트로크를 하려던 순간 “고진영 고 진영 고 고고 진영 고”라는 응원 소리가 그린에 울려 퍼졌다. 고진영은 살짝 그립을 고쳐 잡더니 플레이를 마무리했다.

방송 중계진은 “이렇게 많은 팬들이 고진영 선수를 응원하고 있다”면서 “정말 힘이 절로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고진영이 힘을 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골프에서 플레이가 끝나기도 전에 소리를 내는 것은 골프 에티켓에 어긋나는, 절대 금기시되는 행동이다. 골프는 매우 민감한 스포츠라 작은 소음 하나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CPKC 위민스 오픈이 끝난 그날 골프 관련 기자 간담회가 있었다. 새롭게 출범하는 OK금융그룹 읏맨 오픈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지난해까지는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이라는 이름으로 열렸던 대회다. 그런데 이날 간담회에서는 골프 에티켓이 돌발성 화두가 됐다.

주최 측은 갤러리와 함께 새로운 응원 문화를 선도해 나가겠다며 ‘읏뜸 그라운드’라는 이벤트 진행한다고 알렸다. 기업 광고가 주를 이뤘던 티잉 그라운드 광고 보드를 팬들에게 내줘 각자 좋아하는 골퍼를 응원하는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보드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많은 팬과 골프단의 큰 관심 속에 21개 중 16개가 판매됐다고 했다. 수익금 전액은 대한민국 골프 발전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부연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들을 보란 듯 응원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반영한 새로운 시도로 보였고, 수익금을 장학금으로 쓴다는 취지도 좋았지만 간담회에 참석한 기자들 사이에서는 냉담한 반응이 적지 않았다.

골프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스포츠인데 팬들을 경쟁시키는 이러한 시도가 자칫하면 잘못된 팬덤 문화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인기 있는 대회 중 하나인 피닉스오픈은 비교적 소란스러운 분위기에서 치러진다고 한다. 거대한 관람석에 둘러싸여 콜로세움이라 불리는 16번 홀(파3)은 맥주를 즐기며 고성과 야유를 쏟아 낼 수 있어 갤러리들에게 해방구 중의 해방구로 통한다.

스포츠의 근간이 팬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적극적으로 응원하며 직접 소통하고 싶어 하는 팬들의 욕망을 마냥 제한하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골프의 응원 문화도 갤러리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골프 경기의 정신을 지키는 한에서다.
2023-09-0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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