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 [세종로의 아침] 제2의 이만기·강호동을 위한 무대/홍지민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제2의 이만기·강호동을 위한 무대/홍지민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나에게 씨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모래판에 상대를 눕힌 뒤 사자후를 토해 내는 그런 모습은 아니다. 초등학생이었던 1980년대 초반, 그 시절 씨름은 야구나 축구에 버금가는 인기 스포츠였다. 아니, 더 인기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씨름 중계를 이유로 뉴스를 늦게 방영하거나, 아예 중간에 끊고 중계를 할 정도였으니까. 열혈 팬이 아니더라도 이만기, 이준희, 이봉걸, 강호동이 누구인지 당연히 알았다. 그때는 TV 채널이 사실상 2개이다 보니 명절 때 씨름 경기 시청을 거를래야 거를 수도 없었다. 그런데 내게 각인된 씨름 이미지는 프로팀이 8개에 달했던, 잘나가던 시절이 아니라 3개로 줄어들어 마지막 안간힘을 쥐어짜던 20년 뒤에 자리하고 있다. 2004년 11월 프로 씨름의 종말을 알린 LG투자증권 황소씨름단 해체 당시 한 천하장사가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농성하며 흘린 눈물, 2006년 9월 일본 사이타마 아레나에서 열린 종합격투기 프라이드 대회에서 혹독한 데뷔전을 치른 뒤 만난 또 다른 천하장사의 퉁퉁 부은 얼굴…. 체육부에서 근무하며 가까이서 지켜봤던, 나에겐 프로 씨름의 쇠락을 상징하는 그런 장면들이다. 이후 여러 부서를 돌며 오랫동안 멀어졌던 씨름
  • [세종로의 아침] ‘집단자살 국가’ 대한민국/윤창수 국제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집단자살 국가’ 대한민국/윤창수 국제부 차장

    우리는 어쩌다 세계에서 아이를 가장 적게 낳는 나라가 됐을까. 16년 동안 280조원이란 예산을 쏟아붓고도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란 처참한 현실은 3월이라 더욱 실감이 났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도 할 수 없을 만큼 입학생 숫자가 줄어든 유치원과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신생아가 연 60만명 이상 태어나던 시대의 학부모들은 새삼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예산을 써도 신생아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이제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낳고 키우지 않는 것이 젊은이들의 생존 전략이 아닌가 싶다. 저출산의 늪에서 허덕이는 것이 우리나라만은 아니다. 한국이 제일 심각하긴 하지만 1994년 뒤늦게서야 출산 장려 정책을 내놓은 일본부터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가 공통으로 인구 감소 현상을 겪고 있다.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서구에서는 없었던 일이다. 오직 통일 직후였던 1993~1994년 독일의 합계출산율만이 0.77명이었다. 동아시아에서만 유독 두드러지는 인구 감소의 원인을 유교 문화에서 찾은 논문이 2018년 대만에서 발표됐다. 대만 중앙연구원 학자가 쓴 논문은 가부장제와 학력주의로 대표되는 유교 문화가 가정에서의 여성의 역
  • [세종로의 아침] 신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임병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신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임병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텔레비전을 보며 이렇게 격렬한 감정의 회오리를 경험한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아내는 “저 인간, 한 대 치고 싶다”고 내뱉었다. 기자는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충동에 휩싸였다. 기독교복음선교회(JMS)의 정명석을 응징하겠다며 20여년을 쫓아다닌 김도형 단국대 교수의 말마따나 “사람××가 아니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 오리지널 ‘나는 신이다-신이 배신한 사람들’의 1~3편에 그려진 정명석 얘기를 본 이들의 경악스러운 반응이 언론에 연일 소개되고 있다. 물론 불편해 도저히 못 보겠다고 손을 내젓는 이들도 있다. 4편 오대양, 5~6편 아가동산, 7~8편 만민중앙교회까지 혹세무민의 노하우를 서로 배운 듯 공유하는 모습을 보며 허탈함과 무력감, 자괴감과 짜증이 밀려왔다. 심의와 자기검열로부터 자유로운 OTT 콘텐츠를 통해 뒤틀린 우리 민낯을 보는 일은 부끄럽기만 했다. 구역질 나는 성폭력이 자행되는 침실들과 욕실들, 32구의 시신이 뒤엉킨 오대양 공장의 천장, 신도들이 난입해 울부짖는 방송사 로비와 주조종실, 교주의 생가 등에 자리한 동산이니 궁전이니 하는 곳들, 신도들이 한복이나 유니폼을 차려입고 진행하는 퍼레이드와 축제, 운동회, 수영장
  • [세종로의 아침] ‘일본의 후회’에서 배워야 할 것/정서린 산업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일본의 후회’에서 배워야 할 것/정서린 산업부 차장

    미중 사이에 낀 반도체 기업들의 고난이 더 깊어지게 됐다. “어떤 기업에도 백지수표는 없다”는 단호한 천명과 함께 미국이 들이민 ‘빈틈없는 청구서’ 때문이다. 최근 미 상무부가 공개한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지급 조건을 들여다보면 초과 이익 공유, 미국과의 반도체 공동 연구 참여 의무화, 생산 시설 공개, 군사용 반도체 우선 공급 등 곳곳에 독소조항들이 포진해 있다. 기술이 시시각각 운명을 가르는 반도체 산업에서 첨단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과도한 기업 경영 개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보조금을 신청할 때 예상 수익을 제출하고 일정 기준을 넘어선 수익을 낼 경우 초과 이익을 환수하겠다는 조건에서는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거스르는 발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당장 미국에 공장을 깔아 놓거나 추진 중이던 기업들은 당혹감 속 손익계산에 비상이다. “차라리 보조금을 포기하는 게 낫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달러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의 말처럼 깨알같이 대가를 청구하는 보조금 지급 요건들은 예상을 한참 벗어난 수위이지만, 반도체 패권을 쥐려는 미국의 ‘메이드 인 USA’ 전략은 더 거세지지 감해지진 않을 거란 냉혹한
  • [세종로의 아침] 만약 히딩크가 다시 왔다면/최병규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만약 히딩크가 다시 왔다면/최병규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하지만 말릴 수도 없는 일이기도 하다. 거스 히딩크(77)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얘기다. 그의 이름 석 자는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이 끝나고 대표팀의 새 사령탑을 뽑을 때마다 뭇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현실성은 없지만 그만큼 히딩크 감독의 존재 자체가, 그리고 2002 한일월드컵이 상징하는 히딩크의 축구가 대한민국 국민들 머릿속에 워낙 깊이 각인돼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27일 74대 대한축구협회 성인대표팀 감독으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름을 올리면서 한국 축구를 이끌었거나 이끌 대표팀 감독은 모두 52명이 됐다. 임기별 횟수는 74차례지만 최소 2번, 최대 5번까지 임기를 다시 수행한 감독이 15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1994년 7월부터 1년 반 남짓 대표팀을 맡은 구소련 출신의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 이후 한국 축구대표팀을 이끌 9번째 ‘이방인’ 감독이 됐다. 한국 축구는 히딩크의 전과 후로 나뉜다. 하지만 축구대표팀 감독의 운명이 파란만장했던 건 예나 지금이나 같다. 광복 2년 뒤인 1947년 재건된 조선축구협회는 대표 선수 선발을 전담하는 ‘선수선발위원회’를 발족시켜 이듬해 런
  • [세종로의 아침] ‘18’과 ‘열여덟’은 다르다/송한수 신문국 에디터

    [세종로의 아침] ‘18’과 ‘열여덟’은 다르다/송한수 신문국 에디터

    겨울이 깊을 대로 깊어졌으니 곧 봄이다. 꽃샘바람 뒷심이 만만찮지만 말이다. 어기차게 우리들을 움직였던 계묘년도, 벌써 두 달을 줄달음하며 까불고 있다. 비단 흐르는 세월을 한탄하는 게 아니다. 너나없이 누구에게나 야속한 터 아닌가. 다만 스스로 되짚어야 할 게 있다. 자기반성 시간이다. 글을 많은 사람에게 내보이기란 늘 조심스럽다. 이미 활자로 나온 뒤에도 단어, 문장을 두고 머리를 쥐어뜯기 일쑤다. 끝내 어떻게 읽힐 것인가를 염두에 둬서다. 업무상 동료 기자나 외부 필진이 보낸 원고를 고쳐야 할 땐 골치를 앓는다. 제한된 지면에 분량을 맞추자면 더욱 그렇다. 곁들여 필자의 취지, 팩트를 살리려면 손을 대야 해서다. 그래서 중언부언 않고 맛깔 풍기면서도 적확하게 쓰는 이에겐 존경심이 가닿는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는 법이다. 남의 글 앞에서 자신을 돋을새김하곤 한다. 뜬금없이 도드라진 단어나 문장을 만나면 얼떨떨해진다. 맥락상 무관한데 굳이 넣었으면 어떤 배경에서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담아내고 싶은 주장이 그곳에 은밀하게 녹아들었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다. 애써 기다랗게 풀어놓은 이야기들을 한갓 겉치레 시늉으로 끌어내리고야 마는 셈이다
  • [세종로의 아침] 포스코와 꿀단지/이기철 산업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포스코와 꿀단지/이기철 산업부 선임기자

    ‘서울 존치냐, 포항 이전이냐.’ 포스코그룹의 지주회사인 포스코홀딩스가 최근 본점 위치 변경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작년 1월 포스코홀딩스가 신설되면서 정관은 본점 소재지를 서울로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곤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주총에서 ‘땅, 땅, 땅’ 했다. 하지만 포항 시민단체인 ‘포스코지주사 포항 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는 포항 이전을 줄곧 주장해 왔다. 지난 14일 버스 22대에 나눠 탄 포항시민들이 포스코홀딩스 본사와 서초경찰서 그리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올 들어 두 번째 천리길 원정 시위였다. 포항 시민단체의 주장엔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기업은 국토 균형발전 측면에서 지방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인구 감소와 산업 공동화로 소멸 직전 단계인 많은 지방자치단체는 기업 유치를 위해 각종 특혜의 당근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포스코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포항시민들의 아낌없는 헌신과 지원이 큰 힘이 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실 앞에서 시위를 벌인 데서 보듯 본점 이전 문제는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하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본점 주소지 이전에서 나아가 금융·대관·글로벌 업무 인력까지 포
  • [세종로의 아침] 당신은 어떤 질문을 갖고 있습니까/유용하 문화체육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당신은 어떤 질문을 갖고 있습니까/유용하 문화체육부 차장

    오랜만에 가족과 천년 고도 경주를 찾았다. 도시 전체가 문화유적이라고 할 만큼 가는 곳마다 문화재를 마주한다. 가족 각자가 보고 싶은 문화재도 다르다. 일단은 경주의 명소 황리단길과 가깝고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천문대인 첨성대에서 일정을 시작했다. 책 속 사진으로 본 것과 달리 서라벌 옛 궁터에 홀로 덩그러니 있는 모습에 아이들은 실망한 눈치였다. 그렇지만 첨성대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재미있는 상상과 함께 예상치 못한 질문이 쏟아졌다. 덕분에 홀로 갔을 때와 달리 꽤 재미있는 첨성대 관람이 됐다. 질문은 궁금한 점을 알기 위해 묻는 행위이다. 질문을 받는 사람도 질문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질문은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에도 중요하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면 항상 언급되는 장면이 있다. 2010년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장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줬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못한 채 긴 침묵을 지킨 망신스러운 모습이다. ‘축적의 시간’이란 키워드로 과학기술계에 반향을 일으킨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도전적 목표를 제시하지
  • [세종로의 아침] ‘50억원=1곽상도(1KSD)’에 담긴 의미/백민경 사회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50억원=1곽상도(1KSD)’에 담긴 의미/백민경 사회부 차장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이 받은 퇴직금 50억원을 뇌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에 비판 여론이 거세다. 온라인에는 ‘50억원=1곽상도(1KSD)’라고 불러야 한다는 글도 있다. “50억 뇌물을 무죄로 볼 만큼 ‘푼돈’으로 판단했으니 이제 그 푼돈을 부르는 화폐 기준을 바꿔야 한다”며 네티즌들이 법원의 소극적인 법리 적용을 비꼰 것이다. 그럼 법원은 왜 50억원 뇌물 의혹을 무죄로 판단했을까. 검찰이 내민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의 증거능력은 인정하되 그 내용에 포함된 당사자 진술의 신빙성은 낮다고 봤기 때문이다. ‘곽 전 의원 등에게 50억을 줘야 한다’라는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의 발언이 녹취록에 있었지만 다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허언’이라는 김씨의 주장이 사실일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김씨가 “병채(곽 전 의원의 아들) 아버지는 병채 통해서 돈 달라고 하지”라고 말한 부분도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 법원은 곽 전 의원이 병채씨에게 말한 내용을 병채씨가 김씨에게 말하고, 이 말을 정 회계사가 녹음한 ‘전문 진술’(남에게 들은 사실을 전하는 진술)이라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검찰이 항소심에서 유죄를 입증하려면 녹취록의 신빙성을 보강해
  • [세종로의 아침] 고려불상 판결을 보며/임병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고려불상 판결을 보며/임병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상식에서 벗어나는 판결을 보며 실망할 때가 적지 않다. 엊그제 한 정치인의 아들에게 건네진 50억원의 퇴직금을 뇌물로 볼 수 없다는 판결도 검찰의 부실 수사가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란 점을 감안해도 많은 이들이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일 대전고법 재판부(부장 박선준)가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섬의 사찰 간논지(觀音寺)에서 한국인 절도범들이 훔쳐 2012년 10월 국내에 들여온 고려불상의 소유권이 간논지에 있다는 뜻밖의 판결을 내렸다. 검찰과 법원이 법리란 좁은 울타리에 갇혀 얼마나 그릇된 판단을 내리는지 잘 드러난다. 그들에겐 600년을 돌아볼 안목이 없는 것일까? 이들 절도범을 의협심 넘쳐 왜구가 약탈해 간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 온 영웅으로 떠받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들은 값어치 나가는 불상을 국내에서 판매해 이득을 챙기려 했다. 검찰은 이들을 절도 혐의로 기소하면서 불상을 일본에 돌려주려 했다. 이 과정에서 서산 부석사는 이 불상이 왜구에게 약탈당한 문화재이니 자신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국가를 대리해 법무부, 다시 말해 검찰이 피고가 됐다. 1심 재판부는 2017년 1월 원고의 손을 들어 줬다. 검찰은 항소했다. 불
  • [세종로의 아침]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홍지민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홍지민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요즘이야 무엇을 골라 읽어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정도로 동화책, 어린이책이 넘쳐 나지만 과거에는 전집 하나로 끝내던 시절이 있었다. 이름하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여기에 위인전 세트도 곁들이고 전래동화집도 훑고 나면 그 시절 읽어야 할 책들은 다 읽은 느낌이었다. 삼국지 같은 중후장대한 서사도 전집 중 한 권으로 가뿐히 넘길 수 있었으니 얼마나 효율적이었는지 모른다. 물론, 몇 년 지나지 않아 열 권짜리 삼국지를 다시 읽어야 했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구 중심이 아닌 일본이나 북유럽 등의 동화를 만나게 된 것도 전집을 통해서였다. 러시아 작품들도 그때 만났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중에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꼽아 보자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있다. 가난한 구두수선공 가족과 추락한 천사가 그려 내는 다소 종교적이고, 다분히 철학적인 이야기는 어린 마음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야기를 쓴 톨스토이가 러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호라는 걸 조금 나중에야 느끼게 됐지만 말이다. 오는 24일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쟁이 발발한 지 벌써 1년이 된다. 문화 및 스포츠와 관련된 부서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그동안 전쟁의 여파로
  • [세종로의 아침] 벌써 1년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해협, 한반도/윤창수 국제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벌써 1년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해협, 한반도/윤창수 국제부 차장

    아무도 일어나리라 예상하지 않았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써 발발 1년이 돼 간다.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일주일이면 끝날 것 같다고 했던 전쟁이 장기전으로 흐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으로부터 최신 탱크와 전투기 등을 지원받아 영토 회복을 꾀하지만 러시아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전쟁 1년을 맞아 대대적인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전망도 쏟아져 자칫 핵무기 사용으로 치닫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패트리엇 방공 시스템과 M1 에이브럼스 전차를 지원하기로 하면서 러시아와 미국의 전쟁이 돼 가고 있다.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는 “미국의 의도는 러시아에 전략적 패배를 가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우크라이나전이 미국의 대리전임을 분명히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패트리엇 미사일 지원을 약속받으면서, 미 의회에서 했던 연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을 연상시킨다는 보도도 있었다. 미국을 참전시키려고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던 처칠은 결국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우크라이나전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대만해협을 다음 전쟁 후보지로 꼽는 전망이 줄을 잇고
  • [세종로의 아침] ‘중국 설’이라고 우긴다면…/임병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중국 설’이라고 우긴다면…/임병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계묘년 설 연휴를 보내는 우리 모두를 화나게 혹은 슬픔과 연민을 느끼게까지 만든 것이 느닷없는 ‘중국 설’ 댓글 공격이었다. 영국박물관, 미국 테마파크 디즈니랜드, 우리 아이돌그룹 멤버들까지 무차별 댓글 공격을 받았다. 그중 가장 경악스러운 댓글은 “한국은 남의 문화 훔치기를 가장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디즈니랜드 홈페이지에 올라온 “‘중국 설’이라고 표기하지 않으면 중국 어린이들이 상처받는다”는 댓글은 어이없는 헛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문화에 단일한 또는 일방만의 기원이 존재하므로 다른 이들이나 나라는 입도 뻥긋하면 안 된다는 일부 중국인들의 격정적인 인터뷰도 어처구니없긴 마찬가지였다. 중국인들이 그렇게 자신들의 것이라고 우기는 음력 역법(曆法)도 오랜 세월 여러 다른 문화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진 것이다.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때 중국만의 음력을 사용한 것은 맞지만 그 뒤 이슬람력의 영향도 받았고, 청나라 때는 서양 역법을 역산해 중국의 틀에 짜 맞춘 시헌력(時憲曆)을 쓰기도 했다. 중국, 한국, 베트남, 몽골 등에서 각기 설 풍습을 달리하는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미국과 유럽의 정부와 공공기관들도 예전에는 ‘중국 설’이라고 썼다가 편협하게 한
  • [세종로의 아침] 당신의 일은 안녕하신가요/정서린 산업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당신의 일은 안녕하신가요/정서린 산업부 차장

    누군가는 일의 의미를 잃고 노동 가치 하락에 실망하며 일자리를 떠난다. 누군가는 외부의 거대한 파고에 의해 일자리에서 밀려난다. 누군가는 받은 만큼만 일하고 ‘일은 삶이 아니다’ 선을 긋는다. 지금은 ‘일과 일터의 격변기’ 한복판이다. 지난해만 해도 미국을 중심으로 자발적 퇴사자들이 속출하는 ‘대퇴사 시대’가 세계적 화두가 됐다. 최근에는 구글 모회사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에서 인력을 대거 쳐내는 ‘대해고 사태’가 한창이다. 그 와중에 MZ세대 직원들 사이에서는 최소한의 업무만 하며 직장과 나의 삶을 분리하는 ‘조용한 사직’이 이어지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의 해고자와 퇴사자 숫자의 원초적인 나열, 더 나은 조건을 찾아 거듭되는 이직과 퇴직 열풍, 우수 인력을 붙들려는 기업들의 임금·복지 경쟁 등에 관심이 매몰된 사이 돌올하게 떠오르는 물음은 맨 뒤로 제쳐져 있던 ‘일이란 무엇인가’, ‘일의 의미란 무엇인가’다. 경기 침체, 실적 악화 등에 의지와 관계없이 해고된 이들이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떠올리는 것도, 번아웃이나 권태 등으로 직장을 떠난 이들이 개인의 성장을 탐구하면서도 엄습하는 막막감 속에 떠올리는 것도 이 물음이 아닐까. 일과
  • [세종로의 아침] 명동에 대하여/최병규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명동에 대하여/최병규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서울 중구 명동은 넓이 1㎢가 채 안 되는 작은 동네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경제와 종교·문화를 키운 터전이었다. 국립극장이 한가운데 버티고 있었고, 바로 앞에는 국내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건물로 유명했던 구 상업은행 본점 건물이 위용을 뽐냈다. 길 건너편 한국은행이 자리한 태평로2가동 일부 역시 법정동 명동이 거느렸으니 명동은 한국의 ‘금융 1번지’라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1980년대 이후로는 쇼핑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관광 1번지’의 위상을 곧추세웠다. 일본, 중국 등에서 온 해외 관광객들의 러시 덕에 명동은 ‘해가 지지 않는 동네’라고도 불렸다. 명동성당으로 이어지는 중앙통 입구는 물론 일제강점기 시절 혼마치로 불렸던 진고개, 옛 외환은행 본점 옆 을지로 입구, 가장 붐빈다는 퇴계로의 지하철 명동입구역 등 사방의 나들목은 언제나 인파로 넘쳐 났다. 북적거리는 명동은 누군가에게는 번잡함일 수 있겠지만 거기서 나고 자란 필자에겐 특별한 일도 아니다. 명동은 한 덩어리가 아니라 여러 조각으로 기억된다. 부모님은 유네스코회관 뒤편의 학사주점 골목에서 구멍가게를 했다. 가수 양희은이 송창식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돈을 받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불렀다는
  • [세종로의 아침] 어느 정치언쟁, 왜 서로 할퀴었나/송한수 신문국 에디터

    [세종로의 아침] 어느 정치언쟁, 왜 서로 할퀴었나/송한수 신문국 에디터

    하늘은 밝은데 억센 추위에 몸을 오그린다. 이런 날씨가 아픈 사람을 더 깊이 어두움으로 떠민다. 처지가 한층 도드라진다. 삶에 그다지 너른 형편이 아닌 서민에게야 오죽할 것인가. 겨우겨우 버티다 세상사 모두 그렇다는 체념과도 맞선다. 얼마 전 지인끼리 크게 말다툼을 벌였다고 한다. A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지는 ‘김만배 돈다발 잔치’를 도마에 올렸다. 먹고 죽으려 해도 만지지 못할 거액이 다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며 허공에 대고 묻는다. 그런데 출처를 놓고 B와 지독하게 얽힌 모양이다. 서로 주장을 굳히는 사이 마치 특정 정당을 대변하는 것으로 비쳐 파국에 닿았다. 서민 입장엔 망측한 일이라 화두로 삼았다는 게 A의 해명이었다. 어쨌든 이른바 언론인 낯을 가졌다면 국민의 존경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인데 외려 시중 놀림감, 우스갯거리이지 않은가. 그러고도 아직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요즈음 TV 리모컨을 따돌리며 “차라리 뉴스를 안 보고 안 듣겠다”고 정치판을 입길에 올리는 국민이 부쩍 불어난 듯하다. A와 B처럼 선의로 시작한 대화도 ‘소심한 보복’으로 번지기 쉽다. 김만배 사건이 정당과 어떤 인연을 맺더라도 국민 편에선 돈자랑을 지나칠 수 없다. 서
  • [세종로의 아침] 잿빛 경제와 장밋빛 초대장/이기철 산업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잿빛 경제와 장밋빛 초대장/이기철 산업부 선임기자

    한국 기업의 ‘맏형’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엊그제 내놓은 잠정실적에 산업계는 새해 벽두부터 충격에 빠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매출 300조원 첫 달성이라는 금자탑을 세웠지만 4분기 영업이익은 예상보다 훨씬 나쁜 4조 3000억원에 그쳐 그 빛이 바랬다. 영업이익은 8년 만의 최악이다. 통상 수치만 던져 주는 잠정실적에 대해 삼성전자가 설명자료까지 낸 것은 이례적이다. LG전자의 지난해 10~12월 영업이익은 655억원으로, 전년 동기의 90%의 영업이익이 사라졌다. 한국 반도체의 한 축인 SK하이닉스의 4분기 컨센서스를 보면 영업손실이 1조 1145억원으로,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이럴진대 하물며 중소기업들이야.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지난 분기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경제 전망은 온통 잿빛이다.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6개월 만에 무려 1.3% 포인트 낮춘 1.7%로 예상했다. 글로벌 고금리 지속,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 미국과 유럽연합의 신고립주의,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인 중국의 침체 등의 리스크가 겹친 까닭이다. 이런 글로벌 악재들은 수출로 먹고사
  • [세종로의 아침] 작심삼일과 꺾이는 마음/유용하 문화체육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작심삼일과 꺾이는 마음/유용하 문화체육부 차장

    계묘년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얼마 전 소싯적 친구들과 때늦은 새해 인사를 나눴다. 올해 계획을 물었더니 나이 50에 지키지도 못할 신년 계획 따위는 더이상 세우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답이 많았다. 그럼에도 계획을 세웠던 친구들이 있었다. 물론 예상대로 다들 패배감에 빠져 있었다. 한 친구가 “우리 중엔 ‘중꺾마’를 가진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해 모두 한바탕 웃었다. 지난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태극전사들이 강호 포르투갈을 꺾고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이라고 적힌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중꺾마는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있다. 승리를 위해 누군가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꺾이지 않는 강한 투지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신년 계획 지키는 것에까지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으레 거창한 신년 계획을 세운다. 게다가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굳건하다. 그렇지만 이맘때면 작심삼일이 책 속 사자성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듯 이런저런 핑계로 새해 계획은 폐기처분된 경우가 많다. 1월 1일 새해 벽두에
  • [세종로의 아침] 한동훈의 제시카법… 법의 엄정함을 보여 줄 때/백민경 사회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한동훈의 제시카법… 법의 엄정함을 보여 줄 때/백민경 사회부 차장

    전주지검 정읍지청장을 지낸 김우석 변호사가 사석에서 이런 사례를 들려준 적이 있다. 강원도에서 자영업을 하는 30대 A씨가 야구방망이로 동네 후배 B씨를 때렸는데 ‘법정 최저형’ 수준을 선고받았다고 했다. 고아로 자란 A씨는 폭행으로 실형을 살고 사회에 나온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때문에 집행유예도 불가했다. 야구방망이까지 들었으니 특수상해로 징역 1~1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재판부로부터 상당히 관대한 처분을 받았다. 사연이 있었다. A씨에겐 과거를 청산하고 그를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한 약혼녀 C씨가 있었다. 그런데 결혼을 앞두고 후배 B씨와 약혼녀 C씨 간 추문이 작은 마을에 퍼졌다. 약혼녀는 A씨에게 B씨가 과거에 자신을 강간하려 했던 일을 털어놨다. A씨 앞에서 B씨에게 연락해 추문에 대해 항의했는데 외려 B씨는 C씨를 희롱했다고 한다. 며칠간 고민하던 A씨는 B씨를 불러 약혼녀를 더이상 모욕하지 말라며 이 과정에서 야구방망이로 B씨 허벅지를 2~3회 내리쳤고 B씨는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B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A씨는 체포됐다. A씨는 끝까지 폭행 동기를 밝히지 않았고 결국 1심에서 1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약혼녀는
  • [세종로의 아침] 아직 토끼를 맞이하지 못한 당신에게/손원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아직 토끼를 맞이하지 못한 당신에게/손원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그리 달콤하지도 않은 시간이 빠르기는 엄청 빠르다. 벌써 2023년. 이를 토주오비(兔走烏飛)라고 해야 하나. 알기 쉽게 세월이 쏜살같다는 뜻인데, 어딘가 토끼해와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고백하자면 아직 토끼해를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겨우 사흘 실천하다 말 계획조차 갖지 못한 채 새해를 맞으려니 ‘현타’와 ‘멘붕’이 한꺼번에 오는 느낌이다. 최근 들은 말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건 연목토이(鳶目兎耳)다. 솔개의 눈에 토끼의 귀라는 뜻으로, 잘 보는 눈과 잘 듣는 귀를 일컫는다. 출전도 불분명하고 잘 쓰이지 않는 말인데, 아마 토끼해를 맞는 다짐 정도의 의미로 쓴 듯하다. 토끼는 작은 몸에 여러 장기를 갖췄다. 냉혹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다. 우선 번식력이 대단하다. 한 해 여러 번 새끼를 갖고, 한 번에 많은 새끼를 낳는다. 암컷이 복수의 자궁을 가진 덕이다. 튼튼한 뒷다리는 포식자에 대항할 수비형 무기다. 포식자의 눈에 띄면 뒷다리의 폭발적인 힘을 빌려 날쌔게 도망간다. 굴 세 개를 동시에 뚫어 천적을 따돌리는 지략도 가졌다. 이를 선인들은 ‘교토삼굴’이라 했다. 큰 귀도 비슷하다. 보이지 않는 포식자를 파악하는 데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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