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칼럼
  • [특파원 칼럼] 바이러스가 외국인만 공략하진 않는다/김진아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바이러스가 외국인만 공략하진 않는다/김진아 도쿄특파원

    지난해 9월 말 일본 입국 후 14일간의 격리를 끝내고 도쿄 신오쿠보 코리아타운에서 일본인 취재원과 저녁 자리를 가졌을 때 의도치 않게 민망했던 적이 있다. 식당 입구에서 습관적으로 큐알코드를 찍고 입장하려고 했는데 기계가 없었다. 개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도 입장할 수 있다는 건 그때 알았다. 이후 스타벅스 등 여러 곳에서 큐알코드를 찍으려 했다가 안 하기를 몇 번 반복했고, 이제는 제약 없이 식당에 들어가는 게 익숙해졌다. 간혹 입구에서 체온 측정과 손 소독을 요구하는 곳이 있지만 일부에 불과했다. 일본에는 ‘방역패스’가 없다. 백신 접종 증명을 요구하는 곳은 거의 없다. 일본살이 4개월 동안 꽤 여러 음식점을 가 봤지만 백신 접종 증명을 요구하는 곳은 딱 한 곳에 불과했다. 이달 초 아카사카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백신 접종 증명을 요구하기에 쿠브(COOV) 애플리케이션으로 2차 접종까지 마친 것을 보여 주니 오히려 식당 직원과 함께한 일본인들이 놀라워했다. 앱으로 깔끔하게 백신 접종 증명이 가능하냐에 대해 감동을 받은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판 백신 증명 앱이 지난해 말부터 운용됐지만 그 일본인의 손에는 병원에서 종이로 발급한 백신 접종 증명
  • [진경호 칼럼] 대선 담론, 정치세력 교체다/수석논설위원

    [진경호 칼럼] 대선 담론, 정치세력 교체다/수석논설위원

    20대 대통령 선거를 두고 소설가 장강명은 “우리는, 그냥 다 시시해졌다”고 했다. 명색이 대선인데 시대를 관통하는 담론이 없다는 얘기다. 그의 탄식처럼 40일 남은 대선에 담론 따윈 없다. 하다못해 이명박의 한반도 대운하, 박근혜의 경제 민주화 같은 대형 공약도 없다. 비전과 공약에 관한 한 이재명과 윤석열, 앞서가는 두 후보는 낮은 데로 임하기 바쁘다. 탈모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건강보험 적용…” 운운하며 옆구리를 슬쩍 찌르는가 하면 여기 가선 “둘레길 만들겠다”, 저기 가선 “주차장 짓겠다”고 한다. “구의원 선거 나왔냐”는 조롱, 개의치 않는다. 입 발린 소리에 여념이 없다 보니 공약도 기꺼이 나눠 쓴다. 이들의 공약(共約)을 꼼꼼히 세어 본 한 매체는 그 수가 열여섯이라고 전했다. ‘병사월급 200만원’, ‘암호화폐 수익 과세 5000만원부터’ 등등. 누가 먼저 내놨든 상관없다. 받고 더블~! 공약에 관한 한 둘은 이미 원팀이다. 담론의 실종과 초록동색 도토리 공약의 약진…. 20대 대선, 참 저렴해 보인다. 그러나 한꺼풀 걷어 내면 그런 소리, 쉽게 할 일이 아니겠다. 무엇보다 정치적 변방이던 2030세대가 역사상 처음으로 표심을 주도하는 선거라는
  •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월요일이 사라졌다/전곡선사박물관장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월요일이 사라졌다/전곡선사박물관장

    잠시나마 뭔가 기대를 하셨을지도 모를 직장인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월요일이 사라졌다’는 유전자 조작 농작물의 부작용으로 쌍둥이가 늘어나 산아제한정책을 강력히 시행하는 미래 사회에서 허가받지 않고 태어난 일곱 쌍둥이 중 첫째인 ‘월요일’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펼쳐지는 SF영화 제목이다. 유전자 조작 농작물을 재배할 수밖에 없게 된 이유는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였지만 그 결과는 허가를 받아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개인의 삶이 철저히 부정되고 자유가 억압된 감시국가의 탄생이었다. 이기심으로 가득 찬 무책임한 정치인들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다. 이 영화에서는 거리를 꽉 메운 엄청난 인파가 등장한다. 인구 폭발로 인해 어깨를 맞대고 걸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이 부속품처럼 바삐 움직이는 모습은 암울한 미래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와는 반대로 바이러스로 인류가 멸종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외로운 생존자가 등장하는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아무도 없는 텅 빈 대도시 거리 풍경은 또 다른 공포를 준다. 인류의 진화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사건은 바로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이다. 네안데르탈인이 왜 멸종했는지에 대한 질문과 그 해답을 찾는 노력은 여
  • [최광숙 칼럼] 디지털시대 역행하는 과기부 ‘한 지붕 두 가족’/대기자

    [최광숙 칼럼] 디지털시대 역행하는 과기부 ‘한 지붕 두 가족’/대기자

    2018년 LG유플러스가 5세대(5G) 스마트폰 장비로 중국 화웨이 제품을 쓰겠다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에 허가를 신청했을 때 주의 깊게 봤다. 필자는 화웨이 제품을 단순히 통신 장비로 보지 않고, 향후 이 사안은 정치·외교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년 뒤 2019년 총리실을 출입할 때 이낙연 당시 총리와 저녁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화웨이 장비 허가와 관련해 “정부가 긴 호흡으로 정책을 폈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그러면서 미중 갈등의 역사적 배경과 중국의 원대한 계획이 무엇인지를 쓴 책 ‘백년의 마라톤’을 권했다. 이후 2020년 미국 의회가 화웨이의 5G 장비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미군을 빼겠다는 등 동맹국에 화웨이 배제를 요구했다. 중국 장비를 통해 각국의 기밀이 유출된다고 본 것이다. 영국 등은 동참했지만 과기부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발뺌했다. 기업이야 가성비를 이유로 화웨이를 선택했지만 안보·외교까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정부의 책무다. 이명박 정부 때 공중분해됐던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가 합쳐진 과기부는 문재인 정부의 상징적인 부처다. 정부는 출범 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두는 등 ‘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나일강의 죽음’과 아스완/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나일강의 죽음’과 아스완/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950㎞ 떨어진 곳에는 아스완이라는 도시가 있다. 이곳이 고대 이집트의 남쪽 경계였다. 이 이남은 누비아라는 지역이다. 누비아는 이집트와는 문화적으로 분명하게 구별되는 공간이었고, 누비아인들의 겉모습도 이집트인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황금의 주요한 산지인 데다 이집트에서 위신재로 소비되던 상아나 흑단, 동물 가죽 등이 아프리카 내륙으로부터 이곳을 통해 이집트로 들어왔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누비아를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 결과 아스완에는 교역을 위한 시장이 형성되게 됐고, 이런 지역적 특수성은 지명에도 잘 남아 있다. 아스완이라는 지명은 고대 이집트어인 스웨네트(swenett)에서 유래하는 것인데, 이 스웨네트라는 단어의 뜻이 ‘무역’이다. 물론 이집트인들에게 누비아인들은 침입을 막아야 할 이민족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스완은 중요한 군사적 거점으로도 여겨졌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요새 유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스완에는 1899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호텔이 하나 있다. 바로 올드 캐터랙트 호텔(Old Cataract Hotel)이다. 서구의 부유층들을 위해 세워진 이 호텔에는 지난 100여년 동안 수많은 유명 인
  • [마감 후] 남을 통해 돌아보라/정서린 산업부 기자

    [마감 후] 남을 통해 돌아보라/정서린 산업부 기자

    2019년 3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이변이 생겼다. 조양호 당시 한진그룹 회장이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반대로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한 것. 1999년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지 20년 만에 경영권을 잃게 된 조 회장의 운명을 가른 건 2.5% 남짓의 지분 차이였다. 대기업 총수 일가가 주총 이사회에서 밀려난 첫 사례이자 회사에 손해를 끼친 총수는 주주들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 움직임을 압축하는 장면이었다. 국민연금이 2018년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들이 ‘집사’(steward)처럼 고객들이 맡긴 돈을 자기 재산처럼 충실히 관리해야 한다는 지침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금융회사의 부실에 이들의 지배구조를 방관한 기관투자자의 책임도 있다는 자성에서 나온 것으로 영국, 캐나다, 일본 등 세계 주요 자본시장에서 잇따라 도입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도 투자 기업에 보내는 서한에서 “우리가 관리하는 돈은 교사, 소방관, 사업가 등 수많은 개인과 연금 수혜자들을 위한 퇴직금이다. 고객과 투자 기업의 연결고리로 우리는 고객들을 옹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 [2030 세대] 개한테 물렸다/임명묵 작가

    [2030 세대] 개한테 물렸다/임명묵 작가

    정말 우연한 계기로 새끼 강아지가 우리의 가족이 되면서 우리 집은 사실상 구원받았다. 강아지는 가족의 삶을 모두 바꾸어 놓았다. 가족끼리 더 자주 웃게 되었고, 바깥 활동이 늘면서 부모님의 건강도 좋아졌다. 가족끼리 서로 싸우게 될 때도 해맑게 웃고 있는 강아지를 보면 사람끼리의 앙금도 풀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강아지, 아니 어엿한 성견이 된 개가 나를 물었을 때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흡사 한 마리의 맹수가 사람을 사냥하는 기세로 몰아치며 내 팔을 물어뜯는 것 같았다. 그때 느낀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두운 시골의 밤에서 번뜩이는 안광, 내 살 속으로 이빨이 파고드는 느낌, 시키지도 않았는데 터져 나온 비명, 간신히 뗐나 싶더니 번개처럼 달려들어 또다시 반대쪽 팔을 물었을 때의 당혹감, 방으로 도망쳐 바닥에 피를 쏟을 때 다가온 이상한 안도감과 현기증. 나보다 더 놀란 어머니를 진정시키며 수건이나 좀 가져다 달라고 말할 때는 이 모든 일이 뭔가 비현실적인 것 같다는 붕 뜬 느낌도 들었다. 위급한 상황이 다 지나가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며 나는 이 사건을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저 때 내가 느낀,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
  • [이종수의 헌법 너머] 당내 민주주의와 위성정당/연세대 로스쿨 교수

    [이종수의 헌법 너머] 당내 민주주의와 위성정당/연세대 로스쿨 교수

    2020년 국회의원 선거 직전에 급조된 이른바 ‘비례용 위성정당’의 후보자 추천과 관련해 한 시민단체가 낸 선거무효 소송에서 대법원은 이들 정당의 후보자 공천이 위법하지 않다며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는 판결을 지난주 내렸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어렵사리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선거법 개정이 있었고, 이에 거대 양당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례용 정당을 따로 만들었다. 국민이 아니라 사실상 정당이 만든 정당이다. 그래서 흔히들 위성정당이라고 부르지만 ‘클론정당’(clone party)에 더 가깝다. 정당법은 제2조에 정당이 “국민의 자발적 조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개정된 선거법은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이 당내 민주적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점과 함께 관련 증빙서류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해당 정당의 후보자 등록은 무효가 된다. 특히나 위성정당으로 만들어진 미래한국당의 후보자 추천 논란은 언론 보도를 통해 소상하게 알려졌다. 당내 절차를 거쳐 작성된 명부를 모당(母黨)의 대표가 거부하고서는 미래한국당의 당대표와 집행부가 하루아침에 바뀌고, 후보자 명부가 다시 작성되는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이 정도면 후보자 추천에서 형식적으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왜 설날에는 떡국을 먹을까/정종수 전 국립고궁박물관장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왜 설날에는 떡국을 먹을까/정종수 전 국립고궁박물관장

    며칠 있으면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다. 설날은 명절 중에서도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이며, 해를 가르는 기점의 날로, 원단ㆍ정초ㆍ세수(歲首)ㆍ달도ㆍ연시라고 했다. 다른 어느 날보다 중요한 날로 여겨 근신하고 경거망동을 삼가 일 년을 바르게 지내자는 뜻을 담은 신일(愼日)이라는 말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설의 역사는 신라시대까지 올라간다. 7세기경에 나온 중국 역사서 ‘수서’와 ‘당서’의 “신라는 매년 정월 원단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여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했다”는 기록은 설날 풍속을 잘 보여 준다. 떡국은 설에 먹는 대표적인 절식이다. 설날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구분 없이 설빔으로 갈아입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며 세찬으로 떡국을 먹는다. 떡국으로 차례를 지낸다고 해 설 차례를 ‘떡국차례’라고 하고, 설날 떡국을 먹어야 비로소 한 살 더 먹는다고까지 했다. 언제부터 설에 떡국 먹는 풍속이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1819년 서울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김매순의 ‘열양세시기’와 1849년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에 떡국은 설 차례와 세찬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으로 시장에서 팔기까지 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볼
  • [데스크 시각] 국가수사본부는 진짜 ‘한국판 FBI’인가/이제훈 사회부장

    [데스크 시각] 국가수사본부는 진짜 ‘한국판 FBI’인가/이제훈 사회부장

    미국 대선을 불과 11일 앞둔 2016년 10월 28일 연방수사국(FBI)은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이메일 스캔들’을 재수사하기로 결정했다. 이메일 스캔들은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을 사용해 국가 기밀을 주고받았다는 의혹을 말하는 것으로 클린턴의 대선 가도에 치명상을 가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클린턴 후보 측은 FBI가 선거에 개입하는 것 아니냐며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을 맹비난했다. 반대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측은 수사기관답게 잘하고 있다며 치켜세웠다. 대선이 끝나고 트럼프가 취임한 지 2개월이 지난 2017년 3월 이번에는 코미 국장이 트럼프 후보 대선 캠프와 러시아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공모했는지 수사하겠다고 말해 트럼프 전 대통령 진영을 뒤집어 놨다. 클린턴 후보를 간신히 꺾고 대통령이 된 마당에 대선의 정통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FBI의 수사에 트럼프는 그해 5월 코미를 전격 해고했다. 장황하게 코미 국장 얘기를 꺼낸 이유는 출범 1년여를 맞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때문이다. ‘한국판 FBI’를 지향한다는 국수본이 과연 FBI를 거론할 만큼 자신의 위상과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무지의 민주주의/오길영 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무지의 민주주의/오길영 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SF영화에 한 획을 그은 ‘매트릭스’를 종종 비평 수업에서 다룬다. 여러 흥미로운 주제가 있다. 예컨대 윤리의 기준은 무엇인가? 영화에는 진실의 길을 택했다가 환멸감에 빠져 동료를 해친 사이퍼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무지가 축복이다.” 이런 주장에 동의할지는 각자의 몫이고 무지의 길을 택하는 것도 자유다. 그러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남들의 삶을 훼손할 수는 없다. 사이퍼의 잘못은 거기에 있다. 사실이나 진실도 부정되고, 옳아서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기 때문에 옳다고 주장하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다. 그렇다고 윤리의 기준이 달라질 수는 없다. 삶의 주체로서 ‘내’ 인생이 소중하면 또 다른 주체인 다른 사람의 인생도 그에게는 중요하다.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도 이것과 관련된다. 자유민주주의는 굴곡진 한국 현대사에서 자주 오해된 개념이다. 자유주의(liberalism)의 고갱이를 납작하게 해석한 결과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한다. 거기에는 민주공화국의 핵심이고 헌법에도 보장된 사상과 언론의 자유도 포함된다. 동시에 누군가의 말을 자유롭게 반박하고 반대하고 비판할 자유도 인정한다. 자유민주주의는 그렇게 사상, 말
  • [세종로의 아침] 쪼개기 상장 유혹과 노림수/이기철 산업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쪼개기 상장 유혹과 노림수/이기철 산업부 선임기자

    새해 벽두부터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이 한국 자본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국내외 기관들이 수요 예측에서 천문학적인 ‘1경 5203조원’을 써내면서 흥행 분위기를 잡았다. 청약 증거금은 공모액 12조 7500억원의 9배인 114조 6000억원이 몰렸다. 흥행 바람잡이 증권사들 역시 수수료 892억원을 챙기는 돈벼락을 맞았다. 국내 기업공개(IPO) 사상 최대 규모다. LG엔솔의 화려한 데뷔와는 달리 모회사인 LG화학의 주가는 초라하다. 한때 70조원이 넘던 LG화학 시가총액은 50조원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분할 회사인 LG엔솔의 공모액 기준 시총은 70조원에 이른다. 지난 21일 종가 기준으로 LG화학의 주가는 약 70만원으로, 52주 최고가가 100만원을 넘긴 것과 비교하면 30%가 빠졌다. 잔칫집이 된 LG엔솔과 달리 LG화학은 상갓집 분위기다. LG그룹 지주사는 대주주들이 4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회사 LG화학과 물적 분할된 손자회사 LG엔솔을 지배한다. LG엔솔 직원들이 약 820만주를 소유하지만 그룹 총수 구광모 회장은 단 1주도 없이 지배구조의 정점에 섰다. LG엔솔은 대박을 쳤지만 LG그룹엔 달갑잖은 시선이 쏟아진다. LG화학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맨발/박현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맨발/박현

    맨발/박현 길을 걸을 땐 마땅히 맨발이어야 한다 발바닥을 뚫고 척수에 다다른 뾰족한 미끄러운 둥근 끈적끈적한 생의 감각을 느끼기 위해 땅의 거죽이 따뜻한지 거친지 햇살로 데워진 웅덩이 물이 간지러운지 사금파리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양말에 가려진 발가락 구두로 무장한 발바닥으론 느낄 수 없으니 맨발로 걸을 일이다 조금 부끄럽지만 씩씩하게 걸으면 차갑다 시리다 쓰라리다 따뜻하다 부드럽다 매끄럽다 잊지 말아야 할 인간의 예의 인간의 감정이 맨발을 타고 오른다 산티니케탄은 내가 살았던 인도의 대학촌 마을입니다. 아침 햇살이 수백 년 묵은 벵갈 보리수나무 숲으로 쏟아지면 숲은 햇살이 빚어내는 스펙트럼으로 장관이 됩니다. 빨강 보라 초록 분홍 색색의 햇살들이 꽃 속에서 춤을 출 때 한 여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숲길을 지나갑니다. 하얀 맨발로 페달을 밟는군요. 여학생은 브라만이었고 미술대학 재학 중이었지요. 여학생이 맨발로 캠퍼스를 걷는 모습, 어떤 인상파의 그림보다 인상적이었지요. 가끔 나도 맨발로 캠퍼스를 걸었습니다. 풀잎들 모래알들이 속삭이는군요. 삶이란 직접 느끼는 거야. 느끼지 않고서는 따스함도 쓸쓸함도 어떤 미지의 꿈도 만날 수 없어. 구두를 벗으면
  • [마감 후] 겨우, 10년차/신융아 사회부 기자

    [마감 후] 겨우, 10년차/신융아 사회부 기자

    마감 후, 노트북을 다시 연다. 오늘 나간 기사의 반응을 쓱 훑어본다. 이슈를 따라 가볍게 썼는데 포털에서 반응이 많으면 내심 좋다. 반면 추운 날씨 속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때때로 눈총을 받아 가며 어렵사리 취재한 기사에 반응이 없으면 영 허탈하다. 발로 뛴 기사는 진솔하고 깊이가 있지만 그런 기사가 반드시 포털에서 인기가 많은 건 아니다. 올해 새로 생긴 중견 기자 칼럼을 쓰게 되면서 ‘빼박’ 10년차가 돼 버린 사실을 깨달았다. “저는 중견 기자가 아닙니다”라고 우겨 봤지만 후배들에게 수습 ‘하리꼬미’(경찰서에서 숙식하며 취재하는 기자들 은어) 시절의 흑역사를 마치 ‘이게 기자야’라는 느낌으로 늘어놓거나 ‘너희는 김영란법 이전을 모르지?’라고 말한 뒤엔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대가 조금 움직였음을. 지난 10년간 언론계에도 변화가 있었다. ‘나 때만 해도’ 수습 기간 중 3~4개월은 경찰서에서 숙식을 하면서 밤새 경찰서와 지구대를 돌며 취재와 보고를 반복했다. 집에는 일주일에 한 번 갈 수 있었고 잠은 두세 시간 숙직실 같은 곳에서 타 언론사 수습기자들과 섞여 쪽잠을 잤다. 그게 하리꼬미다. 그런 혹독한 과정을 거치면서 기사 쓰는 능력이 획기적
  • [전의찬의 탄소중립 특강(2)] 온실가스는 죄가 없습니다만/탄소중립위원회 기후변화위원장

    [전의찬의 탄소중립 특강(2)] 온실가스는 죄가 없습니다만/탄소중립위원회 기후변화위원장

    온실이나 비닐하우스 안은 늘 바깥보다 덥다. 유리와 비닐이 열(적외선)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막기 때문이다. 이 온실효과 덕에 우리는 한겨울에도 맛있는 딸기를 먹을 수 있다. 지구에 이런 온실효과가 없다면 평균 지구 표면 온도는 지금의 15도가 아니라 영하 18도가 됐을 거라고 한다. 대기 중에 온실가스가 거의 없는 화성의 대기 온도가 영하 50도이고, 대기권이 거의 온실가스로 채워진 목성의 대기 온도가 420도인 걸 보면 온실효과는 생명에게 꼭 필요한 것인 셈이다.  대기 중에 온실효과를 갖는 기체는 사실 많지만 유엔기후변화협약은 지구 온난화에 영향이 큰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수소불화탄소(HFC), 과불화탄소(PFC), 육불화황(SF6) 등 6가지를 ‘온실가스’로 지정했다. 양으로 보면 전체 온실가스의 91%가 이산화탄소이고 메탄이 4%, 아산화질소 2%, 불소계 화합물이 3%다. 이렇게 양이 월등히 많다 보니 이산화탄소가 온실가스의 대명사가 됐고 뭉뚱그려 ‘탄소’라는 약칭으로 부른다. 지구온난화의 정도는 이 온실가스에 따라 달라진다. 일례로 메탄은 같은 양이라도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이산화탄소보다 21배나 크
  • OTT 등장으로 미디어 업계 빅뱅… ‘세 갈래’ 쪼개진 부처 통폐합 필요

    OTT 등장으로 미디어 업계 빅뱅… ‘세 갈래’ 쪼개진 부처 통폐합 필요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3개 부처로 쪼개진 미디어 부처의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방송 정책과 규제가 나눠진 데 따른 부처 간 갈등으로 인한 비효율과 혼란을 막고,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발을 맞추기 위해 부처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킨 드라마 중 하나는 세계 최강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인 넷플릭스가 만든 ‘오징어 게임’이다. 과거 드라마는 공중파 TV를 통해 특정 시간대에만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핸드폰 등 인터넷만 연결되면 볼 수 있게 되면서 수요가 폭발했다. 방송, 통신, 인터넷 융합으로 미디어 시장에 ‘빅뱅’이 일어나고 있다. 공중파 등 전통적인 방송사업자 중심에서 글로벌 플랫폼과 OTT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플랫폼에 양질의 콘텐츠를 장착해 국경을 넘나드는 OTT의 위력 앞에 전통적인 미디어는 무력해지고 있다. 우리 국민 3명 중 2명이 OTT를 이용해 기존 방송계를 위협할 정도다. 하지만 우리의 준비 태세는 초라하다. ●미디어 업계는 거대한 지각변동 미디어 업계는 거대한 지각변동을 겪고
  • [데스크 시각] 사악해지지 말자/박상숙 부국장 겸 산업부장

    [데스크 시각] 사악해지지 말자/박상숙 부국장 겸 산업부장

    강도귀족(Robber Baron). 남북전쟁 후 미국 재건기에 탄생한 악덕 자본가를 일컫는 말이다. 원래 자신의 영지를 지나는 서민들에게 통행세를 뜯어낸 중세 귀족을 경멸하는 표현인데 약탈적 자본 축적으로 대공황을 초래한 부자들에게 붙여졌다. 철강, 석유, 철도, 금융계를 장악한 카네기, 록펠러, 밴더빌트, JP 모건 등이 현대판 강도귀족들이다. 외관은 신사지만 독점·담합, 저임금 착취, 주가 조작, 사기 등 물불을 가리지 않고 부를 쌓았다. 경쟁자와 노동자를 탄압하려고 강도처럼 총포를 동원하는 짓까지 했다. 이들의 악행 덕분(!)에 독점을 금지하는 셔먼법이 만들어져서 그나마 다행이랄까. 한 가지 더. 나중에 깨달음을 얻어 자선재단을 만들고 대학, 도서관, 박물관을 세우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기틀을 놓은 공로도 있다. 하지만 악당의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1990년대 인터넷·벤처붐으로 탄생한 실리콘밸리의 ‘아웃라이어’ 창업자들에게서 강도귀족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우월한 시장 지배력과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독점과 갑질을 일삼은 경영 행태는 100여년 전과 판박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페이스북(현
  • [황성기 칼럼] ‘대깨~’ 아닌 유권자를 위해/논설실장

    [황성기 칼럼] ‘대깨~’ 아닌 유권자를 위해/논설실장

    대통령 선거가 3자 구도로 굳어졌다. 다시 대선판으로 돌아온 심상정을 넣으면 2강 1중 1약이다. 윤석열의 아마추어리즘이 역설적으로 판을 키웠다. 바닥의 안철수를 소환해 비호감 레이스이던 대선에 활력을 넣었다. 냉소적이던 유권자를 선거에 한 발짝 다가서게도 했다. 정권교체를 내세운 윤석열과 안철수의 합종연횡은 설 연휴 최고의 화젯거리다. 연휴를 보내고 바닥 민심을 확인한 두 진영의 단일화 혹은 연합 시도가 대선판을 흔들 것이다. 윤과 안의 단일화 시나리오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그중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같은 화학적 결합이 최상위다. 정치 9단, 10단이던 두 김. 그렇지만 정치 기반은 정반대인 두 지역과 세력의 연합이라는 한국 정치사에 유일무이라 여겨졌던 ‘짝짓기’가 재현된다면 최근 여론조사 같은 단일화 결과에 다가선다. 정치 경력 6개월과 10년짜리 정치인이 과거의 정치 고수 뒤를 따를 수 있을까. 하지만 흉내를 못 낸다면 ‘정권교체’는 5년 뒤를 기약해야 한다. 이재명은 이들 연합을 무산시켜야 정권재창출 혹은 ‘정권 내 정권교체’를 내다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3개월여 남았다. 5년 성적을 매겨 보지만 후한 점수를 주긴 어렵다. 20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비극에 눈감지 않기/미술평론가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비극에 눈감지 않기/미술평론가

    에게해 북동쪽의 레스보스섬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다. 올리브나무와 해송이 구릉과 평지를 뒤덮고,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다. 기원전 7세기 여성 시인 사포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사포의 시에는 여성끼리의 애정을 묘사한 대목이 있어서 레스보스는 여성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말인 레즈비언의 어원이 됐다. 로런스 알마타데마는 우리를 레스보스섬으로 데려간다. 해송 사이로 짙푸른 바다가 보이는 대리석 테라스에서 시인 알카이오스가 키타라를 연주한다. 사포는 탁자에 턱을 괸 채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앞에는 알카이오스가 연주를 마치면 씌워 줄 월계관이 놓여 있다. 주위에는 사포를 따르는 젊은 여성과 친구들이 있다. 미풍이 살랑거리고, 키타라의 선율이 들리는 듯하다. 이처럼 낙원으로 묘사된 레스보스에서 오늘날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15년 레스보스를 포함해 소아시아에 인접한 그리스의 섬 다섯 개를 ‘핫스폿’이라는 난민 수용 장소로 지정했다.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수만 명이 전쟁, 고문, 국가 붕괴 사태를 피해 가장 가까운 유럽인 그리스 해안으로 몰려든다. 난민들은 이곳을 거쳐 동유럽이나
  • [특파원 칼럼] 이건희 ‘베이징 발언’과 정용진 ‘멸공 발언’/류지영 베이징특파원

    [특파원 칼럼] 이건희 ‘베이징 발언’과 정용진 ‘멸공 발언’/류지영 베이징특파원

    지금은 고인이 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53세였던 1995년 4월. 중국 베이징에서 가진 특파원 간담회에서 “한국의 정치는 4류이고 행정과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고 일갈했다.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는 ‘베이징 발언’이다. 이 회장의 지적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대통령과 정·관계 지도자들의 그릇이 너무 작아 그의 쓴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다. 국회의원들도 여야 할 것 없이 “감히 기업가 따위가 우리를 지적하냐”고 격하게 성토했다고 한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그의 발언을 괘씸하다고만 여기지 않고 통치 기조 전반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았다면 우리 사회는 좀더 건강하고 투명하게 성장했을 수도 있다. 27년이 지났다. 이 회장의 조카로 신세계그룹을 이끄는 정용진(54) 부회장이 지난 6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이 담긴 기사를 캡처해 올렸다. 기사 제목은 ‘“소국이 감히 대국에…” 안하무인 中에 항의 한번 못해’였다. 정 부회장은 별도의 메시지 대신 ‘멸공’, ‘승공통일’, ‘반공방첩’ 등 해시태그(#)를 달았다. 당연히 중국 공산당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졌다. 논란이 커지자 정 부회장은 “나의 멸공은 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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