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
  • 올림픽 축구 4강 신화 만든 홍명보 감독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대회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서 한국의 4강 진출을 확정 지은 홍명보(43). 그가 감독으로 변신해 출전한 런던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4강 신화’를 썼다. 홍명보 감독은 4일(현지시간) 영국 카디프의 밀레니엄 경기장에서 열린 영국과의 8강전을 승부차기 끝에 승리로 이끌어 한국 축구를 올림픽 본선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올려놨다. 선수로는 월드컵 4강의 핵심 노릇을 했고 지도자로는 올림픽 4강을 조련해낸 셈이다. 199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한 스타 출신 지도자 홍명보 감독은 광장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축구를 시작해 동북고, 고려대를 거쳐 프로축구 포항, 일본프로축구 벨마레, 가시와 등에서 뛰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대표팀 중앙 수비수를 맡아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4회 연속 월드컵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쓴 홍 감독은 2004년 미국프로축구 LA 갤럭시에서 은퇴했다. 국가대표 A매치에 136경기에 출전해 10골을 터뜨린 그는 한국 선수 A매치 최다 출전 기록도 갖고 있다. 현역에서 물러난 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대표팀 코치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보좌했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 한국수영, 박태환 덕에 세계 11위

    한국수영이 박태환(23·SK텔레콤) 덕에 런던올림픽에서 11위에 올랐다. 한국은 4일(현지시간) 끝난 이번 대회 경영 종목에서 은메달 2개를 수확해 스페인, 벨라루스와 함께 메달 순위에서 공동 11위를 차지했다. 은메달 2개는 모두 박태환의 목에 걸린 것이다. 박태환은 자유형 400m와 200m에서 모두 은메달을 땄다. 한국수영은 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박태환이 자유형 400m 금메달, 자유형 200m 은메달을 획득해줘 9위를 차지했다. 이번 런던올림픽 수영장에서 동메달 하나라도 건진 나라는 17개국뿐이다. 금메달을 챙긴 것은 미국(16개), 중국(5개), 프랑스(4개), 네덜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이상 2개), 호주, 헝가리, 리투아니아(이상 1개) 등 8개국이다. 마이클 펠프스와 미시 프랭클린, 두 명의 4관왕을 배출한 미국(금16, 은8, 동6)은 32개의 금메달 중 절반을 쓸어담아 수영 최강국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반면 미국과 세계수영을 양분해온 호주는 여자 계영 400m에서 금메달 한 개(은6, 동3)를 따는 데 그쳐 체면을 구겼다. 이번 대회에서는 중국의 약진이 돋보였다. 쑨양과 예스원 등 2관왕 두 명을 내놓으며 금메달 5개(은2, 동3
  • ‘무서운 10대들’ 수영장 휘젓다

    여드레 동안 치러진 2012 런던올림픽 수영 경영 종목이 4일(현지시간) 남자 혼계영 400m 경기를 마지막으로 모두 끝났다. 이번 대회에서는 10대들의 돌풍이 거셌다. 특히 소녀들의 역영이 빛났다. 미국의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는 올림픽 최다 메달리스트가 되면서 다시 한번 새 역사를 썼다. 하지만 일본 수영영웅 기타지마 고스케, 호주 여자수영의 간판 스테파니 라이스처럼 쓸쓸히 퇴장한 ‘별’들도 있다. ◇아쿠아틱스센터 휩쓴 10대 돌풍= 올림픽 무대가 처음인 15∼17세의 중·고교생 유망주들이 세계수영계에 새 바람을 몰고 왔다. ’세계 여자수영의 미래’인 17세 미시 프랭클린과 중국의 16세 예스원이 ‘10대 돌풍’을 쌍끌이했다. 대회 개막 전부터 ‘여자 펠프스’로 주목받은 프랭클린은 여자 배영 200m 결승에서 2분04초06의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배영 100m와 단체전인 계영 800m에서도 ‘금빛 물살’을 가른 그는 이번 대회 4관왕에 올랐다. 계영 400m에서도 동메달을 보태 메달 다섯 개를 갖고 귀국길에 오른다. 예스원은 개인혼영 200m와 400m의 금메달을 독차지했다. 특히 개인혼영 400m 결승에서는 4분28초43의 세
  • 박태환, 실격파동 딛고 銀2 ‘잘 싸웠다’

    잘 싸웠다. 한국 수영의 자랑인 박태환(23·SK텔레콤)이 4일(현지시간)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 자유형 1,500m 결승에서 14분50초61의 기록으로 4위를 차지하고 이번 대회를 끝냈다. 박태환은 이번 대회에서 세 종목에 출전해 자유형 200m와 400m에서 은메달 두 개를 수확했다. 자유형 1,500m에서는 처음 결승에 올랐다. 박태환이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할 때 우승한 종목이지만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결승 출발대 위에 오른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박태환은 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땄고, 200m에서는 은메달을 보탰다. 한국 남자선수가 올림픽에서 2회 연속 2개 이상의 메달을 획득한 것은 박태환이 처음이다. 특히 세계 수영계의 변방인 한국에서 두 대회 연속 올림픽 메달을 가져간 것은 우리나라 체육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박태환은 이번 대회 첫 출전 종목인 자유형 400m에서 ‘실격 파동’이라는 불의의 시련을 겪었다. 자유형 400m는 박태환이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한 주 종목으로 금메달은 물론 내심 세계신기록까지 노리고 있었다. 오전 예선 경기에서도 조 1위, 전체 4위에 해당하는
  • 선제골 지동원 “메달 반드시 따겠다”

    홍명보 감독의 히든카드가 적중했다. 홍명보 감독은 4일(현지시간) 영국 카디프의 밀레니엄 경기장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8강 영국과의 경기에 지동원을 선발로 투입했다.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교체 선수로만 쓰던 지동원을 베스트 11에 기용하자 그는 골로 화답했다. 전반 29분 기성용의 원터치 패스를 이어받은 지동원은 강력한 왼발 중거리 슛으로 영국의 골망을 갈랐다. 지동원의 선제 득점이 아니었다면 일방적으로 영국을 응원하는 홈 팬들의 기세에 눌려 경기 결과는 어떻게 됐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터였다. 지동원은 경기가 끝난 뒤 “4강에 진출해 매우 기쁘다. 연장까지 가는 어려운 경기였지만 우리 선수들이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아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선덜랜드에서 활약하는 그는 “처음 골을 넣었을 때 매우 기뻤지만 사실 후반이나 연장에서 좋은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살리지 못했다”고 자책하며 “그런 기회를 살리지 못해 팀에 미안했는데 끝까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줘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고 웃음을 내보였다. 홍명보 감독 역시 경기가 끝난 뒤 “지동원이 영국에서 뛰면서 마음고생도 있었기 때문에 뭔가 보여줄 것이
  • 이범영 “승부차기 진 건 딱 3번…비법요?”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에서 결정적인 선방을 하나씩 선보인 골키퍼 정성룡(수원)과 이범영(부산)의 맹활약이 4강 진출의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정성룡은 4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웨일스 카디프의 밀레니엄 경기장에서 열린 개최국 영국과의 런던올림픽 8강전에서 1-1로 팽팽하던 전반 40분 에런 램지(아스널)의 페널티킥을 몸을 날려 막아내 추가 실점을 막았다. 홍명보 감독이 고심 끝에 와일드카드로 선택한 정성룡은 이날 전반 36분 오재석(강원)의 핸드볼 반칙으로 내준 첫 번째 페널티킥에서 램지에게 실점했다. 램지의 슈팅 방향을 거꾸로 읽은 것. 하지만 두 번째 페널티킥 상황에서 램지가 또다시 키커로 나서자 치열한 신경전 끝에 골대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공교롭게도 첫 번째 페널티킥을 왼쪽으로 찼던 램지는 이번에는 반대쪽을 선택했고, 정성룡은 미리 예상한대로 날아온 볼을 막아내 팀을 패배 위기에서 구해냈다. 하지만 정성룡은 후반 9분 프리킥 세트피스 상황에서 상대 선수와 부딪히면서 어깨를 다쳤고, 후반 17분 통증을 참지 못하고 이범영과 교체됐다. 예상 밖의 교체로 그라운드에 투입된 이범영은 연장전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나서 피를 말리는 승
  • 4강 기적 홍명보號 ‘지동원 카드 적중’

    한국 축구의 염원인 올림픽 4강 달성의 원동력은 홍명보 감독이 영국을 집중적으로 분석해 마련한 ‘족집게 전술’의 승리였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축구 대표팀은 4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웨일스 카디프의 밀레니엄 경기장에서 열린 개최국 영국과의 8강전에서 120분 연장 혈투 끝에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4로 이겨 준결승 진출을 달성했다. 이날 한국은 킥오프 5분 만에 오른쪽 풀백인 김창수(부산)가 팔뚝뼈를 다치고 후반 9분에는 주전 골키퍼 정성룡(수원)이 프리킥을 막는 과정에서 어깨 부상을 당하는 악재를 만났다. 이 때문에 한국은 교체 카드를 일찌감치 써버리는 통에 선수들 대부분이 120분을 멈춤 없이 뛰는 최악의 상황에 봉착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정신력으로 버텨내며 집중력을 잃지 않고 승부차기 5개를 모두 꽂아 값진 승리를 차지했다. 무엇보다 영국을 겨냥해 선택한 ‘지동원 카드’와 영국의 돌파를 막기 위한 ‘블록형 수비 전술’이 제대로 먹힌 게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홍 감독은 이날 왼쪽 측면 날개로 그동안 주전으로 나섰던 김보경(카디프시티) 대신 지동원(선덜랜드)을 선택했다. 조별리그 3경기를 치르며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김보경 대신 그
  • 박태환 향후 계획은 “일단 휴식”

    특별취재단 = 4일(현지시간) 열린 남자 자유형 1,500m 경기를 끝으로 런던올림픽 일정을 모두 소화한 수영 스타 박태환(23·SK텔레콤)은 “귀국하면 우선 가족과 함께 시간을 가지려 한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 메달리스트들은 대회 일정이 모두 끝나길 기다렸다가 함께 돌아가자는 우리 선수단의 요청이 있었지만 박태환은 일단 7일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다. 박태환은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지난 3∼4년을 이번 올림픽만 바라보고 달려왔다”면서 “올림픽 이후의 계획은 아직 없다”고 답했다. 그는 “한국에 돌아가 부모님과 상의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겠다”고 덧붙였다. 박태환은 지난달 초 김연아가 기자회견을 열고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까지 뛰고 은퇴하겠다는 발표를 해 화제가 됐던 것을 거론하면서 “저의 계획과 관련해서는 시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박태환을 후원하고 전담팀을 운영해온 SK텔레콤스포츠단과 박태환의 계약은 오는 9월30일로 끝난다. 그때까지 박태환의 훈련 계획이 없어 사실상 이번 대회로 양측의 계약은 마무리된 셈이다. 전담 지도자인 마이클 볼(호주) 코치, 전담팀원들의 계약도 마찬가지다. SK텔레콤은 박태환이 구체적인 향후 계획을
  • 女 양궁 슛오프 끝 개인전 金…한국 첫 2관왕

    세계 최강은 지켰다. 하지만 숨막히는 승부였다. 기보배(24·광주광역시청)가 2일 런던의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여자양궁 개인전 결승에서 아이다 로만(멕시코)을 슛오프 끝에 힘겹게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단체전에 이어 ‘골드’ 두 개를 캐낸 기보배는 한국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대회 2관왕에 올랐다. 기보배는 5세트까지 5-5(27-25 26-26 26-29 30-22 26-27)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바람이 일정치 않았고, 상대의 기량도 만만찮았다. 한 발로 메달 색깔이 결정되는 슛오프에 접어들었다. 기보배가 야심차게 쏜 화살이 8점에 꽂혀 패색이 짙었다. 그러나 로만 역시 8점을 쏘았고, 과녁에서 좀 더 가까웠던 기보배가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동메달은 마리아나 아비티아(멕시코). 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 등 메이저대회에서 한 번도 개인전 타이틀을 갖지 못했던 기보배는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 ‘양궁 코리아’의 계보를 이었다. “난 욕심을 내면 항상 안 되더라. 그래도 이번만큼은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던 수줍은 고백이 이뤄진 것. 한국은 지난 베이징올림픽에서 장쥐안쥐안(중국)에게 내줬던 여자 개인전 타이틀을 되찾았다. 기보배는 2010
  • ‘붕대 투혼’ 유도 황희태 3·4위전서 절반패… 아쉬운 5위

    2일 런던의 엑셀 런던 노스아레나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남자유도 100㎏급 3·4위전. 32강전에서 상대와 머리를 부딪쳐 붕대를 칭칭 감았지만 계속 피가 배어났다. 한국 유도팀의 맏형 황희태(34·수원시청)는 상처입은 황소처럼 거친 숨을 내뿜었다. 자신보다 15㎝나 크고, 7살 어린 헨크 그롤(네덜란드·2위)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았다. 과감하게 선제공격을 시도했지만, 그롤에게 되치기를 당하며 절반패했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올림픽 도전은 5위로 끝났다. 투기 종목인 유도, 그중에서도 100㎏급이란 점을 떠올리면 서른넷이란 운동선수로는 환갑을 넘긴 지 오래. 그래도 ‘황소’ ‘탱크’ 등 별명에서 짐작하듯 힘과 투지에 관한 한 태릉선수촌을 통틀어 둘째가라면 서럽다. 훈련량 또한 조카뻘 후배들 못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올림픽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최전성기를 경험했다. 2003년 세계선수권을 우승하는 등 90㎏급 최강자로 군림했다. 당연히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 0순위로 꼽혔지만, 준결승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이즈미 히로시(일본)에게 종료 10여초를 남기고 업어치기 절반을 내줘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충격이 컸던
  • 엉뚱·발랄 ‘4차원 소녀’ 런던의 샛별로

    “머리 자르고 싶어요.” 금메달을 딴 소감치고는 참 엉뚱했다. 김장미(19·양주시청)가 1일(현지시간) 런던 그리니치파크 왕립포병대기지에서 열린 25m 권총 결선에서 201.4점을 쏴 본선 591점을 더한 합계 792.4점으로 시상대 맨 위에 올랐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의 네 번째 금메달이자 남자 공기권총의 진종오(33·KT)에 이어 사격에서의 두 번째 금메달이다. 소녀가 가는 곳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발랄한 성격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함 때문이다. 하지만 사선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냉철했다. 처음 총을 잡은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입문 이유는 그저 “학교에 걸린 소년체전 우승 플래카드가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단다. 그때 권총이 아닌 소총을 잡았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여갑순과 이은철이 사격 소총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소총이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덧니 때문에 소총을 잡기가 불편했고 기록도 잘 나오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때인 2007년 코치의 권유로 권총으로 바꿔 잡았다. 그날의 선택으로 김장미의 인생도 바뀌기 시작했다. 국내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더니 2009년 아시아유스게임과 이듬해 유스올림픽에
  •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녀 세계를 뒤집다

    김지연(24·익산시청)이 1일(현지시간) 피스트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금메달의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 한국 기자들은 일제히 수군거렸다. “저 선수 누군지 알아?” 누구도 답을 시원하게 하지 못했다. 거의 무명이었던 김지연이 난생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남녀 통틀어 아시아 최초로 사브르 금메달이란 엄청난 역사를 썼다. 태권도와 육상을 했던 김지연은 부산 재송여중 1학년 때 교사의 권유로 펜싱을 시작했다. 태권도를 하고 싶었고 부모님도 반대했지만 “언니들과 노는 게 너무 좋아” 덜컥 접어든 길이었다. 어렸을 땐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부산디자인고 1학년 때 플뢰레에서 사브르로 바꿨다. 김지연은 “플뢰레를 못해서 감독님이 사브르로 바꿔 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찌르기만 하는 것보다) 마구 후려치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2006년부터 국가대표가 됐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도 탈락할 정도였다. 그때 태릉선수촌에 멍하게 앉아 있던 김지연을 눈여겨본 사람이 김용율 펜싱대표팀 감독. “지켜보니 플레이가 괜찮아 감독 추천으로 합류시켰다. 발이 빨라 잘 키우면 될 것 같은 느낌이
  • 펜싱 에페 12년만의 銅 정진선 “두분의 아버지께 이 메달 바칩니다”

    정진선(28·화성시청)에겐 두 아버지가 있다. 친아버지와 처음 펜싱 칼을 쥐여 준 양달식(51) 화성시청 감독. 양 감독은 사비를 털어 그에게 마스크를 씌웠다. 집안 사정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정진선에게 소속팀 입단을 권유한 것도 양 감독이었다. 두 아버지를 실망시키기 싫었다. 독하게 해야 뭐라도 될 것 같았다. 대회 한달 전부터 불효자를 자청했다. 간경화로 입원 중인 친아버지의 안부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이다. 다잡았던 마음이 약해질까 겁부터 났기 때문이었다. 불효막심한 그가 1일(현지시간) 엑셀 런던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펜싱 남자 에페 동메달 결정전에서 세스 켈시(미국)를 연장 접전 끝에 12-11로 꺾었다. 185㎝의 키를 이용, 먼 거리에서 공격해 들어가는 스타일에 노련함이 더해졌다. 두 차례 동시 공격을 주고받은 정진선은 연장 종료 20초 전 주특기인 재빠른 발 찌르기로 결승 득점을 뽑았다. 동메달을 딴 뒤 정진선은 두 아버지 생각에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누구보다 아버지께 죄송하다.”며 “이제 정말 자랑스럽게 전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감독님이 집에도 못 가고 훈련을 함께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다.”면
  • ‘스피드’ 한국 펜싱 골리앗 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펜싱 강국 코리아! 한국 대표팀은 2000년대 이후 유럽 일색인 펜싱계에서 ‘외톨이’였다. 중국과 일본은 프랑스, 헝가리 등에서 외국인 코치를 영입해 훈련했다. 과거 한국도 그런 식이었다. 김용율 펜싱대표팀 감독은 “당시 웬만하면 128강, 잘해야 64강이었다. 아무리 해도 4강에 들어가지 못하니 국제대회도 의미가 없었다.”고 돌아봤다. 종주국인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선수와 비슷한 플레이를 하는데 체격에서 밀리니 제대로 성적이 나올 리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퍼졌다. 김 감독은 “따라하기만 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우리 것을 해보자는 의견들이 나왔다.”고 말했다. 해서 남들이 다 유럽을 따라할 때 한국은 남들이 비웃거나 말거나 국내 선수들로 코칭 스태프를 꾸리고 우리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관건은 스피드였다. 유럽 선수들이 한 발을 뛸 때 한국 선수들은 두 발을 뛰어 상대의 허점을 노리게 했다. 유럽 선수들이 즐겨 하는 손 공격보다 발놀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체력 훈련이 필수였다. 혹독한 웨이트트레이닝과 기술 훈련이 이어졌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자 플뢰레에서 김영호가 금메달,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