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 [세종로의 아침] 철학의 빈곤, 책임의 부재/유용하 문화체육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철학의 빈곤, 책임의 부재/유용하 문화체육부 차장

    어느덧 2023년이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연말마다 관용어처럼 쓰이는 단어가 ‘다사다난’이다.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얽혀 사는 세상에서 365일 매일 매순간이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지나갈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면 너무 뻔한 말이기도 하다. 대중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일없이 평온해 보이는 과학계도 올해 다사다난했다. 지난 5월 25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3차 발사가 성공했을 때까지만 해도 ‘올해 더이상 큰일은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하반기에 접어들자마자 과학계 카르텔 논란과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 한국 과학계를 뒤흔들었다. R&D 예산 삭감과 관련해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여전히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과학계 반응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과학계와 소통이 부족하다는 질책을 받고 있다가 이번 일을 계기로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과학계와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면 짠한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때마침 과학기술 분야를 담당하는 과기정통부 제1차관이 얼마 전 열린 한 포럼에서 카르텔의 구체적 사례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 자리에서 1차관은 “대통령은 카르텔이라는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 [세종로의 아침] 문화재 정체성과 제자리 찾기/이기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문화재 정체성과 제자리 찾기/이기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제자리를 떠났던 귀중한 우리 문화재 2점이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는 행보가 엇갈렸다. 조선왕조실록은 지난달 본래 있었던 오대산으로 돌아갔다. 정부의 대승적 결단을 환영한다. 하지만 쓰시마 불상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지난 10월 일본 간노지(觀音寺) 소유라고 판결했다. 일본 민법상 점유 취득 시효가 완성됐다는 게 판단의 주요 근거였다. 문화재청의 재감정보고서에 따르면 문제의 불상은 고려 충숙왕(서기 1330년) 서주 부석사에서 제작됐다. 서주는 오늘날의 서산 일대다. 1951년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결연문에는 불상의 제작 시기와 경위, 봉안 위치가 적혀 있다. 고려 서주에 살던 평범한 민초 32명이 발원해 조성한 관음상이다. 이 불상이 일본에 넘어간 경위는 불투명하다. 학계에서는 고려 말 혼란했던 시기, 왜구가 약탈한 것으로 추정한다. 2012년 국내 절도단이 이 불상을 일본에서 훔쳐 오면서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주목되는 것은 2심 법원이 언급한 위니드루아(UNIDROIT) 협약이다. 이는 약탈당했거나 불법으로 반출된 문화재를 원래 소유자나 출처국에 돌려주라고 규정하고 있다. 반환하지 않으면 체약국 법원이나 기타 권한 있는 당국에 도난 문화재 반환을 요구할 수
  • [세종로의 아침] 국방중기계획, 그 참을 수 없는 안일함/강국진 정치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국방중기계획, 그 참을 수 없는 안일함/강국진 정치부 차장

    언제나 그렇듯이 돈이 문제다. 아무리 아름다운 정책이라도 예산이 없으면 집행은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지당하신 말씀’으로 포장된 강력한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필요한 재원을 언제, 어떻게, 얼마나 조달하겠다는 것인지를 집중적으로 살핀다. 정책 없는 예산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고, 예산 없는 정책은 공염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지난 12일 발표한 ‘2024~2028 국방중기계획’은 야심 찬 국방력 강화 방안을 담고 있다. 초소형 위성 체계, 스텔스전투기, 최신형 잠수함과 이지스함, 현무를 비롯한 각종 고위력 미사일, 촘촘해지고 강력해진 미사일방어체계, 군집·자폭 드론, 전자기펄스(EMP)탄과 정전탄까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예 선진 강군을 건설한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방중기계획 발표를 들으면서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밖에 없었다. 국방부는 앞으로 5년 동안 348조원을 국방 분야에 투입하겠다고 한다. 이는 연평균 국방비 증가율이 7%라는 걸 의미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8월 발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향후 5년간 재정지출 증가율을 연평균 3.6%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국방 분야 역시 연평균 증가율은 3.6%로 돼
  • [세종로의 아침] ‘소소위’ 단상/이민영 정치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소소위’ 단상/이민영 정치부 차장

    기자는 지난해 12월 세법 개정안을 포함해 예산안 부수법안의 졸속 처리를 지적하는 칼럼을 썼다. 법인세법 개정안 등 주요 세법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를 패싱한 채 여야 원내대표와 기획재정부가 만든 수정안이 곧바로 본회의에 상정돼 의결된 점을 꼬집은 것이다. 기재위 소속 위원들이 논의에서 사실상 배제됐기 때문이다. 국회는 연말마다 예산안과 세법개정안을 졸속·밀실 심사로 처리했다. 밀실 심사의 상징으로 불리는 ‘소소위’(小小委)라는 이상한 협의체는 올해도 등장했다. 지난달 30일 기재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증여세법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지난 7월 2023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는데, 자녀 결혼자금에 대한 증여세 공제 한도를 현행 5000만원에서 1억 5000만원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정부안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당초 ‘부자 감세’라며 반대했다. 그런데 며칠간 여야 간사 간 협의체인 소소위를 거치더니 돌연 여야가 합의했다. 소소위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를 두고 기재위의 유일한 제3당 소속인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혼인 증여 공제와 가업상속 건은 민주당에서도 1회독 시기에 다 함께 반대하셨던 법안”이라며 “법정 시한을 이유로 1
  • [세종로의 아침] 747기 단종과 지방공항 활성화/손원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747기 단종과 지방공항 활성화/손원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서울 중랑구 상봉동 시외버스터미널이 지난달 30일 문을 닫았다. 1985년 개장 이후 38년 만의 일이다. 원인이야 자명하다. 승객 감소에 따른 경영 사정 악화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2017년 이후 폐업한 버스터미널이 상봉터미널을 제외하고도 23곳에 이른다고 한다. 공항은 어떨까. 우리나라에는 모두 15개의 공항이 있다. 여기도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인천 등 대도시를 제외한 지방공항 10곳이 만성 적자에 시달린다. 실제로 항공사 플라이강원은 자사의 마지막 비행기를 최근 리스사에 반납했다. 이제 경쟁사에 팔릴 날만 기다리는 처지다. 플라이강원이 거점 공항으로 삼았던 강원 양양공항도 개점휴업 상태다. 영국 BBC 등 해외 언론에서 양양공항을 곧잘 ‘유령 공항’으로 소개한다니 이만저만 낭패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종 변화에서 지방공항 활성화의 단초를 찾는 건 어떨까 싶다. 큰 비행기에서 작은 비행기로, 제트기에서 프롭기(프로펠러 항공기)로 변화를 구해 보자는 이야기다. 세계 항공기 시장의 흐름에 주목하면 어렴풋이 해답이 보인다. ‘이 세상 모든 점보의 원조’라 불리던 보잉 747 기종이 공식 단종된 건 올해 1월이다. 생산을 시작한 지 50여년 만의 일이다.
  • [세종로의 아침] 신춘문예라는 ‘불꽃놀이’ 그 이후/정서린 문화체육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신춘문예라는 ‘불꽃놀이’ 그 이후/정서린 문화체육부 차장

    얼마 전 반가운 메시지를 받았다. 수년 전 기자가 진행한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 두 번째 시집을 냈다며 안부와 함께 주소를 물어 온 것이다. 그는 첫 시집을 냈을 때도 같은 인사를 건넨 적이 있다. 그가 시인으로 첫발을 떼는 시집을 받아 보며 덩달아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시집 안에 시인이 적어 준 “우리가 우리일 모든 확률이 사랑”이라는 다정한 글귀도 곱씹어 보면서. 신춘문예의 계절 전해진 그의 ‘두 번째’ 시집 출간 소식이 더 반가웠던 건 수년 전 신춘문예 당선 작가들에게 물었던 ‘신춘문예 그 후’에 대한 날것 그대로의 토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신춘문예는 하룻밤 불꽃놀이다. 화려한 시상식이 끝나고 찾아드는 건 적막뿐이니까.”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선배 문인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는 젊은 작가들 역시 이를 매일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종합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되자마자 주요 문학 출판사들과 계약을 잇따라 맺으며 작품을 독자들에게 소개할 기회를 단박에 얻은 그들에게도 늘 ‘이것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불안은 엄습해 오고 있었다. 100번도 넘게 고치고 또 고친 원고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도 (글을 써 내려갈) 흰 모니터가
  • [세종로의 아침] 당신은 안녕한가요/이현정 세종취재본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당신은 안녕한가요/이현정 세종취재본부 차장

    그때는 아침이 죽음과 함께 왔다. 절망이 야금야금 밤을 갉아먹어 약 없이는 잠들지 못했고, 일상은 무너졌으며 아침은 두려운 것이 됐다. 새로 떠오르는 해가 아직 동트기 전의 새벽에 갇히길, 이대로 오늘이 어제의 시간에 박제되길 간절히 기도했다. 계절이 여덟 번 바뀌었지만 공기는 늘 축축했고 육지로 나온 고래처럼 나의 무게가 폐를 짓눌러 숨이 막힐 듯했다. 나는 우울증 환자였다. ‘무사태평, 될 대로 되라’가 생활신조였던 내게 우울증이 왜 찾아왔는지는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몸이 아플 때처럼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져 우울함이 찾아온 것이라고, 조금만 버티면 다 지나갈 것이라고 자위했지만 한 번 찾아온 우울은 떠날 줄을 몰랐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처럼 늘 불안했다. 평소 30분이면 쓰던 단신 기사 작성에 1시간 반이 걸릴 정도로 업무 능력도 떨어졌다. 문장이 산산이 조각나 뜻 모를 낱말들만 머릿속을 부유했다. 자괴감이 그 빈틈을 무참하리만큼 파고들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터널의 끝은 병원에 다니고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내원 첫날 상담실 탁자 위 휴지를 보고 처음으로 소리 내 아이처럼 울었다. 여기선 울어도 되는 거구나, 참지 않아도
  • [세종로의 아침] 늑대가 돌아다니는데도…/임병선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늑대가 돌아다니는데도…/임병선 국제부 선임기자

    ‘무력감, 타협, 스스로를 파괴하고 싶은 충동 그리고 본능적 의지 같은 것들만 사람들을 사로잡고, 이런 무관심과 노예들이나 보일 만한 절망감들이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리라는 것을 누군들 믿을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 생경한 리투아니아 작가 알비다스 슐레피카스의 2011년 작품 ‘늑대의 그림자 속에서’(양철북) 49쪽을 넘기다 무릎을 탁 쳤다. 기자 말년을 이런 황망한 일들을 기록하며 보내고 싶지 않다고 진저리를 치면서도 매일 심연 속으로 끌려가듯 사망자와 피란민 숫자, 풀려난 인질 숫자를 헤아리며 보내고 있다. ‘무력감’은 걷잡을 수 없다. 70년 전 홀로코스트를 당한 이들의 후손이 저지르는 이 끔찍한 만행을 모두 멀거니 바라만 보고 있다. 개중에 이스라엘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극우 장관들을 비판하며 한도를 넘지 말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따지면 남 일 대하듯 위선을 떨고 있을 뿐이다. ‘타협’은 사람들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에 손쉽게 손을 내미는 심리 요법이다. 궁극적으로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잖아, 어찌 됐든 둘 중 어느 쪽이 문제를 깡그리 해결했으면 좋겠네, 그편이 낫겠네, 라고 책임을 떠넘긴다. 이것이 근본 처방이 안 된다
  • [세종로의 아침] 국가대표의 품격/홍지민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국가대표의 품격/홍지민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지난 21일 밤, 중국과의 월드컵 예선전이었다. 황희찬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손흥민이 성공시켰다. 선수들의 부상이 염려되는 경기였는데 킥오프 11분 만에 선제골이 나왔다. 잘 풀린다 싶었다. 전반 종료 직전에는 좀처럼 헤더를 하지 않는 손흥민이 이강인의 코너킥을 머리로 돌려놓으며 또 골을 넣었다. 후반 들어서도 한국은 공세의 고삐를 조였다. 추가골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후반 27분 조규성 대신 황의조를 투입했다. 결국 손흥민의 프리킥에 이은 정승현의 헤더 쐐기골까지 묶어 한국이 3-0으로 승리했다. 그런데. 황의조의 출전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황의조가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사실이 경기 하루 전 알려졌기 때문이다. 황의조의 출전 여부는 경기 외적인 관심사가 돼 버렸다. 지난 6월 사생활 폭로와 동영상 유출 사건이 불거졌을 때 황의조는 피해자였다.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입장에 놓인 것이다. 폭로와 유출 사건이 불거졌을 때도 촬영 자체가 동의하에 이뤄졌는지에 대한 우려가 있기는 했다. 피의자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 [세종로의 아침] 총선 앞 집단 착각/이경주 정치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총선 앞 집단 착각/이경주 정치부 차장

    윤석열 정부의 ‘재정건전성 기조’는 환영받을 만하다. 인구 감소와 복지국가의 미래를 대비하려면 지출을 줄여야 한다. 코로나19를 관통한 문재인 정부의 막대한 지출도 정상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표심 이탈을 감수하고 ‘총선 앞 돈줄 죄기’라는 힘든 결단을 내렸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제성장률 3% 달성을 내세워 예산 확장을 원한다. 국회의 예산 심사 불과 1주일여 만에 상임위원회에서 단독으로 통과시킨 예산만 2조 7000억원이 넘는다. 정치적으로 기본 ‘판’을 잘 골랐다. ‘돈 쓴다는데 싫어할 사람 없다’는 게 선거판의 오랜 격언이다. 총선을 앞둔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지 불안했다. 국민의힘은 정치적 묘수를 꺼냈다. 경기 김포시를 서울에 편입하는 ‘메가 서울’ 구상으로 예산 지출 없이 ‘판’을 흔들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에서 압승한 민주당의 허를 찌른 셈이다. 하지만 이 정책은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국가 대계와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등에 대한 탄핵안을 내놓았다. 탄핵 정국 앞 여당은 필리버스터를 전격 포기해 야당의 탄핵 표결을 늦추며 총선 앞 기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그 대가로 한국 경제에 큰 피해가 예상된다며
  • [세종로의 아침] 구조개혁 청사진 제시해야 할 메가서울 TF/이두걸 전국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구조개혁 청사진 제시해야 할 메가서울 TF/이두걸 전국부 차장

    올해 들어 집 근처에서 주말 산행을 하곤 한다. ‘주5일’ 술자리를 견디다 못해 꺼내 든 고육지책이다. 산에서 내려올 즈음 속옷까지 흠뻑 젖었던 게 불과 두세 달 전. 어느새 형형색색 가을옷을 입더니 이젠 그마저도 벗을 참이다. 등성이를 오르내리며 자주 듣는 곡은 베토벤 후기 피아노 소나타다. ‘장엄미사’, 후기 현악 사중주와 더불어 후기 베토벤의 대표작이다. 우리가 친숙한 청년 및 중년 베토벤과 다른, 삶의 종결부로 향하는 거인의 뒷모습이 담겨 있다. 그는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곧잘 발견되는 조화나 통일 대신 파격이라는 ‘말년의 양식’을 감행한다. 이를 두고 에드워드 사이드는 “일관성과 유기적인 완결성, 전체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뒤흔든다”(‘경계의 음악’ 중)고 평했다. 연말이면 가장 많이 연주되는 교향곡 9번 역시 사람의 목소리와 악기를 한데 담은 말년 양식의 대표적인 사례다. 선진국 문턱에 막 진입한 우리 사회는 청년은커녕 말년의 베토벤과도 거리가 먼, 체념의 황혼기에 접어든 모습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산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올해 1.9%, 내년 1.7%다. 20여년 전에 비해 3분의1로 쪼그라들었다. 저출산ㆍ고령화로 노동
  • [세종로의 아침] 20년 전으로 퇴보한 한국의 수출 시장 점유율/이제훈 산업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20년 전으로 퇴보한 한국의 수출 시장 점유율/이제훈 산업부 전문기자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 것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는 엄청난 기회였다. 관세가 내리고 각종 비관세 장벽이 사라지면서 국가 간 교역과 투자가 급증했다. 세계화로 대표되는 물결은 우리에게 단군 이래 최대라는 ‘반도체 호황’을 가져다줬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윈도95’를 출시하면서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여기에 개인용컴퓨터(PC)의 대중화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구조를 바꿔 버렸다. 그러는 사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반도체 회사들은 1995년 167억 달러어치의 반도체를 수출했다. 이는 전체 수출의 13.4%를 차지할 정도로 완전히 한국의 주력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면서 한국 제품이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수출 시장 점유율도 2.42%를 기록했다. 반도체와 화학, 자동차 등의 수출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한국 수출 시장 점유율은 2000년 2.67%, 2005년 2.71%, 2010년 3.05%, 2015년 3.18%로 꾸준히 늘었다. 마침내 2017년에는 3.23%로 정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제품 수요와 대중국 수출 부진, 노동 경직성 등의 악재가 이어지면서 수출 경쟁력도 빠르게 악화
  • [세종로의 아침] ‘좋은 친구’는 왜 변심했을까/안동환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좋은 친구’는 왜 변심했을까/안동환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올해 국내 대중음악계에선 큰 사건마다 하이브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지난 2월 치열했던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서 카카오와 하이브는 1조원대 ‘쩐의 전쟁’을 벌였다. SM 창업주 이수만씨 지분을 확보해 승기를 잡은 하이브는 카카오와의 담판 후 물러섰다. 카카오가 인수를 포기한 하이브에 준 대가는 SM 소속 아티스트들의 ‘위버스’ 입점이었다. 하이브의 팬덤 플랫폼 위버스는 방탄소년단(BTS)·세븐틴·뉴진스·TXT·엔하이픈·르세라핌(하이브 레이블즈), 보아·동방신기·소녀시대·슈퍼주니어·에스파·NCT(SM엔터테인먼트), 블랙핑크·위너(YG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주요 아티스트의 팬 커뮤니티를 망라하게 됐다. 하이브는 위버스의 ‘원톱’ 입지를 굳히는 실리를 챙겼지만 카카오는 ‘사법 리스크’뿐 아니라 SM의 기업 가치마저 떨어뜨리는 악수를 뒀다. 4년간 불화를 겪어 온 MBC와 하이브가 최근 전격적으로 화해했다. 지난달 30일 안형준 MBC 사장과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만나 2019년부터 중단된 양사의 콘텐츠 교류를 재개하기로 했다. 전제 조건은 MBC의 사과였다. 보도자료를 통해 “하이브와 ‘좋은 친구’ 관계로 지내지 못했던 지난 시간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과거
  • [세종로의 아침] 중동서 온 편지… “전쟁을 기념하라”/송한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중동서 온 편지… “전쟁을 기념하라”/송한수 국제부 선임기자

    “미군 철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얼마 전 서울 도심인 중구 신당동 길바닥에서 한 사람한테 느닷없는 질문을 받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댓바람에 맞은 불의의 일격이었다. 웬 남성 둘이 간이 책걸상을 세운 채 행인들을 가로막으며 뭔지 모를 인쇄물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대답을 주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는 “철수하면 안 되죠. 여기 서명해 주세요”라고 다그쳤다. 난 곧장 발길을 서둘렀다. 며칠 앞서 서울 종로구 적선동 인근을 지나다 이들과 얼추 비슷한 차림새를 한 여성들을 만난 데 이어 다시 또 난감한 상황을 겪은 것이다. 언제 우리 땅에서 미군이 떠난다고 했던가. 그런데 나 혼자만 몰랐던가. 과연 어디에서 출발한 괴담일까. 그들은 서명하지 않은 나를 어떻게 봤을까. 뒤통수에 대고 뭐라고 일갈했을까. 언뜻언뜻 퍽이나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충돌이 두 달째로 접어들었다. 전쟁의 원인은 물론 인명피해 규모를 놓고 두 쪽으로 갈라진 국제사회 양 진영에선 서로를 불신하지만 희생자가 너무 많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게 뻔하다. 버락 오바마(62) 전 미국 대통령은 “우리들 중 어느 누구의 손도 깨끗하지 않
  • [세종로의 아침]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유용하 문화체육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유용하 문화체육부 차장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주장하는 글’, 즉 논설문에 대해 배운다. 논설문은 ‘어떤 주제에 관하여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체계적으로 밝혀 쓴 글’이다. 핵심은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조리 있고 짜임새 있게 ‘체계적’으로 쓰는 것이다. 만약 논설문 쓰기 숙제를 하는 학생이 자기 생각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빼놓거나 ‘이런 주장을 했으니 선생님이 알아서 이해하세요’라는 식의 글을 쓴다면 ‘0점’을 맞아도 마땅하다. 짧은 글로 즉각적 반응을 끌어내는 소셜미디어(SNS)의 유행 때문인지 긴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문해력이 떨어지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즘은 초등학교에서 배운 논설의 기본을 잊어버린 듯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한국에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라는 국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달 끝난 국회 국정감사를 보면서 느꼈던 바다. 예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국정감사에서 과학은 항상 정보통신기술(ICT) 사안에 밀려 뒷전이었다. 의원들의 과학기술에 관한 질의는 이전 국감 자료를 그대로 들고나와서 재활용하는 것 같다고 의심될 정도였다. 그렇지만 올해는 달랐다. ‘과학기술 카르텔’, ‘연구개발(R&D)
  • [세종로의 아침] K팝의 라이트팬과 중도층/이민영 정치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K팝의 라이트팬과 중도층/이민영 정치부 차장

    지난주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예능을 가장한 인터뷰 프로그램에는 K팝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박진영과 방시혁이 나왔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두 인물이 겸손하게 서로를 치켜세워 주고 인정해 주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말미에 나온 K팝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었다. 세계적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K팝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강력한 팬덤으로 무장한 K팝의 확장성에 대해 우려했다. 박진영 JYP 대표도 팬층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어팬덤만 있고 라이트팬이 없으면 대중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라이트팬’은 대중문화뿐 아니라 스포츠계에서도 쓰는 말이다. 프로야구 시즌에는 누구든 ‘삼성팬, 한화팬’ 등을 자처하지만 라이트팬들은 방송 중계를 주로 보고 일 년에 한두 번 야구장에 간다. K팝도 마찬가지다. 10대나 20대 열성팬이 아닌 이상 매번 아이돌의 굿즈를 사고 콘서트장을 가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들의 고민도 이런 데 있어 보였다. 음반을 사는 수준, 가끔 콘서트장에 가는 수준의 라이트팬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대중문화에 라이트팬이 있다면 정치에는 중도층이 있다. 태극기부대, 개딸로 대표되는 코어팬덤은
  • [세종로의 아침] 왜 별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까/강국진 정치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왜 별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까/강국진 정치부 차장

    전쟁사에 관심 있는 이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일본군 최고위급으로 활약한 숨은 독립군’으로 칭송(?)받는 무타구치 렌야라는 3성 장군(중장)이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육군 버마방면군 제15군 사령관이었던 무타구치는 1944년 인도 동부로 진격해 영국군을 점령한다는 이른바 ‘임팔 작전’을 주도했다. 이 작전에 동원된 일본군 제15군은 말 그대로 전멸했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병사는 1만 5000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5만명은 대부분 전투가 아니라 굶주림과 풍토병으로 죽었다. 항일독립군이 아니고서야 저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임팔 작전은 구상부터 준비, 진행 과정, 후속처리까지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그 모든 난장판의 중심에 무타구치가 있었다. 그의 사고방식은 너무나 황당무계해서 이게 과연 정말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가령 “보급이란 원래 적에게서 취하는 법이다. 임팔만 점령하면 어떻게든 된다”며 식량 보급을 등한시하는 바람에 대규모 아사 사태를 초래했다. “작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정신력이 부족한 탓”이라거나 “말라리아와 이질은 병이라고 할 수 없다”며 책임을 부하 장병들에게 돌렸던 그는 “나는 잘못이 없다. 부하의 잘못
  • [세종로의 아침] 여가욕구 충족과 어족자원 보호의 균형추/손원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여가욕구 충족과 어족자원 보호의 균형추/손원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낚시에 관한 이야기 한 자락. “중국의 공자도 낚시를 즐겼다”(‘유혹과 몰입의 기술 낚시’)고 한다. 조이불망 익불사숙(釣而不網 弋不射宿)이란 말을 남긴 것이 근거다. 이를 풀면 “낚시는 하되 그물질은 하지 않고, 화살로 사냥은 하지만 잠자는 새는 쏘지 않는다”는 뜻이다. 비록 집이 가난해 물고기와 새를 잡아 연명하긴 했으나 큰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는 고사가 담겼다. “배불리 먹고 마음을 쓸 곳이 없으면 딱한 일이다. 장기와 바둑을 두는 일이 있지 않으냐? 그것을 하는 것이 오히려 안 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라는 말도 남겼다. 다소 견강부회의 느낌도 없지 않으나, 멍하니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바둑이나 낚시 등 여가를 즐기는 게 낫다는 가르침으로 들린다. 우리 국민의 여가 생활 패턴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경제력이 급상승한 것에 더해 일과 생활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 등 가치관의 변화, 각종 레저 관련 규제조항 완화 등이 버무려져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요즘 바다나 대형 호수에 가 보면 자신의 배를 타고 낚시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본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막연한 동경에 그쳤던 일들이 실생활에서 이뤄지고 있는 거다. 국민의 여가 활동이 다양해지는
  • [세종로의 아침] 스마일 점퍼가 군대에서 얻은 것/홍지민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스마일 점퍼가 군대에서 얻은 것/홍지민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2년 전 뜨거웠던 여름, 도쿄올림픽을 취재할 때였다. 8월 1일 저녁 올림픽스타디움을 찾았다. 우상혁이 출전하는 남자 높이뛰기 결선이 예정돼 있었다. 솔직히 세계 육상의 꽃이라 하는 남자 100m 결선을 직접 보고 싶은 욕심이 더 컸다. 우상혁은 메달 후보는 아니었다. 올림픽 출전 기준 2m33을 충족하지 못했던 우상혁은 개막을 3주가량 앞두고 간신히 랭킹 포인트를 쌓아 극적으로 막차를 탔다. 당시 개인 최고 기록이 2m31이었던 그는 결선 진출이 현실적인 목표였다. 이진택이 1997년 세운 한국 기록(2m34) 경신과도 거리가 있어 보였다. 느긋한 마음으로 미디어석에 앉아 남자 100m 결선을 기다렸다. 그런데 2m19, 2m24, 2m27, 2m30, 2m33…. 우상혁이 자꾸 바를 넘더니 2m35까지 성공해 한국 신기록마저 세워 버렸다. 이제 메달 경쟁이었다. 한국 육상 트랙·필드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이 나올 수 있는 상황과 맞닥뜨린 것이다. 부리나케 믹스트존으로 내려갔다. 결과적으로 우상혁은 2m37부터 막혀 아쉽게 4위에 머물렀다. 비록 메달은 따내지 못했으나 우상혁의 비상은 도쿄올림픽 하이라이트 가운데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100m 결선은
  • [세종로의 아침] 어딜 가나 강경파들은…/임병선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어딜 가나 강경파들은…/임병선 국제부 선임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짧은 이스라엘 방문을 마쳤다. 하마스와의 무력충돌에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중재 노력조차 기울이지 못한 채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에 숨통만 열어 줬다. 그가 중재자로 역할할 수 있는지 의문을 품어 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유대인 정착촌 확대를 밀어붙였다. 18일(현지시간) 미국 의회를 점거한 유대인 진보단체들이 반대할 정도로 유대인들도 정착촌 확대 드라이브가 몰고 올 후폭풍을 경계해 왔다. 하지만 그가 재집권하는 데 큰 힘을 실어 준 시오니즘을 맹신하는 강경 우파, 내각에 들어온 장관들은 시온의 영토에 한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도 남아 있지 않도록 하겠다는 듯 정착촌 확대를 밀어붙였다. 가자와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완벽하게 봉쇄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사실상 떠날 것을 강요했다. 그런 네타냐후와 강경 우파들을 바이든 대통령은 방관했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중재자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분노하되 과도하게 휩쓸리지 말라”는 주문 정도였다. 전례 없는 안보지원을 이스라엘에 약속하며 팔레스타인에는 생색내듯 인도적 지원 1억 달러를 안겨 줄 뿐이었다. 오히려 그가 네타냐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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