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소득이 있는 곳엔 세금, 시민이 있는 곳엔 재정을

[세종로의 아침] 소득이 있는 곳엔 세금, 시민이 있는 곳엔 재정을

김동현 기자
김동현 기자
입력 2024-04-12 00:10
수정 2024-04-1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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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

대부분의 나라가 조세 기본 원칙으로 생각하는 이 말은 생각보다 역사가 짧다. 이는 근대적 조세 제도가 봉건국가에서 근대 국가로 바뀌는 과정에서 만들어져서다. 왕과 영주가 지배하던 시절, 권력자는 마음대로 세금을 걷을 수 있었다. 세금을 걷는 만큼 왕이 쓸 돈이 많아지니 한 푼이라도 더 걷으려 했다. 여기에서 권력자와 관리도 한몫을 챙겼다. 국민의 삶은 피폐해졌다. 한마디로 조세 제도가 아니라 수탈 시스템이었다. 이는 프랑스 대혁명으로 대표되는 유럽 시민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시민혁명 이후 세금은 체계화됐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조세의 기본 원칙을 나타내는 말은 ‘대표가 없는 곳에 세금도 없다’였다. 이는 부르주아로 대표되는 자산가 계층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무기로 세금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후 수많은 혁명과 시민들의 투쟁으로 민주주의의 뿌리가 넓게 퍼지면서 ‘세금은 시민의 의무’로 확실하게 자리잡기 시작했다.

세금이 시민의 의무로 자리잡으면서, 걷은 돈을 쓰는 것에도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세금을 권력자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생활과 복지를 위해 써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이런 재정에 대한 시민의 관여도는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높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룩한 거의 유일한 국가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재정이 쓰이는 부분에서 본다면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든다.

K패스와 기후동행카드 갈등도 이런 의문이 들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국토교통부의 교통복지 정책인 K패스는 대중교통을 월 15회 이상 이용하면 최대 60회까지 일정 비율을 돌려준다. 일반인은 20%, 청년은 30%, 저소득층은 53%를 환급한다. 서울과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 대부분 지역의 버스·지하철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 또 신분당선과 광역버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도 탈 수 있다.

기후동행카드는 월 6만 2000원(기본권)에 서울 시내 지하철, 버스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3000원을 추가로 내면 서울 공공자전거 ‘따릉이’도 무제한이다. 청년(19~34세)은 7000원 요금 할인을 추가로 받아 5만원대에 이용할 수 있다. 정액권이라 대중교통 이용이 많은 시민에게 유리하다.

이렇게만 보면 ‘시민의 선택권’이 넓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중앙정부는 K패스에는 재정을 지원하지만, 기후동행카드에는 재정을 지원하지 않는다. 이는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 이용자는 재정문제로 장기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중앙정부가 기후동행카드에 재정지원을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앙정부가 내놓은 K패스가 있기 때문에 서울시가 자체 개발한 기후동행카드는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왠지 여기에는 ‘감히’라는 단어가 어딘가 숨어 있을 것 같다.

물론 국가 재정을 총괄하는 중앙정부가 모든 지방정부 사업을 지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는 사업의 목적성이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와 ‘교통복지 강화’라는 측면에서 정확하게 일치한다. 한마디로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에 K패스가 기후동행카드보다 더 나은 혜택을 주는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당초 50만장 발행 예정이던 기후동행카드는 발매 이후 누적 100만장을 찍어냈고, 인구 100만을 넘는 고양시를 비롯해 서울 인접 도시들과의 협약도 늘어나고 있다.

‘시민이 있는 곳에 재정이’ 투입될 때다.

김동현 전국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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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전국부 차장
김동현 전국부 차장
2024-04-1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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