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 [길섶에서] 부고(訃告)/김성수 논설위원

    [길섶에서] 부고(訃告)/김성수 논설위원

    “동생! 오늘도 출근했을 텐데, 감기 조심혀. 옷 따뜻하게 입고, 마스크도 잘 하고 다니고….” 몇 년 전 겨울 선배가 보냈던 SNS 메시지다. 다시 한번 곱씹어 읽어 봤다. 말수가 별로 없지만 속정이 깊은 선배다. 1990년대 초 갓 신문사에 들어와서 같은 부서에서 일했다. 어깨 너머로 일을 많이 배웠다. 요즘 말로 ‘멘토’다. 저녁에도 꽤나 어울렸다. 밑도 끝도 없는 후배의 속없는 투정도 다 받아 줬다. 큰형님 같은 분이다. 몇 년 전 선배는 다른 회사로 옮겼다. 이후 거의 뵙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달 말 청천벽력 같은 부고장을 받았다. 이제 예순을 갓 넘겼는데…. 장례식장에서 20여년 만에 선배 아들을 만났다. 선배와 셋이서 축구도 함께 보러 다녔던 초등학생 꼬마는 서른네 살이라고 했다. 매일 사진을 보여 주면서 자랑하던 꼬맹이 막내딸도 이젠 어엿한 직장인이 됐다. 둘 다 아빠를 빼박은 것처럼 많이 닮았다. 영정 속 선배의 얼굴이 그래서인지 더 야속해 보였다.
  • [길섶에서] 자연의 역습/오일만 논설위원

    [길섶에서] 자연의 역습/오일만 논설위원

    코로나 터널에서 겨우 빠져나오나 싶었는데 난데없이 원숭이두창(monkey pox)이 등장했다. 천연두 사촌 격인 이 질병은 불과 한 달 사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42년 전 ‘천연두 완전박멸’을 선언하며 호들갑을 떨었던 인류의 오만함이 무색하다. 새로운 질병의 75%가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대부분 동물에게서 전염된다. 사향고양이에서 옮겨진 사스(2002년)나 낙타가 숙주가 된 메르스(2012년)처럼 코로나19도 박쥐로부터 전파된 사례다. 야생 동물이 매개체라고 하지만 인간의 욕망이 부른 참사다. 무분별한 서식지 파괴와 야생 동물 밀거래, 유전자 변형 등의 생태계 교란에 대한 자연의 역습이나 다름없다. 앞으로도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새로운 전염병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런 자연의 역습은 현대의 첨단 생명 기술로도 역부족이다. 욕망을 줄이면서 자연 친화적 생활양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근본적인 치유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길섶에서] 조용한 식당/임병선 논설위원

    [길섶에서] 조용한 식당/임병선 논설위원

    밥 사 먹는 데도 이웃이 중요하다. 20대 초중반 여성들이 생일잔치를 하고 있었다. 손뼉을 마주 치며 노래도 부르고 깔깔 웃어 댄다. 그래, 간만에 좋은 친구들 만나 흥겨운가 보다. 그런데 도무지 흥이 줄어들지 않는다. 아예 이웃을 신경쓰지 않는다. 나중에는 먹거리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아내는 티 안 나게 눈치를 준다. 나도 몇 차례 흘겨봤다. 소용없었다. 예전에 한 선배는 점심 장소를 고르는 기준이 무조건 조용한 집이었다. 어느새 나도 그 선배 닮아 간다. 다른 이의 식사를 방해할 정도면 곤란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서둘러 식당을 나와 버렸다. 그런 식당을 고른 우리 잘못인 듯싶었다. 나중에 어떤 글을 보니 MZ세대는 ‘고객’ 정체성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무시한다고 했다. ‘별점 테러’ 같은 일 말이다. 적어도 이런 행태가 이 세대에 도드라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 [길섶에서] 고개 숙인 남자/박현갑 논설위원

    [길섶에서] 고개 숙인 남자/박현갑 논설위원

    뉴스에 고개 숙인 남자들이 자주 보인다. 이달 초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민주당 사람들이다. 단체로 허리를 꺾어 가며 거의 90도로 고개를 숙인다. 투표 전 당당한 자세로 지지를 호소하던 모습과는 판이하다. 국민 기대에 부응 못한 걸 사과하고 반성한다는 정치행위지만 안쓰럽다. 고개 숙이기는 인사나 사과 등 감정표현 방법의 하나다. 허리와 함께 고개를 앞으로 가볍게 구부리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정치인의 경우 상대방은 물론 보는 사람들도 당혹하게 할 정도로 그 공손함이 넘친다. 하지만 사과할 상황인데도 유감 표명에 그치는 등 진정한 사과에는 인색하다. 조선왕조를 다룬 역사 드라마 속 신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전에서 임금에게 90도로 고개 숙이며 만백성의 어버이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뒷전에서는 자기 잇속 챙기기에 여념이 없어 냉소를 자아낸다. 정치인의 고개 숙임이 자신도 살리고 국민도 함께 일으키는 진정한 정치행위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건 사치일까.
  • [길섶에서] 오디의 추억/임창용 논설위원

    [길섶에서] 오디의 추억/임창용 논설위원

    지난 주말 집 근처에서 산책을 하다 걸음을 멈췄다. 발아래 까만 열매들이 여기저기 물감을 입힌 듯 바닥에 짓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 보니 제법 큰 뽕나무 가지마다 아이 손톱만 한 오디들이 탐스럽게 익어 가고 있다. 산책길에 버찌와 매실 열매는 가끔 봤지만 오디는 처음이다. 십수년간 지나다니면서도 뽕나무가 있다는 걸 여태껏 몰랐다니. 열매가 시선을 끌지 않았다면 이날도 무심코 지나쳤을 듯싶다. 오디가 옛 추억을 소환한다. 초등학교 시절 하굣길에 뽕나무밭이 있었다. 이맘때면 나무 줄기마다 다닥다닥 붙은 오디가 동심을 유혹했다. 누에를 키우는 데는 뽕잎만 필요한 터라 밭주인은 아이들이 오디를 마음대로 따 먹도록 내버려뒀다. 나와 친구들은 배가 불룩 나오도록 따 먹는 것도 모자라 빈 도시락에 오디를 가득 채우기까지 했다. 입술엔 오디 물이 잔뜩 들어 진보라색 립스틱을 칠한 듯했고, 우린 서로를 놀리며 킬킬거렸다. 6월은 열매들과 함께 내 추억이 익어 가는 달이다.
  • [길섶에서] 말/서동철 논설위원

    [길섶에서] 말/서동철 논설위원

    내가 사는 신도시에서 출근길에 타는 광역버스는 제법 편하다. 어제 아침에는 버스에 오르는데 운전기사가 “어서오세요” 하고 인사도 건네 좋았다. 그런데 그것도 잠깐…. 앞자리 중년이 “이번에 내릴게요” 하니 친절하던 운전기사가 표변해 “내리려면 벨을 누르세요!” 하고 다짜고짜 소리치는 것이었다. 운전기사는 자기가 옳다고 믿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로 하면 안 되고 벨을 눌러야만 내려 주겠다니 뭔가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이었다. 처음 벨이 생겼을 때는 서로의 편의를 위한 일종의 보조 수단이었다. 어느새 ‘이것이 아니면 안 되는’ 금과옥조가 된 것이다. 하긴 택시를 타면 운전기사로부터 내내 ‘정치 연설’만 들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버스처럼 ‘말이 필요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말이 없어야 편한 사회’를 재촉하는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선거가 끝났으니 ‘택시 유세’도 끝났으면 좋겠다. 오늘은 차를 몰고 출근해야겠다.
  • [길섶에서] 나관남까/박록삼 논설위원

    [길섶에서] 나관남까/박록삼 논설위원

    최근 얘기다. 대부분 술자리가 그러하듯 정치 얘기, 세상 얘기가 안줏거리로 어지러이 오르내렸다. 한 선배가 “이 놈의 ‘나관남까’ 세상”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줄임말 신조어가 난무한다고 하지만 듣도 보도 못한 말이다. 다들 의아한 표정 속에 의기양양하게 “나한테는 관대하고 남한테는 까칠한 세상 아니냐”는 설명을 덧붙였다. 피식거리며 초록병 비트는 소리,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대답처럼 돌아갔던 듯하다. 비슷한 의미의 ‘내로남불’이 너무 흔하게 쓰이다 보니, 또 그러한 행태가 가시지 않으니 추가로 만들어진 말이었을 테다.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더욱 체감도가 높다. 사람은 그대로이고 처한 위치가 달라졌을 뿐이지만 이중 잣대는 숙명과도 같나 보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자기에게는 가을 서리와 같게 하라는 뜻의 춘풍추상(春風秋霜)은 수백 년 묵은 가르침이다. 춘풍추상의 실천은 없고 ‘나관남까’ 같은 역설의 말만 어지럽다.
  • [길섶에서] 서로의 고양이가 되어/문소영 논설위원

    [길섶에서] 서로의 고양이가 되어/문소영 논설위원

    파주출판단지에서 열린 ‘작은 결혼식’을 주말에 다녀왔다. 그림 그리는 신부와 사진 찍는 신랑의 전시회를 겸했다. 보통 결혼식은 양가에서 진행하고 신랑ㆍ신부는 구경꾼이 되기 십상인데 이 결혼식은 신랑ㆍ신부가 주도했단다. 전시장 섭외와 전시 아이디어, 내부 장식까지. 심지어 결혼식 전날 밤까지 신부는 전시할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놀라웠다. 전시장에는 고양이 그림과 사진, 스케치 등이 가득했다. 신랑ㆍ신부는 서로의 곁을 지키는 애교 많고 따뜻한 고양이가 되자는 결혼 콘셉트를 전시장에 표현한 것이다. 신랑ㆍ신부는 매년 결혼기념일에도 입겠다며 흰 웨딩드레스 대신 연분홍 원피스를, 턱시도가 아닌 신사복을 입었다. 하객들은 축하곡을 부른 신부 어머니의 노래 솜씨에 감탄했고, 신랑이 무릎 꿇고 신부 손에 반지를 끼워 줄 때 환호했다. 소박하되 경건했다. 이 예식은 부모, 친구, 친척 등 하객에 따라 세 번 치러졌다. 신랑ㆍ신부를 온종일 축하하는 결혼식, 작지 않고 웅장했다.
  • [길섶에서] 설악의 세 부녀/임병선 논설위원

    [길섶에서] 설악의 세 부녀/임병선 논설위원

    지지난 주말 설악산 한계령~서북능선~대청봉~오색 길을 걷던 세 부녀의 모습이 좀처럼 잊히질 않는다. 젊은 아빠가 열 살, 여덟 살쯤 돼 보이는 두 딸을 데리고 성인도 힘겨운 길을 사부작사부작 걸었다. 나직하고 정감 있는 목소리의 아빠는 자근자근 산행 에티켓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두 딸도 또래답잖게 발군의 주력이었다. 풀썩 주저앉아 있다가도 아빠가 “자 끝청봉 가서 쉬자. 15분만 가면 돼요, 출발”이라고 말하면 태엽인형처럼 일어나 걷는 것이었다. 털진달래가 매복한 이 능선 길을 밟는 모두에게 두 소녀는 활력소가 됐다. 한 선배는 “난 세 아들에게 맨날 다그치기만 했지, 한 번도 저렇게 다정다감하게 일러 주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지 못했다. 정말 후회막급”이라고 했다. 적지 않은 이들이 푹 빠져든 한 드라마의 대사가 떠오른다. “날 추앙해 줘요. 가득 채워지게.” 응원의 가치가 도드라지는 이즈음이다.
  • [길섶에서] 밍아웃/박홍환 평화연구소장

    [길섶에서] 밍아웃/박홍환 평화연구소장

    엘리베이터에 탄 젊은 남녀가 의식 없이 크게 떠드는 소리에 살짝 언짢아졌다. 여성은 회사에서 있었던 기분 상했던 일을 따발총처럼 쏟아냈고, 동료로 추정되는 남성은 맞장구치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곤 여성이 결론을 낸 듯 한마디 꺼냈다. “아무래도 내일 출근해서 밍아웃해야 할까 봐.” 밍아웃? 고개를 갸웃했는데 검색해 보니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때 사용하는 ‘커밍아웃’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어떤 분야의 마니아임을 밝히는 ‘덕밍아웃’, 누군가의 SNS 팔로어임을 밝히는 ‘8밍아웃’ 등 자신이 밝히고자 하는 정체성 뒤에 접미사처럼 붙여 사용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 여성은 회사에서 자기가 어떤 사람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겠다는 것이었다. 축약어와 신조어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추세를 못 따라가면 ‘꼰대’ 취급받기 십상이다. 헌데 허덕거리며 쫓아가면 이미 ‘아재말’로 변해 있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난감, 또 난감이다.
  • [길섶에서] 오월의 장미/이동구 에디터

    [길섶에서] 오월의 장미/이동구 에디터

    장미를 ‘순수한 모순의 꽃’이라고 한다. 평생 아름다운 여인을 좇으며 시와 사랑을 갈구했던 릴케의 주장이다. 애정이 지나쳤던지 그는 장미 가시에 찔려 숨진 것으로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오월이 깊어지면서 곳곳에서 펼쳐지는 장미축제 소식에 그의 이름이 떠올랐다. 서울 중랑천에는 제법 큰 장미공원이 꾸며져 있다. 형형색색의 장미가 군락을 이루며 오월을 계절의 여왕답게 빛내 주고 있다. 강둑에는 장미 덩굴로 된 긴 터널이 있는데, 주민들의 산책로로 더할 나위 없다. 따사로운 햇살을 한껏 머금은 오월의 장미는 눈부시다.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검붉게 변하는 꽃잎. 깊은 사연들을 간직하려는 듯 겹겹이 쌓은 속살은 은은한 향기도 품었다. 결코 싫증나지 않는 자태와 향기를 가졌지만 은밀히 감추고 있는 비수 같은 가시는 사람들의 불손한 손길을 쉽게 허락지 않는다. 아름다움과 위엄을 함께 간직한 모순의 꽃, 장미가 깊고 진한 삶과 사랑을 담았기에 더욱 아름답게 다가온다.
  • [길섶에서] 책벌레의 흔적/전경하 논설위원

    [길섶에서] 책벌레의 흔적/전경하 논설위원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간송미술관의 ‘보화수보’ 전시회에서 본 ‘삼일포’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조선 후기 화가 심사정이 관동 8경의 하나인 금강산 삼일포를 그린 원래 그림에는 없었단다. 푸른 색지 바탕에 책벌레가 갉아먹은 동그란 점을 사람들은 눈으로 인식해 왔다. 간송미술관은 보존 처리를 하면서 이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세월이 지나면서 책벌레도 그림에 참여한 셈이다. ‘삼일포’가 담긴 ‘해동명화집’에 작품 2점을 더한 것도 책벌레다. 원래 28점인 줄 알았는데 보존 과정에서 책벌레가 갉아먹은 흔적이 똑같은 작품 2점이 발견돼 30점이 됐단다. 책벌레의 흔적도 일부 그대로 담겼다. “현재 복원 기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이다. 그림의 보존이라면 옛날 모습 그대로 돌아가는 것인 줄 알았는데 우매했다. 기술의 발전을 기다리는 마음만큼 그림에 담긴 세월도 담아내려는 마음이 고마웠다.
  • [길섶에서] 부암동3/진경호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부암동3/진경호 수석논설위원

    ‘대형마트도 없고, 변변한 학원도 없고, 빵빵한 집도 없고 그래서 땅 투기도 없는 곳. 그래서 좋지 않으냐 묻는 바람이 담쟁이덩굴을 간질이곤 도롱뇽 물질하는 백사실 계곡으로 미끄럼 타는 곳. 공영주차장 없어도 좋으니 그냥 이대로 살게 내버려 달라며 구청에 하소연하는 주민들이 사는, 그냥 그곳.’ 13년 전 부암동으로 이사 간 다음날 이 자리에 쓴 글 말미다. 소설가 엄흥섭이 서울 바닥에선 만금을 주고도 사지 못할 양미만괴(凉味萬魁·더할 나위 없이 시원하고 서늘해 좋음)라 했던, 마루 끝 처마 그늘에 던져진 달빛 같은 북악산 자락의 이 부암동이 몰려드는 인파에 몸살을 앓는다. 청와대가 열리고, 청와대를 품은 북악산이 열리면서 덩달아 부암동도 열리는 모양이다.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내 이름자를 써 보고/흙으로 덮어 버렸습니다.’ 윤동주가 ‘별 헤는 밤’에 담은 부암동 언덕이 더는 수줍을 틈이 없어 보인다. 서울 도심 아무도 모르라는 이 비밀정원은 이제 어쩌란 말인가.
  • [길섶에서] 애물단지 TV/김성수 논설위원

    [길섶에서] 애물단지 TV/김성수 논설위원

    TV가 애물단지가 된 지 꽤 됐다. 마루에 달랑 한 대 있는데 보는 사람이 없다. 4년 전 집을 수리하면서 왜 47인치나 되는 대형 TV를 덜컥 샀는지 후회막급이다. 가뜩이나 좁은 집에 공간만 많이 차지한다. 볼수록 답답하다. 그나마 딸애가 몇 년 전까지는 국가대표 A매치 축구경기가 있는 날 TV를 켰다. 좋아하는 선수가 있어서 꼭 대형 TV 화면으로 경기를 봤다. 그것도 1년에 잘해야 한두 번, 요즘엔 그마저도 시들해진 모양이다. 아예 TV를 안 켠다. 작동은 되는지조차 의심스럽다. TV 대신 가족들은 다 휴대전화를 본다. 프로야구 경기도, 예능 프로그램도 휴대전화로 보는 게 더 편하다. 이어폰을 끼고 보면 더 몰입할 수 있다. TV는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그런데도 KBS는 시청료(TV수신료)를 전기요금에 붙여 따박따박 걷어 간다. 월 2500원인데 심지어 3800원으로 더 올리려고 한다. TV를 보든 안 보든 수상기가 있으면 무조건 내야 한다. 이상한 법이다. 이참에 아예 TV를 없애 버릴까.
  • [길섶에서] 잡초 단상/오일만 논설위원

    [길섶에서] 잡초 단상/오일만 논설위원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불필요한 풀.’ 잡초의 사전적 정의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재배하는 식물에는 ‘작물’, 불필요한 식물에는 ‘잡초’라는 잣대를 들이댄다. 인간의 이기주의 때문에 괄시를 견뎌 내야 하는 잡초는 억울하다. 인디언 사회에선 모든 생명이 존재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잡초라는 용어가 없다고 한다. 잡초의 목표는 확실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는 것. 잡초는 온 힘을 다해 버티고 갖은 방법으로 생존을 도모한다. 혹독한 인간 세상에서 이런 잡초 근성은 때론 무한한 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살겠다는 의지보다 농부의 살리려는 의지에 좌우되는 농작물과 다르다. 맛 좋고 건강에도 좋은 봄의 전령사 ‘비름나물’도 과거 잡초로 천대받았다가 뒤늦게 진가를 인정받은 사례다. 자신의 좁은 소견으로 주위 사람들의 가치를 멋대로 매기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된다. 배추밭 속의 귀한 산삼을 행여 잡초라고 구박하는지 살펴볼 일이다.
  • [길섶에서] 가면증후군/안미현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가면증후군/안미현 수석논설위원

    미국 백악관의 ‘입’이 바뀌었다. 아이티 이민자 집안 출신인 카린 장피에르다. 흑인 여성으로는 최초의 대변인이라는 사실도, CNN 여성기자와 결혼한 성소수자라는 사실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시선이 꽂힌 대목은 자신이 ‘가면증후군’을 앓았다는 고백이었다. 가면증후군은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순전히 운 덕분에 그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심리를 말한다. 언제 ‘가면’이 벗겨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필요 이상의 근면성과 성실성을 보이는 게 특징이다. 성공한 남자보다 성공한 여자한테서 더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아마도 오랜 편견과 구조적 차별에 더 많이 싸워야 했기 때문이리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방한 일정을 브리핑하는 새 대변인의 모습 뒤로 그가 흘렸을 눈물과 번뇌가 겹쳐진다. 유명 인사가 아니어도 한 번쯤은 가면증후군을 경험한다는 분석도 있다. 가장 좋은 치료법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는데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다.
  • [길섶에서] 동대구역사 101호실/박현갑 논설위원

    [길섶에서] 동대구역사 101호실/박현갑 논설위원

    예전의 철도역사는 기대감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장소였다. 여행객의 웃음꽃이 피는 곳이자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맞거나 배웅하는 만남과 이별의 장소였다. 요즘은 비즈니스 회의 공간으로도 인기다. 그제 대구가톨릭대 총장 인터뷰를 동대구역 역사 내 101호에서 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역사 1층 한켠에 있다. 사무실에는 줌 프로젝트도 있다. 원하면 노트북도 빌려준다. 대학본부가 있는 경산까지 가려면 다시 이동해야 하는데 시간 절약이 돼 좋다. 인터뷰 도중 고속열차들이 내는 소음이 올라오나 대화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10년 전 역사를 증축하면서 마련했는데 이용자들이 많다고 한다. 전통적인 플랫폼 사업이 교통망의 중심이라는 이점을 십분 활용한 셈이다. 조작 방법이 서툴러서인지 열차 내 와이파이가 연결이 안 됐던 점은 아쉽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재택근무가 확산될 전망이다. 공유 오피스도 많다. 이래저래 시대 변화를 고민하게 된다.
  • [길섶에서] 스마트렌즈/임창용 논설위원

    [길섶에서] 스마트렌즈/임창용 논설위원

    5월의 숲은 향기롭다. 집 인근 산책로 주변이 꽃 천지다. 길을 나서자 아카시아꽃 향이 가장 먼저 반긴다. 목질이 약해 나무는 천대받지만 향의 달콤함은 따라갈 만한 꽃이 없다. 군데군데 식재된 수국 꽃송이가 탐스럽다. 향이 나는 듯 마는 듯 은은하다. 나지막한 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찔레꽃이 한창이다. 알싸한 향이 코를 자극한다. 막 올라온 찔레 줄기를 꺾어 씹어 본다. 풋풋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찔레 덩굴 인근에 샛노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시골서 자랄 때 자주 본 듯한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럴 땐 스마트폰이 제 몫을 한다. 네이버의 ‘스마트렌즈’를 켜 촬영하니 ‘애기똥풀’이란 이름이 뜬다. 몇 걸음 더 가니 어른 키만 한 나무에 흰 꽃이 주렁주렁 달렸다. ‘때죽나무’라고 뜬다. 스마트렌즈는 식물이나 상품, 인물 등 거의 모든 피사체가 뭔지 알려 주는 ‘척척박사’다. 고맙긴 한데 걱정도 된다. 내비게이션 등장 후 길눈이 어두워진 것처럼 기억력이 퇴화하지는 않을까.
  • [길섶에서] 전지작업 유감/문소영 논설위원

    [길섶에서] 전지작업 유감/문소영 논설위원

    가로수 가지치기, 즉 전지작업은 이른 봄과 늦가을 지방자치단체에서 한다. 작업이 쉽지 않아 작업자가 위태롭게 보인다. 그런 생각도 잠시, 작업 결과를 보고는 화가 나는 일이 종종 있다. 여름이나 겨울을 날 수 있을까 걱정될 만큼 나뭇가지를 몽땅 자른 모습을 목도할 때다. 최근 서울 수색으로 가는 대로변 은행나무 수십 그루의 가지가 잘려 마치 연필처럼 돼 버렸다. 인간들에게 아름답거나 멋진 몸매가 있듯이 나무에는 나무의 몸매, 즉 수형(樹形)이라는 것이 있다. 나무의 종류나 환경에 따른 특징을 드러내는 뿌리나 줄기, 가지, 잎은 물론 전체 모양을 모두 어우르는 말이다. 나는 수형을 나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형태라고 생각한다. 인적이 드문 산에 마음껏 자라도록 내버려 둔 나무가 두 팔을 하늘로 향해 뻗어 낸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작업하는 분들도 다 이유가 있겠지만 생명인 가지 하나를 자르더라도 조심스러웠으면 좋겠다.
  • [길섶에서] 문학이 된 편지/박록삼 논설위원

    [길섶에서] 문학이 된 편지/박록삼 논설위원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비롯해 이광수의 ‘유정’, 남정현의 ‘분지’ 등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편지 형식을 띤 소설이다. 편지란 원래 내밀하면서도 개인적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 줄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 자체가 유장한 이야기이듯 절절한 삶의 순간순간을 담은 편지는 그 유장함의 편린이다. 편지가 문학이 되는 이유다. 젊은 시절 구기고 또 구겨 가며 썼던 그 밤의 편지들이 기억나는지. 당신이 언젠가 받았을 편지 역시 또 다른 젊음의 용기와 고통의 고백이었다. 서울 도봉구에 있는 ‘편지문학관’에는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간송 전형필, 민주화운동가 김근태의 옥중편지 등이 있다. 시대와 역사를 사는 열정과 지성의 불끈거림이 있다. 머무는 내내 편지지를 연주하듯 사각거리는 펜 소리 같은 것에 취하고 젊음의 열병이 절로 떠오른다. 꼭 둘러보시길. 돌아가는 길 당신의 발걸음이 어느 문구점 앞에 멈춘다면 편지를 보낼 누군가가 떠올랐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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