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민의 막론하고] ‘엘리트’를 뽑아야 조국이 산다
서양 철학사에는 세 번의 황금기가 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인들, 칸트와 헤겔의 근대 독일 철학자들, 그리고 20세기의 프랑스 사상가들이 주인공이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그에 맞선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파리의 논쟁을 곧 세계의 논쟁으로 승격시켰다. 라캉, 푸코, 데리다와 같은 지성들은 패션의 파리를 사상의 유행지로 만들었다. 프랑스가 현대 사조(思潮)의 키 스테이션이 된 데는 엘리트 의식이 단단히 한몫했다.
어떤 프랑스 연구자에 따르면, 히틀러 치하에서 프랑스 지식인들은 늘 조국을 의식했다. 국가가 입은 치욕을 자기가 당한 것으로 간주한 이들은 자신의 성취 또한 민족의 영광이 되기에 노력 또 노력했다. 전후 세상을 뒤흔든 철학의 폭발이 파리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내가 쓴 글 한 줄, 책 한 권에 조국의 위신이 걸려 있다고 자부하는 엘리트 의식이 사적인 이해를 초연하게 만들어 ‘위대한 프랑스’를 낳은 것이다. 사사로운 일도 공적으로 변환할 수 있는 능력자가 진짜 엘리트다. 타고난 머리에 노력을 더해 이뤄낸 지위와 성과를 뻐기는 실력파(meritocracy)는 진정한 엘리트가 아닌 것이다.
얼마 전 불거진 “직(職)이냐, 집이냐”의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