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겨울 길목에서/화가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겨울 길목에서/화가

    낙엽도 모두 떨어진 겨울 길목, 잠시 바람이 멈추고 햇살이 내려온다. 마당 한쪽에 앉아 있자니 새소리가 드높다. 아마 집 주변에 늘 날아다니는 딱새와 박새, 오목눈이일 거다. 요즘 한참 시끄럽게 나다니는 직박구리나 가끔 들르는 어치, 쇠딱따구리일 수 있고, 떼로 몰려다니는 물까치와 얼굴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리는 부엉이일지도 모른다. 닭을 키울 때는 가까이 마주할 기회가 많았었는데 지금은 멀찌감치 떨어져 살 길 찾는다. 고양이들도 사냥하는 기회가 줄어들었다. 그동안 살펴보면 고양이들이 많아도 새를 사냥해 물고 오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쩌다 둥지에서 떨어진 어린 새를 잡아오는 경우가 몇 번 있었을 뿐이다. 새 사냥이 쥐를 잡는 것보다 쉽지 않아 보였다. 닭을 키우며 사료를 주기 시작하면서 고양이들에겐 기회가 많아졌다. 아침저녁으로 사료 주는 시간이 되면, 닭장에 거침없이 들어와 당연한 듯 먹고 가는데, 온갖 잡새까지 키운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많은 새들이 몰려들었었다. 고양이들에겐 그보다 더 좋은 사냥터가 없었다. 주변 나뭇가지에 잠시 앉았다 닭장 철망을 지나 안으로 드나드니 새들에겐 빈틈이 생기고, 닭장 앞에 매번 진을 치고 기다리는 고양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가을에 피는 봄/화가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가을에 피는 봄/화가

    가을에 피는 봄. 잠시 그렇게 붙드는 순간이 있다. 굳이 찾으려 하지 않는데도 다가오는. 아직 온기가 느껴지는 볕 때문일까. 서늘한 가을 끝이 익숙해지고 아직 푸르기만 한 은행나무에 볕이 깊게 파고드는 즈음. 소담하면서 다채롭던 백일홍은 색을 내려놓은 채 갈변하고, 장미는 마지막 꽃 한 송이로 버티고 있다. 고운 천일홍도 조금씩 바래 가는데 구절초와 쑥부쟁이, 감국, 소국은 요즘 한창이다. 그사이 제비꽃들이 이곳저곳에 피어나 낯설게 눈길을 사로잡는다. 봄에 만나던 모습과 어찌 그리 다르던지, 어깨싸움 할 듯 왕성하게 피어나던 것과 달리 크기도 작고 흩어져 있으니 잠시 얼굴 보이곤 사라지기 바쁘다. 내년 봄을 위해 마지막 힘을 다한 것이겠지. 한때 목청껏 울어대는 수탉이 하루를 깨우고, 20마리 넘게 복닥거리는 닭장. 문을 열어 주면 부산스레 암탉을 몰고 다니던 풍경이 일상이었는데, 허물지 못한 빈 닭장으로 덩그러니 남아 있다. 닭 사료 넣어 주지 않으니 아침저녁으로 달려오던 참새 떼도 사라지고, 풀방구리 드나들듯 다니던 생쥐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고양이들이 물고 와 놀라게 할 뿐이다. 빈자리에서 적막함이 자라는 것인지 유난히 조용한 날, 마당을 정리하려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사람만 어른인 동물세상/화가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사람만 어른인 동물세상/화가

    가을이 그랬던가. 구름을 날려버린 청량한 하늘이 마냥 계속될 듯하더니 장맛비 같은 된비가 험상궂게 내리치고는 다시 푸른 하늘이다. 적막은 비 그치면서 깨지고 풀벌레 소리 높아지고 동네 개들 짖어대기 시작한다. 주인이 기척을 보이면 좋아라 짖어대고 배고프면 짖어대고 낯선 이가 지나가면 유난스레 더욱 짖어대어 조용히 기다리는 우리 집 개보다 더 신경 쓰게 하는 마을 강아지들. 시골에 내려오면 하고픈 일 중 하나가 마음껏 개를 풀어놓고 키우는 것, 그리고 함께 시골길을 산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사건과 사고의 연속이었다. 이웃집 할머니께서 늘 마주하던 개에 물리는 큰 사고가 있었고, 이웃집에서 키우는 닭들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하는 일이 생겨 충격을 주었다. 또 강아지와 고양이를 해치는 사고들도 연속이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개 등이 짧은 끈으로 묶여 살아야 하는 걸 무지하고 동물들에 대한 냉혹한 인식이라고 단순 치부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바람과 달리 동물들을 키우며 커지는 건 두려움이다. 많은 동물과 함께하며 더 많은 죽음을 접하게 되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잔혹함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감하게 바라보는 풍경 속에 나를 제외시킨 시선이란 왜곡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풍경 안에서/화가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풍경 안에서/화가

    입추 지나니 더위가 꺾인 듯하나 마당에 나서면 뜨거운 햇살 아래다. 더 뜨거워지기 전에 화단에 기승하는 바랭이, 깨풀, 여뀌들 솎아 낸다. 어느새 한 무더기 쌓여 간다. 고양이들이 언제 나왔는지 마당을 헤집고 다닌다. 주먹만 하던 아기 고양이들이 어느새 커서 각자 하고 싶은 바를 찾아다닌다. 그저 지켜보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재미난 것 없나 살피며 장난치는 녀석, 마당을 질주하며 노는 고양이들을 보자 하니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이 별스럽지 않다. 새들 노래하는 소리도 당연하고, 귀뚜라미 쓰르라미 여치 우는 소리도 새삼스럽지 않다. 달려드는 모기도, 나무에 톡톡 튀어 다니며 하얗게 만드는 미국선녀벌레도 유별나지 않다. 집 안을 기어 다니는 돈벌레나 거미들 때문에 놀라 호들갑 떨던 때가 언제였나 싶다. 제비, 어치, 박새, 오목눈이와 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꾀꼬리, 후투티, 물까치 등이 몰려오면 카메라를 꺼내 사진 찍기 바빴는데 이젠 그러려니 무심히 바라보게 된다. 마당과 숲을 종횡무진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이 달고 오는 벌레들과 물고 오는 뱀이나 쥐, 새들도 놀랍지 않게 돼 간다. 그러자고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닐 텐데 어느새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서울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함께 사는 그들, 고양이/화가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함께 사는 그들, 고양이/화가

    “우다다다다다! 우다다다다다 우당탕!” 아침부터 새끼 고양이들 뛰어다니는 소리로 집안이 소란스럽다. 밥그릇에 사료를 부어 주니 우르르 몰려들어 밥을 먹고는 한여름 소나기 쏟아지듯 우당탕탕 뛰어다니다가 금세 아무 데서나 잠이 들어 버린다. 그제야 주섬주섬 녀석들이 흩트려 놓은 물건들과 지저분해진 집안 청소를 한다. 이것도 한때려니 생각하며. 태어나 어미 품에서 놀던 새끼 고양이들은 이제 마당을 휘젓고 다닌다. 집안에서 눈 뜨자마자 싸우며 놀던 녀석들이 마당에 나가 뛰어다니고 나무를 오르내리며 놀다 볼일도 화단에서 처리한다. 그 곁에서 새끼들과 함께 뛰어다니며 노는 어미들, 아직 함께하며 즐기는 모습이다. 새끼들을 쫓아다니며 챙기는데 한번은 개가 쫓아오자 순식간에 달려들어 쫓아내는 모습을 보고 기겁한 일도 있다. 점차 어미 고양이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새끼 고양이들은 독립적으로 활동할 것이다. 스스로 돌아다니며 사냥해 조만간 잠자리를 비롯해 나비, 개구리, 뱀, 쥐까지 사냥해서 가지고 들어올 것이다. 집안에 쥐가 없는데 고양이 때문에 쥐가 생길까 바짝 긴장해야 한다. 지나고 보면 그것도 한때이다. 새끼 고양이들은 성격이 하나같지 않아 처음부터 사람을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무덤덤해지는 유월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무덤덤해지는 유월

    하양과 까미. 지난겨울 산책길에서 잠깐 봤는데 집까지 따라온 어린 길냥이들이다. 근처에 엄마고양이가 보이지 않아 먹이를 챙겨 주다 보니 집에 머물게 되었다. 처음 사료를 내주었을 때 많이 배고팠는지 어린 고양이용 사료가 아님에도 허겁지겁 먹던 기억이 난다.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 먹는 것도 부실한 탓일까 유난히 작은 두 녀석, 기존에 사는 도도네 9마리 고양이들과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에 내칠 수 없고, 봄 되면 어른 고양이가 될 것이고 자연스레 나가려니 생각했다. 9마리도 많은데 또 고양이를 키우냐는 주변의 만류에 ‘이 추위에 밖에서 지내면 죽고 말거야’라며 겨울을 보냈다. 기지개 켜며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봄, 덩치만 봤을 때 아직 어린 두 녀석은 집밖을 들락거리더니 하양이는 5마리, 까미는 4마리 새끼를 낳았다. 주변에선 벌써 걱정하는 소리들이 쌓여 갔으나 ‘우선 생명이니 살리고 보는 것이 먼저다’ 하고는 돌보았다. 낳을 때 처리를 잘 못하기에 일일이 태를 갈라 주고 씻겨 줘야 했던 까미는 젖몸살을 심하게 앓아 젖 먹이는 내내 울어대고, 뭉친 걸 풀어 준다고 매일 찜질해 줘야 했다, 한바탕 눈병이 돌아 눈 닦아 주고 먹이 챙겨 주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오월인데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오월인데

    오월인데 여전히 서늘함을 벗어나지 못한 날들이다. 그럼에도 꽃은 서둘러 피고 지고 또다시 새로운 꽃들이 만발하고 있다. 어데 꽃만 피던가. 이사 왔을 때 나무와 꽃도 많았지만 처음 보는 것도 많았다. 주로 건강에 좋다고 회자되는 것들이었다. 항암에 좋다는 와송과 관절에 좋다는 우슬초, 삼채와 조릿대도 무성하게 자리하고 두릅과 엄나무, 가시오갈피 등등 이름만 들었던 것들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아니 정리했다. 우슬초 같은 것들은 굳이 울타리 안에서 키울 일인가 싶어 정리했고, 조릿대는 근사한 풍경을 만들어 주지만 깊은 뿌리 뻗음으로 주변 나무 성장을 방해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뿌리를 캐내려 했으나 쉽지 않아 순이 올라오는 대로 쳐냈더니 조금씩 화단에서 밀려나는 중이다. 두릅과 엄나무는 봄철 최고의 맛을 제공하지만 화단에서 집 경계선 쪽으로 밀려났다. 잔디에 무수히 올라오는 잡초를 보다 보면 마당을 시멘트로 덮어버린 이웃집들이 이해된다. 잔디를 키우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잔디 깎는 것도 일이지만 그보다 봄철 잔디보다 먼저 올라오는 잡초를 잡는 일이 더 어렵다. 처음에는 보이는 대로 뽑기 바빴는데 요즘에는 한 종류씩 없애고 있다. 하루는 부지깽이만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부산해지는 봄날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부산해지는 봄날

    언덕 경사지에서 자라는 생강나무 좀 낮게 키울 요량으로 전지를 했다. 굵은 나무는 잘라 쌓아 두고 꽃 피어 있는 가지를 화병에 꽂아 두었다. 이미 피어 있는 노란 꽃 사이로 잎이 나오고 있다. 마당에는 수선화가 노란 꽃을 피우고, 튤립이 꽃대를 올린다. 매화와 살구꽃이 한창이고 앵두꽃도 하얗게 피고 있다. 그렇게 봄을 맞이하니 춥다고 미뤄놓은 일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화단 지나는 길 손보고, 계단 만들어야 하고, 닭장으로 가는 길에 블록 깔아 주어야 하고, 데크와 현관문 칠해야 하고, 쥐가 드나들기 시작한 닭장 손봐야 한다. 지난해 기록적인 폭우로 무너진 돌담도 마저 보수해야 하고 울타리도 설치해야 한다. 무슨 일이 끝도 없다. 대부분 새로 만들기보다 고치고 보완해야 하는 것들이다. 이사 와서 새로 만든 창고와 닭장, 텃밭상자와 아궁이. 창고는 방치와 보수로 점철되고, 퇴비장은 몇 번을 만들었던지. 아궁이는 좀더 편리하고 적당한 자리 찾는다고 서너 번은 만들고 허물고 그랬다. 화단은 구성이 달라지고, 지하수 쓰다가 수도를 놓으며 수돗가는 처음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공사로 잔디가 뒤집어진 것이 서너 번이다. 늘 그대로인 듯한 집과 마당은 오늘도 꿈틀거리며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밀려오는 봄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밀려오는 봄

    곧 밀려올 봄이려나. 바람이 몹시 분다. 꽃샘추위에 손끝 얼얼하던 때가 엊그제인데 무슨 바람이 들어 이리 서둘러 쫓아보냈는지, 바람 속에 있어도 손끝 얼지 않고, 뺨이 베이지 않는다. 소리 없이 분주해지는 마당. 겨우내 갇혀 있던 닭들 풀어놓으니 살판났다. 얼음 풀려 가는 마당을 헤집고 다니니 아주 신이 났다. 몰려다니면서 파밭, 마늘밭 망가뜨린다고 엄마는 한마디 하시지만, 뒤뚱거리는 모습이 꼭 봄을 재촉하는 듯 보여 즐겁기만 하다. 그래도 마냥 풀어놓을 수 없어 들어가라 신호하면 알아서 닭장으로 들어간다. 마당 고양이들은 늘 그렇듯 한가히 노닐며 봄을 맞는 듯하다. 지난가을 집에 들게 된 아기 고양이 두 마리가 벌써 6개월이 되어 간다. 중성화시키지 않았더니 짝 찾아 헤매는 낯선 고양이가 무시로 찾아온다. 짝 찾는 유난스러운 그 소리에 집에 사는 고양이 가운데 무시하는 녀석도 있고, 영역을 침범당했다는 듯 대거리하는 녀석도 있고, 꼬마 고양이들은 반응한다. 중성화시키면 간단히 정리되겠지만, 중성화시킨 집 고양이들을 바라보면 편하기는 한데 중성화 수술이 최선일지 마음 한구석 자리한 미안함에 고민만 쌓여 가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있는 고양이도 많은데 더 늘릴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구멍숭숭 닭장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구멍숭숭 닭장

    한때 닭장 안에 20마리 넘게 복닥이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수탉 한 마리, 알 낳는 암탉 한 마리, 알 낳는 것에 소질 없는 뚱뚱한 암탉 한 마리 그렇게 세 마리다.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지나며 수탉은 벼슬이 얼어 허옇게 변했고 암탉은 털갈이하며 빠졌던 털이 다시 나기는 하나 여전히 까칠한 모습으로 이 겨울을 나고 있다. 세 마리밖에 없는데도 사료를 챙겨 줄 때마다 수탉은 먼저 먹으려 하고 빼앗길까 부리로 작은 암탉들을 쪼아대기 바쁘다. 넉넉하게 준다 하는데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이유가 적지 않다. 처음 닭장을 지었을 때 인터넷으로 보던 고급스런 닭장 못지않은 이쁜 모습에 감탄을 했었다. 비도 들이치지 않고 흙목욕 하기에 충분히 넉넉한 공간, 산란장도 깔끔하게 분리돼 있어 닭들은 알도 많이 낳아 주고, 겨울이면 불거지는 조류독감이란 힘든 고비도 잘 넘기니 안심했었다. 대부분 문제는 살다 보면 절로 드러나게 돼 있다. 매일 쌓여 가는 일상이란 맛있는 달걀을 얻고 멋진 닭들이 노니는 유유자적한 모습만이 아니라, 먼지와 배설물이 뒤섞인 환경을 만나는 것이고 다툼과 경쟁 속에서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었다. 닭을 키우는 것인지 참새를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함박눈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함박눈

    오랜만에 세상이 하얗다. 겨울 가뭄이 길게 이어지다 함박눈이 한없이 내리니 그 풍경에 눈을 거두기 어렵다. 새삼 한겨울 눈 쓸며 고생했던 일이 언제였던가 싶다. 겨울만 되면 눈 치우는 일이 걱정될 정도였는데 생각해 보면 몇 년 사이 눈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별로 없다. 올여름 고생했던 8월 장마처럼 기후변화는 이미 현실인 것. 건넛집에서 눈 쓰는 소리가 들려온다. 눈삽과 빗자루 들고 나서는데 고양이들이 먼저 쌓인 눈에 발자국을 찍는다.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여도 눈이 녹는 자리가 있고 영상으로 올라가도 녹지 않는 자리가 있다. 우선 마당식구들에게 가는 길 쓸어내고 그늘져 빙판이 될 자리 눈도 치웠다. 모자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어깨에 쌓인 눈도 툭툭 털어내며 집으로 들어오니 안경에 하얗게 김이 서린다. 엄마가 방금 쪄낸 만두를 그릇에 담아내어 주신다. 날이 추워지니 마실 나간 고양이들이 일찍 들어온다. 그 뒤로 새로 집에 거주하게 된 꼬마 냥들이 따라 들어온다. 데크에 집을 마련해 주었는데도 연신 집안으로 들어와 놀기 바쁘다. 아직도 어린 녀석들인데 밖은 더 추워지지만 쫓아내기 바쁘다. 그러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집고양이를 공격할 것이라는 걱정들이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바람 불어 낙엽 쌓이니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바람 불어 낙엽 쌓이니

    짙어 가는 가을이다. 서리 내리고 찬 바람 부니 조금씩 텃밭은 비어 가고 낙엽만 쌓여 간다. 소소히 수확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텃밭생활이 막바지에 다다르며 비우는 계절이 다가오는 것이다. 서리 내린다는 소식에 무를 수확해 엄마는 동치미를 담그시고 나는 닭장을 치우기로 했다. 1년에 한 번은 해야 하는 닭장 청소다, 키우는 닭이 많을 때는 치우는 것도 힘들더니 세 마리밖에 안되니 일도 아니다. 그동안 딱딱하게 굳은 것도 얼마 안 되어 쉽게 걷어내고 왕겨를 새로 깔아 주었다. 걷어낸 계분은 자루에 낙엽과 함께 켜켜이 넣고는 묶어 보관한다. 처음 멋모르고 닭장에서 꺼낸 계분을 그냥 텃밭에 뿌렸더니 그러면 독해서 못 쓴다고 동네 할머니가 알려 주어 텃밭에서 걷어내던 일이 생각난다. 이제는 꼭 한 해 묵히고 발효된 것 확인하고 텃밭에 뿌려 준다. 무를 수확하고 난 밭에 그동안 만들어 놓은 퇴비를 넣어 주었다. 처음 음식물 쓰레기로 만들었던 퇴비를 꺼내 보니 까맣게 잘 부숙돼 있었다, 작년에 만들어 놓았던 계분 삭힌 것과 함께 빈 밭에 뿌려 주었다. 어설프게나마 농부님들 하는 것 배워 조금씩 따라하고 있는데 수확하는 것보다 땅 가꾸는 법을 배워 가니 그 즐거움이 더 크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달빛 스며드는 가을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달빛 스며드는 가을

    어느새 바람이 차다. 추석 명절에 비가 내리고 난 뒤 부쩍 서늘하다. 성큼성큼 짙어 가는 가을.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으며 배추는 잎을 더해 가고 무는 벌써 밑동이 커져 간다. 오이는 마른 줄기를 걷어냈는데 호박은 추워지기 전 더 많은 열매를 내주려는 둣 까실까실 성성하다. 여전히 마당일을 하다 보면 땀이 흐르지만 금방 식어버리고 저녁은 따뜻한 것이 좋기만 하다. 어디 사람만 그러할까. 더운 날 밖에서 지새우던 고양이들이 저녁 되면 따뜻한 집안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뿐 아니라 길고양이들도 들어오고 싶어 창문 밖에서 기다리곤 한다. 고양이를 처음 키우기 시작했을 때 막연히 갖고 있던 것은 자유였다. 사람들에게 구속받지 않고 스스로 사냥도 하고 마을이며 숲속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즐기다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듯하다. 3년 정도 지나고 보니 자유롭게 풀어 놓고 얻은 건 잘못되지 않을까 노심초사, 애타는 일이었다. 집 밖의 세상이란 사람들이 농사 망친다고 화를 내고 돌 던져 쫓겨다녀야 하는 곳이고, 떠도는 개들에게 사냥당할 수도 있고, 고양이들끼리 영역 다툼으로 노상 싸움이 일어나는 곳이다. 점차 다치고 들어오는 일이 잦으니 어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9월을 맞는 풍경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9월을 맞는 풍경

    여전히 한여름 폭염과 폭우가 교차하는 나날이다. 긴 장마가 끝나고 그 피해를 다독이기도 전에 태풍이 오더니 한여름 소나기가 무시로 드나든다. 장마가 끝나긴 한 건지 모르겠다. 곰팡이가 신이 났다. 청소가 길어지는 날들이다. 가을을 준비한다고 작은 텃밭에 무 파종하고 배추모종 심었는데 벌써 구멍이 숭숭 뚫렸다.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달팽이들이 떼로 신이 났다. 다시 모종을 사기로 했다. 풀들이 어찌나 무성해지는지, 마을 이곳저곳에서 예초기 돌리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호미로만 풀 잡는 게 힘들어 예초기를 샀는데 그렇게 편할 수 없다. 신나게 풀을 깎다 잘못해서 수세미 줄기를 잘라 버렸다. 여름 내내 키우던 수세미를 다 망쳐버렸다. 밤 떨어지는 계절이다. 벌레들이 먹기 전에 부지런히 모아야 한다. 경사진 언덕 위에 많이 떨어져 있을 텐데 긴 장마에 경사길이 위험할 수 있어 포기했다. 청설모에게 양보하는 것이라고 둘러대기로 했다. 잠잠해지나 했던 코로나로 거리는 한산해지고 그림자는 숨기 바쁘다. 장마 끝에 나온 쓰레기를 정리해서 버리는데 마스크 쓴 이웃이 반갑게 인사한다. 아차! 마스크를 쓰지 않고 나왔다. 짧게 인사하고 말았다. 그렇게 거리를 두어야 서로를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연일 내리는 빗속에서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연일 내리는 빗속에서

    장미도 지고, 백합도 지고, 접시꽃도 연일 내리는 비에 꽃을 떨구니 마당은 짙은 녹음만 왕성하다. 이맘때쯤 무더위에 비를 기다리곤 했었는데 올해는 초복 지나 중복이 지나는데도 비 소식이 연이어 계속되고 있다. 고추와 가지는 키만 껑충 크고, 호박과 오이는 계속된 빗줄기에 무시로 꽃을 떨군다. 넝쿨은 거침없이 마당을 덮어 가고 있고 잡풀은 제 세상 만난 듯 성성하다. 잠시 비 멈춘 사이 보이는 청명한 하늘. 빗소리 줄어드니 새소리 높아지고 풀벌레 소리 들려오기 시작한다. 요즘 기후온난화 탓으로 나방이 떼로 나타났다는 소식에 집을 살펴보니 데크 기둥이며 처마 아래 나방이 많이 붙어 있다. 간단히 떼어낼 것은 떼어내고 그들만이 아니지 싶어 다른 곳을 살펴보았다. 연한 잎에는 진딧물이 붙고, 씨 맺으려는 루콜라에는 노린재들 잔치 벌이고, 나무들에는 선녀나방들이 하얗게 붙어 있다. 그것 없애 보겠다고 인터넷에 떠도는 천연방제법을 따라해 보고 포충기를 만들어 달아놨지만 어째 코웃음 치는 듯 기세가 여전하다. 더이상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고 비 그친 사이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더이상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니 풍경은 새로 얻은 거리감으로 다가오며 묻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끝없는 일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끝없는 일

    한여름으로 들어서 비가 오지 않는 날이 길어지고 있다. 매일매일 물 주는 것이 일이다. 풀도 뽑아야 하고 가지치기한 나무들은 여전 한쪽에 쌓여 있다. 매일매일이 일이다. 전원생활이란 낭만을 기대하지 않았어도 도시 살 때와 달리 일이 많다고 느껴지기 일쑤이다. 과연 그런가? 일의 종류가 달라지며 요령이 없으니 모든 걸 힘으로 해결해야 했다. 간단한 호미질도 익숙하지 않아 힘이 들고 쭈그려 앉아 바늘 찾듯 풀을 뽑다 보면 시간조차 주저앉은 듯 답답함이 밀려오곤 했다. 넝쿨을 조금만 방치하면 들어서기 어려울 정도로 무성해지고 그 무성한 사이에 벌레들은 신나게 자리하고 가끔 새 둥지도 발견하고 그랬다. 모든 게 어설프니 힘이 든다고 투덜대는 시간이 많았다. 모르기에 막막했던 날들이었다. 일이 힘든 것은 힘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라 우선 풀에 대해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잡초라 불려도 이름 없는 풀은 없는 법. 모를 때는 모든 것이 풀이고 제거해야 할 것이었는데 이제는 아는 것부터 제거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화단에서 제일 귀찮은 괭이밥은 꽃 필 무렵 씨방이 터지기 전에 뽑으니 쉽게 잡혔다. 작은 것을 일일이 뽑아내려면 쉽지 않지만 포복하듯 줄기를 뻗친 것은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함께 깃들여 살아가는 곳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함께 깃들여 살아가는 곳

    여름 철새 후투티가 마당 안으로 날아들었다. 작년에 처음 보고 또 오리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다. 근처에 둥지가 있는 모양이다. 화려한 모습을 보면 사람을 피해 숨을 듯한데 의외로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하지 않은 새다. 반가운 손님인 양 나가서 사진을 찍는데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보더니 후르르 날아가 버린다. 후투티는 일부러 둥지를 만들지 않고 만들어져 있는 나무 구멍이나 지붕 처마 등에 알을 낳는다는데 숲이 가까이 있고 딱따구리가 자주 보이는 동네니 둥지 틀 자리는 많을 듯하다. 오디새라고도 하는데 집에 뽕나무가 있어서 찾아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점차 벌, 나비도 많이 날아들고 파리, 모기뿐 아니라 온갖 벌레들도 왕성해지는 계절이다. 꾀꼬리는 벌써부터 깃들여 노래를 하고 있고 뻐꾸기와 검은등뻐꾸기도 등장해 계절을 알리고 있다. 문득 나는 주인일까 손님일까. 손님이란 다른 곳에서 주인을 찾아온 사람을 말한다. 승객이나 고객처럼 잠시 이용하고 떠나는 사람을 지칭하기도 한다. 손님이 떠나도 주인은 뒷설거지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사람이 주인이라 해도 그들이 보기에 손님처럼 보일 것이고, 손님처럼 찾아들었어도 이곳을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봄날의 선택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봄날의 선택

    완연한 봄빛에 마당이 점차 차오른다. 허전한 공간을 채우기 위해 심은 나무들이 자리를 잡아가며 몸집을 키우고 있고 꽃들은 순차로 피어나고 있다. 초봄에 반갑던 냉이와 쑥을 지나고 보니 어느새 마당은 풀천지다. 잡풀은 잔디보다 먼저 마당을 차지하기 시작하고 수선화와 튤립, 할미꽃 사이사이에 별꽃과 꽃다지, 개미자리가 가득하다. 매화가 피고 지고, 살구가 피고 지고, 목련이 피고 지고, 수선화가 피고 지고, 튤립이 피고 지며 계속 얼굴을 바꾸어 가는 화단에 잡풀들은 조용히 자리를 확장하는 중이다. 집에 고양이가 많다. 함께 사는 고양이 9마리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매번 들어오는 녀석과 밥만 좀 먹자고 들어오는 녀석, 그리고 지나갈 때마다 으스대며 힘자랑하는 동네 검은고양이. 집에 사는 고양이들은 3년쯤 되니 뛰어다니며 말썽 부리는 일이 줄고, 뭐든 사냥해서 물어 오던 것도 줄어들어 시끄러울 일이 많지 않다. 문제는 집을 배회하며 영역싸움을 하는 3마리 수컷 ‘길냥이’들이다. 서로 보기만 하면 살벌하게 싸우는데 셋 중에서 집에 들어오려는 고양이가 특히 표적이 돼 상처가 심하다. 도와주고 싶은데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약이라도 발라 주려 하면 도망가기 바쁜데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곱게 오는 봄 없다지만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곱게 오는 봄 없다지만

    따뜻한 겨울을 보냈기에 어느 때보다 이른 봄을 맞이할 줄 알았다. 한낮에는 영상으로 올라가 따스하지만, 영하로 떨어지는 새벽에는 여전히 움츠러들만큼 서늘하다. 어둠이 물러가는 것을 먼저 알고 수탉이 울듯이 마당에서 자라는 화초들이 계절 변화를 먼저 알고 움트는 것이 봄이겠다.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부풀어진 땅을 뚫고서 새싹들은 돋아나고, 봄을 맞이한 나무에는 겨우내 붙잡고 있던 새순이 통통하게 야물어져 간다. 언제 꽃 피려나. 아랫녘에는 매화꽃이 벌써 피어나고 산수유 노란 꽃이 앞다퉈 피어나던데 생각해 보면 늘 이맘때 봄을 기다리는 것이 버릇인 듯하다. 기다리는 매화는 3월 중순 넘어야 꽃을 보여 주었고 그즈음 돼야 수선화도 꽃대 올리고 할미꽃도 벙그러지기 시작했었다. 겨울이 따뜻했든 그렇지 않았든 봄은 어서 와야 한다고 억지 부려도 될 그런 계절인가 보다. 키 작은 크로커스가 첫 꽃을 내보이는 날, 엄마는 냉이를 한 아름 캐오셨다. 혹여 걱정돼 주변에 사람들 나왔냐고 물으니 혼자서 캐셨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쑥이며 냉이, 달래, 고들빼기 캐다 보면 아주머니들과 자연스레 함께해 이런저런 이야기 섞으며 시간을 보냈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니 걱정이 앞선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봄이 오기 전 찬 바람을 붙들다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봄이 오기 전 찬 바람을 붙들다

    아직 봄이 온 것은 아니겠지?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을 보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올해는 유난하다. 겨우내 눈이 두어 번 내렸지만 눈 쓸었던 기억이 없고 겨울비가 장맛비처럼 내리기도 했다. 새벽에 커튼을 젖히면 보이던 유리창 하얀 서리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다. 추울 때 추워야 풍년이라 하는데 이렇게 따뜻한 겨울을 보내니 올해는 병충해가 극성스럽겠다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꽃은 서둘러 피어나겠지. 작년에 겨우 꽃 하나 피우던 박태기가 줄기에 다닥다닥 꽃눈 붙이고 때를 기다리고 있어 둘러보니 살구나 매화도 그러하다. 벌써 촉을 올린 수선화와 튤립은 겨울비 지나며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다. 가을에 덮어놓은 낙엽이 손대면 힘없이 바스러지는 요즘, 성난 추위에 봄이란 말을 읊조리면서도 봄이 올 것 같지 않은 입춘을 맞는 때이건만, 벌써 봄을 맞이한 듯 계절을 앞서니 문득 계절과 계절 사이 기다림이 자리하던 빈자리가 사라진 듯하다. 기다림이 길수록 봄은 찬란히 빛나리니 추위가 빨리 사라질까 붙들고 싶은 맘이다. 춥지 않다고 따스한 것은 또 아닌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려 사람 사이 온기마저 두려운 세상이 됐다. 서로 가까이 하는 데 주저하게 되니 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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