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아마추어 사진 애호가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아마추어 사진 애호가

    사진을 취미로 삼게 된 건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무렵이다. 어느 날 문득 카메라에 눈길이 갔다.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꿈이 떠올랐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여건도 안 되고 소질도 대단치 않아 주저앉았던 것이다. 그림 대신 사진이었다. 디지털 시대라 필름 부담 없이 마음껏 찍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내겐 필름카메라의 추억 같은 건 별로 없다. 20년 가까이 취미 사진을 찍으면서 단체로 출사라며 몰려다닌 적은 한 번도 없다. 사진은 철저히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앨런 하비의 말대로 “사진은 몰려다니면서 찍는 것이 아니다.” 사진을 좋아한다면서 단체로 몰려다닌다는 것은 토끼가 헤엄을 치는 것만큼이나 안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남이야 뭐라 하건 내 생각은 그렇다. 크고 무겁고 비싼 카메라를 가져 본 적이 없다. 늘 휴대하기 좋은 무게와 크기의 카메라를 선택하려 했다. 피터 린드버그는 “사진의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별하는 기준은 누가 더 좋은 카메라를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사진기를 손에서 놓지 않느냐다”라고 말했다. 광각 줌렌즈 끼운 카메라, 그게 거추장스러우면 작은 팬케이크 렌즈 끼운 카메라 한 대를 항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껍데기는 가라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껍데기는 가라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마을마다 직장마다 민방위 조직이 있었다. 그 무렵 우리 동네에는 옷가게 심 사장님이 민방위 대장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이분이 틈만 나면 은근히 뽐내면서 말끝마다 “나도 대장인데”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가만히 들어 보니 앞뒤 문맥으로 보아 ‘대장’(隊長)을 ‘대장’(大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황당한 착각이지만 ‘완장’과 ‘감투’를 지향하는 일반적인 국민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리라. 어이없는 착각 속에 살았던 심 사장님의 귀여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진짜 별 넷짜리 대장 이야기도 있다. 2002년에 작고한 군 원로 이야기다. 대한민국 육군 장교 군번 1번 이 아무개 대장이다. 이분은 진짜 ‘대장’(大將)이다. 고교 선배인 이분을 고등학생 시절 직접 뵌 적이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만난 건 아니다.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육군 대장을 무슨 수로 만나겠는가? 이분이 선배 자격으로 모교를 방문해서 조회 시간에 전교생을 운동장에 모아 놓고 꽤 긴 시간 연설을 하신 것이다. 그분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지금 전혀 기억이 없다. 그러나 딱 한마디만은 도저히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여러분 중에서도 나같이 훌륭한 사람이 많이 나오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불운이 행운을 낳다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불운이 행운을 낳다

    포르투갈의 항해자 마젤란(1480~1521)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 일주 항해에 성공했다. 마젤란을 포함해 당시의 유럽인은 대서양 서쪽의 신대륙 반대편에 ‘인도양’이 있을 줄로 알았다. 태평양이 가로놓여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문제는 대서양에서 인도양으로 가는 통로가 어디인가였다. 마젤란은 남아메리카 남단에 ‘인도양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다는 ‘기이한 확신’을 품고 모험 항해에 돌입한다. 그의 절대적 확신은 독일의 지리학자 마르틴 베하임(1459~1507)의 보고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베하임의 보고서가 남위 40도에 위치한 라플라타강의 거대한 하구(河口)를 ‘인도양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착각한 오류였다는 사실이다. 베하임의 보고서를 근거로 거창한 세계 일주 계획을 세웠을 때 마젤란은 잘못된 자료에 현혹돼 있었다. 그가 ‘절대적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비밀의 열쇠는 ‘오류를 진정으로 믿었고 진정으로 받아들였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누가 이 오류를 경멸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오류 덕분에 태평양의 존재도 알려졌다. ‘태평양’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도 마젤란이다. 시대정신에 부합하고 우연에 의해 인도되면 가장 어처구니없는 오류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효도 대행 서비스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효도 대행 서비스

    수주(樹州) 변영로(1898~1961)는 1919년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했고,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고’로 시작하는 시 ‘논개’를 쓴 시인이자 영문학자다. 그의 ‘명정 40년’(酩酊四十年)은 1953년 서울신문사에서 처음 출간됐다. ‘명정’은 술에 취했다는 뜻이니 술과 더불어 산 40년 인생을 돌아본 수필집이다. 그는 한학자 위당(爲堂) 정인보(1893~1950)와는 어려서부터 친구였다. 한 살 차이로도 선후배 가르기 좋아하는 요즘 세태와 달리 이 시절에는 다섯 살 차이쯤은 전혀 문제가 안 됐다. 수주는 위당 집을 출입하면서 위당의 부친과도 자주 만났는데, 위당은 부친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다. 수주의 20대 후반 시절 이야기다. 위당의 부친은 술은 좋아하는데 술벗은 많지 않아 늘 적적했다. 위당이 이를 안타깝게 여겼으나, 자식 된 도리에 늙은 아버지와 함께 술집을 다닐 수는 없었다. 게다가 위당은 술을 좋아하지 않는 샌님 타입이었다. 그래서 한 번은 “여보게 수주, 오늘 우리 아버지를 모시고 술집에 좀 가 주게”라고 부탁했다. 이를테면 친구더러 효심을 대행하여 달라는 안타까운 주문이었다. 수주는 거절하려 했으나 친구의 효심을 생각해 기꺼이 승낙한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엄마와 숨바꼭질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엄마와 숨바꼭질

    피천득(1910~2007)의 수필에는 동심이 이상향으로 등장한다. 그래선지 그의 글에는 엄마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엄마와 숨바꼭질을 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나’는 엄마를 쉽게 찾아내는데, 엄마는 왜 ‘나’를 금방 찾지 못했는지 그 시절엔 몰랐다고 말한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엄마와 나는 숨바꼭질을 자주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를 금방 찾아냈다. 그런데 엄마는 오래오래 있어야 나를 찾아냈다. 나는 다락 속에 있는데, 엄마는 이 방 저 방을 찾아다녔다. 다락을 열고 들여다보고서도 ‘여기도 없네’ 하고 그냥 가 버린다. 광에도 가 보고 장독 뒤도 들여다본다. 하도 답답해서 소리를 내면 그제야 겨우 찾아냈다. 엄마가 왜 나를 금방 찾아내지 못하는지 나는 몰랐다.” 요즘으로 치면 과외공부 하러 간 학원에서 ‘땡땡이’를 쳤다가 엄마에게 들통나서 종아리 맞고 울던 일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한번은 글방에서 공부하다 몰래 도망쳤다. 너무 시간이 이른 것 같아 한길을 좀 싸돌아다니다가 집에 돌아왔다. 내 생각으로는 그만하면 상당히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그런데 집에 들어서자 엄마는 왜 이렇게 일찍 왔느냐고 물었다. 어물어물했더니 엄마는 회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영웅과 양떼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영웅과 양떼

    뉴스 댓글들을 읽다 보면 정신이 아득할 때가 종종 있다. 본문을 오독하고 엉뚱한 댓글을 쓰는 경우다. 하지만 지식인, 학자라고 해서 오독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9세기 영국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의 ‘영웅숭배론’도 많은 이들이 오독했다. 제목부터가 오해 사기 딱 좋다. 영웅이 역사의 흐름을 결정짓는다는 ‘영웅사관’으로 지목돼 많은 비난을 받았다.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도 칼라일은 영웅사관의 대표격으로 등장한다. 사실 영웅이란 말 자체가 전사(戰士)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기 때문에 영웅 숭배는 자칫 ‘군인 영웅에 대한 수동적 복종’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칼라일이 영웅으로 호명한 인물들은 대부분 전사와는 거리가 멀다. ‘영웅숭배론’에 나오는 루터, 단테, 셰익스피어, 루소 등을 누가 전사라고 부르겠는가. 칼라일의 영웅은 도덕성을 갖춘 진실한 인간을 의미했다. 그는 ‘숭배’를 ‘존경’과 같은 의미로 썼다. 따라서 영웅숭배란 ‘진실한 인물에 대한 존경’이다. 칼라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위인 중 가장 위대한 인물’로 지목하기도 했다. 칼라일이 말한 ‘숭배’는 상급자에 대한 맹목적 복종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존경이다. 철학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체르노빌, 후쿠시마, 우리 아이들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체르노빌, 후쿠시마, 우리 아이들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을 봤다. 전 세계 각종 매체와 시청자들의 극찬을 받은 이 드라마는 고증이 거의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구소련 체르노빌에서 1986년 4월 26일 있었던 원전 폭발 사고를 다룬 이 드라마는 사건의 전개 과정과 피폭자들의 참혹한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 준다. 진실을 밝히려는 과학자들의 투쟁도 존경스럽지만, 노심의 완전 용해를 막고자 투입된 광부 400명의 헌신도 감동적이다. 방사선 피폭으로 그들 중 100명 이상이 40살을 못 넘기고 죽었다고 한다. 그들이 실패했더라면 방사능이 지하수와 강을 타고 흘러가 흑해가 오염됐을 것이다. 흑해는 지중해로 흐른다. 아찔하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봤지만, 보는 내내 이렇게 힘겨웠던 경우는 없었다. 귀신이 이보다 무서울까? 연쇄 살인마가 이보다 흉악할까?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이 이보다 참혹할까 싶다. 이 모든 비극은 체르노빌로 대표되는 원전 사고에 비하면 오히려 시시해 보일 정도다. 종말론은 흔히 셋으로 나뉜다. 개인적 종말론은 개인의 죽음과 관련되며, 민족적 종말론은 국가나 민족의 멸망과 관계된다. 우주적 종말론은 전 지구 차원에서의 최후 멸망을 가리킨다. 영화 ‘터미네이터’ 등에서 다루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차이’를 뛰어넘은 우정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차이’를 뛰어넘은 우정

    단 한 번도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는 알렉산드로스(기원전 356~323). 그러나 그는 군사적 천재에 그치지 않는다. 만민의 평등과 협조에 바탕을 둔 보편주의야말로 그의 업적의 진정한 역사적 의의다. 그의 비전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알렉산드로스는 13살 때부터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받았다.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의 3년 동안 그는 그리스적인 관점에 깊이 젖어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야만인들(그리스인이 아닌 사람), 특히 아시아인은 타고난 노예라고 가르쳤다. 고대 그리스의 전형적 특징이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인의 편견과 스승의 한계를 뛰어넘은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제자였다. 물론 그도 처음에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터 등에서 ‘야만인들’과 접촉할 기회를 가지면서 그리스인이 과연 그들보다 우월한지 시험해 볼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모든 사람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기원전 329년 박트리아로 진군할 때 그는 대규모의 아시아인을 원정 주력군으로 충원했다. 그는 아시아 여성 록사나와 결혼을 했고, 1만명의 병사들에게도 아시아 출신 아내를 얻게 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시작된 헬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천재의 조건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천재의 조건

    영화 ‘굿 윌 헌팅’은 수학 천재 이야기다. 보스턴 빈민가의 노동자인 20살 청년 윌 헌팅(맷 데이먼 분)은 난해한 수학 문제를 푸는 게 취미다. 윌은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청소부로 일한다. 이 대학 수학과 교수이자 세계적인 수학자인 램보 교수는 학생들을 시험하기 위해 교실 밖 복도 게시판에 난해한 수학 문제를 출제한다. 어느 날 누군가가 정답을 칠판에 쓴다. 캠퍼스 전체가 술렁거린다. 다들 누군지 궁금해하지만 알 길이 없다. 어느 날 램보 교수가 복도에서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윌을 목격한다. MIT 수학과 교수들도 못 푸는 문제를 애들 장난처럼 쉽게 풀어 내는 천재 수학자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영화는 허구다. 하지만 수학, 음악, 체스(바둑)에서는 이런 천재가 종종 등장한다. 대부분의 분야는 나이가 들수록 기량이 향상되는 데 반해 이 세 분야에는 항상 신동(神童)이 출현한다. 나이는 오히려 장애물이다. 15살에 스승 조훈현을 꺾고 정상에 오른 바둑 천재 이창호, 12살에 삼각형 내각의 합이 180도임을 혼자 깨친 파스칼, 5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한 모차르트 등이 떠오른다. 이 세 분야는 ‘일상생활의 경험’을 겪기 이전의 동심(童心)이 어른의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고독의 힘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고독의 힘

    19세기 미국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은 위대한 인물의 특징을 이렇게 말한다. “항상 여론을 좇아서 사는 것도 쉬운 일이며, 또한 고독한 가운데서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이다. 그러나 위대한 인물은 대중의 한가운데 살면서도 고독에서 지닐 수 있는 독립성을 좋은 기분으로 지킬 수 있는 사람이다.” 이성을 잃고 집단적 광기에 휩쓸리기 좋아하는 무리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일지도 모르겠다.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도 고독의 힘이 위대하다고 말한다. 희곡 ‘잔 다르크’ 제5막에서 영국군의 포로가 된 프랑스 애국 소녀 잔 다르크는 고문하는 영국 검찰관에게 말한다. “내가 홀로 있다는 사실을 내게 말함으로써 나를 겁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프랑스도 홀로 있고, 하느님도 홀로 계시다. 그리고 나의 조국과 나의 하느님의 고독에 비하면 나의 고독이란 무엇이겠는가. 나는 이제 하느님의 고독이야말로 하느님의 힘이라는 것을 안다. 자, 나의 고독 역시 나의 힘이 될 것이다. 하느님과 더불어 홀로 있는 편이 훨씬 낫다. 하느님의 우정도, 하느님의 충고도, 하느님의 사랑도 내게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능력 안에서 나는 더욱더 담대하게, 담대하게 맞서 싸울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늙음에 관하여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늙음에 관하여

    바야흐로 고령 사회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기원전 106~43)는 ‘노년에 관하여’에서 어떻게 해야 잘 늙을 수 있는지 설명한다. 키케로가 이 책에서 말하는 주제는 ‘늙음’과 ‘죽음’이다. 먼저 늙음에 대해서다. 노년에 들어 쉽사리 속고 건망증이 심해지며 조심성을 잃는 노인들이 있다. 하지만 키케로는 이런 결점이 늙어서 생기는 결점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지혜로운 인간과 우매한 인간이 나뉘는 것은 나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어서, 젊은이 중에도 예의 바르고 자제력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례하고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키케로에 의하면, 분별 있는 젊은 시절을 보낸 이에게는 지혜로운 노년이 오고, 욕망에 사로잡힌 젊음을 보낸 이에게는 흐리멍덩한 노년이 오게 된다. “바보들은 젊은 날의 악덕과 결점을 노년까지 그대로 끌고 간다.” 반듯한 자제력은 젊은 날부터 키워야 한다는 말이다. 키케로의 글은 ‘죽음’으로 접어 들어간다. ‘늙음’을 논한 다음 ‘죽음’을 말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는 “만일 죽음과 더불어 영혼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죽음은 무시해야 하고, 죽음이 영혼을 영생으로 이끌어간다면 죽음은 오히려 간절히 열망해야 할 일”이라고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시간은 달린다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시간은 달린다

    꽤 오래전 일이다. 철도청(현 철도공사)에서 추억 관광 상품으로 증기기관차를 운행하려 했으나 국내에 한 대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중국에서 중고 기관차를 수입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디젤기관차 시대를 지나 KTX, SRT 등 고속열차가 일반화한 오늘날에도 증기기관차는 옛 시절을 일깨워 주는 추억의 대상이다. 연배가 있는 세대는 기억할 것이다. 에어컨이 없던 그 시절 여름에는 열차의 객실 창문을 열고 달렸다. 객실 천장에는 선풍기들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창문을 연 채로 터널 몇 군데를 거쳐 목적지에 도착하면 코밑이 새까맣게 돼 있곤 했다. 실내로 유입된 석탄 연기 때문이다. 연기를 뿜으며 칙칙폭폭 달리던 증기기관차는 이제 아련한 추억의 대상이다. 철도공사 고객센터 대표번호 1544-7788도 ‘칙칙폭폭’에서 따왔다. 하지만 기차가 처음 등장한 19세기 유럽에선 반응이 사뭇 달랐다. 당시 사람들에게 증기기관차는 두려운 이미지였다. 시커먼 연기를 뿜고 괴성을 지르며 들판을 가로지르는 증기기관차는 ‘녹색의 정원’에 난입한 ‘악마’와도 같은 존재였다. 수천 년 동안 농경사회에서 살던 인류는 갑자기 밀어닥친 산업혁명과 공업화의 파도에 미처 적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나는 누구인가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나는 누구인가

    전남 해남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심복례(79)씨의 남편 김인태씨는 1980년 5월 20일 광주교도소 부근에서 사망했다(당시 47살). 큰아들의 밀린 하숙비 7만 5000원을 내기 위해 광주에 갔다가 계엄군의 진압봉에 맞아 죽은 것이다. 남편이 광주 다녀온다고 떠난 지 한참 지나서 광주시청에서 전화로 사망 소식이 왔다. 밭에 거름을 주러 갔는데 마을회관에서 스피커 방송이 나왔다. 얼른 마을회관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김인태 사망’이라는 소식이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심씨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전화받은 다음날 애들 새벽밥을 해 먹이고 서둘러 광주로 향했다. 해남에서 똑딱선 배를 타고 목포로 간 다음 차편으로 광주시청에 갔다. 시청에서는 망월동으로 안내했다. 남편의 관에는 태극기가 덮여 있었다. 당시 심씨 나이는 40살. 아들 넷과 딸 둘을 남겨 두고 남편은 떠났다. 하늘이 무너졌다. 망월동에서 남편의 죽음을 애통해하고 있을 때 누군가 사진을 찍었던 모양이다. 극우 논객 지만원은 1980년 광주에서 찍힌 사진 속의 심씨를 지목해 ‘139번 광수’(5·18 당시 광주에 침투한 북한 특수군 부대원)로 이름 붙이고, 김정일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5월의 어린이들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5월의 어린이들

    1828년 독일 문호 괴테는 영국과 독일 어린이들을 비교한다. 17세기 명예혁명과 18세기 산업혁명을 거쳐 1815년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하고 승승장구하던 영국의 어린이와, 권위주의에 주눅이 든 독일 어린이에 대한 날카로운 비교 관찰이다. “영국 사람은 대체로 다른 국민보다 우수해 보이네. 17세 어린 나이에 이곳에 오는 사람도 있는데, 낯선 독일 땅에서 조금도 어색해하거나 당황하는 일이 없단 말일세. 사교 모임에 참석한 그들의 행동거지는 자신감에 차 있고 또 의젓하기도 해서, 마치 어디를 가나 자기들이 주인이고 온 세계는 당연히 그들의 것이 아니겠느냐는 태도라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들이 우리 독일 여성에게 인기가 있고, 우리 젊은 숙녀들이 자주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네. 그들에게는 일그러지거나 뒤틀린 데가 없어. 그들은 인간으로서 완벽해. 개인의 자유와 행복, 영국의 명성에 대한 자각,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들에게 주어지는 중요한 비중 등에 그들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익숙해 있지. 우리 독일인보다도 가정생활에서나 학교생활에서나 훨씬 더 소중한 대우를 받고 또 훨씬 더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간다네.” 괴테는 이어 독일 어린이들에 대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소드 라인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소드 라인

    극한 몸싸움과 막말이 오간 ‘난장 국회’로 정치권이 요동친다. 의회정치가 태동한 이래 의회 내 물리적 충돌은 세계 각국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정치가 성숙하면서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더이상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 됐다. 영국의 하원 의사당은 구조가 특이하다. 여야가 마주 보고 앉게 돼 있다. 의장석에서 보아 오른쪽이 여당석, 왼쪽이 야당석이다. 다섯 줄의 긴 벤치가 경기장 스탠드처럼 상대를 마주 보고 있다. 여야의 대결과 토론에 편리한 구조다. 한국, 일본, 미국, 프랑스 등의 의회가 의장석을 향해 반원형으로 앉아 있는 구조인데 비해 영국 의회는 의장 앞에 여야가 대립해 앉아 있는 형국이다. 여야 양당 사이에는 두 줄의 빨간색 ‘소드 라인’(Sword Line)이 그어져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검선’(劍線)이다. 여야 의원은 서로 이 선을 넘지 못한다. 양쪽에 서서 칼을 휘둘러도 닿지 않는 거리인 2.5m 너비라고 한다. 긴 칼을 휘둘러도 상대방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할 수 없도록 간격을 뒀다고 해서 ‘검선’이다. 영국이 의회정치가 태동한 나라이긴 하나 초기에는 의원들 사이에 폭력 사태가 매우 잦았다. 의원들에 기사 출신이 많아서 의견이 충돌하면 의사당에서 칼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고독한 백기사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고독한 백기사

    바로크 시대는 16세기에 시작해 18세기까지 계속된다. 절정기는 1650년쯤이다. 바로크는 르네상스처럼 인간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인간을 있는 그대로, 원죄로 인해 일그러진(‘바로크’한) 존재로 그린다. ‘바로크’는 포르투갈어의 바호쿠(barrocoㆍ비뚤어진 모양의 진주)에서 왔다. ‘거칠고 조야하다’는 뜻이다. 바로크의 특징은 사상과 감정의 영역 안에서 작용하는 두 자극(磁極)으로 표현할 수 있다. 대립과 극단 속에서 회의하고 고뇌하는 모습이다. 무가치한 존재라는 자기 비하와 새롭게 얻은 막강한 힘에 대한 자부심, 두 극단을 오르내린다. 조울증과 흡사하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는가? 유럽인들이 근대 초기에 겪었던 낯선 경험 때문이다. 바로크 양식을 등장시킨 폭발력은 부분적으로는 ‘우주적’이었고, 부분적으로는 ‘사회적’이었다. ‘우주적’인 폭발력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제공했다. 지구 중심적인 천동설의 우주관에서 누리던 편안함은 사라지고, 광대무변한 우주 속의 먼지처럼 보잘것없는 고독한 인간이라는 개념이 자리잡았다. 그와 더불어 새로운 과학을 통해 얻어진 막강한 힘에 대한 의식이 고개를 쳐들었다. 인간은 자연법칙을 인식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톰 소여의 페인트칠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톰 소여의 페인트칠

    마크 트웨인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 톰은 밤늦도록 놀다가 창문을 통해 몰래 방으로 기어들어 가던 중 폴리 이모에게 딱 걸린다. 다음날은 휴일인 토요일. 화창한 휴일 톰은 높이 3미터에 길이 30미터나 되는 담장에 페인트칠을 하는 벌을 받는다. 한숨을 길게 내쉰 톰은 붓을 페인트통에 담갔다가 꺼내 담장에 칠한다. 한참을 칠한 다음, 방금 칠한 부분과 앞으로 새로 칠해야 할 대륙처럼 광활한 나머지 부분을 비교한다. 산다는 것이 괴롭고 팍팍하기만 하다. 톰이 낙담하고 있을 때, 멀리서 벤 로저스가 사과를 맛있게 먹으면서 온다. 저만치서 벤이 톰을 보고 놀린다. “야! 너 정말 딱하게 됐구나!” 그러나 톰은 시침 뚝 떼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마치 화가처럼, 칠한 부분을 살펴보면서 세심하게 덧칠을 한다. 벤이 톰 옆으로 가까이 온다. 톰은 벤의 사과가 먹고 싶어 입에 침이 고였지만 꾹 참고 일에 몰두하는 척한다. 벤이 말한다. “저런, 너 지금 일해야 하는 거야?” 그제야 톰은 고개를 휙 돌리며 대꾸한다. “야, 벤이로구나! 네가 오는 걸 못 봤어.” “어때? 지금 헤엄치러 가는 중인데 함께 가고 싶지 않니? 하지만 너는 일을 해야겠지?” 톰은 잠시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인생의 봄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인생의 봄

    청춘은 인생의 봄이다. 자아에 눈뜨고 열정을 불태우는 시기다. 이성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진정한 스승을 만나 영혼의 고양을 추구하는 젊음도 있다. 스승 괴테를 만나 내적 향상과 완성의 열정을 불태운 인물 에커만(1792~1854)이 대표 사례다. 가난한 청년 에커만은 24살 때 괴테의 이름을 처음 듣고 시집 한 권을 샀다. 괴테의 시를 읽고 또 읽으면서 말할 수 없는 행복에 젖었다. 경탄과 애정이 날마다 자라났고, 1년 내내 그의 작품에 빠져 있었으며, 괴테 이외의 것은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못 되었지만 그를 돕겠다는 부유한 후원자들이 곁에 있었다. 그들은 에커만이 ‘돈이 되는 학문’을 하겠다면 돕겠다고 약속했다. 에커만은 처음엔 거절했지만, 다음 순간 세상의 압도적인 대세에 순응하기로 했다. 생계를 위한 학문으로 법률 공부를 택했다. 그러나 대학에서 법학 강의를 들으면서도 그의 마음은 언제나 옆길로 새고 있었다. 그의 영혼을 온통 사로잡고 있던 것은 문학과 예술, 그리고 더 높은 인간적 향상이었다. 마침내 2학년 때 법률 공부를 그만둔다. 괴테를 찾기로 한다. 괴테는 그가 진정으로 신뢰하는 인도(引導)의 별로 날마다 우러러보는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거미 인생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거미 인생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거미형’, ‘개미형’, ‘나비형’ 인간이 있다는 것이다. 거미는 제 몸에서 실을 뽑아 그물을 치고, 조용히 앉아 걸리는 곤충들을 잡아먹고 산다. 개미는 하루 종일 활동하면서 먹을 것을 물어 집에 저장한다. 한편 나비는 한 곳에 머무르는 법 없이 이 꽃 저 꽃으로 전전하면서 꽃가루를 모아 꿀로 변화시킨다. 나비형 인간은 젊다. 한 곳에 안주하거나 저장하는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꽃에서 꽃가루를 얻음과 동시에 마치 그로부터 탈출이라도 하듯이 계속 새로운 목표로 옮아가면서 자신을 형성해 나아간다. 젊은 세대는 잃을 것도 굳이 뭔가를 저장할 욕심도 없기 때문에 언제나 낡은 것을 벗고 새것을 향해 나아갈 용기가 있다. 개미형 인간은 부지런하다. 중년이 되면 열심히 활동해 돈과 지위와 지식과 권력을 긁어모은다. 그에게는 오직 모으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다 나이를 더 먹으면 많은 사람이 대체로 거미형이 된다. 젊은 날 손에 넣은 지식이나 돈, 지위를 거미줄처럼 늘어놓고 거기에 걸리는 것을 먹고산다. 이상과 열정이 넘치던 나비 청년은 중년이 되면 개미처럼 활동은 있으되 꿈이 없는 현실주의자가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사브리나의 아버지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사브리나의 아버지

    영화 ‘사브리나’를 기억하시는지. 빌리 와일더 감독이 1954년에 만든 로맨틱 드라마(오드리 헵번 주연)를 1995년 시드니 폴락 감독이 리메이크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연출자 시드니 폴락은 ‘인디아나 존스’의 톱스타 해리슨 포드와 ‘가을의 전설’ 등으로 급부상한 줄리아 오몬드를 전격 캐스팅해 한 편의 아름다운 로맨틱 드라마를 완성했다. 일부 평론가들은 오드리 헵번이 맡았던 사브리나 역을 줄리아 오몬드에게 맡긴 것은 역사상 최악의 캐스팅이라면서 리메이크 작품을 혹평했다. 세기의 여우(女優) 오드리 헵번에 대한 흠모가 줄리아 오몬드에 대한 폄하로 이어졌으리라. 하지만 나는 ‘각별한 이유’로 원작보다는 리메이크 작품에 주목한다. 리메이크 작품에는 1954년 원작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인상적인 장면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사브리나의 아버지 페어차일드는 부잣집 운전기사다. 영화에서 그는 딸 사브리나에게 옛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자신이 왜 자가용 운전기사로 취직했는지를 설명한다. 그가 젊은 날 직업 선택에서 고려한 조건은 오직 하나, ‘독서할 시간적 여유’를 많이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영화에서도 그는 대부분 독서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고용주가 살림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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