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거미 인생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거미 인생

입력 2019-03-05 17:26
수정 2019-03-06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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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전북 삼례
2007년 전북 삼례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거미형’, ‘개미형’, ‘나비형’ 인간이 있다는 것이다. 거미는 제 몸에서 실을 뽑아 그물을 치고, 조용히 앉아 걸리는 곤충들을 잡아먹고 산다. 개미는 하루 종일 활동하면서 먹을 것을 물어 집에 저장한다. 한편 나비는 한 곳에 머무르는 법 없이 이 꽃 저 꽃으로 전전하면서 꽃가루를 모아 꿀로 변화시킨다.

나비형 인간은 젊다. 한 곳에 안주하거나 저장하는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꽃에서 꽃가루를 얻음과 동시에 마치 그로부터 탈출이라도 하듯이 계속 새로운 목표로 옮아가면서 자신을 형성해 나아간다. 젊은 세대는 잃을 것도 굳이 뭔가를 저장할 욕심도 없기 때문에 언제나 낡은 것을 벗고 새것을 향해 나아갈 용기가 있다.

개미형 인간은 부지런하다. 중년이 되면 열심히 활동해 돈과 지위와 지식과 권력을 긁어모은다. 그에게는 오직 모으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다 나이를 더 먹으면 많은 사람이 대체로 거미형이 된다. 젊은 날 손에 넣은 지식이나 돈, 지위를 거미줄처럼 늘어놓고 거기에 걸리는 것을 먹고산다.

이상과 열정이 넘치던 나비 청년은 중년이 되면 개미처럼 활동은 있으되 꿈이 없는 현실주의자가 된다. 그러다 늙으면 보수적인 거미가 돼 탐욕스럽게 그물에 걸리는 것에만 관심을 쏟는다. 작고한 신학자 안병무 교수는 개미형, 거미형, 나비형을 영어로 ‘Doing’ ‘Being’ ‘Becoming’이라고 번역한 적이 있다.

그러나 세대 차이가 꼭 나이에 따라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무엘 울만은 그의 시 ‘청춘’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때로는 이십 세 청년보다 육십 세 된 사람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늙는 것이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이 나라의 권력자와 정책 결정자들이 그들 자신을 변화시킬뿐더러 조국의 현실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나비형 인간들이라면 우리는 복 받은 국민일 것이다.

고택(古宅) 뒷마당 양지바른 곳에서 거미 한 마리가 빈들거리며 기회를 노리고 있다. 집이야 무너지건 말건 관심도 없이.

우석대 역사교육과 초빙교수
2019-03-06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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