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정 수석 논설위원

황수정 수석 논설위원

정치, 사회 분야의 뜨거운 이슈들을 투명한 언어, 낮은 목소리로 독자들 곁에 바짝 다가가서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황수정 칼럼
  • [황수정 칼럼] ‘임종석 의장님’과 몇몇 586이 연명하는 법

    [황수정 칼럼] ‘임종석 의장님’과 몇몇 586이 연명하는 법

    임종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통일하지 말자”고 했다. 이 말을 보수쪽 유력 정치인이 공개적으로 했다면 어떤 사달이 났을까. “출세를 위해 (사법)고시를 했으니 미안해하라”고 그가 공격했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말했다면. “반통일 반민족 행위”로 벌집이 쑤셔졌을 것이다. 임 전 실장은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규정한 헌법 3조를 “지우든지 개정하자”고 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통일부도 없애자고 했다. 연방제 통일론을 접은 김정은이 ‘2국가론’을 주장하고 있으니 기존의 통일 논의는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에둘렀을 뿐 북한의 입장이 달라졌으니 우리도 그에 맞게 자세를 교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회(전대협) 3기 의장. 조국 통일을 앞세운 운동권 이력으로 정계 입문해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지냈다. 나 같은 586세대는 ‘전대협 의장님’의 대단했던 위용을 기억한다. 두루마기 자락을 깃발처럼 펄럭이면서 가는 곳마다 수백명의 선발대를 앞세웠다. ‘통일’과 ‘민족’이라는 구호만으로 ‘의장님’은 개선장군이었다. 5년 전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도 통일운동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그래 놓고 “통일이 좋다고 자신하기 어렵다”고 ‘전향’한 이유
  • [황수정 칼럼] 응급실을 너무 만만하게 본다

    [황수정 칼럼] 응급실을 너무 만만하게 본다

    논리적으로 따지는 상대는 대응하기 수월하다. 다 싫다며 도리질만 치는 상대는 난감하다. 7개월째 의료대란에서 전공의들은 ‘무대응이 대응’이었다. 의료 현장의 핵심 인력인 20~30대 전공의들이 누군가. 수학능력시험에 최적화됐던 ‘1% 엄친아’들이다. 그런 전공의들의 공개적으로 반듯한 목소리를 지금껏 들어 보지 못했다. 정부가 어떤 단계에서 무슨 카드를 어찌 꺼내든 대응은 한 가지.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였다. 어느 쪽으로든 국면을 바꿀 협상의 여지 자체를 준 적이 없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요양병원, 동네 의원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자신들의 주장을 조직화해 관철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보여 준 적이 없다. 나는 ‘엄친아 전공의’들의 지리멸렬이 서글프다. 의료개혁의 당위와는 별개의 얘기다. 정면돌파로 사회적 동의를 구하려 세력화를 시도하지도 못하는 최고 엘리트들. 그 무기력이 서글프다. 의대 재학생들의 대책 없는 침묵 행렬은 말할 것도 없다. 의대생의 부모들이 교육 정상화를 요구하며 공휴일에 집회를 대신 열어 줬다. 부끄러운 풍경이다. 의대생들이 몽땅 유급을 불사하겠다는 초유의 사태.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자신들 목소리를 스스로 공론화할 줄 모른다.
  • [황수정 칼럼] ‘강남 우파’만 계속 할 건가

    [황수정 칼럼] ‘강남 우파’만 계속 할 건가

    미국을 보면서 ‘썩어도 준치’라는 생각을 한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가 된 JD 밴스를 보면 그런 생각이 깊어진다. 39세 흙수저. ‘문제적 트럼프’도 다시 보게 된다. 정확히 아들뻘(39살 차이)인 초선 상원의원을 어떻게 부통령 후보로 낙점했을까. 둘의 조합이 내 눈에도 흥미로운데 미국인들은 오죽할까. 트럼프의 정치적 셈법이 무엇이었든 밴스는 개천의 용이다. 해마다 수십 명이 헤로인 중독으로 죽는 쇠락한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아빠는 언제나 집에 없었고 엄마는 약물 중독자였다. 밴스의 자전 에세이 ‘힐빌리의 노래’가 국내 출간된 것이 7년 전. 일자리도 희망도 없는 러스트벨트(몰락한 공업지대) 출신인 무명의 ‘촌놈’이 몇 년 뒤 미국 부통령 후보가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미국의 개천 용이 쏟아내는 말에 유권자도 아닌 나는 지금 귀를 기울인다. “변두리 지역의 모든 이들에게 약속한다.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절대 잊지 않는 부통령이 될 것이다.” 미국이 그려 낸 개천 용의 서사는 부럽다. ‘리틀 트럼프’가 된 밴스가 미국 우선주의 트럼피즘으로 세계 질서를 골치 아프게 흔들 위험성은 물론 있다. 그럼에도 시선이 쏠리는 이유는 분명하
  • [황수정 칼럼] 대통령에게 디테일이 절실하다

    [황수정 칼럼] 대통령에게 디테일이 절실하다

    왜 대왕고래였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동해 심해가스전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직접 발표했을 때. 대뜸 대왕고래가 궁금했다. 곧바로 인터넷을 뒤졌다. 지구상 가장 거대한 동물. 우리 앞바다에서 발견된 적 없는 신화 같은 존재. ‘고래사냥’ 노랫말도 구구절절 묘하게 오버랩됐다. 지금도 궁금하다. 시추공 하나 뚫는 데 1000억원이 드는 대형 사업. 국민 희망 부풀리기라고 야당이 딴죽을 걸 수 있다고 예상했을 터. 그렇다면 신기루처럼 부풀려진 이름만은 피했어야 하지 않을까. 대왕고래는 야권 유튜브들이 먹잇감으로 물어 온갖 억측을 쏟아 내고 있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쫀쫀하지 않고 즉흥적이라는 느낌. 우툴두툴한 정책에서 엇박자를 느낀다. 사흘 만에 철회한 해외직구 금지 대책도 그렇다. 직구 대책을 접은 이유는 소비자 선택권을 무시한다는 시중 비판 때문이었다. 알려졌듯 윤 대통령은 자유지상주의자인 밀턴 프리드먼 신봉자다. 그의 책 ‘선택할 자유’에 감명받았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후보 시절에는 가난한 사람한테 불량식품을 사 먹을 자유도 줘야 한다는 프리드먼의 논리를 폈다가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대통령의 ‘시그니처’ 국정 철학이 정확히 정반대 방향으로 달렸
  • [황수정 칼럼] 민주당이 다수를 지배하는 몇 가지 방법

    [황수정 칼럼] 민주당이 다수를 지배하는 몇 가지 방법

    세계적 베스트셀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속편이 나왔다. 하버드대 교수이자 정치학자인 저자들이 쓴 책(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은 나오자마자 화제다. 영원히 지고지선일 것 같던 민주주의. 그것이 왜 지금 한계상황인지 조목조목 짚었다. 우리 정치 현실과 빼닮아서 무릎을 치게 된다. 극단적인 생각을 가진 소수가 상식적 판단을 하는 다수의 입을 막는 것은 세계 정치의 뉴노멀인가. 거대 의석으로 독주 페달을 밟는 더불어민주당을 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민주주의를 합법적으로 위기에 빠트리는 방식. 대표적인 것이 법을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는 방편들이다. 요약해 보자면 이런 것들이다. ① 과도하거나 부당한 법의 사용 대통령제 민주주의에서 헌법은 선출된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 있는 권한을 입법부에 부여한다. 대통령 탄핵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차대한 사건. 대통령제 민주주의 종주국인 미국에서는 건국 후 250년간 한 세기에 한 번 정도 대통령이 탄핵됐다. 도널드 트럼프 이전까지는 민주주의 산실의 체면을 지켰다. 우리는 어떤가. (채 상병) 특검법을 거부했다는 사유로 대통령 탄핵이 거침없이 입에 올려진다. 제1당의 지도부가 “탄핵이 유행어가
  • [황수정 칼럼] 우리는 ‘지도자 복’이 없는가 있는가

    [황수정 칼럼] 우리는 ‘지도자 복’이 없는가 있는가

    역대급으로 무능한 21대 국회를 보면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된다. ‘미중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한국의 대응 자세는?’ 이런 논제쯤으로 논술시험지를 나눠 준다면. A4 용지 절반도 못 채워 쩔쩔맬 의원들이 과반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사실 가장 보고 싶은 것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답안지다. “대만해협이 우리와 뭔 상관”이라는 그의 말이 어떤 외교적 고민의 결과인지 정말 알고 싶다. 이 대표의 얼굴이 활짝 폈다. 192석의 범야권 당수가 되니 사람이 달라 보인다. 법적 심판을 어떻게 받게 되든 국민 다수는 그의 정당을 선택했다. 7개 사건 10개 혐의의 방탄용으로 거대 정당을 언제까지 오남용할 수만은 없다. 정치 실력을 보여 주지 못하면 이제는 우스워진다. 국민이 불행해진다. 그래서 문제는 그의 진짜 실력이다. “대만해협이 뭔 상관, 그냥 셰셰”는 그냥 말실수이기 어렵다. 실수였다면 직접 해명하고 수습했을 것이다. 전 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도 마찬가지다. 13조원을 집행하겠다면서 “소고기 사 먹고 좋았잖나” 이런 헐렁한 농담은 초라하다. 지원금의 찬성과 반대 여론은 46% 대 48%. 공짜돈을 준다는데 찬반이 거의 동률이다. 지원금 발상은 사실상
  • [황수정 칼럼] 총선 이후가 정말 겁난다

    [황수정 칼럼] 총선 이후가 정말 겁난다

    동네 마트에서 흙대파 한 단을 샀다. 한 단에 4370원. 마트의 흙대파 한 단은 1㎏ 안팎. 네댓 뿌리쯤 되는데 밥상 두세 번 차리고 나면 없다. 장 보러 갔다가 질려서 돌아오는 것은 현실, 아니 진실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875원’ 발언 해프닝이 있은 지 근 보름. 야권은 말꼬리 잡기 대파 챌린지에 아직도 열을 올린다. “의사만 잡지 말고 물가도 잡아라”는 말이 시중에 도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제1야당 대표가 몇 날이나 머리 위로 대파 흙뿌리를 흔들어야 할까. 글로벌 반도체 전쟁 1열 정중앙에 선 나라의 총선 오브제가 흙대파라니. 정치가 블랙코미디가 됐어도 그런 미장센은 부끄럽지 않나.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비상식과 비정상이 뉴노멀로 날마다 더 굳어진다. 2년 징역형의 대법원 법리 판단만 남은 당대표의 비례정당에 정치 미래를 걸겠다는 응답이 무려 30%다. 함께 앉은 셋 중 한 사람쯤은 몇 달 뒤 수감될 사람한테 표를 주려고 한다는 얘기다. 딴것도 아닌 자녀 입시비리의 범법 혐의자에게 묻지마 지지를 보낸다. 누구도 아닌 4050세대, 대입을 치를 아들딸을 둔 엄마아빠들이다. 이런 부조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커밍아웃을 못 할 뿐인 ‘샤이
  • [황수정 칼럼] 청년 의사들의 사다리 독점 분투기

    [황수정 칼럼] 청년 의사들의 사다리 독점 분투기

    소아과 의사 800여명이 지난해 ‘소아과 탈출 학술대회’를 열어 보톡스 시술을 공개적으로 배웠다. 그래도 사람들은 따지지 않았다. 의사들이 업계 최하위 소득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1억원 넘는 연봉이 울 일인가”라거나 “자유시장 경제에서 수요 예측을 못 한 탓”이란 타박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업무복귀 명령서를 전달하려고 공무원들이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갔다. 엄정 대응하는 척했지만 진짜 속뜻은 그게 아니었다. 제발 병원으로 복귀해 달라는 호소였다. 대한민국 어떤 직역의 집단행동에 공권력이 이런 배려와 공력을 들인 적 있나. 이 낯선 상황들의 근거는 하나. 의료를 공공재로 특별 대접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생각이 달랐다. 총궐기대회에서 ‘나는 공공재가 아니다’란 시위 팻말을 들었다. “노예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주 80시간의 노예 같은 노동환경을 개선하려고 의사수를 늘리자는데 극렬 반대한다. 2000명 증원에 의대생들이 제대로 교육을 못 받는다는 게 전공의들의 불만이었다. 정부가 의대 교수진을 두 배 늘리겠다고 했다. 그래도 의대 증원만은 반대다. 의사수를 건드리지 말고 필수의료 수가를 5배쯤 올리라는 주장도 나온다. 쉽게
  • [황수정 칼럼] 조국도 살리는 ‘1인 권력’의 기술/수석논설위원

    [황수정 칼럼] 조국도 살리는 ‘1인 권력’의 기술/수석논설위원

    세계 정치학자들이 우리 정치판을 흥미진진한 연구 사례로 주시하고 있지 않을까. 자주 생각한다. 다종다기하게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정당의 전범으로 더불어민주당만 한 데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 중심에 이재명 대표가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7일 관훈토론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 대표의 단점을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한다는 것,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더니 “아직도 당대표이고 당을 장악하는 것은 대단한 정치력”이라고 압축했다. 이 대표의 특질을 어떤 말보다 명료하게 간추렸다고 생각했다. 이 대표는 큰 거짓말을 얼굴색을 바꾸지 않고 한다. 제1당의 대표로서 선거제 개편의 열쇠를 쥐고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정을 빤히 다 아는 정치부 기자들을 모은 회견장에서 “여당이 위성정당금지법을 거부했다”고 했다. “여당의 위성정당을 막을 방법이 없어 통합형 비례정당을 준비하겠다”는 거짓말을 했다. 애초에 위성정당 금지와 연동형 유지는 그의 대선공약이다. 21대 국회 내내 거대 의석의 민주당이 온갖 법안을 좌지우지했다. 위성정당 금지 입법을 여당 때문에 못 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정치언어가 무서운 것은 생각을 타락
  • [황수정 칼럼] 한동훈은 보완재인가 대체재인가/수석논설위원

    [황수정 칼럼] 한동훈은 보완재인가 대체재인가/수석논설위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동료 시민”이라는 말을 처음 썼을 때 놀랐다. 머리 좋은 그가 왜 지금 ‘시민’이라는 단어를 동원했을까. 그냥 멋있게 들리도록 하는 액세서리 언어였을까. ‘시민’은 보수권에서는 암묵적으로 터부시된 단어였다. 국가로부터의 자율성에 초점이 맞춰진 ‘시민’은 우리 정치환경에서는 진보 좌파 쪽으로 기울어진 언어였다. 국민단결, 국민체조, 국민교육헌장…. 오랜 보수 정권의 시간을 거치면서 모든 것이 ‘국민’이었다. 이런 사상적 지형을 깨고 ‘시민’을 꺼낸 것은 한 위원장의 고단위 의도였을 수 있다. 작은 단어 하나로도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분명 있다. ‘한동훈의 보수’는 좀 다를까. 막연한 기대를 품게 한다. 한 위원장은 탈이념, 중도확장을 목표로 비대위를 차렸다. “이념이 중요하다”고 단언한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선을 그은 대목이다. 나 같은 사람 귀에는 ‘동료 시민’이라는 그의 말이 그래서 특별한 의미를 내포했다고 들리는 것이다. 취임 한 달이 가까운 한 위원장의 대중적 인기는 예상했던 대로다. 지리멸렬, 구태의연. 이런 보수의 고정 이미지가 그의 셀럽 효과에 덮이는 착시 효과가 있다. 21년 강골 검사로만 살았던 이력을 따지면
  • [황수정 칼럼] 니체는 청춘에 읽혀야 한다/수석논설위원

    [황수정 칼럼] 니체는 청춘에 읽혀야 한다/수석논설위원

    서점에 갈 때마다 궁금하다. 베스트셀러 ‘마흔에 읽는 니체’를 보면서 드는 생각.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를 왜 마흔에 읽어야 하는 걸까. 스물, 서른, 쉰도 아닌 하필 마흔 살에. 세태를 귀신처럼 읽는 출판 기획자들은 니체를 왜 불혹의 독자들에게 정조준했을까. 철학서를 소비하기에 시간적·경제적 조건이 최적화한 독서층이 그들이라고 판단했을 터.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도 잘 팔린다. 이 시리즈의 인기는 니체와 쇼펜하우어 자체에 있지 않은 것 같다. 삶을 사랑하는 법과 지혜를 찾는 철학적 사유 방식. 그것만 쉽게 알려준다면 어느 철학자가 됐더라도 열심히 읽어 줄 기세다. 다시 드는 생각. 니체, 쇼펜하우어의 주요 독자층이 이십대라면 얼마나 더 근사할까. 사회적 효용을 위해서라도 인문학적 사유의 근육은 청춘에 만들어져야 한다. 현실은 거꾸로다. 중고교 과정에서 억지로라도 조성되던 책 읽기 토양마저 갈수록 척박해지는 중이다. 2024학년도부터 학생부의 독서활동은 대학입시 평가에 반영되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독서활동 기록을 위해 애써 챙겨 읽던 필독서들마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대입을 치른 20대들이 대학에서 갑자기 독서 지평을 넓히기는 더 어려운 환경이다.
  • [황수정 칼럼] 한동훈 장관과 ‘못 보던’ 정치인/수석논설위원

    [황수정 칼럼] 한동훈 장관과 ‘못 보던’ 정치인/수석논설위원

    지난가을 내내 엉뚱한 생각으로 길을 걸었다. 서울의 구청들이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은행 열매들을 탈탈 털어 냈다. 멀쩡한 은행잎들까지 털리는 야만을 보면서 나는 왜 국회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났을까. “조고각하(照顧脚下), 발밑을 보면서 걷는 즐거움” 이런 문장쯤으로 살아 있는 나무의 멱살을 흔드는 부박함에 제동을 거는 정치인이 있다면. 소로였든, 루소였든 걷기를 예찬한 수많은 사상가 중 한 사람이라도 인용할 수 있다면. 묻지마 지지자가 돼 주겠다는, 비현실적인 상상. 최근 학계 인사에게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숨은 일화를 들었다. 2000년 학술 행사로 방한한 세계적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당시 김 전 대통령의 청와대 초대를 거절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던 자신의 철학과 김 전 대통령의 노선이 어차피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우여곡절 끝에 김 전 대통령을 만난 뒤 부르디외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상찬을 거듭했다고 한다. 까칠한 ‘반골 석학’의 마음을 토론으로 움직였던 전직 대통령의 지적 내공.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서 김 전 대통령이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와 벌였던 유명한 지상논쟁을 새삼 복기했다. 현실의 정가는 너무 초라하다. 종
  • [황수정 칼럼] ‘의사의 품격’이란 무엇인가/수석논설위원

    [황수정 칼럼] ‘의사의 품격’이란 무엇인가/수석논설위원

    지난 6월의 일이지만 나는 지금도 의아하다. 현직 소아과 의사 800여명이 ‘소아과 탈출 학술대회’를 열어 보톡스 시술을 공개적으로 배우던 장면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소아청소년과 개원의 연봉은 평균 1억 875만원. 그날 의사들은 “환자 한 명으로 벌 수 있는 돈이 업계 최하위”라고 읍소했다. ‘보톡스 부업’을 의도적으로 대국민 선언하면서. 자영업자 커뮤니티에서 퍼온 글 한 토막. ‘생닭 한마리 원가 5850원, 가공비 825원, 포장무 350원….’ 치킨집 점주는 “우리 부부가 치킨 한마리를 튀기면 2800원쯤 남는데 거기서 리뷰 이벤트, 종이쿠폰 비용 등이 더 빠져나간다”고 토로했다. 의사와 치킨집 점주를 단순 비교하느냐고 따질 수 있다. 품위와 염치를 제쳐 둔다면 ‘먹고사니즘’의 절박함은 똑같다. 19년 만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의사단체들은 반발한다. 파업을 예고한 반발에는 특권 의식이 뿌리 깊다. 증원을 논의하더라도 환자단체나 시민단체는 빼고 대한의사협회하고만 하라는 주장부터 그렇다. 어떻게 특정 이익집단이 정원 규모 논의까지 독점하려 하는가. 어떤 직역도 그런 발상을 하지는 않는다.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가 부족한 것은 높은
  • [황수정 칼럼] 문제는 김기현의 진퇴가 아니다

    [황수정 칼럼] 문제는 김기현의 진퇴가 아니다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은 솔직히 아직도 어리둥절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내심 국민이 야속할 것이다. 패인 분석이 쏟아졌지만 17% 포인트 차이로까지 대패할 이유는 뭐였나 싶을 것이다. 김남국 코인, 송영길 돈봉투, 이재명 ‘방탄’은 말할 것도 없다. 두세 달만 되짚어도 꼬리를 물어 드러난 문재인 정부의 국민 기망극이 얼마였나. 부동산 정책 실패를 감추려고 집값 통계를 조작했다. 사드 3불은 절대 없었다더니 한중이 합의했다는 문서가 나왔다. 9·19 군사합의로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했다고도 속였다. 이 거짓말은 문 전 대통령이 직접 했다. 국민 재산이든 국가 안보든 정략을 위해서는 속이고 조작했다. 범죄에 가까운 정권 차원의 조작이 줄줄이 드러났어도 국민 심판을 받지 않은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잊힐 만하면 SNS에 글을 올린다. ‘책방지기’ 문재인의 페북 정치는 효용이 있을까 없을까. 잠재 위력이 대단한 정치행위라 생각한다. 이 사실을 그가 너무 잘 알고 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내가 읽은 것도 그의 SNS 추천을 보고서였다. 잊히겠다더니 왜 약속을 어기느냐 비판하면서도 나는 책을 사서 읽었다. “적자생존의
  • [황수정 칼럼] 이러다 김훈마저 입을 닫는다/수석논설위원

    [황수정 칼럼] 이러다 김훈마저 입을 닫는다/수석논설위원

    집권당 대표에게 두 번 놀랐다. 무엇보다 김윤아라는 가수를 일약 ‘좌파 전사’로 띄워 올렸다. SNS에서 후쿠시마 오염수에 “지옥” 운운한 그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개념 없는 개념 연예인”이라 직격했다. 하필 그날 배우 이영애가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5000만원을 기부했다. 그러자 야권 강성 지지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산소가 아니라 삼중수소 같은 여자”라고 맹폭했다. 이영애는 몇 배 거칠어진 화력의 보복 봉변을 당했던 셈이다. 씨름판에도 체급이 있다. 140㎏의 백두급이 80㎏의 태백급을 들배지기로 날린들 아무 감동이 없다. 이겨도 우습고 되치기라도 당하면 남세스럽다. 한 번 더 놀란 것은 그날 발언의 자리다. ‘문화자유행동’이라는 단체의 출범식장이었다. 주류에서 밀려난 보수 문화예술인들의 권익을 대변하겠다는 단체다. 복거일 작가 말고는 알아볼 만한 얼굴이 없었다. 진보 진영에서 ‘전향’한 이력이 주요 자산일 뿐인 문화평론가 대표가 문화계 이권 카르텔을 무슨 수로 감시하나. 문화계 보수의 초라한 저변을 탈탈 털어 재확인시켰다.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재현되나, 난데없는 억측만 키웠고. 양쪽 진영의 극단적 지지자들이 ‘개념 연예인’ 악플 대리전을 이어 가는
  • [황수정 칼럼] ‘586 DNA’부터 털어내야 한다/황수정 수석논설위원

    [황수정 칼럼] ‘586 DNA’부터 털어내야 한다/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지난달 서점가에 뜻밖의 ‘벽돌책’이 나왔다. 미국 보수 운동의 역사를 분석한 ‘1945년 이후 미국 보수주의의 지적 운동’이라는 번역서다. 국내 출판 지형에서 이렇게 두껍고(783쪽) 비싼(5만원) 보수주의 연구서는 희귀종에 가깝다. 보수주의 ‘원전’인 러셀 커크의 ‘보수의 정신’이 국내 출간된 것이 겨우 5년 전. 프랑스 보수주의 학자인 레몽 아롱의 명저 ‘지식인의 아편’도 비슷한 사정이다. 아롱은 좌파인 사르트르와 20세기 프랑스 사상계를 팽팽하게 양분했던 우파 지식인이다. 공산주의 이론을 공박한 그의 세계적 저술은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유독 찬밥 신세였다. 10년 전 타계한 안병욱 교수의 번역서가 불편한 옛 편집 그대로 35년간 간신히 명맥을 이었다. 다른 출판사가 세련된 편집본을 다시 내놓은 것이 지난해. 프랑스 철학 유학파들이 차고 넘치는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기현상이다. 책 이야기가 길었다. 진보주의 저술은 넘쳐나는데 보수주의 이해를 돕는 책들은 왜 가뭄에 콩 나듯 할까.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며 좌파 지식인들이 사회적 우위를 점유한 우리의 특수 환경이 아니었다면. 역량 있는 국내 출판 기획자들이 보수ㆍ진보 성향으로 고루 포진했다면. 보수주의 관련서들이
  • [황수정 칼럼] ‘진실의 순간’ 맞은 진보 교육/수석논설위원

    [황수정 칼럼] ‘진실의 순간’ 맞은 진보 교육/수석논설위원

    발밑에 떨어진 휴지는 누가 주워야 하는가. 이 얄궂은 질문을 진보 교육감들에게 해 보고 싶다. 모두의 일이므로 먼저 보는 사람이 주워야 한다고 가르칠까. 모두의 일이므로 굳이 먼저 주울 의무는 없고 똑같이 나눠 주워야 한다고 가르칠까. 전자는 공동체의 가치, 후자는 평등의 가치를 우선한 답이다. 진보 교육감들은 틀림없이 후자를 정답이라 가르칠 것이다. 한국 진보주의 교육이 어떤 순간에도 앞세웠던 핵심 가치가 평등이므로. 교단에서는 서이초 교사 사건에 대해 “올 것이 왔다”고 말한다. 교육 현장의 무질서와 좌절이 임계치를 넘었다는 얘기다. 올 초 초등 1학년 담임을 맡은 30대 교사는 “뭘 해도 아동학대, 휴직을 못 하면 일 년을 숨만 쉬고 버틸 것”이라 했다. 50대 교사는 “명예퇴직을 하루에 열두 번 생각한다”고 했다. 4년차 초등 교장은 “학부모 민원 처리가 거의 본업”이라 토로했다. 열패감에 젖은 교사들이 유독 내 주변에만 몰려 있는 것일까.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장면들을 연일 목도하는 중이다. 진보 교육감들이 뒤로 한 발쯤 빼고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지난 10여년 동안 제도 보완과 비판에 반응한 적 없던 이들이다. 무엇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
  • [황수정 칼럼] 고은은 되고 오정희는 안 된다는 패권주의/수석논설위원

    [황수정 칼럼] 고은은 되고 오정희는 안 된다는 패권주의/수석논설위원

    지난해 5월의 일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일에 맞춰 원로 시인에게 신문에 실을 시론을 부탁했다. 새 대통령에게 당부하는 의례적 글이었다. 세상이 다 아는 시인의 거절 이유는 뜻밖이었다. “쓰고는 싶지만 두고두고 정치적 오해를 받고 싶지 않다”였다. ‘두고두고’라니. ‘정치적 오해’라니. 팔순 넘은 시인이 세평을 의식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정치적 오해의 실체였다. 대체 그게 뭐기에 팔순 넘은 원로를 쩔쩔매게 하나. 지난 18일 막을 내린 서울국제도서전은 소설가 오정희 논란으로 파행했다. 겨우 나흘짜리 행사가 블랙리스트 시비로 끓다 반쪽짜리로 끝났다. 홍보대사로 위촉된 오 작가가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업에 연루됐다는 시비가 불거졌다. 한국작가회의를 위시한 문화예술 단체들의 거센 반발에 오 작가는 중도사퇴했다. 행사를 주최한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는 공개 사과도 했다. 사과의 내용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진실에 기반한 책임자 규명과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시간이 멈춰 블랙리스트가 진행형인 착각이 들었다. 해외 바이어들에게 우리 책 한 권이라도 더 소개하는 것이 출협의 본업이었다. 명색이 국제행사에서 문화단체들을
  • [황수정 칼럼] 김남국처럼/수석논설위원

    [황수정 칼럼] 김남국처럼/수석논설위원

    “잊혀지겠다”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금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인공이다. 퇴임하면 잊혀져 달라고 아무도 먼저 말한 적 없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스스로 대국민 약속을 했다. 그러고는 1억원 후원을 받는 자신의 영화를 청와대에서 기획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딸 때문에 떨어진 사람이 없다”고 했다. 백번 접어 동양대 표창장으로 등수가 바뀌지는 않았다 하자. 표창장 위조는 정당한 일인가. ‘코인 청년 재벌’ 김남국 의원. “돌아오겠다”며 개선장군인 양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서는 잠적 기행(奇行) 중이다. 조 전 장관의 딸 조민은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보름 남짓 만에 구독자 16만명을 모았다. 여러 말들이 넘쳐난다. “입시 비리로 엄마는 수감, 아빠는 재판 중인데 맛집을 소개할 수 있는 강철 멘털.” “유튜브까지도 아빠 찬스.” 민주화 이후 가장 치명적 국론 분열의 책임자로 기록될 인물. 문 전 대통령과 조 전 장관은 이말고도 공통점이 여럿 있다. 무엇보다 골수 지지층의 반응을 쉼없이 의식하고 구애한다는 점이다. 새삼 확인하게 된다. 문 전 대통령은 문빠의 극렬 팬덤을 “양념”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누렸다는 것. 퇴임 대통령이 아니라 여전히 팬덤 스타로 자신을
  • [황수정 칼럼] ‘개○○’에 대하여, 민주당에 대하여/수석논설위원

    [황수정 칼럼] ‘개○○’에 대하여, 민주당에 대하여/수석논설위원

    양해를 먼저 구한다. ‘개소리’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이 ‘개소리’는 비속어가 아니다. 컹컹 짖는 그 개소리는 더더욱 아니다. 반려견들한테는 좀 미안하다. 프린스턴대 명예교수인 미국의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는 1986년 논문을 썼다. 제목이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 짧은 철학적 논고가 책으로 발간된 것이 2005년. 당시 미국 정치권의 언어도 멀쩡한 사람들 속을 어지간히 뒤집었던 듯하다. 책은 단박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제목으로 국내에도 책이 나와 읽히고 있다. ‘개소리’라는 번역은 신의 한 수라 생각한다. 발빠른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게다. 개○○(지면의 품위를 위해 지금부터는 이렇게 표현한다)는 거짓말과 차원이 다르다. 프랭크퍼트의 정의에 따르면 거짓말은 최소한 진실을 의식하는 말이다. 거짓인 줄 알면서 상대방을 믿게 하려고 속이는 것이 거짓말이다. 개○○는 자기 말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개○○는 공들여 언어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나오는 대로 뱉으면 된다. 거짓말은 들통나면 책임을 져야 한다. 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오래된 논문이 지금 우리 정치권에 잘 들어맞는다. 더불어민주당 방식의 정치언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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