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음악으로 英 근현대사 훑어..폴 매카트니·조앤 K.롤링 등 스타 등장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린 영국은 ‘해가 지는 나라’로 영토가 줄어든 후에도 문화에서만큼은 초강대국의 위상을 잃지 않았다.지구촌 최대 스포츠축제가 될 제30회 런던하계올림픽이 28일 영국 런던 북동부 리밸리의 올림픽스타디움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영국 여왕과 주요 인사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이번 대회에는 전 세계 205개 나라에서 1만6천 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26개 종목에서 총 302개의 금메달을 놓고 기량을 겨룬다.
런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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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20세기 대중음악에서도 종주국이었다.
비틀스, 롤링스톤스, 레드제플린, 딥퍼플, 퀸 등 슈퍼스타를 줄줄이 배출하면서 팝과 록 음악의 흐름을 이끌었다.
2천700만 파운드(약 483억 원)를 들인 27일(현지시간)의 2012 런던올림픽 개막식은 농업국가 시대부터 산업혁명과 세계대전 이후 등 영국의 근현대사를 다뤘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영화감독 대니 보일이 연출한 개막식의 테마는 ‘이것은 모두를 위한 것(This is for everyone)’이다.
산업혁명 이후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꼽힌 월드와이드웹 탄생의 주역인 과학자 팀 버너스 리가 했다는 이 말은 영국인의 창의성과 시혜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개막식은 이처럼 영국의 역사, 정체성, 가치, 유산 그리고 디지털 시대와 미래를 담았다. 그리고 이 스토리라인의 핵심 코드로는 문학과 대중음악이 활용됐다.
영국은 세 번째 개최한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서 불세출의 영웅인 셰익스피어와 비틀스를 전면에 내세워 조금씩 꺼져가는 자존심을 확실하게 세웠다.
◇셰익스피어에서 롤링까지 = 개막식은 카메라가 런던 시내 템스강을 따라 올림픽 주경기장까지 빠르게 여행하며 쫓는 장면으로 시작됐다.
본격적인 개막은 셰익스피어의 글이 알렸다.
희곡 ‘더 템페스트(The Tempest)’의 대사 ‘두려워하지 마라. 영국이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할 것이다(Be not afeard:the isle is full of noises)’가 적힌 23t의 대형 ‘올림픽 벨’이 울리며 개막식은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이어 셰익스피어 작품 출연으로 유명한 배우 겸 영화감독 케네스 브래너가 ‘더 템페스트’의 한 대목을 힘차게 낭독했다.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더 템페스트’는 그의 마지막 희곡 작품으로 알려졌다. 예술적 상상력이 만개한 가운데 유한한 삶의 덧없음과 생의 아름다움을 예찬했다.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등 네 지역 출신으로 이뤄진 합창단이 부른 ‘예루살렘’의 가사도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밀턴’에서 따왔다.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은 어린이 문학의 고전인 ‘피터 팬’의 도입부를 직접 읽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 아동 도서 ‘메리 포핀스’의 주인공도 등장했다.
◇오~ 비틀스! = ‘현대 팝음악의 모든 장르는 비틀스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다.
개막식에서는 인기 그룹 악틱 몽키스가 비틀스의 명곡 ‘컴 투게더(Come Together)’를 연주했고, 히트곡 ‘쉬 러브스 유(She Loves You)’를 연주하는 비틀스 전성기의 영상이 흘러나왔다.
일부 출연진은 명반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표지 인물을 연상시키는 유니폼을 입고 등장했다.
피날레도 비틀스 출신 대스타 폴 매카트니가 히트곡 ‘디 엔드(The end)’와 ‘헤이 주드(Hey Jude)’로 장식했다.
비틀스와 함께 경쟁했던 롤링스톤스는 물론 비틀스가 빚어내고 영국 그룹들이 발전시킨 온갖 장르의 음악이 시종 개막식을 누볐다.
롤링스톤스의 대표곡 ‘새티스팩션(Satisfaction)’을 비롯해 더 후의 ‘마이 제너레이션(My Generation),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비지스의 ‘스테잉 얼라이브(Stayin’ Alive)’ 등 주옥같은 팝의 명곡들이 댄서들이 군무를 출 때 배경음악으로 흘렀다.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잘 알려진 마이크 올드필드는 직접 출연해 명곡 ‘튜불러 벨스(Tubular Bells)’를 들려줬다.
젊은이들의 변혁 정신을 담았던 1970년대 펑크록도 주요 테마였다. 펑크록의 대부 섹스피스톨스의 ‘갓 세이브 더 퀸(God Save the Queen), 더 클래시의 ‘런던 콜링(London Calling)’도 8만 관객의 심장을 두드렸다.
또 영국 출신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가 ‘채리엇츠 오브 파이어(Chariots of Fire)’ 등을 연주하는 등 클래식의 전통도 과시했다.
’채리엇츠 오브 파이어’가 연주될 때는 ‘미스터 빈’으로 유명한 배우 로완 앳킨슨이 단원으로 끼어들어 코믹한 연기를 펼쳤다.
◇크리켓 & 살아 있는 양..캐릭터 & 상징 = 이번 개막식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살아있는 양 40마리가 등장했다. 초반부에서 말 12마리, 소 3마리, 닭 10마리 등과 함께 영국 농촌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했다.
양이 풀을 뜯고 양치기가 거니는 장면은 16세기 영국 시인 에드문드 스펜서에 의해 낭만적인 시절의 풍경으로 묘사되곤 했다. 영국은 이제 더는 농업 국가가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히 5만 마리의 양이 사육될 정도로 양과는 떼 놓을 수 없는 나라다.
우유 짜는 여자, 크리켓 선수 등 영국을 상징하는 캐릭터들이 메이폴(봄맞이 축제 때 세우는 기둥) 주위에서 춤을 췄다. 메이폴은 요즘도 영국 시골에서 오월제 때 세워지고 있으며 영연방 국가에서 인기있는 크리켓은 가장 영국적인 스포츠로 꼽힌다.
산업혁명 시기에는 광부, 제철소 노동자, 직공들이 등장한다. 영국이 세계 제조업을 이끌던 시기의 캐릭터들이다.
빅벤, 런던 아이 등 런던의 주요 건축물들이 시작 영상으로 소개됐다.
영국의 의료제도를 형상화한 600여 명의 간호사 등 영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징과 인물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75대의 보라색 자전거로 표현한 장면도 이채로웠다.
영화 ‘007’ 시리즈의 주인공 대니얼 크레이그의 대역 스턴트맨이 여왕 대역과 경기장 상공 헬기에서 낙하산을 펴고 뛰어내린 장면은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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