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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대통령의 ‘업보’ 서울구치소

    [씨줄날줄] 대통령의 ‘업보’ 서울구치소

    경기 의왕시 안양판교로 143. 서울구치소의 주소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체포 직전까지 머물렀던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차로 가면 30~40분 거리다. 대한제국 말기인 1907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열어 서대문형무소로 불리다 1967년 서울구치소로 이름을 바꿨다. 1987년 의왕시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구치소는 형이 확정되지 않은 1심, 항소심 미결수와 형기 5년 이하 수형자 등을 수용·관리한다. 사형 집행이 가능한 교정시설 중에서 실질적인 사용이 가능한 유일한 구치소다. 강력범을 비롯해 정치인, 고위 관료, 재벌 기업인 등 거물들이 상당수 거쳐 가면서 ‘범털(지위 높고 돈 많은 수감자) 집합소’라는 별칭을 얻었다. 전직 대통령들과는 특히 인연이 깊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5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됐을 때도 수감됐다. 국정농단 사태로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7년 수용됐고 ‘비선 실세’ 최순실씨도 거쳐 갔다. 재벌 총수들의 시름이 깊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그들.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송영길
  • [씨줄날줄] MZ 대한체육회장

    [씨줄날줄] MZ 대한체육회장

    그제 저녁 윤석열 대통령의 2차 체포영장 집행 예상 시간이 알려질 무렵 체육계에도 핵폭탄급 뉴스가 터졌다. ‘탁구 영웅’ 유승민(43) 전 대한탁구협회장이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3선에 도전한 이기흥(70) 현 회장을 누르고 당선된 것이다. 다른 후보들의 ‘반(反)이기흥’ 단일화 추진이 불발되면서 이 회장의 우세가 점쳐졌으나 막판 대반전이 일어났다. 1982년생인 유 회장은 ‘MZ 대한체육회장’이라는 새 역사를 쓰게 됐다. 그의 일성은 “변화에 대한 열망에 화답하고자 열심히 뛰겠다”였다. 솔직히 고백한다. 2023년 11월 문화체육부장을 맡기 전까지는 대한체육회의 존재를 잘 몰랐다. 대한체육회장이라는 자리가 ‘스포츠계의 대통령’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체육계 관계자들을 만나 이 회장이 연간 4000억원 이상의 체육계 지원 예산을 주무르며 월권을 휘두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신의 자리와 예산을 지키려고 경제부처 고위공무원 출신 등 수십명을 고문으로 앉혀 월 300만~700만원씩 준다는 둥 각종 제보도 이어졌다. 지난해 파리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선전했지만 안세영 선수와 배드민턴협회 사태 등으로 드러난 체육단체들의 전횡과 비리 뒤에는 ‘이기
  • [씨줄날줄] ‘장관급’ 광역단체장

    [씨줄날줄] ‘장관급’ 광역단체장

    금수저, 흙수저. 사회이동성이 약해진 한국 사회의 계급 고착화 현상을 풍자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행정조직에도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중앙과 지방 간의 수직적 관계가 그런 경우다. 올해로 민선단체장 시대가 열린 지 30년이지만 중앙정부 중심의 형식적인 지방자치일 뿐이다. 허울뿐인 자치시대는 민선단체장 대우에서도 드러난다. 2년 전 이철우 경북지사는 미국 텍사스주를 방문해 주지사가 급한 일정으로 자리를 비운 통에 부지사 격인 국무장관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미 주지사는 다른 나라의 대통령급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듣고서 “굳이 광역단체장 지위를 낮춰서 밖에서 푸대접받게 할 필요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해 시도지사협의회장을 맡은 박형준 부산시장도 이 문제를 정부에 집중 제기했다. 그 결과 지난해 하반기부터 광역단체장이 해외를 방문할 때 ‘대접’이 달라졌다. 현지 공관들이 미국의 경우 ‘지사’, 중국에서는 ‘성장’ 등과 만날 수 있도록 ‘급’을 높였다. 올해 시도지사협의회장이 된 유정복 인천시장도 지방시대 실현에 적극적이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관선시대 계급주의 사고와 결별하자고 선언했다. 시도지사협의회장의 국무회의 참석, 17개 시도지
  • [씨줄날줄] 나훈아의 뒷모습

    [씨줄날줄] 나훈아의 뒷모습

    ‘국민 가수’ 나훈아의 본명은 최홍기다. 1947년 부산 초량에서 태어났다. 초량초등학교와 대동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서라벌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대동중 시절에는 야구선수였다. 한화 이글스 감독을 지낸 동문 이희수는 그가 뛰어난 내야수였다고 회상한다. 당시 대동중은 전국을 제패한 강팀이었는데 나훈아는 강타자였다고 한다. 고교 1학년 때는 우이동 소풍길에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불러 여고생들의 환호성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고교에 진학하면서 유명 가요 작곡가 사무실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첫 앨범은 1966년 나온 ‘내 사랑아’였는데 반응이 없자 음반사 옥상에서 우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듬해 ‘사랑은 눈물의 씨앗’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그의 노래는 애상(哀傷)이 가장 중요한 정서라는 연구도 있었다. 그리움, 외로움, 서러움의 정서를 혼합한 것이 특징이라는 것이다. 1960~1970년대는 라디오가 가장 중요한 문화 수단이었다. 이 시기 나훈아는 남진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끊임없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 열풍을 일각에서는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당시 노동환경에서 기계와 다름없었던 남녀 노동자들을 각각 음주와 트로트 스
  • [씨줄날줄] 더닝 크루거 효과

    [씨줄날줄] 더닝 크루거 효과

    다양한 매체에서 실시간 정보가 쏟아지는 요즘, 진실과 가짜의 경계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탄핵 정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극적인 주장과 근거 없는 음모론이 활개를 치는데 그 중심에 한쪽으로 편향된 유튜버들이 있다. 정보의 바다에서 길을 잃기 쉬운 대중들은 더욱 혼란스럽다. 사회적 분열상은 극심하게 증폭될 수밖에 없다. 12·3 비상계엄 이후 이런 현상은 더 두드러진다. 구독자 20만명이 넘는 극우성향 유튜브 채널 15개 대부분의 구독자 수가 급증했다고 한다. 이 유튜브들은 “비밀 문건에 따르면”과 같은 불확실한 표현이나 정체불명의 내부 관계자 발언을 인용한 경우가 많다. 사실 여부를 검증할 수 없게 전제한 뒤 자극적인 가설을 진실처럼 유포하는 방식인 것이다. 탄핵 정국에서 제기된 특정 국가 개입설이나 탄핵 배후설, 부정선거 의혹 등은 사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런 유튜버들의 주장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급증세인 현실이다. 이런 현상을 ‘더닝 크루거 효과’라고 부른다. 잘 모르는 분야에서 자기가 취득한 정보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이를 맹신하며 행동하는 경향을 뜻한다. 전문적인 지식 없이 복잡한 사안에 대해 단순화된 음모론에 빠져드는 경우도
  • [씨줄날줄] ‘5세대 실손보험’과 비급여

    [씨줄날줄] ‘5세대 실손보험’과 비급여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아 가입자가 부담하는 치료비(비급여)를 지원하는 실손보험(실손)은 출시 시기별로 4개로 나뉜다. 본인부담금 비중이 가장 큰 차이다. 2009년 9월까지 팔린 1세대 실손은 본인부담금이 통원치료 5000원뿐이다. 입원치료는 전액 보장한다. 2021년 7월부터 판매 중인 4세대 실손은 본인부담금이 급여 20%, 비급여 30%다.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비급여가 늘어나지만 정부의 관리 밖이다. 가격도 제각각이다. 도수치료의 산재보험 수가는 3만 6080원. 병원의 평균 진료비는 10만원인데 50만원을 받는 곳도 있다. 보험금이 지급되면 가입자들은 가격에 둔감하다. 비급여 신기술은 개원의들의 주요 소득원이다. 자궁근종 치료 시 초음파를 이용하는 하이푸(고강도초음파집속술)의 상급종합병원 최고가는 550만원(2023년 기준)인데 1차 의료기관은 2500만원이다. 보험사들이 비급여 보험금 지급을 깐깐이 하면 다른 비급여 항목으로 옮겨 가는 ‘풍선효과’도 끊이지 않는다. 숙련의일수록 위중한 환자를 다루는 상급병원에서 일하기보다 개원의가 되는 것이 경제적으로 편안하다. 보상체계 왜곡은 중증·응급·소아 등 필수의료 의사 부족 현상을 가져왔다. 의대 증원
  • [씨줄날줄] 임시공휴일과 ‘내수 살리기’

    [씨줄날줄] 임시공휴일과 ‘내수 살리기’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유행하던 2015년. 한일월드컵이 열린 2002년 이후 13년 만에 임시공휴일이 지정됐다. 토요일인 광복절 하루 전인 8월 14일이 임시공휴일이 돼 3일 연휴가 됐다. ‘광복 70주년’ 명분도 더해졌다. 정부는 연휴 직후 유통업체 매출액, 고속도로 통행량 등을 거론하며 내수에 기여했다고 자찬했다. 다음해에도 어린이날과 토요일 사이인 5월 6일이 임시공휴일이 됐다. 가장 최근의 임시공휴일은 지난해 국군의날이다. 개천절이 목요일이라 ‘퐁당퐁당 휴일’이 되면서 국내 관광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임시공휴일 지정 발표 이후인 지난해 9월 13일부터 19일까지 16~69세 국민 1000명에게 물었더니 새로 여행을 계획했다는 응답이 80.7%였다. 여행 목적지로 국내를 답한 비율은 86.5%였다. 경제지표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지난해 10월 해외여행 출국자는 238만명으로 10월 기준 역대 최다였다. 소매 판매는 전월보다 0.8% 줄었다. 특히 숙박 및 음식점업이 1.9% 줄었다. 재작년 10월에도 임시공휴일이 있었다. 추석 연휴(9월 28일~10월 1일)와 개천절 사이에 임시공휴일이 끼면서 6일 연휴가 됐다
  • [씨줄날줄] 못질당한 병산서원

    [씨줄날줄] 못질당한 병산서원

    서울 북촌 화동에 살던 1960년대 후반 겨울이면 경복궁 경회루는 스케이트장이 됐다. 얼음판 여기저기선 떡볶이와 어묵도 팔아 어린 마음을 유혹했다. 그때는 그랬던 시절이다. 그동안 세상의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은 너무나 크게 달라졌다. 서애 류성룡 선생을 모신 안동 병산서원은 이런 변화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서쪽의 화산 너머 풍산 류씨 집성촌 하회마을과 짝을 이루는 교육기관이 병산서원이다. 흔히 ‘서원 건축의 백미’라고 찬사를 보내지만 실제 찾아보면 어떤 미사여구도 부질없게 느껴지는 마음의 울림이 있다. 한번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으니 중요한 문화유산이라며 이런저런 설명으로 보존의 필요성을 강조할 이유도 없다. 병산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병산서원을 찾는 사람들은 낙동강을 따라 가는 좁은 진입로에 먼저 놀란다. 병산길은 최근까지도 명실상부한 비포장길이었다. 확장해서 포장해야 한다는 주장보다 아스팔트 도로가 문화유산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지적이 더 설득력을 얻었다. 줄다리기 끝에 2022년 황토포장이 이루어졌다. 지금도 자연스러운 흙길처럼 보이는 것은 그때의 결정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원 주변 울긋불긋했던 민가 지붕이
  • [씨줄날줄] 트럼프 별장 영사관

    [씨줄날줄] 트럼프 별장 영사관

    정치는 상징이 중요하다. 대중의 인식과 감정을 단번에 사로잡는 강력한 힘이 있는 까닭이다. 도널드 트럼트 미 대통령 당선인에게는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초호화 리조트이자 사저가 있는 ‘마러라고’가 그런 무대였다. ‘겨울 백악관’, ‘남부 백악관’으로 불리는 이곳은 2016년 대선 승리를 기점으로 트럼프의 국제 정치·외교 무대 중심지로 변신했다. 마러라고는 트럼프에게 ‘워싱턴 아웃사이더’ 이미지를 강화하면서 기존 정치에 환멸을 느낀 유권자들에게 새 정치의 희망을 상징했다. 트럼프 1기 격식을 벗어난 비공식 무대에서 협상과 대화를 시도하며 비즈니스 감각을 외교에 접목하는 전략을 맘껏 뽐냈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만찬, 일본 아베 신조 전 총리와의 골프 외교 등 주요한 정치 외교 무대가 됐다. 집권 1기 4년 임기 동안 그는 총 32회 마러라고를 찾아 142일간 머물렀다. 대통령 공식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는 찬밥 신세였다. 공교롭게도 트럼프 집권 2기 핵심 측근들의 정치적 고향도 모두 플로리다주와 겹친다. 백악관 비서실장 수지 와일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된 마이크 왈츠 하원의원, 국무장관 지명자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 등이 대표적인 ‘플로리다
  • [씨줄날줄] 건강수명

    [씨줄날줄] 건강수명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됐음을 보여 주는 지표 중 하나가 ‘기대수명’이다. 특정 연도 출생자가 향후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연수다. ‘평균수명’, ‘0세의 기대여명’이라고도 한다. 기대수명은 2023년 83.5세로, 1920년 62.3세에서 21.2년이나 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10년 전후로 80세까지 높아지면서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 일본, 스위스 등에 이어 긴 나라가 됐다. 요즘 기대수명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이 ‘건강수명’이다. 기대수명에서 질병 또는 장애를 가진 기간을 제외한 수명으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특별한 이상 없이 생활하는 기간을 의미한다. 건강의 질적 측면을 보여 주는 지표로, 기대수명과 함께 건강수명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2000년 66.6세에서 2021년 72.5세. 20년 새 5.9년 늘었다. 일본에 이어 건강수명 2위 국가가 됐다. 그런데 건강수명이 늘어났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건 아닌 것 같다.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실 연구팀이 2008년부터 2020년까지 건강보험 데이터를 통계로 한국인의 소득 수준과 건강수명 등 건강 형평성 추이를 분석했더니 소득이 높을수록 건강하게 오
  • [씨줄날줄] 트럼프 2기의 내홍

    [씨줄날줄] 트럼프 2기의 내홍

    권력은 묘한 속성이 있다. 권력을 잡기 전엔 측근들이 일치 단결하다가도 집권 후엔 급속하게 분열하곤 한다. 2016년 미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그랬다. 경쟁을 부추기는 트럼프의 독특한 리더십과 다양한 이념적 배경을 가진 참모진, 그리고 졸속 추진된 정책들이 빚어낸 합작품이란 평가다. 당시 코어그룹 내에서 갈등을 일으킨 대표적 인물이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였다. 대선 일등 공신인 그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민족주의적 접근, 즉 무슬림 여행금지·국경장벽 건설 등을 주장하며 분란을 일으켰다. 공화당의 전통적 엘리트는 물론 개리 콘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등 실용주의 실세들과도 충돌했다. 배넌의 과격한 안보 정책을 둘러싼 국방부 관료와의 갈등도 동시다발로 터졌다. 참다못한 트럼프는 취임 6개월도 안 돼 ‘트러블 메이커’ 배넌을 쫓아냈지만 후유증이 꽤나 오래갔다. 오는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2기도 시작 전부터 삐거덕거리고 있다. 이번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갈등의 핵’이다. 얼마 전까지 트럼프 내각 인선을 둘러싸고 온갖 개입설이 나돌더니 최근 전문직 외국인에게 발급하는 이민 비자(H1B) 문제를 놓고
  • [씨줄날줄] 2025 신년사

    [씨줄날줄] 2025 신년사

    섣달그믐부터 카카오톡으로 새해 인사가 쏟아진다. 휴대전화 화면 가득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메시지가 쌓인다. 예전에는 종이 연하장으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카톡 등 모바일 메시지로 대체된 지금 돌아보면 아련한 풍경이다. 새해 첫날이면 이런 일상적인 인사 외에 정치인과 기업인의 신년사도 접하게 된다. 지인 간 새해 인사가 관계 유지나 친밀감을 표현하는 메시지라면, 이런 신년사는 국민과 시장에 전달하는 공적 메시지다. 시대의 고민과 목표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어 국정운영이나 경영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특히 대통령의 신년사는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에 대중의 관심이 높다. 역대 대통령 신년사는 당시의 시대적 과제를 토대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 전 대통령이 강조한 국가 재건과 반공,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와 근면 성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회복이 그런 경우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0년 신년사에서 혁신과 포용, 공정과 평화를 바탕으로 함께 잘사는 나라,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담대한 선언’이었으나 5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양극화 심화에 남
  • [씨줄날줄] 역사 속 을사년

    [씨줄날줄] 역사 속 을사년

    2025년은 을사년 뱀띠 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뱀띠 해에 태어난 사람을 총명하다고 여겼다. 뱀이 지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옛날이야기는 대부분 뱀을 사악하거나 두려운 존재로 묘사한다. 우리 역사를 봐도 뱀띠 해에는 이런 상반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1425년(세종 7)에는 주자소에서 찍어 낸 ‘장자’(莊子)를 문신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조선은 주자소를 설치한 1403년(태종 3) 금속활자인 계미자를 만들었다. 1420년에는 경자자, 1434년에는 갑인자를 주조한다. 구텐베르크에 앞서는 것은 ‘직지’만이 아니다. 명종 즉위년인 1545년 을사사화가 일어났다.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외척이 개입하면서 정미사화까지 피비린내 나는 정치 투쟁이 이어졌다. 1605년(선조 38)에는 임진·정유 양난(兩亂) 극복에 공이 있는 선무원종공신 9060명, 호성원종공신 2475명, 청난원종공신 995명을 봉했다. 사명대사 유정은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 포로 3000명 남짓을 풀려나게 했다. 1665년(현종 6) 1월 6일에는 89일 동안 머물렀던 혜성이 비로소 사라졌다. 대혜성(great comet)이었다. 혜성은 묵은 폐단을 없애고 새로운 정사를 펴게 하는
  • [씨줄날줄] ‘정치공항’

    [씨줄날줄] ‘정치공항’

    현재 전국에서 운영 중인 공항은 15개다. 새만금공항과 가덕도신공항, 울릉공항 등이 건설되고 있으니 더 늘 수 있다. 새만금공항은 군산공항에서 1㎞ 떨어져 있고 인근에 철새 도래지도 있다. 역대 총선·대선 공약이었으나 경제성 등 문제로 번번이 무산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 지역균형발전 명목으로 예비타당성조사(예타)가 면제됐다. 전 세계 스카우트 대원·지도자 등이 모이는 잼버리가 공항 추진의 주요 명분이었으나 잼버리는 전 국민을 창피하게 만든 악몽이 됐다. 공항은 유치만 하면 정부가 건설하고 공공기관인 공항공사가 운영한다. 정치인과 지방정부가 나중에 책임질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황당한 사례가 여럿이다. AFP통신은 2007년 울진공항을 ‘세계 10대 황당 뉴스’에 올렸다. 김대중 정부 초대 비서실장인 김중권씨가 고향에 세운 “1300억원짜리 공항에 취항하려는 항공사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울진공항은 현재 비행훈련원으로 쓰인다. BBC방송은 2009년 양양공항을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국제공항’이라며 ‘유령공항’이라고 평가했다. 전두환 정권의 실세였던 유학성씨가 고향에 세운 예천공항은 2004년 폐쇄돼 공군기지로 둔갑했다. 전북 김제공항은 2003년 공사
  • [씨줄날줄] 징역 100년형

    [씨줄날줄] 징역 100년형

    몬테네그로 법무부가 50조원대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주범 권도형을 미국으로 송환하기로 했다. 피해자들이 바라던 대로다. 한국에서는 물렁한 처벌이 이뤄질 게 뻔하니 징역 100년형도 가능한 미국행을 바란 것이다.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말한 “범죄로 얻는 이득보다 형벌의 고통이 커야 한다”는 법언은 아직 국내에서는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형량은 무시무시한 수준이다. 72조원 규모의 폰지 사기를 저지른 버나드 메이도프에게는 징역 150년을, 6000억원대 보험 사기범 숄람 와이스에게는 징역 845년형을 각각 선고했다. 병과주의 원칙에 따라 개별 범죄의 형량을 모두 합산한 형량이다. 우리 사정은 딴판이다. 1조원대 펀드 사기를 저지른 IDS홀딩스 김성훈 대표는 징역 15년, 7000억원대 다단계 사기범인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는 징역 12년을 받았다. 사법 체계는 국가마다 다르다. 유럽에 비하면 한국의 처벌 수위는 높다. 약 21억원의 손실을 끼친 폰지 사기범 앤서니 배넌 파커에게 지난해 영국 법원이 내린 벌은 징역 겨우 3년 4개월. 독일에서는 보조금 사기에 5년 이하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부과하는 수준이다. 대신 유럽은 피해 회복에 주력한다
  • [씨줄날줄] 부치지 못한 북한군 손편지

    [씨줄날줄] 부치지 못한 북한군 손편지

    20여년 전 지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오래전 아들이 강원도 전방사단에서 군복무하던 시절 보내 온 손편지들을 고이 모아 둔 걸 본 적이 있다. “보고 싶은 어머님, 아버님!”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며 그 시절 ‘효자 아들’을 추억하다 보면 때론 아들이 서운하게 굴 때도 마음이 다스려진다는 것. 요즘은 군에서도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해졌지만 그 시절은 달랐다. 군사우편은 군에 간 아들과 부모, 친구, 연인을 이어 주는 유일한 원거리 통신수단이었다.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로 시작하는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삽입곡이다. 북한 청년들 사이에서도 애창곡이 됐다고 하니 남이나 북이나 사람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달 초 북한 정권에 저항하는 반체제 활동 조직으로 알려진 ‘새조선’은 온라인에 아들을 조선인민군에 입대시킨 한 북한 어머니의 편지를 공개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에게 닿을지는 알 수 없으나…”로 시작해 “너의 소식을 알아보고 싶어도 (중략)그 무엇도 알 수 없는 이 부모의 무능함이 너무나도 원망스럽다”고 적혀 있다. 우크라이나 특수전사령부(SOF)가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사살한 북한군 병
  • [씨줄날줄] 희년(禧年)

    [씨줄날줄] 희년(禧年)

    지난 크리스마스 전야,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라테라노 대성당의 성문(聖門)을 열고 2025년 희년(禧年)의 시작을 알렸다. ‘모든 성당의 어머니’라는 라테라노 대성당은 교황이 교구장인 로마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다. 이번 희년은 2026년 1월 6일까지라고 한다. 희년은 교회가 신자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는 ‘성스러운 해’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희년에는 빚을 진 사람은 탕감받고 노예는 해방됐다. 유대인들은 양뿔 모양의 요벨이라는 나팔을 불며 축제를 벌였다. 희년을 뜻하는 라틴어 유빌레움(jubilaeum)도 요벨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당초 50년마다 돌아오던 희년은 1470년 바오로 2세 교황이 25년 주기로 바꾸었다. 평생 희년을 지내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천주교회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이었던 2021년을 교황청의 허락을 받아 희년으로 기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고려시대의 전민변정도감(田民辨正都監)을 희년의 정신과 연결 짓기도 한다. 권문세족이 농장을 확대하면서 노동력을 확보하고자 양인을 천인으로 만드는 압량위천(壓良爲賤)의 폐단을 바로잡는 목적이었다. 조선시대 흉년이 들면 세금이나 환곡을 유예하거나 면제한 정퇴(停退)도
  • [씨줄날줄] 트럼프와 ‘페이팔 마피아’

    [씨줄날줄] 트럼프와 ‘페이팔 마피아’

    페이팔은 금융과 정보기술(IT)이 합쳐진 핀테크산업의 제왕으로 평가받는다. 일론 머스크의 엑스닷컴과 피터 틸의 컨피니티가 2000년 합병해 탄생했다. 2002년 상장됐고 그해 10월 전자상거래업체 이베이에 15억 달러(약 2조원)에 팔렸다. 창업주와 경영진은 이 과정에서 확보한 막대한 자본을 스타트업을 세우거나 투자하는 데 썼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상징하는 ‘페이팔 마피아’의 탄생이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임명된 머스크다. 재사용이 가능한 우주발사체를 개발하던 스페이스X가 2008년 파산 위기에 처했을 때 2000만 달러 투자로 그를 구한 그룹이 페이팔 마피아다. 머스크는 2000년 페이팔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쫓겨났지만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대부로 평가되는 사람은 틸이다. 틸은 벤처캐피털(VC)인 미스릴캐피털을 세웠는데 부통령 당선인 JD 밴스가 여기 출신이다. 틸은 2016년 대선 때에도 트럼프 캠프에 1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임명된 짐 오닐은 틸의 개인재단에서 CEO로 일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신설한 ‘인공지능·가상자산 차르’도 페이팔 최고운영
  • [씨줄날줄] CIA 신고하기

    [씨줄날줄] CIA 신고하기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일부 여권 지지자들이 ‘CIA 신고’를 인증하고 있다. 탄핵에 찬성한 유명인을 미 중앙정보국(CIA)에 신고했다는 캡처 화면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다. 이런 움직임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탄핵을 지지한 유명 인사들을 반미주의자로 CIA에 신고한 것이 ‘원조’였다. 신고 대상의 주류는 연예인들이다. 가수 아이유는 국회 앞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들에게 선결제로 음식을 제공했다고, 배우 김민교는 대통령의 비상계엄 패러디 영상을 게시했다고 각각 신고 명단에 올랐다. 정치적 의사표현부터 풍자 개그까지 가리지 않고 ‘반국가적 행위’로 해석한 것이다. 어제는 조기대선을 거론한다는 이유로 여권 인사인 홍준표 대구시장도 신고를 당했다. 이들을 굳이 미국 정보기관에 신고하는 까닭은 간단하다. CIA가 신고된 이들을 ‘종북 세력’으로 판정해 이들에 대한 미국 입국심사를 까다롭게 하거나 무비자 입국 프로그램인 ESTA(전자여행허가제) 발급을 저지하겠다는 의도다. ESTA가 거부되면 주한 미 대사관에서 비자 인터뷰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신고자들의 논리다. 미국이 정치·외교적 이유로 입국을 제한
  • [씨줄날줄] ‘정치 군인’과 군기 문란

    [씨줄날줄] ‘정치 군인’과 군기 문란

    1993년 3월 8일. 취임 11일째였던 김영삼 대통령이 김진영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 기무사령관을 전격 해임했다. 이어 특수전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까지 모두 13개의 ‘별’이 한꺼번에 우수수 떨어졌다. 12·12 군사반란의 주축이었던 하나회 인맥의 뿌리가 뽑힌 것이다. 12·3 비상계엄 수사 과정에서 ‘경기특수’ 모임이 주목받고 있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옛 기무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등 핵심 4명이 김 전 장관의 경호처장 시절이던 지난해 11월부터 사적 모임을 이어온 데서 해당 기관들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다. 김 전 장관과 여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고교동문인 ‘충암파’로 분류되고, 곽·이 전 사령관은 수도 방어의 핵심부대 책임자들이다. 계엄 이틀 전 ‘롯데리아 모임’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 체포 방안을 논의했던 사람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문상호 정보사령관, 김모·정모 대령 등이다. 행동지시를 내리고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은 노 전 사령관으로 파악된다. 그는 김 전 장관과의 오랜 근무 인연을 바탕으로 군간부 인사에도 영향력을 미쳤다는 관측이다. 민간인의 불법적인 군사작전 지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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