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우

장준우

셰프 겸 칼럼니스트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미슐랭 스타, 맛집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미슐랭 스타, 맛집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 한국의 식문화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건 ‘맛집 담론’이다. 온갖 매체와 소셜미디어(SNS)의 영향으로 온 국민의 관심은 어디가 가장 맛있는지, 가장 인기 있는지에 쏠려 있다. 이런 문화가 탄생하게 된 건 은연중 1등, 정답을 추구하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맞닿아 있다. 주어진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고 결과 또한 반드시 만족스러워야 하는 것이다. 레스토랑에 별점을 매기는 미슐랭 가이드나 순위를 매기는 월드베스트레스토랑 50 같은 평가 시스템은 이러한 요구에 강력하게 부응한다. 소위 푸드 인플루언서들의 리스트도 마찬가지다. 배경이나 이유야 어쨌든 권위가 있다고 여겨지는 시스템이 정한 맛집 리스트만이 온라인 공간에서 맴돌고 오프라인에서 소비된다. 물론 미슐랭 가이드와 같은 시스템이 가져온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음식의 위상이 세계적 수준의 음식들과 대등한 위치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걸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보여 준다. 하지만 평가 기준에 대한 잡음과 그들이 정한 리스트가 한국의 식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비판이 늘 따라다닌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매년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맛, 그 주관과 객관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맛, 그 주관과 객관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

    한 요리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 덕에 맛에 대한 관심이 한층 더 높아짐을 느낀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음식과 맛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장면을 심심찮게 현장에서 체감하기 때문이다. 출연한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먹은 음식을 놓고도 평가가 엇갈린다. 새삼 입맛은 주관적인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고, 같은 음식을 먹어도 각자의 경험과 기호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게 맛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객관적으로 맛을 평가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하나의 음식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맛있다’는 평가를 받을 때 그 안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까. 고수를 한번 예로 들어 보자. 우리 요리에 마늘이 빠지지 않듯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와 중동 요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재료다. 하지만 고수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고수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은 비누 냄새가 나서 도저히 입에 대지 못한다고 한다. 분명 고수를 처음 맛봤을 때는 역한 느낌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좋아하게 됐다. 이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고수에 포함된 알데하이드라는 성분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이 성분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유전자가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야생 버섯의 파라다이스, 윈난의 버섯 이모저모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야생 버섯의 파라다이스, 윈난의 버섯 이모저모

    버섯은 식재료 관점에서 보면 기이한 재료다. 동물도 식물도 아닌 균들이 모인 집합체라는 점은 주방에서 그다지 관심 있는 이슈는 아니다. 스펀지 같은 물성에다 고유의 향을 수분과 함께 갖고 있으며 아무리 오래 끓여도 분해되지 않는 유일한 재료라는 점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값비싼 송이버섯을 제외하면 대부분 값도 저렴한 편이다. 전 세계에 버섯은 수를 세기 어려울 만큼 존재하지만 그중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종으로 분류된 건 2500종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버섯의 종류가 10종이 채 못 된다는 건 꽤 아쉬운 일이다. 인류가 식용 가능한 버섯 2500종 중 1000종이 중국에 있으며 그중에서도 900종이 한 지역에서 난다. 바로 야생버섯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윈난성이다. 윈난의 기후는 버섯이 잘 자랄 수 있는 요소를 모두 갖췄다. 연중 따뜻하지만 밤에는 서늘한 온도차는 버섯의 향과 식감을 더욱 발달시킨다. 우리나라도 장마가 끝난 후 송이버섯의 시즌이 찾아오는 것처럼 여름철 비가 많이 오는 것도 버섯의 생장에 중요한 요소다. 6월부터 9월까지 우기 동안 습해진 숲에서 야생버섯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다. 윈난성은 산지와 숲, 평야 등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햄과 치즈, 중국 윈난에서 맛보는 유럽의 맛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햄과 치즈, 중국 윈난에서 맛보는 유럽의 맛

    음식 기행을 다니며 알게 되는 것 중 하나는 의외로 세계는 넓어 보이고 달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먹는 문화는 서로 엇비슷하다는 사실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처럼 인접한 지역이야 지리적으로 문화가 뒤섞일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저 멀리 유럽이나 다른 대륙에서 나타나는 식문화가 생뚱맞게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의 건조햄, 훠투이다. 햄은 돼지 뒷다리의 영어식 표현이다. 뒷다리는 돼지의 정육 부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일찍이 유럽에서는 돼지 뒷다리의 저장성을 높이기 위해 두 가지 방식을 사용해 가공했다. 하나는 다리를 통째로 소금에 절인 후 서늘한 곳에서 말리는 염장건조 방식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스페인 하몽이나 이탈리아의 프로슈토가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뒷다리살을 통째로 소금물에 담갔다 익히기도 하는데 프랑스의 잠봉 블랑, 이탈리아의 프로슈토 코토 등이 익힌 햄에 해당한다. 산업화가 도래하면서 값싼 가공육이 대량으로 필요하게 됐다. 이에 뒷다리뿐만 아니라 여러 부속 부위를 곱게 갈아 밀가루와 첨가물 등을 섞은 후 익혀 캔에 넣은 프레스 미트가 탄생하게 됐는데 이것이 이후 햄의 대명사가 됐다. 유럽의 건조햄은 역사를 특정하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먹을 것도 많은데… 중국 윈난성 곤충 요리의 이모저모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먹을 것도 많은데… 중국 윈난성 곤충 요리의 이모저모

    어떤 대상을 보고 두려움이나 불쾌감뿐만 아니라 공포심을 느끼는 걸 두고 공포증, 요즘에는 그럴듯한 말로 ‘포비아’라고 한다. 내가 특별한 대상에 대해 공포감을 느낀다고 한다면 곤충이다. 발이 많이 달린 거미나 지네뿐만 아니라 날개가 달린 모든 곤충에 대해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책장에 있던 과학백과사전을 들춰 보다 현미경으로 확대한 곤충의 눈과 날개를 본 게 큰 충격이었다. 그때부터 곤충은 내게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음식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쉽게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 도사리고 있었다. 나는 과연 곤충을 먹을 수 있을까. 물론 곤충을 안 먹어 본 건 아니다. 술안주로 나오는 번데기는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술김에 몇 번 집어먹어 본 적이 있다. 아주 어릴 적에는 튀긴 메뚜기를 보고 호기심에 하나 먹었다가 특별한 맛이 없어 손사래를 쳤던 기억이 선명하게 있다. 맛 자체에 대한 의구심보다는 곤충의 형태가 주는 원시적인 혐오감이 있는 데다 그것을 입안에 넣는다는 행위 자체가 내키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어찌 됐건 곤충을 먹는다는 건 나에겐 큰 용기와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중국의 서남쪽 끝단에 위치한 윈난은 사계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무더울수록 지친 입맛을 깨워 주는 자극, 스파이스 이야기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무더울수록 지친 입맛을 깨워 주는 자극, 스파이스 이야기

    유난히 계속되는 더위와 비에 몸도 입맛도 지치는 요즘이다. 여기가 동남아시아인지 아닌지 헷갈린다는 말이 어느새 ‘밥 먹었냐’는 말처럼 안부 인사가 됐다. 날씨가 더울수록 우리의 입맛은 자극적인 걸 원하게 된다. 한국의 음식이 점차 맵고 단 자극적인 맛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지적이 어떤 문화 현상일 수도 있지만 이렇듯 날씨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음식을 자극적으로 만들어 주는 요소는 달고 짜고 신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이른바 다섯 가지 맛의 크기가 커질수록 자극적이라고 하지만 보통은 다채로운 향과 촉각이 자극을 유발한다. 촉각이란 마라처럼 혀를 얼얼하게 만들어 준다든가 혀의 미뢰를 괴롭히는 매운맛 같은 것도 여기에 속한다. 인간의 식문화는 다채로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짠맛에 해당하는 소금, 단맛의 설탕, 신맛의 식초, 감칠맛의 장류의 조합만으로는 맛의 다채로움을 표현하기에 부족한데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향신료, 스파이스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향신료는 여러 가지 강한 풍미와 향기가 나는 식물성 물질로 열대성 식물에서 주로 얻으며 양념에 사용한다. 우리가 잘 아는 후추를 비롯해 정향, 넛맥, 메이스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냉면, 도대체 이게 뭐라고…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냉면, 도대체 이게 뭐라고…

    다른 계절엔 그리 동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여름만 되면 ‘냉면’이란 단어를 들을 때 마음에 묘한 파문이 인다. 도대체 육수인지 맹물인지 아리송해지는 슴슴한 평양냉면부터 새콤달콤하면서 매운맛까지 합세한 자극적인 함흥냉면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고명이 올려진 푸짐한 막국수와 구수한 밀면까지. 날씨가 무더워지면서 다른 계절 동안 잠자고 있던 차가운 면에 대한 욕구가 슬금슬금 고개를 쳐든다. 요즘엔 냉면 하면 평양냉면이 대명사처럼 됐지만 차가운 면의 세계는 생각보다 넓고 깊다. 고향이 부산이어서 자연스럽게 인생의 첫 차가운 냉면은 밀면이었다. 가족 외식으로 가끔 가는 밀면집은 어린 내게 있어 역설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분명 더위를 식히러 먹는 냉면인데 육수는 자극적이다 못해 길게 남는 매운맛으로 인해 혀를 내밀며 땀을 뻘뻘 흘렸기 때문이다. 첫입과 중간까지는 맛있게 먹다가 마치 그동안의 기쁨의 대가를 지불하는 듯한 고통스러운 매운 시간이 올 때면 대체 왜 이걸 먹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더군다나 같이 마시라고 주는 뜨거운 육수는 또 무슨 장난인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걸 체득한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맛있게 잘 먹는 어른이 됐지만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디테일을 알아볼 수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사치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디테일을 알아볼 수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사치

    평소 걸어서 출퇴근만 하다 오래간만에 시내버스를 탔다.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한동안 잡을 일이 없던 버스 손잡이의 감촉이 새삼 낯설었다. 예전 기억엔 투박한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손에 걸리는 느낌 없이 편안하게 체중을 지탱해 주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새삼스러움을 느끼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가고 무심코 사용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디테일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구나. 어떻게 보면 우리는 디테일에 집착하는 강박증과 결벽증, 완벽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것들로 둘러싸인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공공연한 비밀인데 마감 직전이 되면 가끔 매장에 이웃한 위스키 바를 찾아 잠시 달콤한 휴식을 취한다. 위스키에 대해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위스키가 주는 매력이 무엇인지는 조금 알 것 같다. 단 한 방울로도 혀와 코, 목구멍을 오가며 다채로운 감각의 향연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고, 메이커의 의도와 자연의 변수로 인해 완전히 똑같은 풍미를 내는 위스키는 없기에 디테일을 즐기는 술이라는 것이다. 위스키병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에서 단 한잔의 위스키를 마시는 행위는 향과 맛의 작은 차이로 인해 마치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스페인 요리에 매료된 어느 이탈리아 요리사의 고백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스페인 요리에 매료된 어느 이탈리아 요리사의 고백

    가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하곤 한다.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웠고, 가장 좋아하는 와인은 프랑스 와인이며, 지금은 스페인식 타파스바를 운영하고 있노라고. 이토록 아이러니한 삶이라니. 듣는 이가 웃으라고 하는 농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심이다. 파스타의 매력에 빠져 요리의 길에 접어들게 한 이탈리아는 지금의 나를 낳은 어머니 같은 존재다. 이탈리아 와인으로 시작했지만 이것저것 마시다 보니 프랑스 와인의 섬세함에 유독 매료됐다. 마치 첫사랑 같다고 할까.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난 후 견문을 넓히고자 밟은 스페인 땅에서 나지막이 이렇게 외쳤다. ‘아, 스페인으로 유학 올걸….’ 그 후로 스페인을 더 많이 찾고 스페인 음식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지만 나를 기른 아버지 같은 존재랄까. 뭇 남자들이 그러하듯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첫사랑의 영향을 받고 남자는 세상에 던져진다. 스페인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묻는 손님들을 종종 만난다. 그럴 때면 이렇게 대답한다. 이토록 전 국민이 음식에 진심인 나라는 흔치 않다고 말이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 하면 그 나라의 식당과 시장에 가 보면 된다. 시장에 있는 식재료들의 품질이 좋고 다양할수록, 음식을 허투루 내는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맛집이라는 단어에 가려진 씁쓸함에 대하여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맛집이라는 단어에 가려진 씁쓸함에 대하여

    음식에 관해 글을 쓰면서 동시에 외식업에도 발을 담그고 있지만 ‘맛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 극도로 꺼리는 편이다. 맛집이란 단어가 품고 있는 아이러니함과 폭력성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자 맛집공화국이다. 일상에서 ‘맛집’이라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 어딘가로 나갈 때면 반드시 맛집을 검색하고, 맛집을 추천받고, 맛집에 가고 싶어 한다. 맛집이라는 말은 음식이 맛이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쓰인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어째서 나타나게 된 것이냐에 대해선 딱히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맛집이란 말은 대체 언제부터 사용하게 된 것일까. 맛집의 탄생은 한국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연관이 있다. 전쟁 후 경제는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1980년대가 되면서 1가구 1승용차 시대, 전국을 구석구석 누비며 어디든 갈 수 있는 이른바 ‘마이카’ 시대가 열렸다. 타이어 소비 진작을 위해 자동차로 찾아갈 만한 식당을 소개한 프랑스의 ‘미슐랭 가이드’의 탄생처럼 이 시기를 기점으로 신문과 방송 등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맛집이란 단어였다. 그동안 아는 사람만 알던 전국의 숨겨진 맛집을 발굴해 소개하는 글과 방송이 대중매체를 통해 알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이탈리아의 주방, 시칠리아의 군침 도는 매력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이탈리아의 주방, 시칠리아의 군침 도는 매력

    요즘 시칠리아를 다녀왔다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너무 좋았다는 감탄 일색이다. 그럴 때마다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일 년 남짓 시칠리아의 작은 주방에서 하루 종일 요리를 하며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당시엔 몹시 힘들고 갑갑했는데 마치 군대를 한 번 더 갔다 온 듯한 경험이었다고 할까. 다행히 신은 우리에게 망각이라는 축복을 내렸다. 다행스럽게도 이젠 땀을 비 오듯 쏟으며 고생한 시간보다 아름다운 시칠리아의 풍광만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탈리아의 식문화를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각기 다른 색깔과 모양의 조각들이 한데 모인 모자이크처럼 보인다. 공공연하게 ‘이탈리아엔 이탈리아 음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나라다. 단지 각 지방을 대표하는 지역 음식들이 있을 뿐이다. 지역색이 워낙 강해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단순하게 북부와 남부의 식문화를 구분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더 복잡하다. 그중에서도 시칠리아가 가진 위상은 독특하다. 이탈리아 음식 가운데 가장 이국적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칠리아는 지중해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반도를 연결하는 징검다리이자 ‘지중해의 심장’이라고 불릴 정도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요리사의 영감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요리사의 영감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종종 요리사를 예술가에 비유하기도 한다. 음식이 예술의 하나이고 요리사를 예술가로 볼 수 있느냐는 또 하나의 논쟁적인 사안이지만 어느 정도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데 있어 유사한 점이 전혀 없다고는 하기 어렵다고 본다. 요리에도 예술가적인 마음가짐을 갖고 늘 평판과 새로움, 자기 혁신을 추구해야 하는 영역도 있지만 꾸준히 결과물을 더욱더 완벽하게 만들어 내야 하는 영역도 있다. 새롭게 생겨났다 사라지는 화려한 식당의 요리사와 수십 년간 같은 요리를 꾸준히 만들어 내는 요리사는 서로 요리사라는 점에선 같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 한쪽은 영원히 샘솟는 영감이 필요하고 다른 한쪽은 같은 작업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지구력이 필요하다. 파인다이닝이든 캐주얼한 식당이든 분식집이든 치킨 프랜차이즈든 영역을 막론하고 실제 현실에서는 영감과 지구력 두 요소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요리사는 어디서부터 영감을 얻을까. 이는 예술가는 어디서 영감을 얻느냐와 비슷한 질문이다. 영감의 원천은 실로 다양하다. 누군가는 일상의 경험에서 또는 유년 시절의 추억에서 영감을 찾아낸다. 세계 최고의 페이스트리 셰프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스페인의 조르디 로카는 과거의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바게트와 크루아상, 담백하고 달콤한 프랑스의 아이콘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바게트와 크루아상, 담백하고 달콤한 프랑스의 아이콘

    요리사들, 특히 본인의 업장을 가진 셰프들이 모일 때면 종종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요리 말고 빵이나 디저트를 해야 해.” 식당을 운영하긴 점점 어려워지는 데 반해 신상 빵집이나 디저트 카페에 줄을 서는 요즘 분위기에 대한 자조 섞인 한탄이다. 물론 제과제빵 업계도 만만치 않게 힘든 분야다. 오전에 빵을 만들어 팔려면 새벽부터 나와야 하고, 형형색색 먹음직스러운 디저트를 한 땀 한 땀 만드는 일도 꽤 수고스럽다. 1인당 쌀 소비는 점점 줄어드는 데 비해 빵 소비는 점점 늘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통계청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012년 69.8㎏에서 2020년 57.7㎏으로 17.3% 감소했고, 1인당 하루 빵 섭취량은 2012년 18.2g에서 2020년 19.4g으로 6.6% 증가했다. 바게트나 사워도우, 베이글, 식빵처럼 흔히 식사 빵이라고 부르는 빵 소비와 함께 카페의 확산과 더불어 크루아상, 퀸아망과 같은 페이스트리나 케이크 같은 디저트 소비도 해마다 증가세다. 출산율 감소처럼 걱정할 일이라기보다 오히려 식단의 다양성이 증가하고 해당 산업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시각으로 보면 긍정적인 일이다. 빵 하면 떠오르는 건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커피 애호가들의 성지, 멜버른의 특별한 커피 문화/셰프 겸 칼럼니스트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커피 애호가들의 성지, 멜버른의 특별한 커피 문화/셰프 겸 칼럼니스트

    여행을 좀 다녀 본 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다. 여행지에서 괜찮은 커피를 마시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온 국토에 끝내주는 에스프레소 바를 가진 이탈리아를 제외하곤 일부러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는 발품을 팔아야 겨우 먹을 만한 커피를 맛볼 수 있다. 멜버른은 커피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일종의 성지 같은 곳이다. 2000년대 초반 세계 커피 업계는 이른바 ‘제3의 물결’에 휩싸였다. 인스턴트커피로 대표되는 제1의 물결, 스타벅스와 같은 에스프레소 기반 글로벌 커피 체인의 부흥인 제2의 물결에 이은 트렌드다. 인스턴트커피가 만들어 낸 첫 번째 파란은 쉽고 빠르게 집에서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널리 보급하는 데 일조한 것이고 두 번째 파란은 밖에서 편하게 다양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 문화를 만든 것이다. 스페셜티 커피로 상징되는 세 번째 파란은 그저 쓰기만 한 커피가 아닌 특별하고 다양한 풍미를 선사해 주는 커피 자체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미국, 북유럽과 함께 제3의 물결의 진원지 중 하나가 바로 호주의 멜버른이다. 멜버른은 어떻게 세계 커피 문화의 성지가 됐을까. 영국의 영향 아래 있던 호주에서는 19세기 전까지만 해도 커피보다는 차를 주로 마셨다. 멜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김치 토스트, 해산물 파에야로 보는 음식의 정통성/셰프 겸 칼럼니스트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김치 토스트, 해산물 파에야로 보는 음식의 정통성/셰프 겸 칼럼니스트

    오래전 한 유튜브 콘텐츠를 관심 있게 본 적이 있다. 이탈리아 음식 전문가들이 비이탈리아 지역의 유명 셰프나 유튜버들이 이탈리아 음식을 만드는 콘텐츠를 보는 반응을 담은 영상이다.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만드는 법이라든지, 피자 만드는 영상을 보며 ‘이탈리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하며 ‘진짜 이탈리아 요리’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 꽤 흥미로웠다. 최근 한식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 음식에 관한 해외 콘텐츠도 활발히 만들어지고 있다. 문제는 한국 사람들은 이탈리아 사람들 못지않게 정통에 민감하다는 사실이다. 최근 어느 해외 요리 유튜버가 사워도 토스트에 치즈와 김치를 끼워 놓은 ‘김치 치즈 토스트’를 만드는 장면을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처음에 든 생각은 ‘재미있네, 안 될 게 뭐 있어?’였다. 요리하고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입장에선 무척 흥미로운 현상이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뼛속 깊이 각인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안 돼!’ 하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음식에 있어 정통성이란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다. 어떤 요리는 이래야 하고 절대 벗어나선 안 된다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정통주의자들의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소소하고 흔하지만 알고 보면 매력 덩어리, 감자 요리/셰프 겸 칼럼니스트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소소하고 흔하지만 알고 보면 매력 덩어리, 감자 요리/셰프 겸 칼럼니스트

    감자에 대한 추억으로 시작하려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다. 어릴 적 감자로 허기를 달랬었다고 하기엔 먹을 게 많은 시대에 태어난 세대다. 감자에 대한 좋은 인상이라고 하면 햄버거 프랜차이즈에서 맛본 프렌치프라이 정도다. 반찬으로 가끔 등장하는 감자볶음은 젓가락질을 피하게 만드는 존재였고 감자탕 속 감자는 등뼈에 붙은 고기의 존재감에 밀려 나온 모양 그대로 그릇 밖으로 모셔지기 일쑤였다. 밥이 있는데 같은 탄수화물 덩어리인 감자를 굳이 먹어야 하는가 하는 영양학적 실존에 대한 의문도 종종 들었다. 처음 메뉴를 짤 때 감자는 안중에도 없었다. 쓸 만한 식재료로서 매력을 못 느낀 게 이유였지만 사실은 많이 먹어보지 않으니 감자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몰랐던 게 진짜 이유였다. 너무 흔하고 뻔해서 관심을 두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멀어졌다. 이렇게 쓰고 나니 감자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지금은 감자를 열심히 다루고 있는 것으로 나름대로 참회 중이다. 감자의 매력을 뒤늦게나마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아메리카 사람들의 주식이었던 감자는 15세기 스페인 정복자들과 함께 유럽으로 건너왔다. 같이 유럽으로 건너온 고구마는 달콤한 맛 때문에 상류층에게 이국적인 식재료로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시간이 주는 깊은 맛의 향연, 브레이징 요리의 세계/셰프 겸 칼럼니스트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시간이 주는 깊은 맛의 향연, 브레이징 요리의 세계/셰프 겸 칼럼니스트

    인간이 하루에 두 끼 정도 꼬박 먹는다고 치면 1년이면 730끼, 10년이면 7300끼와 마주하게 된다. 수만 번의 끼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식사를 몇 개 꼽는다고 하면 그 식사가 얼마나 특별한지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기억에 남아 있는 식사는 어떤 맛의 첫 경험이거나 인생의 특별한 이벤트 또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식사 정도이지 않을까. 당장 지난주에 무엇을 먹었는지도 기억하기 어려운데 말이다. 그토록 수많은 끼니 중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유독 떠오르는 한 접시가 있다. 스페인에서 맛본 닭으로 만든 기사도(Guisado) 요리다. 심지어 여름에 맛보았는데도 말이다. 세계의 토종닭 요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그 요리는 사실 특별하다고 할 만한 대단한 요리는 아니었다. 닭을 오랫동안 뭉근히 익혀 만든, 우리나라로 치면 일종의 갈비찜이나 찜닭 같은 요리다. ‘피타 핀타’라고 하는 스페인 아스투리아스의 토종닭은 무게만 3.5㎏이 넘는 거대한 닭이다. 그만큼 오래 자라 근섬유가 탄탄하다 보니 굽거나 튀기는 요리보다 오랫동안 익혀 부드럽게 만드는 요리에 적합한 식재료다. 닭을 구운 후 구운 기름에 양파와 피망을 볶은 후 화이트와인과 브랜디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고소하고 기름진 유혹… 견과류의 세계/셰프 겸 칼럼니스트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고소하고 기름진 유혹… 견과류의 세계/셰프 겸 칼럼니스트

    일부러 건강을 위해 견과류를 꼬박 챙겨 먹는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이미 영양 과잉 시대에 살고 있거니와 영양분을 보충해 줄 다른 선택지도 많이 있지 않은가. 가방에서 먹기 좋게 포장된 견과류 봉지를 꺼내 드는 모습을 보니 분명 어느 광고나 방송을 보고 구매했겠거니 싶었다. 친구는 “하나 먹을래?” 하며 까 놓은 견과류를 들이밀었다. 이 친구도 마케팅의 희생양이 되었구나 하며 손사래를 치려고 했지만 웬걸, 잠시 후 넙죽 받아 입안에 털어 넣고 있는 자신을 자각했다. 아몬드, 호두, 잣, 땅콩, 밤 등 견과류라고 부르는 식재료는 인류의 초기부터 식단에 올랐다. 고열량의 영양가 높은 식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DNA에 새겨진 코드 때문인지, 아니면 그때 배가 조금 출출했는지는 몰라도 분명 이성은 ‘이런 걸 왜 챙겨 먹느냐’고 외치지만 뇌에서 보내는 신호는 기분 좋은 만족감이었다. 한 줌의 견과류를 통해 인간이 이토록 나약한 존재였다는 걸 깨달을 줄이야. 견과류는 곡물이나 콩류에 비하면 그리 효율적인 식량자원은 아니다. 우선 절대적으로 한 그루당 수확량이 적고 무엇보다 단단한 겉껍질을 까기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다. 명절의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달콤함부터 알싸함까지… 홍어의 치명적인 매력/셰프 겸 칼럼니스트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달콤함부터 알싸함까지… 홍어의 치명적인 매력/셰프 겸 칼럼니스트

    어릴 적 방학만 되면 할머니 댁에 자주 머물렀다. 경남 남해가 고향인 할머니가 차려 준 밥상엔 늘 평소에 접하기 힘든 반찬들이 올라왔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다신 맛볼 수 없게 된 추억의 음식들이지만 어린 입맛엔 썩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여러 음식 중 유난히 기억나는 게 하나 있는데 바로 말린 가오리찜이다. 손질해 말려 반건조한 가오리를 찐 후 양념장을 얹어 먹는 음식이었는데 은은하게 나는 알싸한 암모니아 향에 놀라면서도 은근히 묘한 맛이 있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려졌다. 이런 향이 나는 생선 요리도 있다는 걸 꽤 이른 나이에 안 셈이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기 직전 무렵 부모님의 지인이 홍어 한 상자를 선물해 주었는데 그때가 홍어와의 첫 만남이었다. 먹는 걸 좋아하는 경상도 가족이지만 홍어를 먹을 기회는 전혀 없었다. 새로운 음식에 거부감이 없어 호기롭게 한 점 베어 물었던 삭힌 홍어의 맛은 실로 충격적이었지만 어릴 적 맛보던 말린 가오리찜의 경험 때문일까, 입안에서 느껴지는 향과 맛의 야단법석이 크게 낯설지 않았다. 여태 먹어 온 맛의 세계 어딘가가 깨부수어지고 새로운 맛의 차원이 충돌해 들어온 듯한 경험을 한 이후부터 삭힌 홍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축하 케이크는 언제부터?… 케이크의 달콤한 역사/셰프 겸 칼럼니스트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축하 케이크는 언제부터?… 케이크의 달콤한 역사/셰프 겸 칼럼니스트

    늘 궁금했지만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까 봐 그동안 차마 입 밖에 꺼내지 않은 말이 있다. 왜 우리는 생일을 맞거나 기념할 날이 되면 어김없이 케이크를 준비하는 걸까. 별도의 교육이나 강요를 받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역과 문화를 막론하고 축하 행사의 중심엔 늘 음식이 있다. 무언가를 푸짐하게 먹는 행위, 평소에 먹지 않는 특별한 음식을 먹는 의식 등을 한다. 생일날 케이크를 먹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생일상을 차리는 일도 같은 선상에 있다. 그렇다면 케이크는 언제부터 인류에게 축하의 의미로 다가오게 됐을까. 인류학자들은 케이크를 준비하는 행위가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고대의 종교적 의식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 고대인들은 신이나 권력자에게 케이크를 바치며 그들의 선행을 축하하거나 찬양했다. 고대 그리스에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위해 둥글거나 달 모양의 꿀을 넣어 만든 케이크를 만드는 전통이 있었는데, 달이 밝게 빛나는 모습을 형상화하기 위해 케이크에 초를 꽂아 환하게 밝혔다. 그리스뿐 아니라 로마에서도 가정의 평온을 위해 작은 원형 치즈케이크를 구워 제단에 바쳤다. 이스라엘에서는 천국의 여왕 아세라를 위해 케이크를 굽고 포도주를 사원에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