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단순하지만 다채로운, 달걀의 미학/셰프 겸 칼럼니스트
뜬금없지만 달걀이 없는 세상을 한번 상상해 보자. 우선 달걀이 없으면 태어날 닭도 없을 테니 더이상 치킨을 먹을 수 없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진다. 당연히 달걀을 이용한 요리도 자취를 감출 것이다. 그래 봤자 삶은 달걀, 달걀찜, 달걀말이 정도 못 먹게 되겠지란 생각을 했다면 큰 오산이다. 요즘 유행하는 피낭시에를 비롯한 카눌레, 마카롱, 케이크 등 거의 모든 달콤하면서 부드러운 질감의 디저트들이 송두리째 사라진다. 치킨 없는 디스토피아는 참을 수 있어도 단것 없는 세상이라니. 단테가 묘사한 지옥만큼이나 암울하지 않을까. 달걀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주방에 있는 요리사라면 달걀과의 만남을 결코 피할 수 없다.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달걀은 그 자체로 요리의 주연이 되기도 하지만 음식의 형태나 질감을 변형시켜 주는 부재료로도 많이 활용된다. 이 때문에 달걀이 갑자기 사라지게 되면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음식이 상당수다.
인류의 달걀 사랑에 대한 역사는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오래됐다. 학자들에 따르면 닭은 기원전 7000년 전부터 동남아시아에서 사육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고기보다는 달걀을 얻는 게 주된 목적이었을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