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버킷리스트는 ‘죽을만큼 버티기’… 궁서체를 닮은 설국 앞에 서다[강동삼의 벅차오름]
너는 마치 한글서체 가운데 가장 고전적인 궁서체를 닮았다. 마치 갓 쓰고 한복 입고 수염을 허옇게 기른 남성이 다소 고리따분하게 도덕윤리를 가르치는 조선시대에 살던 사람 같은, 젊은이들에겐 다소 외면받는 궁서체 같은 사람. 붓글씨 쓰던 과거로 돌아가듯, 원칙적이고, 각 지고, 고지식한 사람, 재미라곤 일도 없고 개그감도 떨어져 철 지난 유머를 쓰는 사람, 벽에 대고 얘기하는 것 처럼, 고구마 몇개 먹은 듯한 사람, 고집불통의 남자, 프레드릭 베크만의 소설 속 까칠한 ‘오베라는 남자’를 닮았다.
너에게 가는 길은 그런 궁서체처럼 예스럽고 까칠하지만 솔직담백한 오베같은 사람을 만나는 기분이다. 너에게 다가갈수록 세상에는 흑과 백만 있는 듯, 눈이 허리까지 쌓여 있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듯, 순백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 사람 발길이 드문 그늘진 모퉁이에만 잔설이 남아있을 정도로 녹아내린 도심과 달리, 제설차가 내 키보다 더 큰 언덕을 이룰 만큼의 폭설을 치워 통행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 오베라는 남자처럼 까칠하지만 너무 솔직한, 너무 고전적인 산
어리목 주차장에는 등산객들이 설국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한라산의 설경을 기필코 보겠다는 집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