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인맥 대해부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7>부영그룹] 이 회장 ‘절대권력’… “후계구도 정해진 것 없다”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7>부영그룹] 이 회장 ‘절대권력’… “후계구도 정해진 것 없다”

    부영그룹의 후계 구도는 오리무중이다. 그룹 내 절대권력으로 통하는 창업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후계 구도 논의에 대해 “아직 이르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미 자식들은 경영 전선에 뛰어든 상태다. 유학파인 장남 이성훈(48)은 부영그룹 부사장이다. 그는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미국 조지워싱턴대 법대 박사과정을 밟은 엘리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 부사장은 지난해 7월 이사에서 해임됐다. 이후 이 부사장의 부영 지분은 2.2%에서 1.6%로 낮아졌지만 장자답게 유일하게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유학 중인 차남 이성욱(46)씨는 고려대를 나온 뒤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영학석사과정(MBA)을 밟고 있다. ㈜부영 임원과 부영파이낸스, 광영토건 등에서 이사를 맡았었다. 성욱씨는 한국에 있을 때 투자신탁을 만들어 운영한 경험이 있다. 막내아들은 이성한(44) 영화감독이다. 부영엔터테인먼트 대표인 이 감독은 당초 건설사를 다니다 결혼한 뒤 꿈을 좇아 2006년 영화감독으로 변신했다. ‘스페어’ ‘바람’ ‘히트’ 등 3편의 영화를 만들었으나 흥행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자금난을 겪던 2011년 영화 제작비 상당액을 그룹 계열사인 동광주택이 자금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6>대상그룹] 창업주 임대홍의 동생들, 정·재·언론계 혼맥 화려…임창욱 명예회장,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의 사위

    창업주 아래 2남 1녀로 이어지는 대상그룹은 단출하지만 화려한 혼맥을 자랑한다. 전북 정읍에서 농사를 짓던 부친 임종구씨와 모친 김순례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임대홍(95) 대상 창업주는 1942년 전북도청 직원으로 근무하던 고 박하경 여사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고 박 여사는 전남 철도청 역원(임원급)의 딸이었다. 임 창업주의 장남인 임창욱(66) 명예회장은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의 셋째 딸인 박현주(62) 씨와 중매결혼했다. 현주씨는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의 여동생으로 현재 상암커뮤니케이션즈 부회장이다. 임 명예회장은 한양대,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고 박 부회장은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으로 미국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임창욱 명예회장과 박현주 부회장은 아들 없이 슬하에 두 딸을 뒀다. 장녀인 임세령(38) 대상 사업전략담당중역 상무는 1998년 국내 최고 재벌인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나 결혼했지만 11년 만인 2009년 헤어졌다. 이 부회장의 어머니인 홍라희 리움 관장과 모친 박현주 부회장이 불교 모임인 불이회에서 만나 친분을 쌓고 혼담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세령씨는 연세대 경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6>대상그룹] 불도저 명형섭 “글로벌·차별화”… 3년째 1000억대 영업익 주도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6>대상그룹] 불도저 명형섭 “글로벌·차별화”… 3년째 1000억대 영업익 주도

    명형섭(58) 대상 사장은 1982년 미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34년간 대상에만 몸담은 정통 대상맨이다. 사원에서 사장이 된 입지전적 인물로 통한다. 충남 당진 출신인 명 사장은 경희고등학교를 나와 고려대학교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2011년 11월 사장직에 올랐다.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 그가 직원들에게 특히 설파(?)하는 이 문구는 1973년 세 평짜리 시골 창고에서 단 네 명이 시작해 현재 계열사 140개, 직원 13만명 규모로 성장한 일본전산의 모토다. 일본전산의 창업주 나가모리 시게노부 사장은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은 경영인이기도하다. 그는 일본전산의 사훈에는 자신감과 함께 포기하지 않는 실행 정신이 있다며 모든 직원에게 특히 주인 의식을 강조한다. 청정원을 비롯해 대상 전체 식품사업총괄 중역과 전분당 사업부문 등을 두루 거친 그는 취임 후 ‘글로벌화’와 ‘차별화’를 경영 열쇳말로 삼고 특히 해외 시장 공략에 힘을 쏟고 있다. 국내 최초 필리핀 전분당 사업 진출, 인도네시아 식품 공장 준공 등을 진두지휘한 그는 최근 중국 시장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다. 대상은 현지화 전략으로 2017년까지 중국 식품 시장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6>대상그룹] 3세 오너 경영 등장 최대 관심… 임세령·상민 두 딸 경영수업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6>대상그룹] 3세 오너 경영 등장 최대 관심… 임세령·상민 두 딸 경영수업

    이리농림학교 졸업 후 고창군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딘 임대홍(95) 대상 창업주는 해방 이후 피혁공장을 운영했다. 6·25 전쟁 직후에는 복구사업이 시작되면서 무역업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임 창업주는 일본을 오가면서 경쟁 상대 없이 우리 식탁을 점령하고 있던 일본 조미료 ‘아지노모토’에 묘한 반감을 가지게 됐다.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국산 조미료를 수출하고 싶다는 열망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1955년 서른다섯 청년 임대홍은 잘나가던 무역 사업을 접고 제조 공법을 익히기 위해 무작정 일본으로 떠났다. 1년여의 연구 끝에 그가 돌아와 부산에 지은 150평 규모의 작은 조미료 공장이 바로 대상그룹의 전신인 우리나라 최초의 조미료 공장,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다. 미원의 신화는 바로 이곳에서 시작됐다. 임 창업주는 회장 재직 당시 조용히 자신의 공간에서 실험과 연구에만 몰두했다. 지방 출장 시에도 5만원이 넘는 숙소에는 묵지 않았고, 승용차보다는 전철을 더 많이 애용했다. ‘평생 통틀어 한 번에 양복 세 벌, 구두 두 켤레 이상을 소유했던 적이 없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일반적인 기업가의 이미지와는 달리 대외 활동과 사교 활동도 즐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6>대상그룹] 임정배 재무·기획통… 대상 주가 667% 상승 견인

    대상은 1997년 8월 임창욱 명예회장의 돌연 사퇴 이후 약 18년간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 왔다. 임정배(54) 대상홀딩스 사장은 경성고와 고려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미원통상으로 입사한 그는 해외영업과 재무, 기획에 두루 정통한 인물로 꼽힌다. 유럽 판매법인(네덜란드) 주재원, 대표이사, 대상 무역팀장, 조달팀장, 재무팀장, 기획관리본부장,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거치며 관리능력을 검증받았다. 특히 2009년 대상 CFO로 재직하면서 회사의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 6000원대 회사 주가를 4만원대로 끌어올리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임창욱 명예회장과 함께 그룹경영을 총괄하고 있는 그는 임원, 팀장뿐만 아니라 신입사원에게까지 존칭을 사용하는 대표로 유명하다. 임대홍 창업주가 강조한 ‘인간 존엄과 자존을 중시하는 경영 철학’과 궤를 같이한다는 게 대상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상철(58) 대상FNF 사장은 건국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미원 총무과로 입사해 감사과, 판매기획부, 총무과장을 거쳐 1997년 대상 총무팀장을 지냈다. 2011년 취임한 그는 신선식품 다각화를 통한 매출 안정화로 대상FNF의 선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6>대상그룹] 대상서 독립… 세원에셋 등 진두지휘

    창업주의 막내아들 임성욱(48) 세원그룹 회장은 형 임창욱 대상 명예회장과 18살 차이가 난다. 중앙고를 졸업한 뒤 1991년 일본 게이오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그는 한때 조카사위였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대학 동문이다. 미원식품 감사를 거쳐 전무로 미원(현 대상그룹)에서 경영 수업을 받던 그는 1993년 26세의 나이로 세원그룹 사장이 됐다. 세원그룹은 1993년 7월 정부의 업종 전문화 정책에 따라 식품, 화학, 중공업 부문의 8개사(미원식품, 미원중기, 화영, 내쇼날합성, 중림화학, 미원수산, 미성교역, 한일계장공업)를 미원에서 분리해 만든 회사다.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주는 늦둥이였던 임성욱 회장을 끔찍이 아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7년 장남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주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나 있던 임 창업주는 막후에서 임성욱 당시 세원그룹 사장의 경영 자문 역할을 했다. 이후 세원그룹은 1997년 다시 미원에 흡수됐고, 임성욱 회장은 33세 때인 2000년 미성교역, 세원화성, 세원중공업 등을 분리해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 현재는 세원에셋, 세원화성, 세원화학 등의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2010년 1월에는 대부업체 대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5>코오롱그룹] 안병덕, 열정·성실함 상상 초월… 33년간 휴가 ‘0’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5>코오롱그룹] 안병덕, 열정·성실함 상상 초월… 33년간 휴가 ‘0’

    코오롱그룹의 지주회사인 ㈜코오롱의 안병덕(58) 사장은 1982년 코오롱상사에 입사해 회장비서실과 부속실 근무를 거쳐 코오롱인더스트리 부사장, 코오롱글로벌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지난해부터 ㈜코오롱을 이끌고 있다. 비서실과 주요 계열사 경영진을 두루 거친 그의 경험은 ㈜코오롱이 그룹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반이기도 하다. 일에 대한 열정과 성실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입사 이후 33년간 단 한 번도 휴가를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지난 2월 모친상을 당했을 때도 발인 다음날 바로 업무에 복귀했을 정도다. 친화력이 뛰어나고 딱 한 번 만난 직원도 이름과 얼굴을 기억해 먼저 인사할 정도로 관찰력이 남다르다. 박동문(57) 사장은 코오롱의 주력 기업인 코오롱인더스트리㈜를 이끈다. 1983년 코오롱상사에 입사해 ㈜코오롱 인도네시아법인 최고재무책임자(CFO), 코오롱글로텍 대표이사 부사장, 2010년 코오롱글로텍 사장 겸 코오롱아이넷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박 사장은 ‘기본을 바탕으로 생각이 젊은 회사’라는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회사의 혁신과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경기 불황에도 타이어코드를 비롯한 자동차 소재 제품들의 실적 확대를 이뤄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5>코오롱그룹] 이효상 前 국회의장·SPC 그룹과 사돈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5>코오롱그룹] 이효상 前 국회의장·SPC 그룹과 사돈

    코오롱 가문은 아들이 귀한 집안이다. 그나마 창업주 이원만 회장은 슬하에 2남 4녀를 뒀지만, 이동찬 명예회장은 1남 5녀, 이웅열 회장도 1남 2녀다. 경영에는 장남만 참여하고 딸이나 사위, 처가와 친·인척은 경영에서 철저히 배제하는 원칙을 고수한다. 사돈의 8촌까지 사업에 뛰어드는 다른 기업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과거 이 명예회장과 숙부인 이원천 전 사장 간의 경영권 분쟁이 일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창업주 때는 사위들의 경영 참여가 적지 않은 편이었지만 이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한 뒤 이런 원칙이 굳어졌다. 이 명예회장의 속내는 그의 자서전에서 잘 드러난다. “사위들이 처가 덕을 보고 한자리하겠다면 득보다 해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원만 창업주는 초기 자녀들을 평범한 집안과 인연을 맺게 했다. 하지만 사업 성공 이후엔 국내 명문가로 눈을 돌린 모습이 역력하다. 장남 고 이동찬 명예회장은 1944년 ‘학병에 끌려가기 전 장가부터 가라’는 부친의 강요로 맞선을 본 지 1주일 만에 신덕진(작고)씨와 결혼했다. 장녀 봉필(82)씨는 1954년 고향 인근에 사는 임승엽(작고)씨와 혼인했다. 승엽씨는 삼경물산 사장을 거쳐 그룹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5>코오롱그룹] 싸고 질긴 나일론 1963년 첫 생산… 한국 섬유역사 산증인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5>코오롱그룹] 싸고 질긴 나일론 1963년 첫 생산… 한국 섬유역사 산증인

    코오롱그룹의 역사는 대한민국 섬유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4년 12월 고 이동찬 명예회장이 설립한 개명상사는 당시 생소한 나일론사를 국내에 처음으로 들여왔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나일론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터라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양말은 물론 의류까지 나일론의 수요가 확대되면서 사업이 번창했다. 코오롱(KOLON) 이름도 코리아+나일론(Korea+Nylon)의 합성어다. 한국 기업 최초의 영어 사명으로 ‘KORLON’으로 표기하다 1968년 ‘KOLON’으로 변경됐다. 고 이원만 창업주와 고 이동찬 명예회장은 1957년 4월 12일 한국 최초의 나일론 제조회사인 한국나이롱주식회사(현 코오롱인더스트리㈜)를 설립했다. 스트레치 나일론 생산쯤은 우리 손으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다는 각오로 설립한 회사다. 같은 해 11월 스트레치 나일론 공장 건립의 첫 삽을 떴고 이듬해인 1958년 10월 총건평 1500평의 공장을 준공했다. 싸고 질긴 합성섬유를 접한 소비자들은 말 그대로 열광했다. 그 덕분에 1963년에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생산한 일일 생산 2.5t 규모의 나일론원사제조 공장은 4년 만인 196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5>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 ‘배지 경영’ 소통 강화…장자일계 원칙 이어질 듯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5>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 ‘배지 경영’ 소통 강화…장자일계 원칙 이어질 듯

    1977년 코오롱인더스트리에 입사한 이웅열(59) 회장은 1985년 미국 뉴욕지사와 일본 도쿄지사 근무, 아시아지역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미국 유학 생활을 통해 일찌감치 쌓은 글로벌 감각을 토대로 코오롱그룹의 해외 사업 전략을 이끌었다. ㈜코오롱 대표이사 등을 거쳐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시기는 1996년이다. 회장 취임 이후에도 2002년 중국 시장 진출, 2013년 중국 지주회사 설립 등 코오롱그룹의 세계화를 주도했다. 2006년에는 ‘라이프스타일 이노베이터’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나일론 도입과 생산으로 한국 의복 생활에 혁신을 일으켰던 코오롱이 다양한 분야에서 전 세계인의 라이프스타일을 혁신시키겠다는 포부다. 이 회장은 화학섬유 제조와 건설, 무역에 주력하던 코오롱그룹의 사업 영역을 하이테크산업 및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으로 확대시켰다. 바이오 신약과 웨어러블 기술이 대표적이다. 코오롱생명과학이 20년 이상 개발해 온 ‘티슈진-C’는 세계 최초의 퇴행성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로,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치료제는 임상실험 등을 거쳐 내년 하반기쯤 출시될 계획이다. 웨어러블 디바이스 개발 소재로 주목받는 유기태양전지,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연료전지용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4>이랜드그룹] 박성수 회장 지배력 절대적… ‘어머니·독서·종교’ 성공 원동력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4>이랜드그룹] 박성수 회장 지배력 절대적… ‘어머니·독서·종교’ 성공 원동력

    이랜드그룹 내에서 박성수(62) 회장의 지배력은 절대적이다. 여동생인 박성경(57) 부회장이 그룹의 2인자로 있지만 지분은 하나도 없다. 박 회장은 이랜드그룹의 지주사인 이랜드월드의 지분을 40.59%, 부인 곽숙재씨는 8.05%를 가지고 있다. 이들 외에 박 회장 일가 가운데 지분을 가지고 있는 이는 없다. 박 부회장이 오빠인 박 회장을 대신해 대외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룹의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은 박 회장이 오롯이 지니고 있다. 이랜드에서 꺼리는 박 회장을 지칭하는 말로 ‘은둔의 경영자’라는 표현이 있다. 말 그대로 대외적으로 나서지 않아 가족 관계나 사적인 면모 등이 거의 알려진 게 없기 때문이다. 수년 전 부친상과 모친상을 당했음에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치러 뒤늦게 직원들이 알아 당황했을 정도다. 다만 박 회장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밝힌 간증과 강연 내용, 그룹 내외 관계자 등의 이야기를 종합해 볼 때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그의 어머니는 중소기업을 운영했고 덕분에 박 회장은 유복하게 자랐다. 그의 어머니의 경영 철학은 ‘가격은 2분의 1, 2배 가치’라는 이랜드의 모토를 만들 수 있는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4>이랜드그룹] 희귀품 수집 20년…존 레넌 기타 등 3000여개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4>이랜드그룹] 희귀품 수집 20년…존 레넌 기타 등 3000여개

    대외적인 활동을 꺼리는 박성수 회장의 이름이 언론에 등장할 때는 바로 경매에서 낙찰받을 때다. 그는 독특한 경매 물품은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낙찰받는다. 박 회장의 희귀품 수집 경력은 20년이 넘고 모은 희귀품만 3000여개가 넘는다. 수집한 희귀품들은 이랜드의 주요 사업장 곳곳에 인테리어 소품으로 전시돼 있다. 마이클 잭슨이 스릴러 투어 때 입은 의상부터 존 레넌의 기타, 마돈나의 영화 의상 등 223개가 외식 브랜드 애슐리 매장에 진열됐다. 박 회장은 이런 희귀품들을 최종적으로 이랜드가 세울 테마도시 내 박물관 10~15곳에 전시할 계획이다. 쓸 때는 통이 크지만 절약할 때는 누구보다도 자린고비 정신을 보이는 게 박 회장이다. 박 회장 남매는 평소 검소한 편이다. 박 회장 본인은 구형 카니발을 오래전부터 타고 다니고 비행기도 이코노미석만 이용한다. 그들의 집무실에는 화려한 소파 대신 간단하게 회의용 책상만 있다고 전해진다. 또 집에는 도우미를 두지 않아 박 회장 집은 부인 곽숙재씨가, 박 부회장의 집은 박 부회장이 직접 살림을 도맡아 한다. 특히 박 부회장은 한 중국 대형유통업체 회장을 만날 때 직접 담근 김치를 선물로 주는 등 정성을 보였고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4>이랜드그룹] 이대앞 옷가게서 10조 기업으로… 상장사 없어 투명경영 의문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4>이랜드그룹] 이대앞 옷가게서 10조 기업으로… 상장사 없어 투명경영 의문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했다. 1980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이화여대 앞에 세운 약 6.6㎡ 넓이의 작은 보세 옷 가게 ‘잉글랜드’는 35년이 지난 2015년 현재 패션, 외식, 리조트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2013년 말 연결 기준 자산은 7조 7000억원, 매출 10조원대, 국내외 직원 수 5만여명의 재계순위 49위 이랜드그룹으로 급성장했다. 올해 창립 35주년을 맞는 이랜드는 ‘의(衣)·식(食)·주(住)·휴(休)·미(美)·락()’ 6대 사업 영역에서 250여개 브랜드, 30여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최초’라는 타이틀도 여러 번 썼다. 이랜드월드가 보유한 국내 최초 제조유통일괄화(SPA) 브랜드 스파오, 국내 최초 여성 SPA 브랜드 미쏘 등을 포함해 이랜드리테일이 1994년 국내 최초로 문을 연 도심형 아웃렛 매장 등이 대표적이다. 또 일찌감치 중국에 진출했고 중국 시장 내 인기 한국 의류 브랜드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으로 꼽히는 게 바로 이랜드다. 이처럼 이랜드가 짧은 시간에 거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은 인수·합병(M&A)에 있다. 이랜드 창립 때부터 현재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4>이랜드그룹] 최종양, 中진출 주역… 김일규, 해외영업통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4>이랜드그룹] 최종양, 中진출 주역… 김일규, 해외영업통

    이랜드그룹은 능력 중심으로 엄격하게 직원을 평가하는 회사다. 이 때문에 승진도 빠르고 연차가 낮더라도 팀장을 맡는 일도 있고 차별이 거의 없어 여성 직원의 비중이 다른 기업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이랜드의 직원 평가 체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개인이 각자 프로젝트를 정해 매출이 오른다든지 하는 성과를 내고 업무 능력을 평가받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직원들이 내는 업무 성과를 모두 객관화·점수화하는 ‘이셀’이라는 평가 방식이다. 평소 박성수 회장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은 평가할 수 없다”고 말해 왔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평가 방식이 이셀로 5년 동안 시행해 오고 있다. 기업 평가 사이트인 잡플래닛에 따르면 이처럼 점수화하기 어려운 것도 평가하고 단기간에 실적을 내야 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빠르게 팀을 해체하고 급속도로 인사 이동이 이뤄져 직원들 사이에 불만이 꽤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엄격한 이랜드그룹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박 회장을 보좌하는 그룹 내 대표 임원에는 3명이 있다. 이들 모두 이랜드 초창기 시절인 1980년대 입사해 회사 생활을 시작했고, 박 회장과 마찬가지로 종교가 기독교라는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 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3> 효성그룹] 이상운, 위기관리 뛰어난 ‘섬유수출의 귀재’

    [재계 인맥 대해부 (4부) 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3> 효성그룹] 이상운, 위기관리 뛰어난 ‘섬유수출의 귀재’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3세 경영을 본격화하면서도 사업을 함께 해오며 잔뼈가 굵은 전문경영인들을 적극 중용하고 있다. 효성의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이상운(63) 효성 부회장은 1976년 효성물산에 입사해 중동 등지에서 ‘섬유수출의 귀재’로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외환위기 당시 주력 4개사를 통합하는 구조조정 과정 속에서 그룹자금업무를 맡아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 줬다. 비서실장과 전략본부장을 거쳐 2002년 효성 대표이사 사장, 2007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타이어코드, 스판덱스 등 핵심 사업에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미래 신사업 발굴을 위한 사업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고,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김규영(67) 효성 타이어보강재사업부(PU) 사장은 1972년 효성그룹 모기업인 동양나이론에 입사해 43년간 나일론사업을 이끌어 왔다. 2010년 타이어보강재PU장을 맡아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가 시장점유율 45% 이상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부산고, 한양대 섬유공학과 출신이다. 조봉규(65) 효성 나일론폴리에스터PU장(사장)은 SK케미칼 등을 거쳐 2003년 효성 폴리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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