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인맥 대해부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 후계 경영인의 명암 <25> 대림그룹] 장남 16년 경영수업… 리더십 시험대에

    [재계 인맥 대해부 (2부) 후계 경영인의 명암 <25> 대림그룹] 장남 16년 경영수업… 리더십 시험대에

    대림그룹은 특별한 경영권 분쟁 없이 조용하게 승계가 이뤄지고 있다. 차기 대림그룹의 회장으로 유력한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은 이준용 대림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고 이재준 대림산업 창업주의 손자다. 대리로 입사해 2011년 대표이사 부회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16년간 그룹의 두 축인 건설과 석유화학 부문을 오가며 철저하게 경영 실무 수업을 받았다. 이 부회장은 17년 만에 찾아온 해외발 대림그룹의 실적 위기 속에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른 상태다. 이 명예회장의 삼남인 이해창씨도 올해 대림산업 부사장으로 안착했다. 미국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차남 이해승씨는 한때 대림산업 석유화학사업부 과장으로 일했으나 지금은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 상태다. 해외 유학파 출신인 이해욱 부회장은 경복고를 졸업한 뒤 부친이 다녔던 미국 덴버대에서 경영통계학을 전공하고 컬럼비아대에서 응용통계학 석사 과정까지 마쳤다. 업계는 경영과 수리를 결합한 통계학을 선택한 것조차 체계적인 경영 수업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1995년 대림엔지니어링에 대리로 입사한 뒤 6년 만인 2001년 33세의 나이로 대림산업 상무 자리에 오른다. 대림그룹 상무들의 평균 나이가 52.9세인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 후계 경영인의 명암 <25> 대림그룹] 창업주는 대지주 딸과… 이후 연애결혼 위주 정·재·학계와 혼맥

    [재계 인맥 대해부 (2부) 후계 경영인의 명암 <25> 대림그룹] 창업주는 대지주 딸과… 이후 연애결혼 위주 정·재·학계와 혼맥

    3세 경영이 본격화된 대림그룹은 모태인 대림산업이 지난해 국내 건설 시공능력 순위 4위에 오를 정도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조용한 가족, 조용한 기업’이고 싶어 한다. 경조사와 관련해 공개되는 걸 꺼리는 건 창업자 때부터 3세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흐름이다. 그러나 장자 중심의 보수적인 가풍인 대림 가문의 혼사는 2·3세로 갈수록 실속 있고 화려한 정·재·학계 가문들과 연을 맺는다. 이준용(77) 대림그룹 명예회장의 부친인 고 이재준(수암) 대림산업 창업주는 조선 선조대왕의 일곱 번째 왕자인 인성군의 9대손으로 경기 시흥에서 큰 정미소를 운영하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19살에 경기 수원 지역 대지주의 딸인 이경숙씨와 결혼했다. 이 명예회장이 4살이 되던 해 모친은 세상을 떴다. 부친 이규응옹과 모친 양남옥 여사의 5남 4녀의 가운데 넷째인 이 창업주의 바로 손위 형은 고 이재형 전 국회의장이며 막내동생이 이재연 아시안스타 회장이다. 창업주 세대까지 비교적 평범했던 대림가의 혼맥은 2세대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정·재계 혼맥을 만든다. 2세 때부터는 연애결혼이 주를 이룬다. 이 명예회장은 1965년 이화여대 출신의 고 한경진 여사와 연애결혼했다. 장인인 한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 후계 경영인의 명암 <25> 대림그룹] 신입사원서 대표이사 등극… 30여년 한 우물 판 ‘대림맨’

    [재계 인맥 대해부 (2부) 후계 경영인의 명암 <25> 대림그룹] 신입사원서 대표이사 등극… 30여년 한 우물 판 ‘대림맨’

    대림그룹을 이끄는 전문경영인(CEO)들은 대체로 공통점이 있다. 1970~80년대 사회 생활의 첫 발을 대림에서 시작해 신입사원에서 최고경영자 자리까지 올랐다는 점이다. 30여년의 파고를 함께 견디면서 회사의 성장을 도모해 온 충성도 높은 임직원에 대한 이준용 대림그룹 명예회장의 인사 철학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대림그룹의 핵심인 대림산업에는 대표이사가 4명인 공동 전문경영인 체제다. 이해욱(47) 대표이사 부회장 외에 대표이사 3명이 건설부문(3명)과 석유화학(1명)을 이끌고 있다. 김동수(59) 대표이사 사장은 국내사업을, 이철균(58) 대표이사 사장은 해외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두 사업을 총괄한다. 석유화학사업부는 김재율(58) 대표이사 부사장이 맡고 있다. 젊은 이 부회장에게 쏠리는 업무 부담을 덜어줌과 동시에 오랜 세월 쌓아 온 전문 경영인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동시에 책임성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준용 명예회장 역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 회사에 매일 나와 경영 전반을 점검한다. 서울대 토목공학과 출신 김동수 대표는 1979년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국내외 토목 현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정통 토목맨이다. 특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 후계 경영인의 명암 <25> 대림그룹] 기획서 운영까지 토털 솔루션… 디벨로퍼 사업으로 새 도약 추진

    [재계 인맥 대해부 (2부) 후계 경영인의 명암 <25> 대림그룹] 기획서 운영까지 토털 솔루션… 디벨로퍼 사업으로 새 도약 추진

    국내 최고(最古) 건설사 대림그룹이 최근 위기를 맞았다. 경고등은 해외 공사 현장에서 켜졌다. 대림그룹의 모태인 대림산업은 1997년 기업들이 줄도산하던 외환위기(IMF)가 왔을 때도 이듬해 2251억원의 영업이익(매출 3조 9033억원)을 낸 기업이었다. 그러나 해외에서 ‘제 살 깎기식’ 저가 수주 전쟁은 실적 악화라는 상흔을 남겼다. 지난해 대림산업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서 발생한 4000억원의 추가 비용으로 인해 1998년 이후 17년 만에 2703억원의 영업손실(매출 9조 2961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지난해 재개발·재건축 시장에서 전년보다 14배나 늘어난 2조 3498억원을 수주하며 GS건설을 누르고 1위에 오르는 등 성공을 거뒀다. 대림산업은 올해도 2만 8000가구를 분양하고 기업형 임대주택사업에도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위기에 강한 대림의 뚝심, 그 비결은 뭘까. 대림산업은 1939년 10월 인천 부평역에서 간판을 내걸고 건설 자재를 팔았던 부림상회에서 시작됐다. 초창기에는 목재와 건자재상에서 출발했다. 경기 시흥에서 태어난 고 이재준 대림산업 창업주는 부친이 운영하던 서울 서대문 한일정미소에서 경영 수업을 받으며 대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4>두산그룹] 역대 상의회장 14명 중 4명이나 배출

    ‘두산그룹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 1954년 공식 출범한 대한상의에서 2015년 현재까지 14명(연임 포함)의 회장이 거쳐 간 가운데 두산그룹에서 배출한 역대 회장만 4명이다. 1961년 대한상의 역사의 3분의1이 넘는 시간을 두산그룹 출신 회장들이 집권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대한상의는 박씨 집안 것이라는 이야기가 농담 삼아 나올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두산그룹과 대한상의의 첫 인연은 고 박승직 창업주가 1905년 민족계 은행과 상사 등을 지배하려는 일본 상인들에 맞서 조선 상인들이 결성한 경성상업회의소(대한상의 전신)에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부터다. 이후 고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이 1967~1973년 대한상의 회장을 맡았다. 전문경영인 가운데 재계 최초로 그룹 회장직에 오른 정수창 전 두산 회장도 1980~1988년까지 대한상의 회장을 맡았다. 초대 회장의 넷째인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은 회장 시절인 2000년부터 2005년까지 대한상의를 이끌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2013년 7월 대한상의 회장을 사임하면서 14만 상공인을 대표하는 대한상의 회장직에 올랐다. 박 회장이 대한상의 회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4>두산그룹] “사람이 미래다”… 내·외부 출신 능력 위주 기용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4>두산그룹] “사람이 미래다”… 내·외부 출신 능력 위주 기용

    ‘사람이 미래다’라는 두산그룹의 광고 문구처럼 두산그룹이 오랫동안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인재발굴’에 있다. 내부 출신, 외부 출신,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능력이 있다면 누구라도 기용해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있다. 전문경영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은 정지택(65) 두산중공업 부회장이다. 정 부회장은 경제 관료 출신이다. 행정고시 17회로 공직에 입문한 그는 재정경제원 정책심의관, 기획예산위원회 재정개혁단 단장, 기획예산처 예산관리국 국장 등을 두루 역임했고 24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친 뒤 2001년부터 두산그룹에 합류했다. 두산 전략기획본부 사장, 네오플럭스캐피탈 사장, 두산 테크팩 부문 사장, 두산산업개발 사장, 두산건설 사장 등을 역임하다 2008년부터 두산중공업 부회장을 맡고 있다. 두산 사업부문을 이끌고 있는 제임스 비모스키(61) 부회장은 그룹 최초의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매킨지에서 24년간 경영컨설턴트로 활동하고 말레이시아 서던뱅크 수석 부행장을 역임한 뒤 2006년 두산에 합류했다. 손동연(57) 두산인프라코어 사장은 대표적인 엔지니어 출신 전문경영인이다. 2012년 3월 두산인프라코어 합류 전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4>두산그룹] 박용만 회장 중심 중공업에 집중… 매출22조·재계10위 ‘우뚝’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4>두산그룹] 박용만 회장 중심 중공업에 집중… 매출22조·재계10위 ‘우뚝’

    국내 최고(最古)의 기업이자 2013년 기준 매출액 21조 9365억원, 계열사 21개를 거느린 재계 10위(공기업 제외) 두산그룹은 현재 두산가(家) 3세이자 고(故) 박두병 두산 초대회장의 여섯째인 박용만(60) 두산그룹 회장을 중심으로 그룹이 움직이고 있다. 2012년 박 회장이 그룹 회장 자리에 오르면서 다른 형제들은 그룹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3세의 자녀들인 4세가 각 계열사에 들어가 경영을 맡으면서 3세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두산그룹을 보는 재계의 관심사는 형제경영으로 유명한 두산그룹이 4세에 이르러서도 계속 전통을 유지할 수 있을지다. 두산그룹의 지배구조를 보면 그룹의 미래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두산을 지주회사로 해서 두산중공업 등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다시 두산중공업은 두산건설,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엔진 등의 중공업 부문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는 식이다. 그룹의 최상위에 있는 ㈜두산의 지분은 두산가 3~5세들이 조금씩 나눠 가지고 있다. 두산가 3세 가운데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것은 그룹을 이끌고 있는 박 회장으로 4.17%를 가지고 있다. 초대회장의 첫째인 박용곤(83) 명예회장이 1.38%, 넷째 박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4>두산그룹] 119세 한국 최장수 기업… ‘우애와 장자 상속주의’가 家風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4>두산그룹] 119세 한국 최장수 기업… ‘우애와 장자 상속주의’가 家風

    올해로 119살이 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두산의 가풍은 형제 간 우애, 장자 상속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 2005년 형제의 난이 벌어지면서 이런 가풍이 한때 깨어지고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긴 했지만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 될 수 있었던 비결에 가족애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최근 환갑을 맞은 박용만(60) 두산그룹 회장에게 형제들이 부인들을 통해 축하의 꽃다발 등을 보내고 경조사를 챙기는 것도 가족애가 이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름을 지을 때 2세는 ‘병’자 돌림이었다면 3세는 ‘용’자 돌림, 4세는 ‘원’자 돌림, 5세는 ‘상’자 돌림을 쓴다는 것도 특징이다. 두산그룹의 시작은 1896년 서울 종로에 문을 연 ‘박승직상점’이었다. 창업주 고(故) 박승직씨의 이름을 딴 가게로 창업주는 대성공을 거둬 1905년 국내 최초의 주식회사인 광장을 설립했다. 1933년에는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와 함께 일본 기린맥주의 국내 생산공장이었던 소화기린맥주의 주주로 참여해 두산의 모기업이었던 동양맥주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어 박 창업주는 광복 후 수송사업을 위해 장남인 고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이름 첫자인 말 두(斗)와 뫼 산(山)자를 붙여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4>두산그룹] 페이스북 통해 활발한 소통… ‘재계 마당발’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4>두산그룹] 페이스북 통해 활발한 소통… ‘재계 마당발’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재계의 오너 가운데 그 누구보다도 화려한 인맥을 자랑한다. 한때 파워 트위터리안이었고, 현재는 페이스북으로 자리를 옮겨 각계각층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 회장이 스스로 재계에서 가장 오래된 친구로 꼽는 사람은 동갑내기 양띠 친구인 조동길(60) 한솔그룹 회장이다. 또 박 회장은 이서현(42) 제일모직 사장, 김재열(47) 제일기획 사장 부부하고도 친분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박 회장은 또 재계에서 의리 있는 회장으로 김승연(63) 한화그룹 회장을 꼽는다. 김 회장이 경영에 복귀했을 때 대한상의 회장으로서 직접 찾아가 인사를 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김 회장이 의리 있다고 꼽는 이유로 과거 두산그룹이 경영권 분쟁이 있었던 시절 가장 먼저 박 회장에게 전화해 “괜찮냐”고 위로해 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이 재계에서 손꼽히는 마당발이라는 점은 지난해 6월 12일 차남의 결혼식에 찾아온 하객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차남의 결혼식을 조용히 치르기 위해 평일 낮에 명동성당에서 예식을 진행했지만 재계와 정·관계, 연예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이날 결혼식에는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4>두산그룹] “두산 하면 야구”… 代 잇는 두산家 야구사랑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4>두산그룹] “두산 하면 야구”… 代 잇는 두산家 야구사랑

    재계에서 손꼽히는 야구 열성팬 하면 두산그룹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프로야구 출범 첫해인 1982년에 함께 창단한 두산베어스는 1982년과 1995년, 2001년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현재 구단주는 두산가(家) 4세의 선두 주자인 박정원 ㈜두산 지주부문 회장이다. 박 회장뿐만 아니라 아버지인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두산베어스 경기를 심심찮게 찾는 열성팬이기도 하다. 특히 구단주인 박정원 회장은 두산가 사람들 가운데 야구에 대한 관심이 오래전부터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고려대 경영학과에 다니던 시절 야구 동아리에 들어가 선수로 뛰기까지 했다. 그의 포지션은 2루수였다. 박 회장은 “아마추어 선수들 가운데 밀어치는 선수가 거의 없어 2루 쪽으로 볼이 많이 오지 않아 수비하기 편했다”며 “끝까지 2루수로만 선수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그가 이제는 선수가 아닌 구단주로서 야구를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두산의 홈경기를 잠실야구장 관중석에서 관람하는 것이다. 한 시즌 동안 20회 정도는 방문하고 포스트시즌처럼 중요한 경기가 있으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라도 야구장에서 보고 있다. 지난해 두산베어스의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3>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복심 읽는 ‘3인방’ 있다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3>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복심 읽는 ‘3인방’ 있다

    한진그룹에는 조양호 회장의 복심을 제대로 읽는다는 3인방이 있다. 지창훈(62) 대한항공 총괄사장은 입사 후 30년간 미주, 중국, 호주 등 주요 해외 지역을 거친 해외통이다. 항공사에서는 드물게 화물과 여객사업 경험을 두루 거쳤다. 여객 분야의 섬세한 서비스 감각을 화물 분야에 접목해 6년 연속 화물 세계 1위에 걸맞은 서비스 향상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중국지역본부장 재임 당시 중국 노선망 대폭 확충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거대 시장인 중국을 잡을 수 있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성취욕이 남다르고 의사결정이 빠른 데다 업무 장악력이 뛰어나 일찌감치 고위 임원감으로 꼽혔다. 석태수(60) ㈜한진해운 대표이사는 한진의 주요 계열사 대표를 두루 거쳤다는 면에서 한진그룹 권력의 핵심으로 지목된다. 조 회장의 신임도 누구보다 두텁다. 198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경영계획실장, 미주 지역 본부장으로 일한 뒤 ㈜한진 대표이사, 한진칼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대한항공 근무 시 그룹이미지(CI) 추진부단장, A380 프로젝트팀장 등 굵직한 업무를 수행한 기획통으로 탁월한 기획과 국제 감각으로 ㈜한진을 글로벌 종합물류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일조했다. 글로벌 해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3>한진그룹] 땅콩 회항에 ‘미운 오리’ 된 3세들… “그래도 경영승계는 될 듯”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3>한진그룹] 땅콩 회항에 ‘미운 오리’ 된 3세들… “그래도 경영승계는 될 듯”

    지난해 12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 터진 이후 한진가 3세는 전 국민의 주목 대상이다. 천민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다는 우리 국민의 좌절감과 재벌가 자녀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 준 일련의 사건으로 성난 민심은 여전히 사그라질 줄 모른다. 이 과정에 ‘수송보국’(輸送報國)이라는 기치를 내걸며 창업주가 일군 기업 이미지 역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이다. 그나마 최근 유례없는 저유가가 대한항공의 유일한 버팀목인 셈이다. 한진은 사주 일가의 승진이 빠른 대표적인 기업이다. 조양호 회장의 장녀인 조 전 부사장은 1999년 25세로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본부에 입사해 불과 6년 만인 2005년 대한항공 상무보가 됐다. 당시 나이 31세였다. 한진칼 대표이기도 한 장남 조원태씨는 2008년 33세에 여객사업본부장이 된 후 이듬해 전무를 거쳐 지난해 대한항공 부사장이 됐다. 막내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는 24세인 2007년 과장으로 입사한 뒤 3년 만인 27세에 상무보로 승진했다. 현재 직함인 전무가 된 것은 29세 때다. 인생에서 어려움 없이 빠르게 승승장구만 해 온 탓일까. 한진그룹 3세들의 부정적인 행실과 언행은 업계는 물론 언론계까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3>한진그룹] 법조·학·관·재계 망라…명문가와 폭넓은 인맥

    관가와 경제계·학계·법조계까지 폭넓게 구성된 한진그룹 조씨 일가의 혼맥은 국내 대기업 어느 집안에도 꿀리지 않을 정도다. 유난히 중매결혼이 많다.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은 1944년 집안 어른의 중매로 평범한 집안의 김정일(92) 여사와 결혼했다. 하지만 동생들과 자녀들은 당대 명문가 자녀들과 연이어 짝을 맺었다. 4남 1녀 중 장녀인 조현숙(70)씨는 1968년 숙부인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중매로 당시 법조인인 이태희(75·대한항공 법률 고문) 전 서울지방법원 판사와 인연을 맺었다. 흥아타이어 감사를 지낸 이상묵씨의 장남으로 서울대 법대와 미국 하버드대 법학박사 출신이다. 1983년 KAL기 폭파 사건 당시 보상 문제와 관련된 법률적 문제에 앞장서 주목을 받았다. 둘째이자 장남인 조양호(66) 한진그룹 회장은 1973년 이재철 전 교통부 차관의 장녀이자 서울대 미대 출신인 이명희(66)씨를 부인으로 맞이했다. 양가 부모가 한 모임에서 각자의 아들딸과 관련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사돈이 됐다고 한다. 당대 유력 운수기업 후계자와 주무 부처인 교통부의 이례적인 만남인 셈이다. 조 회장의 장인인 이 전 차관은 1976년 공직에서 물러나 인하대 총장을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3>한진그룹] 인천 창고서 ‘한진상사’로 출발… 2019년 세계 10대 항공사로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3>한진그룹] 인천 창고서 ‘한진상사’로 출발… 2019년 세계 10대 항공사로

    1945년 11월 인천 해안동의 한 허름한 창고. 당시 25세의 청년 조중훈은 ‘한진상사’라는 현판을 내걸었다. 회사 이름엔 ‘한민족(韓民族)의 전진(前進)’이라는 다소 거창한 포부를 담았다. 가진 것이라고는 낡은 트럭 1대였지만 조씨는 이곳에 터를 잡으면 일거리 걱정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해방과 함께 인천항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건너온 운동화, 양복, 밀가루 등의 생필품들이 밀려들었고 누군가 이런 물건을 실어 날라야 했기 때문이다. 이 창고가 올해로 만 70살이 된 한진그룹의 모태다. 한진상사는 5년 만에 종업원 40여명에 트럭 30대를 보유한 단단한 회사로 자라났다. 승승장구할 것만 같던 사업은 1950년 6월 발발한 한국전쟁 탓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조중훈 회장은 모든 것을 앗아간 전쟁에서 기회를 찾았다. 한진은 1956년 무렵 주한 미군 용역사업에 참여했다. 한진상사는 미군 운송권을 독점하다시피 따냈다. 가용 차량만 500대에 이르는 번듯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됐다. 1961년에는 주한 미군 통근버스 20대를 사들여 서울~인천 간 좌석버스 사업을 시작했다. 한진고속의 시초다. 한진그룹은 월남전 미군의 군수물자 수송을 맡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2>빙그레] 김구 선생 아들이 김 前 회장 장인…한화家 유일한 연애결혼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22>빙그레] 김구 선생 아들이 김 前 회장 장인…한화家 유일한 연애결혼

    김호연(61) 전 회장 부부는 한화가(家)에서 유일하게 연애결혼에 성공했다. 김 전 회장은 공군장교 입대를 앞둔 대학 4학년 당시 미리 점 찍어둔 아내에게 용기 있게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한다. 김미(59)씨는 당시 김 전 회장이 다니던 서강대 이웃 학교인 이화여대를 다녔다. 부부는 5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 슬하에 장남 동환(33), 차녀 정화(32), 차남 동만(29)씨를 뒀다. 동환씨는 2012년 초 언스트앤영 한영회계법인 내 인수·합병 자문팀에 입사했다. 한영회계법인은 지난해 빙그레가 적극적으로 나섰다가 실패했던 웅진식품 인수 당시 빙그레 측의 자문사를 맡았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3세 경영의 물꼬를 트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빙그레 측에서는 3세 경영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2012년 연세대 국제학부를 졸업했다. 정화씨는 2003년 미국 브라운대에 입학해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2011년 매사추세츠공대에서 도시계획 석사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만씨는 2011년 6월 경남 진주시 금산면에 있는 공군교육사령부에 소위로 임관했다. 동만씨는 2011년 미국 터프츠대를 졸업했다. 김 전 회장 부부의 교육관은 ‘주변을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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