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커버스토리-귀농귀촌 2.0시대] 귀농귀촌인 자격 조건

    ‘귀농귀촌인’의 법률상 공식 용어는 ‘귀농어업인’이다. ‘농어업·농어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을 보면 귀농어업인을 ‘농어촌 이외의 지역에 거주하는 농어업인이 아닌 사람이 농어업인이 되기 위하여 농어촌으로 이주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 속의 정의는 좀 더 복잡하다. 도시에 단 3개월 살았던 사람이 농촌으로 돌아온다고 귀농귀촌인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농어촌 창업 및 주택구입 지원사업’에서 귀농귀촌인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최근 5년 안에 귀농했을 것 ▲직전 1년 이상 도시에서 거주했을 것 ▲농사를 짓거나 지을 예정일 것 ▲귀농귀촌 교육을 100시간(3주) 이상 받을 것 등 요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귀농귀촌활성화법’을 올해 말까지 제정하고 대통령령에서 귀농귀촌인이 되기 위한 조건들을 규정할 계획이다. 세종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커버스토리-귀농귀촌 2.0시대] 전문가들이 말하는 귀농귀촌 성공 노하우

    [커버스토리-귀농귀촌 2.0시대] 전문가들이 말하는 귀농귀촌 성공 노하우

    최근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귀농귀촌을 꿈꾸는 퇴직자들이 늘고 있다. 50대 이후에 찾아오는 ‘인생의 제3기’를 쇠퇴기로 두지 않고 자연의 품에서 정신과 육체 모두 건강하게 살려는 바람들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욕구와 농촌 생활의 현실을 슬기롭게 조화시키지 않으면 실패할 공산이 크다고 말한다. 특히 ‘과도한 초기 투자, 도시 생활 향수, 농촌 노인 무시’는 실패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귀농귀촌 붐이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미국은 1990년부터 2005년까지 약 500만명이 시골로 향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도 농촌 인구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당시 일자리를 잃어 농촌행을 택한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일시적인 향촌(鄕村) 인구 증가가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향촌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를 넘어선 것은 2009년부터다. 미국의 사회학자 윌리엄 새들러는 40~50대 200명을 조사한 후 인생의 제3기에는 쇠퇴, 질병, 우울, 의존, 노망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노력으로 이를 갱생, 갱신, 쇄신, 원기회복, 회춘 등으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최근 우리나라 베이비부머들이 원하는 삶이다.
  • [커버스토리-귀농귀촌 2.0시대] 베이비부머 귀농귀촌 세 가지 특징

    [커버스토리-귀농귀촌 2.0시대] 베이비부머 귀농귀촌 세 가지 특징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귀농귀촌에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직장을 다닌 후 농촌행을 택하는 ‘I턴형’이 늘고 있다. 또 이주자금이 많고 준비기간이 길어졌다. 단출하게 부부끼리 터전을 옮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두드러진 현상이다. 농촌진흥청은 지난해 말 귀농귀촌인 5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농촌에서 도시로 상경했다가 다시 고향인 농촌으로 돌아가는 ‘U턴형’이 46%(241명)로 가장 많았다. ‘농촌→도시→타향농촌’의 경로를 거친 ‘J턴형’은 30.3%(159명)였고, 도시 출생으로 쭉 도시에서 살다가 농촌행을 선택한 ‘I턴형’은 23.7%(124명)였다. 아직 상대적으로 수는 적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I턴형의 증가세를 눈여겨보고 있다. 설문조사대로라면 귀농귀촌 인구 네댓 명 중 한 명은 ‘도시 토박이’라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귀농귀촌 초기였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U턴형이 80%를 넘었다. 따라서 I턴형의 증가는 도시 출생이 많은 베이비부머들이 귀농귀촌을 택하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I턴형의 증가로 정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형 교육과정을 크게 늘
  • [커버스토리-귀농귀촌 2.0시대] “농촌서 1~2년 살아본 뒤  귀농 여부를 결정하세요”

    [커버스토리-귀농귀촌 2.0시대] “농촌서 1~2년 살아본 뒤 귀농 여부를 결정하세요”

    내년부터 귀농귀촌을 원하는 사람들은 가족과 농촌 생활을 1~2년 체험하고 난 뒤 결정할 수 있다. 정부는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를 경북 영주와 충북 제천에 연말까지 건설하고 해마다 2개 지역씩 늘리기로 했다. 23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예산 80억원을 들여 시작한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 두 곳(영주, 제천)이 내년 초에 첫 입소자를 30가구씩 모집한다. 이들은 올해 말까지 30개 동의 주거지와 텃밭, 농업 실습실, 강의 시설을 완성한다. 교육생으로 뽑히면 가족과 1~2년간 농촌 생활을 배우고 체험하면서 귀농귀촌을 준비할 수 있다. 체험식 교육 기간이 너무 길고 시간도 없다면 농식품부 산하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에서 지정한 29개 민간 교육기관의 36개 귀농귀촌 교육 과정을 수강할 수 있다. 이론 학습 위주의 3주 과정부터 현장 실습 위주의 3개월 과정까지 다양하다. 농촌 주택을 고르는 법부터 각종 작물을 기르고 유통하는 법까지 두루 배울 수 있다. 야간 과정도 있으며 정부가 수강료의 70~80%를 지원한다. 농식품부가 매년 개최하는 귀농귀촌 창업박람회에 참여하는 것도 관련 정보를 얻는 방법이다. 올해는 10월 25일부터 27일까지 서울 강남구
  • [커버스토리-귀농귀촌 2.0시대] 귀농귀촌 실패 사례… 정착 성공하려면

    [커버스토리-귀농귀촌 2.0시대] 귀농귀촌 실패 사례… 정착 성공하려면

    # 은행 간부를 지낸 이모(66)씨는 최근 강원도를 떠났다. 퇴직 후 사업에 실패하고 건강까지 나빠지자 아내와 함께 “공기 좋고 물 좋은 데서 농사나 짓자”며 3년 전 서울을 버리고 내려왔던 귀농자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남의 땅을 임대해 고추, 오이, 고구마 농사를 지었지만 연거푸 실패했다. 경험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서울로 다시 돌아왔지만 귀농하면서 빌린 영농자금은 지금도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있다. # 3년 전 전남 순천시 별량면으로 귀농한 서모(57)씨는 최근 농촌 생활을 접었다. 그런 대로 오이를 잘 길렀지만 판로가 없었다. 농사는 과학 영농, 날씨, 유통, 인터넷 판매 등 여러 가지가 혼합된 종합세트였다. 빚만 잔뜩 지고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서씨는 “해충, 말파리, 모기 등이 있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도 열심히 농사를 지었지만 판로 확보에 애를 먹었다”면서 “도시에서 막노동을 해도 농촌보다는 벌이가 나을 것 같았다”고 귀농했던 것을 후회했다. 귀농귀촌이 느는 것 못지않게 실패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장밋빛 꿈을 안고 도시 생활을 청산한 뒤 내려왔다가 영농 기술 미숙과 주민과의 마찰 등으로 도시로 다시 돌아가는 귀농인이 부지기수
  • [커버스토리] 프로 골퍼 출신 캐디 김민이씨가 말하는 ‘캐디의 세계’

    [커버스토리] 프로 골퍼 출신 캐디 김민이씨가 말하는 ‘캐디의 세계’

    서울 근교 S골프장에서 만난 김민이(21)씨의 직업은 경기 보조원, 즉 ‘캐디’다. 그는 이 직업을 가진 것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다. 20대를 갓 넘긴 팔팔한 나이답게 “내가 왜 내 직업을 부끄러워하느냐”고 되묻는다. 그는 프로 골프선수다. 비록 2부와 3부 투어를 왔다 갔다 하는 처지지만 말이다. 지난해 12월 처음 캐디 옷을 입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잡은 골프채도 잠시 내려놨다. 돈 때문이었다. 골프는 우리나라에선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이다. 골프의 ‘ㄱ’자도 모르던 부모님이 골프에 온 살림을 쏟아부으면서 집안 형편도 기울기 시작했다. 코치의 권유로 캐디 생활을 시작한 지 이달로 9개월째. 한 달 수입은 제법 짭짤하다. 지난달엔 300만원 남짓 통장에 입금됐다. 그중 200만원을 훈련하는 데 썼다. 나머지는 생활비로 들어갔고 언젠가 다시 뛸 투어 대회에 대비해 자그마한 적금도 들었다. 힘은 들지만 그는 만족한다. 무엇보다 훈련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서다. 캐디를 하기 전에는 투어를 뛰면서 겪게 되는 온갖 쪼들림이 그대로 스트레스가 됐다. 공이 잘 맞을 리 없었다. 상금 순위 30위를 들락거리며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걱정했다.
  • [커버스토리] ‘美 아마골프 챔피언’ 위멧 뒤엔 10살 짜리 캐디 에디가 있었다

    [커버스토리] ‘美 아마골프 챔피언’ 위멧 뒤엔 10살 짜리 캐디 에디가 있었다

    골프를 소재로 한 영화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필름은 2005년 빌 팩스튼 감독이 만든 ‘지상 최고의 게임(The Greatest Game Ever Played)’이다. 미국 ‘아마추어 골퍼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란시스 위멧을 모델로 제작된 영화다. 매사추세츠주 브루클린의 한 마차꾼 아들이자 캐디였던 위멧(당시 20세)이 1913년 US오픈에서 아마추어 선수로는 첫 우승을 거둔다는 것이 영화 줄거리다. 그는 당대 최고의 골퍼이자 자신의 우상이었던 영국의 전설적인 골퍼 해리 바든(당시 40세)을 이겼다. 영화는 위멧과 바든의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과 승부, 현대 미국골프의 탄생을 그렸다. 그런데 빼놓을 수 없는 조연이 바로 위멧의 캐디 10살짜리 에디 로리(극중 사진)다. 역시 실존 인물이었던 꼬마 에디는 주인공보다 더 주목을 받았다. 더 나은 보수를 위해 위멧을 떠난 원래의 캐디 대신 갑자기 백을 멘 에디가 경기 도중 곤경에 빠진 위멧을 향해 나직하고도 단호하게 일러주던 말은 지금도 골퍼들에게 캐디가 어떤 존재인가를 명확히 알려주는 표본이 되고 있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한 번에 하나씩만 하면 돼. 읽고, 굴리고, 그리고 넣는 거야.” 성장한
  • [커버스토리] 1년 투어시 캐디피만 최소 1000만원 부담… 골프 대디·맘이 밀착 지원사격

    [커버스토리] 1년 투어시 캐디피만 최소 1000만원 부담… 골프 대디·맘이 밀착 지원사격

    한국 남녀프로골프가 외국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전문 캐디, 혹은 하우스 캐디 대신 가족 중에 한 사람이 백을 멘다는 사실이다. 물론 선수들 모두의 경우는 아니지만, 적어도 프로 전향 전까지 아들 혹은 딸을 위해 기꺼이 캐디 노릇을 하는 건 일반적인 것으로 인식돼 왔다. 특히 ‘아버지’는 ‘패밀리 캐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박세리(36)의 아버지 박준철씨가 그랬고, 신지애(25)의 부친 신제섭씨, 최나연(26)의 ‘골프 대디’ 최병호씨 역시 불과 몇 년 전까지 딸의 캐디를 자처했다. 남자 선수라고 예외는 아니다. 최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생애 첫 승을 올린 배상문(27)의 어머니 시옥희씨는 ‘극성 엄마’로 짜하게 소문이 났지만, 배상문은 우승 인터뷰에서 “내 골프의 8할은 어머니”라며 시씨에 대한 감사함과 애틋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올 시즌 원아시아투어 상금 2위 최호성(40)의 캐디는 아예 장인이다. 지금까지 5년째 백을 메고 있다. ‘가족 캐디’가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전문 캐디를 둘 수 없는 경제적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선수가 1년 동안 투어에 참가하려면 최소한 1000만원의 캐디피가 들어간다. 여기에 투어
  • [커버스토리] ‘골프장의 꽃’ 캐디들의 명암

    [커버스토리] ‘골프장의 꽃’ 캐디들의 명암

    캐디의 어원은 16세기 후반 프랑스 출신인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의 라운드 때마다 골프채를 들고 따르던 육군사관 후보생 ‘캐데이’(CADET)에서 비롯됐다는 게 가장 유력하다. 처음엔 남자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국내 캐디 1호는 1963년에 뛰었던 최갑윤(당시 21세)씨로 알려져 있다. 그가 골프와 인연을 맺은 건 15세 때인 1957년. 국내 골프장이 없던 당시 그는 야간 중학교에 다니면서 미군들이 골프 연습을 하는 곳에서 볼을 주워주는 대가로 1~2달러의 팁을 받았다. 그리고 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CC 정식 직원이 됐다. 서울CC는 1960년에 개장한 국내 1호 골프장이었다. 1963년 당시 급료는 300환. 최씨는 “그때는 먹고 살기가 워낙 힘들어서 넉넉한 집안에서도 자식들에게 ‘놀려면 골프장에 가서 놀아라’고 말할 정도로 골프장 취직은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전했다. 외국에서 캐디는 어엿한 직업인이다. 타이거 우즈(미국)의 14차례 메이저대회 우승 가운데 12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12개의 메이저 우승을 합작한 스티브 윌리엄스(호주)는 ‘백만장자 캐디’로 통한다. 2009년 ‘명인열전’ 마스터스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오리’
  • [커버스토리] 스타 시장 움직이는 ‘스마트 팬덤’ 시대

    [커버스토리] 스타 시장 움직이는 ‘스마트 팬덤’ 시대

    # KBS 월화 드라마 ‘굿 닥터’의 첫 방송을 앞두고 최근 주연 배우 문채원의 팬 커뮤니티 중 하나인 디씨인사이드 문채원 갤러리는 헌혈증 213장을 모아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기증했다. 팬들은 ‘굿 닥터’가 소아외과를 배경으로 어린이들의 생명을 살리려 분투하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점에 착안해 이 같은 이벤트를 진행했다. # 지난 5월 신인 아이돌 그룹 ‘엑소’의 리더 수호의 생일을 맞아 팬사이트 ‘리얼리제이션’은 국제구호단체 월드쉐어를 통해 방글라데시에 우물을 기증했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이름으로 선행을 하고 스타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제고하는 일석 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스마트 팬덤’(Smart Fandom)이 대중문화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오매불망 스타를 해바라기하며 일방적인 환호를 보내던 일명 ‘빠순이’에서 벗어나 스타와 쌍방향으로 소통하며 지능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똑똑한’ 팬 문화가 스타 시장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스타의 이미지와 커리어까지 고려하며 적극적인 지원과 조언, 홍보 등 전방위 활동을 펼쳐 스타 개개인은 물론 관련 업계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전방위로 영역을 확장해 가는 스마트
  • [커버스토리-대중문화 시장 주무르는 ‘스마트 팬덤’] 꽃 대신 쌀화환 기부… ‘팬질’이 사회공헌 활동으로 진화하다
  • [커버스토리-대중문화 시장 주무르는 ‘스마트 팬덤’]  한류 이끄는 글로벌 팬덤

    [커버스토리-대중문화 시장 주무르는 ‘스마트 팬덤’] 한류 이끄는 글로벌 팬덤

    팬덤의 진화는 국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성장한 글로벌 팬덤은 한류의 저변이 되고 있다. 이들은 한국 가수가 자국을 찾고 드라마가 공식 수입되기만을 기다리는 대신 자발적으로 한국 문화를 생산, 공유하고 확산시킨다. 2011년 프랑스의 한국 문화 동호회 ‘코리안 커넥션’이 온라인 서명 운동과 플래시몹 등을 통해 SM타운 콘서트의 연장 공연을 성사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다. 글로벌 팬덤이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곳 중 하나는 유튜브 같은 동영상 사이트다. K팝과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한국 문화가 유튜브를 통해 유통된다. K팝 팬들은 좋아하는 가수의 춤을 따라하는 커버 댄스(cover dance) 동영상을 찍어 올리며 팬덤을 확장한다. 이 같은 팬덤이 음반 기획사들을 움직인 덕분에 상대적으로 한국 가수의 진출이 적었던 유럽과 남미 등에서도 잇따라 공연이 열릴 수 있었다. 드라마와 영화는 ‘팬섭’(fan subtitling)이라 불리는 팬들의 자막 제작을 통해 전파된다. 중국의 한국 드라마 마니아를 뜻하는 ‘한쥐미’(韓劇迷)는 한국 드라마를 가장 먼저 수용하고 확산시키는 집단이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한쥐미를 연구한 이경숙
  • [커버스토리-대중문화 시장 주무르는 ‘스마트 팬덤’] 흥행 부진한 스타 다독이는 팬… 호텔방 몰카 찍어 괴롭히는 광팬

    [커버스토리-대중문화 시장 주무르는 ‘스마트 팬덤’] 흥행 부진한 스타 다독이는 팬… 호텔방 몰카 찍어 괴롭히는 광팬

    ‘팬은 스타를 닮아간다.’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이 요즘 입을 모으는 말이다. 스타의 성향에 따라 팬덤의 성격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고, 가수나 배우 등 장르에 따라 팬덤의 활동 영역도 다르다. ‘스마트 팬덤’으로 팬들의 정보교류가 빨라지고 욕구도 그만큼 더 다양해졌다. 연예기획사에서는 팬들만 관리하는 팬매니저나 팬 관리 부서를 따로 두고 이들의 요구에 발빠르게 대처한다. 빅뱅, 2NE1 등 개성 강한 아티스트들을 둔 YG 소속 가수들의 공연장에 가면 유독 예술적 성향이 강한 팬들이 몰려든다. YG엔터테인먼트의 관계자는 “나이대는 10대부터 다양하지만 패션에 관심이 많고 예술적 성향이 짙은 팬들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인적이고 자유분방한 팬들은 스타의 위기 앞에서는 한마음으로 뭉친다. 2011년 빅뱅은 대성의 교통사고로 중대 위기에 직면했다. 이때 빅뱅의 팬들은 똘똘 뭉쳐 이들이 MTV 유럽뮤직어워드에서 한국 최초로 수상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황민희 YG 과장은 “당시 전 세계의 팬들이 합심해 네티즌 투표에 참여했고, 빅뱅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북미 대표였던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수상으로 멤버들은 컴백에 큰 힘을 받았다
  • [커버스토리] 대학 ‘인맥 사교장’ 불황에 된서리…학생 유치전

    [커버스토리] 대학 ‘인맥 사교장’ 불황에 된서리…학생 유치전

    불황이 깊어지면서 2000년대 중반까지 고급 인맥의 ‘사교장’으로 명성을 떨치던 각 대학의 최고위 과정도 한파를 맞고 있다. 정치인이나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이 거쳐 간 일부 상위권 대학의 최고위 과정은 그나마 수지 타산을 맞추고 있지만 대부분은 학생 수 미달로 존폐 위기에 처해 있다. 이에 따라 대학마다 생존을 위한 손님 끌기가 한창이다. 한 학기에 1000만원을 웃도는 고액 수강료는 이미 바겐세일에 들어갔다. 골프와 스포츠댄스 등 수요자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도 마련해 신입생 모집에 앞장서고 있다. 여기에 학교 인맥을 총동원해 ‘전주’(錢主) 역할을 하는 대기업과 금융기관 등에 학생 공급을 요청하는 로비전도 치열하다. 한때 인맥 사교장으로 수요자(학생)를 유혹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공급자(대학)가 인맥 장사로 연명하는 셈이다.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은 지난해 정원(40명)의 절반인 20명만 채웠다. 2011년 1500만원까지 치솟았던 수강료를 지난해 900만원으로 크게 내렸지만 가격 인하 효과를 전혀 보지 못한 것이다. 최고경영자 과정의 원조 격인 서울대 경영대학원도 예외가 아니다. 한 학기에 130~150명이 지원해 평균 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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