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진출 꿈 키워주는 부끄럽지 않은 직업… 캐디는 내게 15번째 클럽”
서울 근교 S골프장에서 만난 김민이(21)씨의 직업은 경기 보조원, 즉 ‘캐디’다. 그는 이 직업을 가진 것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다. 20대를 갓 넘긴 팔팔한 나이답게 “내가 왜 내 직업을 부끄러워하느냐”고 되묻는다.김민이씨가 수도권의 한 골프장에서 라운드에 앞서 주말골퍼들의 캐디백을 정리하고 있다.
캐디를 하기 전에는 투어를 뛰면서 겪게 되는 온갖 쪼들림이 그대로 스트레스가 됐다. 공이 잘 맞을 리 없었다. 상금 순위 30위를 들락거리며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걱정했다. 하지만 형편이 나아지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이는 투어를 다시 뛸 동력이 됐다.
목표는 오는 11월 중순 전남 무안에서 열리는, 내년 1부 투어 선수가 되기 위한 자격시험인 ‘시드전’이다. 지난 두 해 보기 좋게 미역국을 먹었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를 것이다. 하루도 연습장 훈련을 빼먹지 않은 데다 석 달 전부터는 영업이 끝난 이 골프장 코스에서 9개홀 실전 훈련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이전 일을 나가는 ‘1부’만 뛰도록 마스터가 ‘대기 조정’을 해 준 덕이다. 물론, 1부에다 오후 2부까지 뛰면 돈을 곱절로 벌 수 있지만 욕심은 없다. 돈은 딱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본에서 뛰는 유명 골퍼 이보미(25)의 강원 홍천고 후배인 그의 꿈은 명료하다. ‘보미 언니’처럼 미국이나 일본 무대에서 뛰는 것이다. 김씨는 “선수의 골프백엔 14개 골프채만 허락되잖아요. 지금 제 캐디 생활은 15번째 클럽인 셈이죠”라며 활짝 웃었다. 캐디 경험이 프로의 비장의 무기라는 의미다.
골프장경영협회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 골프장에서 일하는 캐디는 3만 500여명으로 추산된다. 늘 들고 나는 인원이 많은 탓에 공식적인 집계는 어렵다. 2006년 1만 7500여명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캐디 한 명당 1년 동안 맡는 팀(4명 기준) 수는 234개팀. 팀당 캐디비 10만원을 받는다고 가정할 때 연간 수입은 2500만원에 육박한다. 하루 36홀을 뛰는 경우 수입은 곱절로 늘어난다.
월급쟁이 수준의 연봉이지만 그늘도 있다. 이들은 특수고용직 근로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퇴직급여보장법 등 노동 기본법규가 적용되지 않는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김씨와 같은 경우를 제외한 이들 대다수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길 꺼리는 것은 당당한 직업인으로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 사진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2013-08-17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