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귀의 詩와 視線] 아비의 슬픔과 시의 육성/한국외대 영문학과 교수
망치를 줘, 방울을 줘, 종소리를 듣고 마법을 들어 봐 도끼를 줘, 나무를 줘 통나무에 천천히 불이 붙는 걸 봐.
우리 다시 만날지 누가 알겠어? 어딘지도 모르고 언제인지도 몰라 어쩌면 영원히 어쩌면 지옥에서 얘야, 잘 가라, 잘 가거라! (중략)
이보다 더 힘든 길을 본 적이 없어, 내게서 멀어져 네가 걷고 있는 이 길. 내 부탁 들어줘, 노래를 불러 줘 시간이 다 갔어, 하루가 너무 기네,
우리 다시 만날지 나는 알지 못해. 아마도 만나겠지, 지옥 어딘가에서 방법은 모르고 언제가 될지도 몰라. 그러니 얘야, 잘 가렴, 잘 가렴!
-찰스 번스틴 ‘잘 가, 잘 가’ 중
미국의 시인 찰스 번스틴이 아끼던 딸을 잃은 후 가눌 길 없는 슬픔 속에 쓴 시다. 딸 이름은 에마. 가능성이 무궁한 큐레이터였다. 시인 아버지와 화가 엄마의 재능을 골고루 물려받은 맏이는 어릴 때부터 예민한 감수성과 뛰어난 예지로 이 세계의 아픔을 앓으면서 둔탁한 세계의 모서리를 예술로 두드렸다. 미국 사회가 세계 질서 안에서 폭력과 전쟁을 택할 때 그 방향에 절망한 에마는 새로운 연대를 만들기 위해 나름으로 애썼으나 결국은 죽음으로 걸어갔다. 이 시는 에마의 죽음 이후 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