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이소영

식물 세밀 화가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도시를 오르는 사랑의 담쟁이, 스킨답서스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도시를 오르는 사랑의 담쟁이, 스킨답서스

    어제 정원에 피어난 솔체꽃을 보며 문득 이름이 참 예쁘다고, 그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식물에 이름을 붙이는 우리는 식물만큼 아름답지 않아, 줄곧 부르기 꺼려지는 이름을 식물에 붙여 주기도 했었으니까. 심지어 우리가 먹을 수 없도록 독성을 갖거나, 우리 생활에 방해되거나, 아무리 죽이려 해도 죽지 않는 식물은 ‘악마’라 이름 붙였다. 벌레잡이식물을 그리느라 싱가포르식물원 외곽의 생태보호구역에 조사를 간 적이 있다. 숲을 헤치자 나무 사이를 지나는 기다란 덩굴식물이 눈에 띄었다. 현장 연구원에게 식물 이름을 물어보니 ‘데블스 아이비’(Devil’s ivy), 악마의 담쟁이라고 했다. 휴대전화로 영명을 검색해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흔하디흔한 관엽식물, 스킨답서스였다. 줄곧 작은 분화로만 봐왔으니 자생하는 모습을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할 수밖에. 도시에서 이들은 전 세계의 가정에서 재배되는 흔하디흔한 관엽식물이고, 그런 이들이 악마의 담쟁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녹색의 스킨답서스는 솔로몬제도 외 열대우림을 고향으로 나무에 뒤엉켜 자라는 덩굴식물이다. 열대우림에선 거대한 나무에 빛이 가려 햇빛이 귀하다 보니 이들은 자신의 덩굴 성격을 이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크고 질긴 잎의 놀라운 능력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크고 질긴 잎의 놀라운 능력

    식물세밀화를 그리는 동안 나는 꽤 많은 식물과 마주했다. 식물 중에는 우리나라에 자생하거나 재배하는 식물도, 우리나라에선 본 적 없는 외국 식물도 있었다. 캄보디아 열대우림의 넓은잎과 노르웨이의 날카로운 바늘잎처럼 생소하고 낯선 식물을 그릴 때 나는 종종 새로운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3년 전 뉴질랜드 토착식물인 ‘뉴질랜드 플랙스’를 그릴 때였다. 어렵게 통관돼 받아 든 이 식물은 전체 키가 3m에 가까웠고, 잎 한 장이 내 키만 했다. 이것을 다 그리고 표본으로 누르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그림을 그리려면 원래 식물보다 크게 그려야 하는데, 생체가 거대하니 어떤 구도로 그려야 할지 여간 고민이 아니었다. 결국 잎을 10분의1로 축소하고, 뿌리 일부분만 그림에 넣기로 했다. 다시 뉴질랜드로 보낼 표본을 누를 때에도 잎을 여섯 조각내어 번호를 매긴 후 신문지 사이에 말렸다. 표본이 마르는 사이에도 나는 여러 번 신문지를 들춰 혹여 썩는 부분은 없는지, 표본이 잘 눌러졌는지 확인해야 했다. 수분이 많은 잎이나 꽃은 잠시만 소홀해도 색이 까매지고 썩기 쉽기 때문이다. 아열대의 거대하고 두꺼운 잎은 내게 까다롭고 어려운 상대다. 물론 이 커다란 잎들이 세상 모두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당신의 지친 마음을 달래 줄 식물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당신의 지친 마음을 달래 줄 식물

    코로나19 위험성이 알려진 지 반년이 훌쩍 지났다. 그사이 우리 생활 반경은 눈에 띄게 좁아졌다. 바이러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과 강박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사람들의 피로는 풀 데 없이 쌓여만 간다. 예년 같으면 지금쯤 모두들 한 달여 남은 추석 연휴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을 테지만, 그 누구도 추석 계획을 이야기하거나 여유롭게 가을을 맞이하는 이 없이 지금 우리의 상황을 비관할 뿐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내 주변에서도 우울과 불안으로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는다는 지인들도 늘어 간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으로부터 심신의 안정을 얻고자 하는 움직임도 많아졌다. 정확히 ‘원예 치료’라는 용어를 쓰진 않지만 내게도 식물에 위로와 치유, 안정의 개념을 더한 이야기나 조언을 해 달라는 강의나 출판 제안이 부쩍 늘었다. 전 미국 원예치료협회장 스티브 데이비스는 “원예 치료란 식물 재배와 정원 활동을 통한 전문적인 치유, 재활 수단”이라고 정의했다. 인류는 환경을 아름답게 하고, 우리가 먹을 음식의 재료를 생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식물을 재배해 왔지만, 원예는 그 이상으로 심리적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우리 곁의 뽕나무가 내일도 있을 거란 착각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우리 곁의 뽕나무가 내일도 있을 거란 착각

    어릴 적 엄마는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곧잘 들려줬다. 짤막한 시부터 널리 알려진 전래동화까지. 아주 어릴 때라 온전히 떠오르는 건 몇 없지만 그중 또렷하게 기억하는 얘기엔 뽕나무가 나온다. “옛날에 뽕나무가 살았는데 어느 날 뽕나무가 ‘뽕이오’ 했더니 옆에 있던 대나무가 ‘대끼놈’ 하고 혼냈고, 그러자 옆에 있던 참나무가 ‘참아라’ 했다는” 아주 짧은 이야기. 그때 처음 뽕나무의 존재를 알았다. 어린 내가 느끼기에도 ‘뽕’이라는 이름은 너무 강렬했다. 게다가 대나무와 참나무에게 먼저 시비를 건 셈이니 그리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던 것도 아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나는 바로 그 뽕나무를 실제로 처음 봤다. 경기도의 한 농촌에 자연체험을 하러 갔을 때다. 플라나리아를 관찰하러 산속 계곡으로 가던 길 옆, 작고 까만 열매가 열린 나무가 있었다. 누군가 선생님께 “이 열매 먹어도 돼요?” 하고 소리쳤다. 선생님은 한 사람당 하나씩만 먹자며 나무 이름은 뽕나무, 열매는 오디라고 알려 줬다. 열매를 입에 넣고 씹으니 살짝 단맛이 돌았다. 오디를 먹어 까매진 서로의 혓바닥을 보고 놀리며 숲속을 지나던 어린 시절. 내 기억만큼 뽕나무는 우리 삶 곳곳에서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이 드라마에 그 꽃이 등장한 이유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이 드라마에 그 꽃이 등장한 이유

    인류는 식물을 소재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즐겨 왔다. 이것은 인류보다 오래 살아온 자연물에 대한 숭배와 미지의 대상을 향한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우리나라 전설 속에 등장하는 식물 이야기는 식물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은 아닐지언정 우리가 식물을 더 오래도록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식물을 선물할 때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비롯된 ‘꽃말’을 찾고, 유적지의 오래된 나무에 대한 전설을 경청하듯 말이다. 이제 사람들은 드라마와 영화, 웹툰과 같은 현대판 이야기 콘텐츠에 식물을 담아낸다. 특히 드라마는 일상을 가장 밀접하게 재현해 식물 문화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식물을 통해 식물 문화 흐름을 연구한 논문도 발표된 바 있다. 1990년대 드라마 속 난과 소철, 2020년대 율마와 마리모를 통해 우리 곁 식물종의 변화를 알 수 있다. 1990년대 드라마 재벌 회장의 집무실에 있던 소나무 분재부터 2020년 관엽식물 분화 변화까지 우리가 원예를 즐기는 형태의 흐름도 엿볼 수 있다. 요즘 식물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많아지면서 식물이 있는 식물원, 수목원의 장소 협찬도 잦아졌다. 최근 다녀온 경기도의 한 수목원 정문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영원의 식물, 신문의 쓸모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영원의 식물, 신문의 쓸모

    2004년 일본 도쿄대 종합연구박물관에서 특별한 전시가 열렸다. 1904년부터 1945년까지 발행된 신문에 관한 아카이빙 전시였다. 다소 평범해 보이는 이 전시가 식물학계에서 특별하게 회자되는 것은 전시 작품 중 식물학자의 신문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식물학자의 글이나 기사가 게재된 신문이 아니라, 식물학자 마키노 도미타로가 식물 표본을 만들면서 이용한 흡습지로서의 신문이다. 지난날 내가 일했던 국립산림생물표본관의 표본실 장에는 식물 표본이 가득 쌓여 있었다. 연구자들이 전국을 돌며 조사하고 채집한 식물은 표본제작실을 거쳐 수분이 빠진 납작한 표본이 되고, 이것은 식물의 시공간적 증거로서, 또 연구자들의 연구 데이터로서 활용됐다. 표본제작실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신문이었다. 흡습성이 뛰어나고 곰팡이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나는 식물을 그리다가도 채집을 갔던 동료가 돌아오면 채집 봉투에 가득 담긴 식물들을 신문지에 하나씩 고이 끼워 두고, 다음날 또 그 다음날 다른 새 신문지에 갈아 끼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짧게는 반년, 길게 수년이 지나면 식물은 수분이 다 빠진 상태가 되고, 이것을 라벨과 함께 흰 시트에 붙이면 온전한 표본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표본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식물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 먹는 꽃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식물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 먹는 꽃

    15년 전 나는 처음으로 꽃을 먹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허브농장으로 견학 간 날, 점심 식사로 갖가지 허브식물이 든 비빔밥이 나왔다. 내 앞에 놓인 밥그릇을 숟가락으로 슬쩍 들추니 흰밥이 있고 그 위에는 이름 모를 허브와 채소 그리고 맨 위에는 노란색, 남색 팬지 꽃이 몇 장 놓여 있었다. 앞에 앉은 동기가 이 꽃은 장식용일 거라며 걷어 내려 하자, 교수님은 이 꽃도 먹는 것이라며 식물을 공부하려면 식물을 먹는 경험도 필요하다고 하셨다. 우리는 노랗고 파란 팬지 꽃잎 위에 빨간 고추장을 올려 그릇 안의 모든 식물을 비벼 먹었다. 다양한 식물의 향이 한꺼번에 느껴졌고, 잘 가꿔진 정원이 내 입안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어쨌든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첫 꽃 식용의 경험이다. 인류는 식물을 매개로 살아왔고, 그중에서도 먹는 데에 식물을 가장 많이 이용했다. 식물을 먹기 위해 원예를 시작했고, 그렇게 문명은 발달했다. 뿌리부터 줄기, 잎, 열매, 씨앗처럼 식물의 삶에 나타나는 모든 기관뿐만 아니라 죽은 나무에서 나는 버섯과 이끼, 심지어는 식물에 함유된 물과 기름까지 우리는 식물의 모든 것을 먹어 왔다. 그러나 한 가지, 꽃만은 대개 고유한 관상의 대상으로 여겼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복숭아털, 까슬거려 싫으신가요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복숭아털, 까슬거려 싫으신가요

    내 작업실 바로 옆에는 작은 복숭아밭이 있었다. 복숭아가 익어 가는 이맘때면 주변에 늘 달콤한 복숭아 향기가 퍼졌고, 나는 그 향기가 좋아 부러 그곳을 지나쳐 작업실로 왔다. 복숭아밭 주인은 복숭아가 다 익는 7월이면 내게 까만 봉지를 쥐여 줬다. 멍이 살짝 들어 판매가 어려운 것이라며 “생긴 건 이래도 맛은 있다”는 말과 함께. 봉지를 열면 달콤한 복숭아 향기가 퍼지고 그 안엔 분홍빛이 살짝 든 복숭아 여덟 알 정도가 있었다. 그것은 며칠 안에 금세 먹어 치울 만큼 달콤한 맛이었다. 그 복숭아는 털이 참 많아 씻으려고 손에 쥐면 유난히 까슬거려 물로 여러 번 문질러 닦아야 했다. 겉이 반지르르해진 복숭아를 껍질도 까지 않고 베어 물며 책상에 앉아 일을 시작하던 시절. 나는 매년 여름이면 그때를 추억한다. 몇 년 전 신도시가 들어서며 복숭아밭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 그 자리에는 거대한 빌딩이 우뚝 서 있다. 얼마 전 대형마트에서 과일 유통 일을 담당하는 학교 선배를 만나 과일 이야기를 하다가 그 복숭아밭 이야기를 꺼냈더니, 선배는 그 복숭아에 털이 유난히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 줬다. 유통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털이 빠지기도 하는데, 무엇보다 사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장미덩굴 뒤에는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장미덩굴 뒤에는

    비로소 장미의 계절이다. 주택가 담장을 따라, 아파트 울타리를 따라 붉은 장미가 한창 만개 중이다. 올해처럼 도심의 장미가 주목받던 시기가 있었나 싶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장미축제는 모두 취소됐고, 나들이를 자제해야 하는 시기이기에 사람들은 일상에서 만나는 장미를 더욱 반길 수밖에 없다. 장미가 피는 이 계절이면 자동적으로 장미를 그림으로 기록한 식물세밀화가 피에르 조셉 르두테가 떠오른다. 식물세밀화를 그린다고 하면 사람들은 종종 르두테 이야기를 꺼낸다. 프랑스에서도 그랬다. “당신은 르두테와 같은 일을 하는군요.” 신기하게도 특별히 식물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모두 르두테를 알고 있었다. 그는 벨기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였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식물세밀화가다. 식물을 기록하는 일을 할 뿐인 르두테가 유독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이유는 그의 어마어마한 후원자 리스트 덕분인데, 그중엔 마리 앙투아네트와 나폴레옹의 아내 조세핀도 있었다. 물론 이 이유뿐만은 아니다. 그는 장미 역사상 중요한 그림 기록을 남겼다. 장미의 역사는 1867년을 기점으로 나뉜다. 1867년에는 ‘라 프랑스’라는 분홍색 장미가 발표됐다. 우리가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우리 각자의 작약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우리 각자의 작약

    식물세밀화를 그리다 보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식물 기록을 필요로 하는 식물 연구자부터 제약회사나 화장품회사의 디자이너와 연구원, 요리사 혹은 한의사처럼 식물을 활용하는 분야의 사람들까지. 식물을 관찰하느라 숲에서 늘 고요히 있으면 나도 아주 가끔은 사람이 고플 때가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그렇게 일로 만난 이들과 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꽤 즐긴다. 우리는 식물을 서로 다른 시선에서 바라본다. 한의사에게 식물은 약재이며 요리사에게는 식재료, 화장품회사 연구원에게는 원료, 아로마세러피스트에게는 오일이다. 내게 식물은 언제나 ‘그릴 대상’ 혹은 ‘숙제’였던 것 같다. 식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다른 시선이 존재한다. 내가 일하던 수목원 표본관에는 식물분류학자와 생태학자, 원예학자 등이 있었다. 멀리에서는 다 같은 식물학자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들은 사실 전혀 다른 각도로 식물을 바라보고 연구한다. 화단에 핀 장미 사진을 찍더라도 식물분류학자는 자신도 모르게 꽃자루의 길이나 꽃받침의 털처럼 분류 키에 집중한 클로즈업 사진을 찍는 반면, 원예학자와 원예가는 관상의 주요 부위인 꽃을 위에서 찍는다. 조경가와 조경 디자이너는 식물이 식재된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코로나 시대의 식물세밀화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코로나 시대의 식물세밀화

    4년 전 프랑스의 한 공원에서 캐롤라이나재스민이라는 식물을 본 적이 있다. 미국 남부와 멕시코에 분포하는 젤세미움속으로 꽃이 개나리를 닮아 개나리재스민이라고도 불리는 식물이었다. 생김새와 싱그러우면서도 부드러운 향기가 인상 깊어 한국에 와서 재배해 볼 요량으로 정보를 찾아봤는데, 흥미롭게도 내가 찾은 그림 기록 대부분이 1918년 스페인 독감 대유행 시대 것이거나, 이 시대를 고찰하는 논문과 책에 재기록된 것이었다. 이 식물은 대체의학의 일부인 동종요법으로서 스페인 독감의 치료제로 이용되고 이슈가 됐던 것이다. 식물 그림은 대부분 해당 식물이 처음 발견되고 세상에 발표될 때에 그려진다. 그러나 발견의 역사가 오래되거나 첫 기록이 표본이나 사진뿐이라 그림이 없는 경우에는 후대에 다시 그려지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약용식물을 이용하거나 식물의 씨앗이나 모종이 판매될 때, 식물에 대해 이야기할 일이 있을 때에도 식물세밀화가 기록됐다. 그러니까 식물세밀화는 식물의 형태 기록 그 자체이면서 사람들에게 식물을 이야기하는 매개인 것이다. 그러니 해당 식물이 많이 이용되거나 언급되는 시대일수록 그림도 많이 그려지기 마련이다. 스페인 독감 시대에 캐롤라이나재스민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식물, 어떻게 좋아하시나요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식물, 어떻게 좋아하시나요

    지난주 그려야 할 식물이 있어 집 근처 수목원에 다녀왔다. 이맘때면 늘 나들이 온 관람객들 사이에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봄 야생화를 찍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려야 했던 할미꽃을 관찰하고 수목원을 한 바퀴 도는데, 한 관람객이 전시원 펜스 안에 들어가 풀 위에 몸을 눕힌 채 풀꽃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그 관람객은 나를 보더니 황급히 일어나 펜스 밖으로 나왔지만 그가 누웠던 자리의 풀들은 모두 시든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곳은 우리나라의 희귀, 특산식물들이 식재된 전시원이었다. 수목원에서 일하던 때, 나는 점심시간이면 산책을 자주 나갔다. 30여분의 고요한 산책 중에도 나는 꼭 한 번은 관람객에게 “안에 들어가시면 안 돼요”, “식물 꺾으시면 안 돼요”라는 말을 해야 했다. 무엇보다 슬픈 건 이 관람객들은 식물을 보기 위해 미리 예약까지 해 경기도 외곽의 수목원에 온, 식물을 좋아하는 열정적인 사람들이란 사실이다. 유기 동물이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버려진 결과이듯, 식물 역시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고 있음을 지켜보며 나는 줄곧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왔다. 좋아한다는 말에는 늘 대상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행운 찾느라 수많은 꽃을 놓친 건 아닌지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행운 찾느라 수많은 꽃을 놓친 건 아닌지

    한 대학의 원예학과 학생들에게 식물세밀화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나 역시 원예학을 공부했지만 원예란 대체로 화려한 재배식물을 다루기 때문에 이 수업만큼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생식물을 관찰하도록 교정의 들풀을 그리도록 했다. 햇볕은 따뜻하고 바람은 선선한 사월 중순 학교 잔디밭과 화단에는 그야말로 봄꽃과 연둣빛 잎들이 한창 자라나고 있었다. 그중엔 특히 ‘클로버’라 불리는 토끼풀이 많았다. 토끼풀은 햇볕이 잘 드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유럽 원산의 귀화식물이다. 워낙 적응력과 생명력이 강해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간 식물. 당연하게도 토끼풀을 그리기로 하고 채집을 하기 시작한 학생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꼭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찾아 그리겠노라며 허리를 구부리고 열심히 잔디밭을 뒤적이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네 잎은 그리지 못했다. 네 잎을 발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식물세밀화는 식물종의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형태 모습을 그리는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네 장의 잎은 일반적이지도, 유전적 돌연변이도 아닌 일시적인 현상이며, 보통의 토끼풀은 세 잎이다. 식물세밀화를 그릴 때만큼은 네 잎은 보편적인 형태를 관찰하는 데 방해일 뿐 행운의 의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우리가 지나는 땅을 되짚어 보면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우리가 지나는 땅을 되짚어 보면

    내 작업실 뒤엔 주차장을 둘러싼 기다란 화단이 있다. 이곳엔 서양측백나무와 당단풍나무, 스트로브잣나무와 서양자두나무 등 평범한 도심 정원에서 흔히 볼 법한 나무들이 있다. 이 화단을 참 좋아한다. 나무 꽃이 아름답고 열매가 맛있어서가 아니라, 화단에 피어나는 다채로운 풀꽃들 때문이다. 이맘때면 로제트 잎을 가진 봄 풀꽃들이 색색의 꽃을 피워 낸다.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 부지런히 피어난 꽃들이 어찌나 기특한지 나는 요즘 땅만 들여다보고 다닌다. 이맘때 늘 그랬다. 오늘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작업실에 들어오기까지 30분 이상 걸렸다. 오늘 만난 꽃은 꽃마리와 봄맞이꽃, 쇠별꽃, 냉이, 큰개불알풀, 서양민들레, 꽃다지다. 이들은 흔히 잡초라 불리는 풀이다. 내가 이 이름을 나열하면 주변 식물학자들은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흔한 풀이지만, 꽃을 보러 어딘가로 나서지 않아도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시 일상에서 스스로 자라고 피어난 꽃을 만난다는 것은 지금과 같은 시기엔 마치 숲에서 희귀식물을 보는 것만큼 소중한 일이다. 게다가 꽃마리나 쇠별꽃, 냉이와 꽃다지 등은 모두 꽃이 지름 0.5㎝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풀이라 땅에 얼굴을 가까이하지 않으면 보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집콕’의 순간, 원예의 시간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집콕’의 순간, 원예의 시간

    코로나19의 여파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개강이 2주 뒤로 연기됐고, 직장인 친구들은 재택근무 중이다. 친구들은 혼자 일하기 지루한지 종종 내게 연락해 산이나 식물원에 함께 가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난, 언제 한 번 같이 산책을 하자거나 집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건 어떠냐며 은근슬쩍 식물 문화 안으로 끌어들인다. 최근 어떤 화분을 들일지 묻는 친구와 이미 많은 식물을 재배 중이라 재택근무 동안 오랫동안 식물을 볼 수 있다며 좋아하던 친구들을 보면서 요즘 나는 부쩍 가정 원예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한다. 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이 많던 1990년대 내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조그마한 마당이 있었다. 마당에는 앵두나무 한 그루와 엄마와 아빠가 심어 놓은 오이와 상추, 가지 등이 가지런히 커갔다. 저녁 무렵 엄마가 채소를 수확할 때면 나는 옆에서 마당을 뛰어다니고, 여름이면 아빠와 함께 앵두를 따서 바구니에 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부모님이 특별히 식물 가꾸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마당이 있는 이상 무언가를 심고 가꾸어야 했다. 그리고 10년 후 우리는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아파트에는 꽤 널찍한 베란다가 있었다. 엄마는 베란다에 여러 종류의 난과 소철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그럼에도 꽃은 핀다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그럼에도 꽃은 핀다

    매년 2월 마지막 토요일이면 우리 동네엔 겨울 동안 오지 않았던 꽃 트럭이 찾아온다. 꽃 트럭에는 다양한 관엽식물과 향기로운 허브, 집에서 재배하기 수월한 다육식물이 실려 있다. 나는 늘 이 꽃 트럭을 통해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트럭 안 푸른 잎들 사이에는 유일한 꽃 무리가 있는데, 바로 히아신스와 무스카리다. 이들은 추위가 다 가지 않은 이른 봄 우리를 맞아주는 봄의 알뿌리식물이다. 구근 혹은 알뿌리라고 부르는 이 식물들을 나는 유난히 좋아한다. 튤립, 히아신스, 크로커스, 수선화, 무스카리…. 모두 길고 긴 겨울을 지나야 비로소 볼 수 있는 귀엽고 이색적인 색의 식물들이다. 이들의 존재는 추운 겨울을 견딜 가치를 충분히 준다. 심지어 나는 이 알뿌리식물을 너무 좋아해 세계에서 가장 큰 알뿌리 축제인 네덜란드 쾨켄호프에 간 적도 몇 번 있다. 누군가 내게 이들의 매력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그저 ‘알뿌리이기 때문에 알뿌리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땅속에서 혹독한 겨울을 견딜 수 있는 것 그리고 이른 봄 그 어떤 식물보다 빨리 꽃을 피운다는 것 모두 이들이 비대한 알뿌리를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식물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이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다채로운 꽃색을 보았으면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다채로운 꽃색을 보았으면

    식물을 그리기 위해 처음으로 물감과 색연필을 샀던 날을 기억한다. 대학 학부 3학년 수목학 수업. 교수님께서 교정 나무를 그림으로 그려 도감을 만들라는 과제를 내셨고, 나는 수업이 끝나고 시내의 대형 서점에 가서 60색 색연필과 수채화 물감을 샀다. 나는 그렇게 식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학교 조경수인 은행나무, 진달래, 개나리부터 시간이 지나 학부를 졸업해 수목원에 들어가 우리나라 자생식물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릴 때까지도 그 물감과 색연필은 늘 나와 함께였고, 그렇게 그들은 모두 그림 속 식물이 됐다. 닳아 없어진 물감과 연필을 아쉬워하며 나는 수없이 새 물감을 사야 했다. 닳는 건 대체로 녹색 계열이었다. 식물 기관 중 잎 표면적이 가장 넓어서인지 연두색, 녹색 물감을 늘 새로 사야 했다. 녹색 다음으로는 가지와 수피의 색인 갈색, 그리고 노란색, 빨간색, 분홍색, 보라색 순이었다. 이것은 식물의 꽃과 열매 색이다. 그러나 나는 유난히 파란색은 잘 사지 않았다. 특히 쨍한 하늘색이나 초록과 파랑 사이의 민트색은 십년이 지나도록 처음 그대로의 모습이다. 속이 비어 쭈글쭈글해진 다른 물감들 사이에서 새것과 같은 푸른 계열의 물감을 보면서 산수국이나 솔체꽃과 같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겨울에 만나는 나무의 수피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겨울에 만나는 나무의 수피

    내 작업실 근처에는 수목원이 하나 있고, 도심에 사는 친구들은 나를 찾아올 때면 늘 수목원에 들러 산책을 한다. 이건 우리의 오랜 약속과 같다. 그런 친구들이 나를 보러 올 때에 꼭 묻는 게 있다. “어느 계절에 가면 제일 좋아?” 그러면 나는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좋다고 답한다. 그러나 겨울에는 전제를 단다. “식물 좋아하면 겨울도 좋고.” 식물에게는 특별히 관심이 없고 오직 나를 보러 오는 친구들에게 봄과 여름과 가을을 두고 겨울에 산책을 하자고는 차마 말하지 못해 나는 ‘식물을 좋아하면’이라는 전제를 단다. 그러나 이 말은 곧 식물을 좋아하는 나는 겨울 풍경을 매우 좋아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언뜻 겨울 풍경에선 아무것도 볼 것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 고유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관찰하기에 이만큼 좋은 계절도 없다. 자연스레 뻗은 나뭇가지의 선과 다채로운 색, 추위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겨울눈, 얼음을 이불 삼아 노란 풀잎들이 겨울 숲 풍경에 숨어 있다. 마치 우리 몸에는 심장과 뇌도 있지만 우리를 지탱하는 뼈와 혈관도, 최전방에서 나를 보호하는 피부도 있듯, 식물에게도 우리 눈에는 띄지 않지만 스스로를 지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나를 지키기 위한 가시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나를 지키기 위한 가시

    식물세밀화를 그린다는 건 햇빛이 드는 따뜻한 작업실 책상에 앉아 스케치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나는 오늘도 등산복에 등산화를 신고 구과들을 찾느라 산책로가 아닌 숲길을 걸어 다녔다. 지금 내 손가락에는 반창고도 붙어 있다. 며칠 전 해당화를 그리기 위해 열매를 채집하다 가시에 찔렸기 때문이다. 동료 식물 연구자들에게는 팔이나 손에 상처가 하나쯤 있다. 조사를 다니다 식물의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는 건 일상이다. 뾰족한 가지에 얼굴이 찢어져 꿰매거나 산에서 미끄러져 허리 디스크가 온 지인도 있다. 고충 없는 직업이 있겠는가만 아름다운 해당화가 가진 가시처럼 평화로운 식물 연구에도 이런 나름의 속내가 숨어 있다. 이런 이면을 두고 사람들은 ‘장미의 가시’와 같다고 말한다. 장미의 줄기 전반에 난 뾰족한 기관인 가시. 사실 장미는 내가 가시에 찔린 해당화와는 친척뻘이다. 이들이 속한 장미속은 대부분 몸 전체에 날카로운 가시를 지닌다. 특히 장미의 잎은 역사적으로 향수산업에 기여한 바가 가장 클 정도로 향기로운데, 이 향기로운 장미를 동물들이 가만히 둘 리 없다. 그래서 곤충이 꽃을 향해 줄기로 기어 오르지 못하도록 장미에 가시가 생겼다고 추측한다. 물론 장미 가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추운 밤이 지나면 생강나무에 꽃이 필 거예요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추운 밤이 지나면 생강나무에 꽃이 필 거예요

    새해가 밝았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해가 바뀌었음에도 새로운 시작의 느낌이 들지 않는 건 식물을 공부하면서부터였다. 나의 작업은 식물들이 새싹을 피우기 시작하는 3월이 돼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식물세밀화가의 시간은 식물의 시간을 따른다. 식물을 좇은 지난 10여년 동안 그 시간만큼 나는 식물에 한결 가까워지긴 한 것 같다. 오랜 친구들이 내게 “식물을 해서 그런지 식물과 점점 닮아 간다”는 말을 할 때면 나는 잘 모르겠다는 듯 “그런가?” 하면서도 어쩐지 기분이 좋다. 식물이 얼마나 강인하고 지혜로운 존재인지를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종이든, 식물과 닮고 싶다고 늘 생각한다. 식물은 스스로 이동할 수 없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맞춰 적응하고 살아가야 한다. 이런 식물이 인류보다도 오랜 시간 자리를 넓히며 살아올 수 있었던 건 나름의 생존 방식을 궁리해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존 방식은 식물종마다 모두 다르고, 다양한 방식이 존재했기에 끊임없이 지구에서 생존해 올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식물의 삶을 바라보며 내 삶의 태도와 자세 또한 배운다. 아마도 이건 어릴 때부터 예견됐던 것 같다. 식물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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