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아의 일상공감
  • [배민아의 일상공감] 그녀의 불편한 집

    [배민아의 일상공감] 그녀의 불편한 집

    네 번째 이사를 했다. 신혼 시절을 보낸 첫 번째 집은 여자의 로망으로 선택한 곳이었다. 결혼 전까지 주택에서만 살아 본 터라 무조건 아파트가 좋았다. 집을 꾸미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밤늦도록 쓸고 닦고, 이리저리 가구를 재배치하며 집 단장의 재미에 막 빠져들 때쯤 관리실을 통해 걸려온 민원 전화로 아파트에서는 진공청소기나 세탁기도 아무 때나 돌리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운 이후 아파트 생활 4년간 청소와 빨래는 최대한 몰아서 어쩌다 한 번씩 했다. 소음과는 상관없었던 설거지도 몰아서 했다. 두 번째 집은 작은 평수의 연립주택 1층이라 층간소음에 대한 걱정도 없었고, 거실 콘센트에 꽂은 청소기 전선이 방 구석구석까지 닿아 청소도 훨씬 수월했다. 그렇다고 청소를 자주 한 건 아니었다. 세 번째 집은 전원생활 붐이 일어나던 때쯤 이사한 경기도 한적한 산골 어귀의 주택이었다. 소음 걱정 없는 한적한 곳, 여기저기 늘어놓기 좋은 넓은 공간,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텃밭과 뒷산, 잔디 정원 등 부부가 편안하게 살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그리고 처음에는 몰랐다. 매스컴에 비친 아름다운 전원생활 이면에는 얼마나 많은 관리와 수고, 그리고 부지런함이 필요한
  • [배민아의 일상공감] 싸움의 달인

    [배민아의 일상공감] 싸움의 달인

    프리랜서로 일하는 특성상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둘은 각자의 사모임에도 부부 동반으로 참여해 주위에서 잉꼬부부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맞다. 자타가 공인하는 잉꼬부부. 둘의 모습은 딱 잉꼬다. 금실 좋은 부부의 상징으로 알려진 잉꼬는 짝이 없으면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타고, 한번 짝을 맺으면 오랫동안 변치 않는 관계를 유지하는 새이지만, 잉꼬처럼 극렬한 부부싸움을 하는 새도 드물다고 한다. 처음에는 부리로 쪼아 대다가 말리지 않으면 몸에 피를 내고 한쪽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고 하니 우리가 쉽게 생각했던 잉꼬의 반전 모습이다. 결혼 전에는 모든 것이 찰떡 궁합일 것 같았던 그들도 대개의 부부들이 그러하듯 서로 언쟁을 하고, 부질없는 감정 대립을 하며 싸움의 횟수가 잦아졌다.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성은 과학적인 근거가 미흡하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성격 유형이 유난히 딱 들어맞는 B형 여자, 그것도 트리플 B형 정도는 되는 듯한 여자와 본인은 극구 부인하지만 전형적인 A형의 성향을 지닌 남자의 싸움은 늘 답이 없다. 지극히 감정적인 여자와 대단히 이성적인 남자, 감정 대립이 있을 때 무조건 말로 풀자고 대드는 여자
  • [배민아의 일상공감] 그들이 여행하는 이유

    [배민아의 일상공감] 그들이 여행하는 이유

    그 시작은 6개월의 장기 휴가로부터였다. 꽉 채운 이십 년을 한 일터에서 근무했던 여자가 늦은 결혼을 한 후 일의 성과가 주는 즐거움 외에 또 다른 삶의 즐거움이 있다는 걸 만끽하며 지내던 어느 날, 남자가 슬슬 바람을 집어넣는다. 이십 년을 한 우물 파며 달려 왔으니 이제는 쉬엄쉬엄 가자고. 그랬다. 여자의 지난 이십 년은 대다수 젊은이들이 그렇듯 치열하고 긴박한, 말 그대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살아온 세월이었다. 엄마의 젖가슴을 벗어나 기초적인 사회생활인 유치원 시절부터의 이십 년과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의 이십 년을 그래프로 비교해 볼 때, 어린아이가 소녀로 자라 숙녀로 성장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수직 상승과 하향 곡선을 오르내리는 시간을 보냈다면 젊은 시절의 이십 년은 주어진 자리를 잘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를 처절하게 반복하며 소소한 물결 같은 수평선을 그리며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들이었다. 잠깐 쉬어 가자는 남자의 바람 같은 부추김은 결국 여자의 마음을 풍선처럼 부풀게 했고 결국 6개월의 장기 휴가를 얻어 훌훌 여행길에 올랐다. 경쟁에 처지지 않기 위한 내면의 치열함은 있었지만 반복된 출퇴근으로 특별나지 않은 일상을 따라가던 안정
  • [배민아의 일상공감] 달달쌉싸름한 그들의 허니문

    [배민아의 일상공감] 달달쌉싸름한 그들의 허니문

    꿀처럼 달달한 한 달(Moon)의 의미를 담고 있는 신혼 시절을 만끽하기에 둘만의 여행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양가 친지들과 지인들의 떠들썩한 축하와 축복을 받은 결혼식 직후에 오붓하게 여행을 떠나 둘만의 사랑과 다짐을 공고히 한 후 온전한 ‘한몸’이 되어 돌아오라는 것이 신혼여행이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 결혼에까지 골인한 둘이 허니문 여행을 준비한다.업무와 관련한 해외 세미나나 짧은 휴가를 이용한 패키지 여행 몇 번이 고작이었던 여자는 배낭여행에 능숙한 남자가 하나씩 직접 챙기는 신혼여행 준비부터가 설렘 그 자체였다. 지금은 자유여행 정보가 인터넷에 넘쳐나고 스마트한 기기와 앱들로 항공권 예약뿐 아니라 현지의 길찾기나 맛집 정보 검색, 각종 할인 티켓 구매나 통역까지도 쉽게 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불과 십여년 전만 해도 자유여행자들의 손에는 두꺼운 여행 책자와 펼쳐 보는 지도가 기본이었던 시절이었으니 무려 세 나라를 열흘간 여행하는 일정을 세워 놓고 세부 일정과 예약을 스스로 준비하는 남자의 모습은 여자에게 그저 신기한 세상이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직항보다는 타국을 경유하는 항공권을 구매한 뒤 경유지 체류 일정을 연장해 또 하나의 여행
  • [배민아의 일상공감] 닮은 사람을 만나다

    [배민아의 일상공감] 닮은 사람을 만나다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 적령기를 훌쩍 보내 버린, 자존심 강하고 도도한 여자는 주변의 염려 섞인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자칭 골드미스를 십분 즐기는 중이라고 애써 위로하며 지내던 어느 해 여름, 예정했던 일행들의 불가피한 취소로 뜻하지 않게 혼자만의 휴가를 떠났다. 주어진 일상만을 충실히 반복하며 삶의 반경과 사고방식이 비슷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살아왔던 여자는 우연찮게 얻은 나홀로 여행을 그동안의 생활과는 조금 다른, 소소한 일탈의 기회로 삼고 싶었다. 처음 찾는 낯선 곳에서 여자 역시 다른 사람처럼 행동해 보고 싶었고, 익숙하지 않은 완전히 색다른 경험을 꿈꾸었다. N극과 S극이 서로 강하게 끌어당기듯이 낯설고 다름의 연속인 여행지에서의 경험과 만남은 모든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 가운데 우연히 만난 한 남자와 통성명도, 나이도 묻지 않고 여행 친구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후 둘은 일상이 무료할 때 가끔씩 만나 달라도 너무도 다르게 살아온 서로의 경험들을 나누며 그동안 자기 영역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들려주고 보여 줬다. 정해진 일상에서 벗어나지 않고 똑같은 스케줄을 반복하며 사는 것이 가장 성실한 생활 태도이자 최선의 삶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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