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인류의 보편적 가치… ‘자유·평등·인권·법치’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인류의 보편적 가치… ‘자유·평등·인권·법치’

    3·1운동 3·1정신의 기반 위에 세워진 우리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향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국가다. 3·1운동 3·1정신이 만들어 낸 3·1이념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이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은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는 한번도 갖지 못한 그 특유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지금까지 그 가치를 실현하고 성취하려 꾸준히 노력해 왔다. 그래서 이만큼의 성공한 국가를 만들어 냈다.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은 이 자유민주주의로 성공한 국가이다. 세계 많은 나라가 부러워하는 국가이고, 가 보고 싶은 국가이고, 가서 살아 봤으면 하는 국가이다. 2차 대전 이후 신생한 그 많은 국가들 중 산업화도 성공하고 민주화도 성공한 유일한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이러한 성공은 오로지 자유민주주의가 갖는 다음 4개의 가치를 실현하려 끊임없이 다짐하고 노력해온 결실이다. 이 4개의 가치를 실현하는 ‘가치국가’의 건설이 지금까지 우리 대한민국의 목표였을 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 우리 자손들 대대손손의 목표며 이상이다. 이 4개의 가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만의 것이 아니라 이 지구상의 인류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영원히 꺼질 수 없는 위대한 정신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영원히 꺼질 수 없는 위대한 정신

    오늘날 이 역동적(力動的) 한국 사회의 창출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한국 사회의 이 역동적-다이너미즘(dynamism)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안전사고가 속출하지만. 그것은 한국 사회의 다이너미즘이 안전사고 대비 속도를 늘 넘어서고 있다는 증거다. 아무리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안전대비책을 세워도 사회 역동성의 속도, 역동성과의 큰 폭을 줄이지 않는 한 안전사고는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이 역동성은 어디서 나왔을까. 그 기원은 어디일까. 미상불 3·1운동이 그 기원이고. 3·1운동 때까지 올라가서 보아야 이 역동성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든 그 당시의 단면으로는 그 시대의 시대상 그 시대의 진정한 특징을 알 수가 없다. 그 시대가 시작되는 시원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아야 그 시대로 이어져 오는 생태를 알 수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3·1운동이 일어났던 근 한 세기 전의 한국 사회와는 아예 비교가 되지 않는다. 3·1운동 때의 우리 사회와 지금의 우리 사회는 구조와 기능면에서 그 차이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다. 생활양식은 물론 사고방식이며 행위유형에서 3·1운동을 일으킨 우리 선인(先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새 한국 사회 탄생시킨 3·1 운동… 그 불멸의 위대함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새 한국 사회 탄생시킨 3·1 운동… 그 불멸의 위대함

    1919년의 3·1운동은 우리 현대사의 시작이다. 그것은 역사학자가 말하는 우리의 현대사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말하는 우리의 현대사다. 한국 사회가 보는 한국의 현대사는 근대사 없는 현대사다. 근대사는 중세사회의 종말로부터 시작된다. 중세사회의 특징은 자아(自我) 개념이 없는 것이다. 요사이 식으로 말하면 셀프(self) 개념이 없는 사회다. 물론 민족 개념도 없고, 내 나라 의식인 자국(自國) 개념도 없다. 자국 개념이 없는 것만큼 자기 문화에 대한 정체성 개념도 없다. 일제의 침탈과 합방 이전의 조선 사회는 바로 그 중세사회였다. 조선 왕조는 그 숨이 끝날 때까지 근대사회의 여명(黎明)이 없었다. 여명은 날이 밝아 오는 무렵의 희미한 빛이다. 희미한 빛조차 보이지 않은 채 조선 왕조는 끝났다.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조선과 달리 실제의 조선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계속 거꾸로 돌리고 있었다. 그 전형적 예가 위정척사(衛正斥邪)다. 위정척사는 소(小)중화(中華)를 지향하는 사상이며 주창이다. 위정의 정(正)은 유교이며 중국의 문화다. 척사의 사(邪)는 서구의 문물이며 사상이다. 유교며 중국의 문화는 옳고 바른 것으로 굳게 지켜야 하고, 서구의 문물이며 사상은 사악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권력·재산·위신, 셋 중 하나만 가져야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권력·재산·위신, 셋 중 하나만 가져야

    삼권분립(三權分立)은 근대국가의 특징이다. 역사상 근대는 솥(鼎)의 다리처럼 권력이 3개로 나누어지는 데서 시작한다. 단순히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져서 각기 독립적 기능(function)을 하면서 전체적으로는 하나로 작동하는 ‘응집된 전체’(cohesive whole)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사고를 했을까. 동양에서는 권력은 나누어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늘에 해가 둘이 아니듯이’가 그 상징적 표현이며 사고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아직도 ‘근대’가 아니다. 그러나 이 근대를 연 서양인들은 법을 만드는 권한, 법을 시행하는 권한, 법에 따라 재판하는 권한―국가 권력을 이 세 가지로 나눠 본 것이다. 국가기구도 이 세 가지 나눔에 맞춰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로 분리했다. 그 막강한 국가 권력이며 국가기구를 이 세 가지로 분립한 것이야말로 정치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3권 분립이 이뤄짐으로써 비로소 권력에 대한 견제가 가능했다. 견제 없는 권력은 예외 없이 절대 권력이 된다. 이 절대 권력을 3권 분립이 막는 것이다. 그만큼 3권 분립은 ‘엄청난’ 사상적 혁명이고, 제도적 발전이고, 그리고 ‘엄청난’ 인권적 성취다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유산을 남긴다. 특히 한국 부모들이 그러하다. 하다못해 숟가락 하나라도 전해 주고 싶어 한다. 그것이 한국 부모들의 마음이다. 이러한 한국 부모들의 유산상속 행위에 서구인들은 토큰상속(token heritage)이라는 재미있는 말을 붙인다. 재산을 흩지 않고 한쪽으로 몰아주는 서구인들이나 일본인들과 달리 한국 부모들은 예부터 장자든 차자든 자식이면 빠트리지 않고 재산을 나눠 줬다. 물론 균등하게는 아니라 해도 많이 주든 적게 주든 나눠 주는 관례 때문에 가난한 집의 여러 형제들은 겨우 토큰 하나 받는 정도의 유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유산 중에서 최고의 유산은 무엇일까. 재산일까 권력일까. 재산은 많든 적든 유산으로 쉽게 남겨 줄 수 있는데, 권력은 어떻게 세습화될 수 있는가. 재산과 달리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 세습화란 상상할 수가 없다.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중동 아랍권이나 북한 그리고 현대 중국의 혁명 2세대처럼 지금도 권력이 재산처럼 세습되는 나라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권력 세습화는 전통사회에서 보는 양반 상놈 하는 신분(身分)을 통해서였다. 신분은 계급과 달리 획득하기도 어렵지만 한 번 획득하면 잃기도 어렵다. 양반은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최상의 명예는 어디서 오는가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최상의 명예는 어디서 오는가

    아주 중요한 가치임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별로 익숙지 않은 말이 있다. 바로 위신(威信)이다. 위신은 영어로 ‘prestige’라 하는데, 한때 우리나라 사회학자들은 이를 위세(威勢)라 번역해 썼다. 위세는 위압(威壓)과 권세(權勢)의 준말로 prestige와는 거리가 먼 말이다. prestige는 위엄과 신망 혹은 권위와 덕망을 나타내는 우리말의 위신에 오차 없이 그대로 해당되는 말이다. 우리말에서 위신은 오래전부터 써오긴 했지만 일상 생활상의 용어였고 권력·재산과 대등한 위치에 있는 희소가치라는 개념은 없었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진작부터 권력(power), 재산(property)과 함께 위신(prestige)을 3p의 하나로 해서 사람이면 누구나 예외 없이 추구하는 사회적 희소가치로 생각해 왔다. 권력과 재산은 공기나 물처럼 그 양이 풍부하지 않음으로써 희소가치가 있다. 더구나 다른 누군가가 차지하면 내 권력, 내 재산은 싹 줄어든다. 그래서 권력과 재산은 언제나 사회적 쟁투를 유발하는 희소성을 띈다. 그렇다면 위신도 그러한가이다. 권력·재산에 비교될 만큼 사람들이 모두 열렬히 추구하는 희소가치냐이다. 권력과 재산은 갖지 못하거나 적게 가지면 불평하고
  •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도덕적 수범’으로 국민 은혜에 보답하라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도덕적 수범’으로 국민 은혜에 보답하라

    선진국은 어째서 선진국인가. 선진국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모두들 앞선 경제를 생각한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잘살아야 한다. 국민소득이 낮고도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 하지만 경제 이전의 것이 있다. 경제는 선진국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 필요·충분조건이 넓게는 그 나라의 상층, 좁게는 그 나라 고위직층에 대한 국민의 존경이다. 그 조건이 선진경제의 바탕이고 선진사회의 동력이다. 고위직층에 대한 존경은 어디서 오는가. 고위직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바로 ‘도덕과 희생’에서 온다. 무엇이 도덕적 행동이며 무엇이 희생적 행동인가는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다 안다. 먼저 그들이 왜 도덕적 행동을 해야 하는지, 도덕 윤리에 벗어난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지,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다. 누구나 다 그들의 행동을 보고 누구나 다 그들의 잘잘못을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孔子)는 이를 견일월지식(見日月之食)이라 해서 누구나 일식 월식을 보듯이, 윗사람의 잘잘못은 누구나 세세히 본다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의 잘못은 그 집안, 친척, 이웃이나 알고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윗사람들의 잘못은 신문이나 방송이 없던 옛날에도 다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박탈감의 근원지이자 치료제, 運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박탈감의 근원지이자 치료제, 運

    운(運)이란 무엇일까. 운을 사회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왜 어떤 사람은 부자로 잘살고 어떤 사람은 가난뱅이로 사는가. 그것을 오로지 능력의 차이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능력이 남보다 나으면서도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능력만으로 보면 남보다 나을 것이 없는데도 잘사는 사람이 있다. 같은 현상이 지위의 높고 낮음에도 나타난다. 같이 출발한 동료 중에서 능력이 남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먼저 승진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능력상으로는 별로다 하는 사람이 반드시 뒤로 처지는 것도 아니다. ‘특혜와 책임’이라는 책을 쓰면서, 그리고 지난 회의 뉴리치 뉴하이를 올드 리치 올드 하이와 비교하면서, 특혜를 받아들이는 우리와 서구 간의 가장 큰 인식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데, 그것이 바로 ‘운’이라고 말한다면, 아니 보다 정확히는 운이 차지하는 부분이 능력에 못지않게 크다고 말한다면,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 중 이를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물론 조선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쓴 말 중 하나가 운수 탓으로 돌리는 운수소관(運數所關)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도 옛날에는 그랬던 것 같다. 미국 사회학과 교육학 책에 자주 인용되는 피터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3만’에 흔들리는 뿌리 얕은 나무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3만’에 흔들리는 뿌리 얕은 나무

    뉴 리치 뉴 하이라 하면 자동적으로 올드 리치 올드 하이를 생각한다. 뉴(new)가 있어 올드(old)가 있고, 올드가 있어 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뉴와 올드는 역사에서 과거와 현재처럼 하나가 가면 다른 하나가 오는 순차(順次) 관계가 아니라 나란히 존재하고 나란히 서는 병존(竝存) 병렬(竝列)하는 관계다. 시차가 있다 해도 뉴 있는 곳에 올드가 있고 올드 있는 곳에 뉴가 있다. 그래서 뉴와 올드는 서로 대비(對比)되고, 서로 차별화된다. 뉴와 올드의 구분 시점은 대개 할아버지 대(代)다. 아버지가 어떻게 크나큰 부(富)의 성(城)을 쌓고, 높으나 높은 지위의 탑(塔)에 오르는지 아들은 아버지를 보아서 잘 안다. 물론 아들인 내 대(代)에 와서 그 부와 지위에 이르렀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그 위 할아버지들이 어떻게 그 성과 탑에 이르렀는지는 지금의 나는 알 수가 없다. 모두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드는 누대(代)라 하고 뉴는 당대(當代)라 한다. 주목할 것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공통적으로 누대 상층인 올드는 높이고 당대 상층인 뉴는 낮춰 보는 것이다. 올드는 자기 능력이나 노력보다는 선대로부터 그야말
  •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특권만 누린 상층의 민낯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특권만 누린 상층의 민낯

    한국에 상층이 있는가. 이렇게 물으면 모두들 의아해할 것이다. 상층이 없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에 ‘구조화된 상층’이 있는가 물으면, 그건 또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 것이다. ‘구조화’(構造化)는 그 얼개가 잘 짜여져서 오래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10년, 20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수십 년 혹은 수수 세대를 가는 것을 이른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는 상층은 있는데 ‘구조화’된 상층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시각에 따라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상층의 구조화’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나 일본 서구 같은 상층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지난 세기 1900년대 이래 100년이 훨씬 넘는 동안 한국 사회는 그 어떤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격동의 1세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이 격동의 1세기는 사회 구조가 밑뿌리째 바뀌는 가장 과격(radical)하고도 가장 급격(sudden)한 1세기였다. 그 변화의 과격성과 급격성은 해마다 반복되는 우리 사회의 시위대가 잘 말해 준다. 어느 사회 없이 상층은 그 사회의 가장 중요한 희소가치를 점유한 사람들이다. 그 희소가치는 재산(property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특혜받은 자들의 책임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특혜받은 자들의 책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사이먼 쿠즈네츠 교수가 오래전에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중진국에서 선진국 문턱을 넘어가는 데는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넘기 어려운 함정은 국민의식의 전환이다. 많은 나라가 선진국 바로 문 앞에서 주저앉고 만 것은 이 국민의식 전환의 실패 때문이다.” 이 말은 지금 바로 우리에게도 해당이 된다. 우리의 국민의식 전환 혹은 개조운동은 1910년 한일합병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계속돼서, 1920년대 초에는 말썽 많았던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의 ‘민족 개조론’까지도 나왔다. 지난 세기 48년 건국 후와 50년대와 60년대도 계속되다가 새마을운동에 이르렀다. 어느 시대든 역사의 동력은 국민의식의 전환에서 찾는다. 그러나 국민의식의 전환은 쿠츠네츠의 말처럼 참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다. 이제 우리의 역사동력은 일반 국민의 의식 전환보다 우리 사회 고위직층의 의식 전환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이 고위직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우리는 흔히 헌법을 바꾸고 유능한 정부와 유능한 정치인이 나서 협치(協治)를 잘하면 새 나라 새 역사가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이 시대는 정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엄청난 대한민국’의 本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엄청난 대한민국’의 本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가 집필하는 특별기획연재 ‘나, 우리, 대한민국’이 오늘부터 격주로 목요일자에 게재된다. 송 교수는 최근 저작을 통해 한 시대를 이끄는 역사의 동력은 무엇인가를 분석했다. 노 사회학자인 그는 한국 사회의 변화와 변혁을 가져오는 힘이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물리력에 기초한 강력한 리더십’이었다면 민주화 이후의 시대에서는 사회의 상층부를 구성하는 지도층의 책임 의식, 희생정신과 실천,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보았다. 송 교수의 특별기획연재는 첫 회의 ‘아, 우리 대한민국’처럼 작은 제목의 주제로 이어 나가며 앞으로 1년간 연재될 예정이다. 송 교수는 일련의 연재를 통해 한국 사회의 상층은 누구이며 급격한 경제발전에 따라 형성된 ‘뉴리치 뉴하이’의 실체를 분석하고 이들의 특혜와 책임을 따져 그들을 깨우쳐 줄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역사에 있어 한 시대의 부침과 그 사회의 변동과 융성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양극화로 치닫는 오늘의 한국 사회를 치유하는 방안도 제시할 예정이다. 늘 역사와 시대의 리얼리티와 그 속의 진실을 직시하고 날카롭게 분석하며 독특하고 재미나는 스토리를 엮어 나가는 송 교수의 연재물이 독자 여러분의 기대를 충족시킬 것으로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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