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삼의 벅차오름
  • 무기력한 나날… “당신은 나를 일으켜 산 정상에 오르게 해줘요”[강동삼의 벅차오름]

    무기력한 나날… “당신은 나를 일으켜 산 정상에 오르게 해줘요”[강동삼의 벅차오름]

    코로나19 백신접종 후유증인지 아니면 4050에게 갑작스레 찾아오는 심근경색 때문인지(전자라고 의심들지만 입증하긴 힘든) 2년 전 가을 이맘때쯤 퇴근길에 가슴을 움켜쥐고 주저 앉았다. 밤새 고통 속에 지새우고 난 다음날 신촌 S대병원에 가 진료를 받았다. “조금만 늦었어도… ”. 비극의 드라마 한 장면에 나오는 대사처럼 의사가 “당장 수술(심장 스탠스 시술)을 해야” 한단다. 시술을 마친 다음날 병실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누워 있는데, 불현듯 ‘아, 이렇게 유서·유언조차 남기지 못한 채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말 그대로 ‘인생무상’했다. 처음엔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는 환자처럼 멍했다. 주변에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는 듯. 그냥 물이 흐르는대로 살아가리라 하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졌다. 가장이니까 버티며 살아야지 하는 마음 뿐이었다. 돈도, 명예도 소용 없었다.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와 함께 삶을 뒤돌아보며 회한과 실의에 빠졌다. #액티브하게 혼자있는 시간은 걷기… ‘무기력이 무기력해지도록’ 걷고 또 걷는다 슬픔도 고통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위안할 수 있는 게 전부였던 나날, 의지하게 된 곳이
  • To. 지미봉에게…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처럼 너에게 편지를 써[강동삼의 벅차오름]

    To. 지미봉에게…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처럼 너에게 편지를 써[강동삼의 벅차오름]

    TO. ‘그리운 친구에게’로 시작되는 편지를 쓰고 싶다. 이메일이 아닌 손 편지를 쓰고 싶다. 빨간우체통까지 그 편지가 갈 지는 모르겠으나 편지를 써본 지 너무 오래됐다. 불현듯 내 손글씨가 좋았었나 가물거릴 정도로 오래됐다. 낯설다. 하지만, 정말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라는 동물원(김광석)의 노래처럼 종달리 바다에게, 지미 오름에게라도 편지를 쓰고 싶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 나오는 한 내용같은…. ‘보드랍고 대지 같고 자그마하고 동그랗고 투명하고/당신은 초승달이요 사과나무 길입니다./벌거벗은 당신은 밀 이삭처럼 가냘픕니다/벌거벗은 당신은 쿠바의 저녁처럼 푸릅니다/당신 머릿곁에는 메꽃과 별이 빛납니다/벌거벗은 당신은 거대하고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라는 편지를 쓴 ‘우편배달부’를 흉내낼 순 없지만, 정말 종달리의 잔잔한 바다에 편지를 띄우고 싶은 날이다. # 올레길 마지막 21코스… 호락호락하게 보았다가는 가파른 계단에 혼쭐 TO. 보고싶은 지미 봉에게. 안녕? 넌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정류장에서 광치기 해변까지 이어지는 제주 올레 1코스(15.1㎞)와 해녀박물관~구좌읍 종달바당까지 이어지는 1
  • ‘너를 기다리는 동안’… 한국의 나폴리 서귀포 바다와 사랑에 빠지다[강동삼의 벅차오름]

    ‘너를 기다리는 동안’… 한국의 나폴리 서귀포 바다와 사랑에 빠지다[강동삼의 벅차오름]

    # 이탈리아 나폴리와도 바꾸지 않을 아름다운 바다 서귀포 영국사람들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토머스 칼라일)’고 자랑스럽게 말하듯, 서귀포사람(서귀피안)들은 서귀포 앞바다를 이탈리아의 나폴리와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한국의 나폴리 서귀포 바다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보석처럼 빛나는 바다다. 서귀포 삼매봉을 지날때쯤 펼쳐지는 코발트빛 바다 위에 떠 있는 범섬, 문섬, 그리고 섶섬은 1985년 당시 인기있던 노래 윤수일의 ‘환상의 섬’ 그 자체다. 눈앞에 그 환상의 섬이 펼쳐지면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은 아닐까 생각든다. 너무나 아름다워 마음마저 행복해질 정도다. 노래가사 처럼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찾은 그 섬엔/문명이 할퀴고 간 초라한 그 모습’일 수도 있지만, 서귀포 앞바다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그 모습 그대로여서 안도하고 그 변함없음에 경탄하게 된다. 어릴 적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변함없는 모습일 때 더 반가운 것과 같은거다. 주름이 생기고 살이 찌고 머리가 희끗희끗해졌지만, 성형하지 않은 옛 모습 그대로일 때의 그 익숙한 아름다움이다. 사람은 낯섦보다 익숙함에 더 끌린다
  • 가까이 있어도 너무 먼… 당신을 만나고 오는 길[강동삼의 벅차오름]

    가까이 있어도 너무 먼… 당신을 만나고 오는 길[강동삼의 벅차오름]

    한·가·위. 개인적인, 아주 개인적인 견해지만, 이 단어의 어감은 ‘충만함’ 보다 ‘외로움’이란 느낌이 강하다. 이별한 사람이 그리워지는 계절이어서 그런걸까. 이별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계절이 문 앞에 서 있다. 이맘 때면 어김없이 한라산 가는 길에 내려 앉은 양지공원에는 이별한 사람들로 붐빈다. 검은 정장을 하고 검정 넥타이를 매고 술 한 병, 사과 하나 든 검정 비닐봉지와 고인이 좋아하던 다방커피 한 잔을 든 남자도 거기 무리들 속에 끼어 있는다. 때론 아픔도 희미해진다. 시간이 모든 것을 달래준다. 마치 기억의 저장 창고에, 똑같은 규격으로, 똑같은 무게로, 짜맞춰진 상자 속에 편지 한 장 정도의 무게로 아주 가볍게 봉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아마도 시간의 묘약 때문이리라. # 오르는 오름 아닌, 내려가는 오름 소산오름… 편백나무 숲길에서 ‘어싱’하면서 치유하는 사람들 추석 연휴 차례를 지내고 이별한 가족을 만나고 난 후라면, 근처 소산오름(제주시 아라일동 산 37-1)에서 잠깐 휴식을 청해보는 건 어떨까. 훌훌 털고 일상으로 돌아가기에 이보다 제격인 오름도 드물다. 이 오름은 오를 필요조차 없다. 정상 어귀에 주차장이 있어 오르는 오름이 아
  • 몽생미셸 바닷가보다 처연한 ‘물결 우는 오름’… 이별은 연습해도 익숙하지 않다[강동삼의 벅차오름]

    몽생미셸 바닷가보다 처연한 ‘물결 우는 오름’… 이별은 연습해도 익숙하지 않다[강동삼의 벅차오름]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페이지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난 돌아가고 싶은 페이지가 없다. 재회하고 싶지 않은 추억들 뿐이다. 잊고 싶은 날들 뿐이다. 고통스럽고, 지우고 싶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 뿐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걸으멍, 쉬멍, 놀멍 가다보면, 그 옆으로 보이는 풍광보다 뒤돌아 볼 때의 뒷모습이 처연할 정도로 시리고 아름답다. 송악산에서 휙~하고 뒤돌아보라. 그 언덕에 올라 마치 잊고 있다가 불현듯 생각난 듯 뒤돌아 보라. 당신의 지친 영혼을 맑게 해줄 아름다운 뒷모습에 빠지고 만다. 가보지 못한, 가보고 싶은, 영화 ‘라스트 콘서트’(1976년 루이지 코지 감독 作)에 나오는,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 수도원의 그 바닷가만큼, ‘스텔라에게 바치는 사랑’ OST만큼 처연한 아름다움이 현기증나게 한다. # 흠뻑 젖은 가슴을 햇빛에 말리지 않으면 안되는… 상실의 시대에 만난 송악산 10년 전 송악산 둘레길을 걸을 때, 내 삶엔 ‘너그러움’이란 없었다. 갑작스레 가족과 이별한 사람은 써 내려가던 노트의 한 페이지를 넘길 수 없다. 한마디로 ‘상실의 시대’였다. 파블로 네루다(1904.7.
  •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철 지난 바다가 그리웠다[강동삼의 벅차오름]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철 지난 바다가 그리웠다[강동삼의 벅차오름]

    ‘내 귀는 소라껍질/파도 소리를 그리워한다 ’ ( Qui aime le bruit de la mer/Mon Oreille est un coquillage). 영화 ‘인셉션’(2010년작·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서 흘러나오던 그 유명한 곡 ‘아니요,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ien)를 부른 프랑스의 전설적인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1915.12.19~1963.10.11)가 사망하자 그 충격(심장마비)으로 숨을 거뒀다는 프랑스 시인 장 콕토(1889.7.5~1963.10.11). 그의 짧은 시 ‘귀’처럼 몸이 먼저 파도소리를 기억하는 듯 반응하기 시작했다. 함덕 바다는 우윳빛이 감도는 블루다. 한여름, 산(오름)을 오르기 위해 함덕으로 간 건 아니다. 바다를 보기 위해 산으로 갔다. 바다를 만나기 위해 산을 오르는 사람이 또 있을까. 작열하는 태양이 숨막히는 여름엔 얼마든지 가능하다. 함덕 바다의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 서우봉으로 향한다. 어떤 모습인지 보기 위해. 서우봉에 오르는 언덕에서 자꾸만 함덕 바다로 시선이 옮겨가고 또 옮겨간다. 마치 서우봉을 오르기 전에 바닷가에서 만난 ‘팬덤4’ 드론이 된 듯, 함덕의 해변을
  • ‘시네마천국’ 토토가 보는 ‘키스신 필름’ 처럼… 진정성에 가슴 뭉클했다[강동삼의 벅차오름]

    ‘시네마천국’ 토토가 보는 ‘키스신 필름’ 처럼… 진정성에 가슴 뭉클했다[강동삼의 벅차오름]

    처음 보는 사람과 악수를 하는 순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떤 신뢰의 감정을 느낀 적이 있나요. 상대방의 손이 따스한 것도 아닌데, 그 손이 특별난 것도 아닌데, 선거유세 나선 의원들처럼 힘주어 상대방에게 어필한 것도 아닌데, 평범한 손에서 전해져 오는 어떤 진정성에 감동한 적이 있나요. #진정성 있는 악수를 했던 그날처럼… 알프레도가 토토의 얼굴에 화상입은 손을 댔을 때처럼… 마치 어릴 때 병치레가 잦은 아들이 어머니 품에 안겼을 때 느끼는 안도감과 닮았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받았던 상처마저 치유되는 느낌이다. 그 사람의 손에서 전해져 오는, 어떤 진실한 마음이 마치 내마음을 어루만져 준듯, 그만 진짜 ‘사람같은 사람’을 만난 듯 벅찬 감동이었다. 어느날 같은 출입처 기자들과 점심 먹다가 느닷없이 영화 ‘시네마천국’ 얘기가 나왔을 때 비슷한 감정과 추억에 사로잡혔던 것 처럼, 그 ‘시네마천국’(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1990년 개봉작)의 소년 토토(살바토레 카스치오)를 만났을 때 처럼 찌릿했다. 알프레도(필립 느와레)가 어린 토토의 얼굴에 화상입은 손을 갖다 댔을 때처럼 무한한 애정을 느꼈다. “눈을 잃고 나니 더 잘 보인다”면서 여기를 떠나라고 말
  •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강동삼의 벅차오름]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강동삼의 벅차오름]

    FM라디오가 유일한 낙이었던 시절, 아주 오랫동안 ‘김세원의 가정음악실’에서 가끔 시낭송을 하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하곤 했다. DJ 김세원은 언제나 굵고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생소한 시들을 소개했다. 장 클로드 보렐리 ‘바다의 협주곡(Le Concerto de la Mer)’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면 감성충전 끝. 나를 곧바로 1980년대로 돌려보낸다. 마치 당시 상황과 잘 맞아떨어지는 시그널 음악같은 느낌이다. 물찻오름을 가는 길은 불현듯, 김세원이 낭송하는 정호승 시인의 ‘미안하다’ 시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미안하다. #15년간 휴식년제… 일년에 딱 한번 한시적인 개방, 그날 난 물찻오름으로 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오름은 몰라도 그 오름으로 가는 사려니숲길은 다 안다. 사려니숲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다. 그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물찻오름이 있다. 15년동안 쉬고(자연휴식년제) 있었는데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보고싶은 걸 어쩌겠니. 제주도
  • 가끔은 럭셔리하게… 경로를 이탈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강동삼의 벅차오름]

    가끔은 럭셔리하게… 경로를 이탈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강동삼의 벅차오름]

    우연히 어느 국회의원과 스치며 명함을 주고 받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메일 한통이 전송됐다. 그가 이메일을 보내지 않았다면 조금 더 늦게 그의 부고와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학창시절 밑줄까지 그어가면서 읽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민음사)의 작가 밀란 쿤데라(1929.4.1~2023.7.12). 프랑스로 망명한 체코 출신인 그는 지난 12일 향년 94세 일기로 세상과 작별했다. 1968년 민주화운동의 ‘프라하의 봄’에 참여했던 쿤데라는 책들을 빼앗기고 심지어 체코의 국적을 박탈당하기도 했었다. 그는 2019년 90세가 돼서야 국적을 회복했다. L의원은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무심결에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 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한 구절을 발췌해 보내왔다. 무심코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불현듯, 오늘 하루는 재즈같은 삶을 살아보고 싶어진다. 누군가 그랬다. 재즈선율에 실린 트럼펫 소리가 가슴을 후벼오기 시작하면 나이 들었다고. 그래서 은퇴하면 남자들이 트럼펫을 배우러 다니는 걸까. #2년 4개월간의 긴 휴식년을 보내고 다시 돌아온 용눈이오름…그러나 절반만 모습을 보여준 까닭은 2년 4개월여
  •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섬속의 섬’에 살고 싶어졌다[강동삼의 벅차오름]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섬속의 섬’에 살고 싶어졌다[강동삼의 벅차오름]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관광객들이 제주 섬(JEJU ISLAND)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은 어디일까. 아마도 이생진 시인의 시(詩)처럼 ‘동쪽에는 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 유독 이곳에서만 해가 솟는다고 부산 피우며 달려가는 곳, 푸른색 이외에는 손을 대지 않는 곳, 바람이 심한 날은 제비처럼 사투리로 말하는 곳,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까운 곳,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는 곳, 바다가 술에 더 약한 곳’ 성·산·포는 아닐까. 기왕 성산포에 갔다면 우도 한바퀴를 돌고 오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제 다시 오나’ 하는 마음으로 우도행 배에 몸을 싣게 된다. 그 섬 속의 섬, 새벽을 여는 섬, 우도에 가면 바로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우도방문을 환영하는 글과 조우한다. #삼발이를 타고 시계방향으로 한바퀴… 우도팔경 보는 재미 쏠쏠… 살고 싶어졌다 우도 천진항(왕복요금 1만 500원)까지는 약 15분. 내리면 청정 섬을 위한 교통수단인 ‘삼발이’ 자전거를 빌리게 마련이다. 우도에 가면 그 앙증맞은 ‘삼발이’를 시계방향으로 한바퀴를 여행하는 게 정해진 코스다. 삼발이를 타고 시계 반대방향
  • 4468명 품은 거문오름… 세상에 태어나 녹슬어가는게 아름답다[강동삼의 벅차오름]

    4468명 품은 거문오름… 세상에 태어나 녹슬어가는게 아름답다[강동삼의 벅차오름]

    존 웨이트(John waite)의 ‘missing you’의 가사는 역설적이다. ‘난 당신을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누군가를 너무나 그리워 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두번째 만남이지만, 거문오름이 너무 보고 싶었다. 아마도 일년에 딱 한번만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발 끈을 단단히 조여매고, 등산용 카고바지를 입고, 블랙 브이넥 언더셔츠 위에 아웃도어 점퍼까지 걸치고 길을 나선다. 누가봐도 오버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패랭이보다 더 큰 햇빛 차단용 챙모자를 눌러쓰고, ‘태양이 피곤해지기 전’에 일찍 길을 나선다.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길처럼 약간 들 뜬 마음인데 애써 숨긴다. 들통나지 않으려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다. #일년에 딱 한번 5일간 열리는 비밀의 숲…“missing you”라고 솔직히 말하련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가 2023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 국제트레킹 행사를 지난 15일부터 딱 5일간만 열고 있었다. 일년에 딱 한번있는 일. 그래서 더 더욱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떤다. 오전 8시 30분부터 개방하는데 무려 1시간 가까이 일찍 도착했다. 짬을 내 세계유산본부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기념 조형물들과 조우한다. 세계자연유산
  • ‘잃어버린 낙원 무인도’ 차귀도… 화산학의 교과서로 떠나는 여행[강동삼의 벅차오름]

    ‘잃어버린 낙원 무인도’ 차귀도… 화산학의 교과서로 떠나는 여행[강동삼의 벅차오름]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 소설에서 나오는 대사처럼 “핸드브레이크를 채우고 사는 기분”이 들때가 있다. 잔뜩 긴장하고 몸에 힘이 들어가 있는 상태여서 마치 물 먹은 스펀지처럼 축 처진다. 그럴 땐 정말 자신에게 휴가를 줘야 한다. ‘화산학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수월봉 지질트레일을 떠나는 날. ‘비움’이 없으니 마음은 ‘맑음’이 아니라 ‘흐림’이었다. # 수월봉 지질트레일… 한경면 고산리에서 2㎞ 떨어진 무인도 차귀도 입성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제주시 한경면 수월봉(천연기념물 제513호)과 차귀도(천연기념물 제422호)일대에서 펼쳐진 수월봉 지질트레일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27일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선 참이었다. 고산평야를 지나 차귀도 선착장 행사장에는 일부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며 행사를 준비하고 있어 너무 일찍 왔나 싶었다. 한치를 말리는 부둣가 상인들과 어촌의 풍경을 멀뚱하게 쳐다본다. 높이 77m의 수월봉은 승용차로 금세 도착하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에 들르기로 하고 시간을 일부러 내지 않으면 가기 힘든 차귀도 지질 트레일을 할 참이다. 오전 9시 30분 배를 탈 예정인데 정확히 9시가 돼서야 행사요원들이 부랴
  • 네가 고집하는 자리, 발 아래 토지까지 사랑해[강동삼의 벅차오름]

    네가 고집하는 자리, 발 아래 토지까지 사랑해[강동삼의 벅차오름]

    내가 널 사랑한다면/결코 기어오르는 능소화나무처럼/너의 높은 가지를 타고 자신을 뽐내지는 않으련다/내가 널 사랑한다면/결코 짝사랑에 빠진 새를 흉내내/너의 푸르름을 위해 재차 단조한 가락을 노래하지는 않으련다(중략) 사랑은/단지 거룩하게 높은 네 몸집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네가 고집하는 자리, 발 아래 토지도 사랑하는 것이다 # 사랑은 높은 네 몸집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고집하는 자리, 발 아래 토지까지 사랑하는 것 2년간 중학교에 다닌 것이 정규교육의 전부였던 중국 여류시인 수팅의 ‘상수리나무에게’란 시(詩)다. 마지막 싯구처럼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느꼈다. 네가 고집하는 자리, 그 발 아래 토지까지 너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향의 병풍같은 내 친구 군산오름을 만나러 가는 길도 참 오래 걸렸다. 돌고 돌고 돌아 지천명도 한참. 너에게 오래도록 가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끝까지 가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오래된 상처, 아물었을 거라 생각한 상처가 다시 덧날 지도 몰라 두려웠기 때문이다. 젊은 날 고향을 등지는 이유는 두가지다. 잊기 위해, 살기 위해. 하지만 언제나, 너에게 전송하고 싶었다. 감귤꽃 향기의 힘을 빌어서라도 사랑
  • ‘우리에게 너무한’ 세상 잊게 하는… 숫모르 편백숲길은 당신을 위한 길[강동삼의 벅차오름]

    ‘우리에게 너무한’ 세상 잊게 하는… 숫모르 편백숲길은 당신을 위한 길[강동삼의 벅차오름]

    세상에서 최대한 멀리, 아주 멀리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 사람들에게 준 상처로 마음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순간, 그 허허로움을 어디에서도 달랠 수 없어 오롯이 혼자이고 싶어질 때. 적요한 곳에서 오롯이 나와 정면으로 마주해 얘기하고 싶어질 때. 나를 감싸주며 위로해주고 싶어질 때… 윌리엄 워즈워스의 표현처럼 “우리에게 너무한” 세상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걷는다.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기울이다 보면 평정심을 되찾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닮은 한라생태숲길… 교통약자를 위한 휠내비길에 어울리는 산책 절물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한라생태숲은 그런 나를 치유해주고 위로해주는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시내가 화창할 때도 이곳은 물 머금은 안개에 휩싸이고, 소리없는 봄비가 촉촉히 내린다. 그토록 갈망했던 나 자신과의 만남이 여기에서는 가능해진다. 한라생태숲의 탄생도 상처받은 사람들을 닮았다. 훼손돼 방치됐던 야초지를 원래의 숲으로 복원한 곳이어서 더 그렇다. 입구에는 진짜 허허벌판을 개간하고 나무를 심고 연못을 조성하고 산책길을 조성하며 걸어온 길, 역사가 소개되고 있다. ‘걷기는 평등하다. 장
  • 훤한 이마·허연 머리… 황혼기에 접어든 남자를 닮았다[강동삼의 벅차오름]

    훤한 이마·허연 머리… 황혼기에 접어든 남자를 닮았다[강동삼의 벅차오름]

    #인생 황혼기에 선 남자를 닮은 큰노꼬메오름…정상은 대머리처럼 허허롭다 제주시에서 평화로를 타고 유수암리를 지나 새별오름 가기 직전에 어리목으로 빠지는 산록도로가 나온다. 그곳에 멀지 않은, 차로 5분여만 달리면 노꼬메오름으로 가는 길목이 오른 쪽으로 나 있다. 외길을 조금만 지나면 고사리가 많이 자라는 드넓은 벌판이 펼쳐지고 정면 쪽으로 큰노꼬메오름이 보인다. 누가 봐도 고사리가 많을 것 같이 생긴 벌판이다. 이른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고사리 꺾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을 만난다. 한 쪽에는 소길리 마을목장이 있어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드넓은 벌판을 지나 노꼬메오름 입구에 들어서면 솔향이 확 코를 찌른다. 노꼬메오름은 인생의 황혼기에 선 남자를 닮았다. 튼실한 돌계단은 세상풍파를 다 겪은 남자의 다리처럼 단단하다. 얼마 전 40년 만에 비행을 하는 송골매(배철수)가 들려준 ‘이 빠진 동그라미’가 되어 산을 탄다. ‘잃어버린 조각 찾아 때굴때굴 길떠났던’ 이빠진 동그라미. 어디 갔나 나의 한쪽/벌판 지나 바다건너/ 비탈진 산길/낑낑 올라/둥실둥실 찾아가네/저기저기 소나무밑/누워자는 한 쪼가리/비틀비틀 다가가서/맞춰보니 내짝일세…. 산수국화를 지나 조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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