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삼의 벅차오름
  • 11.8㎞의 선물… ‘늙어가면서 느끼는 자유’를 만나다 [강동삼의 벅차오름]

    11.8㎞의 선물… ‘늙어가면서 느끼는 자유’를 만나다 [강동삼의 벅차오름]

    ‘크리스마스의 신문 기자. /어느 여인이/ 꽃이라도 한 송이/ 들고 찾아와 준다면/ 좋겠구먼. /눈발 같은 글씨를/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는/ 기자의 등 뒤로/ 다가오는.’ 제주에서 인연이 된 후 가끔 서로에게 안부를 묻는 H 시인이 느닷없이 카톡문자가 왔다. 횡성에는 눈이 녹지 않아 외출할 수 없다고. “화이트크리스마스라서 좋겠다”고 부러워하며 내가 “제주는 모처럼 포근한 크리스마스인데 근무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더니 너무나 아름다운 시를 이렇게 보내왔다. 역시 시인은 시인의 마을에서 왔나 보다. 그 짧은 찰나에 날 감동시키는 한 편의 시를 보내주다니 감동이다. 이보다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을까. # 나이 한살 더 먹는 내게 선물을 주고 싶어… 레바논 마운틴 트레일과 닮은 11.8㎞ 우정의 길 걷다 나이 한살을 더 먹는 내게 연말 선물을 해주고 싶어 올레길을 홀로 걷는다. 레바논 마운틴 트레일(Lebanon Mountain Trail)은 레바논 북부 안드퀘트에서 남쪽 마르자윤까지 총 450㎞에 걸쳐 이어진 26개의 길이란다. 길이는 제주올레트레일 438㎞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해발 고도 600~2000m에 위치한
  •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강동삼의 벅차오름]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강동삼의 벅차오름]

    #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그렇다” ‘2024년 12월 3일 22시 30분, 대한민국 헌법이 유린당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심장이 멈췄습니다… 민주주의의 심장이 다시 뛰도록 심폐소생을 해주신 모든 분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여러분이 민주주의를 살리고 대한민국을 지킨 주역이십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준비하던 중 1980년 5월 광주에서 희생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보고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뒤집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저는 이번 12.3 비상계엄 내란사태를 겪으며,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1980년 5월이 2024년 12월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비상계엄이 실제로 선포되었을 때, 1980년 5월 광주는 2024년 12월의 우리를 이끌었습니다. 44년 전 고립무원의 상황에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계엄군과 맞섰던 광주시민들의 용기가, 그들이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
  • 존 레논의 이매진처럼… 평화로운 일상이 빨리 돌아오길 꿈꿉니다 [강동삼의 벅차오름]

    존 레논의 이매진처럼… 평화로운 일상이 빨리 돌아오길 꿈꿉니다 [강동삼의 벅차오름]

    # Imagine… 싸움을 멈추고 전쟁을 멈추고 폭거가 멈추고 평화로운 일상이 돌아오기를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시도해 본다면 쉬울 거예요/우리 밑엔 지옥이 없고/우리 위엔 오직 하늘만이 있어요/상상해 보세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오늘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요/나라가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상상해 보세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요. (Imagine there’s no heaven/It’s easy if you try/No hell below us/Above us only sky/Imagine all the people/Living for today/Imagine there‘s no countries/...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12월 3일 그날 밤 이후, 이 노래를 다시 들었습니다. 싸움을 멈추게 하는 ‘평화의 노래’를 듣습니다. 존 레논(1940.10.9~ 1980.12.8)의 ‘Imagine’을…. (그러고 보니 오는 8일은 존 레논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44년이 되는 날이네요) 얼마전 파리올림픽 비치발리볼 결승전 브라질과 캐나다 경기에서 선수들간
  •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행복’ [강동삼의 벅차오름]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행복’ [강동삼의 벅차오름]

    # 올레길을 걷다가 문득, 김용택 시인의 ‘그여자네 집’을 만납니다 우리는 누구나 내 마음 속의 집을 갖고 있다. 마치 김용택 시인의 ‘그 여자네 집’처럼. 제주의 올레길을 걷다가 그런 집을 만난다. 골목 어귀에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집이기도 하고, 길 모퉁이 집을 지키는 강아지가 짖어대는 마당이 보이는 집이기도 하다. 혹은 마당 한 편에 대봉도 아니고 홍시도 아니고 단감도 아닌 ‘ 갈중이(갈옷) ’ 를 염색할 때 쓰는 ‘땡감(제주도 토종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붉게 익어가고 있는 집을 만날 수 있다. ‘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노랗게 물드는 집/해가 저무는 날/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생각하면 그리웁고/바라보면 정다웠던 집/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불빛이,/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그 불빛 아래 앉아/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손길이 따뜻해져 오는 집’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물결처럼 가 닿고 싶은 집/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그 여자 아버지와/그 여자 큰 오빠가/지붕에 올라가 하루종일 노랗게/지붕
  • 나만의 비밀화원으로 떠납니다… 은빛 가을바다와 인사하셨나요 [강동삼의 벅차오름]

    나만의 비밀화원으로 떠납니다… 은빛 가을바다와 인사하셨나요 [강동삼의 벅차오름]

    # 오름을 사랑했던 故 김영갑 선생에겐… 오름은 찻집이고 레스토랑이고 비밀화원이었다 ‘그곳에 있는 한 나는 정녕 자유로웠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에서도 놓여날 수 있었습니다. 시기, 질투, 다툼, 불평, 불만,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존재하는 그 어떤 것들도 비밀의 화원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키 작은 풀이나 곤충들의 목숨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거나, 들짐승이 놀라지 않게 하는 일 정도였습니다. 도시의 친구들이 그리워져 울적할 때면, 나는 나만의 비밀화원으로 내달립니다. 도시의 풍족함과 편리함이 간절해질 때면, 나는 또 나만의 비밀화원을 찾아 그 안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뒹굴며, 울고 웃노라면 어느새 내 머릿 속에서 도시의 기억들은 말갛게 지워져 버립니다. 살아가면서 불현듯 내게 다가오는 권태로움과 우울, 울적함이 내 삶의 리듬을 흐트러뜨릴 때면 나는 그곳에서 풀과 나무와 구름과 싸우고 화해하는 가운데 나의 어리석음을 돌아봅니다. 참기 힘든 분노, 좌절, 절망이 나를 힘들게 할 때면, 나는 나만의 비밀화원에서 눈, 비, 안개, 바람에 젖고 시달리는 축복을 통해 하찮은 내 존재를 다시금
  • 그곳은 어떤가요… 부재 중인 가을을 만날 수 있나요 [강동삼의 벅차오름]

    그곳은 어떤가요… 부재 중인 가을을 만날 수 있나요 [강동삼의 벅차오름]

    # 이창동 감독의 영화처럼… ‘시’처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랫소리 들리나요/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이젠 작별을 할 시간/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서러운 내 발목에 입맞추는 풀잎 하나/나를 따라 온 작은 발자국에게도/작별을 할 시간//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나는 기도합니다/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기를/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여름 한낮에 그 오랜 기다림/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당신의 작은 노랫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어느 햇빛 맑은 아침 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삼나무 숲으로 둥그렇게 둘러싸인 ‘미스테리 서클’ 같은 오름 2010년 개봉작 이창동이 연출한 5번째 장
  • 가장 먼저 햇빛을 받는 마을… 만년필에 바닷물을 담다 [강동삼의 벅차오름]

    가장 먼저 햇빛을 받는 마을… 만년필에 바닷물을 담다 [강동삼의 벅차오름]

    ‘하얗게 웃는다, 라는 표현은 (아마) 그녀의 모국어에만 있다. 아득하게, 쓸쓸하게, 부서지기 쉬운 깨끗함으로 웃는 얼굴, 또는 그런 웃음./ 너는 하얗게 웃었지. 가령 이렇게 쓰면 너는 조용히 견디며 웃으려 애썼던 어떤 사람이다./그는 하얗게 웃었어. 이렇게 쓰면 (아마) 그는 자신 안의 무엇인가와 결별하려 애쓰는 어떤 사람이다.’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흰’ 파도를 닮은… 햇빛을 가장 먼저 받는 마을 ‘오조리’ 4·3의 아픔을 그린 최근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프랑스 메디치외국문학상 수상), 채식주의자(영국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의 작가 한강이 2024년 10월 10일,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한국인들 모두가 놀랐다. 작가 역시 이날 저녁 노벨문학상 수상자 통보 전화를 받고 “다른 날처럼 보낸 뒤 막 아들과 저녁을 마쳤다”라고 말했다. 담백한 소감이었지만, 그는 “놀랐고 영광스럽다”고 고백했다. 어쩌면 그의 소설 ‘흰’처럼 하얗게 웃었을지 모른다. 스웨덴 한림원은 2024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가했다. 작가의 자전적인 작품 ‘
  • 벤치에 앉아 있는 ‘절망’이란 친구에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강동삼의 벅차오름]
  • 사티의 ‘짐노페디’ 들으며… ‘안단테 칸타빌레’ 같은 산책을 하다 [강동삼의 벅차오름]

    사티의 ‘짐노페디’ 들으며… ‘안단테 칸타빌레’ 같은 산책을 하다 [강동삼의 벅차오름]

    #상속받은 돈으로 똑같은 벨벳정장 7벌을 사서 평생 입은 남자…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온 남자 매일 우산을 들고 다니지만 정작 비가 올 때는 우산이 젖지 않도록 고이 품 안에 넣고 비를 맞는 남자, 흰색으로만 된 음식을 먹었던 유별난 남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고독한 남자, 작곡가라기 보다 발명가로 불린 남자, 음악 형식이나 기법도 모두 무시해버린, 음악 역사상 최고의 괴짜 작곡가였던 남자, 카페 피아니스트로 음악사에 등장한 최초의 음악가인 남자, 르누아르의 ‘부지발에서의 댄스’ 속 여인 쉬잔 발라동을 영원히 잊지 못해 독신으로 산 남자, 상속받은 돈으로 똑같은 벨벳정장 7벌을 사서 평생 그 옷만 입었던 남자,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온 남자…. 클래식 애호가들에겐 이쯤 얘기하면 누구인지 짐작할 것이다. 그러나 클래식에 큰 관심이 없어도 OOO침대의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을 떠올리면 낯설지만은 않을 터이다. 가구음악으로 유명한 프랑스 괴짜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다. 가구처럼 편안한 음악, 가구음악(Furniture Music)의 장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 알랭 들롱의 ‘태양은 가득히’ 처럼… “햇살이 눈부셨을 뿐이에요” [강동삼의 벅차오름]
  • 뭉크의 ‘두사람, 외로운 이들’ 처럼… 휴식같은 친구 ‘소울오름’ 처럼[강동삼의 벅차오름]

    뭉크의 ‘두사람, 외로운 이들’ 처럼… 휴식같은 친구 ‘소울오름’ 처럼[강동삼의 벅차오름]

    #사람이 아닌, 자연이 지르는 비명 뭉크의 ‘절규’ 처럼 제주의 여름은 뜨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한없이 바다만 바라보는 외로운 여자,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외로운 남자.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낸 노르웨이 대표적 화가이자 판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에서 만난 ‘두사람, 외로운 이들’(1892년작)이다. 남녀는 서로 가까이 있지만, 그 거리는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 2m보다 더 극복하기 힘들어 보이는 거리다. 여자는 뭉크의 첫사랑 ‘밀리’처럼 보인다. 유부녀를 사랑했던 뭉크. 그래서일까. 젊은 남녀가 불 꺼진 방에서 창밖의 불빛을 피해 커튼 뒤에서 격렬하게 나누는 ‘키스’(1892)마저 고독해 보인다. 화가 뭉크하면 떠오르는 ‘절규’.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행위들이 자행되었던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이후 20세기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 된 ‘절규’는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란다. 뭉크는 오슬로 피오르에 인접한 에케베르그 언덕을 산책하다가 느낀 강렬한 감정을 그려냈단다. 뭉크는 파리 유학시절인 1892년 습작노트에 ‘해질 무렵 친구 두명과 함께 나는 길을 걷고
  • 한밤중 홀로… 강가에 앉아 버림받은 기분에 젖어본 일이 있는가[강동삼의 벅차오름]

    한밤중 홀로… 강가에 앉아 버림받은 기분에 젖어본 일이 있는가[강동삼의 벅차오름]

    # 인생을 절망해보지 않고는 진실한 삶을 모른다 ‘강으로 내려가 본 적이 있는가/새벽 두 시에 홀로/강가에 앉아/버림 받은 기분에 젖어본 일이 있는가/ 어머니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이미 돌아가신 어머니, 신이여 축복하소서/사랑하는 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그녀가 태어나지 말았기를 바란 적이 있는가 할렘강으로의 나들이/새벽 두시/ 한 밤중/홀로/신이시여, 나 죽고만 싶어요/하지만 나 죽은들 누가 서운해 할까’ ‘할렘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미국의 흑인시인 랭스턴 휴즈(1902-1967)의 ‘할렘강 환상곡’이란 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페이스북에 소개된 ‘그 시를 읽고 나는 시인이 되었네’를 읽다가 가슴을 후빈 詩다. 이 시를 소개한 천양희 시인의 말마따나 ‘인생을 절망해보지 않고는 진실한 삶을 모른다’는 말이 와 닿는다. 그의 표현처럼 뭉크의 ‘절규’같은 시 한편이 영혼을 벼락치듯 울린다. 우리는 한번쯤 강가에 서서,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에 서서, 한번쯤 서럽도록 슬프게 울음을 삼켜본 적 있다. 앞이 캄캄해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듯 해서, 그 절망의 시간 앞에서 속울음을 삼키다가 꺼억꺼억 소리내며 하얀 포말같은 거품을
  • 브레히트의 시처럼… ‘사랑은 어떻게 되었을까’ 묻고 싶어지는 날[강동삼의 벅차오름]

    브레히트의 시처럼… ‘사랑은 어떻게 되었을까’ 묻고 싶어지는 날[강동삼의 벅차오름]

    #영화 ‘타인의 삶’처럼… 그들이 나의 인생을 바꿨다 ‘ 9월 파란색 달이 뜬 바로 그날. 어린 자두나무 아래서. 말없이/난 그곳에서 창백한 내사랑, 그녀를 품안에 안았다 달콤한 꿈처럼/우리 머리 위 아름다운 여름하늘에는/ 구름이 한 점 떠 있었다. 그 구름을 나는 오랫동안 쳐다보았다/구름은 아주 하얗고 아득히 높아/내가 다시 올려다보았을 땐 사라지고 없었다.…(중략) 키스도, 구름이 거기 떠있지 않았더라면/벌써 오래 전에 잊어 버렸을 것이다.’ 영화 ‘타인의 삶’(플로리안 헨켈 폰 돈너스마르크 감독. 2006년作)에서 동독 비밀경찰 비즐러(울리히 뮈헤)의 굳센 신념을 흔들리게 한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 ‘마리아의 추억’의 일부다. 사람을 지칠 때까지 심문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하는 비즐러. 도청이란 직업을 통해 사회주의 적들과 맞서야 한다는 굳센 신념을 지닌 인물이다.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제바스티안 코흐)과 그의 애인이자 인기 여배우 크리스타(마르티나 게덱)를 감시하는 중대 임무를 맡는다. 그는 모든 걸 기록한다. 민감한 대화, 은밀한 사생활까지. 그러나 그의 굳센 신념을 흔들리게 만든 서막은 브레히트 시 ‘마리아의 추억’이다.
  • 사물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사랑도… [강동삼의 벅차오름]

    사물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사랑도… [강동삼의 벅차오름]

    #1000걸음 나아가다 999걸음 물러나는 것이 전진입니다 사물은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Objects in mirror are closer than they appear). 운전하기 위해 자동차 사이드 백미러를 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이 문구에 경직됩니다. 사고 방지를 위해 적힌 이 문구에 아찔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재차 확인합니다. 뒤차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서두르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가도록 운전자를 안내하는 문구입니다. (서울시청 인근 역주행사고로 인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는 간혹 시속 50㎞ 이하의 인생은 느리고 재미없다고 바보같은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80㎞ 이상 질주해야 바쁜 인생 제대로 돌아간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과속은 브레이크 없는 인생에 치명상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천천히 가면 조금 늦게 도착할지언정 무사히 목적지에 당신을 안내해줄 겁니다. 느림이 가져다 주는 행복이 있습니다. 스위스 철학자 알렉상드르 졸리앙의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인생 잠언에 나오는 문구 중 ‘1000걸음 나아가다 999걸음을 물러나는
  • 꽃잎 하나 슬며시 너에게 건넨다… “친구야, 고마워”[강동삼의 벅차오름]

    꽃잎 하나 슬며시 너에게 건넨다… “친구야, 고마워”[강동삼의 벅차오름]

    # 무뚝뚝한 남학생이 짝사랑하는 소녀에게 꾹꾹 눌러쓴 손편지처럼… 오늘은 고백해볼까 “꽃잎 하나 슬며시 너에게 건넨다, 친구야 고마워.” 병원 정기 검진때문에 모처럼 서울에 가는 길. 한 초등학교를 지나는데 현수막에 걸린 글씨가 내 가슴에 훅하고 박혔다. 어릴땐 혹시나 편지가 왔나 보려고 우체통을 들여다보곤 했었다. 그땐 막연한 기다림이 사랑인 줄은 몰랐다. 그냥 애가 타고 가슴 시리고 잠못 이루고 밤중에 썼던 편지를 다음날엔 찢어 버리곤 했다. 그리고 그날 밤 다시 편지를 썼다. 유치한 감성에 젖어…. 그런데 놀라운 건 지금도 무뚝뚝한 남학생이 짝사랑하는 소녀에게 꾹꾹 눌러쓴 손편지를 건넨다는 사실이다. 그날밤처럼. 새삼 사랑하는 방법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때마침 신기하게도 서울가던 날.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라는 옛 유행가 가사를 따라하듯, 또박또박 써내려간 편지를 우연히 읽게 됐다. 평소 진지해 ‘찐’ 동생으로 불리는 동생이 실없이 싱글벙글 거리며, 마치 자기가 사랑고백을 받은 것처럼, 딸이 한 남학생으로 부터 받은 편지 내용의 일부(그는 휴대폰에 저장해놓고 우울할 때 들여다보는 듯 했다)를 보여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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