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인맥 대해부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4>넥슨] 예·체능 뛰어난 명문가 ‘엄친아’… 게임업계 ‘은둔의 경영자’로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4>넥슨] 예·체능 뛰어난 명문가 ‘엄친아’… 게임업계 ‘은둔의 경영자’로

    게임 업계에서 김정주 대표는 흔히 ‘은둔의 경영자’라고 불린다. 2001년 넥슨의 사장 자리를 내어 놓은 이후 한결같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꺼렸다. 같은 이유에서인지 가족사도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그가 외부에 법조인이라고만 밝힌 부친은 김교창(77) 법무법인 정률 고문변호사다. 1962년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법조계에 몸담은 부친은 66년 개업한 뒤 한국회의법학회 회장, 대한공증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상법 전문 변호사다. 종로가 본적인 서울 토박이로 55년 서울고, 61년 서울대 법과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남과는 다른 길을 가는 아들의 든든한 후원자다. 당시에는 생소한 온라인 게임회사를 차리겠다는 아들에게 6000만원이란 사업자금을 지원해 줬다. 김 대표는 이 돈으로 강남구 역삼동에 10평 남짓한 오피스텔을 얻었다. 부친은 94년 넥슨이 설립된 이후 5년간 아들 회사의 대표직을 지내며 각종 계약의 자문역을 해 줬다. 취미로 경마를 즐겼던 부친은 마주(馬主)이기도 했는데 말을 살 때마다 말 이름에 아들이 만든 온라인 게임 이름을 붙일 정도로 아들 사랑이 각별하다. 이런 이유로 한때 ‘바람의 나라’, ‘아스가르드’ 등 넥슨의 대표 온라인 게임과 같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4>넥슨] NXC 아래 40개 계열사… 매출 72% 해외법인서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4>넥슨] NXC 아래 40개 계열사… 매출 72% 해외법인서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는 넥슨은 단순 명료한 수직적 지배구조를 지닌 회사다. 연매출이 1조 6000억원을 넘을 정도로 회사가 커졌지만 국내 대기업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계열사 간 순환출자는 없다는 뜻이다.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운 기업답게 넥슨은 NXC 아래 총 40개의 종속회사가 있다. 맨 위에 지주사인 NXC가 있고 그 아래에 자회사인 넥슨재팬, 다시 그 밑으로 손자회사인 넥슨코리아, 넥슨아메리카, 넥슨유럽 등이 위치한다. 넥슨이 지난해 해외시장에서 벌어들인 매출은 약 1조 1850억원. 전체 매출의 약 72%에 달하는 높은 비중으로, 그만큼 해외법인들의 역할이 컸다. 김 대표는 NXC의 지분 48.5%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부인 유정현씨도 NXC의 지분 21.1%를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 대표 부부의 지분은 69.6%에 달한다. 하지만 김 대표는 NXC 외의 다른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NXC는 일본 상장사인 넥슨(이하 넥슨재팬)의 지분 61.7%를 보유하고 있으며, 넥슨재팬은 넥슨코리아와 넥슨유럽, 넥슨아메리카의 지분 100%를 갖고 있다. 넥슨네트웍스, 넥슨GT, 엔도어스, 네오플, 띵소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4>넥슨] 6000만원 창업… 매출 1조 6000억원 세계 3위 게임업체 ‘우뚝’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4>넥슨] 6000만원 창업… 매출 1조 6000억원 세계 3위 게임업체 ‘우뚝’

    우리나라에서 자산이 1조원을 넘는 부자는 35명 정도다. 하지만 부모를 잘 만난 덕을 본 재벌 2~3세를 제외하고 스스로 자산을 일군 이는 10명에 불과하다. 이 같은 자수성가형 부자의 대표 주자는 온라인 게임회사인 넥슨을 창업한 김정주(46·넥슨 지주사 NXC 대표)씨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김 대표의 개인 자산은 1조 4720억원. 신흥 벤처 부호 중 1위다. 그가 20년 전 자본금 6000만원의 작은 회사 넥슨을 세계 3위 온라인 게임회사로 키워 냈다. “김정주, 너는 학자로는 힘드니까 일찌감치 생각을 고쳐먹고 공부를 그만둬.” 1993년 초 당시 25세였던 김 대표는 국내 인터넷 대부라고 불리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길남 교수로부터 박사과정을 그만두라는 최후통첩을 받는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제자에게 던진 스승의 매서운 지적이었다. 마음으로 존경하는 스승이었기에 가슴이 아팠지만 결국 중퇴를 결심한다.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세계 3위의 온라인 게임업체 넥슨의 창업을 앞당기는 도화선이 된다. 중학교 시절 김 대표는 우연히 길에서 접하게 된 컴퓨터에 쏙 빠져들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구형 컴퓨터였지만 소년의 마음을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3>미래에셋] 벤처캐피탈 20년 만에 147조 운용 ‘금융 대기업’ 변신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3>미래에셋] 벤처캐피탈 20년 만에 147조 운용 ‘금융 대기업’ 변신

    1997년 7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작은 사무실에서 7명의 금융투자 전문가와 사무직 여직원 3명 등 10명이 모여 자본금 100억원으로 ‘미래에셋벤처캐피탈’을 설립했다. 다음달인 8월 10억원 규모의 ‘미래에셋투자자문’이 문을 열었다. 처음부터 자산운용사로 시작하지 않은 이유는 당시 자산운용사는 설립 허가를 받을 수 없었고 아직 주식시장이 크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자문사는 인지도가 약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벤처 열풍에 따라 인지도가 있는 벤처캐피탈로 시작했다. 이렇게 자본금 100억원으로 시작한 회사는 약 20년 만에 자산운용사, 증권, 보험사 3개 축을 중심으로 26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운용 자산만 147조 510억원에 이르는 재계 순위 33위의 ‘미래에셋그룹’으로 커졌다. 직원 13명으로 시작했던 회사에는 현재 4000명 가까운 임직원이 일하고 있다. 국내에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특히 부침이 심한 금융업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샐러리맨 신화의 상징으로 박현주(56)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있다. 박 회장의 일생이 곧 미래에셋그룹의 성장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박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 2학년 때 ‘자본시장의 발전 없이 자본주의는 발전할 수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3>미래에셋] 강력한 1인 리더십 체제 속 포스트 박현주 뜨거운 감자

    미래에셋 관계자와 미래에셋에 몸담았던 이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래에셋이 만들어진 1997년만 하더라도 박 회장은 어느 정도 규모의 회사로 키우겠다는 뚜렷한 목표는 없었다. 하지만 창업 이후 눈덩이 불어나듯 미래에셋이 커질 수 있었던 것은 미래에셋그룹의 창업주인 박 회장의 1인 리더십이 강력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래에셋에서의 박 회장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결국 1인 지배에 대한 문제와 불안감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느 대기업 못지않게 거미줄처럼 얽힌 지분 구조, 그룹의 추후 성장동력은 어떻게 할지 등이 자연스럽게 그룹의 현안으로 거론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박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어떻게 보면 독선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대규모 기업을 키우는 리더라면 누구나 그런 면은 가지고 있을 것”이라면서도 “미래에셋 그룹이 박 회장의 절대적인 1인 지배 체제로 점차 강화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측은 “박 회장은 창업자로서 절대적인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룹의 큰 전략을 고민하고, 9년전부터 시행된 부문대표제를 통해 권한이양과 전문성에 기반한 시스템경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회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3>미래에셋] 박현주·최현만·구재상 창업 3인방, 동원증권 한솥밥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3>미래에셋]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 ‘자본시장의 신화’로 꽃피다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나에게도 어머니는 인생의 스승이자 최고의 조언자였다. 시골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할 때 어머니는 생활비를 1년에 한 번만 주셨다. 돈을 계획적으로 쓰고 관리하는 습관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박현주(56)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2007년에 쓴 저서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서 이처럼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박 회장의 가족관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지만 지금의 박 회장이 있게 한 사람은 지난 3월 향년 90세에 지병으로 별세한 박 회장의 어머니 고 김유례 여사였다. 박 회장의 아버지 고 박하장씨는 7남매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시절 태어나 물려받은 것이 없어 가난했고 학교도 다닐 수 없었다. 고 김 여사보다 한 살 많았던 아버지 박씨는 가난하게 가정을 꾸렸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품이 훌륭하다는 칭찬이 자자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죽동에서 벼·보리 농사를 했던 그는 주변에서 돈을 꿔달라는 사람들이 있으면 불평 하나 없이 자기의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 박씨는 박 회장이 지역 명문 광주제일고(광주일고) 합격 통지서를 받던 날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② 다음카카오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② 다음카카오

    지난 1일 국내 정보기술(IT)업계 최고 부호의 이름이 이해진 네이버 의장에서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으로 바뀌었다. 김 의장은 이날 출범한 다음카카오 주식 22.2%를 보유하며 최대 주주가 됐다. 상장주식 가치 2조 936억원으로 이 의장(1조 2309억원)을 누르고 주식 재벌 1위에 올랐다. 유복하게 자란 이 의장과 달리 일곱 식구와 단칸방에서 부대끼며 성공의 꿈을 꾸던 소년은 이제 IT업계를 들었다 놨다 하는 거물이 됐다. 현재 진행형인 김 의장과 이 의장의 치열한 경쟁은 어떻게 결론 날까. 김 의장은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라, 어떤 인맥을 형성했는지 들여다봤다.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2>다음카카오] 다음 창업주 이재웅은 누구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2>다음카카오] 다음 창업주 이재웅은 누구

    이재웅(왼쪽·46) 다음 창업주는 현재 다음카카오 경영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고 이철형 전 한국종합건설 대표의 1남 2녀 중 장남인 그는 1995년 26세의 젊은 나이에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창업했다. 1999년 코스닥 상장과 함께 일약 벤처 재벌로 떠오른 그는 2007년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사임했다. 최근까지 다음 최대 주주 지위는 유지(주식 평가액 약 2900억원)했으나 다음카카오 합병 법인에서 그의 지분은 3.3%로 확 줄었다. 그는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디앤샵 경영자문담당 이사를 지내고 현재는 소셜벤처인큐베이터 업체 에스오피오오엔지(SOPOONG)의 대주주로 있다. 1986년 서울 영동고를 졸업하고 1991년 연세대 전산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원을 마치고 이듬해 프랑스 파리 제6대학원에서 인지과정을 전공한 그는 다음 창업 전까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1년 6월에는 KBS 9시 뉴스 앵커를 지낸 전 KBS 아나운서 황현정(오른쪽·44)씨와 결혼했다. 둘 사이에 아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는 서울 진흥 아파트에 살면서 ‘동네친구’로 우정을 나눴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1>네이버] ‘벤처 DNA’ 7인의 한발 앞선 도전… 검색시장 최강자 일궜다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1>네이버] ‘벤처 DNA’ 7인의 한발 앞선 도전… 검색시장 최강자 일궜다

    30대 젊은이 7명이 전 직장 퇴직금 3억 5000만원을 모아 만든 벤처 기업 ‘네이버컴’은 15년 만에 연매출 3조 3122억원(지난해 기준), 시가총액 27조 3590억원(이달 29일 기준)의 한국 대표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의 개인 주식재산은 1조 3460억원(지난 8월 재벌닷컴 집계)으로 웬만한 대기업 오너 부럽지 않다. 네이버에 대한 국민 체감은 실적 이상이다. 네이버에는 매일 1600만명이 방문하고 1억개 이상의 검색어가 입력된다. 검색시장의 압도적인 1위(지난해 12월 기준 77.4% 점유율)다. 최근 조성된 모바일 환경에서도 메신저 ‘라인’으로 일본 등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며 제2의 부흥기를 맞고 있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 의장은 지금으로 따지면 ‘엄친아’(여러 조건이 좋은 젊은이)다. 삼성생명 임원인 아버지가 있었고 서울 강남구 청담동 아파트에서 살았다. 8학군인 상문고를 졸업(1986년)해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카이스트에서 전산학을 전공했다. 배경은 좋았지만 사업가 기질이 특출했던 건 아니다. 같은 ‘86학번’으로 1994~1995년 일찌감치 창업에 나선 ‘과 동기’ 김정주 NXC 넥슨 대표와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1>네이버] ‘서울대 공대 86학번’ ‘서울대 법대 82학번’의 황금 라인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1>네이버] ‘서울대 공대 86학번’ ‘서울대 법대 82학번’의 황금 라인

    정보통신(IT)계 최강으로 알려진 네이버 이해진 이사회 의장의 인적 네트워크는 2007년 판사 출신 김상헌 대표를 영입하면서 외연을 한층 넓혔다. 김정주 NXC 넥슨 대표를 비롯해 김범수 카카오 의장, 송재경 XL게임즈 대표 등 IT 업계에서 성공한 기업인들이 이 의장과 같은 서울대 공대 86학번이다. 최근 들어 정치·경제·사회·문화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서울대 법대 82학번, 그중에서도 ‘사법시험-서울중앙지법 판사’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김 대표의 인맥이 더해졌다. 이 의장을 비롯해 김정주 대표, 송재경 대표는 같은 컴퓨터공학과(컴공)로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다. 모두 카이스트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이 의장과 김 대표는 단짝으로 카이스트에선 같은 방에서 기숙사 생활(1991년)을 했다. 김 대표는 카이스트 박사과정을 밟던 1994년 넥슨을 창업해 송 대표와 함께 최초의 다중접속온라인게임(MMORPG)인 ‘바람의 나라’를 개발, 우리나라 온라인게임 흥행을 일으켰다. 현재 이 의장과 함께 주식재산만 1조원이 넘는 우리나라 대표 IT 부호다. 김 대표는 1999년 넥슨의 자회사인 엠플레이와 네이버컴의 주식을 맞바꿔 이 의장에게 사업자금을 지원했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