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 thumbnail - “내면을 바라보라”… 프리드리히가 건네는 침묵의 위로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내면을 바라보라”… 프리드리히가 건네는 침묵의 위로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자연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경외감 바다 앞 수도승, 미미한 존재 실감 고독은 자신을 되찾는 특별한 시간 그림 속 인물 뒷모습은 ‘공감’ 형성 자연·우주에 신이 존재한다는 철학 변치 않는 신앙과 희망 곳곳에 암시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이 세상을 이끄는 초효율성의 시대다. 질문을 던지면 단 몇 초 만에 답이 돌아오고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끊임없는 알림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뇌는 쉽게 지치고 내면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진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생각의 스위치를 잠시 끄고 온전한 자신을 되찾고 싶다면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의 작품 앞에 서 보길 권한다. 그의 화폭에 담긴 침묵의 언어는 조용히 일깨워 준다. 진정한 성장이란 쉼없이 앞만 보며 달려갈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소음에 귀를 닫고 내면을 바라보는 순간에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첫 번째 명언: “화가는 자기 앞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보는 것도 그려야 한다. 만일 내면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면 앞에 있는 것을 그리는 일도 그만두는 게 낫다.” 참으로 단호한 말이다. 프리드리히는 왜
  • thumbnail - ‘조각의 신’ 미켈란젤로, 돌 속에 잠든 영혼을 깨우다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조각의 신’ 미켈란젤로, 돌 속에 잠든 영혼을 깨우다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신성한 사람’이라 부르며 경외심 神 지위 오른 이유 시·명언에 나와 대리석 안에 형상이 있다고 생각 세상에 드러내는 게 조각가 역할 사람은 컴퍼스를 눈에 지녀야 눈은 예술가의 종합적 판단력 세계미술사의 별들 가운데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가 두 차례나 출판된 최초의 예술가는 누구일까? 바로 르네상스의 천재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이다. 당대 화가이자 미술사가였던 조르조 바사리는 그를 향해 이런 찬사를 남겼다.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를 통틀어 승리의 종려가지를 거머쥔 이는 신성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이다. 그는 회화와 조각, 건축 세 분야 모두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 동시대인들은 미켈란젤로를 신성한 사람, 즉 이탈리아어로 ‘일 디비노’라고 부르며 경외심을 품었다. 그는 어떻게 생전에 신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 해답은 그가 남긴 작품과 글 속에 숨겨져 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가이자 화가, 건축가였으며 300편이 넘는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했다. 오늘날 전해지는 500여통의 친필 서한 속 시와 명언들은 그가 왜 일 디비노라 불리게 되었는지를 밝혀 주는 열쇠가 될 것이다. 첫 번째 명언 “가장 뛰어난 예술가도 대리
  • thumbnail - 르네상스의 완성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르네상스의 완성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끝없이 배우며 호기심·탐구욕 충족 예술·과학·인체·우주 등 다양한 분야 하나의 유기적인 지식 체계로 연결 직접 보고 부딪히며 참된 지혜 얻어 인체 구조 이해하려고 시신 해부도 예술을 이론·과학적 원리 위에 구현 스푸마토와 공기원근법 ‘혁신’ 완성 여러 분야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인류의 지평을 넓힌 천재들을 ‘르네상스적 인간’ 혹은 ‘만능인’이라 부른다. 그 가운데서도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단연 첫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다. 미국의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그의 천재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레오나르도는 타고난 천재라기보다는 끊임없는 호기심을 상상력과 노력으로 풀어내며 스스로 천재가 된 인물이다.” 다행히도 다빈치는 후대를 위해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증거를 남겨 두었다. 그는 평생 떠오른 아이디어와 관찰, 실험과 탐구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친필 노트(코덱스·Codex)에 기록했다. 오늘날 전 세계 미술관과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는 약 7200쪽의 친필 노트는 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이다. 이제 우리는 그의 노트 속 명언들을 이정표 삼아 그가 어떻게 창의성의 비밀에 다가갔는지 따라가 보려 한다. 첫 번째 명언 “배움은 결코
  • thumbnail - 앙리 루소, B급 화가가 거장이 된 이유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앙리 루소, B급 화가가 거장이 된 이유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취미로 그림 시작했던 세금 징수원 “소묘도 못하는 삼류 화가” 조롱받아 상상력·직관으로 현대적 예술가로 사진기 등장에 회화의 ‘재현’ 빛 잃어 초현실주의 내다본 위대한 개척자 “원근법도 무시하고 소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삼류 화가.”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 화단에서 앙리 루소(1844~1910)에게 내린 평가는 냉혹했다. 당시 미술아카데미 기준에서 볼 때 루소의 그림은 조롱거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날 루소는 취미로 그림을 시작해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독학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눈을 감고 발로 그린 그림”이라며 비웃음을 당했던 루소의 작품이 뒤늦게 미술사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가 남긴 명언들을 따라가며 B급 화가에서 위대한 예술가로 재평가될 수 있었던 과정을 살펴보겠다. 첫 번째 명언 “나는 미술학교나 거장의 화실에서 배운 적이 없다. 자연만이 나의 유일한 스승이었다.” 이 말은 제도권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독학 화가 루소의 예술 철학을 보여 준다. 당시 파리에서 화가로 인정받으려면 아카데미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며 원근법, 해부학, 명암법 등을 익혀야 했다. 루소는 남의 화법을 따르기보다 자연이 주는 영감
  • thumbnail - 무용수의 화가 넘어 ‘기록가’ 드가를 만나다[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무용수의 화가 넘어 ‘기록가’ 드가를 만나다[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30여권 수첩은 화가의 ‘실험 일지’ 구상·재료 실험·인물 관찰 등 담겨 그림, 치밀하게 계산된 ‘범죄’ 비유 집요한 관찰·기록으로 완벽 재구성 파스텔을 독립적 회화로 끌어올려 누드화, 여신 아닌 ‘현실의 몸’ 묘사 말년에는 ‘시력 악화’ 시련도 극복 조각의 고정관념 깨뜨린 걸작 남겨 흔히 무용수의 화가로 불리는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르 드가(1834~1917)에게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바로 지독할 만큼 집요한 기록가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평생 수많은 편지와 카르네라고 불리는 30여권의 수첩을 남겼다. 특히 1853년부터 1886년까지 33년에 걸친 흔적이 담긴 그의 수첩들 속에는 작품 구상과 재료 실험, 인물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독특한 시선이 실험 일지처럼 세밀하게 적혀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드가가 찰나의 빛을 좇던 인상주의 화가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그는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면서도 탄탄한 인체 데생, 치밀한 화면 구성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예술가였다. 이제 드가가 남긴 명언들을 따라가며 그의 기록들이 캔버스 위에서 위대한 걸작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함께 살펴보겠다. 첫 번째 명언 “그림
  • thumbnail - 짧은 생 위대한 예술, 에곤 실레[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짧은 생 위대한 예술, 에곤 실레[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스물여덟 생애, 작품 활동 10년 334점 유화·2503점 드로잉 남겨 “예술가 최고 덕목 독창성·진실성”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생명력 ‘육체’를 통해 증명해 낸 선구자 오스트리아가 낳은 천재 화가 에곤 실레(1890~1918)는 스물여덟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그림에 쏟아부으며 미술사에 거대한 발자국을 남긴 예술가다. 그가 스페인 독감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간은 불과 10년 남짓이었지만 334점의 유화와 2503점의 드로잉을 남기며 오스트리아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자리잡았다. 무엇이 젊은 화가로 하여금 육체와 정신이 한계에 달하는 순간까지 작업에 몰두하게 했을까? 실레가 남긴 편지와 일기를 따라가며 짧은 생애를 밀도 높은 예술로 바꾸어 낸 힘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려 한다. 첫 번째 명언 “새로운 예술가는 반드시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그는 창조자여야 한다.” 이 말은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모방이 아니라 독창성과 진실성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당시 유럽 화단은 조화롭고 아름다운 전통적 미의 기준을 중시하고 있었다. 실레에게 예술은 남의 양식을 빌려 오지 않고 자신만의 화풍을 창조하는 일이
  • thumbnail - 쓰레기 수레에 매인 순종마, 로트레크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쓰레기 수레에 매인 순종마, 로트레크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유전적 취약성과 사고로 단신의 삶 사회 편견의 감옥에서 살았지만 회화 통해 동시대 진실 포착 증언 그림만큼은 어떤 틀에 가두지 않아 “모든 갇힌 것은 죽는다” 그의 말 영원의 생명력 가지고 아직 생생 수많은 예술작품 가운데 어떤 작품이 시대를 넘어 불멸의 걸작으로 남게 되는 것일까? 영국의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는 저서 ‘명화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명화란 한 시대가 요구하는 주제를 천재예술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깊이 있게 담아내어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감동을 주는 예술작품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문구는 시대가 요구하는 주제, 즉 시대정신이다. 명화는 한 시대의 사회와 경제, 문화적 변화를 담아내는 시각적 기록이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포착한 예술가로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를 빼놓을 수 없다. 로트레크가 남긴 편지와 주변 인물들의 증언은 그가 시대를 기록한 관찰자이자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지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첫 번째 명언 “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며 논평하지 않는다. 나는 기록한다.” 로트레크의 예술세계로 들어가는 첫 문장은 그의 가장 유명한 선언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 thumbnail - 르누아르가 남긴 행복의 문장들[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르누아르가 남긴 행복의 문장들[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19세기말 사실주의·자연주의 유행 당대 작가들은 어두운 이면 폭로 르누아르 “세상은 이미 골치 아파 예술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소신 붓을 든 ‘행복의 호르몬’ 역할 자처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는 행복을 그린 화가로 불린다. 실제로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마음이 즐겁고 편안해진다. 이런 감정은 기분 때문만은 아니다. 영국의 신경생물학자 세미르 제키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우리 뇌의 특정 영역으로 흐르는 혈류량이 최대 10%까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맛있는 음식을 볼 때처럼 뇌의 보상 회로가 활성화되면서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르누아르는 어떻게 관람자의 뇌를 사랑에 빠뜨리는 그림을 평생 그릴 수 있었을까. 대답은 르누아르가 남긴 편지와 그의 아들 장 르누아르의 회고록, 그의 화상이자 전기 작가였던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저서 ‘르누아르’에서 찾을 수 있다. 첫 번째 명언 “나에게 그림은 소중하고 즐겁고 예쁜 것이어야 한다.” 이 문장은 르누아르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 thumbnail - 신의 손으로 인간의 내면을 조각하다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신의 손으로 인간의 내면을 조각하다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모델 주위 돌며 인물의 특징 관찰 내면의 에너지·본질 ‘입체적 표현’ 표면 세심히 조절해 생명력 전달 뜨거운 감정과 냉정한 기술 조화 수많은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아 진실을 향한 ‘혁신적 시도’ 감동 1902년 9월 2일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그는 너무도 위대하오.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은 수천 점의 인물상이 뫼동 작업실에 있어요. 작품 한 점 한 점이 모두 문제작으로 사랑·헌신·관용·탐구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오.” 시인의 뜨거운 찬사를 받은 인물은 근대 조각의 아버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릴케의 영혼을 이토록 강렬하게 사로잡았을까. 로댕이 남긴 글과 말들을 따라가며 그 매혹의 실체를 함께 확인해 보자. 첫번째 명언 “형태를 빚어낼 때는 절대로 평면으로 생각하지 말고 입체적으로 생각하라.” 로댕의 저서 ‘로댕의 예술론’에 담긴 이 문장은 그의 조형 철학을 여는 열쇠와 같다. 당시 많은 조각가들이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고 또렷한 윤곽선을 만들어내는 데 몰두했다면 로댕은 덩어리의 깊이를 이해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보았다
  • thumbnail - 거꾸로 놓인 풍경화가 열어준 추상의 문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거꾸로 놓인 풍경화가 열어준 추상의 문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미술사에서는 20세기 미술을 구축한 세 명의 거장을 묶어 ‘현대미술의 삼각편대’라고 부른다. 형태를 해체해 세계의 구조를 새롭게 읽어낸 피카소, 색채를 해방해 감각의 기쁨을 확장한 마티스, 대상을 지워버리고 순수 추상의 문을 연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다. 흥미로운 사실은 추상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칸딘스키가 30세가 될 때까지 화가가 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스크바대에서 법과 경제를 공부했던 그는 학문적 능력을 인정받아 대학 정교수직까지 제안받은 지식인이었다. 매우 유능한 법학자였던 그가 어떻게 추상화의 창시자가 될 수 있었을까. 칸딘스키가 남긴 저서와 명언을 길잡이 삼아 인생의 방향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을 따라가 보자. 첫 번째 명언 “대상은 그림을 해친다” 이 문장은 추상미술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다. 칸딘스키는 구체적 형상이 관람자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영혼의 깊은 울림을 방해한다고 보았다. 우리는 그림 앞에 서면 무의식적으로 대상을 먼저 찾아내곤 한다. “이건 사과네”, “저건 사람이구나” 하고 말이다. 이렇게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맞히는 데 집중하는 동안 정작 중요한 색채의 울림이나 선의 리듬 같은 순수한 조형적
  • thumbnail - AI는 답할 수 있을까, 미스터리 화가의 질문에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AI는 답할 수 있을까, 미스터리 화가의 질문에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인공지능(AI)이 빠르게 답을 내놓는 AI 시대, 가장 경쟁력 있는 화가는 누구일까. 아마 많은 이들이 주저 없이 벨기에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년)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AI가 논리와 예측을 통해 정답을 추구할 때 마그리트는 질문을 던지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일상에 길들여져 무뎌진 우리의 호기심을 깨우고 멈춰 있던 생각의 근육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일까. 첨단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불확실성과 모순, 미스터리로 가득한 마그리트의 작품이 더 특별하고 현대적으로 다가온다. 이제부터 마그리트가 남긴 명언들을 따라가며 질문으로 가득한 그의 작품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첫 번째 명언 “나에게 있어 세계 그 자체는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 이 문장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믿어 온 세계에 균열을 낸다. 우리는 대개 사회적 관습, 논리, 규칙 같은 상식의 틀 안에서 세상을 판단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마그리트에게 상식은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게 해 주는 도구가 아니라 사물의 진정한 모습, 즉 본질을 가리는 베일과도 같았다. ●평범한 일상조차 그에겐 수수께끼 그에게는 평범한 일상조차 기적이자 수수
  • thumbnail - 사유하는 예술가, 인간의 본질을 그리다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사유하는 예술가, 인간의 본질을 그리다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36세로 요절할 때까지 인물만 그려 인류 본성에 다가가는 유일한 통로 무의식·보편적 본능을 화면에 구현 입체주의 거대한 유행에 편입 거부 자신이 선택·융합한 ‘창조적 저항자’ 단순화된 윤곽 등 독자적 양식 확립 “새로운 열망과 자아를 이끌어 내라” 타성·안락함에 젖은 삶의 태도 경고 마지막 순간까지 정체성·품위 유지 상상의 미술관 안에 비극적 신화라는 전시실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도 그 한가운데 자리할 인물은 단연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일 것이다. 36세로 요절, 지독한 가난, 술과 약물 중독, 마지막 연인의 비극적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는 저주받은 천재라는 낭만적 전설의 주인공으로 100년 넘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신화의 이면에는 또 다른 모딜리아니가 존재한다. 자신의 예술관과 삶에 대한 통찰을 정제된 문장으로 남긴 사유하는 예술가. 우리가 모딜리아니의 말과 글을 따라가는 여정은 그를 둘러싼 전설을 걷어내고 그의 민낯을 마주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첫 번째 명언 “내가 찾고 있는 것은 현실도 비현실도 아닌 무의식, 즉 인류의 본능적 신비이다.” 이 문장은 모딜리아니가 평생 인간만을 그
  • thumbnail - 관능, 저항, 장인 정신의 연금술… 캔버스에 새긴 ‘황금 혁명’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관능, 저항, 장인 정신의 연금술… 캔버스에 새긴 ‘황금 혁명’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구약 성서 ‘유디트’ 황홀경 재해석 여성 탐구해 성적 본능 해방 묘사 ‘빈 분리파’ 만들고 자유 예술 주장 반짝이는 금으로 ‘사랑’ 감정 강조 그림 한 점 위해 수백 장 도면 남겨 실험 되풀이… ‘노동자 예술가’ 자칭 정사각형 화면, 완벽한 균형·조화 시선 분산하며 자연 속 명상 유도 황금 양식을 창조한 최고의 장식 화가, 여성의 신체를 통해 에로티시즘을 회화로 구현한 실험가, 아카데미의 규범에 맞서 예술의 자유를 선언한 혁명가. 이 모든 수식어는 오스트리아 거장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에게 바쳐진 것이다. 그런데 위대한 업적을 남긴 그가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선 철저히 침묵했다. 그는 자화상 한 점 없이 평생을 보냈고 자신을 설명하는 글을 쓰는 것을 “배멀미처럼 두렵다”고 말할 만큼 꺼렸다. 그래서 그가 남긴 몇 안 되는 말들은 그의 황금빛 그림만큼이나 소중한 가치가 있다. 이제 클림트의 짧은 말들을 단서로 삼아 캔버스 뒤에 숨겨진 그의 내면세계로 들어가는 여정을 시작해 보자. 첫 번째 명언 “나는 작품의 대상으로서의 나 자신에게는 흥미가 없고 다른 사람들, 특히 여성을 그리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이 말은 예술가 자신을 신화적
  • thumbnail - 순수성 지닌 혁명가이자 시대의 이상 품은 ‘황제의 화가’[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순수성 지닌 혁명가이자 시대의 이상 품은 ‘황제의 화가’[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佛 왕립 아카데미 수상 뒤 로마 유학 고대 예술의 애국심 등 고전적 가치 화면 구도·인물 동작·절제된 색채로 혁명의 파고 앞 시민들에게 되새겨 나폴레옹 즉위 뒤 황제 제1화가로 알프스 산맥 넘는 ‘전쟁 영웅’ 묘사 펜을 든 헌신적 통치자로 그리기도 권력·예술 오가며 시대적 언어 창조 프랑스 신고전주의 미술을 확립한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는 가장 정치적인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탁월한 화풍과 압도적인 실력으로 파리 아카데미를 장악했던 그는 프랑스 대혁명기에는 혁명의 화가로, 나폴레옹 제국 시기에는 황제의 화가로 불리며 예술과 권력이 교차하는 가장 뜨거운 자리에 서 있었다. 다비드는 단지 권력에 복무한 화가였을까? 그가 남긴 편지와 명언, 당시의 기록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또 다른 다비드를 마주하게 된다. 그는 이념적 순수성을 지닌 혁명가이자 동시에 고전의 엄격함과 시대의 이상을 함께 품은 예술가였다. 다비드의 삶과 역사화들은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시대의 언어로 써내려간 한 화가의 실험이자 선언이었다. 첫 번째 명언 “예술에서 아이디어가 표현되는 방식은 아이디어 자체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이 문장은 신고전주의의
  • thumbnail - 텅 빈 거리·정적… 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을 그린 작가[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텅 빈 거리·정적… 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을 그린 작가[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인간 내면세계 언어로 설명 못 해 설명 불가능한 지점서 회화 시작 그림은 언어 한계 넘어서는 소통 세 차례 파리 유학 유럽 미술 공부 문화 식민지적 사고 단호히 거부 식당·주유소 등 미국의 풍경 그려 추상표현주의 흐름에 동조 안 해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풍경 묘사 정서적 사실주의 화풍 철저히 고수 미국의 거장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는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그림에 대해 거의 설명하지 않았고 대중 앞에 나서는 것도 극도로 꺼렸다. 호퍼의 아내 조지핀은 과묵한 남편을 이렇게 표현했다. “에드워드와 이야기하는 건 마치 우물에 돌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아요. 그런데 돌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죠.” 텅 빈 거리, 창가에 홀로 앉은 사람, 늦은 밤 식당 안의 정적. 그의 성격처럼 호퍼의 그림 속에도 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의 풍경들이 펼쳐진다. 대중을 멀리했던 그는 어떻게 미국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이 되었을까. 그가 남긴 짧은 말, 편지, 드문 인터뷰, 오랜 시간 그를 지켜본 이들의 증언은 호퍼의 작품 세계로 다가갈 수 있는 통로가 돼 준다. 첫 번째 명언 “만일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굳
  • thumbnail - 사물이 아니라 공기를 그린 화가 모네[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사물이 아니라 공기를 그린 화가 모네[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화실 벗어나 보트에서 그림 그려 빛과 대기 변화 실시간으로 관찰 보고 느낀 첫인상 캔버스에 표현 “풍경은 빛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 색을 사랑하면서 치열하게 고민 “색채는 잠잘 때에도 나를 괴롭혀” 물은 가장 매혹적인 색의 실험실 같은 연못 ‘수련 연작’ 250점 남겨 1874년 프랑스 아르장퇴유의 센강,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는 선상 작업실의 이젤 앞에 앉았다. 그는 작은 지붕과 차양, 이젤을 갖춘 작업용 보트를 강에 띄워 떠다니는 화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모네가 작업용 보트를 타고 강 위에서 그림을 그린 이유가 있다. 그는 화실을 벗어나 자연 속으로 들어가 빛과 대기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관찰하며 그림을 그렸다. 선상 작업실은 관찰 용도의 실험실이었던 것.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가 배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네의 모습이 신기했던지 그 장면을 ‘작품① ’로 남겼다. 모네의 예술은 번뜩이는 영감이 아니라, 관찰이 발견을 낳고 발견의 순간들이 아이디어로 이어지는 반복되는 훈련이 쌓여 탄생했다. 모네의 편지와 인터뷰, 기록들은 그의 뛰어난 관찰력이 인상주의 거장으로 만든 비결이라고 말해 준다. 모네의 눈을 따라가며, 관찰이 그의 예술세계
  • thumbnail - 순수·상업 미술의 장벽 파괴… 대중문화 시대 ‘예술 기업가’ 탄생[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순수·상업 미술의 장벽 파괴… 대중문화 시대 ‘예술 기업가’ 탄생[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훌륭한 사업이 최고의 예술” 출세를 꿈꾼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 대중 욕망하는 달러를 미술 중심에 미술계 위선 폭로, 작품 팔아 대성공 “난 기계가 되고 싶다, 당신은?” ‘작품은 1점뿐’이라는 원본성 파괴 대중이 향유하도록 대량생산 실현 ‘창작=산업 제조’로 본 혁명적 발상 “누구나 15분간 유명해질 것” ‘먼로’로 명성의 생산·소비·소멸 구현 대중문화 도래 예견하고 흐름 선도 예술가를 ‘대중이 꾸며낸 허상’ 정의 오랫동안 미술계에서 상업적 예술가라는 꼬리표는 가장 피해야 하는 단어였다. 예술가는 돈을 멀리하고 순수하게 창작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낭만적 신화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1928~1987)은 오래된 금기를 깨뜨렸다. 그에게 미술로 돈을 벌고 유명해지는 일은 또 다른 형태의 창작 행위였다. 그는 미술을 대중이 쉽게 소비하고 즐길 수 있는 상품으로 전환시키고 순수미술과 상업미술 사이의 견고한 벽을 허물었다. 그런데도 워홀은 현대미술의 개념을 바꾼 위대한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돈과 명성을 좇았던 그가 어떻게 미술사의 중심에 설 수 있었을까. 그의 일기와 편지, 인터뷰, 기록물을 통해 앤디 워홀이라는 이름이 최고
  • thumbnail - ‘천재’를 연출한 천재… 20세기 미술 ‘상상력’을 해방시켰다[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천재’를 연출한 천재… 20세기 미술 ‘상상력’을 해방시켰다[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타인의 생각에 영향 미치는 창조자” 자신을 작품으로 만든 ‘위대한 쇼맨’ 꿈·무의식적 욕망을 캔버스 위로 상식과 관습 깨고 영감 불어넣어 스페인이 낳은 초현실주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1904~1989)는 천재성을 가장 성공적으로 상품화한 예술가였다. 그는 겸손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스스로를 천재라고 불렀으며 수많은 인터뷰와 자서전, 일기를 통해 자신의 위대함을 공공연히 선언하고 찬양했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그의 요란한 자기 선전이 허세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실제로 20세기 미술사의 흐름을 바꾼 천재였다. 누구나 인정하는 천재였던 그는 왜 그토록 집요하게 천재성을 연기하고 광고해야만 했을까. 단지 세간의 이목을 끌기 위한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었을까, 아니면 기상천외한 초현실주의적 행위예술이었을까. 해답은 달리가 남긴 말과 기록 속에 있다. 달리의 언행과 저술을 따라가며 그가 스스로 창조한 천재 신화의 베일을 벗겨 보자. 첫 번째 명언, “진정한 예술가는 영감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이 말은 위대한 예술가란 영감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능동적인 창조
  • thumbnail - “질병·죽음의 공포는 창작 자양분”… 심리 묘사로 표현주의 개척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질병·죽음의 공포는 창작 자양분”… 심리 묘사로 표현주의 개척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고통은 나 자신과 예술의 일부” 어린 시절엔 결핵, 평생 만성병 앓아 5세부터 부모 형제 가족 5명 잃어 ‘병든 아이’ 연작 그려 슬픔 치유·속죄 “인간의 살아 있는 감정 그릴 것” “주관적 경험·감정 표현” 예술관 밝혀 사실 재현하는 기존 흐름에서 탈피 ‘절규’는 실존적 불안·고뇌 그린 걸작 질병이 안겨 주는 고통과 창조성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 질문은 오랫동안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주제다. 고통과 질병은 창조성을 빼앗는 파괴적 힘으로 작용하지만, 한편으로 창조의 불씨를 지피는 동력이 된다. 노르웨이의 거장 에드바르 뭉크(1863~1944)는 고통과 창조의 이중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예술가다. 그는 평생 병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았지만 고통을 창작의 자양분으로 삼아 독창적 예술세계를 창안했다. 뭉크가 남긴 일기와 기록을 통해 그가 어떻게 고통스러운 개인사를 창조성으로 승화시켰는지 살펴보자. 첫 번째 명언, “내 고통은 나 자신과 예술의 일부가 됐다. 질병과 불안이 없었다면 나는 키 잃은 배와 같았을 것이다.” 뭉크의 일기에 적힌 이 문장은 그가 고통을 예술의 원동력으로 삼았다는 증거물이다. 뭉크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어두운 그림
  • thumbnail - 세속적 출세, 반체제 고발… 나와 또 다른 나 ‘두 겹의 삶’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세속적 출세, 반체제 고발… 나와 또 다른 나 ‘두 겹의 삶’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스페인의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1746 ~1828)의 이름 앞에는 ‘두 얼굴의 화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는 40대 중반부터 말년까지 30여년간 빛과 어둠처럼 대조되는 두 개의 삶을 살며 전혀 다른 두 개의 화풍을 창조했다. 하나는 스페인 왕실과 귀족들의 총애를 받으며 당대 권력의 영광과 사치를 화폭에 담아낸 성공한 궁정화가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시대의 광기를 증언한 작품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과 탐욕, 폭력의 실체를 고발한 반체제 선동가의 삶이었다. 이처럼 한 예술가의 내면에 사회질서에 순응하는 출세주의자와 반체제 고발자가 공존하며 상반된 작품세계를 오랜 기간 유지한 사례는 미술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과연 무엇이 고야로 하여금 모순적인 두 개의 자아를 품은 채 살아가게 했을까. 그가 남긴 명언들을 단서 삼아 이중성의 비밀을 추적해 보자. 첫 번째 명언- “이것을 나는 보았다(Yo lo vi).” 고야는 프랑스군에 점령당한 스페인에서 벌어진 전쟁의 광기를 기록한 판화 연작 ‘전쟁의 참상’에서 “이것을 나는 보았다”고 적었다. 이 간결한 문장은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진실만을 그리겠다는 예술가적 선언이다. ‘작품 1’은 그의 신념이 회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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