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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우주산업의 미래, 고흥 가는 철도에 달렸다

    우주로 향하는 길을 넓히려면 우주산업 현장으로 향하는 길부터 살펴야 한다. 발사체를 개발하고 발사장을 조성하는 일만큼 중요한 것이 사람과 기업이 그 현장에 원활하게 오갈 수 있는 교통망을 갖추는 일이다. 고흥 우주선철도를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흥은 이미 대한민국 우주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잡았다. 나로우주센터를 중심으로 우주발사체 산업이 집적하고 민간발사장과 우주발사체 국가산업단지 조성도 추진되고 있다. 연구개발부터 생산, 시험과 발사에 이르는 우주산업 생태계를 고흥에 구축하려는 국가적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교통망도 달라져야 한다. 산업시설을 만들어 놓고 사람이 오가는 길은 나중에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국가 투자의 효과를 충분히 끌어내기 어렵다. 우주산업은 특히 사람의 이동이 중요하다. 연구자와 기술자, 기업 관계자가 연구개발 현장과 생산·시험 현장을 오가야 하고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려면 주요 도시와 산업 현장 사이의 접근성도 뒷받침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고흥 우주선철도의 역할은 단순히 고흥에 철도 하나를 놓는 데 있지 않다. 벌교에서 고흥을 거쳐 녹동까지 연결하고 기존 철도망과 주요
  • thumbnail - [기고] 행정·공공기관 이전, ‘나눠 심기’ 아닌 ‘숲을 이루는 생태계’로 진행해야

    [기고] 행정·공공기관 이전, ‘나눠 심기’ 아닌 ‘숲을 이루는 생태계’로 진행해야

    정부가 지난 3일 ‘행정·공공기관 이전 계획 및 공공기관 기능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수도권 공공기관 350여 곳의 잔류 기준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이전 기관은 기존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직접 배치하며, 중앙행정기관은 세종을 중심으로 이전 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이 골자다. 2019년 153개 기관의 1차 이전이 마무리된 이후 여러 정부에서 구호로만 맴돌던 2차 이전이 실행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발표가 나오자마자 지자체마다 몇 개 기관을 가져올 것인가를 두고 유치전에 뛰어들고 있다.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는 핵심 목표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추진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수도권 집중은 오히려 심화했다. 수도권 인구는 이미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고, 혁신도시는 주중에만 불이 켜지는 도시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는 기관을 옮기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었을 뿐, 기관과 함께 뿌리내려야 할 산업과 기업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무를 옮겨 심으면서 뿌리 내릴 흙은 챙기지 않은 셈이다. 지역마다 기관 수를 고르게 맞추는 나누어 먹기식 배분은 형평의 외양은 갖추었지만 지역 발전
  • thumbnail - [기고] 멕시코서 만난 K컬처의 다음 단계는

    [기고] 멕시코서 만난 K컬처의 다음 단계는

    지난해 여름 멕시코에 부임한 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에너지였다. K팝이 흘러나오면 자연스럽게 춤을 추고 드라마에서 본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어 보고 한국어를 배우고 “K뷰티가 최고”라며 한국 화장품을 친구들에게 권한다. 한국문화 감상에 그치지 않고 삶 속으로 가져와 자신들의 방식으로 다시 즐기는 것이다. 올해 K팝 커버댄스 페스티벌에는 역대 가장 많은 팀이 참가해 뜨거운 열기를 보여 줬다. 지난 6월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한국의 조별리그 세 경기가 모두 멕시코에서 열렸다. 이를 계기로 마련한 문화프로그램 ‘빛으로 잇다’(미디어파사드), ‘시선으로 잇다’(전시), ‘리듬으로 잇다’(공연)에도 많은 시민이 함께했다. 8월 열린 현대무용단 리케이댄스 공연 역시 객석을 가득 채웠다. K팝처럼 친숙한 장르뿐 아니라 전시와 무용, 문화유산에까지 적극 반응하는 관객들을 보면서 멕시코에서 K컬처의 저변이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깊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변화는 단지 관객이 많아졌다는 데 있지 않다. 이제는 한국문화를 일방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를 넘어 멕시코의 문화기관과 대학, 예술가들이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고 새로운 협력을 제안해 오는 일이 점점 자
  • thumbnail - [기고] 우리 기업의 미국 진출, 절호의 기회다

    [기고] 우리 기업의 미국 진출, 절호의 기회다

    1882년 토머스 에디슨은 뉴욕 맨해튼 펄 스트리트에 미국 최초의 상업용 중앙발전소를 가동했다. 한 곳에서 만든 전기를 여러 건물에 보내는 이 실험은 현대 전력산업의 출발점이 됐다. 그로부터 140여 년이 흐른 지금, 미국은 전력이라는 과제 앞에 서게 됐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첨단 공장이 들어서며 전력 수요는 급증하는데 전력 설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미국 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지난해 52기가와트(GW)에서 2030년 115GW로 두 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이 과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한국이 협력 파트너로 참여하게 됐다. 정부는 최근 대미 투자협력의 첫 사업으로 텍사스주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을 확정했다. 미국 에너지·인프라 시장은 진입이 쉽지 않았다. 현지 실적과 벤더 등록, 인증을 요구하는 관행 때문에 입찰 명단에 오르기까지 수년이 걸려 중소·중견기업에겐 높은 문턱이었다. 이번 투자는 그 문턱을 넘을 기회가 될 수 있다. 발전소 한 곳에는 설계·조달·시공(EPC)부터 가스터빈과 배열회수보일러, 변압기와 개폐기, 배관·밸브·계측제어, 준공 이후의 운영·정비까지 긴 가치사슬이 연계된다. 후속 사업으로 논의되는 원전은 주기기와 보
  • thumbnail - [기고] 새만금 하늘길, 이제 열어야 한다

    [기고] 새만금 하늘길, 이제 열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 공간이 필요하다. 수도권에 집중된 산업과 인구를 분산하고 미래 산업을 담아낼 새로운 거점을 만들어 국가의 성장축을 넓혀야 한다. 이재명 정부도 수도권 1극 체제를 넘어 ‘5극 3특’을 중심으로 지방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는 국가균형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이 성공하려면 지역마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산업 기반과 이를 뒷받침할 교통·물류 인프라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그 대표적인 공간이 새만금이다. 국가는 그동안 새만금에 산업용지를 조성하고 도로와 항만, 철도 등 대규모 기반시설을 구축하며 대한민국의 신성장 거점을 만들어 왔다. 이러한 공공의 선제적 투자는 단순한 지역 개발을 넘어 기업과 산업이 자리 잡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과정이었다.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의 대규모 투자는 새만금이 기반시설을 조성하는 단계를 넘어 실제 기업과 산업이 움직이는 성장 거점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로봇·인공지능·수소 등 미래 산업이 본격적으로 들어서면서 국가의 선제적 기반시설 투자와 민간의 산업 투자가 서로 맞물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공공 투자와 민간 투자가 더 큰 상승효과를 낼 수 있도록
  • thumbnail - [기고] 인구의 ‘규모’에서 지역의 ‘활력’으로

    [기고] 인구의 ‘규모’에서 지역의 ‘활력’으로

    정부가 5년 만에 인구감소지역 92곳과 인구감소관심지역 18곳을 재지정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측정의 관점이다. 2021년에는 인구·재정의 8개 지표로 ‘인구감소지수’를 산정했지만 이번에는 기존 지표를 6개로 조정하고 시가화율, 근무지 기준 취업자수, 생활인구를 더해 9개 지표의 ‘인구활력지수’로 재편했다. 등록인구의 많고 적음만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얼마나 일하고, 머물고, 오가는지를 함께 보겠다는 것이다.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을 근거로 도입한 생활인구 개념이 지정기준에까지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정주인구 쟁탈의 제로섬 경쟁을 넘어서려는 정책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두 번째 변화는 ‘인구활력+지역’의 신설이다. 지표가 개선되어 지정에서 막 벗어나려는 지역도 향후 5년간 기존 지원을 이어받는다.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점에 지표 개선만을 이유로 지원을 끊으면 회복세가 꺾일 수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했다. 지정이 ‘낙인’이 아니라 ‘졸업’의 경로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 의미 있는 설계다. 제도의 틀은 한 단계 나아갔다. 이제 중요한 것은 재지정 이후 5년을 채울 정책의 내용이다. 우선, 인구를 붙잡는 경쟁이 아니라 삶을 지키는 지역 맞춤 설
  • thumbnail - [기고] 생성형 AI 시대, 대학 강의실의 재설계

    [기고] 생성형 AI 시대, 대학 강의실의 재설계

    생성형 AI의 등장은 대학 교육에 새 프로그램이 추가된 정도를 넘어, 대학 강의실의 역할을 다시 묻게 한다. 학생들은 온라인 강의와 디지털 자료를 통해 기초지식을 학습할 수 있고, AI는 정보를 제공하고 질문에 답한다. 대학의 가치는 지식 전달보다 학생이 지식을 바탕으로 문제를 발견하고 협력하며 AI의 제안에서 의문과 가능성을 찾아 탐색, 이를 검토하고 수정해 자신의 판단을 성과로 구현하도록 돕는 데 있다. 교육 혁신은 AI를 덧붙이는 일이 아니라 학습, 참여, 평가, 진로를 잇는 교육 재설계다. 기초지식은 온라인과 AI로 익히되, 대면 강의실에서는 AI가 제시한 답의 사실성과 편견, 전제와 한계를 검토해야 한다. AI는 답을 제시하지만 타당성과 영향에 책임지지는 않는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고칠지 결정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교수는 질문과 근거, 탐색과 판단을 이끄는 설계자이자 안내자여야 한다. AI가 답을 제시하는 시대일수록, 그 답을 성찰하고 판단할 교양교육도 중요하다. AI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적 영향과 윤리적 쟁점을 성찰하려면 폭넓은 소양이 필요하다. 교양교육은 사실과 의견, 근거와 편견을 가리고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며
  • thumbnail - [기고] 2036 올림픽 유치전 난맥상 해법은

    [기고] 2036 올림픽 유치전 난맥상 해법은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 전선에 경고등이 켜졌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전주하계올림픽 유치 심의를 보류하기로 했다. 애초 전북 전주가 단독 개최를 추진하다가 경기장, 숙박시설, 미디어촌 등 핵심 인프라 부족의 현실적 벽에 부딪혀 단독 개최를 사실상 접고 서울시에 ‘공동 개최 SOS’를 보내며 계획을 급선회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후보지 선정 당시 객관적인 준비 상황과 글로벌 경쟁력보다는 정치적 셈법이 앞섰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초대형 메가 이벤트를 감당하기 힘든 상태에서 무리하게 밀어붙인 결과가 결국 심의 보류와 국론 분열로 되돌아왔다. 이제 와서 개회식과 폐회식을 나눠 맡자거나 대회 명칭을 섞자는 식의 공동 개최 구상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개최 계획 변경으로 대한체육회의 승인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할 수도 있다. 내년 3월 예정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후보 압축 단계인 ‘전략 대화’(Strategic Dialogue) 일정마저 코앞이라 자칫 대한민국의 올림픽 유치 기회 자체가 허공으로 날아갈 판이다. 국제 경쟁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전에는 인도, 카타르 등 막강한 자본력과 국가적 역량을
  • thumbnail - [기고] M&A 심사의 예측 가능성

    [기고] M&A 심사의 예측 가능성

    공정거래위원회가 2025년에 심사한 기업결합은 590건이었다. 전년보다 26% 줄었다. 반면 결합 금액은 358조원으로 82조원 늘었다. 건수는 줄고 규모는 커졌다는 것은 심사 한 건의 무게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로봇 같은 인공지능 가치사슬에서 게임과 화장품까지 분야도 넓어졌다. 산업 간 경계가 흐려지고 결합의 효과가 인접 시장까지 미치는 거래에서 경쟁 제한성을 가려내는 일이 과거의 잣대로는 되지 않는다는 점을 기업들도 안다. 그래서 현장에서 자주 듣는 말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가 아니라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없다”에 가깝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신고 후 30일 안에 심사하고, 연장하더라도 120일 이내에 결과를 통지하도록 정하고 있다. 다만 자료 보완에 걸린 기간은 이 기한에 넣지 않는다. 보완 요청이 거듭되면 법정기한의 시계는 멈추고, 명목상 120일 절차가 실제로는 그 몇 배로 늘어나기도 한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 불가피한 설계지만, 기업으로서는 신고한 날부터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구조가 된다. 문제는 그 기다림이 중립적인 시간이 아니라는 데 있다. 심사 중에도 시장은 멈추지 않는다. 경쟁 사업자는 제휴를 맺고 투자를 집행하
  • thumbnail - [기고] ‘무늬만’ 지출 구조조정 끝낸 정부에 박수

    [기고] ‘무늬만’ 지출 구조조정 끝낸 정부에 박수

    공무원 하면 ‘철밥통’과 ‘복지부동’이 떠오른다. 사고만 치지 않으면 자리를 지키니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사고를 피하려면 하던 일만 계속하면 된다. 문제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바뀐다는 점이다. 불필요한 사업을 없애는 지출 구조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지출 구조조정이 안 되는 이유를 모두 공무원 탓으로 돌릴 순 없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업은 의외로 찾기 어렵다. 더 필요한 사업과 덜 필요한 사업이 있을 뿐이다. 그 순서도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업이 누군가에게는 생계다. 사업을 만들면 박수를 받지만 없애면 항의받는다. 지출 구조조정이 어려운 이유다. 역대 모든 정부가 지출 구조조정을 자랑해 왔다. 하지만 뜯어보면 ‘무늬만’ 구조조정이었다. 지급 시점을 내년으로 미루거나 어차피 종료되는 사업을 명단에 올린다. 국민의 부담을 줄이는 지출 구조조정은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어떤 정부도 지출 구조조정 리스트를 공개하지 못했다. 첫째는 포장지만 지출 구조조정이란 사실이 드러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둘째는 관련 당사자로부터 욕을 먹을 수 있어서였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2027년 지출 구조조정 리스트를 공개한 건 의미가 있다.
  • thumbnail - [기고] 누리호, 다시 우주로

    [기고] 누리호, 다시 우주로

    우리 기술로 만든 독자적인 우주발사체인 누리호가 다시 한번 우주를 향한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 2021년 첫 발사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준 누리호는, 이듬해 6월 위성을 목표궤도에 성공적으로 올려놓음으로써 우리나라도 1t 이상의 실용위성을 우주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였음을 증명하였다. 이후 2023년 3차, 지난해 4차 발사까지 연이어 위성을 목표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하여 우리나라는 이제 명실상부한 세계 7대 우주강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3회의 연속된 발사 성공을 통해 검증된 누리호의 기술과 발사준비 및 운용능력을 바탕으로, 누리호는 우주발사체에 요구되는 또 다른 사항인 상업성을 확보하고자 다시 우주로 향한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 우주발사체의 상업성은 발사체를 원하는 날짜에 발사할 수 있는 적시성과 다양한 목표궤도에 위성을 정확히 올려놓을 수 있는 임무신뢰성의 검증으로 확보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여러 번의 발사로 그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우주발사체로 평가받고 있는 미국 팰컨9의 경우, 발사를 거듭하며 쌓인 성공률과 정시 발사능력, 다양한 임무의 성공능력이 오늘날 세계 상업위성 사업자와 각국 정부
  • thumbnail - [기고] 낙관론자들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기고] 낙관론자들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오랫동안 비관은 공짜였다. 시작했다가 틀리면 돈과 시간을 잃었지만, 시작하지 않아 놓친 것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잘못된 낙관에는 청구서가 왔고, 잘못된 비관에는 오지 않았다. 인공지능(AI)은 이 공식을 바꾸고 있다. 틀렸다는 사실을 확인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내려가면서, 시도하지 않는 선택은 오히려 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됐다. 나는 매일 밤 코드를 짠다. 예전 같으면 무모한 일이었다. 몇 달은 걸린다며 접었을 생각을 이제는 AI 에이전트에게 지시하고 맡긴다. 개발자들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오랜 시간을 들여야 가능했던 일을 이제는 AI 에이전트가 한 두 시간이면 만들어준다. 돌려보고, 안 되면 버리고, 되면 취한다. 내가 15년 만에 개발을 다시 시작한 건 갑자기 용감해져서가 아니다. AI의 도움으로 시작하는 데 용기가 덜 필요해졌을 뿐이다. 머릿속 검열관이 틀렸던 것도 아니다. 근거로 삼았던 세계가 달라진 것이다. 완성은 여전히 어렵다. 빠르고 저렴해진 것은 가능한지 확인하는 일이다. 몇 달짜리 착각이 몇 시간짜리 실험이 된다. 틀리지 않으려고 판단을 미루는 동안 누군가는 열 번 틀리며 다음 시도의 단서를 얻는다. 낙관은 믿음의 크기보다 실험하고
  • thumbnail - [기고]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와 공인탐정 법제화

    [기고]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와 공인탐정 법제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와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형사사법 체계의 변화에 따른 수사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피해자나 고소인이 수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재판 과정에서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찰은 이에 대비해 수사 인력을 재배치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한정된 경찰 인력만으로 증가하는 수사와 사실조사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제도 개편과 함께 공공수사의 부담을 덜고 국민의 권리구제를 지원할 보완 장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 대안 가운데 하나가 공인탐정 제도의 법제화다.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부터 ‘탐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민간조사 활동이 가능해졌지만, 탐정의 업무 범위와 권한·책임, 자격 요건 등을 종합적으로 규율하는 법률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관련 법안이 여러 차례 국회에 제출됐으나 제도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해외에서는 변호사·경찰·민간조사 전문가가 각각 역할을 분담하는 제도가 정착된 국가들이 있다. 우리 역시 변호사는 법률적 조력을, 경찰은 범죄수사와 공공안전을, 민간조사 전문가는 합법적인 범위에서 사실관계 확인과 자료 수집을 담당하는 방향으로
  • thumbnail - [기고] 잠재성장률 반등을 위한 2027년 예산안

    [기고] 잠재성장률 반등을 위한 2027년 예산안

    2027년 예산안이 총수입 880조 8000억원, 총지출 820조 9000억원으로 짜였다. 지출은 한 해 전보다 12.8% 불어난 사상 최대치다. 겉모습만 보면 꽤 공격적인 확장 재정이다. 하지만 이번 예산안의 성격은 지출 증가율 하나로 읽히지 않는다. 급증한 세입, 새로 만든 미래대응기금, 대규모 지출구조조정, 성장잠재력 투자가 한 묶음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출발점은 세입이다. 반도체 호황으로 법인세와 소득세가 크게 불면서 국세수입은 584조 4000억원, 전년 본예산 대비 194조 2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 덕에 지출을 93조원 늘리고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GDP의 0.1%로 줄고 국가채무 비율은 48.3% 수준에 머문다. 지출을 늘리면서 건전성까지 개선되는, 흔치 않은 조합이다. 더 주목할 대목은 늘어난 세수를 전부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최근 10년 내국세 증가 추세를 웃도는 162조원을 미래대응기금에 넣기로 했다. 이 중 45조 4000억원만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에 투입하고 나머지는 여유 자금으로 남긴다. 반도체처럼 부침이 심한 산업에서 얻은 세수를 모두 경상지출로 바꾸면 업황이 꺾일 때 재정이 흔들린다. 기
  • thumbnail - [기고] 몽골 초원의 길에서 ‘K 주소’의 길로

    [기고] 몽골 초원의 길에서 ‘K 주소’의 길로

    몽골의 역사는 ‘공간을 읽는 역사’였다. 광활한 초원을 누비며 대륙으로 뻗어 나간 유목민들은 태양과 별을 보고 방향을 가늠했고, 산과 강을 이정표 삼아 이동했다.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대륙을 제패한 배경에도 이러한 공간 감각과 역참을 비롯한 촘촘한 정보체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수백 년이 흐른 지금, 몽골이 공간을 파악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별과 지형 대신 위성과 좌표를 보고 위치를 주소와 데이터를 통해 기록한다. 국토정보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구축하는 일은 이제 몽골의 행정과 산업, 국민의 삶을 바꾸는 국가 인프라가 되고 있다. 그 변화의 길에 대한민국의 공간정보기술이 함께하고 있다. 몽골은 한반도의 7배에 달하는 넓은 국토를 가진 나라다. 하지만 전체 면적의 0.3%에 불과한 수도(울란바토르)에 인구의 약 50%가 집중돼 있고 전통 가옥인 게르가 밀집한 지역도 광범위하다. 유목 생활의 영향으로 정확한 주소가 없는 곳이 많았고 주소체계가 달라 행정서비스의 사각지대가 컸다. 주소가 없으니 아이가 태어나도 행정등록이 늦어지고 구급차나 소방차가 출동해도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몽골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식 주소체계와 영국식
  • thumbnail - [기고] 신규 투자 따른 인력 재배치도 구조조정인가

    [기고] 신규 투자 따른 인력 재배치도 구조조정인가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신규 투자에 수반되는 인력 재배치가 노사 간 교섭과 쟁의 대상인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 시행지침은 공장 신설과 이전 결정 자체는 의무적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인력운영계획이 구체화돼 근로조건의 변동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이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문제는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의 개념이 모호해, 신규 투자를 위한 통상적 인력배치까지 구조조정으로 확대 해석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일자리를 줄이기 위한 배치전환과 새 설비를 돌리기 위한 배치전환은 성격이 다르다. 법의 취지는 사업 축소나 정리해고처럼 고용 불안을 초래하는 국면에서 근로자의 교섭 기회를 보장하려는 데 있다. 이를 신규 설비 가동과 고용 확대를 위한 인력배치에까지 확장 적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물론 새로운 공장으로 인력을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근로자 개인의 생활상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부담을 덜어주는 문제는 개개인의 사정에 맞춰 풀어 갈 사안이다. 하지만, 이를 교섭 대상으로 삼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번 지침은 투자 결정 자체는 경영판단의 영역으로 보고 의무적
  • thumbnail - [기고] ‘기술공화국’과 한국이라는 대답

    [기고] ‘기술공화국’과 한국이라는 대답

    나에게는 두 곳의 강의실에 대한 기억이 있다. 한 곳은 미국 스탠퍼드대다. 박사과정 재학 중 학생들에게 고전인문학을 가르쳤다. 진로 이야기가 나오면 대답은 세 갈래로 좁혀졌다. 창업과 빅테크, 금융. 이따금 로스쿨. ‘국가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학생을 만난 기억은 없다. 그 말은 그 세계의 어휘에 없었다. 다른 강의실은 청주에 있다. 공군사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것으로 군 복무를 대신했는데, 제복 입은 스무 살 청년들과 ‘나라를 지킬 수호자를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라는,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질문을 함께 읽었다. 그들에게 ‘너의 재능은 무엇을 위해 있는가’는 토론 주제가 아니었다. 전제였다. 두 강의실의 젊은이들은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비슷한 또래, 비슷한 총명함. 다른 것은 하나였다. 자기 재능의 용도에 대한 상상의 지도. 한쪽에는 ‘국가’라는 지명이 아예 없었고, 다른 쪽에는 그것이 한복판에 있었다.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재능의 쓸모를 어떻게 가르치는가. 이 글은 그 질문을 던지고 있는 팔란티어 창업자 알렉스 카프의 이야기다. 명상과 태극권을 즐기는 이 곱슬머리 CEO는 독일 괴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실리콘밸리의 철학자’다. 그는 저서
  • thumbnail - [기고] 고정OT제와 포괄임금제는 엄연히 다르다

    [기고] 고정OT제와 포괄임금제는 엄연히 다르다

    최근 국회와 노동계에서 포괄임금제 폐지 논의가 가속화되고 있다. 실제로 밤늦게까지 또는 주말도 반납하고 일했는데 급여명세서에는 흔적이 남지 않는 이른바 ‘공짜노동’이 규제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이 논의 과정에서 포괄임금제와 본질이 다른 ‘고정OT제’까지 한 묶음으로 취급돼 폐지 대상에 오르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두 제도는 겉모습이 비슷해 혼동하기 쉽다. 매달 일정액의 수당을 급여에 포함해 지급한다는 점은 같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다. 오남용되는 포괄임금제는 기본임금을 미리 정하지 않은 채 법정수당까지 포함된 금액을 월 급여액으로 정하거나 기본임금을 미리 정하면서도 일정액을 연장근로수당으로 정하여 실제 연장근로시간 수와 관계없이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즉, 추가 정산이 없다. 반면 고정OT제는 매월 일정 시간의 연장근로를 미리 정해 그에 해당하는 수당을 기본임금에 추가하여 고정적으로 지급하되, 실제 연장근로시간이 그 고정 시간을 초과하면 초과분을 별도로 정산해 추가 지급하는 구조다. 문제의 본질은 ‘정산 없는’ 포괄임금제의 오남용에 있는 것이지, ‘정산을 전제로 한’ 고정OT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구별은 대법원 판례의
  • thumbnail - [기고] 대법원은 대법원장의 법원이 아니다

    [기고] 대법원은 대법원장의 법원이 아니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대법원 구성에 관한 실질적 임명권을 부여하면서 제청과 동의를 그 통제장치로 뒀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후보자의 범위를 구속한다. 국회의 동의권도 후보자의 적격성을 국민 대표기관이 심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청권이나 동의권을 가진 기관이 곧 임명권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대법원장이 제청한 인물을 대통령이 반드시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면 대통령 임명권은 사실상 소멸하고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최종 결정하게 된다. 우리 헌정사는 그와 다른 해석의 단서를 제공한다. 제3공화국 헌법은 대법원장이 법관추천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 판사를 제청하면 대통령이 “이를 임명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당시 대통령의 임명권은 명백한 기속적 권한이었다. 당시 임명의무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대법원장 등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가 다수 참여한 법관추천회의(9인)의 구성과도 관련된다. 대통령의 의사와 사법부의 전문적 판단이 후보자 형성 단계에서 조정됐기 때문에 일단 법관추천회의의 동의를 거친 제청이 이루어지면 대통령에게 임명의무를 부과할 수 있었던 것이
  • thumbnail - [기고] 바이오헬스, 미래 이끌 국가전략산업

    [기고] 바이오헬스, 미래 이끌 국가전략산업

    바이오헬스는 병원과 같은 치료 중심의 의료체계, 제약, 의료기기 산업 등 전통 산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넓게 인공지능, 데이터, 정보통신기술(ICT) 등을 기반으로 예방, 치료, 관리 등 전 과정에 있어 제약, 백신, 세포·유전자치료제, 재생 및 정밀 의료, 의료기기 등 첨단 과학·바이오 기술이 집약된 융합 산업이다. 바이오헬스는 미래 먹거리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등 우리의 주력 산업에 버금가는 미래 성장 동력이다. 보건복지부는 바이오헬스 시장이 2030년 반도체 시장을 넘는 2조 4100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오헬스의 발전은 인구구조의 변화와도 관련 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만성질환과 퇴행성 질환에 대한 예방과 치료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오래 사는 것을 넘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건강수명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 같은 환경 변화와 함께 의료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끄는 것이 인공지능, 데이터, 정보통신기술(ICT) 등을 기반으로 하는 바이오헬스 영역인 것이다. 바이오헬스 산업은 국가 보건의 파수꾼 역할도 한다. 지난 시기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는 백신, 치료제, 진단키트 등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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